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아이가 울고 있다 - 내 안의 불안과 화해하기
유범희 지음, 홍자혜 그림 / 생각속의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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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아이,

오래전부터

그 아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내 안에

그림자아이가 있다는 것은

단순히 초조해지거나,

불안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내 안의 상처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그림자아이는 우리 마음속의 병적인 불안을 상징합니다. 어릴 때 겪은 심각한 분리불안이 그림자아이로 남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숨어 지냅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그림자아이가 다시 나타납니다. 신기하게도 피하면 피할수록, 그림자아이는 점점 더 힘이 세져서 괴물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직면해서 잘 공감해주면, 오히려 그림자아이는 점점 더 희미해져서 결국엔 사라집니다.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병적인 불안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보여주는 일종의 지침서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어느 한 소녀의 모습을 통해 오래전부터 자신이 외면해오던 그림자아이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어린 시절의 상처와 마주하고, 현재의 부족한 모습도 그대로 수용하면서 불안에서 평온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그림자아이는 마음속 불안을 나타내는 것으로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콤플렉스, 트라우마, 상처 등 우리 안에 숨기고 싶은 어두운 부분을 말한다. 우리는 이처럼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그림자아이를 안고 살아간다. 불안이라고 하면 무조건 없애야하는 대상으로 생각할수도 있지만 이 그림자아이는 무조건 없애야할 대상은 아니다. 내가 더 행복해지기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마주해야 할 나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니 너무 겁낼 필요는 없다. 단지, 외면하지 않고 그림자아이를 달래주면 된다.


그림자아이는 과거의 어떤 기억과 연관된 부정적 감정이 현재의 비슷한 상황과 만나면 더 증폭되어 나타나곤 한다. 가령 생각과 행동에 왜곡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 결과 실제 상황을 부정확하게 인식하면서 불안을 과도하게 느끼게 된다.

​우리는 그림자를 숨기려고만 하는데, 그림자는 무조건 숨기거나 없애야 할 대상만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소중한 일부이기도 하다. 그림자와 마주한다는 것은 내 안의 소중한 일부와 만난다는 것이다. 외면해왔던 내 안의 나와 마주하면서 그제야 스스로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림자아이는 신기하게도 피하면 피할수록, 점점 더 힘이 세져서 괴물이 되어가지만 피하지 않고 직면해서 잘 공감해주면 점점 더 희미해져서 결국엔 사라진다.


우리가 나쁘게만 인식해서 그렇지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은 우리에게 큰 선물을 안겨준다. 바로 자기 자신을 돌볼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정신 건강의 출발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돌볼 줄 안다. 불안이 찾아오더라도 자신과 마주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의 그림자아이도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더 건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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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특급 비밀 프로젝트 - 핵폭탄은 최초에 어떻게 만들어졌나? 사회탐구 그림책 3
조나 윈터 지음, 지넷 윈터 그림,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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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특급 비밀 프로젝트, 프로젝트명

 

‘Gadget’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비밀 프로젝트가 시작되는가!

 

 

 

사막과 산으로 둘러쌓인 어느 평화로운 마을에

작은 학교가 있었어요.

​어느 날, 교장 선생님에게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어요.

바로 미국 정부에서 보낸 편지였지요

 

그 편지에는 정부에서 준비하는 중요한 프로젝트에

이 학교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그래서 학생들은 모두 학교를 떠났고

온 마을이 고요해졌어요.

 

 

며칠 후, 텅 빈 학교에 낯선 자동차들이 도착했어요.

그 차들에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과학자들이 타고 있었지요.

그리고 한 명, 한 명,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왔어요.

그 사람들은 이 마을에 왜 왔는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했어요.

이 마을의 존재조차 비밀에 부치기로 맹세했대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과학자들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실험하고 연구했어요.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실험실 밖에서는 아무도

과학자들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그들은 어떤 공식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주 작은 것을 엄청나게 큰 무언가로 변하게 만드는 것이었지요.

쉬지 않고 연구를 계속한 지 2년이 흐르자

드디어 ‘장치’가 완성되었어요.

 

이제 테스트만 남겨 두고 있지요.

 

 

 

 

 

 

핵폭탄은 최초에 어떻게 만들어졌나?

