네트워크 세계사 - 인류는 어떻게 소통하고 교류하는가, 교육청 책장 장학사 추천도서
민유기 외 지음 / 자유의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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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트워크 세계사

 : 민유기

 : 자유의 길

 : 2021/07/05 - 2021/07/11


제목을 보면서 예상했다.

이 책은 교역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풀어내는 책일거야..

동서양의 실크로드, 초원로드, 바닷길 등으로 문명이 어떻게 교류하고, 물품과 사람이 이동하는지를 풀어내겠지.

그러나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세계사책이다. 그것도 개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과서 세계사를 다시 읽기는 싫고, 짧게 다이제스트된 세계사책을 원하는 사람에게 좋은 책이다. 

책이 두껍지도 않고, 간결해서 세계사를 쭉 흝어 보려고 하는 사람은 만족할 것이다.

그렇지만 제목만 보고 낚여서 문물, 사람, 전염병의 교류를 생각했던 사람은 실망할 것같다. 



p21 수렵,채집사회에서 농업사회로의 전환은 단선적이기보다는 복합적이었다는 점을, 나아가 대규모 문명 건설은 농업에 종사하는 정주민과 수렵,채집인의 협업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p22 기원전 5천 년경부터 시작된 수메르의 도시화는 기원전 4천 년경에 이르러 우르나 우루크와 같은 대규모 도시들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p24 수메르 북부의 아카드인은 기원전 2350년경 사르곤 왕을 중심으로 이 지역을 통일했으나 기원전 2100년경에는 우르 제3왕조가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했다.

p30 황허강 유역의 양사오 문화나 얼리터우 문화 외에도 랴오허강 유역의 홍산문화, 창장강 유역의 량주문화 등이 대표적인 유적지를 자랑하고 있다.

p39 기원전 4세기경 이들이 꽃피운 황금문화는 살아남아 유라시아 스텝지역의 다른 유목민들에게도 전파되었고 한반도의 신라까지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신라금관은 황금이라는 재료는 물론, 장식 모양에 있어서도 스키타이 금관과 많은 유사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p48 파르티아는 로마에서 한에 이르는 동서교역로 상에 위치해 경제적 이득을 취했으며 헬레니즘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가 어우러진 다신교 사회를 이루었다.

p50 이오니아 학파로 대변되는 철학은 만물의 기원과 원리를 찾고자 했고 헤로도토스로 대표되는 역사서술은 인간사에서 신화를 걷어내고 모두가 납득할만한 설명을 추구했다.

p54 견융족의 침략을 받아 주 왕조는 관중으 호경에서 중원의 뤄양으로 천도했는데, 호경 시대를 서주, 뤄양 시대를 동주라고 한다.

p60 흉노를 기원전 4세기부터 5세기까지 몽골 및 중국 북부 지역에 존재한 유목제국이다. 훈족과 같은 민족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p61 흉노 정벌을 위해 추진된 장건의 서역 원정은 동서 교역로를 개척하게 되었다는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p62 서진은 사마염 사후 팔왕의 난이 발발해 혼란에 휩싸이는데 그 틈을 타고 북방 유목민족인 흉노, 선비, 저, 강, 갈족 등 오호가 세력을 확대해서 뤄양을 점령했다. 이후 화북은 크고 작은 나라가 흥망을 거듭하게 되는데, 이를 오호십육국이라고 한다.

p74 몽골은 1231년부터 30여 년간 일곱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했다. 이 대몽항쟁 시기에 황룡사의 구층탑을 비롯해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었는데, 당시 최씨 무인정권은 불심에 의지해서 난국을 타개하고자 팔만대장경을 조판했으나, 제5대 쿠빌라이칸 시기 복속되어 부마국이 되었다.

p86 제4대 할리파 알리와 무함마드 일족은 종교공동체의 성격을 고수하고자 했지만 제2대 할리파 우마르가 속했던 우마이야 가문과 추종자들은 제국으로 변모를 시도했다. 이 투쟁에서 승리한 우마이야 가문은 우마이야 제국을 개창했고, 이슬람교는 우마이야 제국을 받아들인 수니파와 알리의 가르침을 따르는 시아파로 분열되었다.

