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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 왜곡과 날조로 뒤엉킨 사이비역사학의 욕망을 파헤치다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평점 :
제목 : 욕망 너머의 한국고대사
작가 : 젊은역사학자모임
번역 :
출판사 : 서해문집
읽은날 : 2018/11/09 - 2018/11/14
분류 : 일반
이번 책은 지난번보다는 낫다.
그래도 아직은 미흡하다.
아직까지 독자들이 어느 수준인지 잘 모르는것 같다.
아니면 나같은 사람은 저자들에게 독자의 수준에도 못미치는 것일수도 있고...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임나에 대하여 여러 저자들이 각자 연구한 내용을 쏟아놓는다. 어느 시대를 놓고 이야기를 해도 결론은 '민족사학자들 나빠요'인듯...
사극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역사적 사실과 다르네 뭐네 하면서 딴지거는 고리타분한 역사학자들을 보는 느낌이다.
상상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고, 해석이 필요한 곳도 있는데, 해석이나 상상력을 모두 말살시키고 있는 내용만 가지고 주장하는 것 같다.
환단고기처럼 세상을 우리나라가 이끌고 간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도 문제지만 눈에 잡히는 사료만으로 모든걸 판단하는 것도 별로 맘에 와 닿지는 않는다.
더 노력하셔야 할듯...
p18 화상석이나 벽화의 내용을 통해 단군신화의 유구함을 증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P27 역사학계에서는 고조선의 중심지가 본디 랴오허강 일대였으나, 진개의 침공 이후 평양 지역으로 옮겨졌다는 '이동설'이 널리 수용되고 있다
P57 이덕일의 주장을 따르자면 아직 건국조차 하지 않은 고구려가 이 시기에 이미 평양일대까지 영역화했고, 수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 포로들을 잡아다 정착시켰으며, 그 중국인 포로들은 정작 고구려인들보다도 훨씬 호화로운 무덤을 조성해 묻힌 셈이 된다.
p68 조선의 북방 진출을 경계하던 명나라의 견제 등으로 조선 문인들이 그 지역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P92 어느 연구자도 광개토왕비문이 진실만을 전한다고 보지 않는다
p128 백제의 개방성과 국제성을 고려한다면, 백제의 요서 진출은 백제의 영역 확장뿐만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의 인구 이동과 인적 교류 문제로 새롭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P135 칠지도라는 이름은 '일곱 개의 가지가 달린 칼'이라는 뜻이다
p148 헌상설 중심의 칠지도 연구는 1960년대 북한 학자 김석형이 '분국설'을 제기하면서 크게 흔들렸다
p152 최근 한국의 칠지도 연구 중에는 '헌상품인가?', '하사품인가?'라는 논쟁에 집중하기보다, 당시 백제와 왜의 관계에 주목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p172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벌어진 전투중에서도 대야성전투의 패배는 신라에 큰 충격이었다
p201 김일제의 고사는 당나라 묘지명에서 이민족의 귀순과 충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이야기됐다
p232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임나일본부를 백제가 가야 지역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지배를 위해 설치한 파견군 사령부 같은 것으로 파악했다
p236 일본서기에는 편찬에 사용된 백제계 사서의 백제 중심 인식과 편찬 당시의 일본 중심 인식이 중첩돼 있다
p238 현재 임나일본부설을 다루는 한국과 일본의 많은 역사학자, 그중에서도 가야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 대부분은 임나일본부라 기록된 존재의 실상을 외교사절이라는 성격에서 찾고 있다
P256 구체적으로는 중앙 정치제도로서의 3성 6부 등이 갖추어졌고, 지방 통치 제도로서는 5경 15부 62주가 마련됐다
p271 대조영의 말갈 출신 여부보다는 그가 고구려 유민이었다는 사실이 더 큰 의미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P273 일제는 만주국과 조선에 대한 효율적 식민 통치를 위해 역사적으로 만주는 중국과 분리된 지역이었고, 조선은 만주에 종속적이었다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p293 고구려의 전성기는 고구려가 주변 저역, 즉 만주와 한반도에서 일정한 세력권을 확립하고 중국 측으로부터 이를 인정받은 시기라 하겠다
p300 백제는 장기간 패권을 유지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 속에 처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 속에서 끊임없이 절치부심한 흔적을 엿볼 수도 있다
P328 자칭 목사라는 사람이 "단제한배검", 즉 단군을 구약성경의 아브라함과 비교하고, 위서 규원사화를 성경 창세기와 닮았다고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P343 역사 연구자라면 누구나 과거 자료를 뒤지면서, 자기주장 바깥에 흘러넘치거나 오히힐려 반대되는 증거를 심심찮게 만난다. 그것들을 직면하면서 자기주장을 끊임없이 상대화하고, 그럼으로써 연구자 스스로 역의 이해와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 역사학의 기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