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니우스 박물지 -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 지음, 존 S. 화이트 엮음, 서경주 옮김 / 노마드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접한 독자는 그저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2,000년 전에 한 사람이 쓴 책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수록된 내용이 한 사람이 생애 동안 쓸 정도의 책으로 믿기지 않는 것이다. 큰 나라에서 왕의 명령으로 쓴다 해도 쉽지 않을 일을 혼자서 직업의 일 이외의 시간에 할 수 있으리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이 같은 놀라움과 의심을 확인이라도 해줄 듯 이 책은 처음부터 '박물지'에 대한 역사 기록을 열거한 것을 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책에 따르면 박물지(博物志)는 ‘동물, 식물, 광물, 지질 따위의 사물이나 현상을 종합적으로 기록한 책’이란 뜻이다. 비록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동물지, HISTORIA ANIMALIUM』가 박물지 성격을 띤 원형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플리니우스의 『박물지』가 ‘박물지’라는 이름에 걸맞은 최초의 저작이다.

플리니우스가 쓴 저작 이외에도 중국 서진(西晉)의 문장가이자 시인인 장화(張華)가 엮은 『박물지』(전 10권), 프랑스의 박물학자 뷔퐁GEORGES-LOUIS LECLERC DE BUFFON의 『왕실박물관의 해설을 통한 박물지, 총론 및 각론HISTOIRE NATURELLE, G?N?RALE ET PARTICULI?RE, AVEC LA DESCRIPTION DU CABINET DU ROI』(전 44권)이 ‘박물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하니 금시초문이던 독자의 과문 탓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플리니우스의 저작들 중 지금까지 유일하게 전해지는 『박물지』(전 37권)는 그의 마지막 저작이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로마 시대의 방대한 단일 저작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고대의 지식을 총망라하고 있는 이 저작의 주제 영역은 오늘날 자연사NATURAL HISTORY로 이해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몇 년 후 베스파시아누스에 이어 로마의 황제가 될 티투스에게 헌정한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플리니우스는 문학적 형태로 자연 세계를 재창조하고자 했으며 각 항목을 독립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자연 전체의 한 부분으로 서술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관심사가 ‘자연 풍경에서의 인간 삶’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구성 요소들을 그 자체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에서의 역할에 대한 관점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다루는 범위는 백과사전식이지만, 구조는 현대의 백과사전과는 다르다. 더구나 『박물지』에 수록된 온갖 기이한 이야기와 로마의 경계 너머에 사는 다양한 인종에 관한 이야기는 로마 제국의 지리적 경계를 설정함과 동시에 온갖 인종과 자원이 모여드는 곳은 결국 로마라는 점을 보여 줌으로써 로마 중심적인 세계관과 정치 질서를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77년에 처음 10권이 출판되었고, 나머지는 사후에 조카인 소(小)플리니우스가 출판한 것으로 추정된다.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에서 천문학, 수학, 지리학, 민족학, 인류학, 생리학, 동물학, 식물학, 농업, 원예학, 약학, 광물학, 조각작품, 예술 및 보석 등과 관련된 약 2만 개의 항목을 많은 문헌을 참조해 상세하게 기술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풍속적 설명과 이용 방식 등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저작은 구체적인 사물에 관한 단순한 지식을 뛰어넘어 고대 서양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문헌으로 쓰이고 있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상당히 인기를 끌어 로마 시대부터 중세까지 여러 차례 전체 내용이 그대로 필사되었고, 베니스에서 첫 인쇄본이 출간되었다는 게 책의 설명이다. 이후 플리니우스의 『박물지』가 보여준 광범위한 주제, 원작자에 대한 언급, 색인 등의 구조는 백과사전 및 학술적 논저의 모델이 되었고, 그 다양한 내용은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중세 이후의 괴물과 상상 동물 이야기, 현대의 판타지 문학과 영화 그리고 온라인 게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검증해서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알려진 수많은 글과 책을 참조해서 기술한 것이다. 또한 괴물, 거인, 늑대인간 등 비과학적 내용도 많이 포함하고 있어 학문적 체계를 완전히 갖춘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특히 르네상스기인 15세기에 활판인쇄로 간행된 이후 유럽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은 이 책을 애독하고 인용했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과학사와 기술사에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 예술에 대한 자료로서 미술사적으로 귀중한 자료였다. 특히 고대 그리스ㆍ로마 시대의 예술에 대한 지식을 담고 있는 서적은 사실상 플리니우스의 『박물지』가 유일하다.

