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의 햇빛 일기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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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해인의 햇빛 일기』를 처음 접한 독자의 느낌은 감사와 감동이었다. 시인 이해인이 투병 중이라고 들었었는데 시집을 낼 정도로 치유가 되었다는 생각에 대한 감사가 먼저였다. 그 다음 8년 만에 낸 시인의 시집에 감사가 가득함에 감동이었다. 암 투병을 오랫동안 해온 데 대해서도 맑고 고운 심성이 전혀 변함이 없고,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독자에게는 더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시 100여 편을 선물 받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해인 시인은 이 시집이 8년 만에 낸 책이라고 한다. 시인을 좋아하는 독자이지만 벌써 8년이나 됐나? 하는 생각에 말로만 좋아하고 위로를 받았지만 한 번도 진정한 위로는 전해 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주었다.

수도자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늘 따스한 사랑을 전해온 이해인 수녀는 이 시집을 통해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독자에게는 위안이 된다. 병마와의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면서도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전하는 이 시집의 시들은 어느 한 편 버릴 것 없이 소중하게 독자의 마음에 와 닿는다. ‘위로 시인’이자 ‘치유 시인’으로서 아픈 이들에게 건네는, 반짝이는 진주처럼 맑게 닦인 시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시집은 1부 〈내 몸의 사계절〉, 2부 〈맨발로 잔디밭을〉, 3부 〈좀 어떠세요?〉, 4부 〈촛불 켜는 아침〉이란 제목이 달려 있다. 이 가운데 1부와 2부는 투병 중에도 나날이 써낸 신작 시만 오롯이 실려 있다.

투병 중 어느 정도 차도가 보이자 시인은 햇빛을 쏘이며 「햇빛 향기」를 듬뿍 들이마신다. 그 햇빛이 "하도 황홀하여 눈이 멀 뻔했네 // 다시 한번 / 살아 있는 기쁨 / 숨을 쉬는 희망 / 내 남은 시간들을 / 어찌 살라고 // 햇빛은 저리도 눈부신지!"(p.19~20)라고 읊조리며 햇빛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독자들에게 보낸다.

 


 

절망적인 병의 악화와 맞서 이겨낸 환자들은 누구보다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내보인다고 의사들은 전한다. 생명에 대한 감사가 희망으로 빛날 때 사람들의 삶의 의지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투병 중에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 이해인은 병마를 마주 하기 전 "하늘에서 숲에서 / 새들이 노래하고 / 땅에는 꽃들이 많이 피고 / 나비가 날아오면 / 여기가 천국인가 / 늘 / 감탄하곤 했지요"라고 세상에 감사했다.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저자가 사는 세상이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병마가 닥치고 힘든 투병 생활을 이겨낸 후 천국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달라진 듯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력이 감퇴할수록

내가 나를 알아보고

다른 이를 알아보고

매일매일 함께 사는 기쁨을

새롭게 감사할 수 있으니

여기가 천국인 것 같네요

아주 먼 그 나라는

안 가봐서 모르겠고

지금 여기야말로

미리 누리는 천국이란 생각을 하며

명랑한 웃음을 되찾는 중이에요"(p.85~86)

- 「천국에 대한 생각」 중에서

 

 

시인은 이제 작은 햇빛 한줄기로 가닿고자 한다. 때로 생경하고 낯선 고통 앞에서도 “아파도 외로워하진 않으리라” 결심하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인의 맑고 고운 언어들이, 우리의 상처와 슬픔에도 “환한 꽃등” 하나씩 밝혀줄 것이다. “저마다 무슨 일인가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날을 샌 존재들에게” 시인은 작은 햇빛 한줄기로 가닿고자 한다(황인숙 시인)고 추천의 글을 내놓았다. 때로 생경하고 낯선 고통 앞에서도 “아파도 외로워하진 않으리라” 결심하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인의 맑고 고운 언어들이, 우리의 상처와 슬픔에도 “환한 꽃등”(「아픈 날의 일기 1」) 하나씩 밝혀줄 것이다. 이에 시인은 “이 시집의 제목을 ‘햇빛 일기’라고 한 것은 햇빛이야말로 생명과 희망의 상징이며 특히 아픈 이들에겐 햇빛 한줄기가 주는 기쁨이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고 답하고 있다.(〈시인의 말〉 중에서)

시인은 "언제부터인가 제게는 '위로 시인' '치유 시인'이라는 단어가 이름 앞에 자연스럽게 붙긴 하는데 민망하긴 하면서도 한편으론 이 말이 반갑게 들립니다. 지난 수십 년간 우정, 사랑, 기도 등등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시를 쓴 적이 있지만 처음부터 아픔이나 고통을 주제로 글을 쓰거나 책을 엮을 생각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암 환자가 된 2008년부터는 자연스레 아픔, 고통, 이별이 글에 자주 등장했고 이를 읽은 독자들이 공감의 표현을 해주니 계속해서 쓰게 된 것 같습니다."고 털어놓는다.

또 자신이 신분이 수도자여서 그런지 참으로 많은 분들이 이렇게 저렇게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며 위로받고 싶어해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적도 있었다고 〈시인의 말〉을 통해 고백하기도 한다. 벙마와 싸우면서 큰 수술 후 회복실에서 듣던 사람들의 웃음소리, 다시 바라다본 푸른 하늘, 미음과 죽만 먹다 처음으로 밥을 먹던 시간의 감사한 설렘 등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시인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시인에게는 지난 날 독자들의 이러한 호칭에 공감도가 낮았으나 오랜 투병 끝에 서서히 깨닫게 됐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자신의 아픔을 한 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그리 쉽진 않았으나 그런 노력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 때에만 다른 이에게도 비로소 조금 더 좋은 위로자가 될 수 있음을 투병하는 동안 경험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이 시집을 내기까지 시인은 혼신의 힘을 쏟았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있다. "이 시집 안의 시들이 누군가에게 다가가 작은 위로, 작은 기쁨, 작은 희망의 햇빛 한줄기로 안길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하루를 살아야겠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는 '또 하루를 살았구나' 감탄의 기도를 바치면서, 기도하면서 우리 함께 길을 가기로 해요"라며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몸이 아파도 시는 계속 나오는 게 신기하네?'라며 감탄하는 수녀님들, 특히 힘겹게 투병 중인 수녀님들께 이 시집을 바친다"고 덧붙인다.

