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전부가 되게 하라 - 영적 능력을 더하는 놀라운 은혜의 언약
찰스 스펄전 지음, 서하나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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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은혜가 전부가 되게 하라」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은혜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볼 때,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 비상한 머리,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돌아가는 형편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되짚어 보기 바란다. 그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하면, 누군가가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 누군가의 간섭하에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주 만물을 살펴보아도 그러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누군가가 우주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에게 어떠한 규칙을 정해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토록 많은 별들이 질서정연하게 규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이론과 규칙을 발견하고서 대단한 발명이라고 떠들면서 자신의 이름을 높인다. 그런데 그렇게 발명한 발명품이나 발견된 이론도 누군가가 만들어 놓았는데 만들어 놓은 것을 발견한 것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많은 이론과 규칙들이 세월이 흐름에 새로운 발견에 의해 뒷전으로 물러나 버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이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그러한 것들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그런데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그러한 은혜를 스스로 저버리고 은혜의 밖으로 내몰림을 당한 것이다.

이에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한 번 은혜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의 성취를 믿고 은혜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던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이지만 그동안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버린 우리 인간에게는 감추어진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언약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감추어진 것들을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누릴 수 있도록 발견하게 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행을 하고 선행을 하려고 하고 있다. 또한 천국을 소유하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 그러냐 스펄전 목사님은 누리라고 말하고 있다. 누리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우리는 죄의 문제, 구원의 문제, 마음의 평안과 사람들과의 관계 문제, 지혜와 총명의 문제 등이 해결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 속에 들어가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역동적으로 일하시기만 하면 우리는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모두가 은혜의 삶인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은혜 속으로 들어감으로 성령님께서 하시게 하는 삶 말이다.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은혜,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우리는 누리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고, 우리의 삶이 모두가 은혜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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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7-2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히 읽었습니다.
 
유머 긍정力 - 3분 만에 행복해지는
최규상 지음 / 작은씨앗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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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만에 행복해지는 유머 긍정력」


유머라고 하면 우리는 그저 웃긴다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사실 유머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많은 능력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암에 걸려서 죽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기다리는 시간을 실컷 웃기라도 한다고 하면서 코미디 영화 테이프를 빌려서 산속에 들어가 계속 보면서 웃기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웃다 보니 자신에게 있었던 암 덩어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처럼 유머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긍정을 가져다 주고 긍정은 우리의 삶 전체를 놀랍게 변화시켜 준다.

3분 만에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유머 긍정력은 어떤 특별한 설정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다. 저자의 삶 속에서 다른 사람같으면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러한 상황을 역전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긍정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긍정이라는 요소는 자신을 비움에서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 안에 부정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태어난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워야 하는 것이다. 비워서 새로운 것을 채워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긍정이다. 우리가 우리의 안에 긍정을 채우기만 하면 슬픔과 저주와 고통은 우리에게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긍정을 채운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반복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반복적으로 긍정을 그리다보면 반드시 우리의 몸에 배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소망을 잃어갈 때, 긍정의 힘을 통해 환경을 역전시키는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긍정의 힘은 대단하다. 아니, 기적을 일으킨다.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가게 된다.

우리 모두 긍정의 힘으로 보다 따뜻하고, 아니 보다 시원한 일들을 만들어갔으면 좋게다.

갈수록 우리의 삶에 있어서 웃어야 될 일들이 줄어들고 있고, 좀처럼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같다. 이러한 때에,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말 한마디,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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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영적 성숙 강준민 영적 성숙 시리즈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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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영적 성숙」


우리 인간은 본래 타락의 본성을 타고 났기 때문에 겸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남을 높이기 보다는 스스로 높아지려는 습관이 있으며,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를까를 고민하며, 그것을 위해 많은 것들을 투자한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게 되면 스스로가 파멸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강준민 목사님께서는 겸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신다. 아마도 인간의 본성을 따라가며 사망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이 책을 썼으리라 생각해 본다.

