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과 편지 - 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령 옮김 / 심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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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폭력은 대부분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당한다." 최근 한 범죄 수사관이 TV에 직접 나와 한 말이다. 구체적 기록을 얘기했지만 수치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꽤 충격을 받았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동료, 동네 지인 등이라서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부터의 성폭력은 실제 많지 않다는 말에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아는 관계'가 가족이나 친족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우리 사회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성폭력은

가해자 개인의 일탈 행위로도 볼 수 있지만 가정이나 친척이라면 이건 문제가 다르지 않은가.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성폭력은 외국에 비해 많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 가정 성폭력 사건은 크게 다뤄진다. 법정 형도 더 무거운 것으로 안다. 얼마 전 이혼한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에게 딸이 '사형'을 시켜달라는 청원서를 내 우리 사회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젠 우리 사회도 가정 폭력이나 성폭력도 위험 수위에 이르렀구나 하는 심정에 우려와 섬뜩함까지 느꼈다.






미투 운동이 시작됨으로써 성폭력범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는 추세다. 그리고 성폭력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중심의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수사관이나 법조계의 말에 공감한다. 우리 대법원은 이미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남성들의 성폭력 행위에 단호한 법적 처벌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행해지는 성폭력에 대해 강한 수위의 처벌이 가능해 일시적인 대응 방안으로는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근원적인 대책이나 피해자 중심에서는 아직은 미흡하다는 독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 책은 가정 내 그것도 아버지가 딸에게 지속적인 성폭행을 한 점이 더 충격을 준다. 그것도 5세 때부터. 이쯤 되면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의 문제다. 인간성이 전혀 없는 '짐승보다 못한 행위'이다.

성폭력 피해자이자 세계적인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작가 이브 엔슬러는 아버지에게 다섯 살 때부터 성폭력을 당했고 10대 이후에는 학대, 폭행, 가스라이팅 등 잔혹한 폭력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그가 심판대에 세워야 하는 가해자는 이미 31년 전 세상을 떠났다.

이브 엔슬러는 책임을 회피한 채 세상을 떠난 가해자, 더 이상 어떤 법적 처벌도 할 수 없고, 사과조차 기대할 수 없는 아버지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피해자인 자신 앞에 세운다. 복수가 아니라 얼마나 엄청나고 잔인한 피해인지를 알리자는 취지다. 다시는 자신 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성폭력 문제를 사회문제 최고점으로 끌어올린다. 독자도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범죄에 큰 관심이 간다. 피해자로서의 심리 상태 변화를 좇아감으로써 경각심을 한층 더 고조시킨다.



저자 엔슬러는 가해자인 아버지가 딸인 자신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는 일을 ‘상상’함으로써 수십 년 동안 묻어둔 진실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아버지의 사과 편지』는 폭력의 시간을 견디고 진정한 사과를 기다리며 온몸을 다해 세상과 싸워온 엔슬러의 글은 잔혹한 폭력의 실상을 담아낸 고통의 기록이자, 남성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가부장제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폭력을 고발하는 증언이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무엇을 사과해야 하고, 어떻게 사죄의 말을 건네야 하는지 안내하는 지도다.

하지만 세상은 다른 범죄보다 유독 성폭력 범죄에서 피해자의 목소리에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사건을 밝힌 의도’를 의심한다. 이러한 억압은 오랜 시간 여러 사회 문화 조건 속에서 용인되어 왔다. 하지만 2017년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미투 운동 이후 자신이 당한 피해를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침묵을 거부하고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싸운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있는 힘을 다해 세상의 부조리와 폭력에 맞선다.




엔슬러는 왜 아버지가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그의 삶 전체를 되짚어보고, 피해를 겪을 당시 자신의 감정이 어땠는지 세밀하게 묘사한다.

'현실과는 다른 결과' 즉, 가해자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명백히 밝히고 인정하며 진심으로 꺼내는 사과를 받는 일은 이브 엔슬러가 선택한 ‘마침내 나를 자유롭게 만들려는 노력’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피해자가 가해 사실을 고발하고 고통을 드러내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사과 편지』를 먼저 읽고 해제를 쓴 은유 작가는 말한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말하곤 했다.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이나 커다란 고통일수록 버전을 달리해서 써보라고. 다른 시점, 다른 입장, 다른 시제, 다른 장르로 같은 경험을 다뤄보면 그 사건의 본질은 선명해지고 고통은 옅어질 수 있다. 이 책은 씻을 수 없는 상처의 기록이라서가 아니라 ‘기록할 수 없는 상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하다.”(p. 206)

은유 작가의 말처럼 엔슬러는 가감 없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며 사건의 본질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이후 『아버지의 사과 편지』를 세상에 내놓은 이브 엔슬러는 자신의 이름을 ‘브이V’로 바꾸며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을 선언했다. 역자 후기에서 김은령 [럭셔리] 편집장은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신을 괴롭히던 아버지의 잔혹한 기억으로부터 마침내 벗어나게 되었고 원망도 회한도 분노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가 물려준 성과 이름으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p. 197)

사과 편지 속 아버지는 딸에게 성적인 학대를 일삼고 심한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휘두른 이유를 자신이 복종을 강요하는 억압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데서 찾는다. 그로 인해 권위와 남자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가족이라는 왕국 속에서 아내와 아이는 엄격하게 다뤄야 할 자신의 소유물이었다고 고백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않은 인생을 살던 자신에게 커다란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해준 딸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였다고, 그래서 자기 안에 꽁꽁 숨겨둔 탐욕스러운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 다섯 살 아이를 성적으로 착취했다고 아버지는 말한다.(p. 70)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드러날까 봐 딸이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고, 가족 모두가 딸을 가족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만들었으며, 딸을 끊임없이 궁지로 몰아넣어 스스로를 나쁜 사람으로 여기도록 조종했다고 이야기한다.(pp. 104~107)



