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뒤 맑음 - 상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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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 『집 떠난 뒤 맑음』의 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한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일본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한국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표작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이후 많은 작품들이 줄지어 변역돼 소개됐다. 지난해 6월 에세이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이후 처음 소개되는 소설로 독자는 기억한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미국을 ‘보는’ 여행을 떠나는 두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련된 문체와 섬세한 심리 묘사로 오랜 시간 사랑을 받은 작가는,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2020년 미국의 생생한 풍경과 사람들을 그려 내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레이나와, “예스”보다 “노”가 더 많은 까다로운 사촌 언니 이츠카. 뉴욕에 거주하는 14살과 17살의 소녀 둘은 단둘이 미국을 ‘보는’ 여행길에 나선다. 부모들에게 편지 한 장만 남긴 채로.

"가출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여행이 끝나면 돌아올 거예요."



레이나는 학교에 다니는 중이었고, 이츠카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채 고졸인증시험에 합격해 미국 대학으로 유학 와 아직 정식 대학생은 아니지만 대학 부설 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레이나의 부모들은 너무 길어진 여행에 돈이 떨어지면 돌아오겠다는 생각에, 들고 나간 신용카드를 중단시키지만 이츠카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가며 여행을 계속한다. 소설 같기도 하고, 동화 같기도 하다. 10대 일본인 소녀 두 명이서 미국 전역을 여행한다는 사실을 걱정하지 않은 부모가 있을 리 없다. 더구나 인종이 다른 소녀들이 미국 물정도 제대로 알 리 없는데... 물론 17살의 이츠카가 21살이라고 나이를 속이기도 했지만,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술을 파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 타고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쉽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들의 동화 같은 마음엔 무서움보다 미국 대륙 여행의 호기심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물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에게 도움도 받고, 그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읽는 내내 참 이들을 노리는 치한이나 불량배의 등장이 없는 것은 독자가 미국 문화를 너무 몰라서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어쩌면 미국 문화의 어두운 부분보다 밝은 부분만 등장시키는 작가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독자의 미국 문화 엿보기는 일부지만 달성한 셈이다.



사실 독자는 다른 곳은 많이 가봤지만 미국 본토 대륙엔 아직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때문에 미국 문화에 대해 TV나 영화에 나오는 이상의 것은 잘 모른다. 때문에 에쿠니 가오리의 문장으로 된 미국의 문화 엿보기가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이유이기도 했다.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대한 동경심과 나이 들어도 사라지지 않은 호기심이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부추겼다. 특히 코로나의 장기화로 오랫동안 해외 여행을 못하니 몸이 근질근질하기도 하다.

두 아이의 여행에 레이나의 엄마인 리오나는 걱정에 잠기고, 아빠인 우루우는 자신의 ‘안정적’인 일상이 틀어졌음에 분노한다. 리오나는 남편 우루우의 태도에 거리감을 느끼며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온전한 개인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두 아이는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고, 히치하이크를 하고, 처음 보는 사람 집에서 도그 키퍼까지 하며 여행을 계속한다. 때로는 평온하게, 때로는 해프닝도 생기는 그들의 여행은 어린아이답게 무모하지만 용감하다.


이들이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뜨개질하던 남자 크리스다. 그를 다른 도시에서 재회하며 이츠카는 그와 있을 때 편안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사랑 같은 감정은 아니지만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는 크리스와 이츠카, 레이나를 보며 낯선 사람들을 보며 불안이나 공포감을 느끼는 아슬아슬한 여행이 아니라 동화 같은 나라를 여행하다 여행지에서 만나 좋은 인연을 만나고 친밀감을 나누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독자 역시 해외 여행을 되돌아보면 그런 일이 가장 오래 기억이 남는다.

수십 년 동안 혼자서 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 독자로서는 여행의 묘미를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들의 여행을 불안한 감정으로 읽어내려 갔지만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 사실에 다행스럽고 놀라기도 했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좀 무섭게만 느껴졌지만 이 책을 접하고부터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대다수가 선량한 시밀들인 나라구나 하는

기분 좋은 느낌도 함께하면서 하권을 기다리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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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
원철 지음 / 불광출판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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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조계종의 글쟁이 원철 스님은 자칭 '수도승'이다. 일반적인 수행을 말하는 '修道僧'이 아니라 서울에 산다해서 '首都僧'이다. 그가 이번에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산문집을 냈다.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의미처럼 특유의 안목과 필력으로 '낡음' 속에서 '새로움'을 길어 올린다.

원철 스님이 4년 만에 펴낸 산문집인 이 책은 5년간의 답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60여 개의 장소와 1백여 명의 이야기를 담아낸 역사문화 기행기이다. 저자 원철 스님은 5년에 걸쳐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 나라의 의미 있는 곳을 틈틈이 찾았다. 반나절의 산책에서 한 달간의 긴 여행까지. 그 여정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갈무리하고, 역사적 고증을 위해 온갖 문헌을 섭렵했다. 관련된 고전의 명문(名文)과 선시(禪詩)를 찾아내어 풍성함을 더했다.

