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삶을 사랑할 수 있는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한상원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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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철학을 공부하지 못한 이유로 철학자의 이름도 제대로 모른다. 그러나 대학 공부 이전에 배웠던 교과서에 나온 이름은 어느 정도 알고는 있다. 그렇다고 이름이 그의 철학을 이야기해주지 않기 때문에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그가 철학자로서 남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이 있다. 이름과 저서명은 아는 셈이다. 그리고 최근,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나온 각종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니체'란 것은 독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남겨 대단한 독설가이자 기독교 사회인 유럽에서 그다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가 왜 전 세계가 팬데믹의 공포에 휩싸인 시점부터 그의 이름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니체가 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자주 언급되어 왔다고 니체를 연구하는 학자나 후배 철학자들은 말한다. 니체의 철학은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의 저자 한상원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 철학이 던진 근본적인 물음은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라고 말한다. 니체의 철학적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말년의 저작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은, 서구 정신이 천착해온 과정을 전복하고 해체하는 일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는 곧 서양철학의 정수라고 하는 형이상학을 극복하는 작업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런데, 이 형이상학은 기독교의 신 개념과 접목돼 있었고, 형이상학과 신학은 모두 현존을 부정하는 관점이라는 점에서 우리 자신의 현재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니체와 그의 철학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저자는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형이상학 및 신학과 대결해 온 점에 니체는 주목했다고 밝힌다. 이 대결은 결국 곧 “현재 나의 삶을 사랑할 수 있는가” “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다름아니다. 니체 철학의 정곡을 찌르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니체의 주저이자 고전문학에 반열에 오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소개·해석하면서, 철학함이란 구체적으로 특정 사상가의 철학 내용을 내 삶의 구체적 현실 속에 적용해 봄으로써 나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는 계기를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한다고 집필 취지를 밝히고 있다. 저자는 책의 〈서문〉을 통해 니체의 저서와 철학을 ‘기독교냐 아니냐’ ‘반철학이냐 아니냐’라는 해석에서 그치지 않고, ‘나의 삶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방향의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고 강조한다. 그 점이 우리가 니체를 수용하는 더 바람직한 길이 아닐까라며 의문부호로 말을 맺지만 독자에게는 살아 있는 철학에 이르는 길이라고 읽힌다. 독자는 니체에 문외한이라고 밝힌 점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 이 책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태도라고 믿고 싶어서다. 사전 편견이나 오해 등 잘못된 믿음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물론 니체에 대해 사실 아는 것이 없기도 하다. 표제어 중 '차라투스트라'가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의 독일 이름이란 사실도 이제서야 알았다. 고등학교 때 '조로아스터교' '배화교' 등으로 배운 종교 말이다. 그런데 막상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종교와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산 속에 숨어 살던 차라투스트라가 "신은 죽었다"고 하는 깨달음을 얻고 산을 내려와 여행하면서 가르침을 전하는 모습을 그린 철학적 서사시이다. 이 가운데서 니체는 초인(超人)·권력에의 의지·영겁회귀 등 그의 중심적인 사상을 전개하고, 창조적인 삶의 긍정과 충실을 설명했다.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고 아름다운 어구, 시적 표현을 아로새겨서 이러한 사상을 구상화해 이후 사상가뿐만 아니라, 많은 시인과 문학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철학서이면서, 동시에 반철학의 요소들을 전개한다고 본다. 니체의 서술에서 핵심이 되는 인물은 (그리스도에 대립하는)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의 행보에 대한 니체의 서술은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서술한 복음사가들을 닮아 있다. 묘하게 니체는 '안티크리스트'를 내세우면서도, 기독교인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전복적 신학이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저자는 니체가 택한 철학적 전복의 길을 우리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상상력의 힘으로 전환하면 좋겠다고 조언한다. 이것은 결코 우리 모두가 '니체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힌다. 앞서 언급한 〈서문〉을 통해 저자는 "철학이 이 시대와의 대결이라면, 우리는 니체 철학을 통해서 '현존의 부정'을 낳는 현시대의 야만을 고발하고, 어떻게 자신을 초극한 자로서 '위버멘쉬'*를 향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낙타는 사자가 되어야 하고, 사자는 자신의 힘을 극복함으로써 아이의 순수 긍정을 얻는다. 그런데 우리는 미처 사자가 되어 보기도 전에 낙타의 삶을 살아가다가 같은 낙타끼리 서로 혐오하면서 이 사막에서 고립되어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p.7)라며 제언하고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원한 감정이나 복수심이 어째서 우리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데 해악적인가에 관한 서술에서 오늘날에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문제가 된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혐오 감정을 배출하는 것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니체를 통해 말할 수 있는 것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회적 상황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지 못하고, 니체가 말하는 자기에 대한 자긍심을 갖지 못한 개인이 자신을 비참하고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면서 그러한 비참함의 원인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위버멘쉬(Ubermensch , overman) :