아버지가 꺼내놓은 이 기막힌 이야기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본질을 드러낸다. 더불어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부장제’라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비극적인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내 정신은 온전했어. 나는 특권을 누리는 고압적인 남성이었다. 너는 나의 아이였다. 나의 소유물이었지,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했어. 그러지 않을 때 규율과 처벌을 실행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었다. 바로 내가 키워진 방식처럼 말이다. 나는 내가 겪은 대로 너를 다루고 있었어. 내가 배운 대로 하는 것뿐이었지.”(p. 113) 
그는 끊임없이 자기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악행을 이어간다. 그리고 사회적?정신적으로 아버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은 그런 상황을 묵인하고 아버지가 저지르는 폭력과 학대에 동조하며 엔슬러를 고립시킨다. 편지는 가감 없이 이브 엔슬러가 겪은 아픔을 묘사한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 따라서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한다. 그들 모두 존중의 대상이고 공존의 상대다.
이 책의 저자에 대한 가해자인 아버지의 변명을 읽는 데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상식적이지 않고, 인간적이지 않아서다. 배우자와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다. 소유의 대상도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존중의 대상이다. 이 책을 읽으면 남녀가 왜 사회의 경쟁 대상이고 지배와 피지배의 대상으로 인식되는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변화를 꾀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 있는지 진정으로 노력한다면 인간은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낼 것으로 믿는다.



난 내 부모와 형으로부터 경험한 폭력과 잔인성을 부정하면서 네게 점점 더 심하고 파괴적인 폭력을 가하고 있었던 거야. 여기에 더해 부가적인 임무도 자리하고 있었지. 너를 더 순종적이고 조용하게 만들어 우리의 비밀을 폭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나는 의로운 고문자가 되었다.(p. 104)

이브, 나는 네가 죽기를 바랐다. 너를 살해하기 위해 몇 번이나 시도했어. 내가 이미 망가뜨린 것을 죽이려 한 셈이지. 내가 저지른 일의 증거를 지워야 했으니까.(pp. 122~123)

나는 어린 여자아이를, 내 몸집의 반만 한 아이를 때렸다. 손과 주먹을 휘둘렀고, 벨트를 채찍처럼 내려쳤어. 자비 없이 너를 몰아붙이며 온갖 심한 욕을 해댔지. 네 존재와 육체의 모든 것을 모욕했다. 너에게 수치를 주고 너를 소멸시켜 버리고 싶었어. 난 한계를 모르는 듯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네가 감히 고함을 치거나 빌거나 울면, 너를 협박하며 망신을 주고 네 존재를 부정했어.(p. 124)

나는 다섯 살 때 너의 몸을 가졌다. 네가 주지 않았는데도.(p. 179)




저자 : 이브 엔슬러


토니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극작가이자 작가, 사회운동가다.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여성 200명을 인터뷰해 금기의 대상이었던 여성 성기를 둘러싼 고민과 남성 폭력의 기억을 담아낸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1997년 오비상OBIE AWARD을 받았으며 세계 140개 국가에서 48개 언어로 공연되었다. 그 후 〈레모네이드LEMONADE〉, 〈특별 조치EXTRAORDINARY MEASURES〉, 〈필요한 목표들NECESSARY TARGETS〉, 〈굿바디THE GOODBODY〉, 〈감정적 동물EMOTIONAL CREATURE〉, 〈프룻 트릴로지FRUIT TRILOGY〉 등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으며, 《버자이너 모놀로그》, 《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나는 감정이 있는 존재입니다》 등을 출간하여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사회운동가로서 ‘브이데이V-DAY’와 ‘원 빌리언 라이징 레볼루션ONE BILLION RISING REVOLUTION’을 조직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을 막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인권운동가 크리스틴 슐러 데쉬베CHRISTINE SCHULER DESCHYRVER, 2018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드니 무퀘게DENIS MUKWEGE와 함께 콩고민주공화국에 여성 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치유 및 지원 센터 ‘시티 오브 조이CITY OF JOY’를 세웠다. 〈뉴스위크〉 선정 ‘세상을 바꾼 150명의 여성’, 〈가디언〉 선정 ‘100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에 이름을 올렸다.

역자 : 김은령


월간 〈럭셔리〉 편집장. 작가이자 번역가. 《밥보다 책》, 《럭셔리 이즈》, 《바보들은 항상 여자 탓만 한다》, 《비즈니스 라이팅》 등을 썼고 《침묵의 봄》, 《패스트푸드의 제국》, 《나이 드는 것의 미덕》, 《존 로빈스의 인생 혁명》 등 20여 권을 번역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장을 지냈으며 《설득의 심리학 워크북》(김호 공역)을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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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들 - 온전히 나답게 사는 행복을 찾다
이시하라 사치코 지음, 신은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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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택이다"는 말이 있다. 어떤 옷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서 살지 등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직업, 배우자, 학교 등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들도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물론 선택한다고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노력은 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좋아서 선택한 만큼 이루려는 노력은 살아가는 동안 계속한다. 중간에 힘들어 포기도 하고, 선택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지만 쉽지는 않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바꾸기는 선택한 것보다 훨씬 어렵다. 처음 선택한 대로 살아왔고, 살아온 만큼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젊을 때 아니다 싶으면 쉽게 바꿀 수 있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쉽게 바꾸기도 한다. 이 역시 혈기도 있고, 습관이 완전히 배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가 그만큼 쉬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왔지만 나이 50이 지나면 '나만의 멋'을 찾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입는 옷, 내가 먹는 음식, 내 생각과 말투 등 사소한 내 취향들을 파악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취향을 어느 정도 알고, 가능성 여부도 훨씬 쉽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50 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들』은 매일이 멋스럽고 행복한 60대 스타일리스트 이시하라 사치코의 평소 습관을 담았다. 중년 이후의 삶을 멋있게 만들어줄 작은 습관들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공간을 꾸민다. 스타일리스트와 디자이너로 오래 일해온 덕분에 라이프 스타일이 세련된 것도 맞지만 그보다 크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염색을 하지 않아도 항상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고 당당한 모습에서 노년의 멋과 존재감이 빛난다.