그가 찾아낸 역사 속 한 점들을 독자들은 만날 수 있다. 그 점 속에 인물이 있고, 장소가 있고, 스토리가 있고, 삶에 대한 통찰이 있다. 현장에서 찾아낸 스토리들이 하도 새롭고 구체적이라 독자로 하여금 아무도 밟지 않은 숲에서 계속 첫발을 디디며 걷는 듯한 기분에 젖게 한다.



한양 도성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발원지는 인왕산 수성동 계곡이다. 지명인 '수성(水聲)'은 글자 그대로 '몰소리'란 뜻이다. 추사 김정희도 '수성동 계곡에서 비를 맞으면서 폭포를 보았다'는 제목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중인 출신이면서도 정조에게 발탁돼 규장각 서리로 일했던 존재 박윤목은 "큰 비가 수십 일이나 내려 (...) 개울이 뻬어나고 폭포가 장대하며 예전에 보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고 수성동 물소리를 평한 바 있다.

저자는 실제 폭우가 쏟아진 뒷날, 수성동 물소리를 듣고자 이른 아침 계곡을 찾는다. 그건 추사가 들었고, 존재가 들었던 역사 속 한 점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콸콸콸, 계곡을 차고 나가는 물소리만큼 '찰나'를 드러내는 소리가 있을까. 원철 스님은 "수성(水聲)이란 이름을 통해 찰나 속에서 영겁을 보고자 하는 바람을 알게 모르게 반영한 것"이라고 작명에 깔린 인간의 열망을 지적한다. 이처럼 저자는 역사와 현장과 감성을 버무리며 낡음에서 새로움을 찾아낸다.



‘우리 시대 탁월한 문필가’, ‘법정 스님을 잇는 불교계 문장가’로 잘 알려진 원철 스님은 그동안 9권의 저서를 펴내면서 수식어가 하나 더 늘었다고 한다. 바로 ‘노마드(Nomad) 스님’. 산사에서 도시를 오가며 수행승과 '수도승(首都僧)'으로 변신해온 스님의 이력 덕분이다. 장소의 이동이라는 1차적 의미만이 아니다. 한문 경전과 선어록 풀이 등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해온, 생각의 이동과 변화에 막힘없는 저자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의미가 더 크다.

이 책은 원철 스님의 ‘노마드’ 면모가 돋보이는 책이다.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장소의 이동은 물론 선비, 임금, 승려, 예술가, 문필가 등 옛사람들의 숨은 이야기, 우리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오래된 유물과 유적지 등 시공을 넘나드는 사유의 진폭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 바탕에는 모든 장소를 일일이 답사하고 관련 문헌을 뒤져 역사적 의미를 고증하고, 명문과 선시를 찾아 더한 수고로움이 있다. 물론 기대하고 길을 나섰다가 허탕을 치고 온 적도 여러 번이라고 한다. 영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 자체로 좋았다고 말한다. '기대를 머금고 가는 길도 길이요. 헛걸음치고 돌아오는 길도 길'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적 해석과 문학적 감흥이 어우러진 이 책의 미덕은 이러한 저자의 은근한 치열함 덕분이다.



이 책에 수록된 62편의 글 속에는 60여 개의 장소와 1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등장하는 장소는 역사와 문화가 서려 있는 오래된 곳이라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이야기가 쌓이고, 그럼으로써 더더욱 의미가 더해졌다는 것이다. 한 예로, 서울 북한산 자락의 진관사는 조선 시대 집현전 학사들이 머리를 식히기 위해 ‘템플스테이’하고, 박팽년이 와서 한양 도성을 내려다보며 시를 짓고, 성삼문이 객실에서 묵었던 곳이다.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달래 주는 수륙재가 열렸고, 6 ㆍ 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한 젊은 비구니 스님이 우연히 이곳에 머물며 오늘의 진관사에 이른다. 저자는 하나의 장소에 거듭되는 인연을 씨줄 날줄로 엮어 풀어간다.

익히 보는 나무, 사찰, 정자, 계곡, 암자, 어느 곳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갈피마다 이야기가 서려 있기에 ‘특별한’ 장소로 거듭난다. 시선(詩仙)으로 추앙받는 이백과 시골 선비 왕륜의 우정이 서린 중국의 도화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쟁이 주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 병사들을 위해 켠 남해바다의 연등, 초의 선사와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가 만나 차와 곡차를 나누며 불교와 유가(儒家), 동학과 서학이 교류하는 현장이었던 전남 대흥사 일지암 등 “알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반드시 찾게 된다(知之必好之 好之必求之).”는 송나라 정이 선생의 말처럼 장소와 옛사람들의 사연을 알게 되면 평범한 장소는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 된다. 그리고 우리처럼 또 다른 누군가 찾아가 새로운 의미를 덧대며, 뒤이어 누군가는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낡아지게 하지’ 않는 것이다.

