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그네 1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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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억에 최인호는 '천재 작가'다. 그의 천재성은 작가 등단 때부터 빛났다. 고등학생 때 이미 중앙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한국 문단사에서 드문일이다. 한 번도 아니고 다른 신문사에 또 한 번 당선됐다. 남들은 한 번도 어려운 신춘문예 통한 등단을 두 번이나 어린 나이에 통과했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 생활의 신호였을 뿐이다. 문장과 표현, 묘사 등 독자의 관심과 가독성을 생각하고 쓴 것인지 모르지만 엄청난 인기를 발표한 소설마다 끌었다. 마침내 신춘문예에 당선됐던 우리나라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다는 신문사에서 신문연재 소설을 제의한 모양이다. 최인호는 응했다. 그래서 책으로 펴내기 전에 신문 연재로 발표됐던 소설이 이 작품 『겨울나그네』다.

당시 신문사에서는 신춘문예 공모에 장편소설이 없었고, 단편이 주로 심사 대상이었다. 장편은 자신의 능력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통해 책을 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이란 글쓰는 능력을 말한다. 지금도 그런 출판사들이 있겠지만 당시 출판사는 대부분 영세했다. 독자 역시 소설 책을 사볼 정도로 주머니가 두둑하지 않았다. 책에 대한 욕망은 크더라도 실제로 사서 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돈이 있어야 소설 책을 사본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까지의 소설은 대부분 단편소설 위주다. 같은 소설 한 편을 읽더라고 열 편 가까이 실려 있는 책과 한 권으로 한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다는 것은 커다란 결심이 아니면 선뜻 사기 어려울 때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독자라면 대부분 대학생이나 일반 시민들인데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소설 책을 사본다는 것은 '부자' 아니고서는 감행하기 어려운 결단이다.

이런 이유로 단편소설은 60~80년대에 이르는 동안 우리나라 소설 문학의 근간을 이루었다. 작가들 입장에서도 장편을 쓸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사서 보지 않는다면 책을 출판해줄 출판사는 없다. 그러나 최인호는 달랐다. 이미 신춘문예를 통해 검증된 작가인 데다 '대중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그의 천재적 재능이 발휘된 것 같다. 그는 잘 쓸 뿐만 아니라 많이 썼다. 놀라울 속도로 글을 썼다는 후문이다. 글쓰기에 성실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인호가 소설가로서 명성을 날리자 인기를 체감한 영화사들도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나섰다. 대중작가로서 최인호는 그렇게 대한민국 1위가 되어 갔다.

 


 

이 책 『겨울나그네』 역시 영화로 영화관에 걸린 후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당시 작가 수입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막대한 인세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하니 출판사 역시 돈을 얼마나 벌었을지 짐작이 간다. 최인호는 쓰기도 전에 출판사들이 줄을 섰다는 소문도 들릴 때다. 그런 소동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한적한 곳으로 피신할 수도 있을 텐데 최인호는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글쓰기에 열중이었는지, 원래 아무곳에서나 잘 쓰는지는 독자는 모르지만 말이다. 당시 대한민국 사회는 최인호 인기 만큼 경제적으로 차츰 좋아져 갔다.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급속한 산업화는 상대적 빈곤을 발생시키기는 하지만 절대적 경제 사정은 점점 나아지게 했던 것 같다. 의식 있는 작가들은 산업화의 그늘(노동자 문제, 빈부 문제 등) 속에서 소설의 소재를 발견해 응축적으로 잘 썼다고 한다. 사회를 풍자하고 어두운 곳도 그대로 표현해 보여줌으로써 우리 나라 발전을 위해 '펜'을 보탰던 작가들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몇 소설가들의 이름을 댈 수 있지만 당시 단편소설들은 대부분 이에 속한다. 독자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는 시대니까. '단편소설 전성시대'는 우리나라 리얼리즘 문학의 전성시대이기도 하다.

최인호는 사회의 또 다른 소외 계층에게 시선을 돌린다.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남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여공들, 사랑하는 남자의 고시 뒷바라를 위해 손가락질을 받으며 술을 따르던 호스티스 등이다. 모든 그늘진 곳도 최인호가 펜을 들면 사랑이 피어난다.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이다. 이런 사랑이 당시의 사회적 추세이기도 하겠지만 원래 사라은 비극적이어야 더 아름답다는 옛말이 있잖은가. 이때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노사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가요 1위곡을 차지할 때와 때를 같이한다. 이 소설 작품 『겨울나그네』도 비극이다. 두 주인공은 다혜(원래 신문 연재 때는 다른 이름이었지만 책으로 펴낼 때 딸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와 민우. 두 사람의 만남은 사소하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민우가 다혜와 가벼운 부딪침으로 다혜가 안고 가던 책을 바닥에 내동댕이처진 상태로 다혜는 넘어진다.

 

 

최인호는 당시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자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이 소설은 1984년 동아일보에 일 년여를 연재했고, 같은 해 첫 출간 이후 100쇄 이상 중쇄될 정도로 많은 젊은이들에게 읽히며 사랑을 받아왔다고 한다. 이 소설에는 통속적이고 가벼운 세태 속에서 빛 바래가던 ‘민우’와 ‘다혜’, 두 주인공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 최인호는 〈머리말〉을 통해 이 소설의 표제어 '겨울나그네'도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에서 빌려왔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잘 알려진 것처럼, 현실과 사랑의 환상 사이에서 방황하다 마침내 미쳐버린 청춘의 절망과 고뇌를 섬세하게 표현한 연가곡집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소제목 「보리수」, 「거리의 악사」도 〈겨울나그네〉에서 따온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가슴 아픈 청춘의 방황과 참혹한 젊은의 슬픔을 그리고 싶은 열정'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소설은 책으로 펴낸 이후에 영화, TV 미니시리즈, 뮤지컬로까지 다양한 문화장르와 결합해왔다. 1986년 영화화한 것이 대성공을 거두며 지금까지 청춘영화의 고전으로 불리고 있고, 1989년에는 드라마로 방영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 1997년에는 뮤지컬로 공연되기도 했다. 이 소설의 〈머리말〉은 2005년 작가가 직접 쓴 것이다. 2023년, 작가의 10주기를 맞는다. 출판사는 작가 최인호를 기리며 이 개정판을 올해 출간한 것이다.

작가는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에서 영감을 얻어 아름답고 순수한 청년의 사랑을 그리고 싶다는 작품의 모티프”로 ‘민우’라는 주인공을 탄생시켰다. 전도유망한 의대생 ‘민우’와 병약하지만 불꽃같은 열정을 품은 ‘다혜’를 통해 변치 않는 사랑의 원형과 순수한 청춘의 초상을 일깨워주는 데 성공한 셈이다. 통속적이고 가벼운 세태 속에서 지고지순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풋풋하기에 더욱 아름다웠던, 한없이 빛나고 가슴 설레었던 지난날을 추억하게 한다. 독자 역시 오랜만에 아날로그 시대의 사랑의 모습에 새삼 가슴 저미는 슬픔과 열정이 한동안 눈을 가렸다. "나도 그랬었나?" 하는 마음속 질문과 함께...

 


 

잠깐 언급한 대로 민우와 다혜가 처음 만난 것은 설렘으로 가득한 개강 첫날, 봄날의 오후 대학 캠퍼스였다.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다혜를 사랑하게 된 민우는 친구 현태의 도움으로 다혜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나 술집 여인의 아들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민우는 뜻하지 않게 전과자가 되어 대학을 떠나게 되고, 기지촌으로 흘러들어가며 이후 그의 삶은 점점 타락과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다혜가 속한 세상과 멀어져만 간다.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옛날을 말하던 기쁜 우리들의 젊은 날은 어디로 갔는가.