겸손은 하나님의 속성이요,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가 겸손해질 수가 없다. 그러나 스스로 겸손해질 수가 없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겸손하지 않으면 결국 그 사람은 사망의 길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겸손에 이르게 될까? 강준민 목사님은 겸손은 비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움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렇다, 내 속에 많은 것들을 채워놓고는 절대로 다른 것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본래 인간은 교만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 이러한 교만을 버리지 않고는 겸손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채울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채워야 한다. 나를 버리고 성령으로 채워야 한다. 세상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혜이다. 겸손하다는 것은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나를 비우는 것이다. 내가 나를 비우면 무엇으로 채워지겠는가? 나를 버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쩌면 성경적인 원리이다. 아니 성경의 비밀이다. 나를 비우면 하나님께서 채우신다. 내가 죽으면 하나님께서 살리신다.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이요, 성경의 비밀이 아니겠는가? 이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내가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시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채움을 받으니 그 채움은 과연 어떤 채움이겠는가? 위대한 채움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채움을 받는 것이 지혜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비움은 낮아짐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로 채움으로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내려오셨고, 십자가로 내려오셨고, 음부에까지 내려 가셨다. 그것도 스스로 말이다.

우리 또한 내려가야 한다. 예수님의 낮아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그래도 낮아져야 한다. 이 낮아짐은 바로 비움을 통해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비움을 통해 낮아지고 겸손을 얻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축복의 통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겸손의 가장 큰 열매는 순종이고 순종이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겸손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세워질 때만 진정으로 겸손할 수 있다. 집을 지을 때,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겸손을 세워야 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안에 예수의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무늬만 기독교인인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어야 한다. 예수의 생명이 있어야 만이 구원함에 이를 수 있고, 예수의 생명이 있어야 만이 이 땅에 영향력을 미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신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머물러 있는 것은 원치 않으신다는 내용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다 목사님의 말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까지 우리는 끝없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기도하고 노력하여 삶과 믿음이 일치되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것이 겸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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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7-01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선물
박형만 지음 / 한국장로교출판사(한장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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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각기 알맞은 은사를 허락하셨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설사 은사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출처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 자신의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그 사람은 자신의 지난 과거를 눈물과 함께 회개할 것이다.

여기에 불교 신자였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얻고 그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표현한 사람이 있다. 나무와 아크릴 그리고 못 등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신앙고백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받은 은혜를 공감하고 경험하게 하고 있다.

모든 것들이 예술 작품이며 저자의 혼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이 로마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저자에게 주신 은혜를 담고 있으며 그 은혜를 온 정성을 다하여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를 졸업하고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이 모든 것들이 탄생했다고 해도 어느 누구도 반대 의견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땀과 열정의 결정체를 단순히 선물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선물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아니, 잊고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우리 인간을 창조하셔서 그전까지 만드신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누리면서 살아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있어왔기에 그것이 선물인지, 은혜인지조차도 모른체 누리면서 살아왔고, 그것에 대한 감사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새삼 저자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다시 한 번 인지하고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이 기회에 더욱 은혜에 감사하고, 이제 은혜를 입은 자답게, 선물을 받고 감사하는 자답게 살아가기를 소원해 본다. 내 안에 오직 예수님의 생명을 갖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

저자의 마지막에 나오는 한 문장이 나를 되돌아 보게 한다.

「성경대로 살려면 단순하라」

결코 쉽지 않다. 단순하려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고, 버려야 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특히 나부터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가지려고 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가? 깊이 묵상하고 주님 외에는 모든 것들을 버리는 훈련에 스스로 동참해보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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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지 않는 기독교인
김달성 지음 / 대장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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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지 않는 기독교인」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기독교인이 있다고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지 해야 한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도 않는데 어떻게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분명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그런데 분명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일천 이백 만 명이라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물론 스스로가 기독교인이라고 하고 있으며, 교회마다 한 번 등록하면 모두를 기독교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있으며 구원함에 이르렀을까를 생각해 볼 때는 저절로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진다.

성경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당연히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기에 구원함을 받은 사람들이고, 영생을 소유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구원은 세상 어느 누구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구원함을 주실까? 물론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믿음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주실까?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과연 입으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았다고 인정해 주실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만한 변화된 모습이 있어야만 구원을 인정해 주실 것이다. 그 구원함이란 바로 믿음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만약에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함을 받았다면 교회가 오늘날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 진정한 기독교인들이 없다는 말이 된다. 과연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진정으로 구원함에 감사하여 예배드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을 이뤄드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까?

아마도 저자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깊은 영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의 삶이 오직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평범하게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발견한 것을 삶에 적용하여 늘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에세이 식으로 글이 전개되지만 조그마한 소주제 하나라도 그냥 놓치고 싶지 않는 소중함이 묻어 나오기에 이 땅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나에게 도전을 주고 내 삶을 되돌아 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 땅에 예수를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이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예수님의 외침이 내 귀에 우레와 같이 들리는 것 같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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