책에 실린 100여 장의 사진을 보면 저자의 이러한 삶의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바로 따라해보고 싶은 일상의 디테일이 가득하다. 선택과 결정에 있어 ‘나에게 어울리는가?’ ‘내 마음에 드는가?’ 이 두 가지 기준이 전부인 저자의 심플함이 멋있게 느껴진다.




50 이후, 어떻게 해야 온전히 나를 위해 살 수 있을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내 취향대로 사는 것에서 나를 위한 삶이 시작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보라. 그때가 바로 내가 가장 돋보이는 순간일 것이다. 그렇게 쌓인 매일의 습관이 내 인생의 멋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매일이 지루할 틈 없이 행복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 책은 이 막연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철학이 아닌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풀어가게 하는 책이다.

살림, 인테리어, 요리, 패션 스타일 등 의식주 생활 전반에 대한 라이프 스타일 정보들이 10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실려 있어 한 권의 패션잡지, 요리 잡지를 보는 느낌이 든다. 가벼운 마음으로 저자의 일상을 들여다본 후, 자신의 50 이후 라이프 스타일 구상해보는 소소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버킷리스트처럼 나의 50 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들을 리스트로 만들면 좋을 듯하다.




50 이후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믿고 어떤 것이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답게 살기, 나한테 힘을 주는 것은 결국 나, 기쁨은 내가 직접 발견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일상에서 '나다움'을 찾아 행복을 느끼는 것이 인생의 멋이라는 간단명료한 결론에 다다른다.

50 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은 내가 찾아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다음의 것들을 제안한다. 작은 것에서부터 머리를 유연하게(융통성 있게, 다각도로, 여러 가지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자. 생각을 유연하게 하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이것을 꼭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유롭게 살다 보면 의식주 생활 전반을 즐겁게 만들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너그럽고 부드러워야 멋져 보인다. 책에 나온 여러 가지 팁과 아이템들 중 따라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몇 가지라도 선택해 시도해 봄직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미루어 선택도 습관도 쉽게 이루어질 것들이 많다.




화이트나 베이지로 전체 컬러를 통일해서 코디하면 인상이 깨끗해 보이고 품격 있어 보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취향이다. 독자도 그런 깔끔하고 튀지 않는 색을 좋아한다. 액세서리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치장하면 한층 흡족하고 만족감이 커질 것이다. 재킷을 입을 때도 뒤쪽 깃을 세운다. 허리 근처 중간 단추만 잠근다. 모두 사소하고 작은 일이지만 자신의 만족감을 높이는 것으로 하면 그만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이가 든 만큼 외모도 변해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웃는 얼굴로 즐겁게 살아가는 쪽이 훨씬 더 멋져 보인이지 않을까. 남의 눈치나 예절을 앞세우지 말고 완전히 자신의 취향대로 해나가면 될 일이다.

먹는 것도 예외일 수 없다. 기분 좋은 생활은 제대로 먹는 것부터 시작된다. 잘 먹어야 에너지가 생기고 기분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먹는 것이 몸과 마음도 만드는 법이다. 밥 먹는 그때그때가 즐거운 시간이 되도록 과일 야채 등 포만감보다 영양소의 균형이 중요하다.

즐거움은 항상 가까이에 있다. 일상에서의 행복을 찾고, 최고의 만족감을 주는 선물을 스스로에게 주자는 게 이 책 저자의 주장이다.





짙게 화장을 하지 않아도 흰 머리의 염색을 하지 않아도 저자에게서 풍기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엿보인다. 스스로 내세우지 않아도 여유로워 보이는 일상들이 잘 살아온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기품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삶이 엿보이는 여러 장의 사진들을 수록해 놓았다. 특히 한껏 웃음을 짓고 있는 얼굴에서는 여유와 부드러움, 너그러움 등이 자신감과 함께 묻어난다. 저자는 책에 보이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좋아서 따라해 보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름답고 멋진 노년을 누구나 바랄 것이다. 그래야만 잘살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게 살다보면 자신감이니 너그러움이니 부드러움 등은 저절로 오러나오리라. 잡다한 일상의 모든 것을 수록해 놓은 이 책에서 단 몇 가지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소화해 내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을 느끼리라.



나이가 들수록 자기만의 틀에 갇혀 고집도 더 세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저자의 라이프 스타일은 유연성과 융통성에서 온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소한 것에서부터 머리(생각)를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생각하는 습관들이 책 곳곳에 소개되어 있다. 꽃을 반드시 꽃병에만 꽂지 않고, 케이크 상자에 열쇠를 놓아두며, 부엌 수납장에 책꽂이를 넣어두는 등 물건을 한 장소에서만 사용하지 않은 것도 독특한 저자의 유연성 있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터다. 물건을 한 가지 용도로만 사용하지 않고, 그 물건에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주면 일상이 훨씬 재미 있어진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또 유행하는 색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색의 옷을 선호하고 헤어스타일도 항상 비슷한 듯하다. 어쩌면 자신 고유의 멋을 드러내는 포인트로 활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경우 염색은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도 개인의 취향과 오랜 습관의 결과이지 억지로 자연스러움을 거부하지 않은 생각의 소유자임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냉장고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바나나, 예쁘고 먹기 좋게 플레이팅된 과일 등 사소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일들을 연속으로 하면 그것이 50 이후 인생의 멋이 되고 자신만의 고유한 트레이드 마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배워둘 만하다.




저자 : 이시하라 사치코


패션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로 오래 일해온 일본의 스타일 멘토. 디자이너인 남편과 함께 여성복 브랜드를 운영하다 ‘일하는 여성을 위한 24시간’을 테마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 ‘사비 젠틸’을 론칭했다. 다이칸야마의 사비 젠틸 숍은 전에 없던 신선한 콘셉트로 유명했고 셀러브리티들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로 오래 이름을 알렸다.

