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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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인간 실격』에 대해서는 수십 년 전에 제목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일·극일(知日·克日)을 말하는 자리에서 한 분이 주장한 내용에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를 예로 들었기 때문이다. 전국(戰國) 체제의 일본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지식인들 중 한 사람으로 본 것이다.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다자이 오사무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 군국주의 정부에 반대하는 일본의 지식인으로 독자의 머릿속에 각인됐었다. 다만 이후 그의 작품이나 연보를 따로 살펴보지는 않았기에 이번에 그의 작품을 처음 읽는 셈이다.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기에 그의 작품만한 것이 없으리라. 독자는 이 책을 읽기 전에 그의 생애에 대해 간단한 기술을 찾았다.

독자가 즐겨찾는 두산백과에도 짧게 기술돼 있다. 이에 따르면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의 소설가로서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다. 좌익운동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많이 썼다. 주요 저서로는『사양(斜陽)』, 『만년(晩年)』, 『인간실격』 등이 있다. 아오모리현(靑森縣) 출신으로 도쿄대학 불문과를 중퇴했다. 재학 중에는 좌익 운동에 참가하였다가 후에 이탈하였으나, 그 좌절감을 평생토록 떨치지 못하여 그의 작품에 영향을 남겼다. 전시에는 일본 낭만파에 속하였으며, 전후 『사양(斜陽)』을 발표하여 청년층의 열렬한 환영을 받음으로써 일약 인기작가가 되었으나 1948년 애인과 정사하였다. 그는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다고 한다.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 것도 그의 좌익운동 참여와 사회 부적응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짧은 생애와 많이 않은 유작으로 별 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던 듯하나 패전 후 일본의 분위기와 흡사한 소설적 배경이나 소설의 분위기는 젊은층에 큰 인기를 끌고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 측의 책 소개를에 따르면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인간 실격』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더불어 일본 근대문학의 양대 소설로 평가받으며 현재까지 1,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수 차례의 자살 시도 끝에 39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 그의 유작이자 대표작인 『인간 실격』에는 작가의 일생을 지배한 상실감과 소외감, 번뇌가 여실히 담겨 있다. 인간을 두려워하고 세상에 조화하지 못하는 한 고독한 젊은이의 혼란과 방황, 좌절과 파멸을 그린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우울과 불안에 빠져 있던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큰 공감을 일으켰다.

다자이 문학 연구의 권위자이자 문예평론가인 오쿠노 다케오는 “패전 후 혼란한 시기를 우리는 다자이 오사무라는 한 사람에게 의지해 버텼다. 그는 청춘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존재다”라고 평했고, 〈뉴욕 타임스〉는 “인간의 나약함을 다자이 오사무만큼 잘 그려내는 작가는 드물다”라며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주인공 요조를 통해 드러나는 여리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인간 실존과 관계를 성찰하고 부조리와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 좌절하는 불안한 청년의 모습, 지독한 방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순수와 믿음을 희구하며 인간과 세상에 구애하는 한 인간의 처절한 고백은 7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수많은 독자의 가슴에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독자는 다자이 오사무로부터 프란츠 카프카를 읽는다. 카프카가 1883년 태어났고, 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 생이니 한 세대 차이다. 어쩌면 그의 작품에 카프카의 영향이 배어 있을지 모르겠다. 독자가 판단하기에는 그가 불문과에 입학했으니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카프카를 쉽게 접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카프카의 뉘앙스가 발견되기는 하나 주제와 배경 등이 사회적 부조리에 '저항'하는 데서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두 작가를 비교하는 문학적 성과를 내기에 독자의 그들의 작품을 충분히 섭렵하거나 그들의 문학에 대해 평할 지식이 없기 때문에 단순히 독자로서의 판단이니 독자들의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인간 실격』은 1948년 잡지 『텐보(展望)』에 3부작으로 연재되었고 다자이는 연재가 끝난 지 한 달 후 다마강 상류에 몸을 던져 사망했다니 그의 유작이 되었다. 이 소설은 신원불명의 화자가 등장하는 서문과 후기, ‘요조’라는 일인칭 주인공이 구술하는 세 편의 수기로 구성된다. 따라서 서문과 후기를 이끌어가는 ‘나’와 작품의 중심을 차지하는 수기 속 ‘나’, 이렇게 주인공이 둘이라 볼 수 있다. 책 속의 두 문장은 주인공 요조의 성격과 삶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부끄러운 생애를 살아왔습니다.”(p.11)

“나도 그릴 거야. 도깨비 그림을 그릴 거야. 지옥의 말을 그릴 거라고.”(p.41)

 


 

이 책은 장편소설이지만 그다지 길지는 않다. 전후 일본 분위기가 어쩌면 긴 장편소설을 읽고 앉아 있을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잡지에 3회 연재했다. 3회 연재 분량이니만큼 단편 5편 정도의 분량이지 싶다.(편집하시는 분은 분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겠지만 독자로서는 대략 짐작할 수밖에 없어서) 목차도 비교적 간단하다. 「서문」, 「첫 번째 수기」, 「두 번째 수기」, 「세 번째 수기」, 「후기」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에서는 화자 ‘나’가 한 남자의 사진 석 장을 보고 받은 기묘한 인상을 서술한다. 「첫 번째 수기」에서는 ‘요조’라는 인물이 ‘나’로 등장해 자신의 유년 시절과 집안 환경, 가족과 집안사람, 친구들에게조차 ‘우스운 행동’을 연기해야 하는 ‘나’의 번뇌와 고독을 묘사한다.