“시대와 사람이 만났고 터와 인간이 만났고 또 인간과 인간들이 만났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옛이야기는 지금 사람들의 눈과 귀를 통해 또다시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각색된다. 지금도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어디선가 만들어지고 또 누군가에 의해 보태지면서 켜켜이 쌓여 가고 있을 터이다.”



저자 원철 스님은 장소와 사람의 내력과 그 감상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속에 숨겨진 가치를 에둘러 짚어준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장소 등 만남을 통해 새로워진 것들, 시간이 흐름에 변하거나 사라진 것들, 그리고 그 가운데 중심을 잃지 않고 있는 것들이다.

불교의 주요 교리 중 무엇도 홀로 생겨나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연기(緣起)’와 영원한 것은 없다는 ‘무상(無常)’은 장소와 사건에도 예외는 아니다. 윤선도의 녹우당, 조려의 서산서원,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처럼 누군가의 삶이 함께하며 의미를 지닌 곳이 있는가 하면, 중국의 오대산과 한국의 오대산처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동일한 지명으로 신앙적 의미를 공유하는 장소도 있다. 반면 지금은 예전 모습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장소도 생겨났다. 과거 한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풍경으로 꼽히던 ‘장의심승(藏義尋僧, 장의사로 스님을 찾아가다)’ 속 장의사(藏義寺, 莊義寺)는 초등학교로 변하여 당간지주만이 사찰의 자리를 짐작하게 해주고, 송파강과 신천강은 1925년의 대홍수와 매립 사업의 결과 호수로 변하여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는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연기와 무상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흔한 힐링이나 위로, 어떤 충고도 쉽게 하지 않는 스님은 이 책에서 우리 스스로 그 답을 알아내도록 넌지시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우리 삶도 시간의 흐름에 사라질 테지만 무엇을 보태고 가겠느냐는 물음이다. 저자는 책의 첫 꼭지에서 연암 박지원의 시를 소개한다. 죽은 형을 생각하며 연암이 지은 시다.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이제 형님이 그리우면 어디에서 볼 것인가.

두건 쓰고 옷 입고 나가 냇물에 비친 내 얼굴을 봐야겠네.(p. 19)



내 얼굴에서 그리운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것처럼, 삶의 길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무수한 세월을 견디며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쌓인 바로 우리 곁에 남아있는 옛것 속에서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나’라는 존재가 지금 이 시공간에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자는 코로나19로 오랜 마스크 생활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숨 쉴 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박하게 밝히고 있다.

저자 : 원철

한국화엄종의 근본도량이자 팔만대장경을 모신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1986년 머리를 깎고, 해인사, 실상사, 은해사 등에서 수행하고 경전과 선어록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3년여에 걸쳐 『선림승보전』 총 30권을 국내에서 처음 번역하기도 한 스님은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대중과 함께하는 경전법회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월간 해인] 편집장을 맡으면서 [불교신문], [달마넷] 등의 칼럼을 통해 ‘글 잘 쓰는 이’로 통한다. 시원시원한 글과 해박한 경전지식으로 인해 빼놓지 않고 읽어볼 만한 칼럼으로 손꼽힌다.

산승으로 오래 살아왔고 당연히 산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으나 요즘 색다른 체험을 하고 있다. ‘수도승(首都僧)’ 생활이다. ‘수도승’은 서울에서 승려 노릇하는 것을 출가자끼리 부르는 은어이다. 저서로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스스로를 달빛 삼다』,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 것들에 대하여』 등이 있다.

현재 조계사에 머물고 있는 스님은 산과 도시가 둘이 아니라고 믿고, 도시에 살아도 산에서 머물던 마음을 늘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고 가끔 마음의 고향이며, 젊은 학인시절을 보낸 해인사로 가서 산승의 향기와 색깔을 듬뿍 묻혀 도심으로 되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해인사승가대학 학장, 대한불교조계종 불학연구소장과 포교연구실장을 지냈으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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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 조선의 586 - 그들은 나라를 어떻게 바꿨나?
유성운 지음 / 이다미디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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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우리는 ‘후조선’을 살고 있다는 체념어린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헬조선'이었다가 지금은 '후조선'으로 바뀌었다. 신분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부와 학벌과 계급이 세습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원망이 아니다. 명분과 도덕을 앞세워 집권한 뒤 현실을 외면하고 실리는 챙기지 못하는 현 집권층에 대한 경고와 분노다. 이는 이 책 『사림, 조선의 586 그들은 나라를 어떻게 바꿨나?』 저자 유성운의 주장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 앞에서는 너무나 당당하면서 중국 앞에서는 움츠러들고, 각종 규제로 꽁꽁 묶어 집값을 폭등시키고, 가붕개로 만족하고 살자면서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화려한 스펙을 쌓아주기 바쁜 그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고 있다. 오늘날의 586과 조선의 사림을 빗대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 조선의 무능한 양반 지배층들을 비판하며 오늘날 정권을 잡은 주축 세력인 '586 집권 세력'의 무능과 지도력에 타격을 가한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고려 권문세족들의 부패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차별화했지만, 조선을 성리학 세계로 바꿔놓은 뒤에는 자신들만의 특권과 이권을 챙기는 데 몰두했다. 지금의 586 집권 세력이 똑같은 우를 반복하고 있다는 데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저자는 「프롤로그 : 누가 대한민국을 '후조선'으로 만들었나?」를 통해 자신이 한때 '묻따민'이었다고 고백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민주당을 찍는다'란 의미의 신조어까지 동원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희망돼지'를 들고 캠퍼스를 누볐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대학 졸업 후 신문사에 입사해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이른바 운동권의 이분법적 시각, 한나라당에 대한 헐뜻음(?)의 지나친 정도에 따라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많이 당황햐고 당혹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민주주의 정당이라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신이라는 것을 앞세우고 이것은 무오류고,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는 식으로 비판을 허용하지 않은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덧붙인다. 또한 이것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워 의견이 다른 상대를 마치 사문난적처럼 다루는 것도 민주주의 정당이라기보다는 조선 사림의 당파를 보는 듯했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탈(脫)민주당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경험의 유무를 떠나서, 저자의 생각이 옳든 그르든 이 책은 민주당의 586 집권 세력을 조선의 반민중적 정권 유지의 '사림'에 빗대고 있다.



