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구스타프 융 - 영혼을 파고드는 무의식 세계와 페르소나 탐구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심리학 3대 거장
칼 구스타프 융.캘빈 S. 홀 지음, 이현성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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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융은 '사려 깊은 감수성과 지적 성찰로 환자를 돌본 의사다. 학교 다닐 때부터 프로이트와 함께 배운 기억이 있다. 두 사람의 정신분석 이론은 너무 어려워 더 이상 접하지 못했다. 이후 대학에서는 다른 전공학과를 다녀서 공부할 겨를도 없었다. 다만 책으로 두 사람의 이론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도 주로 프로이트에 관한 것이었고, 후학인 칼 구스타프 융은 그렇게 나와 인연이 없었다.

이번에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요즘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호소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관심이 생겨 그의 이론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다.

특히 BTS의 앨범에 융의 영혼의 세계가 도입되면서 그의 정신분석이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흥미로웠다.

영혼과 페르소나(가면을 쓴 인격) 개념을 창시하여 프로이트, 아들러와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칼 구스타프 융은 아버지가 정신병원 상담 목사였고 그는 정신과 의사였기에 유독 정신질환에 지대한 관심과 연구로, 분석심리학의 창시자로 통한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융은 후대에 거장이란 명칭을 얻었으나 그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융이 직접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에서 자서전적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융은 환자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사려 깊은 심리학자였다. 틀에 박힌 방법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경계했으며 개인에 대한 개별적 이해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권위보다는 환자를 생각했고 환자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면 다른 학파의 방법도 개의치 않았다.

융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목회자가 많은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하면서 그는 일치하지 않는 모순들과 오랜 시간 싸워야 했는데, 그 모순을 덮어 버리지 않고 답을 찾기 위해 끈질기게 공부하고 토론하고 성찰하였다.

이와 같은 성장 배경은 융이 환자를 인격적으로 배려하면서 치료하고자 한 신념이 되었고, 반복적으로 자기성찰을 하며 자신만의 사상 체계를 확립해 가도록 이끌었다. 융이 연금술에 몰두하게 된 배경도 여기에서 나왔다 하겠다.






이 책의 공동저자 캘빈 S. 홈에 따르면 이 책의 후반에 실린 ‘융이 직접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에는 이처럼 유년기와 청소년기 시절 겪은 융의 갈등과 방황이 내밀하게 드러나 있다.

또한 어떻게 정신의학에 발을 내딛게 되었는지부터 프로이트와의 만남과 결별 그리고 그 이후 자기만의 정신분석학을 만드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가 창시한 분석심리학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정신분석학에서 융이 갖는 의의와 위치를 소개하는 1~6장을 읽은 뒤 이 융의 자서전을 읽으면 심리학자의 삶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하는 색다른 경험을 함과 동시에 그의 사상 세계 또한 더욱 쉽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융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가 인간의 마음에 커다란 관심을 두고 심리학자로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 배경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융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그 외에도 집안에 목회자들이 많아서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 대화, 신학적 논의, 설교를 듣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융은 매일 밤 기도를 하며 마음의 안식과 위로를 얻었지만 집안 어른들의 대화에는 융이 납득하기 힘든 모순이 있었다. 신학자인 그들의 말이 본질을 비껴가고 있다고 느낀 융은 집에 있는 아버지의 신학 관련 책들을 모조리 찾아 읽었지만 그래도 불신을 극복할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

그가 유년기에 느낀 불일치는 부모의 불화,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맞닥뜨린 누이동생의 출생, 온전한 신앙을 갖지 못한 채 신앙인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내적 모순, 세상에 나가 깨닫게 된 경제적 격차 등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융은 자아가 분리되는 경험을 해야 했으며, 이는 그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심리학의 주제가 되었다. 대학에 들어간 융은 내적 분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자연과학, 인문과학, 철학, 신학을 아우르며 탐구하였고 그 과정을 거쳐 의학자로서의 길을 결정하게 된다.

융은 그중에서도 정신의학을 자신의 전공 분야로 선택한다. 융이 이 길을 자신의 숙명으로 여겼다는 사실은 당연하게도 느껴진다. 융은 스스로를 감금하듯 정신의학 연구에 몰두하며 치료의 열쇠를 찾고자 노력했다.



책에 따르면 융은 환자의 정신 치료와 분석을 함에 있어 환자 개개인을 우선시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진전되도록 배려했다. 융은 언제나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했으며 그들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었고,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것이 어느 학파의 방법이든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환자의 치료였다. 융은 피분석자들을 자신과 대등한 인격체로서 대하며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 가운데 대다수가 융의 제자가 되어 몇십 년이 지난 뒤에도 친분을 유지하였다.