「두 번째 수기」는 부쩍 성장한 청년 시절 ‘나’의 모습과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방황하다가 약에 탐닉하는 혼란한 모습을 보여준다. 「세 번째 수기」는 그 혼란과 정서적 방황을 끊지 못한 채 결혼과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뒤 약물중독으로 결국 주인공이 완전히 폐인이 되고 마는 말기를 그렸다. 끝으로 「서문」에 등장했던 화자가 다시 등장해 수기 속 주인공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후기」로 작품을 맺는다. 저자는 『인간 실격』을 통해 2차 세계대전 패배 후에도 여전한 인간의 에고이즘, 권력에 대한 탐욕, 악습, 위선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방황과 혼란 속에 파멸의 수렁으로 점차 빠져들어 가는 주인공 요조처럼 철저한 ‘자기부정’과 ‘자기파괴’를 시도했다. 이 때문에 작가의 실제 삶과 작품을 일치시켜 인공의 극치를 구사했다는 문단의 평가를 받는다.

 


 

『인간 실격』이 발표된 지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 사회 상황과 우리의 일상생활 양식, 미디어 환경, 독자들의 감수성도 놀라울 만큼 많이 변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 수많은 독자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자이 연구의 권위자 오쿠노 다케오는 이 소설의 매력이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아서라고 설명한다. 특히 그는 대다수 비평가가 소설의 서문과 후기에 등장하는 ‘신원불명’의 ‘나’ 혹은 수기 속 화자이자 소설의 주인공인 요조와 다자이를 동일시하는 것, 또한 이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흔히 주인공과 다자이를, 나아가 독자 자신과 동일시하며 공감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어떤 시점으로 읽어도 의문이 남고, 어떤 문장은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시간을 두고 보면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마치 다자이 오사무의 생처럼 미스터리한 점이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는 다자이가 세상 사람들 눈에 광인으로 낙인찍힌 사회부적응자,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 정의 내린 주인공 요조를 통해 과연 진정한 광인, ‘인간 실격’은 누구인지 이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사회에 질문을 던진 것이라 주장한다. 2차 세계대전 후 격변의 시기를 겪으며 사회시스템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삶의 방식이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을 매도하고,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삶은 인정받지 못해 우스갯짓을 연기해야만 연명할 수 있는 사람들의 암울한 현실을 다자이 오사무는 소설 속 주인공 요조의 ‘무력감’과 ‘비저항’을 통해 역설적으로 비판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독자로서는 ‘폐인’으로 묘사한 요조에게서 피식민지가 된 우리나라의 작가 이상이 쓴 「날개」의 주인공 '나'가 오버랩된다. 주인공 요조는 작가 자신의 투영인 듯한 느낌마저 같다. 피지배 지식인 이상이 일본 총독부 관리로 호구지책을 하며 살아가지만 실제는 '폐인'이나 다름없는 신세라는 것을 「날개」에 투영했듯이. 이는 다자이 오사무가 작품을 쓰는 동안에도 반복되는 기행(반복된 자살 시도, 약물중독, 복잡한 여자 관계, 정신병원 수용, 거액의 빚 등)으로 그와 작품이 더욱 화제가 되었다고 하니, 마음속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사회 현실에 대한 저항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의 짧은 생애는 작가와 작품의 문학성에 대한 논의와 평가는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진 계기가 됐다고 한다. 구성과 표현, 문학성 면에서도 『인간 실격』을 비롯한 다자이 문학을 살펴볼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자신의 불화로 인한 소외감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사회에 조화되려 ‘광대’를 자처해 연기하면서도 거듭 자살을 시도하는 요조를 감상적인 감정의 개입 없이 담담하게, 때로는 자조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감상과 평가를 강요하지 않고 개인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세계의 잔혹함,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상처와 생의 덧없음을 자연스레 마주하고 공감하게 한다. 인간 실존과 인간관계의 다양한 고민, 부조리와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 상처받고 좌절을 거듭하는 불안한 청년의 모습은 비단 이 소설 속 인물, 아주 먼 과거에 외떨어져 존재했던 특수한 상황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여전히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에 공명을 일으키는 이유가 될 것 이 작품을 번역한 오유리는 평가한다.

"인물과 사건, 흐름을 어떠한 감정 개입 없이, 철저히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부분과 이성과 자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수기 속 내용은 확연히 대조되며 당시의 대혼란과 냉혹한 사회, 그 소용돌이에 휩쓸렸을 사람들의 심리를 대변하며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조 기법은 소설 전반을 흐르는 그의 표현에서도 적용된다. 우리말로 번역하기 매우 낯설고 어려웠던 초장문(마침표 없이 대여섯 문장이 이어짐)의 표현 역시 작가가 인물의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는 정서와 당시 상황, 관계에 대한 몰이해를 간접적으로 강조하며 읽는 이들 또한 불안정한 분위기 속에서 작품에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천재적인 표현법이 아니었나 짐작한다."(p.165~166)

 


 

저자 : 다자이 오사무(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 太宰 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역자 : 오유리

성신여자대학교 일문과를 졸업하고 롯데 캐논, 삼성경제연구소에 재직하는 동안 번역 업무에 종사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 소노 아야코의 『긍정적으로 사는 즐거움』, 시게마찌 키요시의 『오디세이 왜건, 인생을 달리다』, 『소년, 세상을 만나다』, 『안녕 기요시코』, 요시다 슈이치의 『워터』, 『일요일들』, 『파크 라이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사양』,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외 『나다운 일상을 산다』 『도련님』 『랜드마크』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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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노비 종친회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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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노비 종친회』는 사회 풍자 소설이다. 지금은 사라진 '노비'로 어떻게 사회를 풍자하느냐고 되묻는 독자도 있겠지만 지금 현재에도 노비제도의 흔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성(姓)씨가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 민주주의가 정착된 대한민국에서 왜 갑자기 노비 문제를 끌어들였을까? 저자의 의도는 쉽게 짐작 가지 않지만 책을 잘 읽으면 노비 제도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불합리한 제도였는지 확인하게 해주는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 이런 신분 제도를 정치가 사라지고 부정과 부패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되짚어봄으로써 오늘의 대한민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간접 비판의 작용을 하고 있다.