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기쁜 우리들의 젊은 날은 저녁놀 속에 사라지는

굴뚝 위의 흰 연기와도 같았나니.

 

기지촌에서의 생활과 전과로 인해 다혜의 곁을 떠나려는 민우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를 기다리는 다혜. 현태의 도움으로 둘은 재회하지만 민우는 기지촌과 그곳에서 만난 은영에게서 헤어나지 못하고, 다혜는 점점 현태에게 의지하기 시작한다. 민우가 또 한 번 오랜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감했을 때 은영은 그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현태와 다혜는 서로 의지하며 차츰 민우를 잊어가고, 몇 년 후 불현듯 찾아온 은영에게서 민우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지고지순한 민우와 다혜의 사랑은 찬란한 빛 속에서 흘리는 한 줄기 눈물처럼, 우리에게 소중한 카타르시스로 다가온다.

 


 

"장갑은 공짜로 드립니다."

은영은 신부를 위해 준비해둔 열 벌의 드레스를 거의모두 입어본 뒤에야 한 옷을 선택했다.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데 너무 시간이 걸렸으므로 예식장 직원은 실경질을 부리면서 짜증을 냈다.

"어때요?"

마침내 좀 커 보이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은영은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물었다.

"어울려요?"

민우는 물끄러미 웨딩드레스를 입은 은영을 보았다. 그는 약간 취한 상태였다. 용기를 돋우기 위해 숨을 가볍게 마셔으므로.

"예뻐."

감정 없는 목소리로 민우는 대답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은영은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그녀는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놀라울 정도로 변신해서 아름답게 보인다 해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그녀가 악마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것 역시 상관없는 일이었으므로.

단 위의 촛대에 촛불이 켜졌다. 두 사람은 단 아래 섰다. 양옆 게시판에 민우의 이름과 은영의 이름이 나붙었다. 서로의 부모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하객들이 앉아야 할 객석에는 을씨년스런 어둠이 가득했다.

이미 술에 취한 사진사가 혼자 신이 나서 두 사람에게 팔짱을 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은영은 민우의 팔장을 다정스럽게 꼈다.

"웃으세요."(1권 p.412~41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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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Memory of Sentences Series 1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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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을 볼 때마다 우리 시인 박인환이 떠오른다. 그의 시 〈목마와 숙녀〉에 '버지니아 울프'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박인환은 우리나라 모더니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에서 언급되는 버지니아 울프를 동경했던 것 같다. 독자는 고등학교 시절 시인 박인환을 교과서를 통해 처음 알았고, 그의 시를 즐겨 읽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 후 폐허의 서울 명동에서 문우 등 예술인들과 교유하며 대한민국의 가장 비참했던 시절의 생활을 견뎌낸 시인이어서 기억이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그것보다는 그의 또 다른 시 〈세월이 가면〉은 곡까지 붙여 뒤에 한국인이 사랑하는 노래에 뽑힌 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중략)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하략) - 〈목마와 숙녀〉 일부

 


 

〈목마와 숙녀〉 싯구처럼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시인이 직접 밝히지 않는 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독자가 알기에는 숙녀와 버지니아 울프는 관련이 없을 것으로 이해한다. 다만 시 발표 후에 문학평론가들이 싯구의 문맥상 다른 인물로 추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목마와 숙녀〉를 몇 번이고 읽어 보면 시의 분위기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나 작품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이 책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은 버지니아 울프의 13편의 작품에 대한 설명 및 해석, 마음 깊이 기억할 212개의 문장을 소개한다. 저자 박예진은 풍부한 인문학적 해석과 함께 20세기 대표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의 작품을 한 권의 책에 엮어냈다. 후대에도 꾸준히 회자되는 버지니아의 명문장을 영원히 소유함으로써, 우리는 삶의 힘이 되는 그의 문장들로 우리 삶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바탕으로, 버지니아는 그의 명료한 생각과 아름다운 상상을 글로 그대로 옮겨냈다. 저자 박예진은 울프의 작품 『자기만의 방』에서는 언제든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우리 모두를 돌아보게 할 수 있고, 『등대』를 통해서 변화와 성장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기도 한다.

울프는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은 유복하게 자랐지만 정신질환은 그를 불행의 늪으로 빠뜨린다. 더욱이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고 하니 정신적 충격에 의한 것이라는 짐작이 일반적이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 증세를 보임으로써 마지막 가늘 길에도 유서에 이를 남겼다. 이 책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은 〈프롤로그〉에서 그가 남편에게 쓴 마지막 편지 내용을 알림으로써 시작한다.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껴요.

우리는 그 끔찍한 일을 다시 겪을 수 없어요.

그리고 이번은 회복될 수 없을 거예요."(p.14) - 유서 일부(전문은 p.205~206에 수록돼 있음)

 


 

정신질환이 다시 도짐으로써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절반이다. 또 나머지 절반은 남편에 대한 사랑에 감사함과 당신이 만들어준 삶의 모든 행복을 빚졌다는 말을 남겼다. 간결하고 명징해 독자로서 오히려 당혹스러울 정도다. 이 정도의 글을 쓸 능력이 있다면 정신질환이 심해진 상태라고 볼 수 없지 않을까? 하는 독자의 미욱한 판단이겠지만. 버지니아는 사실 결혼 전부터 신문에 평론과 에세이를 꾸준히 기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훗날 페미니즘의 교과서라 불리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강연을 바탕으로 집필한 에세이 〈자기만의 방〉이다.

저자 박예진에 따르면 한때 버지니아는 작품보다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로 더욱 유명한 작가였다. 그래서 그를 둘러싸고 예민하고 우울한 얼굴을 가진 작가라는 편견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죽음의 요인이 무엇이든 간에, 그가 쓴 작품들은 수많은 이이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바이올렛 디킨슨에게 남긴 편지는 희망과 자신감이 가득차 있었다.

"불행해질지도 모르지만 행복해질지도 몰라요. 수다쟁이 감상주의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책 속의 글자 하나와 나를 활활 타오르게 할 그런 작가가 될지도 몰라요."

저자는 버지니아의 작품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작가로서의 재능에 감탄했다고 털어놓는다. 난해하다고 인식되는 '의식의 흐름' 기법조차 버지니아 특유의 명쾌함과 예리함을 가릴 수는 없었으니까. 특히 버지니아만의 개성이 선명히 드러나는 에세이를 읽을 때면, 저자는 종종 그의 문장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 노트에 적어 놓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노트를 채우고 이 책이 탄생한 것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 책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유명 작가, 버지니아의 문장들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그의 글 속에는 여러 차례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물상, 자연현상의 의식적 표현 등 버지니아의 글은 때로 난해하게 읽히기도 해 종종 독자들에게 좌절감을 주기도 하니까요."(p.17)

 


 

이 책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은 모두 4부(PART)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다〉, 2부 〈어떻게 살 것인가, 의식의 흐름에 몰입하다〉, 3부 〈초월적인 존재를 사랑하게 되다〉, 4부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등이다. 각 부에는 3개의 장(章)으로 나뉘어 있으며 1부에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A Room of One’s Own」,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목소리-Three Guineas3기니」, 「내면의 목소리를 찾기 위한 여행-The Voyage Out」이다. 각각 작품 「자기만의 방」, 「3기니」, 「출항」에 들어 있는 문장들을 뽑아 설명하고 있다. 2부에는 「시공간을 초월한 의식의 흐름-The Mark on the Wall」, 「결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Night and Day」, 「인생에서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Jacob’s Room」로서 작품 「벽에 난 자국」, 「밤과 낮」, 「제이콥의 방」에서의 문장을 뽑아 영문과 함께 번역문으로 나란히 두고 작품의 해석을 곁들인다. 3부는 「개의 공간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Flush」, 「남성과 여성이라는 분리를 넘어서-Orlando」, 「삶과 연극은 어떻게 다른가-Between the Acts」라는 제목으로 작품 「플러시」, 「올랜도」, 「막간」을 비교 설명한다. 마지막 4부에는 「내면의 흐름에 따른 스토리 미학-To the Lighthouse」, 「영혼의 움직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The Waves」, 「생의 유한함과 영속성 사이에서-The Years」으로 작품 「등대로」, 「파도」, 「세월」에서 저자 박예진이 좋아하는 문장을 뽑고 읽으면서 남긴 메모나 주석 등을 달아 책으로 펴냈다.

