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81 | 582 | 58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랑했던 그 사람 -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장적폐 지음 / 이음스토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아 관심이 갔다.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픈 이름 '적폐'를 필명으로 내세울 정도로 강렬한 작가가 있었는가?책에 관심을 갖자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매우 평범한 신파극이나 로맨스 소설쯤으로 생각될 정도로 단순하다.그러나 표지에 흰색으로 보일락말락하게 적어놓은 명조체의 글들 사이로 정치색 짙은 책으로 보이기도 한다.'대통령' '북' '평화' '전쟁' 등의 낱말과 '조용필' 등의 이름이 보인다. 다큐멘터리인가?궁금증은 책을 펼치며 쉽게 풀렸다.'책을 열며' 제하의 작가의 글에서 '배제리스트'(작가는 '블랙리스트'를 대신해 이렇게 적시했다)에 관련된 글이구나를 알 수 있다. 책의 분위기나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대체 무슨 책이냐?’라고 물으면 ‘희곡’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기본적인 책의 틀은 ‘희곡’이지만, 그 내용의 절반 이상은 희곡의 앞뒤 그리고 사이사이에 나오는 작가의 자기 고백이다.

“사실, 형식은 희곡이지만 정확하게는 희곡으로 가장한 내 이야기, 희곡으로 가장한 부끄러운 기도문 정도일 것이다.”(56P)



이 책에 대한 설명 네 가지이다. 이 네 가지 설명이 합쳐지면 이 책 한 권이 된다.

첫째, 가상 역사 희곡이다.

희곡의 배경은 2022년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희곡 속 시간은 가상 역사이다. 광화문 ‘촛불 역사’와 ‘대통령 탄핵’은 없었다. 2017, 2018년, 우리 대통령의 들고남이 현재와 다르고, 2018년 봄, 보수 정권의 대통령이 취임했다.

당연히 2018 평창올림픽과 같은 평화로의 국면전환도 없었다.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실험은 계속되고,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드디어 미국 코앞까지 도달했다.

한반도가 전쟁 바로 앞까지 갔다. 일촉즉발, 위기의 한반도…. 희곡 속 대통령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그의 문제 해결방식은 문학적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2050년 미래에서 편지가 하나 날아들며, 연극이 시작된다.


둘째, 조용필 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희곡은 조용필로 시작해서 조용필로 끝난다.

우선 부제로 붙은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은 조용필 10집(1989년) part 2에 실린 조용필의 노래 제목이다. 조용필에 대한 존경을 담아 만든 오마주이다.

“2000년 전후 언제쯤이었던 것 같다. 조용필을 글감으로 뭔가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그 많은 시간을 조용필과 보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23P)

이런 연유로 이 희곡의 배경음악은 모두 조용필의 노래다. “이 희곡의 절반은 조용필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썼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 희곡은 불가능하고, 밋밋하기 이를 데 없는 절대 빈곤이 되었을 것이다.”(51P)

희곡의 부제로 쓰인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에서부터 〈서울 1987년〉, 〈상처〉, 〈애상〉, 〈정의 마음〉, 〈바람이 전하는 말〉, 〈그 또한 내 삶인데〉 등 희곡 본문에 직접 등장하는 곡이 13곡, 〈킬리만자로의 표범〉, 〈Q〉, 〈생명〉 등 길게 짧게, 여러 방식으로 인용된 곡이 12곡, 모두 25곡의 조용필 노래가 글감으로 쓰였다.

희곡의 처음 시작은 〈상처〉이고, 희곡이 절정에 이를 즈음엔 〈서울 1987년〉과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이 울려나온다.

“조용필이 없었으면 이 희곡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열두 살 어린이 때부터 좋아했던 나의 가수, 조용필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담고 싶었다.”(37P)



셋째, 일기 혹은 기도문이다.