21세기 지금은 사라진 노비제도가 얼마나 '비인간적'이었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했는지를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대화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비판을 가한다. 다만 역사 소설처럼 당시로 시점을 옮기지 않고 현재 이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사실 노비제도는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일어나면서부터 생긴 제도라 한다. 고대뿐만 아니라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으로 차지하려는 땅은 대부분 농작물 수확이 좋은 곳이고, 교통도 사통팔달로 두루 발달한 곳이다. 부강한 나라의 조건이 넉넉한 식량과 건강한 국민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쟁 때는 군인이고 평시에는 농부였다. 전쟁 때도 징집되지 않는 사람은 귀족, 여자, 그리고 노비다. 아마 전략물자 수송이나 후방 잡무에는 노비들도 참여했을 것이다. 양반제도로 설명되는 조선은 건국 직후부터 양반과 중인(글도 배우고 기술직 등에 종사하는 귀족 다음 신분), 상민(농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 그리고 천민으로 나누었다.

 


 

이 신분제도는 불교 국가인 고려에서 유교 국가 조선으로 국호와 국가 이념만 달랐지 신분 제도는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 조정의 부패를 없애겠다고 들어선 조선은 초기엔 지배 계급인 양반의 숫자가 전체 인구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이 조선을 이끌어가는 관료(문관과 무관)들이다. 그들은 책 읽고 과거 급제해 벼슬하거나 힘 있는 양반의 자제는 그마저도 없이 관직에 채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제도도 시험 문제 유출이라든지 폐해가 커짐에 따라 조광조가 중종 때 개혁을 시도하면서 과거보다는 관리 채용이 추천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는 과거의 부정이 너무 극심해 자기들끼리 과거에 나올 시제(문제)를 미리 알려주기도 하는 식으로 부정행위가 극심했다고 한다.

이런 양반 계급의 숫자가 두 차례 전쟁의 여파로 나라 재정이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워지자 전후부터 이른바 '공명첩' 발행으로 실제 벼슬을 하지 않는 양반이 양산됐다고 한다. 일정의 재물을 바치고 양반의 성씨와 양반이라는 증서를 받았다는 것. 당연히 양반의 숫자는 조선 후기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아져, 21세기인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95%가 자신이 양반 가문이라고 한다. 이는 되새겨보면 당시 중인과 평민, 노비였던 많은 이들의 후손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서서 "나는양반이다"고 할 사람도 없지만 구태여 스스로 나서서 양반이 아닌 핏줄의 진실에 대해 누가 나서겠는가? 이 소설은 이들이 벌이는 웃지못할 헤프닝을 소재로 대한민국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험난한 20세기를 이겨내며 민주주의, 산업화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깊숙이 박혀 자본주의 경제의 가장 큰 병폐인 '부익부빈익빈'의 악순환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지적되고 있다. 이 같은 경제 체제는 전체적인 나라의 부나 국민의 경제가 확대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또 다른 신분 차별이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민족 자본도 없고, 자원도 없는 우리나라가 산업화하고 시장 경제를 따른 데 대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어서 누구의 잘못으로 탓하기도 어렵다는 점이 또 하나의 문제이다. 역작용으로 자본과 노동이 분리돼 신분화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돈'이 최고의 가치다. 돈이 나라의 강약을 결정하고, 국민의 삶의 질도 결정한다. 누구나 돈을 벌면 조선시대 양반 계급이 되는 것이고, 돈이 없으면 누가 규정짓지 않아도 상민(일반 국민)이나 천민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다. 이 역시 사회 문제가 될 우려가 크다.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이겨 냉전을 끝내는 데 가장 큰 힘이 됐고, 세계인의 '신앙'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가진 '돈'에 의한 신분 차별화를 막지 못한다면 언제든 또 다른 악재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양반이니 천민이니 가르는 신분 차별이 우리 국민 의식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본주의는 더 깊숙한 체제로 굳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그 누구도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이 소설은 사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양반과 상민의 이분법적 차별이라든지, 새로운 신분 제도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점을 바탕에 두고 있다고 독자는 풀이한다.

 


 

물론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사회에서 통성명할 때 상대의 본관을 묻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또 누군가 우리 집안의 어른의 이름을 물을 때도 'OO 아무개씨'로 '본관'을 앞에 붙여 말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는 자신은 물론 상대방을 양반 집안이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일에 불과한 말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옛날 인사법이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한때는 이력서에도 본관을 쓰는 난이 있을 정도였다. 조선시대 양반의식의 결과였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한때 일곱 가지 성씨는 천민의 성씨라고 했던 적도 있다. 이른바 '천,방,지,추,마,골·피'씨를 말한다. 이들 성씨는 조선시대 성이 없던 천민들에게 나라에서 준 성인지, 사실 독자는 모르지만 어쨌든 김, 이, 박처럼 양반들은 가지지 않았던 성씨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동학혁명을 기점으로 노비 제도는 사라졌고 이젠 100년이 넘었다. 더욱이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고치면서 성씨를 일본식으로 바꾸라는 수모도 당했다고 하지 않은가.

그 성씨를 지킨 사람은 누구인가. 일부 양반 신분이었던 사람들은 앞장 서서 개명했지만 끝까지 개명하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 국민이고 양반들이 '상놈'이라고 불렀던 이들이다. 누가 나라의 주인인가가 확연히 드러나는 일이다. 그대로 양반 운운하는 이들이 남았다는 것은 양반의 시대에 호의호식하고 '잘 나갔던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일까? 이 소설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행위에 웃기는 일들이 많다. 즐거워서가 아니라 실소이다. 이 소설이 블랙코미디로 분류될 수 있는 이유이다. 소설가 고호는 사회 풍자 소설을 잘 쓴다고 평가되고 있다. 작가의 전작을 살펴보면 그 말에 설득력이 있다. 저자 고호는 전작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 『악플러 수용소』, 『과거여행사 히라이스』에서 보여주듯이 기발한 소재와 잘 구성된 스토리로 '천상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이미 잘 보여주었다. 그 연장선 상에 이 소설 『노비 종친회』를 읽으면서 웃고 우는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이 소설은 저자의 전작들보다 한껏 더 유쾌 발랄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다. 저자가 야심 차게 들려주는 현대판 ‘뿌리 찾기’ 프로젝트라고 해야 할까? 겉으로는 뿌리 찾기 모양새를 갖춘다. 주인공 헌봉달이 벌이는 헤프닝을 소설로 구성했다. '현(玄)'씨는 많이 들었지만(예, 소설가 현진건) '헌'씨는 못 들어본 것 같다. 이 희귀한 성씨를 가진 이가 주인공이다. 그날 그날 살아가는 백수의 신세인 그는 어느 날 종친회를 설립한다. 대박을 꿈꾸던 사업이 실패하면서 인생의 막다른 길에 내몰린 주인공 헌봉달은 노모가 전답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준 덕에 가까스로 목숨은 부지했건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재기를 꿈꾸던 그가 마지막 카드로 꺼내든 것은 다름 아닌 종친회다.

