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그네 1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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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억에 최인호는 '천재 작가'다. 그의 천재성은 작가 등단 때부터 빛났다. 고등학생 때 이미 중앙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한국 문단사에서 드문일이다. 한 번도 아니고 다른 신문사에 또 한 번 당선됐다. 남들은 한 번도 어려운 신춘문예 통한 등단을 두 번이나 어린 나이에 통과했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 생활의 신호였을 뿐이다. 문장과 표현, 묘사 등 독자의 관심과 가독성을 생각하고 쓴 것인지 모르지만 엄청난 인기를 발표한 소설마다 끌었다. 마침내 신춘문예에 당선됐던 우리나라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다는 신문사에서 신문연재 소설을 제의한 모양이다. 최인호는 응했다. 그래서 책으로 펴내기 전에 신문 연재로 발표됐던 소설이 이 작품 『겨울나그네』다.

당시 신문사에서는 신춘문예 공모에 장편소설이 없었고, 단편이 주로 심사 대상이었다. 장편은 자신의 능력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통해 책을 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이란 글쓰는 능력을 말한다. 지금도 그런 출판사들이 있겠지만 당시 출판사는 대부분 영세했다. 독자 역시 소설 책을 사볼 정도로 주머니가 두둑하지 않았다. 책에 대한 욕망은 크더라도 실제로 사서 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돈이 있어야 소설 책을 사본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까지의 소설은 대부분 단편소설 위주다. 같은 소설 한 편을 읽더라고 열 편 가까이 실려 있는 책과 한 권으로 한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다는 것은 커다란 결심이 아니면 선뜻 사기 어려울 때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독자라면 대부분 대학생이나 일반 시민들인데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소설 책을 사본다는 것은 '부자' 아니고서는 감행하기 어려운 결단이다.

이런 이유로 단편소설은 60~80년대에 이르는 동안 우리나라 소설 문학의 근간을 이루었다. 작가들 입장에서도 장편을 쓸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사서 보지 않는다면 책을 출판해줄 출판사는 없다. 그러나 최인호는 달랐다. 이미 신춘문예를 통해 검증된 작가인 데다 '대중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그의 천재적 재능이 발휘된 것 같다. 그는 잘 쓸 뿐만 아니라 많이 썼다. 놀라울 속도로 글을 썼다는 후문이다. 글쓰기에 성실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인호가 소설가로서 명성을 날리자 인기를 체감한 영화사들도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나섰다. 대중작가로서 최인호는 그렇게 대한민국 1위가 되어 갔다.

 


 

이 책 『겨울나그네』 역시 영화로 영화관에 걸린 후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당시 작가 수입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막대한 인세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하니 출판사 역시 돈을 얼마나 벌었을지 짐작이 간다. 최인호는 쓰기도 전에 출판사들이 줄을 섰다는 소문도 들릴 때다. 그런 소동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한적한 곳으로 피신할 수도 있을 텐데 최인호는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글쓰기에 열중이었는지, 원래 아무곳에서나 잘 쓰는지는 독자는 모르지만 말이다. 당시 대한민국 사회는 최인호 인기 만큼 경제적으로 차츰 좋아져 갔다.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급속한 산업화는 상대적 빈곤을 발생시키기는 하지만 절대적 경제 사정은 점점 나아지게 했던 것 같다. 의식 있는 작가들은 산업화의 그늘(노동자 문제, 빈부 문제 등) 속에서 소설의 소재를 발견해 응축적으로 잘 썼다고 한다. 사회를 풍자하고 어두운 곳도 그대로 표현해 보여줌으로써 우리 나라 발전을 위해 '펜'을 보탰던 작가들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몇 소설가들의 이름을 댈 수 있지만 당시 단편소설들은 대부분 이에 속한다. 독자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는 시대니까. '단편소설 전성시대'는 우리나라 리얼리즘 문학의 전성시대이기도 하다.

최인호는 사회의 또 다른 소외 계층에게 시선을 돌린다.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남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여공들, 사랑하는 남자의 고시 뒷바라를 위해 손가락질을 받으며 술을 따르던 호스티스 등이다. 모든 그늘진 곳도 최인호가 펜을 들면 사랑이 피어난다.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이다. 이런 사랑이 당시의 사회적 추세이기도 하겠지만 원래 사라은 비극적이어야 더 아름답다는 옛말이 있잖은가. 이때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노사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가요 1위곡을 차지할 때와 때를 같이한다. 이 소설 작품 『겨울나그네』도 비극이다. 두 주인공은 다혜(원래 신문 연재 때는 다른 이름이었지만 책으로 펴낼 때 딸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와 민우. 두 사람의 만남은 사소하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민우가 다혜와 가벼운 부딪침으로 다혜가 안고 가던 책을 바닥에 내동댕이처진 상태로 다혜는 넘어진다.