버지니아는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해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는다. 소설가로서 버지니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또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버지니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고 문학평론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저자 박예진은 이 책을 통해 의식의 저편 너머로 버지니아의 문장을 읽어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유하고 있다.. 그의 생애를 아우르는 문장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버지니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출 때, 우리는 드디어 자아를 돌보고 자립과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우울이나 어둠의 정서로만 비춰졌던 오해의 그늘을 벗어나 페미니즘, 여성 퀴어 등 시대를 앞선 주제의식을 포함해 다정함, 따듯한 사랑, 유머와 위트, 그리고 인간의 '마음의 비행'을 끝없이 추적하는 버지니아 열정에 놀라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책의 뒷 부분에 있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란 제목의 〈부록〉을 통해 『버지니아의 일기』 일부를 소개한다. 이 일기는 버지니아가 26세였던 1915년부터 53세가 되기까지 썼던 일기 중에서 버지니아의 문필생활과 관련된 부분만을 그의 남편 레너드 울프가 엮어낸 것을 이 책에 소개했다. 저자 박예진은 "일기에 그려진 버지니아는 감정 기복도 심하고 자주 아팠던 사람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도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초조하거나 비참한 기분일 때 주로 일기를 썼기 때문에 그의 벙든 측면이 더 부각된 것인지도 모른다며 조심스럽게 밝힌다. 저자는 "주로 본인이 겪었던 일,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 인생이나 우주에 대한 고찰, 그리고 어떻게 글을 구상하고 쓸 것인지를 정리한 것들"이라며 "버지니아는 글의 결말까지 빠르게 써 내려간 다음,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고쳐 쓰는 식으로 글을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인다. 작품 해설에서 한마디로 책과 울프를 정리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영문학의 거장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번에 출간된 울프의 단편 모음은 깔끔하고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을 울프의 작품세계로 안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는 문장의 소개에서 계속해서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던 덕분인지 그는 『등대로』를 쓰면서는 "평생을 통해 가장 빠르고 가장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으며 이것은 내가 제 길에 들어섰다는 증거이다"라는 내용을 일기에 찾아내 소개한다. 또 자기 확신이 생긴 버지니아가 『제이콥의 방』을 대하는 태도는 인상적이라고도 말한다. 버지니아는 마음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무엇인가 말하는 방법을 나이 마흔이 되어 찾아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외친다는 부분을 소개하기도 한다.

 


 

울프는 영국에서 나고 살았지만 '하버드 대학생이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BBC에서 뽑은 위대한 영국소설 25편 중 세 편을 싹쓸이한 유일한 작가라고도 소개된다.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 선정 인류의 필독서,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순위 TOP100에 언제나 올라 있는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라고 소개된 책도 있다. 이처럼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버지니아 울프는 독자들의 사랑과 놀라운 기록을 한몸에 몰고 다니는 주인공이었다. 이유는 이 책을 읽는다면 금세 알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 :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여성들의 적극적인 예술 활동 참여, 동성애자들의 권리, 전쟁 반대 등 빅토리아시대의 관행과 가치관을 공공연히 거부하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을 앓았다.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출항』, 『밤과 낮』, 『제이콥의 방』, 『댈러웨이 부인』, 『파도』,『현대소설론』 등과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속편 『3기니』 등이 있다. 1927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등대로』를 발표하며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올랜도』, 『물결』, 『세월』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왔던 울프는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신 질환의 재발을 우려하여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편역 : 박예진

 

북 큐레이터, 고전문학 번역가. 박예진은 고전문학의 아름다운 파동을 느끼게 만드는 고전문학 번역가이자 작가이다. 또한, 문학의 원문을 직접 읽으며 꽃을 따오듯 아름다운 문장들을 수집하는 북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문체의 미학과 표현의 풍부함이 담긴 수많은 원문 문장들을 인문학적 해석과 함께 소개해 독자들이 영감을 받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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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삶을 사랑할 수 있는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한상원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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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철학을 공부하지 못한 이유로 철학자의 이름도 제대로 모른다. 그러나 대학 공부 이전에 배웠던 교과서에 나온 이름은 어느 정도 알고는 있다. 그렇다고 이름이 그의 철학을 이야기해주지 않기 때문에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그가 철학자로서 남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이 있다. 이름과 저서명은 아는 셈이다. 그리고 최근,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나온 각종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니체'란 것은 독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남겨 대단한 독설가이자 기독교 사회인 유럽에서 그다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가 왜 전 세계가 팬데믹의 공포에 휩싸인 시점부터 그의 이름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니체가 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자주 언급되어 왔다고 니체를 연구하는 학자나 후배 철학자들은 말한다. 니체의 철학은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의 저자 한상원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 철학이 던진 근본적인 물음은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라고 말한다. 니체의 철학적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말년의 저작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은, 서구 정신이 천착해온 과정을 전복하고 해체하는 일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는 곧 서양철학의 정수라고 하는 형이상학을 극복하는 작업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런데, 이 형이상학은 기독교의 신 개념과 접목돼 있었고, 형이상학과 신학은 모두 현존을 부정하는 관점이라는 점에서 우리 자신의 현재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니체와 그의 철학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저자는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형이상학 및 신학과 대결해 온 점에 니체는 주목했다고 밝힌다. 이 대결은 결국 곧 “현재 나의 삶을 사랑할 수 있는가” “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다름아니다. 니체 철학의 정곡을 찌르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니체의 주저이자 고전문학에 반열에 오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소개·해석하면서, 철학함이란 구체적으로 특정 사상가의 철학 내용을 내 삶의 구체적 현실 속에 적용해 봄으로써 나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는 계기를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한다고 집필 취지를 밝히고 있다. 저자는 책의 〈서문〉을 통해 니체의 저서와 철학을 ‘기독교냐 아니냐’ ‘반철학이냐 아니냐’라는 해석에서 그치지 않고, ‘나의 삶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방향의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고 강조한다. 그 점이 우리가 니체를 수용하는 더 바람직한 길이 아닐까라며 의문부호로 말을 맺지만 독자에게는 살아 있는 철학에 이르는 길이라고 읽힌다. 독자는 니체에 문외한이라고 밝힌 점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 이 책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태도라고 믿고 싶어서다. 사전 편견이나 오해 등 잘못된 믿음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물론 니체에 대해 사실 아는 것이 없기도 하다. 표제어 중 '차라투스트라'가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의 독일 이름이란 사실도 이제서야 알았다. 고등학교 때 '조로아스터교' '배화교' 등으로 배운 종교 말이다. 그런데 막상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종교와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산 속에 숨어 살던 차라투스트라가 "신은 죽었다"고 하는 깨달음을 얻고 산을 내려와 여행하면서 가르침을 전하는 모습을 그린 철학적 서사시이다. 이 가운데서 니체는 초인(超人)·권력에의 의지·영겁회귀 등 그의 중심적인 사상을 전개하고, 창조적인 삶의 긍정과 충실을 설명했다.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고 아름다운 어구, 시적 표현을 아로새겨서 이러한 사상을 구상화해 이후 사상가뿐만 아니라, 많은 시인과 문학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철학서이면서, 동시에 반철학의 요소들을 전개한다고 본다. 니체의 서술에서 핵심이 되는 인물은 (그리스도에 대립하는)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의 행보에 대한 니체의 서술은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서술한 복음사가들을 닮아 있다. 묘하게 니체는 '안티크리스트'를 내세우면서도, 기독교인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전복적 신학이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저자는 니체가 택한 철학적 전복의 길을 우리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상상력의 힘으로 전환하면 좋겠다고 조언한다. 이것은 결코 우리 모두가 '니체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힌다. 앞서 언급한 〈서문〉을 통해 저자는 "철학이 이 시대와의 대결이라면, 우리는 니체 철학을 통해서 '현존의 부정'을 낳는 현시대의 야만을 고발하고, 어떻게 자신을 초극한 자로서 '위버멘쉬'*를 향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낙타는 사자가 되어야 하고, 사자는 자신의 힘을 극복함으로써 아이의 순수 긍정을 얻는다. 그런데 우리는 미처 사자가 되어 보기도 전에 낙타의 삶을 살아가다가 같은 낙타끼리 서로 혐오하면서 이 사막에서 고립되어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p.7)라며 제언하고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원한 감정이나 복수심이 어째서 우리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데 해악적인가에 관한 서술에서 오늘날에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문제가 된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혐오 감정을 배출하는 것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니체를 통해 말할 수 있는 것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회적 상황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지 못하고, 니체가 말하는 자기에 대한 자긍심을 갖지 못한 개인이 자신을 비참하고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면서 그러한 비참함의 원인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위버멘쉬(Ubermensch , overman) :

