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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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을 볼 때마다 우리 시인 박인환이 떠오른다. 그의 시 〈목마와 숙녀〉에 '버지니아 울프'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박인환은 우리나라 모더니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에서 언급되는 버지니아 울프를 동경했던 것 같다. 독자는 고등학교 시절 시인 박인환을 교과서를 통해 처음 알았고, 그의 시를 즐겨 읽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 후 폐허의 서울 명동에서 문우 등 예술인들과 교유하며 대한민국의 가장 비참했던 시절의 생활을 견뎌낸 시인이어서 기억이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그것보다는 그의 또 다른 시 〈세월이 가면〉은 곡까지 붙여 뒤에 한국인이 사랑하는 노래에 뽑힌 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중략)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하략) - 〈목마와 숙녀〉 일부

 


 

〈목마와 숙녀〉 싯구처럼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시인이 직접 밝히지 않는 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독자가 알기에는 숙녀와 버지니아 울프는 관련이 없을 것으로 이해한다. 다만 시 발표 후에 문학평론가들이 싯구의 문맥상 다른 인물로 추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목마와 숙녀〉를 몇 번이고 읽어 보면 시의 분위기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나 작품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이 책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은 버지니아 울프의 13편의 작품에 대한 설명 및 해석, 마음 깊이 기억할 212개의 문장을 소개한다. 저자 박예진은 풍부한 인문학적 해석과 함께 20세기 대표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의 작품을 한 권의 책에 엮어냈다. 후대에도 꾸준히 회자되는 버지니아의 명문장을 영원히 소유함으로써, 우리는 삶의 힘이 되는 그의 문장들로 우리 삶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바탕으로, 버지니아는 그의 명료한 생각과 아름다운 상상을 글로 그대로 옮겨냈다. 저자 박예진은 울프의 작품 『자기만의 방』에서는 언제든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우리 모두를 돌아보게 할 수 있고, 『등대』를 통해서 변화와 성장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기도 한다.

울프는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은 유복하게 자랐지만 정신질환은 그를 불행의 늪으로 빠뜨린다. 더욱이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고 하니 정신적 충격에 의한 것이라는 짐작이 일반적이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 증세를 보임으로써 마지막 가늘 길에도 유서에 이를 남겼다. 이 책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은 〈프롤로그〉에서 그가 남편에게 쓴 마지막 편지 내용을 알림으로써 시작한다.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껴요.

우리는 그 끔찍한 일을 다시 겪을 수 없어요.

그리고 이번은 회복될 수 없을 거예요."(p.14) - 유서 일부(전문은 p.205~206에 수록돼 있음)

 


 

정신질환이 다시 도짐으로써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절반이다. 또 나머지 절반은 남편에 대한 사랑에 감사함과 당신이 만들어준 삶의 모든 행복을 빚졌다는 말을 남겼다. 간결하고 명징해 독자로서 오히려 당혹스러울 정도다. 이 정도의 글을 쓸 능력이 있다면 정신질환이 심해진 상태라고 볼 수 없지 않을까? 하는 독자의 미욱한 판단이겠지만. 버지니아는 사실 결혼 전부터 신문에 평론과 에세이를 꾸준히 기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훗날 페미니즘의 교과서라 불리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강연을 바탕으로 집필한 에세이 〈자기만의 방〉이다.

저자 박예진에 따르면 한때 버지니아는 작품보다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로 더욱 유명한 작가였다. 그래서 그를 둘러싸고 예민하고 우울한 얼굴을 가진 작가라는 편견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죽음의 요인이 무엇이든 간에, 그가 쓴 작품들은 수많은 이이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바이올렛 디킨슨에게 남긴 편지는 희망과 자신감이 가득차 있었다.

"불행해질지도 모르지만 행복해질지도 몰라요. 수다쟁이 감상주의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책 속의 글자 하나와 나를 활활 타오르게 할 그런 작가가 될지도 몰라요."

저자는 버지니아의 작품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작가로서의 재능에 감탄했다고 털어놓는다. 난해하다고 인식되는 '의식의 흐름' 기법조차 버지니아 특유의 명쾌함과 예리함을 가릴 수는 없었으니까. 특히 버지니아만의 개성이 선명히 드러나는 에세이를 읽을 때면, 저자는 종종 그의 문장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 노트에 적어 놓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노트를 채우고 이 책이 탄생한 것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 책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유명 작가, 버지니아의 문장들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그의 글 속에는 여러 차례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물상, 자연현상의 의식적 표현 등 버지니아의 글은 때로 난해하게 읽히기도 해 종종 독자들에게 좌절감을 주기도 하니까요."(p.17)

 


 