 

 

최인호는 당시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자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이 소설은 1984년 동아일보에 일 년여를 연재했고, 같은 해 첫 출간 이후 100쇄 이상 중쇄될 정도로 많은 젊은이들에게 읽히며 사랑을 받아왔다고 한다. 이 소설에는 통속적이고 가벼운 세태 속에서 빛 바래가던 ‘민우’와 ‘다혜’, 두 주인공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 최인호는 〈머리말〉을 통해 이 소설의 표제어 '겨울나그네'도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에서 빌려왔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잘 알려진 것처럼, 현실과 사랑의 환상 사이에서 방황하다 마침내 미쳐버린 청춘의 절망과 고뇌를 섬세하게 표현한 연가곡집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소제목 「보리수」, 「거리의 악사」도 〈겨울나그네〉에서 따온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가슴 아픈 청춘의 방황과 참혹한 젊은의 슬픔을 그리고 싶은 열정'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소설은 책으로 펴낸 이후에 영화, TV 미니시리즈, 뮤지컬로까지 다양한 문화장르와 결합해왔다. 1986년 영화화한 것이 대성공을 거두며 지금까지 청춘영화의 고전으로 불리고 있고, 1989년에는 드라마로 방영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 1997년에는 뮤지컬로 공연되기도 했다. 이 소설의 〈머리말〉은 2005년 작가가 직접 쓴 것이다. 2023년, 작가의 10주기를 맞는다. 출판사는 작가 최인호를 기리며 이 개정판을 올해 출간한 것이다.

작가는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에서 영감을 얻어 아름답고 순수한 청년의 사랑을 그리고 싶다는 작품의 모티프”로 ‘민우’라는 주인공을 탄생시켰다. 전도유망한 의대생 ‘민우’와 병약하지만 불꽃같은 열정을 품은 ‘다혜’를 통해 변치 않는 사랑의 원형과 순수한 청춘의 초상을 일깨워주는 데 성공한 셈이다. 통속적이고 가벼운 세태 속에서 지고지순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풋풋하기에 더욱 아름다웠던, 한없이 빛나고 가슴 설레었던 지난날을 추억하게 한다. 독자 역시 오랜만에 아날로그 시대의 사랑의 모습에 새삼 가슴 저미는 슬픔과 열정이 한동안 눈을 가렸다. "나도 그랬었나?" 하는 마음속 질문과 함께...

 


 

잠깐 언급한 대로 민우와 다혜가 처음 만난 것은 설렘으로 가득한 개강 첫날, 봄날의 오후 대학 캠퍼스였다.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다혜를 사랑하게 된 민우는 친구 현태의 도움으로 다혜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나 술집 여인의 아들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민우는 뜻하지 않게 전과자가 되어 대학을 떠나게 되고, 기지촌으로 흘러들어가며 이후 그의 삶은 점점 타락과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다혜가 속한 세상과 멀어져만 간다.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옛날을 말하던 기쁜 우리들의 젊은 날은 어디로 갔는가.

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기쁜 우리들의 젊은 날은 저녁놀 속에 사라지는

굴뚝 위의 흰 연기와도 같았나니.

 

기지촌에서의 생활과 전과로 인해 다혜의 곁을 떠나려는 민우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를 기다리는 다혜. 현태의 도움으로 둘은 재회하지만 민우는 기지촌과 그곳에서 만난 은영에게서 헤어나지 못하고, 다혜는 점점 현태에게 의지하기 시작한다. 민우가 또 한 번 오랜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감했을 때 은영은 그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현태와 다혜는 서로 의지하며 차츰 민우를 잊어가고, 몇 년 후 불현듯 찾아온 은영에게서 민우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지고지순한 민우와 다혜의 사랑은 찬란한 빛 속에서 흘리는 한 줄기 눈물처럼, 우리에게 소중한 카타르시스로 다가온다.

 


 

"장갑은 공짜로 드립니다."

은영은 신부를 위해 준비해둔 열 벌의 드레스를 거의모두 입어본 뒤에야 한 옷을 선택했다.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데 너무 시간이 걸렸으므로 예식장 직원은 실경질을 부리면서 짜증을 냈다.

"어때요?"

마침내 좀 커 보이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은영은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물었다.

"어울려요?"

민우는 물끄러미 웨딩드레스를 입은 은영을 보았다. 그는 약간 취한 상태였다. 용기를 돋우기 위해 숨을 가볍게 마셔으므로.

"예뻐."

감정 없는 목소리로 민우는 대답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은영은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그녀는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놀라울 정도로 변신해서 아름답게 보인다 해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그녀가 악마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것 역시 상관없는 일이었으므로.

단 위의 촛대에 촛불이 켜졌다. 두 사람은 단 아래 섰다. 양옆 게시판에 민우의 이름과 은영의 이름이 나붙었다. 서로의 부모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하객들이 앉아야 할 객석에는 을씨년스런 어둠이 가득했다.

이미 술에 취한 사진사가 혼자 신이 나서 두 사람에게 팔짱을 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은영은 민우의 팔장을 다정스럽게 꼈다.

"웃으세요."(1권 p.412~41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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