1943년 3월, 미국 정부는 물리학자·화학자·연구자들을 한데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뉴멕시코의 어느 사막에 있는 마을로 데리고 가 ‘장치(Gadget)’라 부르는 비밀 프로젝트를 시작했지요. 이 사막 마을은 이름도 없는 아주 외딴곳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그곳을 ‘Y 지역’이라고 불렀지요. 원래 그 곳은 ‘로스 알라모스 랜치 학교’라는 영재들을 위한 사립 학교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Y 지역’에 가려면 산타페(Santa Fe)에서 차를 타고 45분이나 가야 했는데, 그곳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오직 ‘우체통 1663’이라고 적힌 우체통 하나뿐이었습니다. 존경 받는 과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이 비밀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과학자들을 찾아 한데 모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나치 독일을 피해 온 사람들도 있었고, 노벨상 수상자도 있었습니다. 모두 함꼐 모인 그들은 세계 최초의 원자 폭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1945년 7월 16일, 그들이 ‘트리니티’라 부르는 뉴멕시코 남쪽 사막에 위치한 미사일 성능 시험장에서 첫 번째 원자 폭탄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초특급 비밀 프로젝트』는 그동안 그림책에서는 쉽게 다루지 않았던 주제인 ‘핵 실험’을, 그것도 최초의 핵 실험이 이루어졌던 트리니티에서의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세대, 장르를 불문하고 기존에 ‘핵’을 소재로 다룬 기존의 도서들이 주로 핵폭발의 위험성이나 핵 실험의 부작용 등을 이야기했다면, 『초특급 비밀 프로젝트』는 과학자들이 모여서 핵 실험을 진행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백하게 그려낸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책의 첫 장을 펼친 아이들은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까진 이들이 진행하는 ‘비밀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십, 구, 팔, 칠, …… 삼, 이, 일’ 카운트다운을 세다 보면 이글거리는 화염을, 솟아오르는 불길을, 그 끝에 기다리는 암흑을 마주하게 된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책의 첫 장을 펼친 아이들은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까진 이들이 진행하는 ‘비밀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십, 구, 팔, 칠, …… 삼, 이, 일’ 카운트다운을 세다 보면 이글거리는 화염을, 솟아오르는 불길을, 그 끝에 기다리는 암흑을 마주하게 된다.

시리즈로 출간된 『초특급 비밀 프로젝트』는 우리 아이들에게 ‘초특급 비밀 프로젝트 그 후’를 상상하게 한다.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 비밀스럽게, 누구도 알지 못한 채 진행되었던 이 실험이 현재 우리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핵은 위험하고 당장 없애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방법이 아니라, 핵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주며 이 세상에 핵이 왜 존재하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스스로 탐구하도록 돕는 것이다. 미래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스스로 핵 문제, 세계 평화, 전쟁 등에 관해 폭넓게 탐구하고 고민하다 보면, 1945년 트리니티에서의 첫 핵 실험,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연이어 떨어진 핵폭탄 이후 부작용과 불행만 남은 채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핵 문제에도 무언가 실마리가 생겨나지 않을까.


이 책의 지은이 조나 윈터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후, 그 어떤 핵폭탄도 사람을 죽이는 데 이용되지는 않았습니다. 핵폭탄이 사람과 환경에 미치는 대재앙과도 같은 악영향 때문에, 대부분 국가들은 핵실험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무기들을 점점 줄여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하지만 아직까지 이 세상에는 약 16,000개의 핵무기들이 존재합니다. 이 숫자가 ‘0’이 되는 그날을 희망하며.’

아이와 이 책을 함께 읽으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 장면인 핵무기가 폭발하면서 빨갛게 화염이 솟아오르는 부분을 보면서 크게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아이는 그 장대함이 놀라워하면서 멋지다고 표현했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사례들을 일러주자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그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이렇게나 나쁜데 왜 아직까지 남아 있는거냐고 묻는데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어른으로서 정말 부끄러웠다. 아이들도 아는 이 사실을 어른들은 왜모르는걸까.

