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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고통 - 거리의 사진작가 한대수의 필름 사진집
한대수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10월
평점 :
이 책 『삶이라는 고통』의 표제어는 다의적이지만 함축적이다. '삶은 고통'이라는 보편적 명제로 "삶은 행복을 추구하는 기쁨의 연속"이다는 탁월한 사유를 끌어낸다. 저자 한대수는 한국 포크-락 음악의 대부이자 사진작가로 일생을 살아왔다. 이 사진집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기록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올해 75세의 노년이지만 그가 40여년 간 함께해온 '필름 시대'의 카메라 작품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에 따라 이번 사진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1960년대 말 뉴욕과 서울 풍경을 담은 흑백 사진들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기 전, 저자 한대수는 1960년대부터 2007년까지 늘상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노래할 때도 여행할 때도 필름 카메라는 늘 그의 곁에 있었다. 한 컷 한 컷 셔터를 누르며 세상을 담았다.
뉴욕, 모스코바, 파리, 탕헤르, 바르셀로나, 스위스, 쾰른, 모스크바, 태국, 몽골, 베이징, 상하이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사진을 실어놓았다. 필름 카메라의 시선이 향한 곳은 삶의 터전을 잃고 소외된 삶을 사는 노숙자들, 거리의 악사들, 고독한 사람들, 나이 든 노인들이다. 상업적 목적의 사진들과 결이 다르다. 특히 1960년대 말의 뉴욕과 서울을 찍은 흑백 사진은 두 문화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어 관심을 끈다. 그의 사진들은 옛날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동경, 호기심, 연민, 비애, 향수 등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은 순간 포착이다.”라는 명제는 오늘날 사진 작가에게도 통하는 사진 예술이 있기까지의 예술로서의 사진을 보여준다.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면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는 장면이 지나간다. 사진 작가 한대수는 “삶이란 진실로 아이러니하고, 나 자신 또한 아이러니이다. 고통과 비극이 나를 음악가로 만들었고, 글을 쓰게 만들었고,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나의 몸뚱이는 패러독스이다. 나는 항상 웃는다. 내 마음, 빈 항아리의 울부짖음이다."라고 자신을 내려놓은 채 드러낸다.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한대수는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라는 곡을 선보인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한국 포크-락 음악의 대부이다. 전설적인 한국 뮤지선으로 유명하지만, 사진작가로서의 활동도 오랫동안 해왔다. TV 출연으로 그의 이름이 알려져 사진 작가로서의 한대수는 잘 모른다. 간혹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 중에는 '음악하는 사람'으로 더 널리 알려져 왔다. 미국 뉴햄프셔 주립대학교 수의학과를 중퇴한 후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포토그래피 사진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으나, 한국에서는 음악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우리가 잘 아는 〈세시봉〉, 〈펄 시스터즈〉, 〈정훈희〉, 〈트윈 폴리오〉 등 가수들과 이백천, 김동건 등과의 친분도 쌓았다. TBC 방송 출연도 잦았다고 한다. 그의 노래 제목대로 '행복의 나라'로 나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의 행복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한국 정부에서 ‘체제 전복적인 음악’이라는 이유로 모든 곡이 금지됐다. 다시 뉴욕으로 건너갔을 때에는 밥벌이를 위해 상업 사진가로 적잖게 일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사진 작품은 물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인생의 굴곡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TV 출연 당시 에피소드도 꺼낸다. "사회자인 김동건 씨도 자신의 노래를 듣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더니, 악단장 이봉조 씨에게 한대수의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봉조 씨는 씩 웃고 이렇게 대답했다. "좀 낯설죠? 하지만 재미있잖습니까?" 그렇게 멋진 평을 해준 이봉조 씨에게 책을 통해 감사의 말을 다시 전한다. 대한민국에서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저자의 어머니는 TV에 나온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기뻐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였다"고 씁쓸한 기억을 털어놓는다. 어머니는 클래식 피아노를 배운 음악인이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TV에 출연하고, 노래 공연도 다니며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옮겨다닐 때마다 늘 카메라를 분신처럼 들고 다녔다고도 말한다.
독자는 그가 사진 작가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으니 『침묵』, 『작은 평화』라는 사진집도 본 적이 없다. 그는 수차례 사진전을 열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선보인 바 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따르면 1960년 처음 필름 카메라는 손에 쥔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의 손에 카메라가 떠난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이번 사진집은, 나이 일흔다섯을 넘겨 ‘사진을 정리해야지’ 했던 오래된 숙원을 이룬 작품집이라고 넌지시 말한다. 이 책은 40여 년 동안 필름 카메라로 찍은 작품 세계를 한차례 집대성한 것으로 더욱 의미 있는 작품집이다. 그의 사진에 대한 관심은 미국에 체류 중일 때 아버지의 권유로 어렵게 합격해 들어간 대학 수의학과를 2년 만에 자퇴한 때부터다.