아파도 외로워하진 않으리라

아무도 모르게 결심했지요

 

상처를 어루만지는

나의 손이 조금은 떨렸을 뿐

내 마음엔 오랜만에

환한 꽃등 하나 밝혀졌습니다

- 「아픈 날의 일기 1」 중에서

 


 

암 투병을 시작할 무렵 지난 2011년 에세이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를 출간 후 시인은 인터뷰를 통해 “사람이기 때문에 미련이 있거나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게 될 수 있잖아요. 기껏해야 나는 메모지, 편지지, 스티커 몇 장에 애착을 가지지만. 그리고 조개껍질하고. 요즘에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어요. 법정 스님이 그런 얘길 했지만, 물건은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빛이 나는 거지, 죽고 나면 빛을 잃거든요. 주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건강할 때 나누라는 그 말이 항상 깊이 와 닿아서, 나도 요즘 애착 갖고 있는 책들은 도서관에 보내고, 물건은 나눠주고 있어요. 어떤 수녀님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수녀님, 왜 이래. 떠날 준비하는 거야?’ 하지만, 물건이 빛날 때 정리하는 거예요. 기쁘더라고요. 거기서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비우려고 하니까, 어디에도 걸림, 매임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투병에 대해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8년 간의 고통스럽고 지리한 암 투병 후 내놓은 시들이 이 책 1부 ‘내 몸의 사계절’과 2부 ‘맨발로 잔디밭을’은 투병 중에도 나날이 써낸 신작 시들로 엮었다

 

"그래 천국 가는 길은

다시 천진한 어린이가 되어

밝게 웃고 맑게 살고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믿음을 배우는 거라고

그게 비법인 것 같다고

답을 할까보다"(p.52)

- 「천국 가는 길」 중에서

 


 

이해인 수녀가 시집을 낸다는 소식을 누구보다 일찍 알았을 시인 황인숙이 이 책의 뒷 부분에 〈추천의 글〉을 썼다. 아마 기쁘고 행복한 느낌이었을 것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황인숙 시인은 이 글을 통해 "이해인 수녀님은 얼마나 행복한 시인이신지요! 시인이 궁극적으로 사랑의 전도사라며, 이해인 수녀님은 바탕이 그 궁극이시네요. 이해인 수녀님 시에 '행복하다'는 시어가 드물지 않은데, 그냥 시인인 저는 평소에도 '다행'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다행의 '행'은 '행복'보다 '행운'을 뜻하지요. 썩 나쁘지는 않은 것이니 아슬아슬 제 인생도 '그냥 그냥' 다행입니다만."(p.255) 황인숙 시인은 이해인 수녀의 시 가운데 묵상적인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시 「가을 편지」를 꼽아 맺음말을 대신한다.

 

이름 없이 떠난 이들의

이름 없는 꿈들이

들국화로 피어난 가을 무덤가

흙의 향기에 취해

가만히 눈을 감는 가을

 

(······)

 

누구나 한 번은

수의를 준비하는 가을입니다

 


 

저자 : 이해인(李海仁)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삼 일 만에 받은 세례명이 ‘벨라뎃다’, 스무 살 수녀원에 입회해 첫 서원 때 받은 수도명이 ‘클라우디아’이다. ‘넓고 어진 바다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뜻을 담은 이름처럼, 부산에 있는 바닷가 수녀원의 ‘해인글방’에서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수십 년간 폭넓은 독자층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시는 교과서에도 여러 편 수록되어 있고 전국의 산과 공원에 수많은 시비로도 새겨져 있다.

수도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기도와 시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수녀 시인.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필리핀 성 루이스 대학 영문학과와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부산 성 베네딕도회 수녀로 봉직중이다. 1964년 수녀원(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 1976년 종신서원을 한 후 오늘까지 부산에서 살고 있다. 1970년 『소년』지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한 이후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시간의 얼굴』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작은 위로』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작은 기쁨』 『희망은 깨어 있네』 『작은 기도』 『이해인 시 전집 1· 2』 등의 시집을 펴냈고, 동시집 『엄마와 분꽃』, 시선집 『사계절의 기도』를 펴냈다. 산문집으로는 『두레박』 『꽃삽』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기쁨이 열리는 창』 『풀꽃 단상』 『사랑은 외로운 투쟁』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시와 산문 을 엮은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등이 있다. 기도시 그림책 『어린이와 함께 드리는 마음의 기도』, 동화 그림책 『누구라도 문구점』을 냈다. 그밖에 마더 테레사의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외 몇 권의 번역서 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짧은 메시지에 묵상글을 더한 『교황님의 트위터』가 있다. 그의 책은 모두가 스테디셀러로 종파를 초월하여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초·중·고 교과서에도 여러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제9회 새싹문학상, 제2회 여성동아대상, 제6회 부산여성문학상, 제5회 천상병 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해인 수녀는 어머니 1주기(2008년 9월 8일)를 기념한 열 번째 시집의 원고를 탈고하자마자 뜻밖의 암 선고를 받았다. 곧바로 대수술을 받고 잠깐 동안의 회복 기간을 거쳐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시인으로서 40년, 수도자로서 50년의 길을 걸어온 이해인 수녀는 오늘도 세상을 향해 시 편지를 띄운다. 삶의 희망과 사랑 의 기쁨, 작은 위로의 시와 산문은 너나없이 숙명처럼 짊어진 생활의 숙제를 나누는 기묘한 힘을 발휘한다. 멀리 화려하고 강렬한 빛을 좇기보다 내 앞의 촛불 같은 그 사랑, 그 사람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는 ‘조금씩 사라져가는 지상에서의 남은 시간들’, 아낌없는 사랑의 띠로 우리를 연결 짓게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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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방에 아무나 들이지 마라 - 불편한 사람들을 끊어내는 문단속의 기술
스튜어트 에머리 외 지음, 신봉아 옮김 / 쌤앤파커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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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당신의 인생을 만든다.” 내 마음의 방을 관리하는 ‘방의 규칙’을 정해, 가치 있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는 인간관계의 기술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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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참 오랜만에 해보는 질문이다. 어렸을 적 사춘기 무렵 선생님, 혹은 부모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어떻게 살 것인지 인생관을 세우고 원하는 길로 매진하라." 교과목이 달라도 각 교과 선생님들도 수업 이외 여담을 할 때마다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들은 자연스레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 즉 직업으로 무엇을 택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대체적으로 이때 정한 인생관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갖고 살아왔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아마 대부분 그때의 생각에 차이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독자도 변했으니까. 또 주변 친구들 중에도 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살아오면서 많이 변한다. 이때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좋은 이유든 나쁜 이유든 영향을 받았기에 독자도 그런 생각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때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온 동안 오늘날 세상은 거대하고 복잡하게 변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해 맞춰 가기 힘들고 버거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했다. 누구나 사회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좋든 싫든.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독자는 딱히 내키지 않는 사람들을 거절하지 못하는 바람에 떠밀리듯 인연을 맺은 뒤 고통을 겪었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이 골치 아픈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사전에 아예 차단하기에 이르렀다. 인간관계만큼 시대와 세대를 넘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이 책 『당신의 방에 아무나 들이지 마라』는 매우 폐쇄적인 삶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표제어가 명령형에 부정의 의식이 깔려 있다. '아무도'라는 말로 미루어 사람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CNN이 ‘현대 네트워킹의 아버지’라 칭하는 비즈니스 네트워크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인 아이반 마이즈너는 "현명한 사람은 불편한 관계를 잘 끊는 사람이 아니라 애초에 나쁜 관계를 시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전에 올바로 결정할 수 있다면 이후 발생할 고통과 에너지 낭비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이즈너와 스튜어트 에머리, 더그 하디가 공동 집필했다. 모두 자기계발서 집필하는 작가들이다. 공동 저자(이하 저자)들은 사회에서 비즈니스 네트워크 개발, 책, 잡지, 인터넷 편집자로 일하는 동안 각각 엄청난 양의 책과 기사 등을 배출한 자기계발 베테랑들이다. 이들이 모든 삶이 좋든 나쁘든 간에 겹겹의 인간관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인간관계의 진실을 파헤침으로써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바탕으로 이책을 썼다.

