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왈드 챔버스의 기도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8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스왈드 챔버스의 기도」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네 번째 책을 대하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목사님의 책은 언제나 묵상하면서 읽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어떻게 역사하셨는지에 대해서, 목사님은 하나님의 섭리에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기도는 개인적인 야망의 걸림돌이다」라는 말이 나로 하여금 깊이 묵상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육적인 호흡은 우리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일 것이다. 우리가 10분만 아니 단 5분만 숨을 쉬지 않는다고 하면 살 수 있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중요한 육적인 호흡은 쉬지 않고 한다. 그런데 영적인 호흡이라고 하는 기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육적인 호흡은 쉬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가 영적인 호흡인 기도가 우리의 삶 가운데 끊어지면 죽는다는 사실을 왜 모르고 있을까?

물론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기도는 하지만 기도가 내 삶에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가할 때, 다른 일을 다 하고 나서 시간이 남으면 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러다보니 사업에, 직장에, 공부에 조금만 바쁘게 살다보면 기도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기도를 하겠는가?

그나마 기도하지 않으면 살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이 고통을 당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내 안에서 나와 끊임없이 교통하고, 교제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이 이 책에서 하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과연 기도의 영역은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스왈드 챔버스의 기도는 복음 위에 온전히 서 있다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을 통한 기도, 예수님과 하나되고 연합됨으로써 드리는 기도, 이러한 기도야말로 응답받는 기도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 주님의 성품에 맞는 기도를 하라는 말이다.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른지를 살피라는 말이다.

나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과연 걸림돌은 없는지 살펴보고, 예수님 안에서 기도할 때, 그 기도는 응답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기도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 번 회복해야만 한다.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고 늘 주님과 교제하고 교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한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

「기도」 결코 어렵지 않다. 우리가 육적인 호흡을 하듯이,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로서 영적인 호흡을 할 때, 우리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친 하나님 - 15개의 핵심 키워드를 통해 본 하나님
마크 갤리 지음, 장택수 옮김 / 하늘산책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거친 하나님

 

이 책을 대하면서 「거친 하나님」이라는 단어에 의문을 던졌다. 이 책을 과연 무엇을 말하려고 하기에 하나님을 거칠다고 표현했을까?

이제까지 「하나님」이라고 하면 좋으신 하나님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으신 하나님으로만 자리 잡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사실 그래왔다. 언제나 우리를 용서하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신 하나님, 죄인 되었던 우리를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주시고 그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 할지라도 회개만 하면 무엇이든 용서해 주시고 관계를 회복케 해 주시는 하나님.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좋으신 하나님이니까? 그런데 「거친 하나님」이라고 한다. 얼마나 거칠고 과격하기에 그런 표현을 썼을까? 별로 나에게는 거친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쉽게 다가오지가 않았다. 그래서 책을 폈다.

「거친 하나님」

이 단어만 생각하면 조금은 무서운 하나님으로 다가오지 않나 싶다. 이 책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누군가가 물으면 각자가 생각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좋으신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 질투의 하나님, 등

이 말은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라고 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의 표현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래의 속성에서 단 몇 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정교회 교부들이 매료되어 있는 ‘무념적 영성’, 무지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그들의 생각에 대해 조금은 수긍이 간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초월하시고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감히 인간인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조차도 어쩌면 우리 인간의 교만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신학적 속성, 성경적 속성, 사랑의 속성,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다루고 있다.

세 부분으로 나누고 열 다섯 개의 키워드를 통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열 다섯 개로 나눠진 키워드를 통해,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말한다고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은 우리를 깊은 영성으로 이끌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다시 한 번 하나님에 대해서 묵상하게 되고, 면전의식, 즉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책의 제목처럼 「거친 하나님」, 참으로 위대하시고, 두렵고, 경이로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때론 나를 때려서라도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은 느낌을 가질 수 없지만,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목적,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는 목적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잘먹고 잘입고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지는 않는지.

