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사,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ㅣ 누구나 교양 시리즈 1
만프레트 마이 지음, 김태환 옮김 / 이화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제목 : 세계사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작가 : 만프레트 마이
번역 : 김태환
출판사 : 이화북스
읽은날 : 2019/11/14 - 2019/11/22
분류 : 일반
쉽게 설명한다고 하더니 정말 쉽게 설명했다.
독일에서는 이런 내용이 세계사의 주요 줄거리인가보다.
좋은 점은 아주 최근의 이야기까지 담겨있다는 것.
독자의 입장에서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도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아쉬운 점은 너무 단순화되다 보니 파편화가 심하다. 역사라는 것이 날줄과 씨줄로 엮여 있는데 여기 찔끔, 저기 찔끔 써놓은 느낌이다.
서로간의 연계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등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 책을 읽고 아는 체 하기에도 좀 어렵다. 누군가 왜 그랬는데?라고 물어봤을 때 그건말이지... 하고 답하기가 어렵다.
내용을 읽고 이건 뭘까? 궁금해 하며 다른 책을 찾아보게 된다면 이 책으로서는 역할을 잘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만 읽고 끝이라면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부러운 것은 독일에서 이렇게 다양한 세계사 책이 나오고 읽힌다는 것..
우리나라도 이랬으면 좋겠다.
P24 여러 도시 국가들 사이의 잦은 분쟁이 그것이다. 이때 쟁점이 된 것은 소유권, 특히 토지 소유권과 권력의 문제였다. 분쟁은 흔히 전쟁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전쟁은 저마다의 신들의 이름으로 치러졌다
P26 오랜 관찰을 통해 나일강의 범람이 평균 365일마다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범람 주기에 따라 일 년을 365일로 정하고 열두 개의 달로 나누었다
P30 이집트 문명은 다른 어떤 문명보다도 더 오래 존속했다. 3000년 이상 계속되었던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3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왕의 군대에 의해 정복됨으로써 그 최후를 맞았다
P40 공자의 사상은 인간의 본성을 선한 것으로 보는 성선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은 이 선한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P45 이런 정치 체제는 당시로서는 놀랄 만큼 진보적이었다. 20세기 초까지도 이보다 더 진전된 체제를 갖춘 나라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P51 오랜 세월에 걸쳐 엄청난 피해를 일으킨 일련의 전쟁이 기원전 264년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포에니 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으로 인해 결국 카르타고는 완전히 멸망했다
P53 예전의 농부들은 이제 직업 없는 프롤레타리아로서 그날그날 생존을 부지하기 위해 분투해야 했고, 역사사의 최초로 도시 무산자 계급이 되었다
P56 적어도 제정이 시작된 뒤 처음 250년 동안에는 그전 세기에서 볼 수 있었던 큰 소요나 폭동, 내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우구스투스 이후 로마 황제들은 아주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정복 전쟁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에, 200년간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되었다. 팍스 로마나라는 말은 이때 생겨난 것이다
P59 제국 수도로서의 역할과 중요성을 상실한 로마는 이제 그리스도교의 수도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P66 그들은 태양,달,행성들의 궤도를 이미 꽤 정확히 계산해 냈고, 지구가 원판이 아니라 구체임을 증명했다
P75 동프랑크 제국에서는 봉토를 장자에게 물려주는 관습이 점점 확산되었고, 결국 이 관습은 공식적인 법적 효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봉토는 상속 재산이 되었고 황제의 처분권은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P81 아메리카 대륙은 어땠을까? 대륙 중부에는 3,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마야, 잉카, 아스텍 문명이 있었다. 그들은 장대한 건축물을 세웠고 고도의 천문학과 수학을 알고 있었으며, 대단히 정확한 달력도 가지고 있었다
P85 교황과 황제는 결국 1122년에 보름스 종교 협약으로 불리는 조약을 통해 일정한 타협에 도달하게 된다. 이 조약은 종교 권력과 세속 권력의 관할 영역과 권리를 확정했고, 훗날 정교 분리라고 불리게 될 원칙의 확립을 향한 중요한 일보가 되었다
P89 동양과 서양 사이의 무역은 십자군 전쟁 때 이미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 피사, 제노바 같은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들은 교역의 중심지로서 부와 권력을 키워나갔다
P92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준다. 이 구호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도시로 끌어들였다
P103 그 후 10년 동안 콜럼버스는 서쪽 방향으로 세 차례 더 항해를 했지만, 끝까지 자신이 아시아 지역에 간 것으로 믿었다. 사람들이 착오를 기념하는 뜻에서 그가 발견한 섬들을 서인도 제도라고 명명했다
P108 인디언들은 광산에서 말할 수 없이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일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 갔다
P110 유럽이 어두운 중세에서 밝은 근세로의 길을 걷고 있던 16세기에, 유럽의 정복자들은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세계사의 가장 어두운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P116 프랑스에서 두 진영 사이의 갈등은 1572년 8월 24일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에 그 비극적 절정에 이르렀다. 이날 밤 광적인 카톨릭교도들이 약 2만명의 위그노를 학살했던 것이다