이 책은 출간 이후 입소문만으로 미국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고 한다. “당신의 방에는 누가 있습니까?”라는 간단하지만 통찰력 있는 질문이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고 생각된다. 독자들의 눈길 끝에는 당연히 저자들이 함께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이 제시돼 있다. 이 개념은 지금까지 살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방에서 함께 산다는 독특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물론 '방'이란 개념은 은유적이다. 자신의 마음속을 은유한 것이다. 과학자들이 밝힌 바로 살펴보면 이 책의 주장은 진실과 맞닿아 있다. 뇌과학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방식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알고 지낸 수많은 사람들의 영향이 알게 모르게 남아 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결국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내 모습을, 내 인생을 만드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관계는 마치 피아노의 현과 같아서 좋은 사람, 함께 하면 편하고 잘 맞는 사람과 함께하면 공명이 일어나는 반면 신뢰할 수 없는 사람, 불편함과 불쾌감을 주는 사람을 보면 불협화음이 발생한다. 따라서 내 방 안에 있는 사람들, 즉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들과의 관계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삶이 혼란스럽다고 느껴진다면 높은 확률로 이상한 사람들이 설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방 안에 들여야 하고, 이미 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이 책이 쓰인 이유이자, 책의 주제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질문들은 모두 이 방에서 일어난다. 앞으로도 함께할 사람과 지워야 할 사람이 함께 있는 방이다. 다만 거리로서 차이를 두고 평생 함께할 존재들인 것이다.

저자들은 인간관계라는 방에 한번 들어온 사람은 결코 나갈 수 없고 영원히 함께 있다고 전제한다. 과거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한 번 일어난 과거의 일은 다시 바꿀 수 없다. 오직 미래의 자신을 위해 스스로가 가진 마음에서 친소 관계를 따져 선택해 가까이 둘 수 있다. 또 자신의 미래에 도움이 안 되는, 혹은 장애가 된다면 멀리 떨어지게 할 수는 있다. 이에 따라 누구를 방에 들어오게 할지, 일단 들어온 사람들은 어디에 머물게 할지 스스로 신중히 결정해야 자기 삶을 원하는 대로 이끌어갈 수 있다. 이 책은 ‘문지기’와 ‘관리인’의 개념으로 이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문지기는 문단속을 하는 사람이다. 즉, 누군가 방에 들어오려고 할 때 허락하거나 거절하는 역할을 한다. 자기 마음 안에 '문지기'와 '관리인'을 따로 둔다는 말은 얼핏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차분히 생각하면 금세 이해 가능하다.

 


 

'관리인' 역시 말 그대로 방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내 마음과 일상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시끄럽고 골치 아픈 사람은 안 보이는 방구석으로 보내고 때로는 가방에 넣어 자물쇠를 잠가버리기도 한다. 문지기와 관리인의 역할은 단순해 보이지만 인간관계를 제대로 이끌어가는 중요한 장치이다. 각자 자신의 문지기와 관리인의 이미지를 최대한 효율적인 모습으로 구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관계를 추구할 수 있다. 이 책은 문지기와 관리인이라는 흥미롭고 효과적인 방법을 비롯해 여러 도구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무나 방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단속을 할 수 있으며, 일단 들어온 사람들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핵심적인 기술은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인식을 바로잡아주며, 이를 통해 관계에서의 무게중심을 나 자신에게 가져오도록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자신의 방'이 중요한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의 방이 곧 자신의 인생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고, 때로는 닮아가고 때로는 반발하며 살아간다. 인간관계는 삶의 축소판이고, 우리의 세계는 결국 그 속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자주 어울리는 친구 세 명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스스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깨뜨리는 사람이 자꾸 다가올 때 거절하지 못하고 끌려 다닌다면 어느 순간 내가 싫어하는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 될 수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하면 관계는 한층 더 중요하고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보며 훗날 이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두 미래를 점치거나 관상을 보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의 기준과 가치를 명확히 하고, 그에 부합하는 사람들만 내 인생의 방에 받아들일 수 있는 안목과 규칙이다.