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터득시키고자 한다. 그것은 위버멘쉬요, 사람이라는 먹구름을 뚫고 내리치는 번갯불이다.(Za Ⅰ 머리말 7, 한글판 29:23-30:1 / 독일어판 17:5-17:6 / 영어판 20:32-20:34)

위버멘쉬 사유는 산에서 10년 간의 고독한 명상생활을 한 차라투스트라가,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인간에게 전해준 그의 첫 철학적 사유다. 여기서 위버멘쉬는 인간 자신과 세계를 긍정할 수 있는 존재로 제시되며, 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완성시키는 주인의 역할을 하는 존재로 기획된다.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위버멘쉬는 『차라투스트라』에서 힘에의 의지와 허무주의 그리고 영원회귀 사유와의 정합적 구도를 완성시키는 매개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이렇게 구성된 사유복합체만이 비로소 인간과 세계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라는 니체 철학의 목표를 달성시킨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제〉, 2004, 백승영)

 

 

이 책은 모두 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근대의 차라투스트라, 니체〉, 2장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읽기〉, 3장 〈철학의 이정표〉 등이다. 1장은 「니체의 생애」, 「니체는 어떤 사상가였는가?」, 「우리의 니체」로 나뉘어 있다. 2장엔 「우리의 세계에 대한 가르침」, 「낡은 도덕과 새로운 도덕」, 「새로운 서판을 위하여」, 「새로운 삶을 향하여」가, 3장엔 「뤼디커 자프란스키, 『니체』」, 「마르틴 하이데거, 『니체』」, 「질 들뢰즈, 『니체의 철학』」, 「알랭 바디우, 『알랭 바디우 세미나: 프리드리히 니체』」, 「작곡가로서의 니체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음악화」 등 6권의 니체와 관련된 서적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에 「생애 연보」와 「참고 문헌」도 첨부돼 있으니 니체의 삶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통해 철학적 사유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니체와 니첼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히고 있다. 또 니체는 음악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저자 한상원은 책 뒤에 「작곡가로서의 니체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음악화」를 통해 별도의 '니체와 음악을' 소개하기 위한 글을 마련해 썼지만 책 1장 앞머리에 음악가 이름을 거론한 것은 니체 철학에도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도 있지 않나 싶다. 독자의 철학적 지식이 낮아서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음악가들과 교류하고, 또 그의 철학서 내용을 후에 음악가들이 사용해 작곡하기도 했다.

저자는 니체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음악가로선 리하르트 바그너를 꼽고 있다. 동시대 인물이라 직접 바그너를 만나기도 했으며,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교류가 이어지기도 했다고 저자는 책에서 밝힌다. 그러나 니체는 바그너의 게르만 정신 예찬과 국가주의로부터 서서히 거리를 두면서, 오롯이 철학으로만 나아갔다고 한다. 특히 당시 독일 지성계와 사교계를 대표하는 여성 '루 살로메'에게 가깝게 지냈으나 포로포즈를 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져 이때의 상처로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어머니와 여동생의 사이가 나빠져 니체는 가정적으로 불안정했던 것이 그의 건강을 더욱 나빠지게 한 요인으로 판단되는 대목이다. 이후 니체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요양 생활을 하면서 철학에 더 시간을 많이 갖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니체는 기독교의 선과 악, 본질과 현상, 실체와 속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체계에 반대하면서,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긍정하는 철학을 제시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이러한 니체의 철학적 관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차라투스트라를 화자로 빌려온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리스도를 대신해 자신의 복음을 전파하고 군중들에게 삶의 새로운 가치를 천명하는 새로운 예언자이며, 이런 의미에서는 ‘안티크리스트’라고 불릴 수 있다. 이처럼 니체의 철학은 그리스도교에 대적했던 동방의 예언가 차라투스트라를 모델로 차용하여, 형이상학과 기독교 신학이 부정했던 우리의 현존을 긍정하고, 기존에 부정된 새로운 가치들의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니체를 ‘근대의 차라투스트라’라고 명명해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장의 제목이 〈근대의 차라투스트라, 니체〉가 된 이유다.

저자는 니체의 사상으로부터 우리 자신에게 눈을 돌려보기를 독자들에게 조언한다. 우리는 오늘날 신이 경멸받는 시대에, 오히려 신을 대체하는 새로운 우상에 빠져 살아갔던 것은 아닐까? 돈, 권력 또는 허울뿐이고 맹목적인 탐욕을 낳는 모든 것. 우리는 자기 극복의 삶, 창조적인 삶이 아니라 우상에 눈이 멀어 나와 주변 사람을 모두 슬프게 만드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저자의 질문은 평범하지만 니체 철학의 정수에 다가가기 위한 많은 질문들을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많은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고, 자본주의는 우리를 그러한 존재로, 니체의 용어대로라면 잘 길들여진 가축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2장의 제목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읽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니체는 강요된 낙타의 삶을 떨치고 사자가 되어보자고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 자신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 포효하는 사자가 되어보자는 것이다. 저항하는 삶, 노예이길 거부하는 삶 속에서 비로소 어린아이의 순수 긍정을 통해 위버멘쉬를 향해 이행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구체적인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보도록 하자고 했다는 점을 독자들은 깨달을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낙타-사자-어린아이의 이행 과정은 니체 자신의 의도를 넘어서는, 새롭고 적극적인 해석이 가미된 것이다. 니체에게서는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아이로의 이행이 사회적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의식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사유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랭 바디우의 말을 빌려, 니체의 철학이 혁명적 사건의 철학이 되려면, 우리는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할까. 저자는 OECD 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 속에서 산업재해와 정리 해고의 불안 속에서 낙타처럼 땀흘리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사자의 함성을 내지르고 동시에 어린아이의 긍정 속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우리는 니체를 넘어서는 니체의 독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은 그러한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 : 한상원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에서 마르크스의 물신주의와 이데올로기 개념 연구로 석사 학위를,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아도르노의 정치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아우구스티누스, 맑스, 벤야민. 역사철학과 세속화에 관한 성찰』과 『계몽의 변증법 함께 읽기』가 있으며, 역서로 『공동체의 이론들』(공역) 『아도르노, 사유의 모티브들』 『역사와 자유의식: 헤겔과 맑스의 자유의 변증법』이 있다. 『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흐름』 『근대 사회정치철학의 테제들』 『아도르노와의 만남』 『왜 지금 다시 마르크스인가』 『팬데믹 이후의 시민권을 상상하다』 등 여러 책을 공저했다. 현대 사회?정치철학의 여러 주제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 충북대학교 철학과에 재직 중이다.