하나님께서 진정 예수님을 왜 이 땅에 보내셨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고,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더여 내려오라 - 예수님의 삶에서 배우는 다섯가지 리더십 원리
빌 로빈슨 지음, 임신희 옮김 / 크리스천석세스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리더여 내려오라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사회는 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많은 책들이 발간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 단체의 리더가 되어서 많은 사람을 이끄는 데에는 반드시 일정한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리더십을 배우기 위해 교육도 받고, 세미나도 참석하여 리더십의 여러 가지 원리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사회에 리더들은 많이 있다. 그런데 진정한 리더가 있을까? 의문스럽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리더가 없다는 말도 되겠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리더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우리 인생의 롤 모델이자. 진정한 리더십의 소유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리더십의 원리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 동안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독교계 내에서도 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예수님의 리더십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예수님이라는 좋은 리더십의 모델이 있는데도 크리스천들이 세상 속에서 리더십을 찾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예수님의 리더십을 발견하고 발전시켜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데, 세상 속의 리더십을 가지고 교회로 들어와 접목을 한다는 것이다.

그럼 예수님의 리더십은 과연 어떤 리더십일까?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리더십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섬김의 리더십이다. 그렇다. 이 말이 사실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에게서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내가 예수님의 리더십을 배우고 그것으로 세상에 나아갈 때, 이 세상을 변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다섯 가지의 원리로 리더십을 정리하였다.

첫 번째는 틈을 없애고 함께 어울리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삼년 반 동안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가까이 나아갔으며 많은 환자들을 고치실 때도 말씀만 하셔도 치료하실 수 있음에도 친히 찾아가 만져주시고 함께 하심으로 고쳐주셨다. 진정한 리더는 사람 속에 섞여있다고 할지라도 그 신분이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성육신적인 리더십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십의 원리이다. 하늘에서부터 이 땅으로 내려오신 리더십

두 번째는 열린 마음으로 투명하게 이끌라는 것이다. 이땅에 오신 예수님의 위대한 역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밝히 보이셨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리더는 어떤 모습인가? 어떻게 하면 카리스마를 가져 힘에 의해 많은 사람을 이끌려고 하고 있다.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열린 자세로 사람들을 자신에게 이끄셨고 그들과 함께 하셨던 것이다. 한시도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봐 주셨다.

세 번째는 영광의 빛을 하나님께 돌리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영광을 스스로 흡수한 적이 없으신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리는 모습을 보이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자신이 영광을 취하려고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는 빛의 매개체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모든 영광은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과 그 선하심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

네 번째는 은혜와 진리 가운데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리더는 누구보다도 은혜 가운데 살아간다. 하나님께 크신 은혜를 입었고, 또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고 살았다. 그래서 리더의 눈은 은혜를 입은 사람답게 늘 눈이 따스해야 한다. 따스한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하고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혜가 있는 사람은 용서가 있고 긍휼히 여김이 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던 것이다. 진정한 리더는 은혜를 품고 따스함을 소유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리더들은 자신은 희생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나는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으면서 성도들에게는 말씀대로 살아가라고 설교하는 설교자와 같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희생을 소유한 리더인 것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이 말씀이야말로 예수님의 리더십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리더, 이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리더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의 리더십은 나보다는 늘 상대방을 먼저 각하는 리더십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독서클럽에서 회원들과 함께 읽고 나눴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 단락마다 묵상과 토론을 위한 질문이 함께 있어서 교재로 활용하기에 아주 적당하기 때문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 진정한 리더십, 바로 예수님의 삶을 통한 리더십을 재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리더십을 가지고 세상속으로 들어가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며 우리를 위해 희생한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줬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급진적 기독교
베리 칼렌 지음, 배덕만 옮김 / 대장간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급진적 기독교

 

「급진적」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모르게 기독교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것같다.

