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2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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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우리 역사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실학자로서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을 주장한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가 우리 최대의 실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개혁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약용을 떠올리면 오랜 시간 동안 겪어야 했던 귀양살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귀양살이는 그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주었지만, 최고의 실학자가 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고 '다산 연구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다산의 학문과 사상은 귀양살이라는 정치적 탄압까지도 학문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업적을 이뤄낸 인내와 성실, 그리고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성실'을 제일로 친 사람이었다. 그의 방대한 저작은 평생을 통하여 중단없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탄생한 것이다.

“사실에 의거해서 진리를 찾는 ‘실사구시’의 삶을” 살았던 다산 정약용은 “인민의 영혼을 일깨워주는 꼭두새벽의 쇠북 소리”이자 “잘못 흘러가고 있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아주는 관개 사업”이었다. 1권 「유배지 장기에서」란 제목의 장(章)에서 저자 한승원은 유배지에서 다산의 '관개 사업'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선비의 사업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잉잉거리면서 꽃을 찾아가서 꿀고 꽃가루를 머금어다가 통 속에 저장하고, 애벌레를 먹여 키우는 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 어여쁜 아가씨와 사랑에 깊이 빠지듯이, 책 저술하는 사업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가자. 금방 날이 저물고 바미 짧았고, 배고픔과 추위도 잊을 수 있었다. 사약에 대한 공포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1권, p.312) 

다산은 “‘세상을 올바르게 경영하는 지표’, 즉 가장 진실한 예”를 쓰고 싶어 했고, 이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신실한 의지였다. 남인이었던 정약용을 노론 세력으로부터 보호해주던 정조가 승하하자, 정약용은 한때 천주교에 이끌렸던 과거를 빌미로 경상도 장기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간 길고 고통스러운 유배 생활을 보낸다. “‘예가 아니면 말하지 않고 예가 아니면 보지 않고 예가 아니면 듣지 않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 자기 성찰에 투철한 참 선비 학자” 정약용은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귀양살이를 하게 된” “기구하고 신산한 운명을 어떻게 무엇으로 이겨냈을까.” 

저자 한승원은 정약용의 지난하고도 치열한 일생의 운명을 따라 짚으며 그에게서 “갇혀 사는 사람의 아프고 슬픈 절대 고독과, 그 고독을 이겨내려는 고귀한 분투와 꿈꾸기와 도학자의 여유”를 깨쳤고 정약용과 하나가 되어 그가 삶에서 품었던 꿈과 우정을 이 소설 작품을 통해 소생시킨다.

정약용의 가장 큰 후견인은 정조였다. 정조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큰 환란이 없었지만,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고난이 시작된다. 승승장구하던 정약용도 정조 사후에 완벽히 정계에서 배제되고 잊혀져 갔다. 사실 정약용은 관직에 나간 지 2년 만에 당색으로 비판된 것에 불만을 품었다가 해미에 유배되었으나 정조의 배려로 열흘 만에 풀려났다. 하지만, 정조가 승하한 이듬해 1801년(순조 1) 〈신유사화〉가 일어나면서 주변 인물들이 참화를 당했고, 손위 형인 정약종도 참수를 당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정약용은 그해 2월에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11월에는 강진으로 옮겨졌다. 18년 동안 긴 강진 유배생활의 시작이었다. 『다산시문집』 제4권에는 정조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노래한 정약용의 시가 전해진다.


운기(雲旗), 우개(羽蓋) 펄럭펄럭 세상 먼지 터는 걸까 홍화문(弘化) 앞에다 조장(祖帳)을 차리었네

열두 전거(?車)에다 채워둔 우상 말(塑馬)이 일시에 머리 들어 서쪽을 향하고 있네

영구 수레(龍?)가 밤 되어 노량(露梁) 사장 도착하니 일천 개 등촉들이 강사(絳紗) 장막 에워싸네

단청한 배 붉은 난간은 어제와 똑같은데 님의 넋은 어느새 우화관(于華館)으로 가셨을까

천 줄기 흐르는 눈물 의상(衣裳)에 가득하고 바람 속 은하수도 슬픔에 잠겼어라

성궐은 옛 모습 그대로 있건마는 서향각 배알을 각지기가 못하게 하네 - 『다산시문집』 제4권

유배 생활 처음에는 천주교도라고 하여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역사는 기술하고 있다. 천주교인이라는 소문으로 나자 모두 정약용을 모른 척했다. 유배지의 어려움 속에서도 승려 혜장 등과 교유하고, 제자들을 키우며 저술활동에 전념하였다. 담배 역시 유배의 시름을 덜어주는 벗이었다. 강진에 도착해서 처음 머무른 곳이 사의재(四宜齋)라는 동문 밖 주막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그곳에 기거하면서 예학 연구를 시작하였고, 이후 고성사의 보은산방과 목리의 이학래집으로 전전하면서 연구에 전념하였다. 

1808년 귤동의 〈다산초당〉에 자리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1,000여 권의 서적을 쌓아 놓고 유교 경전을 연구하였다. 그의 이른바 주석 학문인 경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 2권에는 정약용과 혜장의 만남 이후 그들이 나눈 『주역』에 관한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바야흐로 주역에 심취해 있는 혜장은 선배 학자들의 주역론을 열심히 찾아 읽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도와 낙서의 이론과 주자의 『역학계몽』도 읽은 듯, 그들의 이론을 자기 이론인 양 말하고 있었다. 무슨 책을 읽든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하고, 선배 학자들의 결함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하고, 자기만의 특이한 주장을 펼 줄 알아야 하는데, 혜장은 『주역』에 관한 한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었다.


"대개의 경우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르는 법인데, 그것은 그 도둑이 도둑질의 즐거움에 취해 있는 까닭이고, 취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도둑질을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자만에 빠져 있는 까닭이고, 아직 도둑의 도를 터득하지 못한 까닭이이고, 그 도둑의 성정이 주정적일 뿐, 이지적이고 창조적이지 못한 까닭이다. 이런 도둑질의 방법 여기저기에 허술한 점이 많으므로 쉽게 꼬투리가 잡히기 마련이다. 도둑으로서 도통하려면, 강희맹의 가르침을 익혀야 한다."(2권, p.147)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인 마현으로 돌아온 것은 1818년 가을, 그의 나이 57세 때였다. 57세에 해배되어 1836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고향인 마현에서 자신의 학문을 마무리하여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다. 해배되었다고는 하나 오랜 기간 지냈던 강진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자신이 지은 많은 저술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읽히도록 하기위해서였다. 초로의 나이에 더 이상 관직에 나갈 수 없었던 다산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저술들을 널리 소개하여 읽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곧 경세(經世)의 길이었다. 

