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본 철학 수업 - 세상을 바꾸기엔 벅차지만 자신을 바꾸기엔 충분한 나에게
전진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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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생들은 수백 년 전부터 사회에서 좋은 직업을 갖고 훌륭한 일을 하려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물론 독자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 말은 변하지 않았다. 유교 사회이든 민주주의 사회든 한결같다. 이처럼 우리 학생 청소년들은 어렸을 때 열심히 공부하면 사회에 나가서 하고 싶은 일 하고 잘살 수 있다는 유무형의 압력에 길들여져 있다.

우리 사회는 이젠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고 경제적으로도 얼마간 안정될 정도의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가정의 생활도, 사회의 편익시설도 함께 발전 변화했다.

그러나 아직 바뀌지 않고 굳건하게 청소년, 학생들에게 가장 큰 압력은 "공부 열심히 해야 잘살 수 있다"이다. 이에 우리 학생 청소년들은 많은 것을 포기한 채 공부에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교육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의식이나 사회 시스템에서 문제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공부만 잘한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열심히 일한다고 부자로 잘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열심히 한다면 부자도 될 수 있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명예도 얻을 수 있다. 이런 원칙은 우리 사회 수천 년 전부터 인식돼 온 관습상의 문제다. 우리 사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이 책 『소르본 철학 수업』 저자도 책을 쓰면서 전제하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가치가 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대학만 가면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까 일단 수능 공부를 해라.’, ‘가만히 있어야 중간이라도 가니까 남들 하는 대로 해라.’ 등등. 부모님, 선생님은 물론이고 미디어에 나오는 어른들까지 저런 얘기를 해대는 통에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을 갖기도 전에 체화되어버린 것들이다."

표현만 약간 다를 뿐 독자 생각과 같은 내용이다. 다만 다른 점은 자신의 삶과 마주하며 깊은 사색과 가치관 확립에 얼마나 힘을 썼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전진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라는 공간을 거치기 전까지는. 어른들이 시키는 일에 토를 달지 않던 아이였던 저자는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자신이 삶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거짓과 위선을 자각하며 사회가 규정한 것들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연함을 의심할 때마다 돌아오는 건 피곤하게 군다는 핀잔뿐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무작정 파리로 떠났다. 그곳에서는 인생이 한가득 떠안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프랑스는 인간 삶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철학’이라는 학문으로 손꼽히는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반짝이는 청춘’이라고 불리는 20대를 ‘낭만’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곳에서 보내는 건 썩 멋진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더해지기도 했다. 막연한 짐작만으로 떠난 것치고는 운이 좋았다.

저자가 입학한 소르본 대학의 철학과는 비합리적이라고 느끼는 것에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고, 불편한 대화가 예상되더라도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열띤 토론을 이어가는 세계 각국의 열정적인 학생들이 모인 곳이었다. 저자는 그곳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한국에서 강요받은 ‘성공하는 삶’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좋은 삶’이 무엇일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갈 수 있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사유의 결과물을 담담하면서도 위트 있는 문장으로 담았다.



잠시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의 집 안 풍경을 떠올려보자. 물론 집집마다 천차만별의 모습을 하고 있을 테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비슷하지 않을까.

저자에 따르면 책장 가득 꽂힌 다양한 종류의 ‘전집’들. 어떤 매뉴얼이라도 있는 듯 부모님들은 영상 시청 대신 책 읽기를 권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백과사전’, ‘세계문학’, ‘위인전’ 등 여러 종류의 전집들을 아이들의 품에 안기곤 했다. 이 책의 저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TV는 바보상자라며 보지 못하게 하는 부모님 덕에 다양한 전집을 섭렵했고, 영어 카세트테이프를 배경음악 삼아 지내는 날이 많았다. 여기에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뿐이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과학 영재 대회, 백일장, 구연동화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부모님께 상장 수집의 즐거움을 안겨드렸다.



중학생이 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리 다양한 종류의 책을 탐독하고 수업을 열심히 들어도 시험 문제의 답을 골라내는 스킬은 쉽게 늘지 않았다. 저자는 그제야 21세기의 용은 개천이 아니라 오지선다형의 예상 문제를 먼저 접할 수 있는 자본에서 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학교 수업에 충실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좋은 점수는 곧 좋은 대학과 ‘좋은 삶’으로 이어진다는 인생의 기본 진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세계가 뿌리째 흔들리게 된 저자가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어른들은 ‘네가 유별난 거니 쓸데없는 고민은 그만두고 남들 하는 만큼만 해라’라는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거짓과 위선을 바탕으로 강요되는 의심스러운 정답에 한 번뿐인 인생을 맡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는 무작정 프랑스로 떠났다. 어딘가에는 이곳과 다른 삶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은 채로. 그렇게 도착한 파리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저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어렴풋하게나마 삶의 윤곽이 잡혀가는 듯했다.



사실 프랑스도 문제가 없는 사회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교육이 자본과 분리된 곳이었다. 엘리트 양성기관과 같은 그랑제꼴을 제외하고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통과하기만 하면 어느 국립대학이든 지원할 수 있는 평등교육을 지향했고 학비 또한 저렴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저자가 소르본 대학 철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2018년,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등록금을 16배 인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저자는 프랑스 사회에도 ‘속았다’는 생각에 분노하며 불합리한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집회에는 프랑스 학생들도 섞여 있었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왜 여기에 있는지를 묻자 상대는 더 의아한 얼굴로 이렇게 답했다.

