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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런하우스 - 너에게 말하기
김정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하필이면 왜 심리치료를 하는 셰어하우스를 구상했는지, 공학도인 그가 심리치료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셰어하우스의 이름을 왜 ‘뉴런하우스’라고 지었는지 등 나의 이어지는 호기심 어린 질문들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매우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그는 사업에만 몰두한 채 정신없이 살던 어느 날 갑자기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생겨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이 분야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심리적 어려움이 있는데도 제대로 도움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오늘날 뿔뿔히 흩어져 각자도생하며 사는 도시의 삶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치료공동체를 구상하게 되었으며, 뉴런하우스란 이름은 신경 세포처럼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 살아 있는 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지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메일을 읽으면서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p.14)
인간 행동의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사실 껍질에 불과한 것인지, 우리는 내면의 상처들을 만나고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고 치유가 되기 전까지는 그것을 온전히 깨닫기 어렵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들을 억업하여 내면 깊숙히 가둔다. 그것들을 직면하는 것이 아프고 두렵기 때문이다. 상처들은 껍질 속에 갇힌 채 우리의 존재로부터 소외된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불안에 빠뜨리거나 공허와 외로움에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p.77-8)
평범한 동네, 평범한 이층집에서 어느 날 따귀 맞은 영혼들의 가슴 따뜻한 대화가 시작된다!
베를린에서 오랜 시간 심리치료 연구소를 운영하며 심리상담 치료와 제자 양성에 몰두하던 영민은,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충동적으로 안정적인 독일 생활을 접고 한국의 작은 셰어하우스에 심리치료사로 입소한다. 뉴런 하우스라는 특이한 이름이 붙은 이 집은 대학로 인근 주택을 개조한 것으로, 방값이 저렴한 대신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모든 입주자는 반드시 매주 두 차례 열리는 집단 상담에 참여할 것.
둘째, 입주 기간 동안 일체 자살 관련 행동을 하지 말 것.
높은 경쟁률을 뚫고 뉴런하우스에 입소한 개성 강한 여덟 명의 남녀와 이들을 관찰하고 치유하는 영민의 특별한 시간들.
아픈데도 아프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 나와 남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살아오던 사람들, 이들 따귀 맞은 영혼들이 어우러지는 기적의 공간 뉴런하우스! 내가 모르던 나를 만나며 가슴 뛰고 감동적인 치유가 시작된다.
책은 게슈탈트 심리학을 바탕으로, 남들에게 내보일 수 없는 상처, 너무 오래돼 나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아픔을 치유해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심리치료 소설으로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저렴한 비용에 이끌려 셰어하우스에 입주하게 된 이들로 특별히 심리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소설이 전개되면서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도 모두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깊은 상처를 안고 있으며, 그로 인해 타인들과 연결되지 못한 채 각자 섬처럼 고립되어 외롭게 살아가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자화상임이 드러난다.
뉴런하우스의 입주자들은 처음엔 서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아직 자신의 마음을 직접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아 오히려 서로를 경계하고 적대시하는 태도를 내보이며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신뢰가 생기고 친밀감이 형성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게 되고, 이제껏 눈여겨보지 않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그 감정을 드러내며 다함께 성장해나가기 시작한다.
소설에 나오는 장면들은 허구적 상상이 아니라 대부분 저자가 이끌었던 집단상담 장면에서 실제로 일어났거나 일어남 직한 일들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다보면 소설이 아닌 실제 이야기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인물들의 모습에 자꾸 내 감정을 이입하여 함께 그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되고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비추어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스스로 상처입지 않으려 또는 상처주지 않으려 자신의 주위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모든게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속에서 외롭다고 호소하는 사람, 모두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의심하는 사람, 세상을 무서운 곳이라 말하는 사람,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믿는 사람 등 모두 저마다 스스로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있다. 그렇게 한 번 만들어진 벽은 점점 더 두꺼워지고 본인이 알지도 못하는 새에 스스로를 옥죄며 힘들게 만든다. 스스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아무 문제가 없지 않다. 어느 순간 익숙해져 버렸을 뿐이다. 자기를 바로 이해하기는 정말 어렵다. 하지만 살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를 바로 이해해야 스스로를 잘 보살필 수 있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끊임없이 자신을 상처입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