이후 자신의 호를 다음 시대를 기다린다는 뜻의 ‘사암(俟菴)’을 즐겨 사용한 것 역시 그런 의미였다. 그는 〈자찬묘지명〉에서 자신의 저술에 대해 “육경과 사서는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고, 일표와 이서는 천하와 국가를 위함이니, 본말이 갖추어졌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육경과 사서에 관한 저술이 근본이라면, 『경세유표』와 『목민심서』·『흠흠신서』는 경세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었다. 해배 이후 학문적 교제를 했던 대상은 신작·김매순··홍길주·김정희(추사) 등 당시 저명한 노·소론계의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정권을 잡은 노·소론계였지만 고정된 정론이나 학설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들과의 토론을 통해 경전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경세관을 펼쳐 나갔다.

정약용이 가진 국가개혁의 목표는 부국강병이었다. 국가개혁사상이 집대성되어 있는 『경세유표』에서 그는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이 종합된 개혁사상을 전개하였다. 정약용의 개혁안은 장인영국(匠人營國)과 정전법을 중심으로 한 체국경야(體國經野)라 평가할 수 있다. 통치와 상업, 국방의 중심지로서의 도시건설(체국)과 정전법을 중심으로 한 토지개혁(경야)을 바탕으로 세제, 군제, 관제, 신분 및 과거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도를 고치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개혁안의 주요 골자이다. 『주례(周禮)』의 체국경야 체제를 기본 모형으로 삼아 조선후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상공업의 진흥을 통하여 부국강병을 꾀하고자 한 것이다.

이 소설 작품 『다산 1, 2』는 「떠나가는 나그네」라는 제목의 마지막 장에서 아들이 읽는 그의 유언장 내용이 소개되면서 기어코 독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대부분의 유배생활인 관료로서의 생활과 평상시의 인격, 그리고 집안 식구들에 대한 세세한 관심과 애정은 그가 남긴 500권의 장서에 담기지 않았지만 저자 한승원의 이 소설 작품은 포착해 낼 수 있다. 유언장의 주요 내용은 자신의 주검을 염하는 방법부터 순서까지 자세히 적혔고 이에 필요한 수의의 옷감까지 일일이 지정할 정도로 긴 시간 읽게 한다. 그만큼 평소에 예(禮)를 중시하고, 유교의 가르침을 따랐으며 일상을 어김없이 철저한 성격을 분명하게 묘사하는 저자의 속뜻이 담겼으리라고 추측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물론 어려운 한자어가 많이 섞여 있고 절차에 대한 무지로 독자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분위기만 보아도 독자들의 감동을 자아낼 정도로 저자 한승원이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란 추론까지 가능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산은 아들의 유언장 낭독을 하는 동안 숨을 거두며 육체에서 이탈한 혼이 천국에서 마중 나온 이들과 조우한다. 

한 무리의 하얀 도포 차림을 한 사람들은 이벽과 정약전·정약종·이가환·이승훈·황사영·김범우·윤유일 등이다. 이벽이 다산에게 한 말이 오랫동안 독자들의 뇌리에 남을 명장편을 연출한다. 

"정공의 뜻대로 되었습니다. 정공이 자리 잡은 새 세상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아래쪽에 강의 물너울을 거느린 거대한 천지 우주의 치마폭 같은 다산성의 세상 한복판입니다. 동암에는 서재가 있고, 서암에는 차실이 있습니다. 여기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산골짜기에 암자가 있는데, 암자의 주지가 곡차를 즐길 줄 아는 화통한 스님이랍니다. 이 초당에서 저술하며 사시다가 답답해지면, 암자의 주지하고 술 대작도 하시고, 밭도 일구시고, 저 아래로 내려가서 낚시질도 하시고······."(2권, p.307)


저자 : 한승원(韓勝源, 호 : 해산海山)


자신의 고향인 장흥, 바다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애환과 생명력, 한(恨)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온 작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교사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다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뒤 소설가와 시인으로 수많은 작품을 펴내며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김동리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 한국 문단에 큰 궤적을 남겼다. 소설가 한강, 한동림의 아버지이기도 하며 장흥 바닷가 해산토굴에서 집필중이다. 그의 작품들은 늘 고향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펼쳐진다. 그 바다는 역사적 상처와 개인의 욕망이 만나 꿈틀대는 곳이며, 새 생명을 길어내는 부활의 터전이다. 그는 지난 95년 서울을 등지고 전남 장흥 바닷가에 내려가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소설집 『앞산도 첩첩하고』 『안개바다』 『미망하는 새』 『폐촌』 『포구의 달』 『내 고향 남쪽바다』 『새터말 사람들』 『해변의 길손』 『희망 사진관』,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해일』 『동학제』 『아버지를 위하여』 『까마』 『시인의 잠』 『우리들의 돌탑』 『연꽃바다』 『해산 가는 길』 『꿈』 『사랑』 『화사』 『멍텅구리배』 『초의』 『흑산도 하늘길』 『추사』 『다산』 『원효』 『보리 닷 되』 『피플 붓다』 『항항포포』 『겨울잠, 봄꿈』 『사랑아, 피를 토하라』 『사람의 맨발』, 『달개비꽃 엄마』, 산문집 『허무의 바다에 외로운 등불 하나』 『키 작은 인간의 마을에서』 『푸른 산 흰 구름』 『이 세상을 다녀가는 것 가운데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 『바닷가 학교』 『차 한 잔의 깨달음』 『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 시집 『열애일기』 『사랑은 늘 혼자 깨어있게 하고』 『달 긷는 집』 『사랑하는 나그네 당신』 『이별 연습하는 시간』 『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 『꽃에 씌어 산다』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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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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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2』의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민족 역사상 두 분의 큰 인물을 만나게 된다. 한 명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고, 다른 한 명은 한국 현대문단사의 거목, 한승원이다. 한승원은 우리 시대의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이다. 이 책 『다산 1, 2』는 저자 한승원이 다산의 일대기를 소설로 지어낸 작품이다. 한승원은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들을 수상하고, 수많은 대표작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전남 장흥, 바다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애환과 생명력, 한(恨)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온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승원의 작품을 문학평론가들이 그렇게 일컬었다. 크게 잘못된 지적은 아니지만 평론의 일부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는다. 한승원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교사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다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뒤 소설가와 시인으로 수많은 작품을 펴내며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김동리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 한국 문단에 큰 궤적을 남겼다. 소설가 한강, 한동림의 아버지이기도 하며 장흥 바닷가 해산토굴에서 집필중이다.