조선 사림은 일부 긍정적 기여도 있지만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중화주의에 빠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는 눈과 귀를 닫은 채, 상업을 죄악시하며 나라 전체를 가난하게 만들고, 무인을 천시해 국방을 약화시키고, 신분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 노비는 늘리고, 자신들의 특권을 대대로 보장해줄 ‘성스러운’ 족보 만들기에 골몰한 세력으로 폄하한다. 저자가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것은 더 깊은 이유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조선이 처음부터 이런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조선 초기는 신분제도 느슨했고, 여성의 재혼도 인정했으며, 국방력을 중시했던 역동적인 시대였다. 그랬던 조선을 바꿔놓은 것은 사림이다. 《소학》의 가르침을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자 했던 원리주의자 사림 세력은 조선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를 성리학의 종주로 만들어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이후 정계 주도권을 장악한 사림은 실력이 아니라 절의를 기준으로 세워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세력은 ‘소인’이나 ‘사문난적’으로 몰아붙였다. 또한 ‘중화(中華)’를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해 망한 명나라의 복수를 해야 한다며 나라 전체를 이념화, 교조화시켰다."고 이유를 열거했다.



책에 따르면 대체로 조선의 사림은 여말선초 무렵 조선의 건국에 반대해 지방으로 낙향한 지식인들의 후예이다. 중소 지주 출신인 이들은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지역에서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고, 조선 성종 때부터 중앙 정계로 진출한다. 성리학에 대한 강력한 실천 의지를 가지고 '소학'을 중시했다. 그런데 당시 훈구 세력과 충돌해 네 차례 사화를 입으며 타격을 입었지만 선조 때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조선을 세운 세력도, 훈구 세력도, 사림 세력도 모두 성리학을 공부한 사대부들이다. 하지만 조선 초기의 지도층이 성리학을 국가 통치에 유용한 도구로 생각했다면, 사림은 성리학이 사회 밑바닥까지 스며들어 모든 곳에서 적용되는 절대적 이념으로 생각했다.

​​조선의 사림은 1519년 11월의 밤, 기묘사화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중종 14년 남곤, 홍경주 등의 훈구파는 조광조 등의 신진사류들을 숙청하게 된다. 당시 중종의 오른팔이자 개혁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던 조광조와 그 세력이 하룻밤에 몰락했다. 조광조는 일찍부터 주목을 받은 사림계의 기대주였다. 20대에 진사 시험에 합격해 성균관에 입학할 때부터 학문 수준이 높다는 평이 자자했다. 조광조를 가르친 김굉필은 우모사화의 시발점이 된 김종직의 제자였다. 조광조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중종 역시 조광조를 신뢰했다. 사림은 조광조를 중심으로 결집했고 훗날 기묘사화로 숙청되기에 이들을 기묘사림이라고 부르게 된다. 조광조는 현량과를 설치했는데 이는 기존 인재 등용 방식을 전면 부정한 것으로 가묘사림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정책이다. 사림이 장악해야 할 거점으로 삼은 것은 삼사였다. 성리학적 기풍을 진작하고 새로운 정치를 열고자 했던 성종은 삼사를 적극 후원했고 사림은 삼사를 통해 세력을 확장했다. 현량과는 추천제로 무엇보다도 과정과 결과의 불공정 가능성이 지적됐다. 그럼에도 중종은 조광조의 손을 들어줬고 현량과가 실시됐다. 현량과에 대한 세간에서 지적했던 불공정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현량과에 합격한 28명 중 절반이 당시 청요직이라 불린 대간이나 홍문관에 배치되었다. 이렇게 뜻이 같으면 천거를 하고 뜻이 다르면 배척을 하게 된다.



