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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드모델입니다 - 날것 그대로 내 몸을 마주한다는 것에 대하여
하영은 지음 / 라곰 / 2021년 6월
평점 :

“순수예술뿐 아니라 패션·의료·영상·게임 등 인체와 알몸을 필요로 하는 모든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어요. 국내 유명 의학서적에 실린 인체 지도는 우리 협회 소속 남자 모델의 몸을 그대로 그려 넣은 거죠. 2002년부터 방영 중인 KBS 다큐멘터리 ‘생로병사의 비밀’ 도입부 인서트 영상 속 몸의 주인공이 바로 저에요. 간호학과 학생들의 주사 실습에 동원되는 둔부 모양의 실리콘 모형도 제 엉덩이를 모델로 제작했고요. 모유 수유하는 엄마와 아기의 사진 속 가슴을 촬영한 적도 있죠.”
이 책 『나는 누드모델입니다』의 저자 하영은의 일간신문 인터뷰 내용이다. 저자는 책을 낸 후 인터뷰에서 누드모델로 데뷔해 오늘까지 약 33년 동안 수치심, 자긍심 그리고 직업인의 마음을 모두 갖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치심은 처음 막 데뷔했을 때의 잠깐일 뿐 예술가의 아름다운 피사체로서의 자부심이 컸다고 말한다.
“팬티까지 벗은 알몸으로 근육과 뼈를 움직여 감정을 동작으로 전달하는 일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만큼 성공하면 당당함·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해요. 게임·디지털 영상 작업에서도 우리를 찾으니까 요즘은 인생을 재밌게 살려는 젊은 친구들도 많이 찾아옵니다.” 독자로서는 처음 접하는 누드모델의 삶을 호기심으로 책을 선택했지만 그들의 누드모델이 된 동기는 예술, 직업, 삶 등이 이유이고 독자에게도 공감을 주었다.

누드모델 하영은은 매일 아침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전신거울 앞에 선다. 어제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살핀다. 30여 년간 몸을 갈고닦는 그녀만의 방식이다.
“밤사이 제 몸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에요. 살이 얼마나 빠졌나 이런 것보다 중요한 건 혹시 몸에 상처라도 생기진 않았는지 작은 흔적이라도 찾는 거죠. 누군가에게 최고의 모델이 되기 위해선 저도 내 몸을 건강하게 지키고 사랑해야 하니까요.”
“어쩌다 누드모델이 됐어요?” 하영은이 잊힐 만하면 받는 질문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고 본능이다. 그 아름다움을 가장 직접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피사체가 바로 우리의 몸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통해 아름다움의 본질에 가닿는다. 누드모델의 몸은 때론 예술가의 손을 거쳐 회화 작품이 되기도 하고, 조각품이 되어 미술관에 전시된다. 때로는 패션 분야에서 의상 제작을 위한 기초 작업에 동원되며, 움직임을 따서 게임 캐릭터로 만들어진다. 의료용 인체모형이 되어 누군가의 삶에 어우러지기도 한다. 이 책은 처음에는 수줍었지만, 이제는 이 일을 정말 사랑하게 됐다고 말한다. 직업인으로서 누드모델임을 국내 첫 공개한 이후 오늘날까지 최장수로 활동 중인 저자의 고백이다.