자신의 성이 희귀 성씨인만큼 찾는 이가 뜸할 줄 알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곳곳에서 헌씨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런데 웬걸? 이혼 위기의 전업주부, 탈북자, 어딘지 음흉해 보이는 노 교수, 전직 깡패,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청년, 엄마 성씨를 따른 문제아까지. 그야말로 좌충우돌 오합지졸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나름 뿌리를 찾겠다는 의지 하나만은 강력하다. 종친회에서 감투 하나씩 맡은 이 많은 뱃사공들 틈에서 회장 헌봉달은 은밀한 계략을 진행시킨다. 과연 노비 종친회의 미래는? 녹록지 않은 각자의 현실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오던 헌 씨들이 모여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면서 겪는 에피소드들이 독자들을 유쾌하게 한다. 물론 그들의 여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자신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던 중 헌 씨가 과거에 노비였다는 문서가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발칙한 상상은 서서히 이 소설이 단순히 코미디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예감을 준다.

 


 

반전에 반전. ‘노비 종친회’는 예측하지 못한 일들에 휩싸이고. 그들이 노비 가문일지언정 뿌리를 찾아가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진한 우정과 혈육의 정도 드러난다. 헌 씨들의 우스꽝스러운 휴먼 스토리에 독자들이 한참 웃다 책장을 덮을 때쯤 되면, 가히 가볍지만은 않은 그들의 이야기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어쩐지 사랑스러운 헌 씨들을 실제로 만나보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헌 씨가 실제하지 않을 거라 예상하지만 진짜 종친회를 만들어 헌 씨들 등록 공고를 내면 찾아올지 누가 아는가? 과연 ‘노비 종친회’는 숨겨진 헌씨 가문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 것인가? 이런 탄탄한 스토리 전개의 힘이 놀랍다. 저자의 내공과 스토리 전개 능력을 다시 한 번 감탄한다.

 

저자 : 고호

 

일꾼, 이야기꾼, 때로는 상상꾼. 그러나 정작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재미없는 무역회사에서 평범한 밥벌이를 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세계로는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와 『악플러 수용소』 등이 있으며, 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녹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또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단법인 이효석문학선양회와 의정부전국문학상에서 수상한 바 있다.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를 썼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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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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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제목 『모비 딕』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흰고래의 이름이다. 이 때문에 옛날 우리나라에서 많은 번역본들이 '백경(白鯨)'으로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흰고래는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로 알려진 향유고래이다. '모비 딕'은 그를 잡으려다 다리 하나를 잃은 선장 에이해브가 붙여준 이름이다. 엄청나게 긴 분량의 소설 『모비 딕』의 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에이해브가 모비 딕을 쫓아다니다 마침내 발견한 후 그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이 배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선원 이슈메일이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이 소설은 단순한 해양모험소설이라기보다 수많은 상징과 은유를 품은 다면적 소설로서의 문학적 위치를 갖는다.

특히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이 유명한 첫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성을 지닌다(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첫 문장 30’). 주인공 이슈메일뿐 아니라 에이해브, 요나, 욥, 프로메테우스, 페르세우스, 나르키소스 등 성경과 그리스신화 인물들이 주요 모티브와 알레고리로 작용한다는 점도 문학적 서사를 더한다. 마치 우리가 알고 있는 『오딧세이아』, 『일리어스』를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 소설은 인류의 절반인 '여성'이 등장하지 않은 점도 독특하다. 에이해브 선장과 모비 딕의 극적인 대립, 선원 커뮤니티의 계층·인종 간 갈등, 등장인물의 개성적인 캐릭터와 심리가 복합적으로 뒤얽힌 채 장엄하게 서사가 흘러간다. 현대지성에서 펴낸 이 책은 7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뿐만 아니라 문학적 위치에 대해 문학평론가 이종인이 완역하고 「해제」를 추가했다. 드라마, 영화 등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이 소설이 인용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고전문학 반열에 올라 있다.

 


 

1851년에 출간된 『모비 딕』은 이미 반세기 앞서 20세기에 도래할 모더니즘을 예고했다. 세상 모든 진리를 안다는 듯 신의 위치에서 소설을 써 내려간 19세기 리얼리즘 소설가들과는 달리, 20세기 모더니즘 소설가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주관적 관점과 내면 심리를 극화하는 데 집중했다. 이 모더니즘의 첫 시도가 이 작품 『모비 딕』이 꼽히고 있다. 획기적인 퓨전풍 스토리텔링, 독창적인 작품 구조, 다양한 인간 군상 추적, 이야기와 상징의 절묘한 결합, 인생의 신비를 둘러싼 깊은 종교적·철학적 탐구, 뛰어난 유머 감각과 풍자, 열린 결말 등등 기존에 없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형식으로 미국 모더니즘 문학의 효시이자 상징주의 문학의 대표작이 되었다. 사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 작가라는 점과 아직 문단에서 크게 인식되지 못한 개인적 위치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유럽에서 발간된 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더욱이 저자 허먼 멜빌은 가난과 짧은 학력 때문에 문단 교우가 별로 없고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일한 유명 작가는 1850년 『주홍글씨』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일 정도다. 『모비 딕』은 멜빌이 1891년 사망한 후 20~30년이 지나 열풍이 불기 시작한 모더니즘으로 다시 부각돼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미국의 몇 안 되는 '대가' 반열에도 올랐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추적하는 흰 고래 모비 딕은 무엇을 의미할까? 색깔이 ‘흰’ 고래는 하나로만 해석되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사실상 모든 것을 상징한다. 독자가 부여하는 빛에 따라 상징의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종인 역자 해제에서는 종교, 신화, 사회, 심리, 철학적 측면에서 각각 신, 괴물, 노예제, 트라우마, 존재의 신비로 해석했다. 이 다섯 가지 해석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읽으면 작품의 의미가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다가올 것이다. 베테랑 고전 번역가 이종인 선생이 멜빌 특유의 장중하고 거침없으면서도 재치 있고 섬세한 문장을 탁월하고 가독성 높은 우리글로 옮겨 즐거운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이제 해석은 독자 각자에게 주어졌다.