핵무기를 사용하면 결국 그 피해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약해빠진 우리들은 그저 권력자들의 다툼에 희생되어 그 상처를, 고통을 죽을때까지 가지고 갈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이 핵무기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배려하고 대화로 해결해 나가면 안되는건지 꼭 무기를 들고 싸워야만 해결이 되어지는 건지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봐도 그 권력이라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 안타깝게 희생된 자들이 너무나도 많다. 세계의 경계가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싸우고 다툴일이 아니라 서로 배려하며 함께 나아가야는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하는게 아닐련지. 저자의 말처럼 그 숫자가 ‘0’이 되는 그 날을 함께 희망하며, 우리 아이들은 그 희망의 날들 속에서 살아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전쟁없는 평화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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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런하우스 - 너에게 말하기
김정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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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왜 심리치료를 하는 셰어하우스를 구상했는지, 공학도인 그가 심리치료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셰어하우스의 이름을 왜 ‘뉴런하우스’라고 지었는지 등 나의 이어지는 호기심 어린 질문들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매우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그는 사업에만 몰두한 채 정신없이 살던 어느 날 갑자기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생겨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이 분야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심리적 어려움이 있는데도 제대로 도움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오늘날 뿔뿔히 흩어져 각자도생하며 사는 도시의 삶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치료공동체를 구상하게 되었으며, 뉴런하우스란 이름은 신경 세포처럼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 살아 있는 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지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메일을 읽으면서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p.14)


인간 행동의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사실 껍질에 불과한 것인지, 우리는 내면의 상처들을 만나고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고 치유가 되기 전까지는 그것을 온전히 깨닫기 어렵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들을 억업하여 내면 깊숙히 가둔다. 그것들을 직면하는 것이 아프고 두렵기 때문이다. 상처들은 껍질 속에 갇힌 채 우리의 존재로부터 소외된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불안에 빠뜨리거나 공허와 외로움에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p.77-8)



평범한 동네, 평범한 이층집에서 어느 날 따귀 맞은 영혼들의 가슴 따뜻한 대화가 시작된다!


베를린에서 오랜 시간 심리치료 연구소를 운영하며 심리상담 치료와 제자 양성에 몰두하던 영민은,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충동적으로 안정적인 독일 생활을 접고 한국의 작은 셰어하우스에 심리치료사로 입소한다. 뉴런 하우스라는 특이한 이름이 붙은 이 집은 대학로 인근 주택을 개조한 것으로, 방값이 저렴한 대신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모든 입주자는 반드시 매주 두 차례 열리는 집단 상담에 참여할 것.

둘째, 입주 기간 동안 일체 자살 관련 행동을 하지 말 것.

높은 경쟁률을 뚫고 뉴런하우스에 입소한 개성 강한 여덟 명의 남녀와 이들을 관찰하고 치유하는 영민의 특별한 시간들.

아픈데도 아프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 나와 남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살아오던 사람들, 이들 따귀 맞은 영혼들이 어우러지는 기적의 공간 뉴런하우스! 내가 모르던 나를 만나며 가슴 뛰고 감동적인 치유가 시작된다.


책은 게슈탈트 심리학을 바탕으로, 남들에게 내보일 수 없는 상처, 너무 오래돼 나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아픔을 치유해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심리치료 소설으로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저렴한 비용에 이끌려 셰어하우스에 입주하게 된 이들로 특별히 심리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소설이 전개되면서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도 모두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깊은 상처를 안고 있으며, 그로 인해 타인들과 연결되지 못한 채 각자 섬처럼 고립되어 외롭게 살아가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자화상임이 드러난다.

​뉴런하우스의 입주자들은 처음엔 서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아직 자신의 마음을 직접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아 오히려 서로를 경계하고 적대시하는 태도를 내보이며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신뢰가 생기고 친밀감이 형성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게 되고, 이제껏 눈여겨보지 않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그 감정을 드러내며 다함께 성장해나가기 시작한다.


소설에 나오는 장면들은 허구적 상상이 아니라 대부분 저자가 이끌었던 집단상담 장면에서 실제로 일어났거나 일어남 직한 일들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다보면 소설이 아닌 실제 이야기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인물들의 모습에 자꾸 내 감정을 이입하여 함께 그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되고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비추어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스스로 상처입지 않으려 또는 상처주지 않으려 자신의 주위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모든게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속에서 외롭다고 호소하는 사람, 모두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의심하는 사람, 세상을 무서운 곳이라 말하는 사람,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믿는 사람 등 모두 저마다 스스로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있다. 그렇게 한 번 만들어진 벽은 점점 더 두꺼워지고 본인이 알지도 못하는 새에 스스로를 옥죄며 힘들게 만든다. 스스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아무 문제가 없지 않다. 어느 순간 익숙해져 버렸을 뿐이다. 자기를 바로 이해하기는 정말 어렵다. 하지만 살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를 바로 이해해야 스스로를 잘 보살필 수 있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끊임없이 자신을 상처입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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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 상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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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8분.

어느 틈엔가 약속 시간이 지났다.