 


 

이 책이 알려주는 방의 개념과 방을 올바로 운영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삶으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삶은 자기 곁에 좋은 사람이 가득하다는 기쁨이 있는 삶이고,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만족이 있는 삶이다. 기억하라, 당신은 당신의 방의 주인이다. 그리고 이 방은 한 가지 규칙이 있다. 이 방의 문은 일방통행이다. 입구는 될 수 있지만 출구는 될 수 없다. 즉, 모두 들어오기만 할 뿐 아무도 나가지 않는다. 이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그들이 가져오는 짐들은 결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영원히. 그들과 그들의 짐은 당신의 방에 평생 남게 된다. 이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방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 당신 삶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방의 역할은 스스로가 목표를 명확히 인식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살아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을 하는 방이고, 외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변화나 대인관계에 있어 적절한 대처를 위해 필요한 방이다. 굳이 형태를 띄지는 않지만 무형으로 지은 '마음의 방'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관의 방, 가치관의 방이라고 생각하고 매우 견고하게 잘 지키고 유지한다면 훌륭한,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이끌 수 있다는 말이다. 앞서 독자가 언급한 인생관은 열다섯 살 무렵 세워야 한다는 말은 지금 여기서부터는 지나간 일이다. 이 마음의 방은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이 책은 독자들이 삶을 제한하는 과거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해, 미래의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에 관한 새로운 통찰을 주기 위해 쓰였다. 저자들은 평생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 일을 해왔기에, 이 단순한 은유가 지닌 힘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독자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이미 시험 운전까지 마친 확실한 방법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해답은 삶의 모든 면을 조명하고 변화시킬 것이라고 역설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방법을 발견할 능력이 있고,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한다.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모두가 한 방에서 산다고 상상해보라」, 2장 「방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 3장 「내 방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4장 「딜메이커와 딜브레이커」, 5장 「당신의 가치가 당신의 삶을 만든다」, 6장 「방을 관리하는 여러 도구들」, 7장 「거절을 통한 해방과 충만함」, 8장 「방의 기쁨과 함정 이해하기」, 9장 「좋은 방에서 나쁜 일이 벌어질 때」, 10장 「밀랍이 아닌 불꽃 속에서 살기」 등이다.

이 책의 '마음의 방'에 있는 '문'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이 문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그 사람을 받아들일지의 여부도 이 문을 통해야 한다. 즉 자신의 삶의 가치관과 같고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이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무시하거나 문에 접근을 허락하지 않으면 된다. 필요할 때마다 직접 나서기 힘들다. 때문에 '문지기'에게 맡기면 된다. 은유적 표현이지만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선택할지 선택하지 않을지를 결정하기 위해 신중하기 위해서다. 이 책에 소개되는 중요한 기술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번호는 독자가 임의로 매김)

 

① 내 마음의 방에 ‘문지기’를 세워 들어오려는 사람들의 출입을 가려내는 법

② 내 마음의 방에 ‘관리인’을 두어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정리하고 단속하는 법

③ 상대나 상황이 아니라 나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관계를 정의하는 법

④ 주변 사람들이 내 생각, 감정,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탐지하고 제어하는 법

⑤ 내 방에 들어와도 되는 사람과 들어와선 안 되는 사람 구분하는 법

⑥ 사람들이 내 방의 어디에 머물지, 나와 가까이 혹은 멀리 있을지 정하는 법

⑦ 다루기 어려운 사람들이 다가올 때 대처하는 법

 


 

저자 : 스튜어트 에머리(Stewart Emery)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벨베데레 컨설턴츠의 공동 창립자이자 사장이다. 조직문화, 리더십, 멘토링, 성과 코칭 등 여러 방면에서 개인과 기업이 지속적인 성과와 성공을 일궈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존 F. 케네디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주도했다. 세계적인 학습?개발 조직인 ‘액추얼라이제이션(Actualizations)’을 설립했으며, 인간잠재력운동 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인으로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 베스트셀러 《애플과 삼성은 어떻게 디자인 기업이 되었나》, 《성공하는 사람들의 열정 포트폴리오》 등이 있다.

 

저자 : 아이반 마이즈너(Ivan Misner)

 

세계 전역에 1만 개 이상의 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비즈니스 네트워크 단체인 BNI의 창립자이자 최고비전제시책임자이다. 〈포브스〉와 CNN이 ‘현대 네트워킹의 아버지’라 칭할 정도로 비즈니스 네트워크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전 세계 주요 기업과 협회에서 강연과 연설을 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는 물론, CNN과 BBC, NBC 등 여러 언론에 소개되었다.

 

저자 : 더그 하디(Doug Hardy)

 

인적자본 관리, 기술, 다양성과 소속감, 조직문화의 통합을 통한 조직 변화의 전문가로, 유수의 기업, 교육기관, 개인 고객을 위한 리더십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수십 년간 비즈니스 관리, 심리학, 기술, 역사, 고등교육, 경력 등의 주제로 많은 글을 집필했다.

 

역자 : 신봉아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번역학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미래의 지구』 『인생 사용자 사전』 『레오나르도 다빈치』 『실내식물의 문화사』가 있으며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공역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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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고통 - 거리의 사진작가 한대수의 필름 사진집
한대수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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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삶이라는 고통』의 표제어는 다의적이지만 함축적이다. '삶은 고통'이라는 보편적 명제로 "삶은 행복을 추구하는 기쁨의 연속"이다는 탁월한 사유를 끌어낸다. 저자 한대수는 한국 포크-락 음악의 대부이자 사진작가로 일생을 살아왔다. 이 사진집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기록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올해 75세의 노년이지만 그가 40여년 간 함께해온 '필름 시대'의 카메라 작품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에 따라 이번 사진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1960년대 말 뉴욕과 서울 풍경을 담은 흑백 사진들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기 전, 저자 한대수는 1960년대부터 2007년까지 늘상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노래할 때도 여행할 때도 필름 카메라는 늘 그의 곁에 있었다. 한 컷 한 컷 셔터를 누르며 세상을 담았다.