그의 작품들은 늘 고향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펼쳐진다. 그 바다는 역사적 상처와 개인의 욕망이 만나 꿈틀대는 곳이며, 새 생명을 길어내는 부활의 터전이다. 그는 지난 1995년 서울을 등지고 전남 장흥 바닷가에 내려가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승원의 소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한'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당사자인 한승원은 이렇게 말한다. "제 소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한'이 아니라 '생명력'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는 독자들이 만들어놓은 '가면'을 거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승원은 토속적인 작가다' 하는 것도 게으른 평론가들이 만들어놓은 가면일 뿐이지요. 작가는 주어진 얼굴을 거부해야 합니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장편 『연꽃바다』를 쓸 때부터 제 작품세계는 크게 변했습니다. 생명주의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인데, 저는 그것을 휴머니즘에 대한 반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인간 본위의 휴머니즘이 우주에 저지른 해악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는 노장(老莊)이나 불교 사상에 있다고 봅니다."

한승원의 이 말은 한국문학의 근원이라고 일컬어지는 민족 정서의 원동력은 '한(恨)'라는 '조각의 전체화',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고, 소극적 받아들임이 아니라 적극적 생명력에 천착하는 문학이라는 반론이기도 하다.

이 소설 작품 『다산 1, 2』는 저자 한승원의 자신의 작품의 근원을 '생명력'으로 말하는 것과 동일 선상에 있다. 이번에 열림원에서 새롭게 출간된 『다산』은 추사 김정희를 다룬 『추사』, 다산의 제자 초의 스님을 다룬 『초의』에 이은 작품이자, 그가 평생에 걸쳐 좇아온 〈조선 천재 3부작〉의 완결판이다. 김형중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을 두고 “정약용의 일대기와 사상을 소설화”함으로써 “인물소설 쓰기가 하나의 거대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다산』은 정약용이 그랬던 것처럼 글쓰기를 필생의 업으로 삼은 대(大)작가 한승원의 광활하고도 심지 깊은 작품세계와 탄탄한 내공을 집약시킨 결정체이다. 이로 인해 “소설가는 흘러 다니는 말이나 기록(역사)의 행간에 서려 있는 숨은 그림 같은 서사, 그 출렁거리는 파도 같은 우주의 율동을 빨아먹고” 산다는 그의 말과 일치된다. 저자 한승원은 역사 속 숨어 있는 진실을 찾아내고자 하는 남다른 소설적 집요함으로 한 시대의 공기, 바람과 햇살, 심지어 역사적 인물의 숨결까지 살려내 이 소설에 담아냈다.

저자 한승원은 1939년 전라남도 장흥 출생으로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로, 같은 해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木船)」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63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중 동창생들인 이문구?조세희 등과 교유했다. 국민학교 교사를 거쳐 광양중학, 광주 춘태여고 교사를 지냈다. 교사 재직 시절에도 꾸준히 창작활동을 계속했으며 1980년 「그 바다 끓며 넘치며」로 한국소설문학상을, 1983년 「누이와 늑대」로 대한민국문학상을, 1983년 「포구의 달」로 한국문학작가상을 각각 수상했다.

한승원이 〈조선 천재 3부작〉으로 지목한 다산 정약용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조선시대 역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학자이자 관료이다. 그는 정조 사후 교리가 불충하고 요사스럽다는 천주교에 빠졌다는 이유로 둘째 형 정약전, 셋째 형 정약종과 함께 정치적 처벌 대상이었으며, 특히 정약종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 순교했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각각 흑산도와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이때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의 유배 기간 중 무려 500권의 책을 저술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인물로 밝혀진다. 그가 남긴 책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 분야를 다루었으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상이 담긴 〈조선비결〉이란 책이 독자들의 눈길을 끌 것이다. 〈조선비결〉이란 실제 존재하는 책은 아니지만 다산이 임종 시 "아직 세상에 알려질 때가 아니니 훗날 적절한 시기에 세상에 내놓으라"고 했다는 책이다.

책은 두 권으로 분책되어 발간됐으며 1권의 첫 장(章)의 제목은 금서(禁書)라는 「다산비결」이다. 첫 장이지만 차례 앞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서문〉의 역할을 한다. 저자가 자료 수집과 취재에 들어 「다산비결」에 대해 물었다. 아마 구전으로만 내려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고 있었기에 확인 차원에서 저자가 발품을 판 것으로 이해된다. 이 책은 호남 지방의 의식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필사되어 읽혀졌던 책으로 금서이다 보니 「다산비결」이라는 제목의 책은 전하지 않는다는 한 연구가는 『방례초본』(후에 『경세유표』로 개명)으로 추정한다고 알려 주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다산비결」을 은밀하게 돌려가며 읽던 그들이 1894년 임금을 싸고도는 간신배와 썩은 관료들을 징치하고 무너지는 나라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겠다고 일어선 동학군의 접주들이 되었다는 부분이다. 한 연구가가 방대한 분량의 『방례초본』과는 다른 것일 가능성을 추정하면서 핵심들만 간추려 엮은 책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 다른 연구가는 "그것은 『정감록』 비결보다 더 신묘한 예언을 무겁게 담은 책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는 점도 살펴볼 일이다. 

구태여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1권의 내용은 정조 재위 시에 다산은 정조의 총애를 받았기에, 정조와의 함께하던 시절의 이야기들, 친형제간들의 활동, 정조 사후 벌어진 천주교 대탄압으로 순교와 유배형을 당했던 정약용 가문의 멸문, 천주학, 다산의 조정 재직시 관료로서의 활약 등이 주로 서술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첫 장은 「다산비결」이다. 첫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거문고는 왜 신의 악기(神琴)인가

수많은 누에고치들의 순절 때문이네. 

그들의 몸을 비틀어 꼰 울음은 

혼의 선율이 되고 그 선율은 빛이 되고

찬란한 빛은 새가 되어

펄펄 하늘 한복판으로 날아가네.(1권, p.5)

거문고 여섯 개의 줄은 누에고치 2만여 개의 실오라기들을 겹겹으로 비틀어 만든 것이라고, 곡산의 한 거문고 장인이 말했다. 그 거문고의 아름답고 구슬픈 소리는 에밀레종 소리처럼 죽음의 고통을 비틀어 고아낸 혼의 빛인데, 그것은 이 땅의 기운이 뽕나무를 기르고, 누에가 천기를 호흡한 결과이다. 저자 한승원은 거문고 연주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 시가 떠올라 가슴이 아린다고 썼다. 18년 동안이나 강진에서 유배살이를 하신 정약용 선생이 남긴 500여 권의 혁혁한 저서들은 하나하나가 고통을 비틀어 곤 선율들이고 중천으로 날아가는 깃털 찬란한 혼의 새들이므로.라고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고향 마을의 재재종제가, 종조부모가 쓰시던 농 밑바닥에서 나왔다는 흘림체의 한글로 쓰인 책 한 권을 가지고 왔다고 밝힌다. 앞부분과 뒷부분이 닳고 닳아서 많이 떨어져 나가고 반쯤 부식된 책이었다. 그것을 펼쳐본 순간 나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 95세까지 사신 눈먼 종증조부를 떠올렸고, '아, 이것이 바로 그 문제의 다산비결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저자의 회고다. 어머니를 통해 종증조부가 동학군이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란다. 그 책 가운데 알아볼 수 있는 일부분을 요약해 책에 썼다.