여대생은 누군가를 찾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숨 돌린 표정으로 상점 주인 풍모의 남자 대각선 맞은편으로 갔다. 그리고 분수대 테두리에 앉아 밝은 녹색 휴대전화를 펼치고 재빨리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일변한 것은 그 직후였다.

어딘가에서 모래주머니를 떨어뜨린 것 같은 둔중한 소리가 났다. 쳐다보니 상점 주인 풍모의 남자가 몹시 놀란 얼굴로 돌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참이었다. 남자는 어중간하게 선 채 분수 쪽으로 한두 발짝 걸어가다가 느닷없이 풀썩 쓰러졌다. 상반신이 천천히 기울더니 이마가 벗겨져 시원한 머리를 돌로 된 분수대 테두리에 망치처럼 퍽 찧었다.

여대생이 그제야 성가시다는 얼굴로 휴대전화에서 눈을 들었다. 분수대 테두리에 머리를 찧은 남자는 태엽이 다 풀린 인형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얇은 점퍼 등 부분에 순식간에 시커먼 핏자국이 번져나갔다.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느 틈엔가 남자가 앉아 있던 돌의자 뒤에 괴상한 뭔가가 서 있었다.

머리 전체를 푹 감싸는 검정색 헬멧을 쓰고, 깃을 세운 검정색 에나멜 롱코트에 검정색 에나멜 장갑 그리고 검정색 에나멜 부츠 차림을 하고 있었다.

다스베이더······.

그것이 슈지의 머리에 처음으로 떠오른 말이었다. (p.18)

소마는 문득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왜 이 광장이었을까.

범인은 회칼을 미리 세 자루나 구입해두었다. 사람을 죽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람이 더 많은 곳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회칼을 슬쩍 휘두르기만 해도 사람을 쓸어버릴 수 있을 만큼 혼잡한 곳이 도쿄에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범인은 왜 이런 한산한 광장에 왔을까. (p.37)


 

“······달아나. 가능한 한 멀리 달아나.”

남자는 고개를 들고 슈지의 눈을 쳐다보았다. 무서우리만큼 창백해진 얼굴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나잇살이나 먹은 어른이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보았다. 외래 접수처 쪽에서 사람 말소리와 발소리가 다가왔다. 남자는 화들짝 놀라 말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눈을 돌리더니 바로 일어섰다.

“잘 들어. 알겠어?”

남자는 절실한 표정으로 슈지의 눈을 들여다보며 한 마디 한 마디 슈지의 머리에 새겨넣듯이 말했다.

“앞으로 열흘. 열흘만 살아남으면 안전해. 살아남아. 네가 마지막 한 명이야.”

말을 마친 남자는 다가오는 말소리에 쫓기듯이 순식간에 출입구로 모습을 감추었다.

슈지는 멍하니 남자가 사라진 문을 쳐다보았다. (p.58)


열흘만 살아남으면 안전하다. 즉, 죽이고자 하는 입장에서 보면 반드시 열흘 안에 슈지를 찾아내어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프로인 스키 마스크는 혈안이 되어 슈지를 찾을 것이다. 이번에 발각되면 끝이라고 소마는 생각했다.

“앞으로 열흘이라······.”

“벌써 자정이 지났어요.” 슈지가 말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이틀 지났으니 정확하게는 앞으로 여드래죠.”

야리미즈가 벽에 걸린 달력에 눈길을 주었다.

“4월 4일이로군.”

4월 4일.

도대체 왜 4월 4일까지 슈지를 죽여야 한다는 말인가. 4월 4일이 지나면 왜 슈지는 안전하다는 말인가. 4월 4일이라는 날짜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세 사람이 입을 다물자 한밤을 적시는 빗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렸다. (p.153)​



 