뉴욕, 모스코바, 파리, 탕헤르, 바르셀로나, 스위스, 쾰른, 모스크바, 태국, 몽골, 베이징, 상하이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사진을 실어놓았다. 필름 카메라의 시선이 향한 곳은 삶의 터전을 잃고 소외된 삶을 사는 노숙자들, 거리의 악사들, 고독한 사람들, 나이 든 노인들이다. 상업적 목적의 사진들과 결이 다르다. 특히 1960년대 말의 뉴욕과 서울을 찍은 흑백 사진은 두 문화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어 관심을 끈다. 그의 사진들은 옛날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동경, 호기심, 연민, 비애, 향수 등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은 순간 포착이다.”라는 명제는 오늘날 사진 작가에게도 통하는 사진 예술이 있기까지의 예술로서의 사진을 보여준다.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면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는 장면이 지나간다. 사진 작가 한대수는 “삶이란 진실로 아이러니하고, 나 자신 또한 아이러니이다. 고통과 비극이 나를 음악가로 만들었고, 글을 쓰게 만들었고,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나의 몸뚱이는 패러독스이다. 나는 항상 웃는다. 내 마음, 빈 항아리의 울부짖음이다."라고 자신을 내려놓은 채 드러낸다.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한대수는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라는 곡을 선보인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한국 포크-락 음악의 대부이다. 전설적인 한국 뮤지선으로 유명하지만, 사진작가로서의 활동도 오랫동안 해왔다. TV 출연으로 그의 이름이 알려져 사진 작가로서의 한대수는 잘 모른다. 간혹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 중에는 '음악하는 사람'으로 더 널리 알려져 왔다. 미국 뉴햄프셔 주립대학교 수의학과를 중퇴한 후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포토그래피 사진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으나, 한국에서는 음악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우리가 잘 아는 〈세시봉〉, 〈펄 시스터즈〉, 〈정훈희〉, 〈트윈 폴리오〉 등 가수들과 이백천, 김동건 등과의 친분도 쌓았다. TBC 방송 출연도 잦았다고 한다. 그의 노래 제목대로 '행복의 나라'로 나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의 행복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한국 정부에서 ‘체제 전복적인 음악’이라는 이유로 모든 곡이 금지됐다. 다시 뉴욕으로 건너갔을 때에는 밥벌이를 위해 상업 사진가로 적잖게 일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사진 작품은 물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인생의 굴곡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TV 출연 당시 에피소드도 꺼낸다. "사회자인 김동건 씨도 자신의 노래를 듣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더니, 악단장 이봉조 씨에게 한대수의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봉조 씨는 씩 웃고 이렇게 대답했다. "좀 낯설죠? 하지만 재미있잖습니까?" 그렇게 멋진 평을 해준 이봉조 씨에게 책을 통해 감사의 말을 다시 전한다. 대한민국에서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저자의 어머니는 TV에 나온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기뻐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였다"고 씁쓸한 기억을 털어놓는다. 어머니는 클래식 피아노를 배운 음악인이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TV에 출연하고, 노래 공연도 다니며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옮겨다닐 때마다 늘 카메라를 분신처럼 들고 다녔다고도 말한다.

 


 

독자는 그가 사진 작가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으니 『침묵』, 『작은 평화』라는 사진집도 본 적이 없다. 그는 수차례 사진전을 열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선보인 바 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따르면 1960년 처음 필름 카메라는 손에 쥔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의 손에 카메라가 떠난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이번 사진집은, 나이 일흔다섯을 넘겨 ‘사진을 정리해야지’ 했던 오래된 숙원을 이룬 작품집이라고 넌지시 말한다. 이 책은 40여 년 동안 필름 카메라로 찍은 작품 세계를 한차례 집대성한 것으로 더욱 의미 있는 작품집이다. 그의 사진에 대한 관심은 미국에 체류 중일 때 아버지의 권유로 어렵게 합격해 들어간 대학 수의학과를 2년 만에 자퇴한 때부터다.

대학교를 중퇴하고 사진학교에 입학한다고 하니 가족들 반응이 안 봐도 눈에 선하다. 할아버지는 "사진이 무슨 학문이야?"라고 했고, 아버지는 "사진은 취미 생활이지 직업이 될 수 없지 않냐?"라고 했단다. 그러나 저자 한대수는사진이 지닌 아름다움과 순간을 포착하는 카메라라는 기계에 크게 매료되었다. 더구나 아름다운 모델(?)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더욱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한다. 학비나 생활비는 전혀 지원받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히 집에서는 "내논 자식" 취급했을 것 같다. 우선 세 가지를 해결해야 했다. 첫째 집을 구해야 한다. 당시 뉴욕에서는 월세 200달러 이하인 방은 없었다고 한다. 할렘가로 들어가는 계기가 됐다. 둘째 생계를 위해서라도 직장을 구해야 한다. 오전에는 사진 공부를 해야 했기에 직장은 오후부터 시작하는 일자리여야 했다. 운 좋게도 식당 아르바이트 업이 가장 적당했다. 하루 두 끼를 공짜로 먹으니까.(두 끼 7달러를 번다고 추산) 요리사 조수로 일하다 나중에는 월급도 조금 오르고 여기서 유명인들을 많이 본 것도 큰 자산이 됐던 모양이다. 당시 식당이 고급 음식점이어서 유명인들이 적잖게 드나들었다고 한다. 바버라 스트라이샌드, 페이 더너웨이, 재키 케네디, 앤디 워홀...