조선 사림이 수양대군의 쿠데타였던 계유정난에 분노하고, 기묘사화라는 탄압을 통해 도덕적 명분을 획득하고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586은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에 분노하고, 5.18과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명분을 얻고 정치 세력화에 성공했다. 조선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 등 재야 세력을 복권시키고 국가적 공인을 받기 위해 투쟁했던 사림은 정권을 잡은 뒤엔 자신들만 ‘정의로운 세력’이고 건국에 참여한 세력은 ‘불의한 세력’으로 끌어내렸다. 586은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한 인사들을 ‘항일민족주의자’로 평가하고, 건국에 참여한 이들은 ‘친일친미반민족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조선 초기 공신들의 부패와 탐욕을 성토했던 사림은 집권 후에 그에 못지않은 특권을 향유했고, 자신들의 불의와 영달에 대한 지적에는 “예전에도 그랬다”라고 변명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불통을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는 역대 최다의 청문보고서 없는 임명 강행과 4대강보다 많은 가덕도신공항 예산을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집권 이후 정의와 도덕을 독점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내로남불’의 상징이 됐다.



저자는 책을 통해 사림이 정치 세력으로 대두하는 과정과 집권 후 조선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보여주면서 586의 나라가 된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짚고 있다. 마치 둘로 쪼개진 거울을 하나로 맞추는 것 같은 유사한 흐름을 보면서 지금 우리 앞에 ‘후조선’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각심을 주고 있다.

실력보다 계보를 따지고, 집권자에게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 윽박지르고,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의 무덤을 찾아 ‘계승’을 맹세하고, 중화주의에 쩔쩔매는 조선의 잔재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한 사람의 양심에 의한 비평인지, 이념에 따른 비판인지를 가리기에는 독자의 지식이나 생각이 너무 짧은 것이 안타까울 뿐 찬반의 입장을 밝히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게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저자 : 유성운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정치부-사회부를 거쳤다. 대학원까지 역사 공부를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문화부에서 학술 분야를 담당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기자 생활 15년의 절반을 정치부에서만 보냈다. 뒤늦게 진학한 대학원에서는 마음을 바꾸어서 기후환경학을 공부했다. 정치부와 문화부를 거치며 〈중앙일보〉 지면과 온라인에 ‘유성운의 역사정치’, ‘역(歷)발상’, ‘역지사지’ 등 역사 관련 칼럼을 연재했다. 《사림, 조선의 586》,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을 펴냈고, 《고지도로 보는 유토피아 상식도감》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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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드모델입니다 - 날것 그대로 내 몸을 마주한다는 것에 대하여
하영은 지음 / 라곰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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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예술뿐 아니라 패션·의료·영상·게임 등 인체와 알몸을 필요로 하는 모든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어요. 국내 유명 의학서적에 실린 인체 지도는 우리 협회 소속 남자 모델의 몸을 그대로 그려 넣은 거죠. 2002년부터 방영 중인 KBS 다큐멘터리 ‘생로병사의 비밀’ 도입부 인서트 영상 속 몸의 주인공이 바로 저에요. 간호학과 학생들의 주사 실습에 동원되는 둔부 모양의 실리콘 모형도 제 엉덩이를 모델로 제작했고요. 모유 수유하는 엄마와 아기의 사진 속 가슴을 촬영한 적도 있죠.”

이 책 『나는 누드모델입니다』의 저자 하영은의 일간신문 인터뷰 내용이다. 저자는 책을 낸 후 인터뷰에서 누드모델로 데뷔해 오늘까지 약 33년 동안 수치심, 자긍심 그리고 직업인의 마음을 모두 갖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치심은 처음 막 데뷔했을 때의 잠깐일 뿐 예술가의 아름다운 피사체로서의 자부심이 컸다고 말한다.

“팬티까지 벗은 알몸으로 근육과 뼈를 움직여 감정을 동작으로 전달하는 일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만큼 성공하면 당당함·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해요. 게임·디지털 영상 작업에서도 우리를 찾으니까 요즘은 인생을 재밌게 살려는 젊은 친구들도 많이 찾아옵니다.” 독자로서는 처음 접하는 누드모델의 삶을 호기심으로 책을 선택했지만 그들의 누드모델이 된 동기는 예술, 직업, 삶 등이 이유이고 독자에게도 공감을 주었다.



누드모델 하영은은 매일 아침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전신거울 앞에 선다. 어제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살핀다. 30여 년간 몸을 갈고닦는 그녀만의 방식이다.

“밤사이 제 몸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에요. 살이 얼마나 빠졌나 이런 것보다 중요한 건 혹시 몸에 상처라도 생기진 않았는지 작은 흔적이라도 찾는 거죠. 누군가에게 최고의 모델이 되기 위해선 저도 내 몸을 건강하게 지키고 사랑해야 하니까요.”

