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의 햇빛 일기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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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해인의 햇빛 일기』를 처음 접한 독자의 느낌은 감사와 감동이었다. 시인 이해인이 투병 중이라고 들었었는데 시집을 낼 정도로 치유가 되었다는 생각에 대한 감사가 먼저였다. 그 다음 8년 만에 낸 시인의 시집에 감사가 가득함에 감동이었다. 암 투병을 오랫동안 해온 데 대해서도 맑고 고운 심성이 전혀 변함이 없고,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독자에게는 더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시 100여 편을 선물 받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해인 시인은 이 시집이 8년 만에 낸 책이라고 한다. 시인을 좋아하는 독자이지만 벌써 8년이나 됐나? 하는 생각에 말로만 좋아하고 위로를 받았지만 한 번도 진정한 위로는 전해 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주었다.

수도자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늘 따스한 사랑을 전해온 이해인 수녀는 이 시집을 통해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독자에게는 위안이 된다. 병마와의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면서도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전하는 이 시집의 시들은 어느 한 편 버릴 것 없이 소중하게 독자의 마음에 와 닿는다. ‘위로 시인’이자 ‘치유 시인’으로서 아픈 이들에게 건네는, 반짝이는 진주처럼 맑게 닦인 시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시집은 1부 〈내 몸의 사계절〉, 2부 〈맨발로 잔디밭을〉, 3부 〈좀 어떠세요?〉, 4부 〈촛불 켜는 아침〉이란 제목이 달려 있다. 이 가운데 1부와 2부는 투병 중에도 나날이 써낸 신작 시만 오롯이 실려 있다.

투병 중 어느 정도 차도가 보이자 시인은 햇빛을 쏘이며 「햇빛 향기」를 듬뿍 들이마신다. 그 햇빛이 "하도 황홀하여 눈이 멀 뻔했네 // 다시 한번 / 살아 있는 기쁨 / 숨을 쉬는 희망 / 내 남은 시간들을 / 어찌 살라고 // 햇빛은 저리도 눈부신지!"(p.19~20)라고 읊조리며 햇빛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독자들에게 보낸다.

 


 

절망적인 병의 악화와 맞서 이겨낸 환자들은 누구보다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내보인다고 의사들은 전한다. 생명에 대한 감사가 희망으로 빛날 때 사람들의 삶의 의지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투병 중에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 이해인은 병마를 마주 하기 전 "하늘에서 숲에서 / 새들이 노래하고 / 땅에는 꽃들이 많이 피고 / 나비가 날아오면 / 여기가 천국인가 / 늘 / 감탄하곤 했지요"라고 세상에 감사했다.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저자가 사는 세상이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병마가 닥치고 힘든 투병 생활을 이겨낸 후 천국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달라진 듯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력이 감퇴할수록

내가 나를 알아보고

다른 이를 알아보고

매일매일 함께 사는 기쁨을

새롭게 감사할 수 있으니

여기가 천국인 것 같네요

아주 먼 그 나라는

안 가봐서 모르겠고

지금 여기야말로

미리 누리는 천국이란 생각을 하며

명랑한 웃음을 되찾는 중이에요"(p.85~86)

- 「천국에 대한 생각」 중에서

 

 

시인은 이제 작은 햇빛 한줄기로 가닿고자 한다. 때로 생경하고 낯선 고통 앞에서도 “아파도 외로워하진 않으리라” 결심하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인의 맑고 고운 언어들이, 우리의 상처와 슬픔에도 “환한 꽃등” 하나씩 밝혀줄 것이다. “저마다 무슨 일인가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날을 샌 존재들에게” 시인은 작은 햇빛 한줄기로 가닿고자 한다(황인숙 시인)고 추천의 글을 내놓았다. 때로 생경하고 낯선 고통 앞에서도 “아파도 외로워하진 않으리라” 결심하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인의 맑고 고운 언어들이, 우리의 상처와 슬픔에도 “환한 꽃등”(「아픈 날의 일기 1」) 하나씩 밝혀줄 것이다. 이에 시인은 “이 시집의 제목을 ‘햇빛 일기’라고 한 것은 햇빛이야말로 생명과 희망의 상징이며 특히 아픈 이들에겐 햇빛 한줄기가 주는 기쁨이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고 답하고 있다.(〈시인의 말〉 중에서)