현재는 숍 운영 대신 칼럼과 방송 등에서 스타일 멘토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역자 : 신은주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한 뒤 저작권 에이전시 임프리마에서 일본어권 에이전트로 일을 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번역가 모임인 바른 번역 회원이자 왓북 운영자다. 옮긴 책으로는 《30분 경제학》 《30분 회계학》 《30분 경영학》 《이토록 수학이 재미있어지는 순간》 《첫아이 면역력 육아법》 《읽는 수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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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에밀리 정민 윤 지음, 한유주 옮김 / 열림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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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 사회는 '위안부' 관련 또 한번의 갈등을 겪었다. 정의기억연대(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로 대표되는 시민단체와 위안부 피해 당사자가 후원금 사용 관계로 이견을 보이고 투명하지 않은 예산 집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 문제는 사회 문제이자 시민단체의 문제이기때문에 여기서 거론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좋은 취지로 시작한 시민단체이고 피해 당사자들이 함께 참여해 이룬 지금까지의 업적이 무너질까 우려되는 시점이라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다. 또 이번 시집의 모티브가 위안부 당사자이기 때문에 잠시 기억을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위안부 소재의 책이나 영화들을 다양한 매체에서 접해왔다.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도 피해국과 가해국 두 나라가 각자의 해석으로 나누어져 길고도 질긴 싸움을 아직도 하고 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만든 조각상인 소녀상이 얼마나 그들을 위로할수 있을까?

이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는 위안부 피해 여성의 목소리를 전면으로 드러낸 시 묶음이다.

아픈 상처지만 이야기가 아닌 시로 나타낸 그녀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시로써 아픔을 함축적인 고통으로 그려낸 시대의 반영이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전 세계 여성들이 마주하고 있는 억압의 일상을 들여다봄으로써 현대의 성차별, 성폭력으로 확대시킨다. 깊은 의미를 가진 시집이다.




미국 문단에서 주목받으며 데뷔한 에밀리 정민 윤은 다른 시대, 다른 국가에서 삶을 일궈 왔지만 누구보다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라는 어두운 역사의 단면에 깊게 파고든 시인이다. 대학 시절 논문을 작성하다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접하게 된 그는 전쟁 범죄의 그늘에서 침묵을 깨기까지 오랜 기간 가시밭길을 걸었던 피해자들의 고통에 깊게 공감하고 그들의 사건을 자신에게 투영시키며 현대 여성들의 아픔 또한 헤아리기에 이르렀다. 그에게 주어진 유전적 트라우마는 그 자신을, 나아가 모든 여성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리고자 각성한 그는 미국 문단에서 자신에게 상속된 아픔을 공유하는 장을 용기 있게 열었다.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은 총 4개의 챕터, 35편의 시로 구성된 시집이다. 미국 문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시인 에밀리 정민 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넘어 전 세계 여성들이 마주하고 있는 억압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 책임, 증언, 고백, 그 이후라는 제목과 함께 구성된 총 네 개의 챕터는 과거에 일어난 일련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건들부터 시작해 현대에 벌어지고 있는 성차별, 성폭력에 관한 여성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어두운 과거를 그로테스크한 시적 표현을 더해 그려내기도 하고, 전쟁 중에 일어난 말도 안 되는 집단적인 광기를 거부한 일본군 남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관점의 전환을 주기도 한다. 나아가 북한과 남한의 관계에 대해 무지하거나, 2차 세계대전을 미국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이들에게 이민자 여성으로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





일인칭 시점의 산문시들은 언어유희 같은 실험성을 가미하며 형식을 자유롭게 확장해나가는 개성을 보인다. 시집 후반에는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나 평범한 형식의 서정시를 싣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도 독특한 시어들이 보여주는 사유가 마냥 예사롭지는 않다. 특히나 ‘증언’ 챕터는 독자로 하여 피해자들의 고통을 절감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증언 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 필사본과 다큐멘터리 자료를 바탕으로 쓰였지만, 이것이 자료 그대로를 시에 옮겨놓았다는 뜻은 아니다. 에밀리 정민 윤은 시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발휘하여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더욱 사실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시인의 치밀한 의도 아래 재배열된 단어들은 계산된 여백이나 꾸밈새 없이 담담한 형식을 취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목소리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그 결과, 독자들은 나와 타인의 경계를 넘어 피해 당사자들의 고통을 받아들이게 되고 비로소 타인이 경험한 역사적 사건을 나의 현재로까지 호출해내기에 이른다. 과거지만 과거만은 아닌, 현재지만 현재만은 아닌 우리에게는 이런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에밀리 정민 윤은 단순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건을 조명하는 것에서 나아가 역사에서 비롯된 상흔들을 토대로 현대 사회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차별 그리고 편견까지 추적해나간다. 시인의 대표작 「일상의 불운」을 포함한 여러 작품은 매일의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현대 여성들의 초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폭력의 잔재는 한국전쟁 이후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입에서도, 바에서 만난 외국인 남성의 시선에서도, 성관계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상대방의 표정에서도 온전히 드러난다. 시인은 이민자 여성으로서의 개인적 경험까지 작품 속에 드러냄으로써 여성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기꺼이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열어 보이고자 하였다.




여성의 삶을 잠식시켜온 길고 긴 폭력의 굴레가 그 민낯을 드러낼 때 우리는 아직 어딘가 파묻혀 있을 여성들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우리 사회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된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들이 역사 속 목소리를 대면하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다. 실제로 겪은 적 없는 고통을 실제처럼 마주하는 일,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일, 자신 안에 부당한 억압을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힘을 만들어나가는 일 등을 해나가길 바랐다.

그것이야말로 여성들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자 연대라고 생각한 것이다. “모든 시가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질문이라고 믿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끝없이 화두를 던지고 질문하고 대화해야 한다. 명백한 폭력의 역사가 흐지부지 달아나지 않도록.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이 시집의 맨 안쪽 동심원은 일본군 성노예로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의 증언을 인용한 시다(‘증언들’). 시인은 할머니들의 피해 증언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인용, 재가공해서 ‘증언들의 증언’을 한다. 이 동심원의 바깥에는 ‘일상의 불운’이라는 제목을 단 여러 편의 시가 있다.