 


 

앞서 언급한 대로 『모비 딕』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흰 고래 모비 딕 때문에 한쪽 다리를 잃은 선장 에이해브가 이를 복수하기 위해 다시 고래를 찾아가 사투를 벌이지만 결국 죽고 만다는 모험담이자 비극적인 복수극이다. 하지만 단조로운 스토리에 비해 소설의 분량은 이상하리만치 방대하다. 작가 허먼 멜빌은 고래처럼 거대한 소설에 도대체 무엇을 채워 넣은 것일까? 소설 첫 페이지를 열면, 느닷없이 히브리어부터 에로망고어까지 13개 언어로 고래의 어원을 소개한다. 그다음 페이지에는 『성경』에서부터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몽테뉴, 베이컨, 셰익스피어, 홉스, 버니언, 밀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고래에 관한 발췌록 80개를 죽 나열했다. 길고 긴 발췌록의 향연이 끝나면, “나를 이슈메일로 불러다오”라는 문장으로 본격적인 모험담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내가 소설을 읽는 건지 고래학(學) 백과사전을 읽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고래의 종류와 생태, 해부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포경업의 역사와 기술, 장비, 고래 처리 및 가공 과정까지 방대하고도 디테일한 지식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멜빌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고 거대한 도서관을 누볐다”라고 실토했다. 출간 당시 이 소설은 도서관 문학 코너가 아닌 수산업 코너에 꽂혔다는 후문이 돌 정도였다.

소설 중간중간 희곡 형식도 눈에 띈다. 엄연히 1인칭 관찰자 시점 소설인데, 난데없이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이어지고, 행동이나 상황을 설명하는 지문이 덧붙는다. 어느새 배의 갑판은 연극 무대로 변해 있고, 등장인물 말투도 연극배우의 발성을 닮았다. 하지만 어색함도 잠시, 가슴을 울리는 대사의 호소력에 이내 빠져들고 만다. 멜빌은 희곡 작가 셰익스피어에게서 강한 영감을 얻어 드라마 형식을 소설에 그대로 반영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소설 전체도 셰익스피어의 극 구성과 동일한 5막짜리 드라마 형태(1~23장[1막, 고래 사냥 준비], 24~47장[2막, 포경업 소개], 48~76장[3막, 고래 추격], 77~105장[4막, 고래 포획], 106~135장[5막, 고래와의 대결과 시련])를 취했다.

 


 

역자 이종인의 「해제」에 따르면 성향상 모험가보다는 철학자나 명상가에 가까운 멜빌은 자신의 소설에 인생이나 운명에 관한 철학적 성찰과, 종교나 인종 문제에 관한 사회적 비판을 담고 싶었다. 멜빌은 해양소설 『타이피』(1846)와 『오무』(1847)로 인기를 얻으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철학적 이상과 알레고리가 가득한 『마르디』는 전작들과 달리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대중이 읽고 싶은 소설을 쓰느냐, 작가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쓰느냐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멘토이자 동료인 너새니얼 호손은 후자를 선택하라고 격려해주었다. 자신감을 얻은 멜빌은 『모비 딕』을 출간했지만, 판매량이 고작 2천 부에 그치며 보기 좋게 실패했다. 기존 문법과는 다른 낯설고 파격적인 형식과, 모험소설인지 철학소설인지 알 수 없는 요상한 내용에 평단과 대중 모두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멜빌은 끝내 자신의 소설이 불후의 고전으로 재탄생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호손과 같은 천재만이 멜빌의 천재성을 알아봤을 뿐 멜빌은 동시대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불행한 작가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멜빌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는 다시 무덤에서 소환된다. 1919년 컬럼비아대학교 영문학 교수인 레이먼드 위버가 멜빌을 극찬하는 평론을 발표하자 다시금 『모비 딕』이 주목받으면서 이른바 ‘역주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1923년 영국 작가 D. H. 로렌스도 『미국 고전문학 연구』에서 “멜빌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더불어 세계가 두려워하는 작가”라고 평했다. 게다가 1924년 유작 중편소설 『선원, 빌리 버드』도 발표되면서 이른바 ‘멜빌 부흥’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추적하는 흰 고래 모비 딕이 상징하는 바가 가장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흰 고래는 무엇을 의미할까? 색깔이 ‘흰’ 고래는 한 가지로만 해석되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사실상 모든 것을 상징한다. 독자가 부여하는 빛에 따라 상징의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역자 해제에서는 종교, 신화, 사회, 심리, 철학적 측면에서 각각 신, 괴물, 노예제, 트라우마, 존재의 신비로 해석했다. 이 다섯 가지 해석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재독, 삼독하면 그만큼 작품의 의미가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다가올 것이다. 해제는 '흰 고래'는 신이 지상에 내려보낸 시련 혹은 '고래의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님'이다. 여기서 신은 기독교의 신이다.