저자에 따르면 몸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다. 몸에는 그 사람의 나이, 성격, 욕망, 습관이 베어 있다. 그 사람의 몸을 보면 스스로 얼마나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 몸을 사랑하고 아낀 몸은 그렇지 않은 젊은이의 몸보다 훨씬 아름답다. 국내 최초로 공개 누드모델을 시작하며 1996년 한국누드모델협회를 설립한 하영은. 수많은 모델들이 누드모델을 하겠다며 그녀를 찾는다. 더 이상 쪼개질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발달한 근육이 온몸을 덮고 있던 발레리노도 있었고, 이른 나이에 출산과 이혼을 겪으며 풍만한 살집을 가진 여성도 있었다. 앙상하게 마른 60대 남자도 누드모델을 하겠다며 협회 문을 두드렸다. 그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며 확신을 가지게 된 건 몸은 거짓을 말할 수 없으며,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하게 담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에 정면으로 맞서는 건 얼굴보다는 몸이다. 몸에는 그 사람의 나이, 평소 성격과 습관은 물론 은밀한 욕망까지도 배어있다.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까지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런 몸을 얼마나 잘 살피며, 돌봐주고 있는가? 하영은은 한 번쯤은 자신의 몸을 정면으로 인식해보라고, 그러면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거침없이 벗고 적당히 포즈만 잘 취하는 것을 누드모델의 전부로 여겼다면 오늘날의 하영은은 없었을 것이다. 하영은은 강도 높은 자기 관리와 직업의식을 가지고 이 일에 임해왔다고. 어느 순간부터는 진짜 제대로 하는 ‘누드모델’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사명감으로 일에 매진했다.
누드모델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도 이 일을 하려는 이유를 묻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은퇴한 중견기업의 CEO가 찾아왔을 때도, 어느 교회의 목사가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 은퇴한 CEO는 자신의 인생이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성취의 경험을 얻고자했고 그는 여든의 나이에 6년 차 베테랑 누드모델이 되었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일에 두려움을 가지게 된 목사는 누드모델을 하며 극복하고자 했고, 비로소 먼저 자신의 이야기도 꺼낼 줄 알고 적극적으로 봉사 활동도 나가는 등 자신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요즘도 하씨는 회원의 ‘성추행 고소’건으로 법원을 오간다. 누드모델과 사진·회화 작업자들이 지켜야 할 수칙 중에 ‘모델의 몸을 만지지 말 것’이 있다. 일상에서도 원치 않는 불쾌한 신체접촉은 성추행이 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몸을 바라볼 때 경솔해지기 쉬워요. ‘예쁘다’ ‘육덕지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모델들은 상처를 받죠. 그런 무언의 폭력과 성추행에 단호히 대응하려고 해요.”
이 에세이를 읽으며 놀란 건 우리 생활 곳곳에서 누드모델들이 정말 ‘열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캔버스 앞에 조각상처럼 서 있는 모습만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이 책의 표지에 ‘날 것 그대로 내 몸을 마주한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이렇게 누드모델을 하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책임감을 느낀 저자는 누드모델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도 꾸준히 싸워 나갔다. 인류 최초의 누드모델로 알려진 기원전 4세기경 실존했던 프리네의 이야기와 누드의 역사 등을 찾아보며 공부했고, 대학이나 문화센터 등 출강하는 모델들을 따라가 그림을 그리기 앞서 누드모델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와 태도를 설명하기도 했다. 예술은 물론 의학, 패션, 게임의 영역까지 넓어진 누드의 쓸모를 기회가 될 때마다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일에 대한 신념, 태도, 능력을 기반으로한 당당함이야말로 그녀를 지키는 동시에 누드모델 일을 하는 모든 모델들을 지키는 강력한 무기이자 유일한 보호막이었다.
우직하면서도 단호하게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며 그 분야를 고수해온 그녀의 이야기는, 누드모델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게 함은 물론 꾸밈없는 날 것 그대로의 몸이 주는 감동에 대해 독자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자기 관리와 직업의식을 가지고 이 일에 임해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진짜 제대로 하는 ‘누드모델’이 무엇인지 보여줘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더욱 일에 매진했다. 비록 시작은 사소했을지라도, 지금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누드모델이라고 자부한다. 이 이야기를 언젠가 한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다.(p.177)
저자 : 하영은
이름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활동한 우리나라의 첫 누드모델이자 오늘날까지 활동하는 최장수 누드모델. 1988년에 한 사진작가의 권유로 누드모델을 시작했다. 예술계부터 의학, 패션, 게임산업까지 폭넓게 누드모델들이 활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드모델에 대한 인식과 처우가 미비하다고 생각해 1996년 한국누드모델협회를 설립했다. 어느덧 협회 회원 수는 500여 명이 넘었다. 그녀는 이번 첫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일과 삶, 그리고 날것 그대로 내 몸을 마주한다는 것에 대해 들려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