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터득시키고자 한다. 그것은 위버멘쉬요, 사람이라는 먹구름을 뚫고 내리치는 번갯불이다.(Za Ⅰ 머리말 7, 한글판 29:23-30:1 / 독일어판 17:5-17:6 / 영어판 20:32-20:34)

위버멘쉬 사유는 산에서 10년 간의 고독한 명상생활을 한 차라투스트라가,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인간에게 전해준 그의 첫 철학적 사유다. 여기서 위버멘쉬는 인간 자신과 세계를 긍정할 수 있는 존재로 제시되며, 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완성시키는 주인의 역할을 하는 존재로 기획된다.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위버멘쉬는 『차라투스트라』에서 힘에의 의지와 허무주의 그리고 영원회귀 사유와의 정합적 구도를 완성시키는 매개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이렇게 구성된 사유복합체만이 비로소 인간과 세계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라는 니체 철학의 목표를 달성시킨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제〉, 2004, 백승영)

 

 

이 책은 모두 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근대의 차라투스트라, 니체〉, 2장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읽기〉, 3장 〈철학의 이정표〉 등이다. 1장은 「니체의 생애」, 「니체는 어떤 사상가였는가?」, 「우리의 니체」로 나뉘어 있다. 2장엔 「우리의 세계에 대한 가르침」, 「낡은 도덕과 새로운 도덕」, 「새로운 서판을 위하여」, 「새로운 삶을 향하여」가, 3장엔 「뤼디커 자프란스키, 『니체』」, 「마르틴 하이데거, 『니체』」, 「질 들뢰즈, 『니체의 철학』」, 「알랭 바디우, 『알랭 바디우 세미나: 프리드리히 니체』」, 「작곡가로서의 니체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음악화」 등 6권의 니체와 관련된 서적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에 「생애 연보」와 「참고 문헌」도 첨부돼 있으니 니체의 삶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통해 철학적 사유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니체와 니첼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히고 있다. 또 니체는 음악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저자 한상원은 책 뒤에 「작곡가로서의 니체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음악화」를 통해 별도의 '니체와 음악을' 소개하기 위한 글을 마련해 썼지만 책 1장 앞머리에 음악가 이름을 거론한 것은 니체 철학에도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도 있지 않나 싶다. 독자의 철학적 지식이 낮아서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음악가들과 교류하고, 또 그의 철학서 내용을 후에 음악가들이 사용해 작곡하기도 했다.

저자는 니체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음악가로선 리하르트 바그너를 꼽고 있다. 동시대 인물이라 직접 바그너를 만나기도 했으며,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교류가 이어지기도 했다고 저자는 책에서 밝힌다. 그러나 니체는 바그너의 게르만 정신 예찬과 국가주의로부터 서서히 거리를 두면서, 오롯이 철학으로만 나아갔다고 한다. 특히 당시 독일 지성계와 사교계를 대표하는 여성 '루 살로메'에게 가깝게 지냈으나 포로포즈를 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져 이때의 상처로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어머니와 여동생의 사이가 나빠져 니체는 가정적으로 불안정했던 것이 그의 건강을 더욱 나빠지게 한 요인으로 판단되는 대목이다. 이후 니체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요양 생활을 하면서 철학에 더 시간을 많이 갖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니체는 기독교의 선과 악, 본질과 현상, 실체와 속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체계에 반대하면서,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긍정하는 철학을 제시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이러한 니체의 철학적 관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차라투스트라를 화자로 빌려온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리스도를 대신해 자신의 복음을 전파하고 군중들에게 삶의 새로운 가치를 천명하는 새로운 예언자이며, 이런 의미에서는 ‘안티크리스트’라고 불릴 수 있다. 이처럼 니체의 철학은 그리스도교에 대적했던 동방의 예언가 차라투스트라를 모델로 차용하여, 형이상학과 기독교 신학이 부정했던 우리의 현존을 긍정하고, 기존에 부정된 새로운 가치들의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니체를 ‘근대의 차라투스트라’라고 명명해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장의 제목이 〈근대의 차라투스트라, 니체〉가 된 이유다.