“어쩌다 누드모델이 됐어요?” 하영은이 잊힐 만하면 받는 질문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고 본능이다. 그 아름다움을 가장 직접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피사체가 바로 우리의 몸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통해 아름다움의 본질에 가닿는다. 누드모델의 몸은 때론 예술가의 손을 거쳐 회화 작품이 되기도 하고, 조각품이 되어 미술관에 전시된다. 때로는 패션 분야에서 의상 제작을 위한 기초 작업에 동원되며, 움직임을 따서 게임 캐릭터로 만들어진다. 의료용 인체모형이 되어 누군가의 삶에 어우러지기도 한다. 이 책은 처음에는 수줍었지만, 이제는 이 일을 정말 사랑하게 됐다고 말한다. 직업인으로서 누드모델임을 국내 첫 공개한 이후 오늘날까지 최장수로 활동 중인 저자의 고백이다.



저자에 따르면 몸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다. 몸에는 그 사람의 나이, 성격, 욕망, 습관이 베어 있다. 그 사람의 몸을 보면 스스로 얼마나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 몸을 사랑하고 아낀 몸은 그렇지 않은 젊은이의 몸보다 훨씬 아름답다. 국내 최초로 공개 누드모델을 시작하며 1996년 한국누드모델협회를 설립한 하영은. 수많은 모델들이 누드모델을 하겠다며 그녀를 찾는다. 더 이상 쪼개질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발달한 근육이 온몸을 덮고 있던 발레리노도 있었고, 이른 나이에 출산과 이혼을 겪으며 풍만한 살집을 가진 여성도 있었다. 앙상하게 마른 60대 남자도 누드모델을 하겠다며 협회 문을 두드렸다. 그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며 확신을 가지게 된 건 몸은 거짓을 말할 수 없으며,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하게 담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에 정면으로 맞서는 건 얼굴보다는 몸이다. 몸에는 그 사람의 나이, 평소 성격과 습관은 물론 은밀한 욕망까지도 배어있다.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까지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런 몸을 얼마나 잘 살피며, 돌봐주고 있는가? 하영은은 한 번쯤은 자신의 몸을 정면으로 인식해보라고, 그러면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거침없이 벗고 적당히 포즈만 잘 취하는 것을 누드모델의 전부로 여겼다면 오늘날의 하영은은 없었을 것이다. 하영은은 강도 높은 자기 관리와 직업의식을 가지고 이 일에 임해왔다고. 어느 순간부터는 진짜 제대로 하는 ‘누드모델’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사명감으로 일에 매진했다.

누드모델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도 이 일을 하려는 이유를 묻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은퇴한 중견기업의 CEO가 찾아왔을 때도, 어느 교회의 목사가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 은퇴한 CEO는 자신의 인생이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성취의 경험을 얻고자했고 그는 여든의 나이에 6년 차 베테랑 누드모델이 되었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일에 두려움을 가지게 된 목사는 누드모델을 하며 극복하고자 했고, 비로소 먼저 자신의 이야기도 꺼낼 줄 알고 적극적으로 봉사 활동도 나가는 등 자신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요즘도 하씨는 회원의 ‘성추행 고소’건으로 법원을 오간다. 누드모델과 사진·회화 작업자들이 지켜야 할 수칙 중에 ‘모델의 몸을 만지지 말 것’이 있다. 일상에서도 원치 않는 불쾌한 신체접촉은 성추행이 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몸을 바라볼 때 경솔해지기 쉬워요. ‘예쁘다’ ‘육덕지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모델들은 상처를 받죠. 그런 무언의 폭력과 성추행에 단호히 대응하려고 해요.”

이 에세이를 읽으며 놀란 건 우리 생활 곳곳에서 누드모델들이 정말 ‘열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캔버스 앞에 조각상처럼 서 있는 모습만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이 책의 표지에 ‘날 것 그대로 내 몸을 마주한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이렇게 누드모델을 하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책임감을 느낀 저자는 누드모델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도 꾸준히 싸워 나갔다. 인류 최초의 누드모델로 알려진 기원전 4세기경 실존했던 프리네의 이야기와 누드의 역사 등을 찾아보며 공부했고, 대학이나 문화센터 등 출강하는 모델들을 따라가 그림을 그리기 앞서 누드모델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와 태도를 설명하기도 했다. 예술은 물론 의학, 패션, 게임의 영역까지 넓어진 누드의 쓸모를 기회가 될 때마다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일에 대한 신념, 태도, 능력을 기반으로한 당당함이야말로 그녀를 지키는 동시에 누드모델 일을 하는 모든 모델들을 지키는 강력한 무기이자 유일한 보호막이었다.

