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에디터스 컬렉션 1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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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인간 실격』에 대해서는 수십 년 전에 제목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일·극일(知日·克日)을 말하는 자리에서 한 분이 주장한 내용에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를 예로 들었기 때문이다. 전국(戰國) 체제의 일본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지식인들 중 한 사람으로 본 것이다.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다자이 오사무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 군국주의 정부에 반대하는 일본의 지식인으로 독자의 머릿속에 각인됐었다. 다만 이후 그의 작품이나 연보를 따로 살펴보지는 않았기에 이번에 그의 작품을 처음 읽는 셈이다.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기에 그의 작품만한 것이 없으리라. 독자는 이 책을 읽기 전에 그의 생애에 대해 간단한 기술을 찾았다.

독자가 즐겨찾는 두산백과에도 짧게 기술돼 있다. 이에 따르면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의 소설가로서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다. 좌익운동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많이 썼다. 주요 저서로는『사양(斜陽)』, 『만년(晩年)』, 『인간실격』 등이 있다. 아오모리현(靑森縣) 출신으로 도쿄대학 불문과를 중퇴했다. 재학 중에는 좌익 운동에 참가하였다가 후에 이탈하였으나, 그 좌절감을 평생토록 떨치지 못하여 그의 작품에 영향을 남겼다. 전시에는 일본 낭만파에 속하였으며, 전후 『사양(斜陽)』을 발표하여 청년층의 열렬한 환영을 받음으로써 일약 인기작가가 되었으나 1948년 애인과 정사하였다. 그는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다고 한다.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 것도 그의 좌익운동 참여와 사회 부적응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짧은 생애와 많이 않은 유작으로 별 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던 듯하나 패전 후 일본의 분위기와 흡사한 소설적 배경이나 소설의 분위기는 젊은층에 큰 인기를 끌고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 측의 책 소개를에 따르면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인간 실격』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더불어 일본 근대문학의 양대 소설로 평가받으며 현재까지 1,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수 차례의 자살 시도 끝에 39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 그의 유작이자 대표작인 『인간 실격』에는 작가의 일생을 지배한 상실감과 소외감, 번뇌가 여실히 담겨 있다. 인간을 두려워하고 세상에 조화하지 못하는 한 고독한 젊은이의 혼란과 방황, 좌절과 파멸을 그린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우울과 불안에 빠져 있던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큰 공감을 일으켰다.

다자이 문학 연구의 권위자이자 문예평론가인 오쿠노 다케오는 “패전 후 혼란한 시기를 우리는 다자이 오사무라는 한 사람에게 의지해 버텼다. 그는 청춘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존재다”라고 평했고, 〈뉴욕 타임스〉는 “인간의 나약함을 다자이 오사무만큼 잘 그려내는 작가는 드물다”라며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주인공 요조를 통해 드러나는 여리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인간 실존과 관계를 성찰하고 부조리와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 좌절하는 불안한 청년의 모습, 지독한 방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순수와 믿음을 희구하며 인간과 세상에 구애하는 한 인간의 처절한 고백은 7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수많은 독자의 가슴에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독자는 다자이 오사무로부터 프란츠 카프카를 읽는다. 카프카가 1883년 태어났고, 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 생이니 한 세대 차이다. 어쩌면 그의 작품에 카프카의 영향이 배어 있을지 모르겠다. 독자가 판단하기에는 그가 불문과에 입학했으니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카프카를 쉽게 접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카프카의 뉘앙스가 발견되기는 하나 주제와 배경 등이 사회적 부조리에 '저항'하는 데서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두 작가를 비교하는 문학적 성과를 내기에 독자의 그들의 작품을 충분히 섭렵하거나 그들의 문학에 대해 평할 지식이 없기 때문에 단순히 독자로서의 판단이니 독자들의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인간 실격』은 1948년 잡지 『텐보(展望)』에 3부작으로 연재되었고 다자이는 연재가 끝난 지 한 달 후 다마강 상류에 몸을 던져 사망했다니 그의 유작이 되었다. 이 소설은 신원불명의 화자가 등장하는 서문과 후기, ‘요조’라는 일인칭 주인공이 구술하는 세 편의 수기로 구성된다. 따라서 서문과 후기를 이끌어가는 ‘나’와 작품의 중심을 차지하는 수기 속 ‘나’, 이렇게 주인공이 둘이라 볼 수 있다. 책 속의 두 문장은 주인공 요조의 성격과 삶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부끄러운 생애를 살아왔습니다.”(p.11)

“나도 그릴 거야. 도깨비 그림을 그릴 거야. 지옥의 말을 그릴 거라고.”(p.41)

 


 

이 책은 장편소설이지만 그다지 길지는 않다. 전후 일본 분위기가 어쩌면 긴 장편소설을 읽고 앉아 있을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잡지에 3회 연재했다. 3회 연재 분량이니만큼 단편 5편 정도의 분량이지 싶다.(편집하시는 분은 분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겠지만 독자로서는 대략 짐작할 수밖에 없어서) 목차도 비교적 간단하다. 「서문」, 「첫 번째 수기」, 「두 번째 수기」, 「세 번째 수기」, 「후기」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에서는 화자 ‘나’가 한 남자의 사진 석 장을 보고 받은 기묘한 인상을 서술한다. 「첫 번째 수기」에서는 ‘요조’라는 인물이 ‘나’로 등장해 자신의 유년 시절과 집안 환경, 가족과 집안사람, 친구들에게조차 ‘우스운 행동’을 연기해야 하는 ‘나’의 번뇌와 고독을 묘사한다.