대학교를 중퇴하고 사진학교에 입학한다고 하니 가족들 반응이 안 봐도 눈에 선하다. 할아버지는 "사진이 무슨 학문이야?"라고 했고, 아버지는 "사진은 취미 생활이지 직업이 될 수 없지 않냐?"라고 했단다. 그러나 저자 한대수는사진이 지닌 아름다움과 순간을 포착하는 카메라라는 기계에 크게 매료되었다. 더구나 아름다운 모델(?)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더욱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한다. 학비나 생활비는 전혀 지원받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히 집에서는 "내논 자식" 취급했을 것 같다. 우선 세 가지를 해결해야 했다. 첫째 집을 구해야 한다. 당시 뉴욕에서는 월세 200달러 이하인 방은 없었다고 한다. 할렘가로 들어가는 계기가 됐다. 둘째 생계를 위해서라도 직장을 구해야 한다. 오전에는 사진 공부를 해야 했기에 직장은 오후부터 시작하는 일자리여야 했다. 운 좋게도 식당 아르바이트 업이 가장 적당했다. 하루 두 끼를 공짜로 먹으니까.(두 끼 7달러를 번다고 추산) 요리사 조수로 일하다 나중에는 월급도 조금 오르고 여기서 유명인들을 많이 본 것도 큰 자산이 됐던 모양이다. 당시 식당이 고급 음식점이어서 유명인들이 적잖게 드나들었다고 한다. 바버라 스트라이샌드, 페이 더너웨이, 재키 케네디, 앤디 워홀...
당시 한참 팔팔한 나이 20대의 사랑과 이별 기억은 지금도 아련할 정도로 노년의 저자에게 강렬했던 것 같다. 후회도 많고, 실수도 많고, 상처투성이다고 털어놓는다. 이 가운데 가장 눈물 나게 만드는 것은 '명신과 나의 이별'이다고 말한다. 스무 살에 사랑에 빠졌고, 그녀는 용감하게도 저자와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 독자는 저자 한대수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그의 사생활은 아무것도 모르던 터다. 이 책을 통해 동거하던 명신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의 아내인 명신은 저자가 2집을 내고 노래 부르던 시절 만난, 당시 홍대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김명신이었는다.(나중에 뉴욕패션계에서 크게 활약한다) 1990년대 들어와 서로의 관계를 정리하고 자살을 할까 침울해 있던 중에 1992년 모델 경력이 있는 몽골계 러시아인인 옥사나 알페로바(할아버지가 몽골 현대건축의 아버지격) 를 만나서 재혼하게 된다. 결혼 15년 만인 2006년, 딸 한양호(영어이름은 미셸)를 낳았는데 이때 한대수 나이가 무려 59세. 참고로 옥사나와는 22세 차이이다.
'양호'란 이름은 부모의 높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양호하게 태어나서라고 넉두리처럼 말했다고 전해진다. 아이는 3살의 나이일 때 자기 아버지의 노래를 듣고 울어서 한대수가 감수성이 참 풍부하다고 한 적이 있다고도 알려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명신과의 관계를 FF(앞으로 빠르게 감기)로 돌려도 가장 길게 쓰고 있다. 그만큼 가슴에 맺힌 것도, 응어리처럼 남은 미처 하지 못한 말도 많았던 듯하다. 더욱 놀랐던 것은 저자가 옥사나와 결혼 생활을 할 때 맨하튼 코리아타운을 지나다 명신을 만났다고 한다. "얼굴과 모습이 아주 우울했다. 옥사나의 제의로 명신을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F.F.> 그리하여 우리 셋은 한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때로는 옥사나 어머니까지 포함해 우리 넷. 내 팔자야! <F.F.> "난 파리로 갈래. 다시 안 돌아올게."(p.147) 이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만나지는 못하지만 소문만으로는 그리 좋지 않은 듯하다. 저자의 마음씀이 이토록 강렬한 것은 무척 순수한 사랑이었던 것을 반증하는 걸까? 라는 독자의 궁금증을 더욱 자극시킨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3부 9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내 인생의 봄 : 1960년대 뉴욕, 서울〉, 2부 〈길 위의 고독 : 뉴욕에서 몽골까지〉, 3부 〈끝까지, 평화 : 히피의 기도〉이다. 1부에 속한 5개 장은 「내 인생의 황금기 1960년대」, 「세렌디피티 3」, 「1969년, 서울」, 「TV 쇼」, 「명신과 나」 등이다. 2부는 「홈리스」, 「거리의 악사」, 「세상의 고독」등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3부는 「No War」 한 장이다. 특히 3부는 전쟁을 반대하는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 음악인이자 사진 작가로서 평소에 잘 하지 않던 반전 사상과 정부 정책의 부재에 대해 비판의 날선 목소리도 낸다. 노년의 가수로서, 사진 작가로서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인 것 같다.