작가는 책날개에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오래 전 사회학과 예술경영을 공부했고, 지금은 북한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북한문학 중에서 특별히 소설 쪽에 관심이 많다. 대학졸업 후 한 직장에서 25년을 근무했다. 성실하게 일했다. 장삼이사,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2015년, 저 위쪽에서 시작된 배제리스트가 내려와 닿은 맨 끝단, 거기에 내가 있었다. 내 인생계획에는 없던 기이한 만남. 배제 지시를 거부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나를 적폐라고 불렀다. 그래서 필명을 적폐로 했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적폐(積弊)로 하면 사람들이 놀랄까봐 한자(漢字)를 바꿨다. 붉을 적(赤), 비단 폐(幣), 붉은 비단이다.”

작가의 이야기대로, 2015년 배제리스트 사건 당시, 배제리스트가 내려와 닿은 맨 끝단, 그곳에 그가 있었다.

배제리스트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며, 2016년, 2017년, 2018년, 배제리스트로 대한민국이 들썩일 때, 저 위쪽 명령을 지시한 사람들이 재판정을 오가고 감옥으로 갈 때, 관련 기관들도 큰 몸살을 앓았다.

배제리스트 실행기관, 실행자로서, 모두가 죄인이었던 시절, 작가에게 글쓰기는 도피처, 피난처였다고 한다.(56P)

이 책은 그 기간 동안의 기도문, 참회문이다.

“살아오면서 너무도 많은 빚을 졌다. … 남은 날들, 빚진 얼굴들에게 이 빚을 갚으며 살아가겠다.”(278P)고 한다.


넷째, 시선, 사회 평론이다.

희곡 대사에 나오는 70여 개 단어에 각주가 달려 있다. 그런데 그 각주는 희곡 〈사랑했던 그 사람〉의 또 다른 이야기이다.

“이 책의 각주는 각주 자체가 또 다른 본문처럼 보이니, 각주를 빼고 읽으면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하기도 좀 멋쩍은 형국이다. …

희곡의 빈약함을 메우기 위해서 그랬고, 희곡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서 그랬다.”(54P)

희곡의 각주들은 ‘BTOB(비투비)’, ‘장기려’, ‘윤동주’와 같은 이름들로부터 〈간양록〉, 〈상처〉,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그 또한 내 삶인데〉 등 조용필의 여러 노래들로까지 다채롭게 이어진다.

이들 각주 에세이는 사회학과 북한문학 전공자인 필자가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 사회 평론이다.

보통 시민의 순박한 바람부터 전공자의 깊이 있는 고민까지 두루 담고 있다.

대학시절, 조용필 〈Q〉에 나오는 대사처럼 “램프가 켜져 있는 작은 찻집”에도 가보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버렸다”라고 말할 만한 그런 연애를 해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나의 첫사랑은 너무도 건전했고(?)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그렇게 지나갔다.

(중략) 돌아보면, 누군가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버리는 것이 그렇게 좋은 사랑은 아니었을 텐데….

스무 살 그 시절에는, 행여 그럴지라도,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어디엔가 있을, 운명 같은, 우주 같은 사랑을 바랐던 것 같다.

〈Q〉를 들으며 드는 마지막 생각. 첫사랑이든 마지막 사랑이든 사랑을 쿨하게 보내는 것, 그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사랑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못 잊고, 아파하며 마음 쓰였던 시간들. 그때는 아팠지만 지금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그렇게 보낸 시간들,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며 조금은 더 성숙하게 되었고, 세상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으니 말이다. (138P)



세상을 보는 입장과 전략적인 판단에 따라 친소(親疏)가 다를 수 있다. 국가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다. 꺼삐딴 리, 염상구, 염상진, 이명준…. 친소(親疏)가 낳은 다양한 삶의 유형들. 문제는 그 누군가의 친소(親疏) 팻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난과 조롱, 심지어는 타격의 대상이 된다. 수렴과 타협은 없다. 이상과 도덕이 높을수록 가차없다. 수렴은 패배이고 타협은 변절이다. 토착○○, 빨○○라는 속된 말들이 난무한다. 한국사회에 구조화된 비난과 조롱은 견고한 진영을 갖추고 서로를 향해 인생을 걸고 칼을 겨눈다. 서로를 향한 미움과 증오, 조롱은 끝이 없다.

(중략) 탁월한 국력, 높은 문화, 모두가 평화롭게 넘나드는 나라, 무엇보다 누구와 편먹지 않아도 되는 나라다.