 

기획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기 성찰과 실천적 모색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철학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1989년에 창립했다.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진보적 철학의 문제를 고민하며, 좁은 아카데미즘에 빠지지 않고 현실과 결합된 의미 있는 문제들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펴낸 책으로『아주 오래된 질문들』 『처음 읽는 한국 현대철학』 『망각과 기억의 변증법』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다시 쓰는 서양 근대철학사』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철학자의 서재』 『청춘의 고전』 『철학, 문화를 읽다』 『철학, 삶을 묻다』 『철학 대사전』 등 다수가 있으며, 매년 네 차례에 걸쳐 학술지 『시대와 철학』을 발간하며 대중 웹진인 《ⓔ시대와 철학》을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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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파라다이스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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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투 파라다이스』는 "진정한 파라다이스는 존엄과 존재를 고민하는 사람만이 찾아낼 수 있다"는 주제를 가진 문제적 대서사시로 주목받고 있다. 저자 한야 야나기하라가 이 소설을 구상하고 쓰기 시작한 시점은 팬데믹이 시작되기 훨씬 전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고 이 소설 작품은 디스토피아와 팬데믹 이야기를 잘 버무렸다는 평가를 받으면 세계의 출판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은 저자의 전작 『리틀 라이프』와 주제면에서 일맥상통해 시리즈물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대체 역사소설과 사실주의, 디스토피아를 넘나드는 스토리로 저자의 집필 의도가 한층 더 야심만만하고 확대된 느낌을 준다. 이 책이 미국에서 처음 발표된 후에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보그〉, 〈에스콰이어〉, 〈NPR〉, 〈굿리즈〉가 올해 최고의 책으로 꼽았다. 출판사 측은 오바마 전 대통령도 이 작품을 추전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소설 작품은 조지오웰의 『동물 농장』, 『1984』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에 팬데믹, 차별과 혐오, 성정체성, 국가의 규제와 개인의 자유 대립 등 전 세계를 뜨겁게 만든 이슈를 녹였다. 저자 한야 야나기하라는 등장인물들의 갈망과 그들이 놓인 상황을 통해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권력과 규율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더불어 앞으로 인류에게 닥칠 재앙은 어떤 형태일지, 우리는 우리를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한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막연하게 가슴에 품고 그리워했을 낙원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으며, 삶에 대해서도 깊게 고찰할 기회를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투 파라다이스』는 주로 뉴욕을 배경으로 한 게이 남성들의 이야기다. 전작과 주제가 비슷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저자 한야 야나기하라는 현재 미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제적 젊은 거장이라고 칭송되고 있으며 아시아계 미국 소설가이다. 저자는 이 소설을 3부작으로 구상해 집필했다고 알려졌다. 그 중 제1권으로서 『투 파라다이스1』에는 1부 〈워싱턴 스퀘어〉와 2부 〈리포-와오-나헬레〉로 나뉘어 담았다. 1부는 19세기 후반 가상의 미국 내 '독립국'인 '자유주'를 배경으로 헨리 제임스의 〈워싱턴 스퀘어〉*를 게이 남성 상속자 버전으로 다시 쓴 대체 역사소설이다. 2부는 그저 “그 병”이라고만 지칭되지만 에이즈(AIDS)가 분명한 신종병의 창궐로 인해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뉴욕 게이 남성들과 몰락한 하와이 왕조 후손의 비극적 삶을 그렸다. 이 소설은 책의 서두에 "이 이야기는 허구이며, 여기에 등장하는 이름, 인물, 장소, 사건들은 작가의 상상의 산물 또는 허구다. 생존 여부를 막론한 실제 인물이나 사건, 장소와 유사성이 있다면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다"고 밝힘으로써 오히려 사실을 소설화한 듯한 느낌을 준다. 20세기 후반의 미국의 현실 역사를 반영했다고 독자 입장에서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1권에 등장하는 두 곳의 세상은 시간 연속선상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모든 이야기에서 뉴욕 워싱턴 스퀘어의 저택이 주된 배경을 이룬다. 데이비드 빙엄, 찰스 그리피스, 에드워드 비숍 등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마치 거듭 환생이라도 하듯이 100년 후 세상에 거듭해서 등장한다. 이 등장인물들은 이름만 동일한 게 아니라, 손주에게 헌신적인 애정을 쏟는 권력자 할아버지,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 세상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부유하는 젊은이처럼 유형 또한 비슷하게 반복된다. 1부의 이야기가 2부에서 다시 언급되기도 하고, 같은 장면과 대사가 되풀이되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동일 구절 “To Paradise(낙원을 향하여)”로 마무리된다.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와 〈워싱턴 스퀘어〉 : 미국 소설가 겸 비평가로서 영어로 쓴 가장 뛰어난 소설 중의 하나로 평가받은 장편 『어떤 부인의 초상』등 그의 작품 대부분은 국제 문제를 다뤘다. 〈워싱턴 스퀘어〉도 그의 작품 중 하나로 1880년에 발표했다. 그밖에 자신의 작품 해설을 모은 『소설의 기교』는 소설 이론의 명저로 알려졌다.(두산백과)

 


 

제1부 〈워싱턴 스퀘어〉는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 1893년을 배경으로 한다. 노예 해방의 주역으로 칭송받던 링컨 대통령의 사후 약 30년쯤 된 미국 뉴욕에서 벌어지는 일이 소설의 중심 줄거리다. 주인공 데이비드 빙엄은 자유 미국의 창립자인 너대니얼 빙엄 손자다. 자유 주에서는 동성 결혼을 허용하고 백인 여성에게는 교육받을 권리와 투표권이 있지만 자유 주에서는 흑인의 시민권을 거부한다. 데이비드는 상인 찰스 그리피스를 소개받고 그와 결혼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데이비드는 자원 봉사를 다니는 곳에서 피아노 교사 에드워드 비숍을 알게 된다. 단박에 서로에게 매력을 느낀 두 사람은 빠르게 연애를 시작하지만 에드워드가 집으로 돌아가자 연애는 중단된다. 에드워드가 부재하는 동안 데이비드는 찰스의 구애를 받아 그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에드워드가 돌아와 데이비드에게 신분 차이를 넘어선 우리 둘의 사랑을 인정해줄 캘리포니아로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데이비드는 할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고백한다. 그의 할아버지 너대니얼 빙엄은 에드워드가 부유한 남자를 유혹하는 사기꾼이자 도둑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는 가족에게 등을 돌리기로 결심하고 낙원을 향하겠다고 결심한다.

제2부〈리포-와오-나헬레〉는 1부의 100년 뒤 1993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등장 인물의 이름이 겹치기는 하지만 제1부와는 전혀 다른 존재인 데이비드 빙엄은 하와이 왕족의 후손인 25세 법률 보조원이다. 자신의 유산을 버리고 부유한 나이든 변호사인 찰스 그리피스와 함께 뉴욕에 살고 있다. 두 사람은 HIV/AIDS 전염병에 크게 영향 받았으며 찰스는 휴면 보균자이고 그의 친구들 중 많은 수가 사망했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유산을 찰스에게 비밀로 한다. 또한, 요양원에 갇힌 데이비드의 아버지는 무너진 왕조의 상속자다. 그는 외로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의 친구 에드워드가 하와이 독립 운동에 참여하도록 그를 격려했던 방법을 회상한다. 에드워드의 격려를 받은 나이든 데이비드는 결국 할아버지를 통해 소유한 쓸모없는 땅인 리포-와오-나헬레로 거주지를 옮긴다. 하지만 그들은 땅을 개발할 수도 없고 추종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도 없다.