​때는 3월. 화창한 봄의 한낮,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한 역 앞 광장에서 네 명의 희생자를 낸 무차별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검정색 헬멧을 쓰고, 검정색 에나멜 롱코트에 검정색 에나멜 장갑 그리고 마찬가지로 검정색 에나멜 부츠 차림으로 다스베이더를 떠올리게 하는 그는 자신이 가지고 온 회칼으로 광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치더니 순식간에 그 곳을 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다는 연락을 듣고 형사들이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범인은 이미 도주한 상태. 역 앞은 사이렌 소리에 놀라 몰려든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무차별 칼부림 사건은 피해자와 범인에게 접점이 없어 보통 살인 사건처럼 동기로 피의자를 가려낼 수 없기 때문에 범인이 일단 현장에서 무사히 빠져나가고 나면 미해결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골치 아프게도 이번에는 헬멧을 쓴 범인의 맨 얼굴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범인의 대략적인 나이와 국적조차 불분명하다. 초동수사에서 놓치면 이 사건은 십중팔구 미궁에 빠지는 터라 소마 형사는 범인을 찾기 위해 주변을 이잡듯이 샅샅히 뒤지고 사건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폰으로 범행현장과 가까운 길 건너편 빌딩에서 범인으로 확실시되는 남성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소마 형사가 그 곳에 도착했을 때 범인은 약물과용으로 넋이 나간 상태, 결국 진술은 들어보지도 못한 채 사망하게 되고 역 앞 광장에서 참혹한 살육극을 벌였음을 증명하는 엄청난 양의 피가 묻은 옷과 사건에 사용되어진 칼의 포장박스가 연달아 발견되면서 정황상 범인으로 체포되어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 지어진다. 하지만 유일한 생존자인 슈지는 범인이 체포되어 사건이 종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서던 중 의문의 남성으로부터 “앞으로 열흘. 열흘만 살아남으면 안전해. 살아남아. 네가 마지막 한 명이야.”라는 수수께기같은 말을 듣게 되고 사건을 혼자서 수사하던 소마 형사는 경찰 수사에 의문을 품고 친구 야리미즈와 함께 슈지를 도와 독자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 책은 <파트너>, <TRICK2>등 유명 드라마의 각본을 써온 작가 오타 아이의 데뷔작으로 각본가 출신 작가의 작품답게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대담한 전개와 빠른 속도감으로 책을 읽는 사람을 꼼짝없이 책 앞에 붙들어 놓는다.

​시작과 동시에 일어나는 살인사건, 처음에는 그저 아무런 이유없이 무차별적으로 벌어진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소마 형사와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슈지가 각각 사건을 조사하며 점점 다가갈수록 누군가 계획하고 벌인 일임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긴박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순식간에 빠져든다. 얼굴조차 알 수 없는 범인은 도데체 누구며, 왜 이런 일을 저지른 걸까? 그리고 피해자가 알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가 피해자임을 알아보고 별안간 슈지에게 달려들어 앞으로 열흘만 살아남으면 안전하다고 말한 사람은 범행을 알고 있었음에도 왜 사전에 막지 못한건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의문을 더해가고 궁금증이 극에 달할 때즘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게 데뷔작이라니!!! 데뷔작이 이렇게 컬리티가 높을수가 있나? 티저북이라는 특정상 내가 본 건 책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스토리 구성 자체가 무척이나 탄탄하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과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빨아당기는 흡입력까지 책의 완성도가 기존의 유명작가들 못지 않게 높다. 이러면 역시 정식 출간본을 살 수 밖에 없다. 이건 무조건 소장각!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게 되는 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 중에 하나인데 오늘 그 즐거움을 찾은 것 같아 너무도 행복하다. 아직 전 권을 다 읽지도 않았는데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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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 1 - 미래에서 온 살인자,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야! 그거 말이 시간 여행이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없어. 다 죽는다고. 그 좋은 여행을 왜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만 가겠냐. 왜 돈 필요한 놈만 가겠냐고. 위험하니까, 억수로 위험하니까 그런 거야. 사장이 가게 내주면 뭐 하냐. 너 주방장 생각 없다며? 막말로 니가 거기 가서 곰탕인가 뭔가 끓이는 법 제대로 배웠다 치자, 그 사태도 많이 샀다 치자, 못 돌아오고 죽으면 그만이야. 죽으면 다 그만이라고.

“······.”

꼭 돈 때문은 아니다. 떠나기 전 반, 돌아와서 반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여행자들에겐 둘 다 소용없었다. 떠나기 전에 받은 반은 어차피 그가 사는 현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돈이었고, 나머지 반은 받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장이 약속한 가게 때문도 아니었다. 우환은 그냥, 죽는 게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사는 게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처음부터 어른이었다. 처음부터 형편없고 돌이킬 수 없는 어른이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언제 죽어도 그만이었다.

“이렇게 사나, 그렇게 죽으나.”​ (p.16-7)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일, 아니 오늘이라고 안 될 것도 없었다.

우환은 이제 곰탕 끓이는 법을 안다. 아직 혼자 모든 과정을 다 해보지 않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짧은 기억력을 대신해 메모도 충분히 해뒀다. 사실, 곰탕을 끓이는 게 그리 어려울 건 없었다.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음식이었다. 기다림을 배우는 게 쉽지 않았다. 아롱사태와 양지머리, 양을 살 곳도 알고 있었다. 종인의 단골집에서 사면 속을 일이 없었다.