융은 자신의 성장기를 통해, 아동기와 청년기에는 부모와 교육자가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일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환자를 치료할 때면 각각의 상태에 따라 상담하는 횟수를 달리했으며, 환자 스스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볼 때 그의 미래 계획과 목표까지 고려하며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진심을 다하였다.

이처럼 융은 여러 관점을 갖고 환자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되도록 다양한 지식을 쌓고자 했다. 학자로서의 융은 그렇게 콤플렉스, 집단무의식, 내향형과 외향형의 성격 유형 등의 이론을 정립하고 분석심리학을 창안하였다. 또한 신화의 해석, 기독교에 대한 분석도 손 놓지 않고 진행해 자기 인생의 해답을 얻고자 하였다.



회사원은 하루 8시간 동안 회사에서 가면을 쓰고 있지만 직장에서 나온 순간 그것을 벗어 버리고, 더 큰 만족을 위한 활동에 임할 수 있다. 이 점과 관련해서 저명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생각난다. 그는 낮에는 성실하게 상해보험국에서 일하고, 밤에는 저술과 문화적 활동에 집중했다.

근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여러 번 호소했지만 그의 상사는 착실히 일하는 카프카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많은 사람이 페르소나에 지배된 생활과 심리적 욕구들을 채우는 생활로 이중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가면을 쓰는 사람도 많다.

직장에서 쓰는 것과 다른 탈을 가정에서 쓸지도 모른다. 골프장에 가거나, 친구와 포커를 하고 있을 때도 제3의 가면을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가면을 총괄한 것이 그의 페르소나이다.

- 「집단무의식」 중에서



그렇지만 융은 하나의 이론에만 치우치는 일을 경계했듯 한 방법에만 지나치게 기대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심리학적 이론은 매우 번거롭다. 지향과 발견의 단서를 잡기 위해서는 일정한 관점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보조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인간의 정신에 관한 연구는 충분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정도로 진보했다고 생각하기는 이르다. 정신 현상학의 경험적 범위조차 못 정하면서 어떻게 일반 이론을 꿈꿀 수 있을까? 아마 이론은 부족한 경험과 무지를 가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가면일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참하며 완고함, 괴팍함, 천박함, 학문의 파벌 등 참담하고 슬프다.”

- 「융 심리학의 의의」 중에서



융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의 정신과 의사 생활이나 환자들에 대한 배려나 태도 등에 관여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버지의 죽음도 그에게는 그의 분석심리학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참 뒤에 나는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상태를 살피러 갔다. 아버지의 입에서는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어머니를 찾아 옆방으로 뛰어갔다. “아버지가 죽어 가고 있어요”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방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 어머니가 충격을 받은 듯 말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지나가는구나.”

그 후 며칠 동안은 괴롭고 우울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 적당한 시기에 돌아가셨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었다. 즉, ‘두 사람은 서로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너의 방해자가 됐는지도 모른다.’ 이런 말이 나로서는 어머니의 제2의 인격에 맞다고 생각했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몹시 아프게 느껴졌다. 지난날은 그때 완전히 끝나 버렸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 남성스러움과 해방감이 내 안에서 움텄다. 그 후 나는 아버지의 방으로 옮기고 집안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했다.

- 「아버지의 죽음」 중에서



저자 :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년 7월 26일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젤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의 원장 오이겐 블로일러 밑에서 심리학 연구를 시작했다. 자극어에 대한 단어 연상 실험을 연구하면서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을 입증하고 이를 ‘콤플렉스’라 명명했다.

1907년 이후 프로이트와 공동 작업을 하면서 그의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융은 프로이트의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 에너지라 하여 갈등을 빚다 결국 결별했다. 1914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으며 내적으로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이때 독자적으로 무의식 세계를 연구해 분석심리학을 창시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믿고 집단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또한 각 개체의 통합을 도모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신화학, 연금술,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을 연구했다. 1961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 : 캘빈 S. 홀(CALVIN S. HALL)


1909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나 1985년 사망했다. 워싱턴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1933년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캘리포니아 대학교, 오리건 대학교, 웨스턴리저브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융 심리학 입문(A PRIMER OF JUNGIAN PSYCHOLOGY)』 『성격 이론(THEORIES OF PERSONALITY)』 『꿈의 내용 분석(THE CONTENT ANALYSIS OF DREAMS)』 『꿈의 의미(THE MEANING OF DREAMS)』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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