저자는 니체의 사상으로부터 우리 자신에게 눈을 돌려보기를 독자들에게 조언한다. 우리는 오늘날 신이 경멸받는 시대에, 오히려 신을 대체하는 새로운 우상에 빠져 살아갔던 것은 아닐까? 돈, 권력 또는 허울뿐이고 맹목적인 탐욕을 낳는 모든 것. 우리는 자기 극복의 삶, 창조적인 삶이 아니라 우상에 눈이 멀어 나와 주변 사람을 모두 슬프게 만드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저자의 질문은 평범하지만 니체 철학의 정수에 다가가기 위한 많은 질문들을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많은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고, 자본주의는 우리를 그러한 존재로, 니체의 용어대로라면 잘 길들여진 가축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2장의 제목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읽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니체는 강요된 낙타의 삶을 떨치고 사자가 되어보자고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 자신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 포효하는 사자가 되어보자는 것이다. 저항하는 삶, 노예이길 거부하는 삶 속에서 비로소 어린아이의 순수 긍정을 통해 위버멘쉬를 향해 이행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구체적인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보도록 하자고 했다는 점을 독자들은 깨달을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낙타-사자-어린아이의 이행 과정은 니체 자신의 의도를 넘어서는, 새롭고 적극적인 해석이 가미된 것이다. 니체에게서는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아이로의 이행이 사회적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의식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사유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랭 바디우의 말을 빌려, 니체의 철학이 혁명적 사건의 철학이 되려면, 우리는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할까. 저자는 OECD 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 속에서 산업재해와 정리 해고의 불안 속에서 낙타처럼 땀흘리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사자의 함성을 내지르고 동시에 어린아이의 긍정 속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우리는 니체를 넘어서는 니체의 독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은 그러한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 : 한상원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에서 마르크스의 물신주의와 이데올로기 개념 연구로 석사 학위를,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아도르노의 정치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아우구스티누스, 맑스, 벤야민. 역사철학과 세속화에 관한 성찰』과 『계몽의 변증법 함께 읽기』가 있으며, 역서로 『공동체의 이론들』(공역) 『아도르노, 사유의 모티브들』 『역사와 자유의식: 헤겔과 맑스의 자유의 변증법』이 있다. 『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흐름』 『근대 사회정치철학의 테제들』 『아도르노와의 만남』 『왜 지금 다시 마르크스인가』 『팬데믹 이후의 시민권을 상상하다』 등 여러 책을 공저했다. 현대 사회?정치철학의 여러 주제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 충북대학교 철학과에 재직 중이다.

 

기획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기 성찰과 실천적 모색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철학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1989년에 창립했다.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진보적 철학의 문제를 고민하며, 좁은 아카데미즘에 빠지지 않고 현실과 결합된 의미 있는 문제들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펴낸 책으로『아주 오래된 질문들』 『처음 읽는 한국 현대철학』 『망각과 기억의 변증법』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다시 쓰는 서양 근대철학사』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철학자의 서재』 『청춘의 고전』 『철학, 문화를 읽다』 『철학, 삶을 묻다』 『철학 대사전』 등 다수가 있으며, 매년 네 차례에 걸쳐 학술지 『시대와 철학』을 발간하며 대중 웹진인 《ⓔ시대와 철학》을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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