p100 오토1세는 마자르족을 완전히 격퇴하고 동프랑키아와 이탈리아의 혼란한 상황을 수습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세력에 위협을 받던 교황권을 안정화시킴으로써 962년 교황으로부터 신성로마황제로 추대되었다.

p105 10세기 서아시아는 계속되는 튀르크인의 팽창으로 커다란 격변을 맞이했다. 이제 이슬람의 주도권은 아랍인에서 페르시아인을 거쳐 튀르크인에게 계승되었다.

p115 1375년 아라곤에서 제작된 카탈루냐 지도나 1402년 조선에서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유라시아 양 극단에서 유라시아 전 세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p142 일본의 다이묘 사이에서는 다도가 유행해서 차를 마실 다기가 필요했지만, 일본의 도자기 기술이 조선에 비해 훨씬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조선의 도공에 의해 사쓰마 자기와 아리타 자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현재 아리타의 도잔신사에는 당시 일본으로 끌려와 도자기 기술을 전수해준 이삼평을 도자기의 시조로 받을어 모시고 있다.

p150 부르고뉴-합스부르크 세력과 에스파냐의 결혼 동맹으로 태어난 카를 5세는 신성로마 제국과 이탈리아 남부, 에스파냐는 물론 신항로 개척으로 에스파냐가 장악한 남아메리카 식민지를 모두 상속받아 강력한 세력으로 급성장했다.

p169 정부에 의해 연이은 해외 원정에 나섰던 나폴레옹은 영국 함대에 의해 고립된 이집트를 몰래 빠져나와 1799년 11월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고, 1789년부터 10년에 걸친 프랑스 대혁명도 끝이 났다.

p206 게르만계 오스트리아가 1908년에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하자 세르비아와 러시아가 반발하면서 범게르만주의 대 벌슬라브주의 세력의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p208 제1차 세계대전은 장기전, 참호전이었고 후방의 국민도 군수품 생산에 동원되고 전시경제의 통제를 받으며 전쟁에 참여한 총력전이었다.

p214 루즈벨트 대통령이 1936년 재선에 성공해 뉴딜 정책은 계속되었으나 경제회복은 쉽지 않았다. 대공황은 1939년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 과잉생산이 해소되고 군수산업이 활성화되며 극복되었다.

p216 나치는 개인의 자유를 억누르고 언론과 교육을 통제했으며, 유대인에 대한 억압을 강화했으나, 주택과 고속도로 건설 같은 공공사업 확대와 베르사유조약 파기 선언에 이은 군수공장 재가동 등으로 독일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p225 문화대혁명은 홍위병과 노동자 등 수많은 인민대중을 끌어들인 새로운 양상의 권력투쟁이자 사상, 문화, 풍속, 습관 등 4분야의 옛것에 대한 타파를 목표로 하는 정치, 사회, 문화의 일대 변혁 운동으로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p227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연대회의 이른바 반둥회의에 참가한 29개국은 냉전질서 아래에서 미국과 소련 어느 편에도 서지 않겠다며 비동맹운동을 탄생시키겨, 아시아, 아프리카 상호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시도했다.

p230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러셀은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 등 세계 각자의 지식인과 평화운동가들을 모아 베트남에서의 미군 전쟁범죄를 규탄하는 로셀시민법정을 1967년에 개최했다.

p231 세계 각지에서의 68운동은 당장의 정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기에 정치적으로는 실패했으나 사회, 문화적으로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68세대들이 이후 일상생활에서 민주주의를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p237 국가의 시장에 대한 작은 규제나 개입도 점차 확대되어 경제적 자유를 억누르는 굴종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영국 보수당의 경제정책에, 케인즈주의를 비판하고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중시한 시카고학파의 경제이론은 미국 공화당의 경제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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