 


 

가상의 유토피아 국가 자유주에서 현실의 1990년대를 거쳐 미래의 디스토피아로 불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세계들이 그 자체로 역사의 퇴보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10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과 명백히 다른 사회적 체제에도 불구하고 유사하게 반복되는 상황과 설정들을 통해 저자 야나기하라는 "현실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자유는 환영 같은 희망일 뿐"이라는 어두운 암시를 던진다. 그리고 그 암시 속에서 각 이야기를 끝맺는 “낙원”을 향한 결의는 역사적 진보의 함의를 벗어던지고 미망, 모순, 아이러니로 점철된 소망으로 그려진다.

1부의 주인공 데이비드는 자신을 감출 필요 없이 살 수 있는 안전한 유토피아를 버리고 신뢰할 수 없는 연인과 함께 알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는 “서부(낙원)”으로 가서 자유와 독립을 찾겠다고 다짐한다. 2부 후반의 주인공 데이비드는 하와이 왕국을 복원해 ‘타락(식민주의) 이전의 낙원’으로 돌아가겠다는 실체 없는 꿈을 좇아 인생을 허비한 끝에 죽음의 침상에서야 “뉴욕(낙원)”으로 가서 아들 데이비드와 화해하려는 환상에 빠진다.

낙원을 향한 그들의 여정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상의 유토피아에서 위험한 현실로, 식민지 하와이에서 제국인 미국으로, 신세계 미국에서 구세계 영국으로 향하는 뒤집힌 여정이라는 것 또한 현실 진보의 방향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 같은 세 개의 이야기 줄거리가 모두 열린 결말로 끝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자들이 결말 이후 주인공들의 운명을 어떤 쪽으로 상상하건 간에, 그 대답은 현실 속 낙원과 자유에 대한 각각의 견해와 무관할 수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늘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밤, 어두워지고 이곳이 온통 조용해지면 나는 일어나 정원을 다시 찾아 나갈 거고, 이번에는 뒷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갈 거야.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새카만 나무들이 벌써 보여. 주위에 가득한 생강 냄새가 벌써 나는 것 같아. 저들의 생각은 틀렸어. 아직 너무 늦지 않았어, 늦지 않았어, 결국 늦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걷기 시작할 거야. 어머니 집이 아니라, 리포-와오-나헬레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네가 가 있길 바라는 그곳을 향해서. 난 멈추지 않을 테고, 쉴 필요도 없을 거야. 거기, 네가 있는 곳에 다다를 때까지, 낙원을 향하여."(p.529)

 


 

하와이는 미국의 50번째 주로 인구 약 150만 명(2013년 현재)의 제도(諸島)이다. 이 소설에는 뉴욕과 미국의 서부, 하와이 등 3곳의 구체적 명칭이 나온다. 모두 신세계-구세계, 유토피아-디스토피아, 번영-타락의 상징이 되는 곳이다. 이 영욕의 결과를 시대적으로 열거한다면 반대의 개념에 더 합당할지도 모르는, 짧은 시간(특히 소설 속 100년)에 큰 변화를 겪은 곳이다. 뉴욕은 모두가 아다시피 신세계 미국이 태동하고 번영을 지속해온 곳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기까지 독립 이후 100년 동안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온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수많은 역경에 부딪치고 극복하는 동안 많은 타락(부패와 욕망)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 미국의 서부는 미국이 동부 13개 주를 발판으로 독립 이후 수많은 외적과 맞서 싸우면서 북아메리카 전역을 차지하려는 욕망이 실현된 곳이 '서부' 개척이다. 당시 미국인들에게는 신세계이고 돈과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토피아이기도 했던 곳이다. 미국의 개척 정신을 포론티어십으로 묶어 역사적 헌신의 결과로 정부가 미화한 점을 뺀다면 말이다. 선주민(원주민)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 멕시코인들의 피난 등으로 점철된 개척의 역사가 오늘의 미국을 만드는 데 짙게 배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서 오늘날 가장 아프게 겪고 있는 사회문제인 '총기 소지'도 이때 개척자들에게 자위권 차원에서 허가된 무기여서 이로 말미암은 오늘날 미국이 겪는 사회적 고통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와이 역시 미국의 마지막 50번째 주로 편입된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폴리네시아계 민족이 하와이에 이주한 것은 5세기경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 뒤 오랫동안 부족간의 싸움이 뒤를 이었으나 1782년에 카메하메하 1세(1739∼89)가 섬 전체의 통일에 성공한 후 1893년까지 왕조가 지속되었다. 그 후 하와이는 미국과 극동을 잇는 태평양상의 통상·포경(捕鯨) 기류지가 되었으며, 그 동안에 미국인을 주로 한 외국인 거류자도 점차 늘고, 1840년에는 뉴잉글랜드 선교사들의 포교와 그 영향에 의해 최초의 헌법이 발포되었다. 1840년대에 영국·프랑스 및 현지 미국인과의 사이에 그 귀속권을 둘러싼 분쟁이 있었으나 결국 독립이 유지되었으며, 1887년에는 미국과의 호혜통상조약에 의해 펄하버(진주만)의 미국 해군기지 사용권을 인정하였다. 19세기 후반에 사탕수수·파인애플 재배에 성공하여 제당업이 번창하자 아시아인을 포함한 외국이민이 증가하였다. 1897년에 매킨리 미국 대통령에 의해 합병조약이 체결되어 다음해에 미국의 주권하에 놓이게 되고, 1900년에 준주(準州)가 되었다. 미국령이 된 뒤 사탕수수와 파인애플의 재배가 한층 촉진되어 인구가 증가하고, 펄하버를 중심으로 한 기지의 강화도 추진되었다. 1941년 12월 8일에 일본군에 의해 펄하버가 기습공격을 당했고, 그것을 계기로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주(州) 승격운동이 성해지면서 1959년 8월 21일에 알래스카에 이어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다.(두산백과)

 

 

"그가 떠나온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건 다른 사람의 천국이지, 그의 천국은 아니었다. 그의 천국은 다른 곳에 있지만, 그의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은 그가 찾아야 한다. 사실 그게 바로 그가 평생 배웠던 바, 희망하라고 배운 바 아닌가? 이제 찾을 때가 되었다. 이제 용감해질 때가 되었다. 이제 그는 혼자서 가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무거운 가방을 손에 든 채 이곳에 잠시 서 있다가 심호흡을 한 뒤 첫발을 내디딜 것이다. 그의 첫 발걸음을. 새로운 인생을 향하여, 낙원을 향하여."(p.267)

 

저자 : 한야 야나기하라(Hanya Yanagihara)

 

미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제적 젊은 거장. 아시아계 미국 소설가로, 197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스미스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뉴욕으로 건너와 ‘빈티지북스’ 출판사와 유명 여행 잡지 《콘데나스트 트래블러》와 《T: 뉴욕타임스 스타일 매거진》에서 일하면서 소설을 썼다. 첫 장편 《숲 속의 사람들(People in the Trees)》(2013)로 뛰어난 데뷔소설에 주어지는 ‘펜/로버트 W. 빙햄’ 상 최종후보에 올랐고, 2015년 두 번째 장편 《리틀 라이프(A Little Life)》로 독자와 평단 모두에서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1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예측할 수 없는 서사와 무서운 흡인력으로 독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다, 부커상과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까지 올라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작품도 화제가 되었다. 부커상 후보작 중 유례없는 독자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으며,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소설의 힘과 소재의 선정성으로 인해 뜨거운 논쟁작이 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NPR 등 25개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걸작’이라는 단어는 이 소설을 위한 것이다”라는 극찬을 받으며 커커스 문학상을 받았다.