 

 

당시 한참 팔팔한 나이 20대의 사랑과 이별 기억은 지금도 아련할 정도로 노년의 저자에게 강렬했던 것 같다. 후회도 많고, 실수도 많고, 상처투성이다고 털어놓는다. 이 가운데 가장 눈물 나게 만드는 것은 '명신과 나의 이별'이다고 말한다. 스무 살에 사랑에 빠졌고, 그녀는 용감하게도 저자와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 독자는 저자 한대수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그의 사생활은 아무것도 모르던 터다. 이 책을 통해 동거하던 명신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의 아내인 명신은 저자가 2집을 내고 노래 부르던 시절 만난, 당시 홍대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김명신이었는다.(나중에 뉴욕패션계에서 크게 활약한다) 1990년대 들어와 서로의 관계를 정리하고 자살을 할까 침울해 있던 중에 1992년 모델 경력이 있는 몽골계 러시아인인 옥사나 알페로바(할아버지가 몽골 현대건축의 아버지격) 를 만나서 재혼하게 된다. 결혼 15년 만인 2006년, 딸 한양호(영어이름은 미셸)를 낳았는데 이때 한대수 나이가 무려 59세. 참고로 옥사나와는 22세 차이이다.

'양호'란 이름은 부모의 높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양호하게 태어나서라고 넉두리처럼 말했다고 전해진다. 아이는 3살의 나이일 때 자기 아버지의 노래를 듣고 울어서 한대수가 감수성이 참 풍부하다고 한 적이 있다고도 알려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명신과의 관계를 FF(앞으로 빠르게 감기)로 돌려도 가장 길게 쓰고 있다. 그만큼 가슴에 맺힌 것도, 응어리처럼 남은 미처 하지 못한 말도 많았던 듯하다. 더욱 놀랐던 것은 저자가 옥사나와 결혼 생활을 할 때 맨하튼 코리아타운을 지나다 명신을 만났다고 한다. "얼굴과 모습이 아주 우울했다. 옥사나의 제의로 명신을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F.F.> 그리하여 우리 셋은 한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때로는 옥사나 어머니까지 포함해 우리 넷. 내 팔자야! <F.F.> "난 파리로 갈래. 다시 안 돌아올게."(p.147) 이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만나지는 못하지만 소문만으로는 그리 좋지 않은 듯하다. 저자의 마음씀이 이토록 강렬한 것은 무척 순수한 사랑이었던 것을 반증하는 걸까? 라는 독자의 궁금증을 더욱 자극시킨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3부 9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내 인생의 봄 : 1960년대 뉴욕, 서울〉, 2부 〈길 위의 고독 : 뉴욕에서 몽골까지〉, 3부 〈끝까지, 평화 : 히피의 기도〉이다. 1부에 속한 5개 장은 「내 인생의 황금기 1960년대」, 「세렌디피티 3」, 「1969년, 서울」, 「TV 쇼」, 「명신과 나」 등이다. 2부는 「홈리스」, 「거리의 악사」, 「세상의 고독」등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3부는 「No War」 한 장이다. 특히 3부는 전쟁을 반대하는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 음악인이자 사진 작가로서 평소에 잘 하지 않던 반전 사상과 정부 정책의 부재에 대해 비판의 날선 목소리도 낸다. 노년의 가수로서, 사진 작가로서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인 것 같다.

"지금 우리 인간은 지구에서 무슨 악행을 범하고 있는 건가? 우리는 다 이성을 잃은 건가? 자기 몸에 폭탄을 차고, 타인을 죽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폭파시킨 사건을 접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살 폭탄 테러나니. 너무 끔찍하다.

이게 처음도 아니다. 이 무서운 이성을 던져버린 행위는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극심하게 몰리고 있을 때 항복하지 않고 가미카제라는 자살 비행조종사 그룹을 조직한 것이다. 돌아올 연료도 주지 않고 비행기를 조종해 미국 항공모함에 추락하는 것으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전략이었다. 결국 항복하지 않은 일본은 미국의 핵 폭탄 두 방에 무릎을 꿇었다. 22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안고.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인간의 악한 행위는 끝을 모른다. 이것을 'Catch-22'라고 하낟. 악을 강한 악으로 대응하고, 강한 악을 더욱 강한 악으로 대응하고, 밑으로 떨어지는 보복의 연속이다. 돌고 도는 인간의 어두운 심리는 결국 바닥을 치고 '멸망의 밤'을 초래하는 것이다.

내가 군 복무를 한 1971년과 1974년 사이에는 베트남 전쟁이 있었다. 25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끔찍한 전쟁이었다. 결국 미국이 항복하고,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나는 해군이었기에 구축함 갑판 위에서 이 비극적인 인간의 햄릿 연극을 보면서 말했다. "이것이 인류의 마지막 전쟁일 거야"라고.

 


 

세상을 여행하며, 일상의 찰나를 포착한 이들 사진에는 고통, 외로움, 쓸쓸함, 고단함이 자리잡고 있다. 저자 한대수가 찍은 거리의 사진들을 보다 보면, 그가 인간 존재에 대해 깊은 연민을 느끼는 작가이자 인간이 처한 보편적인 부조리함과 어둠에 본능적으로 민감한 작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집 뒷부분에는 1960년대 말과 2002년의 반전 운동 사진이 실려 있다. ‘사랑’과 ‘평화’를 외쳤던 우리 시대 마지막 히피 한대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Peace & Love.”

 

저자 : 한대수

 