과격하고 폭력적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는 여러 교파가 있다. 장로교만 해도 수많은 교파가 있고, 각기 추구하는 사상과 우선순위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먼저 생각났던 것이 바로 장로교 내의 한 교파였다. 80년대 우리나라에 민주화 바람이 불 때, 어쩌면 가장 먼저 시위를 주도하고,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갔던 학생들이 이 교단 소속 학생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사회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방법론적이 차이는 있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넘기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다. 급진적 기독교, 신중한 신앙선택과 삶의 변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인 참된 교회에 속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이책에서는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성서적 기독교인의 공동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바로 급진적 기독교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런 사람들을 급진적 기독교라는 다소 과격하고 극단적으로 여겨지는 단어를 사용하며 표현했을까?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아가다 보면 이 세상은 너무도 부딪치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닥치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포용하고 넘기고 때로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급진적 기독교인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과 충돌하고, 그러다가 보니 세상과는 갈등 관계에 놓여지게 되고, 어떠한 권세와의 일전 불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급진적 기독교인, 다시 말하면 성서적 기독교인 되려면 주님과 함께 변두리에 머물라고 말한다. 안정된 삶의 중심에 들어가 있게 되면 믿음의 본질을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변두리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신실한 삶을 살아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령 안에서의 삶으로 다시 시작하라고 한다. 늘 그리스도와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접붙임바 될 때 열매를 맺힐 수 있는 것처럼 성령 안에서 성령과 함께 할 때, 우리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의 교회를 보면 사실, 교회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심히 걱정스럽고 때로는 두렵기도 하다. 주님의 몸인 교회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사사기에서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든 교회들이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급진적 기독교, 조금만 절제되어 있다면 이 시대에 어쩌면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런데 너무 믿음, 믿음 하다 보니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직 하나님만이 믿음에 대한 판단을 하신다. 그럼 어떤 사람을 믿음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실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이러한 것에 대해서 늘 생각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애신학 -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장애신학
김홍덕 지음 / 대장간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애신학

 

조금은 생소한 단어이다. 이제까지 신학에 대해서 공부를 했지만 장애신학이라는 말은 사실 창피한 말이지만 처음 이책을 통해서 접했다. 장애에 어떤 신학이 있다는 말인가?

조직신학만을 생각해서인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 사회적인 편견이 나에게도 있다는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는 장애신학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생소했고, 사역자라고 하는 내가 과연 장애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왔는가? 내 사역에는 장애인이 없는 것인가? 라고 스스로 의문을 던져보며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장애신학」보다는 「장애인신학」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 용어를 더 선호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장애인이라고 하면 한 개인의 이야기라고 말한다면, 장애라고 하면 장애라는 주제를 가지고 풀어가는 하나님나라 이야기이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교회에서도 장애인이 마이너리티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포옹하는 곳이어야 하는데, 교회에서조차도 장애인은 특별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 특별하다는 것이 뭔가를 해줘야만 하는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각이 전혀 잘못되어 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출발점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출발하다보니 장애인은 불쌍한 사람, 무조건 줘야만 하는 사람,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장애인이 성도로 등록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목회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장애인 사역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사역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장애인 역시 우리와 동역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어느 장애인이 장애를 갖고 태어나고 싶었겠는가? 그런데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세상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편견을 갖고 있는데에 대해 또다른 좌절감을 갖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으셨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표현할 정도로 존귀한 자로 만드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장애인에 대한 구분조차도 어쩌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상인 사람보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조금 불편할 뿐이지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우리 인간의 잘못된 판단 때문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저자이신 김흥덕 목사님의 따님인 조이를 생각하면서 또 다시 내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작은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염색체가 부족한 기형아였다. 막상 그러한 진단결과를 받고 눈앞에 깜깜했었다. 나에게 장애인 아이라니...

과연 나는 장애인 아이를 키울만한 자격이 있을까? 아니 자격이 아니라 키울만한 자신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장애아가 아닌 정상아를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매달렸던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나보다도 더 나를 잘 아셨는지 정상아를 주셔서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지만...

아무튼 우리는 장애의 원인이 죄의 결과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옛날 어르신들이 장애인들을 향해 하는 말이 「전생에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그런지...」라고 하면서 장애의 원인을 죄의 결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똑같은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영광의 산물인 조이의 건강을 기원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