『구약성경』은 리바이어던을 시편 74편 14절과 욥기 41장 1~8절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요나서에서 고래는 요나의 잘못된 행동을 질정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모비 딕』 45장 「진술서」는 이렇게 언급한다. "이따금 사람들에게 들이닥치는 신의 심판이 고래에 의해 기이하면서도 전도된 방식으로 수행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저자 멜빌이 소설 속에서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또 작품의 화자인 이슈메일은 『구약성경』 창세기 16장에 나오는 인물이다. 『모비 딕』 9장 「설교」에서 매플 목사의 요나 설교가 나오고, 82장 「포경업의 명예와 영광」에서 요나가 다시 언급되며, 이어서 83장 「역사적으로 고찰해본 요나」에서 요나를 역사적으로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이슈메일만 고래의 배 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이쯤 되면 이슈메일을 요나의 분신으로 읽고 싶어진다.

 


 

이번 현대지성 완역본 『모비 딕』은 독자로서도 처음 읽은 완역본이다. 어렸을 때 발췌본 그리고 언젠가 영화로도 본 기억이 있지만 그때는 모험과 거대 동물 고래와의 싸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독자 또한 그렇게 읽었다(발췌본이지만). 독자가 본 영화는 컬러영화였지만 제목이 〈백경〉이었다. 당연히 『모비 딕』이 이렇게 방대한 분량이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오래 전 기억이라 독자의 기억에서 많이 사라졌는지 등장인물도 많이 늘어났다. 그때 발췌본에는 이처럼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고, 설령 있었다고 해도 선원들 모두의 이름이 적힐 정도는 아니었다. 예상외로 큰 배였고, 선원의 수도 많았다. 마치 전쟁 때 쓰는 군함 같은 범선의 판화를 보고 깜짝 놀랐으니... 출판사 측도 거대한 고래를 찾아 떠나는 길고 험난한 항해를 묘사하기에 1930년대 스타일의 흑백 목판화만큼 적합한 것도 없다고 여겨 국내 최초로 레이먼드 비숍의 목판화 29점을 수록했다.

분량이 많은 데다 활자만 700페이지를 읽어나가기에는 눈의 피로가 상당할 텐데 이를 완화시켜 주고, 부족한 배의 헝태와 선원들이 하는 일, 배의 구조와 선원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 책 앞부분에는 ‘『모비 딕』의 이해를 돕는 당시의 판화들’을 실어 독자들에게 생소한 19세기 포경 현장을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소설은 소설의 스토리나 구성의 흥미로움은 물론 많은 지식과 상식을 보태기에 충분해 고전 작품 읽기의 목적에 다가가기에 매우 귀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완역본으로 읽음으로써 당시 미국 사회의 시민들의 관심사, 생활 방식, 의식 등을 엿볼 수 있었으며 바다 소설이니만큼 정치 외교적인 부분에서의 다른 나라에 대한 미국의 시각 등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다. 책의 앞 부분에서 갑자기 아프가니스탄 나라 이름이 튀어나와 깜짝 놀랐는데 이미 그때도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첫 문장이 인상적이었다면 마지막 문장도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다. 이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실종된 아들을 찾으로 다니다가 또 다른 고아인 나를 발견한 것이다."(p.691)

 


 

저자 :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미국의 소설가. 1819년 무역상이던 아버지 앨런과 어머니 머라이어의 둘째아들로 뉴욕 파르 거리 6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지만 13세 때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한다. 그때부터 멜빌은 은행이나 상점의 잔심부름, 농장일 등을 전전한다. 20세에 처음으로 상선의 선원이 되어 바다로 나간 그는 22세에 포경선을 타게 된다. 이때 항해를 하면서 얻은 경험은 그의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된다. 이후 포경선의 선원과 미 해군이 되어 5년 가까이 남태평양을 누볐다. 포경선에서 탈주해 마르키즈 군도의 식인종과 함께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첫 작품 『타이피Typee』(1846)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바다 생활을 담은 『오무Omoo』 (1847)에 이어 발표한 『마디』(1849)에는 철학적 논의들을 담았지만 평단의 차디찬 반응에 멜빌은 다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바다에서의 모험으로 돌아가 『레드번』(1849), 『하얀 재킷』(1850)을 발표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바틀비, 월 스트리트의 한 필경사 이야기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1853)는 1856년 다른 중단편들과 함께 『회랑 이야기The Piazza Tales』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대표작 『모비 딕Moby Dick or The Whale』(1851)조차도 그 실험적인 형식으로 인해 혹평에 시달린다. 그는 작가로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뉴욕 세관의 감독관 자리를 얻어 근무했다. 그래서 소설 창작은 접고 시 창작에만 몰두했다. 남북 전쟁을 그린 『전쟁 시와 전쟁의 양상』, 종교적 장시 『클라렐』, 그리스와 이탈리아 여행의 인상을 담은 『티몰레온』이 그때의 시집들이다. 마지막 소설 『선원 빌리 버드 인사이드 스토리Billy Budd, Sailor: An inside story』를 원고로 남긴 채, 1891년 9월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에이해브 선장이 머리가 흰 거대한 고래에 도전하는 내용을 다룬 『모비 딕(백경)』은 멜빌의 대표작으로,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작가 하수에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포경선 선원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리는 한편, 악·숙명·자유의지 등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까지 담고 있다. 그의 다음 작품인 『피에르』는 전작처럼 경험에 입각한 해양 이야기에서 탈피하여, 시골의 부유한 평민 집안의 외아들 피에르가 이복누이 이사벨을 구하려다가 빠져 들어간 비극적인 삶을 그리고있다. 이 작품은 캘비니즘적 그리스도교 사상에 의지하면서도 때로는 그 범주를 넘은 견해를 제시하여 인간심리의 착잡함을 비유적·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 역시 오늘날에 와서 더욱 각광받는 부분이 되었다. 근대적 합리성을 거부하는 철학적 사고, 풍부한 상징성이 뭍어나는 작품을 쓴 하먼 멜빌. 살아생전에는 단순한 해양 탐험 소설을 썼다과 평가되었을런지 모르지만 1920년대에 극적으로 재평가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친구 N.호손과 더불어 인간과 인생에 비극적 통찰을 한 상징주의 철학적 작가로,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림 : 레이먼드 비(Raymond Bishop)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목판화가로 활동했다. 1933년 앨버트 앤 찰스 보니(Albert and Charles Boni)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된 『모비 딕』에 레이먼드 비숍의 목판화가 수록되었다. 거대한 고래를 찾아 떠나는 길고 험난한 항해를 묘사하기에 1930년대 스타일의 흑백 목판화만큼 적합한 것도 없다고 여겨 이 책에도 국내 최초로 그의 그림을 수록했다.