이번에 노마드에서 펴낸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번역되는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로, 미국의 버클리 고등학교 교장인 존 화이트(JOHN S. WHITE)가 교양인과 청소년이 이해하기 쉽도록 편집한 『청소년을 위한 플리니우스, THE BOYS’AND GIRLS’PLINY』(1885)를 텍스트로 삼았다고 출판사 측은 밝혔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발견되지만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평가한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현대의 백과사전과는 다소 다르지만 인간을 중점으로 인간에게 어떤 의미이며 역할을 하고 있는지의 관점에서 씌여 있다. 찬란했던 로마 제국시대에 쓰인 것이라 로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점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원본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대로 고등학교 교장인 존 화이트가 청소년 판으로 편집한 것을 번역했다고 한다. 원본은 37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고 옛날 언어로 되어있어서 번역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읽는 사람도 곤욕일 것이다. 천문, 수학, 지리학, 민족학, 인류학, 생리학, 동물학, 식물학, 농업, 원예학, 약한 광물학 조각 작품, 예술 등 종합적인 지식이 담겨 있는데, 그중에서 지구와 원소, 인간, 동물, 예술품과 장인들에 대해서만 담았다. 그래도 큰 양장본에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니, 원본은 얼마나 방대한 작업이었는가를 추정할 수 있다. 이 책은 물론 과학적인 부분도 있으나 비과학적인 내용도 많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현대의 판타지 세계관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한다. 부록에서는 현재 게임이나 영화등에 등장하는 상상 속 동물 중 이 책에서 빌려왔거나 영감을 받은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는 또 저자의 만물에 대한 인간 중심적이긴 하지만 세밀하고 심오한 고찰들이 담겨 있다. 양에 대한 묘사를 할 때 양 자체가 어떤 동물인가보다는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중점으로 살피고 있다. 우리가 만화나 그림을 보면 그 대상에 대해 더 잘 알수 있지만, 글로서만 보는 것은 상상력을 더 자극시키게 된다. 글만으로 이미지를 떠올리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중요한 능력이라니 상상력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으리라는 사실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이 저작물은 쓰여질 당시 세계를 탐구하는 데 한계가 있던 시절이라서 여러 기록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수집하고 기록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책에는 여러가지 사진과 후대에 그린 삽화들도 들어 있다. 원본에는 없었지만 후대에 이해를 돕기 위해 끼워넣은 것으로 책은 설명하고 있다. 당시 인쇄술은 없었고, 필사로 책을 만들었을 터라 간단한 그림이나 글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만 최소한의 삽화 그림을 추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동물을 설명할 때도 자세한 설명과 함께 그 시대의 생각과 관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함께 들어 있다. 대상을 그림 없이 글로서만 자세히 묘사를 하기 때문에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재미 있게 썼을 터다

이 책은 당시의 여러 가지가 불가능한 점을 감안하면 과연 혼자서 썼을까는 아직도 독자에게 의문으로 남아 있다. 더욱이 저자 플리니우스는 직업이 따로 있어 주로 밤 시간에 집필해 이 책을 완성했다니 처음 책을 읽을 때부터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놀라움이 가득하다.



저자 : 플리니우스(원작)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23~79)는 로마인이 알프스 이남의 갈리아라고 부르는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 코모Como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냈지만,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로마로 가서 이집트 문법학자인 아피온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는 아프리카, 이집트, 그리스 등을 여행하며 헤로도토스 같은 유명한 여행가가 되었으며, 스물세 살 때 게르마니아로 파견되어 폼포니우스 세쿤두스 휘하에서 군 복무를 하며 그의 총애를 받아 기병대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이 되었을 때 로마로 돌아와 법률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갈망이 걷잡을 수 없이 강해져서 법률 공부를 그만두고, 그가 잘 아는 폼포니우스의 생애와 게르마니아 전쟁의 역사를 저술하는 데 착수했다. 그가 쓴 『게르마니아 전쟁사Bella Germaniae』는 모두 20권이었는데 현재 한 권도 전하지 않는다. 네로 황제 치하에서 플리니우스는 히스파니아(에스파냐) 동남부 해안 근처의 행정장관이자 징세관에 임명되었다. 그가 그곳에서 근무하던 70년, 매제 루키우스 카이킬루스 킬로는 나중에 『서한집Epistulae』의 저자이자 법률가로 명성을 떨친 열 살 된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해 플리니우스는 임지에서 돌아오자마자 조카를 입양했다. 우리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조카(그를 소플리니우스로 부르기도 한다) 덕분이다. 플리니우스는 베수비오 화산이 마주보이는 항구 미세눔(지금의 미세노)의 해군기지 사령관으로 근무하던 중 79년 8월 24일과 25일에 걸친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 실종되었거나 조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화산 폭발로 헤르쿨라네움과 폼페이 그리고 오플론티스가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에 근처 스타비아이에 머물고 있던 그도 화산 연기에 질식사했다는 설이 있고, 19세기 미국의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제이컵 비글로Jacob Bigelow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 후 20세기 폼페이에서 발견된 유골 중에 플리니우스의 유골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