일상적인 폭력과 불안에 대한 저항과 불안이 짙게 배인 또다른 증언들. 그리고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이라는 시구는 이 문구가 포함된 시 보다는 이 시집의 맨 마지막에 자리 잡은 ‘고래 시간’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의 인류에 대한 묵시론적 경고 같은 ‘오래된 증언’. 증언의 말들은 쏟아지는 비처럼 호수에 내리고, 그 파문은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 위안 pp. 26~27


수요일에, 나는 플레인 요거트를 먹었다. / 공책을 펼쳤다. 빨래를 개는 동안/ 비발디.// 그의 생일이었다. 수요일에,/ 비가 내렸다. 다육식물들 위로,/살아남은 여자들 위로.// 속거나 납치당해서, 일본군에게 끌려갔다./ 콘돔에 적혀 있는 건, 돌격 1번./ 헹궈서 재사용. 수요일마다,// (···)// 그들이 품었던 아이들을 위해. 그들이 품을 수/ 없었던 아이들을 위해./ 그들이었던/ 아이들을 위해. 그들에게 이날을 주어라. 그들에게// (···)

- 종 이론 p. 81




빼앗긴 나라에서 몸이란 무엇일까. 혹은 누구의 것일까. 전쟁 중에는 무엇이 옳을까. 전쟁 중에는 무엇이 떠날까. 전쟁은 한국을 떠나지 않았어. 나는 떠났지. 나는 웅크려. 나를 포기해, 나를 너희에게. 너희 중 누군가 내게 말했지, 한국식으로 더럽게 섹스해볼까. 너희 중 누구는 그리 말하지 않았지. 너희는 내게 미국을 대표하는가. 그 군인들은 그녀에게 미국을 대표했나. 전쟁이 두려웠겠나. 동맹군이 무서웠지. 그녀가 말했다.

- 「일상의 불운」 부분(p. 28)


나는 열네 살에서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위안부였고

나는 열이 났고 나는 불임이 되었고

나는 내 죽은 남편의 아이들을 기억한다

나는 괜찮았던 끼니를 기억한다 나는 혼자다

나는 합천 집에서 이방인처럼 보였다 살갗이 거무스름해져 있었지

내 어머니는 당신이 꿈꾸고 있다고 생각하셨지

- 「증언들」 부분(pp. 45~46)


하얼빈의 개울가에서

산 채로 매장된

아팠던 소녀의 손을 보았다.

내 꿈속에서 그 애는 아직도

더 넓은 물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

- 「증언들」 부분(p. 58)



저자 : 에밀리 정민 윤


미국 거주 한국계 이민자이자 여성 시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고, 뉴욕 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표작으로 2017년 ‘뜨락 정원 소책자 시문학상(Sunken Garden Chapbook Poetry Prize)’을 수상한 「일상의 불운(Ordinary Misfortunes)」이 있다. 전 세계 여성들의 아픔을 헤아린 깊이 있는 작품들로 미국 문단의 호평을 받으며 역사에 희생된 자들의 고백에 생기를 불어다 주고 저항과 회복의 몸짓이 지닌 강렬한 힘에 관해 이야기한다.


역자 : 한유주(소설가)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2003년 단편 「달로」로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고, 소설집 『달로』(2006), 『얼음의 책』(2009),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2011), 장편소설 『불가능한 동화』(2013) 등을 출간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줄리언 반스의 『용감한 친구들』, 앤 라모트의 『나쁜 날들에 필요한 말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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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 철학 수업 - 세상을 바꾸기엔 벅차지만 자신을 바꾸기엔 충분한 나에게
전진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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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생들은 수백 년 전부터 사회에서 좋은 직업을 갖고 훌륭한 일을 하려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물론 독자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 말은 변하지 않았다. 유교 사회이든 민주주의 사회든 한결같다. 이처럼 우리 학생 청소년들은 어렸을 때 열심히 공부하면 사회에 나가서 하고 싶은 일 하고 잘살 수 있다는 유무형의 압력에 길들여져 있다.

우리 사회는 이젠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고 경제적으로도 얼마간 안정될 정도의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가정의 생활도, 사회의 편익시설도 함께 발전 변화했다.

그러나 아직 바뀌지 않고 굳건하게 청소년, 학생들에게 가장 큰 압력은 "공부 열심히 해야 잘살 수 있다"이다. 이에 우리 학생 청소년들은 많은 것을 포기한 채 공부에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교육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의식이나 사회 시스템에서 문제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공부만 잘한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열심히 일한다고 부자로 잘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열심히 한다면 부자도 될 수 있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명예도 얻을 수 있다. 이런 원칙은 우리 사회 수천 년 전부터 인식돼 온 관습상의 문제다. 우리 사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이 책 『소르본 철학 수업』 저자도 책을 쓰면서 전제하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가치가 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대학만 가면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까 일단 수능 공부를 해라.’, ‘가만히 있어야 중간이라도 가니까 남들 하는 대로 해라.’ 등등. 부모님, 선생님은 물론이고 미디어에 나오는 어른들까지 저런 얘기를 해대는 통에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을 갖기도 전에 체화되어버린 것들이다."

표현만 약간 다를 뿐 독자 생각과 같은 내용이다. 다만 다른 점은 자신의 삶과 마주하며 깊은 사색과 가치관 확립에 얼마나 힘을 썼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전진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라는 공간을 거치기 전까지는. 어른들이 시키는 일에 토를 달지 않던 아이였던 저자는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자신이 삶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거짓과 위선을 자각하며 사회가 규정한 것들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연함을 의심할 때마다 돌아오는 건 피곤하게 군다는 핀잔뿐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무작정 파리로 떠났다. 그곳에서는 인생이 한가득 떠안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프랑스는 인간 삶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철학’이라는 학문으로 손꼽히는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반짝이는 청춘’이라고 불리는 20대를 ‘낭만’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곳에서 보내는 건 썩 멋진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더해지기도 했다. 막연한 짐작만으로 떠난 것치고는 운이 좋았다.