······물은 배를 뜨게 하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물은 백성이고 임금은 배이다. 임금도 잘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징치하고 바꿀 수 있다. 

조선 땅에서 제일 못된 제도는 양반 제도이다. 조선 사람들이 복받고 살아가려면 양반 무리를 없애야 한다. 양반도 상사람과 똑같이 논밭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하고, 누에를 쳐야 하고, 닭이나 돼지나 소를 길러야 하고, 군인이 되어 바다나 국경을 지켜야 하고, 세금을 똑같이 물어야 한다. 부리던 종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살림을 차려주면서 내보내 독립시켜야 마땅하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 한승원은 정약용의 『경세유표』의 내용과 유사한, 한글로 쓰인 이 책이 나로 하여금 다산 정약용 선생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다. 일을 하고 먹는 밥이 성스럽다. 일하지 않고 먹는 밥은 추하다. 일이나 밥을 착취하는 벼슬아치는 도둑이다······.

1권은 모두 6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배지에서의 생활과 관련된 부분에서 불편함은 잠시지만 그래도 지내기에는 요즘의 감옥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정 지역을 벗어나 살지 못하는 것은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책을 쓰기로 한 다산에게는 크게 문제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오히려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다 보니 자식들이나 형들의 자제, 즉 조카들의 앞날이 걱정되었던 듯하다. 책 이곳 저곳에서 그런 마음을 표현하지만 가장 큰 걱정은 역시 가족들 걱정임을 알 수 있다. 

"금부도사와 나졸드이 그를 장기 관아에 넘겨주고 돌아간 순간부터, 정약용은 낯선 장기 땅에서 굶지 않을 궁리, 병들지 않고 살아 돌아갈 궁리, 고통스럽지 않게 시간을 태워먹을 궁리를 했다. 답답하면 청청 높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하늘이 말했다. '염려 마라. 궁하면 통한다. 가득 찬 달은 기울고, 기울어진 달은 다시 차게 된다. 모든 들어간 것들은 다시 나오게 된다.' 이불과 옷들을 짊어지고 온 하인 돌쇠 아비에게 금부도사를 따라가라고 일렀다. 근심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무사히 도착했음을 한시바삐 알리려는 것이었다. 장기 아전이 살도록 지정해준 집의 주인은 늙은 장교 성선봉이었다."(1권, p.310) 

유배지 장기에 도착한 첫날의 모습과 다산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유배지 장기에서」란 제목의 장(章)에 실린 내용이다.

유배지 근처에 〈죽림서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죽림서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라고 한다. 다산은 유배살이 짐 속에 넣어온 촛불 한 자루를 손에 들고 그곳을 지키는 사람과 대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밤에 찾았다. 정약용은 주자학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윤휴라는 사람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인 송시열을 소인으로 여기고 미워해 왔었다. 소인이라 여겨지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용납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그와 함께 소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마음을 열어 용서해주고 싶었다. 화해는 용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니까. 서원 안에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온 정약용입니다" 하고 말을 건네자, 서원을 지키는 노인들이 그를 문밖으로 밀어내면서 "여기가 어디라고 그 더러운 발을 디래놓는 기갸?" 하고 소리쳤다. 정약용은 얼굴에 웃음을 담고 '노장님들 왜 이러십니까? 송시열 선생에게 배례를 하고 싶어 왔습니다." 늙은 선비는 젊은 선비를 향해 소fl를 질렀다.

"퍼떡 문 닫아걸고, 소금 뿌려삐라." 정약용은 서원에서 쫒겨나 돌아오면서, 하늘을 향해 소처럼 웃었다.(p.316~317)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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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 - 클래식 음악을 시작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
안우성 지음 / 유노라이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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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音樂)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란 질문을 먼저 해본다. 이 서평의 첫머리에 적절한 질문은 아니겠지만 클래식의 초보자인 독자에게는 이 질문을 건너가는 것이 우선의 일이다. 부족한 한자 실력에도 굳이 한자를 찾아서 병기한 이유도 있다. 한자어 단어 '음악(音樂)'를 직역하면 '소리의 풍류' '즐거운 소리'쯤으로 풀이된다. 국어사전에는 "박자, 가락, 음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하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독자는 사실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독자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 좋아하지 않았지만, 듣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는 말이다. 특히 시끄러운 음악은 성격 상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조용한 음악은 듣다보면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좋은 경험을 갖고 있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음악' 하면 대중음악을 지칭한 것으로, '노래' 하면 대중가요를 지칭했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주 1시간씩 음악 시간이 정식 교과목에 들어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은 '당연히' 클래식이다. 음악 교과서도 있었다. 수록된 곡의 대부분은 서양음악이다. 국악은 별도로 악보까지 싣거나 또 가르치지도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음악을 이야기할 때는 대중음악,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클래식 음악으로 구분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이 무렵부터 노래를 잘못 부르는 독자에게 음악은 두 가지로 머릿속에 형성되었다. 대중음악은 부르는 노래, 클래식 음악은 듣는 노래다. 음악을 전공한 친구는 한 명도 없었기에 그 정도로 이해하고 대화에도 아무 지장이 없었다. 물론 대중 가요도 곡에 따라서는 매우 부드러운 선율과 가사가 많았다. 이른바 '발라드'라고 통칭되는 것이다. 발라드 음악은 지금 들어도 괜찮다. 

클래식은 대학 다닐 때 많이 들었지만 홀로 집에서 음반이나 디스크를 이용해 듣는 일은 별로 없었다. 친구들과 혹은 누군가를 만날 때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커피숍의 분위기가 좋아 자주 이용하는 정도였다. 클래식과 친해지기로는 10년 전쯤이다. 콘서트 티켓이 있다는 친구와 함께 예술의 전당에 갔을 때부터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콘서트 홀에서 관람했다. 클래식에 대한 독자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물론 10년쯤 되었지만 아직 클래식에 대해서는 '문외한' 혹은 '입문자'라고 말한다. 이후 기억으로는 오케스트라 공연은 못 갔지만 피아노와 현악기 연주회 등을 서너 차례 더 갔었다.

클래식과 특히 가깝게 된 것은 코로나 팬데믹부터이다. 직장에서의 근무가 재택 근무로 바뀌면서다. 물론 모든 일을 재택 근무로 하지는 않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재택'을 원칙으로 했기에 일주일 중 회사에 가는 것은 하루, 이틀뿐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시간이 이렇게 많이 남을지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했다. 막상 재택 근무가 실시될 때는 하루 서너 시간만 일하면 남은 시간은 거의 집에 있는 시간이었다. 외출도 자제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것이 오래되면서 답답함도 느낄 정도였다. 독자는 그동안 직장을 핑계로 미루었던 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독서고, 다음이 클래식 듣기였다. 이렇게 독자는 팬데믹 때문에 클래식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전공자나 음악계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르겠지만 독자로서는 클래식 듣기가 전부였다.