우직하면서도 단호하게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며 그 분야를 고수해온 그녀의 이야기는, 누드모델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게 함은 물론 꾸밈없는 날 것 그대로의 몸이 주는 감동에 대해 독자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자기 관리와 직업의식을 가지고 이 일에 임해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진짜 제대로 하는 ‘누드모델’이 무엇인지 보여줘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더욱 일에 매진했다. 비록 시작은 사소했을지라도, 지금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누드모델이라고 자부한다. 이 이야기를 언젠가 한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다.(p.177)

저자 : 하영은

이름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활동한 우리나라의 첫 누드모델이자 오늘날까지 활동하는 최장수 누드모델. 1988년에 한 사진작가의 권유로 누드모델을 시작했다. 예술계부터 의학, 패션, 게임산업까지 폭넓게 누드모델들이 활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드모델에 대한 인식과 처우가 미비하다고 생각해 1996년 한국누드모델협회를 설립했다. 어느덧 협회 회원 수는 500여 명이 넘었다. 그녀는 이번 첫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일과 삶, 그리고 날것 그대로 내 몸을 마주한다는 것에 대해 들려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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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니우스 박물지 -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 지음, 존 S. 화이트 엮음, 서경주 옮김 / 노마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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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한 독자는 그저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2,000년 전에 한 사람이 쓴 책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수록된 내용이 한 사람이 생애 동안 쓸 정도의 책으로 믿기지 않는 것이다. 큰 나라에서 왕의 명령으로 쓴다 해도 쉽지 않을 일을 혼자서 직업의 일 이외의 시간에 할 수 있으리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이 같은 놀라움과 의심을 확인이라도 해줄 듯 이 책은 처음부터 '박물지'에 대한 역사 기록을 열거한 것을 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책에 따르면 박물지(博物志)는 ‘동물, 식물, 광물, 지질 따위의 사물이나 현상을 종합적으로 기록한 책’이란 뜻이다. 비록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동물지, HISTORIA ANIMALIUM』가 박물지 성격을 띤 원형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플리니우스의 『박물지』가 ‘박물지’라는 이름에 걸맞은 최초의 저작이다.

플리니우스가 쓴 저작 이외에도 중국 서진(西晉)의 문장가이자 시인인 장화(張華)가 엮은 『박물지』(전 10권), 프랑스의 박물학자 뷔퐁GEORGES-LOUIS LECLERC DE BUFFON의 『왕실박물관의 해설을 통한 박물지, 총론 및 각론HISTOIRE NATURELLE, G?N?RALE ET PARTICULI?RE, AVEC LA DESCRIPTION DU CABINET DU ROI』(전 44권)이 ‘박물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하니 금시초문이던 독자의 과문 탓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플리니우스의 저작들 중 지금까지 유일하게 전해지는 『박물지』(전 37권)는 그의 마지막 저작이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로마 시대의 방대한 단일 저작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고대의 지식을 총망라하고 있는 이 저작의 주제 영역은 오늘날 자연사NATURAL HISTORY로 이해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몇 년 후 베스파시아누스에 이어 로마의 황제가 될 티투스에게 헌정한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플리니우스는 문학적 형태로 자연 세계를 재창조하고자 했으며 각 항목을 독립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자연 전체의 한 부분으로 서술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관심사가 ‘자연 풍경에서의 인간 삶’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구성 요소들을 그 자체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에서의 역할에 대한 관점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다루는 범위는 백과사전식이지만, 구조는 현대의 백과사전과는 다르다. 더구나 『박물지』에 수록된 온갖 기이한 이야기와 로마의 경계 너머에 사는 다양한 인종에 관한 이야기는 로마 제국의 지리적 경계를 설정함과 동시에 온갖 인종과 자원이 모여드는 곳은 결국 로마라는 점을 보여 줌으로써 로마 중심적인 세계관과 정치 질서를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77년에 처음 10권이 출판되었고, 나머지는 사후에 조카인 소(小)플리니우스가 출판한 것으로 추정된다.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에서 천문학, 수학, 지리학, 민족학, 인류학, 생리학, 동물학, 식물학, 농업, 원예학, 약학, 광물학, 조각작품, 예술 및 보석 등과 관련된 약 2만 개의 항목을 많은 문헌을 참조해 상세하게 기술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풍속적 설명과 이용 방식 등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저작은 구체적인 사물에 관한 단순한 지식을 뛰어넘어 고대 서양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문헌으로 쓰이고 있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상당히 인기를 끌어 로마 시대부터 중세까지 여러 차례 전체 내용이 그대로 필사되었고, 베니스에서 첫 인쇄본이 출간되었다는 게 책의 설명이다. 이후 플리니우스의 『박물지』가 보여준 광범위한 주제, 원작자에 대한 언급, 색인 등의 구조는 백과사전 및 학술적 논저의 모델이 되었고, 그 다양한 내용은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중세 이후의 괴물과 상상 동물 이야기, 현대의 판타지 문학과 영화 그리고 온라인 게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검증해서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알려진 수많은 글과 책을 참조해서 기술한 것이다. 또한 괴물, 거인, 늑대인간 등 비과학적 내용도 많이 포함하고 있어 학문적 체계를 완전히 갖춘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특히 르네상스기인 15세기에 활판인쇄로 간행된 이후 유럽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은 이 책을 애독하고 인용했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과학사와 기술사에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 예술에 대한 자료로서 미술사적으로 귀중한 자료였다. 특히 고대 그리스ㆍ로마 시대의 예술에 대한 지식을 담고 있는 서적은 사실상 플리니우스의 『박물지』가 유일하다.