우리 안 ‘꺼삐딴 리’는 더 이상 없고, ‘이명준’은 평화롭다. 그날에는 성조기든 일장기든 오성홍기든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생활의 악센트, 취향이 될 것이다.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일제 35년을 넘어, 동북아가 평화와 번영으로 내딛게 될 어느 날, 사랑하는 우리 딸들이 이룰 세계이다.” (241P)


〈사랑했던 그 사람〉은 희곡은 희곡대로, 노래는 노래대로, 각주는 각주대로 자기 이야기를 해나가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큰 그림이 된다. 각자 취향에 따라, 희곡만 먼저 읽어도 좋고, 아니면 각주만 끝까지 읽어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부터, 詩作 - 테드 휴즈의 시작법
테드 휴즈 지음, 김승일 옮김 / 비아북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쓸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내가 쓴 시가 제대로 읽힐까 하는 의문이다.

상징과 은유를 쓸 때 각 시어(詩語)가, 문장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게 하는 데도 힘들지만...

쓰고 읽고를 수없이 반복해도 막상 쓰는 것은 압박감과 함께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좀 더 시를 쉽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은 의외로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 주었다.

'역자의 말'에서 단초를 잡았다. 바로 시를 그림으로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그려나가면 될 것 같았다.




저자 테드 휴즈는 평생을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그가 느낀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이 책에서 털어 놓고 있다.

각 장의 끝에는 실천 가능하고 유용한 조언을 담은 ‘시인의 노트’가 추가됐다.

이를 통해 테드 휴즈는 시와 친해지고 싶은 모두에게 유쾌하고 진솔하며 실용적인 격려를 건넨다.

아일랜드의 시인 셰이머스 히니가 “땅과 언어의 수호자, 테드 휴즈의 창의적인 글쓰기에 대한 고전적인 앤솔러지”라고 평한 이 책에는 휴즈가 직접 선별한 50여 편의 걸작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 감상하는 재미를 더한다.




해적판의 오역을 바로잡고 내용을 가다듬어 비아북에서 <오늘부터, 詩作>이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특히 한국 현대시의 ‘지금’을 대표하는 젊은 시인, 김승일이 번역을 맡아 원문에 실린 시의 말맛과 독특한 느낌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이 번역자는 내게 큰 감명을 주었고, 난 영감을 얻어 시 연습을 더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오늘부터, 詩作>은 총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장은 동물, 날씨, 사람, 생각, 풍경, 가족, 환상 속 생물 등 독자가 주변에서 찾기 쉬운 친숙하고 일상적인 소재들을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각 장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날 ‘동물 사로잡기’는 유년 시절에서 출발해, 사냥에 대한 저자의 각별한 애정이 어떻게 시에 대한 열정으로 옮겨갔는지 그 과정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저자가 쓴 두 편의 동물 시 「생각여우」와 「창꼬치」를 소개하는데, 두 시를 통해 동물들을 종이 위에서 창조하는 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둘째 날 ‘바람과 날씨’에서는 사람의 감정이 날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날씨가 변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시로 표현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예시로 보여주는 비, 바람, 안개에 관한 다양한 작품들은 독자들이 날씨에 따른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느껴볼 수 있도록 돕는다.

셋째 날 ‘사람들에 관해 쓰기’는 사람을 묘사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의미하게 늘어놓기만 하는 묘사는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다. 저자는 비유의 힘을 언급하며, 사람들을 가능한 생생하고 또렷하게 언어 속으로 데려오는 여러 방법을 제시한다.

독자들은 사람에 관해 쓴 다양한 시들을 통해 지금까지 몰랐던 인물들을 새로 만나게 될 것이다.

넷째 날 ‘생각하는 법 배우기’는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법을 다룬다.

저자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쉽사리 놓치는지 지적하면서, 어슴푸레하기만 한 생각들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도록 붙드는 기술을 연습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함께 실린 저자의 시 「돼지 관찰」에는 저자가 강조하는 ‘생각하는 법’이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다.