「두 번째 수기」는 부쩍 성장한 청년 시절 ‘나’의 모습과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방황하다가 약에 탐닉하는 혼란한 모습을 보여준다. 「세 번째 수기」는 그 혼란과 정서적 방황을 끊지 못한 채 결혼과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뒤 약물중독으로 결국 주인공이 완전히 폐인이 되고 마는 말기를 그렸다. 끝으로 「서문」에 등장했던 화자가 다시 등장해 수기 속 주인공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후기」로 작품을 맺는다. 저자는 『인간 실격』을 통해 2차 세계대전 패배 후에도 여전한 인간의 에고이즘, 권력에 대한 탐욕, 악습, 위선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방황과 혼란 속에 파멸의 수렁으로 점차 빠져들어 가는 주인공 요조처럼 철저한 ‘자기부정’과 ‘자기파괴’를 시도했다. 이 때문에 작가의 실제 삶과 작품을 일치시켜 인공의 극치를 구사했다는 문단의 평가를 받는다.

 


 

『인간 실격』이 발표된 지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 사회 상황과 우리의 일상생활 양식, 미디어 환경, 독자들의 감수성도 놀라울 만큼 많이 변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 수많은 독자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자이 연구의 권위자 오쿠노 다케오는 이 소설의 매력이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아서라고 설명한다. 특히 그는 대다수 비평가가 소설의 서문과 후기에 등장하는 ‘신원불명’의 ‘나’ 혹은 수기 속 화자이자 소설의 주인공인 요조와 다자이를 동일시하는 것, 또한 이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흔히 주인공과 다자이를, 나아가 독자 자신과 동일시하며 공감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어떤 시점으로 읽어도 의문이 남고, 어떤 문장은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시간을 두고 보면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마치 다자이 오사무의 생처럼 미스터리한 점이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는 다자이가 세상 사람들 눈에 광인으로 낙인찍힌 사회부적응자,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 정의 내린 주인공 요조를 통해 과연 진정한 광인, ‘인간 실격’은 누구인지 이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사회에 질문을 던진 것이라 주장한다. 2차 세계대전 후 격변의 시기를 겪으며 사회시스템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삶의 방식이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을 매도하고,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삶은 인정받지 못해 우스갯짓을 연기해야만 연명할 수 있는 사람들의 암울한 현실을 다자이 오사무는 소설 속 주인공 요조의 ‘무력감’과 ‘비저항’을 통해 역설적으로 비판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독자로서는 ‘폐인’으로 묘사한 요조에게서 피식민지가 된 우리나라의 작가 이상이 쓴 「날개」의 주인공 '나'가 오버랩된다. 주인공 요조는 작가 자신의 투영인 듯한 느낌마저 같다. 피지배 지식인 이상이 일본 총독부 관리로 호구지책을 하며 살아가지만 실제는 '폐인'이나 다름없는 신세라는 것을 「날개」에 투영했듯이. 이는 다자이 오사무가 작품을 쓰는 동안에도 반복되는 기행(반복된 자살 시도, 약물중독, 복잡한 여자 관계, 정신병원 수용, 거액의 빚 등)으로 그와 작품이 더욱 화제가 되었다고 하니, 마음속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사회 현실에 대한 저항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의 짧은 생애는 작가와 작품의 문학성에 대한 논의와 평가는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진 계기가 됐다고 한다. 구성과 표현, 문학성 면에서도 『인간 실격』을 비롯한 다자이 문학을 살펴볼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자신의 불화로 인한 소외감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사회에 조화되려 ‘광대’를 자처해 연기하면서도 거듭 자살을 시도하는 요조를 감상적인 감정의 개입 없이 담담하게, 때로는 자조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감상과 평가를 강요하지 않고 개인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세계의 잔혹함,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상처와 생의 덧없음을 자연스레 마주하고 공감하게 한다. 인간 실존과 인간관계의 다양한 고민, 부조리와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 상처받고 좌절을 거듭하는 불안한 청년의 모습은 비단 이 소설 속 인물, 아주 먼 과거에 외떨어져 존재했던 특수한 상황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여전히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에 공명을 일으키는 이유가 될 것 이 작품을 번역한 오유리는 평가한다.

"인물과 사건, 흐름을 어떠한 감정 개입 없이, 철저히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부분과 이성과 자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수기 속 내용은 확연히 대조되며 당시의 대혼란과 냉혹한 사회, 그 소용돌이에 휩쓸렸을 사람들의 심리를 대변하며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조 기법은 소설 전반을 흐르는 그의 표현에서도 적용된다. 우리말로 번역하기 매우 낯설고 어려웠던 초장문(마침표 없이 대여섯 문장이 이어짐)의 표현 역시 작가가 인물의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는 정서와 당시 상황, 관계에 대한 몰이해를 간접적으로 강조하며 읽는 이들 또한 불안정한 분위기 속에서 작품에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천재적인 표현법이 아니었나 짐작한다."(p.165~166)

 


 

저자 : 다자이 오사무(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 太宰 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역자 : 오유리

성신여자대학교 일문과를 졸업하고 롯데 캐논, 삼성경제연구소에 재직하는 동안 번역 업무에 종사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 소노 아야코의 『긍정적으로 사는 즐거움』, 시게마찌 키요시의 『오디세이 왜건, 인생을 달리다』, 『소년, 세상을 만나다』, 『안녕 기요시코』, 요시다 슈이치의 『워터』, 『일요일들』, 『파크 라이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사양』,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외 『나다운 일상을 산다』 『도련님』 『랜드마크』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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