이 책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은 모두 4부(PART)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다〉, 2부 〈어떻게 살 것인가, 의식의 흐름에 몰입하다〉, 3부 〈초월적인 존재를 사랑하게 되다〉, 4부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등이다. 각 부에는 3개의 장(章)으로 나뉘어 있으며 1부에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A Room of One’s Own」,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목소리-Three Guineas3기니」, 「내면의 목소리를 찾기 위한 여행-The Voyage Out」이다. 각각 작품 「자기만의 방」, 「3기니」, 「출항」에 들어 있는 문장들을 뽑아 설명하고 있다. 2부에는 「시공간을 초월한 의식의 흐름-The Mark on the Wall」, 「결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Night and Day」, 「인생에서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Jacob’s Room」로서 작품 「벽에 난 자국」, 「밤과 낮」, 「제이콥의 방」에서의 문장을 뽑아 영문과 함께 번역문으로 나란히 두고 작품의 해석을 곁들인다. 3부는 「개의 공간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Flush」, 「남성과 여성이라는 분리를 넘어서-Orlando」, 「삶과 연극은 어떻게 다른가-Between the Acts」라는 제목으로 작품 「플러시」, 「올랜도」, 「막간」을 비교 설명한다. 마지막 4부에는 「내면의 흐름에 따른 스토리 미학-To the Lighthouse」, 「영혼의 움직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The Waves」, 「생의 유한함과 영속성 사이에서-The Years」으로 작품 「등대로」, 「파도」, 「세월」에서 저자 박예진이 좋아하는 문장을 뽑고 읽으면서 남긴 메모나 주석 등을 달아 책으로 펴냈다.

버지니아는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해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는다. 소설가로서 버지니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또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버지니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고 문학평론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저자 박예진은 이 책을 통해 의식의 저편 너머로 버지니아의 문장을 읽어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유하고 있다.. 그의 생애를 아우르는 문장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버지니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출 때, 우리는 드디어 자아를 돌보고 자립과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우울이나 어둠의 정서로만 비춰졌던 오해의 그늘을 벗어나 페미니즘, 여성 퀴어 등 시대를 앞선 주제의식을 포함해 다정함, 따듯한 사랑, 유머와 위트, 그리고 인간의 '마음의 비행'을 끝없이 추적하는 버지니아 열정에 놀라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책의 뒷 부분에 있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란 제목의 〈부록〉을 통해 『버지니아의 일기』 일부를 소개한다. 이 일기는 버지니아가 26세였던 1915년부터 53세가 되기까지 썼던 일기 중에서 버지니아의 문필생활과 관련된 부분만을 그의 남편 레너드 울프가 엮어낸 것을 이 책에 소개했다. 저자 박예진은 "일기에 그려진 버지니아는 감정 기복도 심하고 자주 아팠던 사람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도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초조하거나 비참한 기분일 때 주로 일기를 썼기 때문에 그의 벙든 측면이 더 부각된 것인지도 모른다며 조심스럽게 밝힌다. 저자는 "주로 본인이 겪었던 일,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 인생이나 우주에 대한 고찰, 그리고 어떻게 글을 구상하고 쓸 것인지를 정리한 것들"이라며 "버지니아는 글의 결말까지 빠르게 써 내려간 다음,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고쳐 쓰는 식으로 글을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인다. 작품 해설에서 한마디로 책과 울프를 정리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영문학의 거장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번에 출간된 울프의 단편 모음은 깔끔하고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을 울프의 작품세계로 안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는 문장의 소개에서 계속해서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던 덕분인지 그는 『등대로』를 쓰면서는 "평생을 통해 가장 빠르고 가장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으며 이것은 내가 제 길에 들어섰다는 증거이다"라는 내용을 일기에 찾아내 소개한다. 또 자기 확신이 생긴 버지니아가 『제이콥의 방』을 대하는 태도는 인상적이라고도 말한다. 버지니아는 마음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무엇인가 말하는 방법을 나이 마흔이 되어 찾아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외친다는 부분을 소개하기도 한다.

 


 

울프는 영국에서 나고 살았지만 '하버드 대학생이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BBC에서 뽑은 위대한 영국소설 25편 중 세 편을 싹쓸이한 유일한 작가라고도 소개된다.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 선정 인류의 필독서,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순위 TOP100에 언제나 올라 있는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라고 소개된 책도 있다. 이처럼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버지니아 울프는 독자들의 사랑과 놀라운 기록을 한몸에 몰고 다니는 주인공이었다. 이유는 이 책을 읽는다면 금세 알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 :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여성들의 적극적인 예술 활동 참여, 동성애자들의 권리, 전쟁 반대 등 빅토리아시대의 관행과 가치관을 공공연히 거부하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을 앓았다.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출항』, 『밤과 낮』, 『제이콥의 방』, 『댈러웨이 부인』, 『파도』,『현대소설론』 등과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속편 『3기니』 등이 있다. 1927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등대로』를 발표하며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올랜도』, 『물결』, 『세월』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왔던 울프는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신 질환의 재발을 우려하여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편역 : 박예진

 

북 큐레이터, 고전문학 번역가. 박예진은 고전문학의 아름다운 파동을 느끼게 만드는 고전문학 번역가이자 작가이다. 또한, 문학의 원문을 직접 읽으며 꽃을 따오듯 아름다운 문장들을 수집하는 북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문체의 미학과 표현의 풍부함이 담긴 수많은 원문 문장들을 인문학적 해석과 함께 소개해 독자들이 영감을 받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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