P118 네델란드인들은 저항의 권리를 처음으로 공식화했고, 이것은 훗날 많은 헌법에 영향을 끼쳤다
P127 왕이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을 때부터 저녁에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모든 것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으며, 이 때문에 궁전의 삶은 엄청나게 많은 엑스트라들과 한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연극과도 흡사했다
P131 영국에서는 1215년 이후로는 절대 군주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이때 선포된 유명한 마그나 카르타는 국왕이 제후와 주교, 귀족의 동의없이는 세금을 징수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P150 국왕은 그들을 군법 회의에 회부해 사형 선고를 받게 했다. 왕자 자신은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사면을 받았으나 친구가 참수당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P175 나폴레옹 법전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법전을 통해서 혁명을 통해 제기된 주요한 요구들이 현실화되었다
P183 지금까지 자연의 리듬에 따라 생활하고 일했던 농촌 출신들이 이제는 공장과 기계가 정하는 인공적인 리듬에 적응해야 했다
P187 공산당 선언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서가 되었다. 이 글의 메시지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소식으로 들렸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악마의 소리로 간주되었다
P191 1810년과 1825년 사이에 라틴 아메리카의 모든 국가가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었다. 시몬 볼리바르는 모든 나라들을 한데 합쳐 미국과 유사한 단일 공화국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들은 독립하여 독자적인 국가를 이루기를 희망했다
P192 백인들은 원주민의 땅과 삶의 터전을 빼앗았다. 많은 인디언들이 살해되거나 지정된 원주민 거주지로 쫓겨갔다.
P197 영국은 인도를 근대화하려 했다. 영국인들이 생각한 근대화란, 곧 서구화로서 이 과정에서 인도인의 고유한 생활방식과 문화는 거의 무시되었다
P198 심지어 중국을 영굴, 프랑스, 러시아가 나누어 가지려는 계획까지 세워졌다. 이 계획이 실현되지 않은 것은 단지 세 나라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P200 본격적인 아프리카 쟁탈전은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과 함께 시작되어, 19세기 말에 이르면 아프리카 대륙의 거의 전부가 유럽 열강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P206 독일에서는 전쟁이 빨리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군인들은 크리스마스까지는 고향에 돌아와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P211 승전국 대표들은 심판자의 위치에서 베르사유 조약을 작성했는데, 이 조약의 일부 조항들은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들에서조차 부당하다고 느낄 정도로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었다
P220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의 노동자는 서방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보다 훨씬 더 심한 억압과 착취에 시달렸다. 계획 경제의 성공은 특히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과 낮은 생활수준을 대가로 한 것이었다
P227 무솔리니는 사람들의 불만과 신생 민주주의의 허점, 민주주의자들의 미숙함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P228 파시즘은 고유한 사상없이 다른 사사에 대한 거부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P240 히틀러의 대변자 루돌프 헤스는 나치 교육 목표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무비판적인 충성,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헌신, 왜냐고 묻지 않고 지도자의 명령을 묵묵히 수행하는 자세, 이것이 우리 나치즘의 근간을 이룬다
P242 이처럼 터무니없는 사이비 과학적 이론은 이미 19세기 말부터 유럽을 떠돌고 있었지만 특히 히틀러라는 인물과 오랜 반유대주의의 전통을 가진 독일이 이 이론의 번성에 좋은 토양을 제공했다
P247 독일군의 상황이 절망적이었음에도 히틀러는 항복을 금지했따. 제6군은 전멸당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전쟁의 전환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P263 적의 적은 친구라는 단순한 논리에 따라 지독하게 부패한 독재 정권조차 공산주의에 반대하기만 하면 서방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P270 이 문제가 국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곳에서 아랍,이슬람 세계와 서방의 가치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P329 아프리카인들은 풍부한 천연자원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고 있으며 대부분 유혈 분쟁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겉으로는 정치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갈등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거의 항상 권력과 돈이 관건이다
P332 특이한 점은 시위 군중 가운데 젊은 여성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 투쟁했다. 구체적인 요구 사항은 나라마다 달랐지만 공통된 목표는 모두가 존중받는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