이번에 노마드에서 펴낸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번역되는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로, 미국의 버클리 고등학교 교장인 존 화이트(JOHN S. WHITE)가 교양인과 청소년이 이해하기 쉽도록 편집한 『청소년을 위한 플리니우스, THE BOYS’AND GIRLS’PLINY』(1885)를 텍스트로 삼았다고 출판사 측은 밝혔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발견되지만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평가한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현대의 백과사전과는 다소 다르지만 인간을 중점으로 인간에게 어떤 의미이며 역할을 하고 있는지의 관점에서 씌여 있다. 찬란했던 로마 제국시대에 쓰인 것이라 로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점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원본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대로 고등학교 교장인 존 화이트가 청소년 판으로 편집한 것을 번역했다고 한다. 원본은 37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고 옛날 언어로 되어있어서 번역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읽는 사람도 곤욕일 것이다. 천문, 수학, 지리학, 민족학, 인류학, 생리학, 동물학, 식물학, 농업, 원예학, 약한 광물학 조각 작품, 예술 등 종합적인 지식이 담겨 있는데, 그중에서 지구와 원소, 인간, 동물, 예술품과 장인들에 대해서만 담았다. 그래도 큰 양장본에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니, 원본은 얼마나 방대한 작업이었는가를 추정할 수 있다. 이 책은 물론 과학적인 부분도 있으나 비과학적인 내용도 많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현대의 판타지 세계관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한다. 부록에서는 현재 게임이나 영화등에 등장하는 상상 속 동물 중 이 책에서 빌려왔거나 영감을 받은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는 또 저자의 만물에 대한 인간 중심적이긴 하지만 세밀하고 심오한 고찰들이 담겨 있다. 양에 대한 묘사를 할 때 양 자체가 어떤 동물인가보다는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중점으로 살피고 있다. 우리가 만화나 그림을 보면 그 대상에 대해 더 잘 알수 있지만, 글로서만 보는 것은 상상력을 더 자극시키게 된다. 글만으로 이미지를 떠올리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중요한 능력이라니 상상력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으리라는 사실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이 저작물은 쓰여질 당시 세계를 탐구하는 데 한계가 있던 시절이라서 여러 기록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수집하고 기록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책에는 여러가지 사진과 후대에 그린 삽화들도 들어 있다. 원본에는 없었지만 후대에 이해를 돕기 위해 끼워넣은 것으로 책은 설명하고 있다. 당시 인쇄술은 없었고, 필사로 책을 만들었을 터라 간단한 그림이나 글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만 최소한의 삽화 그림을 추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동물을 설명할 때도 자세한 설명과 함께 그 시대의 생각과 관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함께 들어 있다. 대상을 그림 없이 글로서만 자세히 묘사를 하기 때문에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재미 있게 썼을 터다

이 책은 당시의 여러 가지가 불가능한 점을 감안하면 과연 혼자서 썼을까는 아직도 독자에게 의문으로 남아 있다. 더욱이 저자 플리니우스는 직업이 따로 있어 주로 밤 시간에 집필해 이 책을 완성했다니 처음 책을 읽을 때부터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놀라움이 가득하다.



저자 : 플리니우스(원작)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23~79)는 로마인이 알프스 이남의 갈리아라고 부르는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 코모Como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냈지만,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로마로 가서 이집트 문법학자인 아피온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는 아프리카, 이집트, 그리스 등을 여행하며 헤로도토스 같은 유명한 여행가가 되었으며, 스물세 살 때 게르마니아로 파견되어 폼포니우스 세쿤두스 휘하에서 군 복무를 하며 그의 총애를 받아 기병대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이 되었을 때 로마로 돌아와 법률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갈망이 걷잡을 수 없이 강해져서 법률 공부를 그만두고, 그가 잘 아는 폼포니우스의 생애와 게르마니아 전쟁의 역사를 저술하는 데 착수했다. 그가 쓴 『게르마니아 전쟁사Bella Germaniae』는 모두 20권이었는데 현재 한 권도 전하지 않는다. 네로 황제 치하에서 플리니우스는 히스파니아(에스파냐) 동남부 해안 근처의 행정장관이자 징세관에 임명되었다. 그가 그곳에서 근무하던 70년, 매제 루키우스 카이킬루스 킬로는 나중에 『서한집Epistulae』의 저자이자 법률가로 명성을 떨친 열 살 된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해 플리니우스는 임지에서 돌아오자마자 조카를 입양했다. 우리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조카(그를 소플리니우스로 부르기도 한다) 덕분이다. 플리니우스는 베수비오 화산이 마주보이는 항구 미세눔(지금의 미세노)의 해군기지 사령관으로 근무하던 중 79년 8월 24일과 25일에 걸친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 실종되었거나 조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화산 폭발로 헤르쿨라네움과 폼페이 그리고 오플론티스가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에 근처 스타비아이에 머물고 있던 그도 화산 연기에 질식사했다는 설이 있고, 19세기 미국의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제이컵 비글로Jacob Bigelow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 후 20세기 폼페이에서 발견된 유골 중에 플리니우스의 유골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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