 

역자 : 권진아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근대 유토피아 픽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조지 오웰의 『1984년』, 『동물농장』,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어라』, 『헤밍웨이의 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 요법』, 『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 『에드거 앨런 포 전집』,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공역)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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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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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읽으며 독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생각했다. 많은 부분이 닮았지만 많은 부분이 다르다는 생각도 했다. 두 저자 모두 자연을 예찬하고 그 속에서의 삶을 찬양한 미국인이다. 『월든』의 소로(1817~1862)가 130년 가량 앞선 시대의 사람이고 배리 로페즈(1945~2020)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 태어났다. 다른 점이라면 소로의 시대엔 미국이 아직 세계사의 중심에 서 있지 못한 시절이고, 로페즈는 그야말로 미국이 세계 최강국의 위치를 굳힐 무렵 출생했다. 독자가 두 저자의 책을 모두 읽었지만 자연을 예찬하고 사랑하는 모습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소로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자연주의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맑고 명징하다. 로페즈는 자연과 장소, 인간과 풍경에 대한 탁월한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우리 시대 최고의 자연 작가”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평생을 자연을 찾아다니며 보냈다. 자연을 찾아다니며 즐겼다는 의미가 아니다. 거의 탐험과 모험에 가까운 자연을 찾아다니며 자연과 대화를 하면서 평생을 보냈다. 다른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그가 자연을 만나는 장소다.

로페즈는 이 장소에서 자연과의 대화한 내용을 글로써 표현해 냈다. 이 책이 그가 남긴 마지막 에세이 모음집이다. 이 책은 로페즈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편집했던 문학적 유산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2022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출간되기 전부터 영어권의 여러 문학잡지에서 기대작으로 손꼽혔으며, 출간 직후에는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베스트 1위에 올랐고, 같은 해 〈뉴욕 타임스〉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책에는 여행 중 마주한 다양한 풍광에 대한 경이로운 기록을 비롯해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담담한 회고록, 부서져가는 세상에 보내는 간곡한 전언 등 에세이라는 장르로 아우를 수 있는 스물여섯 편의 글이 유려하게 편집되어 담겼다. 특히 리베카 솔닛의 〈서문〉은 로페즈가 얼마나 섬세하고 묵묵한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며 깊고 지혜로운 글을 썼는지 전해준다. 솔닛의 안내를 받아 이 책에 실린 한 편 한 편의 글들을 읽어나가는 사이, 우리는 삶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온전히 받아들여 더 넓고 그윽한 시선으로 자연과 인간의 세계를 바라보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리베카 솔닛은 「성배를 찾는 여정」이라는 제목의 〈서문〉을 통해 "자연 세계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장소와 그 안의 생물들로부터 영양과 돌봄과 보호를 받은 기억, 신체적·윤리적·정서적·창의적·정신적 측면에서 중요한 비인간 세계와 교감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 세계가 객관적으로-기후 재앙과 멸종과 착취로-위협받는 동시에 인간의 서식지가 도심의 실내로 옮겨갈수록 우리 의식에서 사라져가는 상황을 자주 이야기해왔고, 그 일이 과연 무엇의 상실인지도 이야기하려고 노력해왔다."(p.12)고 밝힌다. 이에 따라 솔닛은 자연과 글을 대하는 로페즈의 태도를 설명한다. “그는 마치 신에게 다가가는 사제처럼 사라져가는 진귀하고 머나먼 현상과 접촉하고 그것을 나누고자 노력했으며, 이 현상들과 나눈 교감을 작가로서 우리를 위한 교감이자 우리와 나누는 교감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의 글 안에서 고독은 연결로 바뀌고 깨져나간 조각은 다시 하나로 붙는다.” 솔닛의 문장은 로페즈가 인간과 자연이 연결되어 있음을 부단히 의식하며 글을 써나갔음을, 독자들로 하여금 연결의 의식을 일깨워 각자의 고독을 걷어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음을 환기한다. 그의 문장들이 멋 부리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런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와 연대에 대한 신념에서 배어나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솔닛은 이어 로페즈가 청중 앞에서 강연할 때 의도적으로 성직자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을 더러 느꼈다고 말한다. 솔닛은 그런 태도는 공식 석상에서 내보이게 되는 일종의 격식이겠지만, 한편으로 회중을 어떤 초월성이나 내재성으로 인도하는 사제처럼 우리를 인도하려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고 회고한다. 책에 따르면 로페즈는 윤리적 입장을 견지하며 원칙을 언명하기를 서슴지 않았고, 허다한 미국 백인 작가들을 미혹했던 중립성이라는 허상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이런 독실한 태도는 그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뉴욕으로 이주해 학대범에게서 벗어나게 된 시기에 예수회 사립학교에 다니게 된 로페즈에게는 예수회의 분위기랄지 사제의 느낌이 짙게 남아 있었다. 결국 그 길을 가진 않았고 가톨릭교회에서 차츰 멀어졌다. 솔닛은 로페즈의 기도하는 삶에 관한 말을 전한다. "가톨릭의 관습과 멀어진 지 오래지만 여행자로 살면서도 나는 여하튼 기도하는 삶이라는 중심축에 계속 의지했다. 신의 존재 앞에 부단히 경건하게 임하는 것을 나는 넓은 의미의 기도로 받아들였다. 그 정수 안에 깃들고자 매일 노력하는 것이 기도였다."

 

 

솔닛은 저자 로페즈가 평소 뜻을 함께하는 동지이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로페즈의 에세이 모음집을 발간하며 책의 〈서문〉을 쓴 것도 그와의 평소 관계를 말해 주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솔닛은 "그의 (이런 진지한 태도에서 나오는) 글은 사후에 가는 천국이 아니라 현세의 여러 장소와 현상에서 신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음을 기쁘게 선포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에세이는 사막에서 남극에 이르는 풍요로움에 대한 예찬이자 그것의 훼손에 대한 경고다."고 솔닛은 주장한다. 이와 함께 로페즈의 삶은 평생 성배를 찾아다니는 여정이었으며 찾는 일 자체가 성배인 삶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로페즈에게는 무언가를 찾아 길을 나서는 여행이 곧 성배이고, 그 무언가는 자신의 바깥에 놓인 어떤 것이다"라는 설명이다.

솔닛은 로페즈가 평생 여행하며 찾아낸 것을 하나씩 언급하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로페즈가 간구했던 것은 '성배'이자 자연'이라는 주장이다. 눈보라 속의 사향소, 남극 빙하 밑에서 물결치는 해조류, 또는 백인이 발 들이기 훨씬 이전에 사막에 그려진 종마의 형상이거나 그의 집 앞 매켄지 강변으로 매해 가을 산란하러 오는 연어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의 글과 이 우주론 안에서 성배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란 이런 장소로의 여행일 뿐 아니라 도착 이후의 정적과 인내이기도 하다는 말은 독자에게는 신선하면서도 신비로운, 여정이라고 이해된다.

또 그의 글은 서두르지 않는, 옛 방식의 느릿한 속도를 간직한 순전한 유유함이라고 솔닛은 강조한다. 동물이 나타나기를 몇 시간씩 기다릴 때나 한 장소를 여러 상황에서 알고자 되풀이해 찾아갈 때나, 이 느림은 무언가를 알아가는 데 드는 품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채근하고 몰아치며 산란한 우리 시대를 거스르는 저항의 행위라고 솔닛은 설명한다. 이렇게 로페즈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낌없이 스스로 갑을 치르고, 자기가 배운 것들을 기록해나갔다. 그가 타인들에게도 주의를 기울이라고 강권한 이유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하고 복잡한 생명의 그물망에 빚진 처지인 우리가 이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은 아니엇다. 그보다는 주의를 기울일 때 돌아오는 각성과 방향감과 유대감과 통찰 때문이었다는 솔닛의 평가가 설득력을 얻는다.