다섯째 날 ‘풍경에 대한 글쓰기’에서는 풍경이 사람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사람들이 풍경을 보며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지, 왜 그런 감정을 원하는지를 차분히 설명해나가는 동시에,

어떻게 시를 통해 그런 감정을 포착하고 강화할 수 있는지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

여섯째 날 ‘소설 쓰기-시작하기’는 모든 사람들이 천부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생각을 글로 써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 방법 중 하나로 소설 쓰기를 제안한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마주치기 마련인 어려움들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한다.

일곱째 날 ‘소설 쓰기-계속하기’는 앞 장에서 하던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글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정한 관심사를 찾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글을 쓸 때 주의해야할 점과, 글을 쓰는 태도에 관해서 조언하고 있다.


여덟째 날 ‘가족 만나기’는 우리 주변에 있는 가장 흥미진진한 소재, 가족을 통해 시를 발전시키는 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가족을 비틀고, 뜯어 고치고, 심지어는 새로 만들어내며 여러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진시킨다.

이 장에서 독자들은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시를 쓰는 기쁨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홉째 날 ‘달에 사는 생물’에서 저자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환상의 달을 현실로 끌어오는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자신의 달에 살고 있는 환상 속의 생물들을 시로 그려내면서, 독자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다채롭고 무한한 상상력을 끌어내도록 돕는다.

저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독자들은 무한한 상상의 힘이 기다리고 있을 자신만의 달을 찾아 나서기만 하면 된다.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 최소한 시와 시작에 대한 감이 잡히고,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오른다. 두고 두고 수시로 읽어볼 생각이다. 나의 시작에 많은 교감을 해주고 때론 영감을 주는 텍스트로 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일을 위해 사느라 오늘을 잊은 당신에게 - 90세 현직 정신과 의사의 인생 상담
나카무라 쓰네코 지음, 오쿠다 히로미 정리, 정미애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가 90세란 점에서 굉장한 매력이 끌렸다.

더욱이 현직 의사란 점은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름다운 삶을 위한 것이란 생각에서 읽고 싶은 욕심이 컸다.

책은 짧고 작은 책이지만 읽는 동안 나에게 많은 공감을 줬다. 읽은 후에도 감동이 오래 남아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상은 우리에게 인생의 목표라 불릴 만한 꿈과 그 꿈에 상응하는 열정을 가지라 말하고, 일 또는 직업이란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고귀한 수단으로 여긴다고 전제한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깎아 결국은 꿈에 도달한 사람들의 인생을 ‘성공’ 또는 ‘행복’이란 이름으로 대명사화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우리는 그 목표에 쉽게 닿을 수 없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생겨나는 상실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일터에서 물러나 삶을 되돌아보는 사람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말이다.



<내일을 위해 사느라 오늘을 잊은 당신에게>는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놓은 성공, 행복이라는 잣대에 맞추어 나의 인생을 재단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과 인간관계에 집착하느라 정작 나에게 중요한 것은 놓치고 사는 우리들을 위한 책이다.

“일이 삶의 보람이 될 필요는 없다. 돈 때문에 일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자신감 부족은 나쁜 게 아니다. 급조된 자신감이 가장 위험하다" "남을 변화시키는 일에 에너지 소모하지 말자. '어떻게 하면 내가 쾌적하게 지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에 에너지를 사용하자" "인생에서 견뎌야 할 시기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덜 아프게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자" 등 정곡을 찌르는 내용이 많다.



90세의 현역 정신과 의사로서 70여 년간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온 저자는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내 마음이 납득할 수 있는 행복을 찾는 법’을 조언한다. 어찌 공감이 가지 않겠는가.

현실과 이상은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 타협점을 찾아가느냐가 인생의 행복을 결정한다.

스스로를 먹여 살리면서 보통의 날들을 담담하게 살아내는 것만큼 대단한 일은 없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너무도 당연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잊고 살았던 삶의 진리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느끼는 좌절과 상실의 대부분은 ‘괴리’에서 온다.

어렸을 때 꾸었던 꿈과 어른이 되어 맞닥뜨린 현실의 괴리, 세상에서 통용되는 행복의 기준과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감 사이의 괴리, 주변에서 바라는 나와 진짜 내 모습의 괴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꼈을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오래 버티고 견뎌왔다.

