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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영적 성숙 ㅣ 강준민 영적 성숙 시리즈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겸손과 영적 성숙」
우리 인간은 본래 타락의 본성을 타고 났기 때문에 겸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남을 높이기 보다는 스스로 높아지려는 습관이 있으며,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를까를 고민하며, 그것을 위해 많은 것들을 투자한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게 되면 스스로가 파멸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강준민 목사님께서는 겸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신다. 아마도 인간의 본성을 따라가며 사망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이 책을 썼으리라 생각해 본다.
겸손은 하나님의 속성이요,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가 겸손해질 수가 없다. 그러나 스스로 겸손해질 수가 없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겸손하지 않으면 결국 그 사람은 사망의 길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겸손에 이르게 될까? 강준민 목사님은 겸손은 비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움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렇다, 내 속에 많은 것들을 채워놓고는 절대로 다른 것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본래 인간은 교만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 이러한 교만을 버리지 않고는 겸손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채울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채워야 한다. 나를 버리고 성령으로 채워야 한다. 세상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혜이다. 겸손하다는 것은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나를 비우는 것이다. 내가 나를 비우면 무엇으로 채워지겠는가? 나를 버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쩌면 성경적인 원리이다. 아니 성경의 비밀이다. 나를 비우면 하나님께서 채우신다. 내가 죽으면 하나님께서 살리신다.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이요, 성경의 비밀이 아니겠는가? 이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내가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시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채움을 받으니 그 채움은 과연 어떤 채움이겠는가? 위대한 채움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채움을 받는 것이 지혜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비움은 낮아짐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로 채움으로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내려오셨고, 십자가로 내려오셨고, 음부에까지 내려 가셨다. 그것도 스스로 말이다.
우리 또한 내려가야 한다. 예수님의 낮아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그래도 낮아져야 한다. 이 낮아짐은 바로 비움을 통해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비움을 통해 낮아지고 겸손을 얻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축복의 통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겸손의 가장 큰 열매는 순종이고 순종이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겸손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세워질 때만 진정으로 겸손할 수 있다. 집을 지을 때,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겸손을 세워야 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안에 예수의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무늬만 기독교인인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어야 한다. 예수의 생명이 있어야 만이 구원함에 이를 수 있고, 예수의 생명이 있어야 만이 이 땅에 영향력을 미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신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머물러 있는 것은 원치 않으신다는 내용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다 목사님의 말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까지 우리는 끝없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기도하고 노력하여 삶과 믿음이 일치되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것이 겸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