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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뒤 맑음 - 상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이 책 『집 떠난 뒤 맑음』의 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한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일본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한국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표작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이후 많은 작품들이 줄지어 변역돼 소개됐다. 지난해 6월 에세이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이후 처음 소개되는 소설로 독자는 기억한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미국을 ‘보는’ 여행을 떠나는 두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련된 문체와 섬세한 심리 묘사로 오랜 시간 사랑을 받은 작가는,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2020년 미국의 생생한 풍경과 사람들을 그려 내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레이나와, “예스”보다 “노”가 더 많은 까다로운 사촌 언니 이츠카. 뉴욕에 거주하는 14살과 17살의 소녀 둘은 단둘이 미국을 ‘보는’ 여행길에 나선다. 부모들에게 편지 한 장만 남긴 채로.
"가출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여행이 끝나면 돌아올 거예요."
레이나는 학교에 다니는 중이었고, 이츠카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채 고졸인증시험에 합격해 미국 대학으로 유학 와 아직 정식 대학생은 아니지만 대학 부설 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레이나의 부모들은 너무 길어진 여행에 돈이 떨어지면 돌아오겠다는 생각에, 들고 나간 신용카드를 중단시키지만 이츠카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가며 여행을 계속한다. 소설 같기도 하고, 동화 같기도 하다. 10대 일본인 소녀 두 명이서 미국 전역을 여행한다는 사실을 걱정하지 않은 부모가 있을 리 없다. 더구나 인종이 다른 소녀들이 미국 물정도 제대로 알 리 없는데... 물론 17살의 이츠카가 21살이라고 나이를 속이기도 했지만,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술을 파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 타고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쉽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들의 동화 같은 마음엔 무서움보다 미국 대륙 여행의 호기심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물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에게 도움도 받고, 그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읽는 내내 참 이들을 노리는 치한이나 불량배의 등장이 없는 것은 독자가 미국 문화를 너무 몰라서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어쩌면 미국 문화의 어두운 부분보다 밝은 부분만 등장시키는 작가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독자의 미국 문화 엿보기는 일부지만 달성한 셈이다.
사실 독자는 다른 곳은 많이 가봤지만 미국 본토 대륙엔 아직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때문에 미국 문화에 대해 TV나 영화에 나오는 이상의 것은 잘 모른다. 때문에 에쿠니 가오리의 문장으로 된 미국의 문화 엿보기가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이유이기도 했다.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대한 동경심과 나이 들어도 사라지지 않은 호기심이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부추겼다. 특히 코로나의 장기화로 오랫동안 해외 여행을 못하니 몸이 근질근질하기도 하다.
두 아이의 여행에 레이나의 엄마인 리오나는 걱정에 잠기고, 아빠인 우루우는 자신의 ‘안정적’인 일상이 틀어졌음에 분노한다. 리오나는 남편 우루우의 태도에 거리감을 느끼며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온전한 개인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두 아이는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고, 히치하이크를 하고, 처음 보는 사람 집에서 도그 키퍼까지 하며 여행을 계속한다. 때로는 평온하게, 때로는 해프닝도 생기는 그들의 여행은 어린아이답게 무모하지만 용감하다.
이들이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뜨개질하던 남자 크리스다. 그를 다른 도시에서 재회하며 이츠카는 그와 있을 때 편안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사랑 같은 감정은 아니지만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는 크리스와 이츠카, 레이나를 보며 낯선 사람들을 보며 불안이나 공포감을 느끼는 아슬아슬한 여행이 아니라 동화 같은 나라를 여행하다 여행지에서 만나 좋은 인연을 만나고 친밀감을 나누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독자 역시 해외 여행을 되돌아보면 그런 일이 가장 오래 기억이 남는다.
수십 년 동안 혼자서 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 독자로서는 여행의 묘미를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들의 여행을 불안한 감정으로 읽어내려 갔지만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 사실에 다행스럽고 놀라기도 했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좀 무섭게만 느껴졌지만 이 책을 접하고부터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대다수가 선량한 시밀들인 나라구나 하는
기분 좋은 느낌도 함께하면서 하권을 기다리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