때로는 언젠가 다가올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들이 행복을 가져다주었는가, 그렇게 바라던 내일이 찾아왔는가 묻는다면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대다수의 평범한 우리에게 내일이란 아직 오지 않은 날이며, 해피엔딩이라 불리는 이상적인 삶은 허상에 불과하다.

괴리감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고 ‘납득’해야 할 감정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것을 체념으로 여겨 적당히 하다 포기하려는 이들의 나약한 마음이라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타협하고 납득하는 것은 ‘삶의 방식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우리 각자에게는 나에게 알맞은 삶의 방식이 있다.

꿈을 이룬 인생이나 이루지 못한 인생, 자식이 있는 인생이나 없는 인생, 금전적으로 풍족한 인생이나 그렇지 않은 인생,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저자는 연령도 성별도 제각각인 수많은 환자들의 고민에 온화하면서도 단단한 어조로 ‘잘 풀어나가는 방법’을 조언한다.

그는 “이 모든 고민은 결국 현실과 내 마음 사이의 괴리에서 어떻게 타협점을 찾아가느냐의 문제”라고 말한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을 중심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과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멀어지는 일, 그것이 '타협'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고됨을 거름 삼아 내일의 꿈을 이루는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은, 목표가 없는 인생을 경멸하며 무엇인가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기혐오를 일삼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시작부터 끝까지 미완인 채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삶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목표나 꿈의 크기가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이상은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 우리에게는 저마다 살아내야 할 평범한 ‘오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없으니 자신감을 잃고 조바심을 냅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에게는 괴로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왜 꼭 그 이상에 도달해야 하나요? 그건 누구를 위해서인가요?”

인생의 고민은 의외로 명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기쁜 일이 있으면 마음껏 기뻐하고,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별 수 없지’ 하고 담담하게 해내면 그만.

먼 훗날의 행복을 찾느라 지금 여기에 있는 만족감을 놓치지 말 것. 내일을 위해 사느라 오늘을 잊은 당신에게도 이 메시지가 전달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 전에 없던 관계와 감정의 혼란에 대하여
김병수 지음 / 더퀘스트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규정하지만 마흔쯤 되는 시점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정싱건강의학과 의사의 충고다.

마흔도 훨씬 지나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마흔쯤에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고 이 책의 충고처럼 더 정확하게 삶을 진단하고 삶의 방향을 수정했다면 지금의 나와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란 자성의 마음에서 시작했다.

익히 배운 대로 마흔의 나이는 공자에 의하면 '불혹'이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운 뜻대로 길을 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마흔쯤에 내 뜻대로보다는 내가 닥친 상황에 따라 살았다는 후회가 든다.


책에 따르면 마흔 즈음이 되면 대개 전에 없던 감정 변화가 낯설다는 말을 많이 한다. 화나고 서운하고 외롭고 텅 빈 마음이 들기 일쑤다. 이럴 때 사람들은 컨트롤되지 않는 감정보다 이성을 붙잡으려고 처절하게 애를 쓴다.

저자는 혼란스러울수록 감정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진정한 나를 알아가는 뼈아픈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병수 원장 말에 따르면 험난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이성에 의존해왔더라도 마흔 이후에는 이성보다 내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더 살펴야 한다.



이처럼 책은 ‘두 번째 사춘기’에 겪는 낯선 변화에 대해 차분하게 도움을 준다.

저자의 상담 사례와 심리 조언으로 이루어진 챕터들은 생각 공부, 감정 공부, 관계 공부로 파트가 나뉘어 있다.

나이와 지혜는 왜 비례하지 않는지, 속으론 아니면서 왜 내려놓았다는 거짓말을 하는지, 40~50대 가장 많다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 때론 공감으로 때론 따끔한 충고로 독자들과 소통한다.



인생은 마흔 전과 마흔 후로 나뉜다.

여전히 가족과 직장과 사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늦기 전에 40대에는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 후반부에 길을 잃고 평생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살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마흔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시기다.