 

역자 :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까지 250여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와 문학 서적을 많이 번역했다. 정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지금까지 250여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와 문학 서적을 많이 번역했다. 최근에는 E. M. 포스터, 존 파울즈, 폴 오스터, 제임스 존스 등 현대 영미 작가들의 소설을 번역하고 있다.

저서로 『번역은 글쓰기다』, 『번역은 내 운명』(공저)과 『지하철 헌화가』, 『살면서 마주 한 고전』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1984』, 『그리스인 조르바』, 『보물섬』, 『촘스키, 사상의 향연』, 『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 『문화의 패턴』, 『호모 루덴스』, 『중세의 가을』, 『지상에서 영원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헨리 제임스 단편선』, 『조지 오웰 수필선』, 『유한계급론』(소스타인 베블런), 『리비우스 로마사 I, II』, 『로마제국 쇠망사』, 『고대 로마사』, 『숨결이 바람 될 때』, 『변신 이야기』, 『작가는 왜 쓰는가』,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마인드 헌터』, 『군주론·만드라골라·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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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사물, 움직이지 못하는 인간 - 교통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김창균 지음 / nobook(노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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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이 책 『움직이는 사물, 움직이지 못하는 인간』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기발하다', '이색적이다'란 느낌을 가졌다. AI(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면서 미래학자나 산업 관련 관계자들이 인간을 능가하는 AI로봇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너무 기계에만 의존하다 보면 기계에 지배당한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기계를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기계를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위해서다. 자칫 기계의 편리성과 일부 분야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능력을 훨씬 웃도는 로봇에 의존하다 보면 점점 인간이 하는 일도 모두 기계에 빼앗긴다는 우려에서다. 충분히 합리적 주장이라 설득력이 있다고 독자는 생각했다. 이 책도 제목을 읽었을 때는 자율주행에 의존하는 것은 자칫 인간의 운전 능력도 기계에 빼앗긴다는 우려를 제시하는 책이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작 책을 펼쳐보니 독자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프롤로그'부터 확인시켜 주었다. 어쩌면 정반대의 입장을 저자 김창균은 펼치고 있다. 이 책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간을 대체할(필요없는) 자율주행차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교통정책이나 미래의 교통 상황 등이 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극심한 트래픽 현상이 불가피해 혼잡하고 정체가 심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란 경고를 하고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지 않기를···」을 통해 현재 우리의 교통 문화가 '걸음마 수준'이라고 말한다. K-컬처, K-방역 등 국내 많은 분야가 선진국 수준인데 왜 교통문화는 개선되지 않는가?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최근 '암행 단속', '5030 속도 제한', '4대 불법 주정차 신고 강화', '구간 과속 단속' 등 획기적인 교통안전 정책들이 시행 중인 동시에 교차로 '정지' 표지 같은 기본 법규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자책한다.

 


 

저자는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좀처럼 줄지 않고, 주차가 주행보다 어렵고, 예기치 않은 사고와 혼잡으로 목적지까지 통행 시간은 계속 늘어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동차 대수는 2,500만 대를 넘어 3,000만 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자동차 수 증가는 대중교통의 이용 감소를 의미한다. 저자는 지난 10년간 버스 이용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도시철도는 차내 혼잡, 노선의 장거리화, 청결하지 못한 공간 등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지난 2년, 코로나 비대면 시대는 대중교통 기피 현상을 불러왔다. 대중교통은 앞으로 연계 환승과 공유 교통의 도입 증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만일 이 사태를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의 삶을 뒤흔들었듯 '트래픽 팬데믹'이 우리를 덮칠지도 모른다고 경계한다. 고무적인 사항도 있다. 무인 자동차의 시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율주행의 시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AI, 통신, IoT 등 관련 첨단 기술과 개발에 속도가 붙어 무인 자동차 도입을 위한 기술 발전이 성과를 내고 있다. 흑사병 이후에 르네상스가 싹을 틔웠듯 코로나 이후 무인 자동차라는 새로운 교통 수단의 탄생이 현재 우리의 교통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기대를 갖게 한다. 저자의 이 책 발간 취지도 경쟁만 심하고 교통 본연의 임무 수행이 어려웠던 시대를 넘어서 '청색 시장(Blue Ocean), 즉 사업과 정책의 성공이 보장되는 새로운 시대가 되도록 교통의 개념을 바꾸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교통 시스템을 확장 개선할 때에는 무인 자동차의 도입을 감안해 추진해야 하고, 이젠 자동차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교통 제도와 체계를 구성해야 할 시점임을 밝히고 있다.

 


 