저자가 입학한 소르본 대학의 철학과는 비합리적이라고 느끼는 것에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고, 불편한 대화가 예상되더라도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열띤 토론을 이어가는 세계 각국의 열정적인 학생들이 모인 곳이었다. 저자는 그곳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한국에서 강요받은 ‘성공하는 삶’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좋은 삶’이 무엇일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갈 수 있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사유의 결과물을 담담하면서도 위트 있는 문장으로 담았다.



잠시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의 집 안 풍경을 떠올려보자. 물론 집집마다 천차만별의 모습을 하고 있을 테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비슷하지 않을까.

저자에 따르면 책장 가득 꽂힌 다양한 종류의 ‘전집’들. 어떤 매뉴얼이라도 있는 듯 부모님들은 영상 시청 대신 책 읽기를 권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백과사전’, ‘세계문학’, ‘위인전’ 등 여러 종류의 전집들을 아이들의 품에 안기곤 했다. 이 책의 저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TV는 바보상자라며 보지 못하게 하는 부모님 덕에 다양한 전집을 섭렵했고, 영어 카세트테이프를 배경음악 삼아 지내는 날이 많았다. 여기에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뿐이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과학 영재 대회, 백일장, 구연동화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부모님께 상장 수집의 즐거움을 안겨드렸다.



중학생이 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리 다양한 종류의 책을 탐독하고 수업을 열심히 들어도 시험 문제의 답을 골라내는 스킬은 쉽게 늘지 않았다. 저자는 그제야 21세기의 용은 개천이 아니라 오지선다형의 예상 문제를 먼저 접할 수 있는 자본에서 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학교 수업에 충실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좋은 점수는 곧 좋은 대학과 ‘좋은 삶’으로 이어진다는 인생의 기본 진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세계가 뿌리째 흔들리게 된 저자가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어른들은 ‘네가 유별난 거니 쓸데없는 고민은 그만두고 남들 하는 만큼만 해라’라는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거짓과 위선을 바탕으로 강요되는 의심스러운 정답에 한 번뿐인 인생을 맡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는 무작정 프랑스로 떠났다. 어딘가에는 이곳과 다른 삶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은 채로. 그렇게 도착한 파리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저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어렴풋하게나마 삶의 윤곽이 잡혀가는 듯했다.



사실 프랑스도 문제가 없는 사회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교육이 자본과 분리된 곳이었다. 엘리트 양성기관과 같은 그랑제꼴을 제외하고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통과하기만 하면 어느 국립대학이든 지원할 수 있는 평등교육을 지향했고 학비 또한 저렴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저자가 소르본 대학 철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2018년,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등록금을 16배 인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저자는 프랑스 사회에도 ‘속았다’는 생각에 분노하며 불합리한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집회에는 프랑스 학생들도 섞여 있었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왜 여기에 있는지를 묻자 상대는 더 의아한 얼굴로 이렇게 답했다.

“부당한 일엔 맞서 싸워야지. 지금 당장은 내 일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이와 같이 저자가 소르본 대학의 철학과에서 배운 것은 여러 사상가들의 이론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곳에서의 3년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행동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들며 ‘어떤 내가 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그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다’는 자칫 피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문구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시간에 쫓기고 나이에 맞춰 요구되는 성취에 불안해하며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속하고 싶은 미래를 그려보면서 ‘보편’이라고 거론되는 것들에는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답을 찾을 때까지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그렇게 가는 길에서 마음이 맞는 이들과 만나면 반가워하며 연대하기도 하고, 예전의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이들에게는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하면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몇 번이고 반복해도 괜찮을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했던 시행착오를 되짚어 보는 저자의 인생 실험 기록과도 같다.

사회가 강요하는 규범 속에서 ‘나로 존재하기’를 주저했던 독자라면 저자의 솔직하고 위트 있는 문장들 사이에서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할 수 있다.



즐거운 삶을 원했던 것은 맞지만 언제까지나 쾌락을 주는 대상에 의존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술과 마약으로 찌든 삶의 최후를 주변에서 익히 봐왔다. 일시적 즐거움이 떠나고 긴 고통으로 헐떡이던 친구들. 즐거움 뒤의 고통은 소크라테스이 논쟁 상대인 쾌락주의자들도 잘 알고 있던 맹점이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쾌락보다 후에 찾아올 고통이 크다면 포기할 것, 그리고 당장의 고통보다 미래의 쾌락이 크다면 참아낼 것을 강조했다.(pp. 110~111)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논리를 이해하고 나자 혼란스러워졌다. 서로 당연하다고 여기는 제도가 이리도 다른데,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경쟁이 법인 반면에 프랑스 대학은 경쟁을 뿌리 뽑지 못해 안달이니 말이다. '당연함'이란 사회마다 다를 것이고 심지어는 살아가는 시대가 결정해 주기도 한다. 여성의 투표권이 당연해진 것이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p. 140)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가 옷이라면, 누구나 상황에 맞는 옷을 몇 벌씩 가지고 있을 테다. 나의 경우에는 최다 어두운 채도의 옷이었던 듯하다. 우습게 보이지 않는 인상, 힘들어도 티 내지 않기, 따돌림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두를 따돌린다고 생각하기 등. 그게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p. 168)

부모님은 내가 더 나은 삶을 이끌어갈 유일한 방법이 공부라고 생각했다. 깨달음을 얻어도 바뀌는 건 나뿐,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돈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든 아니든 다들 경제활동에 힘을 쏟는다.(p. 183)



탄생과 죽음이라는 시간적 제약을 받으면서도 존재 물음을 던지는 존재자, 이는 곧 나이며 당신이다.(p. 200)