한국 사회와 문화 속 세대별 아픔에 주목해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병수 원장이 마흔에 관심을 두고 이번 책을 썼다. 20년이 넘는 상담과 치료 경험을 토대로 마흔을 앞두었거나 마흔을 흘려보낸 사람들이 가면을 벗고 진정한 나를 찾도록,

그래서 삶의 변곡점을 지나서는 온전히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냉정하지만 힘이 되는 심리 조언들을 담았다.



‘인생은 마흔에 비로소 시작된다. 그때까지 우리는 그저 탐구만 했을 뿐이다.’

중년 이후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의 말이다. 융의 말처럼 인생 후반부를 새롭게 시작할 기회가 마흔에 주어진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그래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려면 나 자신부터 알아야 한다.

이 책은 마흔 즈음의 나를 알아가는 데 작지만 확실한 도움을 준다.



불협화음이 자꾸 생기는 사회생활과 부부관계부터 공허함, 외로움, 분노, 우울까지 마흔의 다양한 변화와 이유를

심리학적으로 고찰해보는 건 어떨까. 무슨 일이든 원인을 알면 불안과 걱정에 무한정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마흔을 앞둔 사람은 준비하는 마음으로, 마흔이 지난 사람은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우리에게 아직도 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숙제가 많은 만큼 인생을 살아야 할 이유도 많다는 뜻이니까요. 아직 그만큼의 열정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숙제 없는 마흔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마흔이라면 당연히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 「인생은 축제가 아니라 숙제다」중에서

마흔이 넘어서도 내 마음에는 선한 양만 있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다면 철부지입니다. 내 마음에는 늑대가 없다고 떠드는 사람은 가까이하지 마세요. 거짓말쟁이니까요. 자기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는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라면 이런 말 못 합니다.

--- 「인간은 본래 모순덩어리다」중에서

사람은 완벽해야 한다고 믿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완벽을 강요하는 것은 이 세상 누구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선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완벽을 향한 열망도 좋지만 완벽하지 않은 자기 모습, 완벽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품고 가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겁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도 완벽을 강요하지 않는 것, 중년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즐긴다면」중에서

마흔 이후는 이성보다 감정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입니다. 험난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이성에 의존해왔더라도 마흔 이후에는 자기감정, 타인의 감정을 소중히 다루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 「감정 난독증에 걸린 사람들」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로 산다는 것 - 융 심리학으로 보는 남성의 삶과 그림자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지난해부터 대한민국을 관통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 중의 하나가 '페미니즘'이다.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여성으로서의 삶의 어려움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동의하진 않지만 긍정적인 면도 크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남성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남성으로서의 삶'이라는 끝없는 압박을 받고 있다.
심지어는 그 압박에 힘들다는 표현조차 허용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이른바 역차별을 의식하지만 내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 제임스 홀리스는 남성들은 물려받은 허상과 기대로 인해 내면에서의 어려움을 드러내거나 나타내기를 어려워한다.
전 생애에 걸쳐 역할과 기대, 경쟁과 적개심, 자질이나 역량에 대한 평가 등을 겪으며 상처와 압박을 받는다.
결국 이것이 자기소외와 자아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새턴(토성, 태어나면서부터 겪게 되는 상처와 억압)의 그림자는 
어느 나라의 남성이나 동일하게 겪게 되는 삶의 일부란 주장에 동감한다.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느껴왔던 남성으로서의 어려운 삶을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에 공포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직시하고, 상처를 숨기려하기보다는 인정하고 치유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억압과 상처 속에 살아가는 남성들의 삶을 돌아보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한 사람의 남성으로 정의되는 데 필요한 것들, 즉 남성이라는 역할과 기대, 경쟁과 적개심, 자질이나 역량에 대한 평가 등은 모두 남성에게 압박이 된다. 남성을 평생 따라다니는 짐이자 부담거리, 이것을 융 심리학자 제임스 홀리스는 ‘새턴(토성)의 그림자’에 비유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성 대다수는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타락한 권력에 고통받고 두려움에 쫓기며 자신도 모자라 타인까지 상처 입히면서, 모두가 공범이 되어 서로 모멸감을 주기도 하고 때로 스스로 괴물이 되기도 한다. 과연 모든 남성이 이를 반드시 견디고 살아야 할까? 
이런 삶 말고는 대안이 없을까? <남자로 산다는 것>의 저자 제임스 홀리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이 자신의 영혼을 잠식한 어두운 신화를 이해하고, 또 외롭고 겁에 질린 자기 마음속 상처에서 조금씩 벗어나도록, 홀리스는 ‘남성의 마음속 여덟 가지 비밀’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독자는 남성 자신이기도 하고, 그 남성 곁에서 상처받는 여성 또는 다른 남성들이기도 하다.