가수, 사진작가, 저술가. 1948년생. 태평양을 30번 이상 왔다 갔다 하면서 서울과 부산에서 30여 년, 뉴욕에서 40여 년을 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교육을 받았고, 미국 뉴햄프셔 주립대학교 수의학과를 중퇴한 후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포토그래피 사진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1968년 한국에서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으며, ‘체제 전복적인 음악’으로 모든 곡이 금지곡으로 묶이자 가수 활동을 접고, 아내와 함께 뉴욕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사진가로 일했다. 첫 번째 아내 김명신과 이혼한 이후, 1992년 22세 연하 옥사나 알페로바와 결혼했으며, 2007년 딸 양호를 얻었다. 서울 신촌에서 15년을 살다가, 2016년 다시 제2의 고향인 뉴욕으로 건너갔다. 현재 뉴욕 퀸스에서 아내 옥사나, 딸 양호와 함께 사는 중이다. 발표한 앨범으로는 [멀고 먼-길], [고무신], [무한대], [기억상실], [천사들의 담화],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 [Eternal Sorrow], [고민], [상처], [욕망], [Rebirth], [하늘 위로 구름 따라] 등 15장의 정규 앨범과 여러 장의 싱글 앨범이 있다.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와 같은 파격적 곡들로 인해, 그에게는 항상 ‘한국 모던록의 창시자’, ‘한국 최초의 히피’, ‘한국 포크록의 대부’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은 책으로는 『한대수,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사는 것도 제기랄 죽는 것도 제기랄』, 『침묵』, 『작은 평화』, 『올드보이 한대수』, 『영원한 록의 신화 비틀즈, 살아 있는 포크의 전설 밥 딜런』,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뚜껑 열린 한대수』,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 『바람아, 불어라』, 『나는 매일 뉴욕 간다』 등 다수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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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스강의 작은 서점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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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템스강의 작은 서점』은 독자로서는 오랜만에 접하는 북유럽의 소설이어서 관심이 갔다. 독자가 많은 책을 읽지 못한 탓이겠지만 번역서 중 북유럽 작품을 발견하는 일은 흔치 않다.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 아는 지형적 한계와 인구의 부족함 때문임을 빼놓는다면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지만. 특히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곳이 스웨덴인데 말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런던이지만 작품의 주인공 샬로테는 스웨덴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 사람으로 스웨덴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작가의 평범한 삶이 금세 떠오를 만큼 안정된 분위기의 작품이다. 스웨덴어로 쓰여진 이 소설은 스웨덴에서 12만 부 이상 판매됐으며, 저자 프리다 쉬베크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라고 한다. 런던의 오래된 서점을 배경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펼쳐진다.

어느 날 스웨덴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운영하던 소설 속 주인공 샬로테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던 이모가 자신에게 런던 한가운데에 있는 서점을 물려주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샬로테는 런던까지 가서 서점을 운영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다. 따라서 런던에 가 짧은 시간 동안 서점을 매각할 예정으로 런던행 비행기에 올라 서점으로 향한다. 남편을 잃은 자신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런던에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함께하면서 서점을 운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깐이지만 해본다. 런던에 내려 곧장 서점으로 향한다. 마법을 부린 듯한 서점 내부 모습에 감탄한 것도 잠시, 샬로테는 사라 이모가 살던 서점 위층의 작은 집에서 한 남자의 사진, 그리고 편지가 담긴 상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곧 서점이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도 알게 된다. 서점을 매각하고 곧바로 스웨덴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서점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직원, 마르티니크와 샘의 모습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린다.

 


 

샬로테는 더욱이 사라 이모가 살던 집에서 의문투성이였던 자신의 뿌리에 대한 단서도 발견한다. 낡은 상자 속 빼곡히 들어찬 편지들을 하나씩 읽으면서 샬로테는 왜 이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지, 왜 엄마는 친아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는지 조금씩 알아 간다. 동시에, 서점 건물 2층에 세 들어 사는 소설가 윌리엄에게도 점점 빠져들면서 샬로테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변화해 간다.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 속에서 샬로테는 표제어처럼 이 서점은 '템스강'변에 있는 조그마한 서점이다. 우리가 영국 런던을 생각하면 떠올리면 그림 같은 풍경을 품은 서점에서 가족처럼 지내던 마르티니크, 샘, 윌리엄, 그리고 테니슨 앞에 불청객처럼 샬로테가 나타난 격이다. 일에만 파묻혀 살던 샬로테에게 개성 강한 이들과의 관계는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사라 이모의 친구이자 따뜻한 마음을 지닌 마르티니크, 제멋대로지만 누구보다 서점 일에 열정적인 샘, 근사한 미소로 마음을 녹이는 윌리엄, 그리고 샬로테에게만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 테니슨까지 있는 이 서점에 대해 샬로테는 점차 마음을 연다. 어쩌면 자신이 그들을 오해했을지도 모른다고, 소중한 사람을 또 잃을까 두려워 감정을 꼭꼭 숨기고 지내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들과 함께 서점을 지키기로 마음먹은 샬로테는 퍼즐을 맞추듯 숨겨져 있던 비밀에도 점차 다가간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조금씩 타인에게 상처받고 잘 풀리지 않는 일에 때론 절망하지만 친절함과 따듯함, 희망을 잃지 않는다. ‘착한 언니’와 ‘완벽한 엄마’라는 역할에 갇혀 자신을 희생하던 마르티니크는 점차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배워가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일에만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샬로테 역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상처받았지만 여전히 옆 사람을 돌보고, 절망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고 그들의 단단한 마음이 부숴지지 않도록 따뜻한 응원을 보내고 싶어진다.

 

 

어려을 때 서점 주인을 꿈꿔봤던 독자로서는 이 소설에 감정이입이 쉬웠다. 서점에 대한 애착이 있었기에 어쩌면 이 책을 읽고 싶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렸을 때 서점의 주인은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독자와는 다르지만 샤로테는 그곳에 남겨진 사람들의 순수함과 고충, 그리고 의지에 접근하며 점점 애착이 강해진다. 그들과 함께 서점을 지키기로 한 결심이 선다. 독자로선 갑자기 내가 서점의 상속자가 된다면? 하고 생각해보니 행복감도 얻을 수 있었다. 더욱이 그 서점이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면? 누군가에겐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인 일일 터다. 그러나 읽은 책이라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전부였던 샬로테에게 서점 일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점에 대해, 그리고 사라 이모에 대해 더 알아갈수록 샬로테는 이 서점이 홀로 남은 이모를 지켜주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이모를 지켜주었듯 자신도 지켜줄 것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이 책은 '독서 애호가들에게 더없이 완벽한 장소'인 〈리버사이드 서점〉을 배경으로,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크고 작은 소란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손으로 직접 짠 나무 서가, 대리석 선반이 달린 벽난로, 떡갈나무 계산대, 해리포터 계단 방을 본떠 만든 작은 공간까지 모두가 작지만 소중한 것이다. 그것들이 손때가 묻고 여러 사연들이 겹겹이 쌓여갈수록 아름다운 서점으로 변화해 간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듯 착각하게 만드는 인테리어와 더불어 모든 고객에게 맞춤 책 추천이 가능한 직원들은 이 서점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며 이 책의 스토리를 완전하게 채워간다. 올 가을 책 읽고 싶은 마음을 훈훈하게 만족시켜줄 소설로 손색이 없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의 저자 프리다 쉬베크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라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대로다. 저자의 내공이 알려진 바 없다고 보면 될 일이다. 독자가 이 책을 읽은 느낌으로는 '노련한 작가'의 면모를 보인다. 샬로테가 서점을 운영할 의사가 전혀 없이 사건이 진전되지만 날을 거듭할수록 서점 직원들과 이웃의 마음을 읽고 감화된다. 그리고 자신이 서점을 지켜내리라는 필연적 이유를 소설 중간 중간에 복선을 깔아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직원과 이웃의 처신과 과거 행적, 사라 이모가 살았을 때의 서점에 대한 애착 등이 이모의 생전과 사후 사이를 자유롭게 의식이 오가며 독자들에게 꾸밈없이 샬로테는 각오를 다져간다. 또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아름다운 마음씨의 이들과 함께하겠다며 서점을 지키려는 주인공의 변화도 자연스럽다.