사람이 사람다워야 한다고 말할 땐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측면이 두드러지니까. 우리 안의 도덕성 말이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이성의 능력이라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감성 또한 필요하다.(p. 233)


사실 신념을 가질 이유가 없을 때 신념을 가지기는 쉽다. 글은 진심일 때 나오니까. 진심을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건 별개의 문제로.(p. 259)


추하다고 여겼던 9살의 기억에 사로잡히기도, 이를 부정하기도 했다. 이후의 삶은 완전히 없애지 못한 기억의 변주나 마찬가지였다.절단할 수 없는 기억이라면, 몇 번이고 뛰어넘을 수밖에.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붙기 때문에 긍정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내 삶이 아름답다고 판단할 수 있으니까. 9살 아이에게 찾아왔던 우스꽝스러운 비극마저도.(pp. 289~290)



각국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했던 모습만 봐도 알 만하다. 그 와중에 순진할 만큼 솔직하게 고군분투하다 앞서가버린 내 나라. 가장 한국적인 것이란 뒷걸음쳐서 밝히는 수치마저 끌어안을 때 온전해진다.(pp. 313~314)


저자 : 전진


명품 인간이 될 수 없었던 파리의 철학도. 20세기 끝자락의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명품 인간이 되라!’는 교장 선생님의 외침에서 알 수 없는 수상함을 감지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프랑스로 떠났다. 인간의 권리를 쟁취해 낸 역사가 있는 곳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면 ‘나는 명품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 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2년 과정의 어학 코스를 밟고 입학한 파리 제1대학 소르본에서는 철학을 공부했고, 2020년 가을부터는 동대학원 철학과 미술사학부에서 미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학부 수업에서는 ‘질문에 질문으로 되묻기’를 배웠다. 이미 상대가 원하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하고 문제의 근본을 되물으며 새로운 해결 방안을 찾아나가는 방식이었다. 낯선 공부였지만 한국에서 ‘눈치도 없고 말도 안 듣는 사람’으로 평가받아왔던 덕분에 즐겁게 배워나갈 수 있었다. 지난 3년의 여정에서는 ‘명품 인간이 왜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얻었다. 더 많은 사람과 ‘철학하기’의 유익을 향유하며 우리 모두에게 가장 좋은 삶이 무엇일지 함께 이야기하기 위해 계속해서 배우고 쓰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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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
마틴 에드워즈 지음, 성소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부터 가슴이 설렜다. 책읽기 연한은 오래됐지만 추리소설은 읽기 시작한 지 겨우 1년이 된 독자로서는 '고전' 추리·범죄소설 창고를 뱔건한 느낌이었다. 추리·범죄소설 목록 중 '고전'이라 할 만한 소설을 저자가 엄선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 책의 저자 마틴 에드워즈가 이미 범죄소설 작가로서 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다. 그의 안목으로 엄선된 추리소설들은 독자가 추리소설을 계속 읽어갈 작정이어서 훌륭한 목록을 확보해 놓고 독서를 즐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목록뿐만 아니다. 50년간의 비교적 짧은 시기에 나온 추리소설 중 명탐정, '대저택', 런던 범죄, 살인 조롱하기, 범죄 심리, 과학 수사 등 테마별로 정리해 100편을 뽑았기 때문에 머릿속에 쉽게, 오래 기억될 것이고, 소설과 소설 제목, 작가, 연대 등 그물처럼 잘 짜인 추리소설 안내서다. 추리소설 문학적 평가에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

『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은 20세기 전반에 출판된 추리·범죄소설의 고전을 담고 있다. 장르의 재미와 다양성을 독자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고전 범죄소설에 정통한 전문가인 저자가 아서 코난 도일의 '배스커빌의 사냥개'를 시작으로 흥미로움, 문학적 업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추리·범죄소설 100편을 추렸다.

고전 추리·범죄소설을 즐기는 독자라면 베스트셀러 작가뿐 아니라 잊혔지만 매혹적인 보석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901~1950년에 출간된 추리·범죄소설에는 뜻밖의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저자는 이 50년 동안 장르가 발전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아주 까다롭게 작품을 고르고 추려 이 책에 담았다. 하지만 이 책은 20세기 전반기 ‘최고’ 작품의 목록이 아니다. 또 저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의 목록도 아니다. 이 책의 목표는 그저 고전 추리·범죄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추리·범죄소설의 주목적은 독자를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다. 또 최고의 추리·범죄소설이라 함은 거기에 인간 행위를 꿰뚫어 볼 통찰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 야망과 성취까지 자랑한다. 그러나 아무리 뻔뻔한 상업적인 시시한 추리소설이라도, 과거를 이해할 실마리와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세상을 들여다볼 창되어 줄 수 있다. 과거 세상은 결함투성이지만,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이것은 또 추리·범죄소설이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장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폭넓은 개방성 덕분에 전 세계 독자의 마음을 잡아끌고 있다.

이 책에서는 셜록 홈스, 브라운 신부, 제인 마플, 에르퀼 푸아로 등 우리에게 친숙한 탐정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밀실 살인, 대저택이나 휴가지에서 생긴 사건, 과학 수사 등 호기심이 생기는 주제를 모두 다루고 있다. 이런 장르에서 발견되는 패턴을 강조하기 위해 주제에 따라 장을 나누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에 포함된 작품 중 상당수가 기존에 출간되었던 선집 하나 혹은 그 이상에 실렸다. 하지만 이 책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고전 범죄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는 일이 매우 즐거운 법이기 때문이다. 또 장르의 다양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자에게서 잊힌 책 가운데 일부는 정말로 잊힐 만한 이유가 있어서 잊혔다. 다들 책을 펼치자마자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엉성하고 조잡한 작품이라고 해도, 심지어 저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인물이나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 되어준다.