 


 

자연 세계의 독보적인 관찰자였던 저자 로페즈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들, 즉 자연을 대하는 행동과 자연에 대한 묘사는 한없이 깊다. 가령 「지리적 친밀감」이나 「서부에서」, 「경계에서」, 「남반구 항해」, 「냉철하게 바라본 우리 연약한 행성」 등의 글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그는 매체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떠나서 발로 땅을 딛고 심해에 몸을 담그고 눈구덩이를 파며 '장소'에 머무른다. 장소에 쌓인 자연의 시간을 탐구하고, 그 장소에 생명을 부여하는 동물과 식물의 움직임에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장소에 뿌리내린 사람들의 경험을 경청한다. 머무른 시간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질문하고 배우고 의심한 것을 글로 적는다. 그렇게 나온 글들은 젠체하는 거리감이나 중립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장소에 온전히 포개어져 장소와 대상의 시선으로 독자인 우리를 바라본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자연 작가로서의 배리 로페즈를 충분히 만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작가 자신의 내밀한 상처를 고백한 회고록의 성격을 띠고 있는 글들도 마주할 수 있다. 로페즈는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더 정확하게는 어린 시절에 50대 성인 남성에게 당했던 성적 학대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성적 학대를 겪은 사람과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누군가와 연대하기 위해서, 마음을 터놓기 위해서였다.” 책의 〈서문〉을 쓴 솔닛과의 관계가 이때쯤 형성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게 독자의 추정이다. 독자로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 만한 어떤 단서도 알지 못하기에 막연한 추정이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리베카 솔닛이 평생 역사가로서, 여권운동가로서, 비평가로서 환경, 반핵, 인권 방면으로 다양한 현장운동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추측한 말이다. 또 이 책에 실린 「하늘 한 조각」에서처럼 그는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글로 쓰면서 개인적인 경험을 함께 사유해야 할 문제로 바꾸어내고, 우리를 타인의 악몽을 이해하는 길로 안내한다는 솔닛의 〈서문〉을 쓴 일도 관련돼 있을 것이란 독자의 짐작이다. 솔닛은 자연 예찬이나 장소에 대한 에세이뿐만 아니라 책 중간중간에 끼여 있는 회고록 성격의 글에서도 자연의 역할은 휘발되지 않는다. 「무섭도록 풍부한 물」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는 안식처도 없고 기댈 곳도 없는 절망적인 처지였을 때 자연 세계만이 자신의 안식처이자 기댈 곳이 되어주었다고 밝히며, 빛과 공간과 물의 세계를 하나하나 온몸 가득히 담는다.

 


 

이 책에서 로페즈는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 보낸 감동적이고 때때로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 이야기, 육지 동물과 해양 생물을 연구하기 위해 떠났던 탐험의 후기, 남극을 비롯해 지구상의 여러 특별한 장소를 찾아갔던 여행에 대한 추억, 광활하고 극적인 풍경 속에서 자신을 돌이켜보았던 명상의 시간 등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기억들을 눈부신 문장들로 풀어놓았다. 자연을 바라보는 눈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몸소 가르쳐준 선주민 원로들과 과학자들, 작가들에 대해 놓치지 않고 돌아본다. 나아가 저자는 불타는 듯한 솔직한 문장들로 살아 있는 모두가 저마다 얼마나 큰 상처를 겪었는지, 그런 모두의 삶이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공감 어린 목소리의 글들은 독자들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기에도 충분하다.

8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얻은 깨달음을 독자들과 나누는 일을 이 책에서도 잊지 않는다. 「위기의 시대가 닥친 지금, 우리는」이나 「서부에서」 등의 글에서는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라고 분명하게 질문하며, “진보의 결실”이라고 말해지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단호하게 평가한다. 그러나 그는 이 우려스러운 사태를 비평가의 어조로 날카롭게 고발하지도, 가차 없이 비판하지도, 섣부르게 평가하지도 않는다. 자연을 사랑하고 예찬하는 작가로서의 탄탄한 몸과 마음의 수행 탓이 아닐까 생각되는 대목이다. 로페즈는 주의 깊고 서정적인 목소리로 우리의 고통은 우리가 사랑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권력을 쥐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멸종과 인종 청소와 해수면 상승의 시대에 순응하기보다 윌슨의 생명 사랑을 일상의 대화로 가져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절망 속에서 죽기보다 앞에 놓인 가능성을 위해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p.254) 그러므로 그의 글들은 인간과 지구가 생존하기 위해 당장 고민과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호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랑을 길러나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회고록이자 탐험에 대한 보고서이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이 책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세계를 조금은 다른 방식, 사랑과 연대의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 그가 자연에서 마지막 생을 살고, 자연으로 떠나면서 우리에게 남긴 선물이다. 경쟁과 파괴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세계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자연과 아직 남아 있는 사랑을 가슴 깊이 의식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오후 태양을 받은 강의 수면이 빙글빙글 회전하는 금속판처럼 반짝일 때, 나는 그 눈부심에 두 눈을 감고 생각한다. 언젠가 나도 저 한복판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으리라.(p.367)

 

저자 : 배리 로페즈(Barry Lopez)

 

1945년 미국 뉴욕주 포트체스터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 샌퍼낸도밸리와 뉴욕시 맨해튼에서 성장했다. 1966년 노터데임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1968년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대부터 땅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정체성 등의 문제를 다룬 픽션 및 논픽션 작품들을 발표하는 한편, 다른 작가들이나 사진작가, 화가, 음악가, 극작가, 환경 운동가, 과학자 등과의 공동 작업을 왕성하게 모색했다. 1970년 매킨지강과 숲의 풍광에 반해 오리건주 핀록 지역에 정착했다. 1978년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한 『늑대와 인간에 대하여』로 미국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1986년에는 역시 오랜 현장 조사를 거쳐 쓴 『북극을 꿈꾸다』로 미국도서상을 수상했다. 55년이 넘는 세월 동안 80여 개 나라를 여행하면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펴낸 그는 2020년 75세의 나이에 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배리 로페즈의 원고와 메모, 현장 기록 등은 텍사스 공과대학교에 보관되어 있다. 저서로 이 책 이외에 『북극을 꿈꾸다』 『호라이즌』 『늑대와 인간에 대하여』 『황야 건너기』 『북아메리카의 재발견』 『강의 기록』 『사막의 기록』 『저항』 『울버린의 교훈』 『현장 기록』 『까마귀와 족제비』 『변명』 『이번 생에 대하여』 등이 있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배리 로페즈 사후에 출간된 그의 마지막 에세이 모음집으로, 그가 다녀왔던 장소들과 스스로 실천해온 사랑의 정신을 담담하고 아름답게 보여준다. 더불어 로페즈 자신이 ‘공포시대’라고 부르는 우리 시대에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명료한 실천 방법을 제시한다.

 

역자 : 이승민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영화와 문학 학제간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자기의 ‘고유한 자아’를 너무도 잘 인식하는 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다. 덕분에 유아기부터 아동기까지 양육의 갖가지 문제를 다루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방대하고 다양한 육아서적을 섭렵했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 큰 배움은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순간에 얻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직설법과 상상력이 교차하는 에세이를 즐겁게 읽고 힘들게 옮긴다. 옮긴 책으로 『뉴욕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지킬의 정원』,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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