“부당한 일엔 맞서 싸워야지. 지금 당장은 내 일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이와 같이 저자가 소르본 대학의 철학과에서 배운 것은 여러 사상가들의 이론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곳에서의 3년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행동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들며 ‘어떤 내가 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그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다’는 자칫 피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문구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시간에 쫓기고 나이에 맞춰 요구되는 성취에 불안해하며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속하고 싶은 미래를 그려보면서 ‘보편’이라고 거론되는 것들에는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답을 찾을 때까지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그렇게 가는 길에서 마음이 맞는 이들과 만나면 반가워하며 연대하기도 하고, 예전의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이들에게는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하면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몇 번이고 반복해도 괜찮을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했던 시행착오를 되짚어 보는 저자의 인생 실험 기록과도 같다.

사회가 강요하는 규범 속에서 ‘나로 존재하기’를 주저했던 독자라면 저자의 솔직하고 위트 있는 문장들 사이에서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할 수 있다.



즐거운 삶을 원했던 것은 맞지만 언제까지나 쾌락을 주는 대상에 의존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술과 마약으로 찌든 삶의 최후를 주변에서 익히 봐왔다. 일시적 즐거움이 떠나고 긴 고통으로 헐떡이던 친구들. 즐거움 뒤의 고통은 소크라테스이 논쟁 상대인 쾌락주의자들도 잘 알고 있던 맹점이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쾌락보다 후에 찾아올 고통이 크다면 포기할 것, 그리고 당장의 고통보다 미래의 쾌락이 크다면 참아낼 것을 강조했다.(pp. 110~111)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논리를 이해하고 나자 혼란스러워졌다. 서로 당연하다고 여기는 제도가 이리도 다른데,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경쟁이 법인 반면에 프랑스 대학은 경쟁을 뿌리 뽑지 못해 안달이니 말이다. '당연함'이란 사회마다 다를 것이고 심지어는 살아가는 시대가 결정해 주기도 한다. 여성의 투표권이 당연해진 것이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p. 140)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가 옷이라면, 누구나 상황에 맞는 옷을 몇 벌씩 가지고 있을 테다. 나의 경우에는 최다 어두운 채도의 옷이었던 듯하다. 우습게 보이지 않는 인상, 힘들어도 티 내지 않기, 따돌림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두를 따돌린다고 생각하기 등. 그게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p. 168)

부모님은 내가 더 나은 삶을 이끌어갈 유일한 방법이 공부라고 생각했다. 깨달음을 얻어도 바뀌는 건 나뿐,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돈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든 아니든 다들 경제활동에 힘을 쏟는다.(p. 183)



탄생과 죽음이라는 시간적 제약을 받으면서도 존재 물음을 던지는 존재자, 이는 곧 나이며 당신이다.(p. 200)


사람이 사람다워야 한다고 말할 땐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측면이 두드러지니까. 우리 안의 도덕성 말이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이성의 능력이라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감성 또한 필요하다.(p. 233)


사실 신념을 가질 이유가 없을 때 신념을 가지기는 쉽다. 글은 진심일 때 나오니까. 진심을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건 별개의 문제로.(p. 259)


추하다고 여겼던 9살의 기억에 사로잡히기도, 이를 부정하기도 했다. 이후의 삶은 완전히 없애지 못한 기억의 변주나 마찬가지였다.절단할 수 없는 기억이라면, 몇 번이고 뛰어넘을 수밖에.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붙기 때문에 긍정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내 삶이 아름답다고 판단할 수 있으니까. 9살 아이에게 찾아왔던 우스꽝스러운 비극마저도.(pp. 289~290)



각국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했던 모습만 봐도 알 만하다. 그 와중에 순진할 만큼 솔직하게 고군분투하다 앞서가버린 내 나라. 가장 한국적인 것이란 뒷걸음쳐서 밝히는 수치마저 끌어안을 때 온전해진다.(pp. 313~314)


저자 : 전진


명품 인간이 될 수 없었던 파리의 철학도. 20세기 끝자락의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명품 인간이 되라!’는 교장 선생님의 외침에서 알 수 없는 수상함을 감지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프랑스로 떠났다. 인간의 권리를 쟁취해 낸 역사가 있는 곳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면 ‘나는 명품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 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2년 과정의 어학 코스를 밟고 입학한 파리 제1대학 소르본에서는 철학을 공부했고, 2020년 가을부터는 동대학원 철학과 미술사학부에서 미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학부 수업에서는 ‘질문에 질문으로 되묻기’를 배웠다. 이미 상대가 원하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하고 문제의 근본을 되물으며 새로운 해결 방안을 찾아나가는 방식이었다. 낯선 공부였지만 한국에서 ‘눈치도 없고 말도 안 듣는 사람’으로 평가받아왔던 덕분에 즐겁게 배워나갈 수 있었다. 지난 3년의 여정에서는 ‘명품 인간이 왜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얻었다. 더 많은 사람과 ‘철학하기’의 유익을 향유하며 우리 모두에게 가장 좋은 삶이 무엇일지 함께 이야기하기 위해 계속해서 배우고 쓰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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