입문자인 독자로서는 클래식이 그저 평온한 마음이 들게 하는 정도면 만족이었다. 아예 하루종일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오년쯤 됐다. 이제 독자는 입문자라고 이야기한다. 초보자라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들어 좋은 음악은, 듣기만 해도 행복한 음악으로 바뀌어 가기 때문이다." 

이 책 『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의 표제어는 입문자에게 깊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동안 독서와 클래식 듣기를 꾸준히 해왔지만 한 사람의 곡을 집중적으로 듣거나(예를 들어 하루 종일 베토벤 음악만 듣는다든지) 클래식 관련 책도 작곡가 한 명의 책을 본 적이 없다. 독자가 몰라서 못 읽었는지 모르지만, 서양음악사, 혹은 테마로 보는 클래식, 또는 역사와 연관된 클래식 음악, 에피소드 중심의 화제거리 음악사 등이었다. 저자 안우성은 클래식 음악과 인문학의 접점을 모색해 가고 있는 음악 감독으로 소개된 분이다. 독일과 영국에서 켄트 나가노 등 세계적 지휘자와 함께 솔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 『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의 〈서문〉에서 "예술의 최종 목표는 결국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베토벤으로 클래식을 시작하기를 권한다."라고 첫 문장을 썼다. 

「당신의 인생은 베토벤을 듣기 전과 후로 나뉜다」란 제목의 〈서문〉에서 저자는 베토벤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되새기며 '음악은 감정의 폭발이다'는 말을 고스란히 느꼈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베토벤이 '음악의 성인(악성樂聖)'으로 불리는 것은 아홉 개의 위대한 교향곡과 피아노의 신약성경이라고 불리는 서른두 개의 피아노 소나타 등 환희로 가득 찬 열매을 일구었다는 점에서 붙여진 별칭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가난하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평민 신분으로 살아야 했던 열등감, 독신의 외로운 삶과 스물여섯 살에 갑자기 찾아온 음악가에겐 사형선고와도 같았던 귓병은 그를 평생 괴롭혔다. 하지만 베토벤은 고난과 불행 앞에 결코 무릎 꿇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모진 운명과 당당히 맞서 싸우며 죽는 날까지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았다"(p.6~7)

음악 소비층도, 그들을 대우해주는 계층도 모두 왕가나 귀족들이었기에 당시 작곡가들은 대부분 좋은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또 작곡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귀족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반인들은 음악을 평생 공부하고 생산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귀족도 아니기에 음악을 하기가 어려운 상태임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그들을 위해 작곡하지도 않았기에 그들의 취향에 맞춰 작곡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베토벤의 생애는 이 사실만으로도 평범하지 않고, 쉽지 않다. 250년 전 한 남자의 수난과 불행의 역사, 또 그것을 통해 보다 강하게 담금질된 베토벤의 정신 의지와 음악의 위대함은 지금 우리 옆에 있다. 부딪치고 넘어져 상처투성이인 사람들과 함께 베토벤의 음악을 나누고 싶은 저자 안우성의 바람으로 이 책은 집필됐다. 인생의 불행과 고뇌 속에서 일구어진 가장 위대하고 찬연한 음악에 독자들의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기대게 하고 싶은 저자의 노고에 독자로서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악 구성 형식으로 장을 악장(樂章)*으로 대신했다. 1장 〈내가 베토벤을 만나고 얻은 것들: 베토벤을 들어야 하는 이유〉, 2장 〈처음이 어려운 당신에게: 시작할 때 들으면 좋은 곡〉, 3장 〈인생이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곡〉, 4장 〈고난에 굴복하지 않는 법: 강인한 의지가 느껴지는 곡〉, 5장 〈끝나지 않은 음악, 끝나지 않은 인생: 진한 여운이 남는 곡〉 등이다. 

*악장: ① 조선 초기에 발생한 시가 형태의 하나. 나라의 제전(祭典)이나 연례(宴禮)와 같은 공식 행사 때 궁중 음악에 맞추어 불렀으며, 주로 조선 왕조의 개국과 번영을 송축하였다. 〈용비어천가〉, 〈문덕곡〉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② 소나타·교향곡·협주곡 따위에서, 여러 개의 독립된 소곡(小曲)들이 모여서 큰 악곡이 되는 경우 그 하나하나의 소곡. 베토벤 교향곡 제3악장.(독자 주)

저자가 독자들에게 베토벤을 소개하는 이유는 책의 표제어(『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와 일치한다. 1장의 제목 〈내가 베토벤을 만나고 얻은 것들: 베토벤을 들어야 하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이다. 1장은 저자가 베토벤을 만나고 얻었던 것들이 중심이 된다. 저자는 현대인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정신없이 살아간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이유를 밝히진 않지만 독자의 추론으로는 조선과 일제 강점기, 해방과 분단, 6·25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우리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20세기는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의 혼을 담은 나라가 세워진 후 가장 비참한 60년의 세월이 있다. 또 해방이 되었지만 분단된 나라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내전까지 치르고 폐허화된 대한민국에서 발전한다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을 시대가 있었다. 1960년 이전의 대한민국은 "시궁창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길 기다리는 상태"였다. 

민주화와 산업화로 나라 발전의 기틀을 잡아가는 일은 4·19 혁명 이후부터다. 뒤늦게 근대화에 뛰어든 4·19 혁명과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3공화국의 정권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인식을 같이한다.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3공화국은 산업화에 명운을 걸었지만 민주화는 함께 가기에 모순된 점이 있다고 믿었다. 부족한 정권의 명분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집권 체제와 경제 발전에 매진한다. 그러나 헌법에 의한 집권 기간이 끝나도록 산업화는 결코 만족할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에 옛 왕조 시대 못지 않은 '제왕적 대통령제'로 헌법을 바꾸는 등 장기 독재를 노리다 결국 나라를 다시 세우는 공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또 다른 군부 독재 정권에 나라를 넘겨 주고 만다. 

제3공화국은 그렇지만 산업화 추진으로 경제 발전에 매진해 어느 정도 성과를 일궈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때의 우리 노동자, 농민들의 노력은 저평가되었고, 재벌들의 배를 불리는 정책으로 자본주의 최대 약점인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가 고착화되어 갔다. 그래도 국민들의 경제적 수준은 고도 성장 속에 빠르게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때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현상이 '빨리 빨리'다. 뒤늦게 출발했으니 급한 마음에 뭐든지 빠르게 해야 하는 조바심이 있었다. 돈 버는 일은 무엇보다 '빨리 빨리' 해결해야 했다. 이런 문화는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이나 학교 등까지로도 퍼졌다. 하루 24시간 근무도 우리의 문화에서 비롯됐다. 교대제로 24시간 동안 일을 한다는 의미다. 이런 빨리 빨리 문화는 외국의 건설 현장에서도 빛을 발휘했다. 외국인들이 비웃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잠자는 시간은 물론 밥 먹는 시간에도 빨리 빨리는 돈 버는 데는 큰 효과를 냈다.