소설 내용의 디테일도 세밀하게 신경 쓰는 작가의 내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게 유기적 구성력도 대단하다. 모든 것이 저자의 주도면밀한 글쓰기와 구성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당했고 이야기의 전개는 주도면밀하다고 느꼈다. 등장인물 역시 소설의 진행 과정 상 필요한 인물을 그때 그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미리 설정해 놓고 사건의 전개를 통해 하나씩 하나씩 드러내 보여준다. 그야말로 완벽한 구성 능력이다.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보다 오히려 완벽한 구성력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는 탁월함을 보여 준다.

사건의 마지막에 의도치 않은, 모든 독자들이 다 잘 아는 듯한 인물은 이 소설의, 서점의 스페셜 게스트가 된다. 바로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J, K. 롤링의 등장이다. 그가 단순히 이 서점에 들르는 무미건조한 설정이 아니다. 그가, 대 작가가 〈리버사이드 서점〉에서 〈해리포터 시리즈〉 8권 출간 기념 낭독회를 연다.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쓰러져가는 서점에 대 작가의 방문이라니... 그리고 그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진심으로 서점을 살려내려는 샬로테, 직원들, 이웃까지 한마음인 점에서 소설은 더 빛을 낸다.

 


 

J, K. 롤링과 샬로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다. 샬로테는 자신의 회사를 매각하려고 초창기 회사를 함께 시작했던 헨리크에게 말하고 매각을 위한 은행과의 문제 등을 논의해 확정해야 한다. 한 출판사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롤링을 만나다. 누군지도 모른 채 그에게 접근해 자신의 이름을 밝힌 후 자신의 서점에서 낭독회를 한 번 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출판계에 문외한이던 샬로테가 '밑져야 본전' 식의 발언이지만 롤링은 자신이 누군지 아시냐고 묻는다.

"아뇨, 저는 스웨덴 사람이라서 영국 문학계에 대해서 잘 몰라요. 하지만 작가님이 방문해 주신다면 저희 손님들이 매우 기뻐할 거라고 생각해요."

"서점이 어디 있죠?"

"리버사이드 드라이브에 있습니다. 여기서 정말 코앞이에요. 저의 서점은 백 년 이상 이어져왔고 특별한 매력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에요. 아주 다양한 장서와 아이들을 위한 독서 코너도 있어요. 계단 아래에 해리 포터가 살던 계단 방처럼 꾸며놓은 코너도 있답니다. 그리고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스웨덴식 커피와 다과를 제공해요. 서점 위에는 위리엄 헨슬로라는 작가님도 실제로 사시고요. 안타깝게도, 저희는 지금 재정적으로 몹시 어려운 상황이라서 작가님께 돈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원하시는 만큼 스웨덴식 시나몬 롤을 드릴 수는 있어요. 물론 호텔을 오고 가는 택시비는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해리 포터 계단 방이 있다고요?"

이렇게 우연히 대 작가 롤링의 방문이 약속되지만 모두 롤링이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를 샬로테를 통해 쏟아놓은다. 저자의 글솜씨, 그리고 구성 능력이 돋보인다. 더욱이 샬로테는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친다. '해리 포터의 계단 방'. 신의 한 수다.

 


 

서점 방문은 신문 기사로 대체한다. 상상력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높고, 신문에 나왔다는 공신력과 함께 롤링이 그만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템스 강변에 있는 리버사이드 서점은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고풍스러운 매력을 간직한 곳이다. 천장까지 뻗은 서가와 사다리, 소박한 가구가 어우러진 공간에는 세기말의 마법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최근에는 스웨덴식 ‘피카’를 제공하는 카페를 같이 운영하고 있으며, 전문가적 기량을 갖춘 직원들이 방문하는 손님을 책 세상으로 즐거이 안내하고 있다. 서점의 새 주인 샬로테 뤼드베리 씨에 따르면, 이런 낭독회는 앞으로 필수적인 서점 행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며, 그럼으로써 이 서점이 지역사회에 능동적인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사우스뱅크 지역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런던에서 가장 친절한 서점에 한번 들러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마르티니크가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샬로테! 정말 꿈만 같아!” 그녀는 샬로테의 목을 그러안았고, 샬로테도 있는 힘을 다해 마르티니크를 안아주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걸 참으로 감사하게 되는 날이었다.(p.532)

 

저자 : 프리다 쉬베크(Frida Skyback)

 

1980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꾸었으며 다섯 살 때 처음 책을 썼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고등학교에서 언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블로그를 통해 글을 써오다가 2011년 첫 발표한 소설 『샬롯 하셀』이 큰 사랑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2개국 이상 작품이 계약되어 번역 중이며, 『템스강의 작은 서점』은 12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현재 남편, 두 딸과 함께 스웨덴 룬드에 살고 있다.

 

역자 : 심연희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독일 뮌헨 대학교(LMU)에서 언어학과 미국학을 공부했다. 영어와 독일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소설 『아웃랜더』, 『아이언 위도우』, 『레슨 인 케미스트리』, 『스파크』, 『미드나잇 선』, 그래픽 노블 『인어 소녀』, 『티 드래곤 클럽』, 시리즈물로 『이사도라 문』, 『인 더 게임』, 『매머드 아카데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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