시인은 "언제부터인가 제게는 '위로 시인' '치유 시인'이라는 단어가 이름 앞에 자연스럽게 붙긴 하는데 민망하긴 하면서도 한편으론 이 말이 반갑게 들립니다. 지난 수십 년간 우정, 사랑, 기도 등등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시를 쓴 적이 있지만 처음부터 아픔이나 고통을 주제로 글을 쓰거나 책을 엮을 생각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암 환자가 된 2008년부터는 자연스레 아픔, 고통, 이별이 글에 자주 등장했고 이를 읽은 독자들이 공감의 표현을 해주니 계속해서 쓰게 된 것 같습니다."고 털어놓는다.

또 자신이 신분이 수도자여서 그런지 참으로 많은 분들이 이렇게 저렇게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며 위로받고 싶어해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적도 있었다고 〈시인의 말〉을 통해 고백하기도 한다. 벙마와 싸우면서 큰 수술 후 회복실에서 듣던 사람들의 웃음소리, 다시 바라다본 푸른 하늘, 미음과 죽만 먹다 처음으로 밥을 먹던 시간의 감사한 설렘 등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시인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시인에게는 지난 날 독자들의 이러한 호칭에 공감도가 낮았으나 오랜 투병 끝에 서서히 깨닫게 됐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자신의 아픔을 한 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그리 쉽진 않았으나 그런 노력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 때에만 다른 이에게도 비로소 조금 더 좋은 위로자가 될 수 있음을 투병하는 동안 경험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이 시집을 내기까지 시인은 혼신의 힘을 쏟았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있다. "이 시집 안의 시들이 누군가에게 다가가 작은 위로, 작은 기쁨, 작은 희망의 햇빛 한줄기로 안길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하루를 살아야겠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는 '또 하루를 살았구나' 감탄의 기도를 바치면서, 기도하면서 우리 함께 길을 가기로 해요"라며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몸이 아파도 시는 계속 나오는 게 신기하네?'라며 감탄하는 수녀님들, 특히 힘겹게 투병 중인 수녀님들께 이 시집을 바친다"고 덧붙인다.

아파도 외로워하진 않으리라

아무도 모르게 결심했지요

 

상처를 어루만지는

나의 손이 조금은 떨렸을 뿐

내 마음엔 오랜만에

환한 꽃등 하나 밝혀졌습니다

- 「아픈 날의 일기 1」 중에서

 


 

암 투병을 시작할 무렵 지난 2011년 에세이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를 출간 후 시인은 인터뷰를 통해 “사람이기 때문에 미련이 있거나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게 될 수 있잖아요. 기껏해야 나는 메모지, 편지지, 스티커 몇 장에 애착을 가지지만. 그리고 조개껍질하고. 요즘에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어요. 법정 스님이 그런 얘길 했지만, 물건은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빛이 나는 거지, 죽고 나면 빛을 잃거든요. 주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건강할 때 나누라는 그 말이 항상 깊이 와 닿아서, 나도 요즘 애착 갖고 있는 책들은 도서관에 보내고, 물건은 나눠주고 있어요. 어떤 수녀님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수녀님, 왜 이래. 떠날 준비하는 거야?’ 하지만, 물건이 빛날 때 정리하는 거예요. 기쁘더라고요. 거기서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비우려고 하니까, 어디에도 걸림, 매임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투병에 대해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8년 간의 고통스럽고 지리한 암 투병 후 내놓은 시들이 이 책 1부 ‘내 몸의 사계절’과 2부 ‘맨발로 잔디밭을’은 투병 중에도 나날이 써낸 신작 시들로 엮었다

 

"그래 천국 가는 길은

다시 천진한 어린이가 되어

밝게 웃고 맑게 살고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믿음을 배우는 거라고

그게 비법인 것 같다고

답을 할까보다"(p.52)