이미 산업화되고 첨단 산업으로 옮겨가는 선진국들은 우리의 목표였지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30년 이상의 전 국민의 노력으로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 대국의 위치로 올라선 예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지금에서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이 기간에 희생되고 가혹한 형벌을 견뎌낸 민주화 인사들의 불굴의 신념 또한 높이 사야 한다. 덕분에 우리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거의 같이 짧은 기간에 이룩해낸 나라로 세계에 인식되었다. 그러나 문화계는 이런 시민 의식이 결코 장기적 국가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문화를 이끌 만한 대표적 인물은 모두 정부의 탄압 대상이었던 시절에 재대로 기능하지 못했다.(여기까지 우리 현대사 부분은 독자의 평소 생각이고 독자 여러분께서는 오해 없으시길 양해를 구한다. 굳이 말하자면 저자의 베토벤 소개와 연관 지어 생각난 부분이다.)

“사람은 하루에 한 번은 노래를 듣고, 좋은 시를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봐야 한다”라고 괴테의 말을 인용한 저자의 언급대로 우리 인생에는 예술이 꼭 필요하다.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보고, 듣고, 느끼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새로운 감정을 마주한다. 형용할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이 흐르거나 온몸의 소름이 돋는 그 순간은 우리 인생의 새로운 조각이 된다. 그렇게 감정이, 더 나아가 나 자신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1장에서 저자는 초등학교 시절 〈운명〉 교향곡으로 베토벤을 처음 만났다고 밝힌다. 그때 마주한 웅장함과 두려움, 경이로움은 아직도 인생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순간이다. 아무 정보 없이 들은 음악에서 베토벤의 감정을 온전히 다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그때의 잊지 못할 순간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음악이 탄생한 배경부터 클래식이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순간, 솔리스트이자 음악 감독으로 활동 중인 저자가 직접 선별한 베토벤 베스트 연주 영상까지 책 한 권에 모두 모았다.

저자에 따르면 베토벤은 자신의 어린 시절 포부, 성장, 시련, 의지, 사랑을 음악에 담았다.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리며 〈엘리제를 위하여〉를 작곡했고, 유서를 쓸 정도로 힘들었을 시기에는 〈영웅〉을 쓰며 삶의 의지를 다잡았다. 이전의 작곡가들과는 다르게 귀의 즐거움만을 위한 음악이 아닌, 의미와 이야기를 담은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낭만주의 음악이 탄생한 계기가 되었다.

클래식은 사실 어렵기만 한 음악이 아니다. 위트 있고 단순한 음악도 많다. 만약 짧은 곡이 좋다면 〈잃어버린 동전에 대한 분노〉부터, 베토벤의 웅장함을 느끼고 싶다면 〈운명〉부터, 형식과 경계를 뛰어넘는 환희의 곡을 듣고 싶다면 〈합창〉부터 시작해 보자. 저자는 어느 곡을 들어도 베토벤에게, 더 나아가 클래식 음악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음악을 듣는 순간 밀려드는 감동과 경이로움이 나의 단조로운 일상을 가득 채워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이 클래식 음악 세계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저자는 베토벤의 작품이 타고난 재능에서 발휘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핍과 열등감, 고독한 운명에서 능력이 발휘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모든 순간은 음악이 되었고, 그렇게 인생이 담긴 그의 음악은 듣는 이에게 위로가, 때로는 용기가 된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베토벤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의 의도와는 약간 궤를 달리한다. 작곡가들도 사람이기에 이른바 '밥값'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베토벤의 아버지도 자신의 아들이 훗날 언젠가는 그의 할아버지처럼 궁정악장이 되길 소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베토벤에겐 안정적인 삶이나 사회적 지위보단 자유로운 삶이 중요했다. 오직 '자유와 진보'를 향한 예술을 위해, 예술가로서의 존엄성을 위해 일체의 속박 관계를 거부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난 더 이상 귀족들을 위해 작곡하지 않을거야.",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테니 당신들은 그저 귀만 기울이면 돼."라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1795년 3월 29일 빈에서의 데뷔 연주를 통해 베토벤은 이제 음악회는 소비자 중심에서 예술가 중심으로 재편되었음을 알렸고, 음악가 최초의 프리랜서 예술가의 출연을 선포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들으면서 읽는 베토벤〉라는 별도의 코너를 책 속 곳곳에 마련, QR코드를 통해 오케스트라 등 연주자들의 실제 연주 모습을 들려준다. 독자들의 책과 음악 읽기를 한층 도움이 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안우성


클래식 음악과 인문학의 접점을 모색해 가고 있는 음악 감독. 독일과 영국에서 켄트 나가노 등 세계적 지휘자와 함께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국립음악대학교 석사 과정,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후 독일, 이탈리아, 영국에서 오페라 《마술피리》, 《어린이와 마법》, 《비밀 결혼》 등에 주역으로 출연했고, 독일에서 다수의 오라토리오 독창자 로 협연했다. 움베르토 조르다노 국제 콩쿠르, 루체로 레몬카발로 국제 콩쿠르 등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했고, 영국 오페라센터에서 주관한 ‘영 아티스트’에 선발되었다. 독일 뮌헨국립오페라단 오펀스튜디오 전속 솔리스트, 독일 프라이 부르크오페라단 객원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저자는 삼성전자 임원 교육, 국민은행 독서클럽, 삼성금융연수원, 한국거래소 등 여러 단체에서 강연 활동을 이어 가며 일반인들에게 클래식은 어려운 음악이 아닌,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음악임을 강조한다. 특히 베토벤으로 클래식을 시작하기를 추천하는데, 베토벤 음악에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음악의 특징뿐만 아니라 감정과 이야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문화일보》에 클래식이 개인의 삶에 어떤 쓸모가 있는지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 왔으며, 저서로는《남자의 클래식》이 있다. JTBC <톡파원 25시>, KBS <예썰의 전당>, MBC 인문학 강연 <스미다> 등 다수의 방송에 클래식 전문가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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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유쾌한 반란 - 아침마다 두근두근 설레는 당신의 노년을 위해
와다 히데키 지음, 김소영 옮김 / 지니의서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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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이? 유쾌한 반란』은 인간의 나이듦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저자 와다 히데키가 고령자의 '노화 예방'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고령자 전문 의사'로 불릴 정도로 오랜 기간 고령자 치료를 해왔고, 이를 바탕으로 노화 예방을 연구했다고 한다. 독자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름도 몰랐던 분인데 일본의 식습관이나 사고방식, 생활 양식, 신체 등 많은 부분에서 과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그의 고령자 치료와 연구 결과가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저자는 자신의 치료·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노화 예방 방법을 「마음이 늙지 않는 삶의 방식」이란 제목의 〈서문〉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 책에는 '마음이 늙지 않는 자세', '마음의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제 생각을 담았습니다. 마음의 젊음을 유지하고 싶은(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젊은 거지만)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 되길 기대해 봅니다."(p.9) 