그래서 문학성을 향한 포부를 숨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탁월한 업적까지 자랑하는 대가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평범한 작가들의 작품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알지 못했던 재밌는 작품과 끌리는 작가를 찾아보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





추리 스릴러 장르가 주는 재미는 두뇌 플레이는 물론 어느 작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사회, 문화, 인간의 내면 심리들을 쫄깃쫄깃한 심장 두드림을 선사하는 맛에 읽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시작된 추리의 시작은 언제쯤이며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이 쏟아내는 작품들의 발전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이 책은 이 시작점에서 출발하기에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독자도 이 점의 매력에 끌렸다.

이 책은 단지 책 제목을 읽고 100개의 추리 작품을 엄선해 보인 것이 아니라 20세기 전반기부터 출간된 작품들을 다루면서 소제목의 주제로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단순히 추리 작품의 내용만을 다뤘다고 보긴 어려운 책이다.



1장인 '새 시대의 여명'에서 등장하는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유명한 작품인 베스커빌가의 사냥개에 얽힌 탄생비화를 비롯해 본격적인 작가들의 대세 작품들이 등장하는 황금기의 도래 부분들에선 젊은 작가들의 끊임없는 열정, 에너지, 대담함이 곁들여진 결과물이란 사실이 돋보인다. 지금까지의 고정 패턴처럼 여겨지는 흐름의 시작이 되는 작품 소개까지 다른 묘미들을 선보인다.

요즘의 시리즈물에 나오는 형사의 인격 형성이나 성장 배경들이 사건에 집중되면서 개성 있는 캐릭터로 잡아가고 있듯 책에서 보인 여러 주인공의 탐정들의 모습은 완벽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는 점을 그린 반대 개념의 캐릭터 탄생, 여성 탐정으로서 활약하는 주인공들, 각 해당하는 작품들에 등장하는 추리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접할 수가 있다.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작가의 비화에 얽힌 이야기와 작품이 지금까지 유명한 것이 있는가 하면 바로 사라져버린 작품들의 내용까지를 범위를 확장해가며 읽을 수 있다.

추리소설의 기본이 되는 후더닛의 꼼꼼한 배경과 설정들, 많은 추리 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겐 접해보지 못했던 작가들의 이름들도 들어있을 것이고, 이미 낯익은 작가들을 접한 독자들이라면 그들의 작품의 탄생 배경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독특함은 '100선'에 대한 설명에 앞서, '고전'이란 단어의 설명을 먼저 하자면, 저자가 선택한 책들, 즉 고전의 시대적 범위를 20세기 초반으로 삼았다. 즉 1901년에서 1950년 사이에 출간된 장편소설이나 단편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범위를 한계 짓는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출판된 ‘최고’의 작품들을 뽑은 걸까? 이 역시 '아니다'. 저자는 분명하게 밝힌다. 20세기 전반기에 출간된 책들 가운데 ‘최고’ 작품의 목록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자가 개인적 취향에 맞는 애정 작품 목록도 아니라고 말이다. 그럼 어떤 작품들을 선별한 걸까? 이 시기, 즉 50년 동안 장르가 발전한 과정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작품들을 고르고 추렸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이 가운데는 유명하지 않은 작품도, 때론 금세 독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작품들도 있다는 점은 앞서 밝힌 대로다. 게다가 여기에 실린 작품은 거의 대부분 영국 작가의 작품들인 점 역시 이 책이 스스로 정한 한계임도 기억해야 한다.(그래서인지 그 유명한 『아르센 뤼팽 시리즈』 역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아무튼 추리소설, 범죄소설의 황금기라 불리는 시기에 출간된 작품들의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큰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책 속에 수록된 102편에 대한 저자의 소개는 작품에 대한 소개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작품 하나에 대한 소개보다는 그 작품의 작가에 대한 소개, 작가에 의해 창조한 캐릭터들에 대한 소개에 더욱 치중하고 있는 느낌이 있다. 그런 면에서는 어쩌면 102편에 대해 저자가 성심성의껏 작성한 서평 모음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역시 코난 도일의 작품이 제일 먼저 소개되는데, 어쩐지 코난 도일의 업적 중 가장 뛰어난 업적은 셜록 홈즈라는 탐정을 만들어낸 것보다는 왓슨이란 보조자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점은 언제가 어떤 평론가가 이미 한 말로 기억된다. 수많은 후배 추리소설작가들이 왓슨과 같은 보조자를 탐정 소설의 틀처럼 내세웠으니 범죄추리 소설의 전형이 된 셈이다.



두 번째 책의 소개 역시 개인적으로 재미나게 읽은 바 있는 『네 명의 의인』, 그리고 그 작가 에드거 윌리스가 소개된다. 이 작품에 얽힌 재미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된 것도 큰 수확 중의 하나다.

G. K. 체스터턴, 애거사 크리스티, 존 딕슨 카, 엘러리 퀸 등과 같이 익숙한 작가들과 작품을 만나는 반가움도 있었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대다수의 작가와 작품은 생소하다. 독자의 추리소설 독서 이력 짧고 보잘 것 없는 탓이리라. 그러나 이 책에서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다. 

일부 작품과 작가는 익숙하긴 하지만 의외성을 발견하는 놀라움도 있었다. 예를 들어 『곰돌이 푸우』의 작가가 탐정소설을 썼다. 

상상도 못한 부분이다.(그의 작품은 책에서 소개하는 제목인 『붉은 저택의 비밀』이 아닌 조금 더 친근한 느낌의 『빨강집의 수수께끼』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있다. 

차례대로 정독하는 것도 좋겠지만, 관심 있는 부분이나 작가를 찾아 읽는 것도 괜찮다. 이렇게 102편의 작품과 100명에 가까운 작가들에 대해 알아 가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에 들어가 작품명을 쳐보며 번역 출간된 작품들이 있는지 확인하는 데까지 발전할지도 모른다.

한 번 이 책의 효용가치를 평가하자면 추리소설 마스터 플랜을 짜기에도 적당하고, 개인의 노력에 따라서는 전문가 수준까지 올라갈 정도의 안내를 받는다. 아무튼 이 책 『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은 작품 및 작가에 대한 종합선물세트 같이 귀한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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