인류는 출현과 동시에 '이동'을 했다. 단순한 '먹을 것'을 위해서부터 '안전한 곳'을 위한 집단 이주했다. 이동은 의식주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시작해 왔으며, 농경 생활로 정착한 이후부터는 집단적으로 공동체 생활, 또 더 발전된 공동체인 '국가' 단위로 발전하면서 더 쉽고 빠르고, 안전을 위해 바퀴와 말을 고안하고 가축을 도입했다. 바퀴는 수천 년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말보다 빠르고 안전한 자동차, 기차를 만들었고, 이젠 비행기로 하늘로 이동하는 능력까지 지녔다. 그러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만큼 거리가 단축된다는 개념과는 친하지 않았던 듯 적정 인구 정책은 시작된 지 이제 200년도 안 된다. 우리에게 빠른 이동이 가능하게 된 일이 이젠 인구 증가로 오히려 더 늦게 움직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미리 계산해 두지 않은 탓이리라. 이제는 우리의 모든 일상이 움직임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여전히 이동하는 일은 크나큰 고역이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있다. 교통량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그에 따라 교통혼잡은 악화되고 사고위험도는 지속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다. 각종 이동 경로의 꾸준한 증가에도 교통 혼란, 체증은 날로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향후 무인 자동차의 시대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AI, 통신, IoT 등 관련 첨단 기술에 대한 개발이 가속화됨으로서 무인 자동차 도입을 위한 기술 측면에서의 성과와 발전은 점차 늘어만 가고 있다. 코로나 이후에 무인자동차라는 새로운 교통수단의 탄생으로 인해 현재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모든 교통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실낱같은 희망이 생긴 것이다. 이제는 진짜로 자동차 중심에서 벗어나 인간중심의 교통 제도와 체계를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구현하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교통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2부 〈우리는 과연 안전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3부 〈자동차 3천만 시대가 오고 있다〉, 4부 〈우리의 일상은 교통의 연속이다〉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의 움직임을 제한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단순한 이동의 제한이 우리에게 얼마나 무섭고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를 비로소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전반적인 교통과 평범한 일상이 자연스럽게 위축되고,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여건이 축소 지향적으로 전환됨으로써 인간 삶의 질이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코로나 시기 동안 화물은 인간을 대신하여 그 통행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해왔다. 생필품을 비롯한 다양한 물건의 구매가 예전과 달리 택배와 온라인을 통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움직이는 화물'로 보고 이 책의 제목을 연결해 냈다. 이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에 인류의 시름은 점점 깊어만 간다.

지금 우리나라는 코로나바이러스와 유사한 '트래픽(교통혼잡) 팬데믹'을 대비하는 일에 직면해 있고 하루빨리 대비책을 내놓아야 한다. 교통 문제는 우리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산업, 과학, 예술 등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다른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그 근원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수많은 분야와의 협력과 조정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광범위한 국가적인 사안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융·복합적인 사고와 공정한 정책 집행을 하지 않는다면 국가 성장은 멈추고 또 다른 파탄에 직면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1, 2부를 통해 지금 우리 앞의 교통 현실과 정책 집행, 교통 시스템 등을 되돌아보고 분석 판단하고 있다. 또 새로운 이동 수단인 '자율 주행' 시스템에 대한 준비 등을 중심으로 교통 정책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대중교통의 몰락」, 「철도 르네상스」, 「버스 공영제」, 「스마트 시티와 모빌리티」, 「청색교통 시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교통 정책과 관련, 「교통 법규」, 「음주운전 단속」, 「암행 단속」, 「어린이보호구역 실효」, 「각종 교통 표지판」 등을 재점검한다. 이어 3부에서는 자동차 3,000만 대 시대를 눈앞에 두고 「회전 교차로」, 「유령 교통체증」, 「교통 스트레스」, 「내비게이션」, 「교통 약자」, 「도로 운영관리」 등 실질적인 교통 시스템과 정책 등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공유 교통의 연착륙을 위해」, 「대기오염의 주범 교통」, 「교통 균형을 통해 국가발전을 이룬다」, 「생활교통이란 무엇일까요?」, 「고령 운전자의 안전 운전 묘책」, 「대중교통 이용 예절은 그 사회의 수준을 대변한다!」, 「아직도 버스 타기 겁난다!」, 「교통벌금 차등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 실제 적용하고 실시되고 있는 우리나라 교통 시스템 및 정책에 대해 하나씩 각각의 장(章)을 마련, 짚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현재 상황처럼 도로가 부족하고 자동차는 증가하고 아파트는 늘어나며 바이러스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면 교통 문제는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게대가 정부기관, 기업, 학교가 계속해서 지금과 같이 수도권에 집중된다면 조만간 수도권은 폭발 상태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목한다. 현재 인구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상주해 있다는 사실은 2000년도 초반 수도권의 집중화 완화를 위해 대대적으로 시행해왔던 국가균형발전 계획이 실패했음을 말해준다.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도 행정수도와 혁신도시가 제자리를 잡지 못한 현실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서울 수도권의 비대화를 해소하기 위한 교통 대책의 첫 번째는 교통수요관리 정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버스의 공영화는 이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경험했던 버스 이용객 감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격한 감소추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날이 늘어나는 자동차와 코로나 바이러스도 버스 이용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도로 혼잡이 가중되고 교통사고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단거리 이동과 교통약자 통행 보장 측면에서 대중교통의 역할은 오히려 그 비중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만간 무인 자율자동차 시대가 오면 대중교통 활용도는 크게 변화할 것이다. 따라서 대중교통의 새로운 역할과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서울 수도권의 경우 도시철도는 이용 분담률이 약 40%, 버스를 합하면 60% 초중반이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승용차 시장을 고려하면 대중교통의 분담률이 70%를 넘기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새로운 대중교통 수요를 창출하기보다는 기존 대중교통 수요의 지속적인 수용을 목표로 하면서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광역시와 중소도시는 버스 공영제가 해법일 수 있다. 해당 지역에서는 버스와 도시철도의 이용률이 높다 해도 대중교통 이용 분담률이 20~30%를 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치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교통약자 중심으로 대중교통 서비스를 개편하고 벽지 노선에 집중적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적합할 것이다."(p.49~50)

 

저자 : 김창균

 

서울에서 태어나 동성고(서울), 성균관대와 미국 뉴욕대를 거쳐 버지니아 공대에서 교통공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교통연구원을 시작으로 가톨릭관동대, 서울시청, 액센추어(Accenture, 싱가포르), 단국대, 한양대 등에서 약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였다. 우리 사회의 경제, 문화, 산업, 생활 등과 교통의 연관성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이 있으며, 심각한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노력 중이다. 특히, 모빌리티 개념을 통해서 현재 사회의 최대 현안인 도시화와 부동산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에서 각종 위원회 활동을 해왔으며, 교통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경험과 지식을 쌓아왔다. 현재는 모빌리티 정책연구소와 UI Networks에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움직이는 모든 것은 교통이다』(2018년)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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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속으로 수십 번 되뇌는 습관은 불행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습관은 고칠 것이 아니라, 지금 끝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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