중년을 넘어 이제 노년으로 접어드는 대부분이 동의하겠지만, 스스로 나이를 의식하면서 자신에게 제동을 걸고, 그로 인해 마음과 행동의 자유를 빼앗겨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인식하는 노인의 모습이 되어간다. 이 책은 의료기술의 발달로 자꾸만 늘어나는 노년의 세월을 두근두근거리며 생기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들을 소개한다. 10년 전쯤 우리나라에 〈100세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공식 발표에 온 나라가 잔치 분위기였다. 그것도 하루 이틀의 잔치가 아니었다. 수년 간 지속된 열광이었다. 옛 트로트가사가 다시 재조명되면서 이를 불렀던 가수는 일약 '국민가수' 반열에 오를 정도로 대다수 국민을 열광시켰다. 불과 몇 년 전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는 말도 다시 기억나게 했다. 마치 천국에서 영생을 사는 사람들인 것처럼 들썩였다.

이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코로나 팬데믹이 아니었나 싶다. 세계적인 감염병 확산으로 나라별 수백만명의 사망자가 발생되자 세계가 마치 근대로 되돌아간 듯했다. 국경이 폐쇄되고 이동이 제한되었다. 집단 모임도 안 되고 식당 회합도 통제되었다. 스포츠나 예술 공연 관람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나니 이젠 〈100세 시대〉 말은 쏘옥 들어갔고, 사람들은 이제 차분히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또 인구 절벽이라니······. (삶이란 참···) 힘들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죽음이나 노화는 누구나 피할 수 없다.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가진 숙명이다. 이는 진리이고 자연의 섭리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인구 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는 형국이다. IMF를 '졸업'하고 허리 좀 펴려 하니, 뉴밀레니엄 들자마자 출산율이 1.0 밑으로 떨어진다고 예고되고 있었다. 그때 우리들은 세계에서 인구밀도 1, 2위를 다투는 고밀도 국가인데 출산율이 조금 떨어진다고 나라가 어떻게 되겠어? 하는 정도로 인식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드는 나이다. 사람의 평균 수명이 지금의 절반도 안 됐다는 옛날에도 성인들은 나이듦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 들어도 나이에 맞는 생각이나 행동이 뒤따르지 못함을 지적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때의 두 배 이상의 수명을 가진 현대인들은 50세만 넘어서면 ‘이 나이에 무슨…’이라며 자신의 무기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로 나이 탓을 한다. 저자는 책에서 이런 자세를 ‘나이 주박’이라고 표현한다. 스스로 주술을 걸어 마음의 빗장을 걸고 자유를 빼앗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이 탓은 자기 자유를 스스로 속박하는 저주인 셈이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을 유도한다. 이제 나잇값 못 하는 사람이 더 멋있어 보이는 시대라는 주장이다. 과거엔 나잇값을 못 한다고 하면 눈총을 받았지만 이제는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젊은 사람 같은 패션을 즐기고 스스럼없이 더 즐겁게 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나잇값을 잊고 젊은 마음으로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저자 나이도 60대 중반을 넘어 70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생활 속에서 매사에 나이를 자꾸 신경 쓰며 주저하는 자세, 즉 ‘나이 주박’은 마음은 물론 몸의 노화까지 가속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강조한다. 오랜 시간 6,000명 이상의 환자를 진찰해 오면서 그가 내린 결론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오랜 연구와 임상을 통해 정리한 ‘마음이 늙지 않는 노년 생활의 노하우’가 정리되어 있다. 매일매일이 뻔하고 지루한 노년의 하루가 아니라 날마다 가슴 두근거리며 새로운 도전을 위해 깨어나는 제2의 청춘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다. 세월이 가는 건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무기력한 늙은이가 될지, 젊은 마음으로 생생하면서도 성숙한 진짜 행복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갈지는 선택의 문제임을 깨달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직업상 환자 중에서 매년 100명 정도의 검사 결과를 들고 살핀다. 85세가 지나면 알츠하이머형 변성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치매 예방을 위해 튼튼한 다리로 많이 걷고 뇌를 쓰려는 노력이 효과 있지만, 시기를 늦출 수는 있어도 아예 막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유일하게 늙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 것은 마음뿐이다. 오랫동안 많은 고령자를 관찰하면서 느낀 점이다. 아니에 비해 외모도 젊고 목과 머리 모두 정정한데 생각이 늙은 분들이 꽤 있다. 개인차가 있지만 나이가 들면 누구나 얼굴에 주름이 늘고 등도 구부정해지고 뇌 기능이 떨어진다. 하지만 늙는다느 건 그런 기능적인 게 아니다. 장담컨대 외모나 체력은 늙어도 마음이 늙지 않으면 젊게 살 수 있다. 그래서 사실 나이란 건 별 소용이 없다. 

저자는 어느 노년의 의학자의 말을 인용한다. 노인을 '65세 이상'이라는 나이로 규정짓는 게 아니라 '상위 10%'라는 식으로 구분 짓는 게 맞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90%나 되는 사람이 자신보다 젊으면 본인을 노인이라고 느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 경로의 날 일본인 중 '9.9%가 80세 이상'이라고 발표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이렇게 본다면 80세 이상이 노인인 셈이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잘 알고 있지만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었다. 당연히 노인의 삶과 관련한 사회적 경험과 노하우가 잘 발달된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잘사는 일본도 노인복지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노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특히 신체적인 부분보다는 정신적인 부분, 즉 노년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관해 이야기한다. 대개 몸보다 마음이 먼저 늙기 때문이다. 신체 노화보다 정신적인 노화가 먼저 찾아오는 만큼, 젊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나이 탓을 하다 보면 점차 마음의 자유를 넘어 행동의 자유마저 브레이크가 걸린다고 말한다. 이러한 마음의 노화는 몸의 노화를 가속하고 현실의 인생을 점점 늙게 만든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으므로 자신이 스스로 건 잠금장치를 풀고 마음의 자유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는 마음이 늙지 않는 자세, 마음의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생생한 노년의 심리 및 몸의 변화 이야기와 함께 담겨 있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노년의 삶이지만, 누구에게나 닥친다. 행복한 노년의 삶을 꿈꾸고 있다면 미리 이 책으로 준비해 볼 것을 권유한다.