"지금 우리 인간은 지구에서 무슨 악행을 범하고 있는 건가? 우리는 다 이성을 잃은 건가? 자기 몸에 폭탄을 차고, 타인을 죽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폭파시킨 사건을 접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살 폭탄 테러나니. 너무 끔찍하다.
이게 처음도 아니다. 이 무서운 이성을 던져버린 행위는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극심하게 몰리고 있을 때 항복하지 않고 가미카제라는 자살 비행조종사 그룹을 조직한 것이다. 돌아올 연료도 주지 않고 비행기를 조종해 미국 항공모함에 추락하는 것으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전략이었다. 결국 항복하지 않은 일본은 미국의 핵 폭탄 두 방에 무릎을 꿇었다. 22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안고.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인간의 악한 행위는 끝을 모른다. 이것을 'Catch-22'라고 하낟. 악을 강한 악으로 대응하고, 강한 악을 더욱 강한 악으로 대응하고, 밑으로 떨어지는 보복의 연속이다. 돌고 도는 인간의 어두운 심리는 결국 바닥을 치고 '멸망의 밤'을 초래하는 것이다.
내가 군 복무를 한 1971년과 1974년 사이에는 베트남 전쟁이 있었다. 25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끔찍한 전쟁이었다. 결국 미국이 항복하고,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나는 해군이었기에 구축함 갑판 위에서 이 비극적인 인간의 햄릿 연극을 보면서 말했다. "이것이 인류의 마지막 전쟁일 거야"라고.
세상을 여행하며, 일상의 찰나를 포착한 이들 사진에는 고통, 외로움, 쓸쓸함, 고단함이 자리잡고 있다. 저자 한대수가 찍은 거리의 사진들을 보다 보면, 그가 인간 존재에 대해 깊은 연민을 느끼는 작가이자 인간이 처한 보편적인 부조리함과 어둠에 본능적으로 민감한 작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집 뒷부분에는 1960년대 말과 2002년의 반전 운동 사진이 실려 있다. ‘사랑’과 ‘평화’를 외쳤던 우리 시대 마지막 히피 한대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Peace & Love.”
저자 : 한대수
가수, 사진작가, 저술가. 1948년생. 태평양을 30번 이상 왔다 갔다 하면서 서울과 부산에서 30여 년, 뉴욕에서 40여 년을 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교육을 받았고, 미국 뉴햄프셔 주립대학교 수의학과를 중퇴한 후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포토그래피 사진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1968년 한국에서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으며, ‘체제 전복적인 음악’으로 모든 곡이 금지곡으로 묶이자 가수 활동을 접고, 아내와 함께 뉴욕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사진가로 일했다. 첫 번째 아내 김명신과 이혼한 이후, 1992년 22세 연하 옥사나 알페로바와 결혼했으며, 2007년 딸 양호를 얻었다. 서울 신촌에서 15년을 살다가, 2016년 다시 제2의 고향인 뉴욕으로 건너갔다. 현재 뉴욕 퀸스에서 아내 옥사나, 딸 양호와 함께 사는 중이다. 발표한 앨범으로는 [멀고 먼-길], [고무신], [무한대], [기억상실], [천사들의 담화],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 [Eternal Sorrow], [고민], [상처], [욕망], [Rebirth], [하늘 위로 구름 따라] 등 15장의 정규 앨범과 여러 장의 싱글 앨범이 있다.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와 같은 파격적 곡들로 인해, 그에게는 항상 ‘한국 모던록의 창시자’, ‘한국 최초의 히피’, ‘한국 포크록의 대부’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은 책으로는 『한대수,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사는 것도 제기랄 죽는 것도 제기랄』, 『침묵』, 『작은 평화』, 『올드보이 한대수』, 『영원한 록의 신화 비틀즈, 살아 있는 포크의 전설 밥 딜런』,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뚜껑 열린 한대수』,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 『바람아, 불어라』, 『나는 매일 뉴욕 간다』 등 다수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