남성의 마음속 여덟 가지 비밀

1. 남성의 삶은 (여성의 삶과 마찬가지로) ‘남성’이라는 성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기대에 구속되고 지배받는다.
2 남성의 삶은 근본적으로 공포가 지배한다.
3 여성성의 힘은 남성의 정신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4 남성은 ‘침묵의 음모’와 결탁한 상태다. 자신의 정서적 진실을 억압하는 것이 이 음모의 목표다.
5 남성은 불가피하게 상처를 입는다.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면서부터 어머니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머니란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원형 상징을 가리킨다.)
6 남성의 삶은 폭력적이다. 자신의 영혼부터가 폭력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7 모든 남성은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무의식의 원형으로서) ‘종족선조’를 향한 깊은 갈망이 있다.
8 남성이 치유되려면 외부에서 충족시킬 수 없는 무언가를 내면에서 스스로 깨워야 한다.


남성의 근원적 공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공포’(예를 들어 일, 가족부양), 

다른 하나는 ‘물리적/심리적 시련에 대한 공포’(예를 들어 전쟁)다. 안타깝게도 남성들은 자신이 얼마나 공포에 취약한지를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거의 털어놓지 못한다(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라면 남성은 치료 후 1년은 지나야 겨우 여성이 치료를 시작할 때의 수준에 도달한다고까지 말하는 정신분석 치료사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라면, 남성은 자신의 공포를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남자로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일과 가족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다했으나 정작 자기 삶을 사는 일은 잊었던 그 사람에게 잃어버린 통과의례를 거쳐 어른의 세계로 소년은 내면의 여성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림자를 의식적으로 짊어져야 한다. 
감정에 솔직해지는 방법을, 얻어맞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싸움에 뛰어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겪어야만 하는 상처’다. 
이 상처들은 ‘내면을 변화시키는 상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전통적인 통과의례는 사라졌고 멘토는 멸종동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런 현대를 살아가는 남성을 괴롭히는 주범은 결국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는 상처’, 즉 상처는 입지만 그로 인해 건설적으로 변신하지도, 깊이 숨겨진 의식을 끄집어내지도 못하는 경우다.


한 사람의 남성으로 정의되는 데 필요한 것들, 즉 남성의 역할과 기대, 경쟁과 적개심, 남성이 지닌 더 나은 자질과 역량에 대한 모욕과 폄하 등은 모두 남성에게 압박이 된다. 이런 부담은 언제나 있어왔지만, 오늘날 몇몇 용기 있는 남성들이 과연 이를 반드시 견디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서문. 새턴의 그림자 아래서」중에서


거대한 무지 속에 갇혀 살아왔다는 걸 알아차리고 자신이 연기해온 역할에 분노하는 남성이라면, 마음 속 공포를 더는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에게 상처가 있음을, 그리고 그 상처가 매일의 삶에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기 삶을 지배하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남성은 타인에게도 알게 모르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 스스로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자신을 지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영혼의 여정이 지닌 가치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남성들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나설 때 비로소 폭압의 그림자는 힘을 잃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세상의 잘못된 모습이 자기 자신에게도 깃들어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그림자를 제대로 다루는 방법만 배워도 세상에 실제로 공헌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는 우리 시대의 거대하고도 해결되지 않은 여러 사회 문제 중 아주 미미한 몫이나마 스스로 짊어진 것이 아닌가.”
카를 구스타프 융이 1937년 예일대학교에서 강의 중 했던 유명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81 | 582 | 58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