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클래식 2 - 클알못에서 벗어나 클잘알이 되기 위한 클래식 이야기 이지 클래식 2
류인하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 이지 클래식2

작가 :  류인하

번역 : 

출판사 : 42

읽은날 : 2019/12/17 - 2020/01/06

분류 : 일반


영화등에 나왔던 클래식을 소개한 후 작곡가를 소개하는 형식은 그대로다.

1권에 비해 잘 모르는 작곡가들로 넘어갔다. 

고전주의를 지나 낭만주의와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주를 이룬다.

아무래도 1권보다는 안들어본 작곡가들의 음악이 많이 소개된다.

낭만주의 음악가들은 이름만큼 낭만적이지 않고 듣기에 어려운 곡들도 꽤 많다. 

그래도 들어보라고 권유하니 들어봐야겠다. 

들어봐야 할 음악 리스트가 쌓인다. 

이런 작곡가들 모른다고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세상에 뭔가 족적을 남긴 분들을 이해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재미있을듯 싶다

내가 음악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멋진 음악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으면 좋겠다.

이런 책이 그런데 도움을 주기를...


P11 1783년 독일의 시인이자 음악가였던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다니엘 슈바르트가 발표한 정치 풍자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것이 가곡<송어>이며, 2년 뒤인 1819년에는 이 가곡의 선율을 이용해 5악장 형식의 피아노 5중주곡 <송어> 작곡했습니다 

P16 처음 프란츠의 재능을 인정한 것도, 가난한 프란츠에게 오선지를 사 주었던 것도,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의 첫 오페라 관람을 권유한 것도 모두 다 슈파운이었습니다 

P28 <교향곡 8번 B단조>로 '미완성'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곡은 4악장의 완결된 형식이 아닌, 2악장까지 완성되어 있는 곡입니다 

P44  1813년에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콘서트를 가졌는데, 이 공연이 엄청나게 성공하면서 파가니니의 이름이 전 유럽에 알려지게 됩니다 

P56 이 곡은 슈트라우스가 살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철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이끈 독일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7주 만에 패전한 후, 오스트리아 국민들 사이에 퍼져 있던 전후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해 작곡된 곡입니다 

P65 혁명 이후 애국심을 고취하는 행진곡들, 특히 새로이 제국의 황제가 된 프란츠 요제프 1세를 위해 작곡한 <프란츠 요제프 황제>, <프란츠 요제프 황제 구원의 기쁨> 같은 곡들을 작곡하면서 공화주의자의 색채를 지우고자 노력한 결과 임용이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P80 러시아의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후원자로 유명한 폰 메크 부인 가족의 피아노 교사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P82 바그너의 음악이 새로운 것이라 생각해서 한껏 기대했던 것과 달리, 바이로이트에서 경험한 바그너의 음악을 두고 그는 훗날 새벽이라고 착각한 아름다운 일몰이었다고 언급했습니다 

P101 화성학 교수인 베리오가 보기엔 라벨은 라벨만의 용어로 가르쳐야 하는 학생이었거든요 

P105 발레 뤼스의 단장 디아길레프의 의뢰로 제작한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가 완성되었는데, 라벨 본인이 각별하게 여긴 대표곡으로 지금은 발레극보다 관현악곡의 형태로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P105 발레 뤼스의 단장 디아길레프의 의뢰로 제작한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가 완성되었는데, 라벨 본인이 각별하게 여긴 대표곡으로 지금은 발레극보다 관현악곡의 형태로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P111 러시아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라벨의 아버지 혈통을 빗대 정밀하고 꼼꼼한 작품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며, '라벨은 스위스 시계 기능공 같은 작곡가'라고 평가했습니다 

P177 고압적이며 독재적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 결과는 무대 프로그램에는 득이 되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P193 그렇게 탄생한 곡이 스트라빈스키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 된 발레 <불새>입니다. 이 곡의 초연을 위해 스트라빈스키는 우스틸룽의 집을 떠나 파리로 와서 리허설과 초연 공연을 지켜봤는데, 1910년 6월 25일 파리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열린 이 공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 

P216 슈트라우스와 나치당은 겉으로는 협조적이고 좋은 사이인 것처럼 보였지만 슈트라우스와 나치의 이해관계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목적이 다른 방향이었으므로 삐거덕거리게 됩니다 

P221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는 주로 무도곡인 왈츠, 폴카, 갈롭과 행진곡 작품들로 많이 치우쳐 있다면, 리하르트는 교향곡과 협주곡, 서곡들 같은 관현악곡과 실내악곡, 가곡, 오페라 등 종교음악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를 섭렵한 차이가 있습니다 

P234 그리그의 음악에는 마음을 녹이는 애수가 깃들어 있는데, 이것이 크게 번져 때로는 장엄하고 숭고해지고 때로는 잿빛으로 무겁게 흐른다. 그것은 우리 러시아인들의 음악과 무척 닮아서 그의 음악은 우리 마음에 바르게 동화된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P246 제목이 <핀란드여 일어나라>인 이 곡은 약간의 수정을 거쳐 시벨리우스의 대표 곡인 교향시 <핀란디아>로 발표됩니다 

P255 시벨리우스는 일관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제정 러시아의 압제에 저항하기 위한 행동의 일환으로 <핀란디아> 작곡했고, 핀란드에서 연주가 금지되자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곡을 연주하며 핀란드의 저항 정신을 계속해서 알렸죠 

P274 키츨러와 공부를 하며 브루크너는 주로 베토벤과 멘델스존 작품을 교재로 사용하여 학습을 했는데, 키츨러가 속한 린츠 오페라 극장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탄호이저> 공연을 관람한 이후로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P280 말러가 여전히 지속적으로 신을 찾고 있다면, 브루크너는 이미 신을 찾은 작곡가다 

P280 강의를 하다가도 삼종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면 강의를 중단하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또 음악을 하는 이유를 '신을 향항 경배'와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P297 높아지는 국외 명성과는 달리 헝가리 음악계나 정부는 계속해서 버르토크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공연 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늘 노력을 게을리하지도, 헝가리를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P311 이 무렵 그의 음악 스타일은 구스타프 말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같이 후기 낭만파의 색채를 띤 곡들로 현악 6중주 <정화의 밤>, 교향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와 같은 곡들이 대표적이죠 

P315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은 열두 개의 음이 동등한 위치를 가지며, 이전에 있었던 으뜸음의 규칙을 버리고 배열하는 식으로 이뤄집니다 

P321 쇤베르크의 초창기 음악은 브람스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말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듣기 못할 정도로 난해하지 않습니다 

P335 라벨은 "당신은 샘처럼 저절로 솟아나는 멜로디를 가진 사람이다. 일류의 거슈인이 되는 것이 이류 라벨이 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라고 답하며 그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P349 많은 사람들은 번스타인의 일생에 대해 되짚을 대 1943년 브루노 발터의 대타로 뉴욕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후 탄탄대로를 걸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향후 10여 년 동안 짧은 경력때문에 뜨문뜨문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 의뢰를 받아 떠돌며 커리어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P354 번스타인이 남긴 대표적인 기록물이 이 정도이고, 그 외에도 영상물과 음반, 책 등 엄청나게 방대한 기록물들을 남깁니다. 번스타인의 이 기록벽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록끝판왕 정도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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