배에 실을 곳이 있을까. 우환은 돌아갈 날에 대해서 구체적인 것들까지 생각해보고 있다. 하지만 날짜는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돌아가면, 봉수가 일단 반겨줄 거고, 사장에게 곰탕 끓이는 법을 알려주면, 식당 하나 내준다고 했으니까, 그럼 봉수한테 얘기해서 같이하자고 해야겠다. 아닌가, 봉수는 안 나오려나. 사장이 말을 바꾸진 않겠지? 한데, 거기서 이 좋은 고기들을 대체할 수 있는 게 있으려나. 결국은 없더라도 종인에게 배운 대로 곰탕을 끓여보면 그때보단 먹을 만한 걸 만들겠지.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돌아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부모와 이름이 같은 소년, 소녀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런 게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돌아갈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p.249) 

​때는 바야흐로 2063년 부산. 부산의 바다는 지금과 달랐다. 파도는 산보다 거대한 몸으로 도심을 삼키고 바다보다 멀리 물러났다. 가진 자들은 더 높은 곳으로 집을 올렸고, 없는 자들은 바다가 내어준 땅에 집을 지었다. 법은 금했지만 돈이 없었고 살 곳이 없었다. 그렇게 몇 년 만에 질척거리는 작은 구역이 만들어졌고, 편의상 없는 자들이 사는 구역을 아랫동네, 그리고 부유한 자들이 사는 구역을 윗동네라고 불렀다. 10년 후, 또 한 번의 쓰나미가 아랫동네를 덮쳤고 많은 사람이 죽고 산 사람은 모든 것 잃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또 다시 그곳으로 몰려들었고 수년이 지나 그곳은 다시 아랫동네가 되었다.

쓰나미가 지나간 후로 매번 조류독감이 끊이지 않았다. 구제역이 잇달아 일어났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가축을 죽였지만 그럼에도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모든 가축을 죽여 멸종시켰다. 그리고 온갖 유전자를 조합해 새로이 먹을 동물을 만들어냈다. 쥐의 얼굴에 돼지 같은 피부, 소를 닮은 거라곤 노린내밖에 없는 기이한 생김새로 이름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것, 이것들 혹은 그것, 그것들로 불렀다.

이우환은 그것들을 오랫동안 끓여 국으로 파는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일했다. 나이는 마흔 중반으로 어릴 때 기억이라곤 고아원 생활이 전부인 그에게 어느 날, 주방장은 거액의 돈을 제시하며 ‘과거로 가서 그 시절의 곰탕 맛을 알아올 것’을 제안한다. 시간 여행 상품이 개발되었지만, 살아서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기에, 죽을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환은 목숨을 건 생애 첫 여행을 감행한다. 돈이 욕심나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사나, 그렇게 죽으나” 다를 게 없는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환은 시간여행 전문이라는 여행사를 통해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함께 2019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목숨 건 여행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는 우환과 ‘누군가를 죽이러 왔다’는 의문의 소년 김화영 뿐이었다.

 


이야기는 2063년 부산에서 시작해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영화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시간 여행에서 살아남은 자는 이 곳에 곰탕을 배우러 온 우환과 사람을 죽이러 왔다는 김화영이라는 소년 뿐. 이들의 도착이후, 부산에서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살인이 일어나고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에 책을 잠시도 손에서 내려 놓을 수가 없다. 차례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눈으로 쫒으며 그렇게 속절없이 이야기에 이끌려 가다보면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야 이야기 전체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고 작가님의 필력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 책을 영화화하면 정말 재밌을 것 같은데 작가님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으신걸까!!?? 본인이 직접 전두지휘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전혀 앞을 예측할 수 없으니 그로 인해 생기는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쥔다. 이야기는 정말이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할 틈도 없이 스피드하게 이어지고 금새 한 권이 끝나버린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마지막 문장까지 정신없이 다 읽고 나니 다음 편이 어찌나 궁금한지, 이럴줄 알았으면 2권을 미리 주문해서 함께 연달아 읽는건데 뒤늦게 후회해봤자 소용이 있나 마음만 아프지. 결국 새벽에 부랴부랴 서둘러서 주문을 하고 저녁 쯤에 택배를 배달받았다. 오늘밤 아들 재우고 마저 정주행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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