- 「천국 가는 길」 중에서

 


 

이해인 수녀가 시집을 낸다는 소식을 누구보다 일찍 알았을 시인 황인숙이 이 책의 뒷 부분에 〈추천의 글〉을 썼다. 아마 기쁘고 행복한 느낌이었을 것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황인숙 시인은 이 글을 통해 "이해인 수녀님은 얼마나 행복한 시인이신지요! 시인이 궁극적으로 사랑의 전도사라며, 이해인 수녀님은 바탕이 그 궁극이시네요. 이해인 수녀님 시에 '행복하다'는 시어가 드물지 않은데, 그냥 시인인 저는 평소에도 '다행'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다행의 '행'은 '행복'보다 '행운'을 뜻하지요. 썩 나쁘지는 않은 것이니 아슬아슬 제 인생도 '그냥 그냥' 다행입니다만."(p.255) 황인숙 시인은 이해인 수녀의 시 가운데 묵상적인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시 「가을 편지」를 꼽아 맺음말을 대신한다.

 

이름 없이 떠난 이들의

이름 없는 꿈들이

들국화로 피어난 가을 무덤가

흙의 향기에 취해

가만히 눈을 감는 가을

 

(······)

 

누구나 한 번은

수의를 준비하는 가을입니다

 


 

저자 : 이해인(李海仁)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삼 일 만에 받은 세례명이 ‘벨라뎃다’, 스무 살 수녀원에 입회해 첫 서원 때 받은 수도명이 ‘클라우디아’이다. ‘넓고 어진 바다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뜻을 담은 이름처럼, 부산에 있는 바닷가 수녀원의 ‘해인글방’에서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수십 년간 폭넓은 독자층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시는 교과서에도 여러 편 수록되어 있고 전국의 산과 공원에 수많은 시비로도 새겨져 있다.

수도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기도와 시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수녀 시인.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필리핀 성 루이스 대학 영문학과와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부산 성 베네딕도회 수녀로 봉직중이다. 1964년 수녀원(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 1976년 종신서원을 한 후 오늘까지 부산에서 살고 있다. 1970년 『소년』지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한 이후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시간의 얼굴』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작은 위로』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작은 기쁨』 『희망은 깨어 있네』 『작은 기도』 『이해인 시 전집 1· 2』 등의 시집을 펴냈고, 동시집 『엄마와 분꽃』, 시선집 『사계절의 기도』를 펴냈다. 산문집으로는 『두레박』 『꽃삽』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기쁨이 열리는 창』 『풀꽃 단상』 『사랑은 외로운 투쟁』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시와 산문 을 엮은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등이 있다. 기도시 그림책 『어린이와 함께 드리는 마음의 기도』, 동화 그림책 『누구라도 문구점』을 냈다. 그밖에 마더 테레사의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외 몇 권의 번역서 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짧은 메시지에 묵상글을 더한 『교황님의 트위터』가 있다. 그의 책은 모두가 스테디셀러로 종파를 초월하여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초·중·고 교과서에도 여러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제9회 새싹문학상, 제2회 여성동아대상, 제6회 부산여성문학상, 제5회 천상병 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해인 수녀는 어머니 1주기(2008년 9월 8일)를 기념한 열 번째 시집의 원고를 탈고하자마자 뜻밖의 암 선고를 받았다. 곧바로 대수술을 받고 잠깐 동안의 회복 기간을 거쳐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시인으로서 40년, 수도자로서 50년의 길을 걸어온 이해인 수녀는 오늘도 세상을 향해 시 편지를 띄운다. 삶의 희망과 사랑 의 기쁨, 작은 위로의 시와 산문은 너나없이 숙명처럼 짊어진 생활의 숙제를 나누는 기묘한 힘을 발휘한다. 멀리 화려하고 강렬한 빛을 좇기보다 내 앞의 촛불 같은 그 사랑, 그 사람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는 ‘조금씩 사라져가는 지상에서의 남은 시간들’, 아낌없는 사랑의 띠로 우리를 연결 짓게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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