이 책은 모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모두 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 〈노화를 못 박아 버리는 나이의 주박〉, 1장 〈실제 나이? 의미 없다〉, 2장 〈‘마음의 노화’란 무엇인가?〉, 3장 〈마음은 신체보다 빨리 늙기 시작한다〉, 4장 〈꼰대의 정체〉, 5장 〈늙은 고독에는 불행만 있을까〉, 6장 〈해 보고 싶은 일은 아직도 많다〉, 7장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삶을 택해라〉, 에필로그 〈해맑게 나이 드는 비결〉 등이다. 책은 각 장(章)의 제목에 세부 항목의 제목을 따로 갖고 있으며, 세부 항목은 장의 제목에 관련된 내용들이다. 또 이 책은 각 장의 주제를 뽑아 주문(註文)을 첫머리에 두고 있다. 프롤로그의 경우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를 먹는다. 거부할 수 없다. 나이에 따라 나잇값이라는 것도 따라붙어 우리 행동과 자유를 구속한다. 그러나 나이의 척도는 해마다 더해지는 숫자에 있지 않다. 중요한 건 ‘마음’이다. 이 마음에 따라 나이는 고무줄처럼 탄력이 생긴다."(p.16)는 주문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삶의 의지는 나이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인 것이 '마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프롤로그 두 번째 항목 「마음이 나이를 먹으면 몸도 빨리 늙는다」에서 '주박'이라는 용어의 구체적 설명을 한다. "웬지 진부하게 느껴지는 '주박'이라는 말은 '주술을 걸어 마음의 자유를 빼앗는 것'을 뜻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심리적으로 강요하여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다. 원래는 타인이나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 사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이동을 자숙하도록 한 것이 바로 주박이라는 저자는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당시는 결과적으로 주위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이동을 자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사회의 주박이 풀렸는데도 사람이 많은 곳이나 약간의 감기 기운에도 스스로 다시 옥죄기도 한다. 자승자박하는 꼴의 엔딩이다. 

나이도 마찬가지로 종종 자신에게 주술을 건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꾸만 나이를 꺼내 '먹을 만큼 먹었잖아.'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마음의 자유를 빼앗긴다. 이런 상태를 '마음의 노화'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몸의 나이는 모를 수 없다. 체력이 눈에 띄게 쇠퇴하거나 능력이 떨어졌을 때 스스로 깨닫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몸의 감각을 통해 '아아,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라고 실감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몸의 감각을 통해 노화를 자각하고 실감하면 마음의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몸은 똑같이 노화하더라도 마음이 젊은 사람은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몸의 노화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1장엔 「이런 게 청춘이다」, 「실제 나이는 의미 없는 시대」, 「노인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실제 나이의 단점만 자꾸 눈에 밟힌다」, 「마음의 노화가 느껴지지 않으면 청춘이다」, 「마음이 늙은 젊은이들」, 「기왕이면 젊은 게 좋다」, 「이제 자유는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나」 등 8개의 세부 항목이 있다. 1장의 주문은 "'몇 살이세요?'라는 질문에서 자신을 해방시키자. 실제 나이가 의미 없음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젊고 건강한 것은 몸과 체력에 국한된 말이 아님도 안다. 마음이 늙지 않도록 가꿔야 한다. 지금부터 찾아 나서자."(p.32)이다. 

먼저 「마음의 노화가 느껴지지 않으면 청춘이다」라는 세부 항목의 글을 살펴본다. 일본과 우리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점은 동양 최초로 일찍 근대화를 이뤘고, 선진국에 가장 먼저 입성한 일본과 해방 후에야 비로소 근대화를 시작한 한국과 70년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 뿐이다. 이후 과정이 거의 비슷하고 현재의 상황에선 일본의 약간 앞섰다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뤄냈기에 빠르게 일본을 따라 잡았다. 책에 따르면 평균 수명이 높아지니 엄청난 장점도 생겼다. 사람들은 의외로 이 장점을 간과한다. 그건 무슨 일을 시작하든 '이미 늦었어.'라거나 '지금 시작해 봤자 되겠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평균 수명이 60대였던 시대에는 그 나이부터 거꾸로 계산해 대부분 '30대 안에', 혹은 '40대까지는'이라는 기한을 두었다. 커리어를 쌓거나 나아갈 길을 정하는 중요한 길목에서 '25세까지는 정해야지.'라는 식으로 나이 제한을 두는 사람도 있었다. 취미 생활이나 공부할 때도 그랬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해야지.'라는 의식이 누구에게나 있었다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못 따라가고 몸도 굳으니까 뭔가를 시작하려면 젊을 때 하는 게 좋지.'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다. 고작 30대나 40대에 '지금부터 하면 늦어.'라거나 '조금 더 젊었더라면.'이라며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70, 80대에도 아직 건강한 사람이 당연해지고 일도 70대까지 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은 시대가 되니 나이 제한의 의미가 없어졌다. 적어도 전보다는 훨씬 뒷세대로 늘려도 될 것 같다. 정년퇴직하고 60대 후반이되어서 예전에는 일이 바빠 포기했던 분야를 배우러 대학이나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는 사실은 저자는 내세운다. 독자도 이 부분에 공감한다.

요즘 고독사가 사회 문제로 부각했지만 일본은 훨씬 전 이 문제에 부딪쳤다. 물론 아직도 이 문제는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 고령자 전문 의사인 저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오랜 기간 환자 치료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오랫동안 많은 경험이 고령자들의 고독사의 원인에 대한 연구도 가능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5장 〈늙은 고독에는 불행만 있을까〉의 일곱 번째 항목 「혼자 가는 인생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빨리 알아라」에서 고령자 고독과 고독사 문제를 언급한다. 저자는 나이가 들면 친구의 숫자가 많건 적건 아무런 상관없다고 전제한다. 그러므로 속마음을 자유롭게 나누며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친구가 한두 명 있으면 충분하다고 마음을 바꿔 보라는 것. 그러면 친구가 많으니 적으니, 얼마나 인맥이 넓은지 가늠할 때보다 훨씬 더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나이가 들면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난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은 물론이고 동년배 친구도 예외는 없다. 부부 사이에도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떠나고 자녀들과도 점점 멀어진다. 아니면 자신의 몸이 불편해져서 외출할 수 없거나 모임에 나가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자연스레 친구와 멀어지는 것이라고 귀띔한다. 

고독이 외롭다는 건 당연하지만, 그때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자유의 맛을 보게 될 거라는 기대로 즐거울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고독해진다. 그 고독이 가져올 홀가분한 자유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조직이나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조금씩 실천하려는 마음이 생기면 좋겠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친구가 생기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까지 스스로 차단할 필요는 없다. 집에 틀어박혀 혼자서만 있으려고 하지 않는 한 어떠한 인간관계는 생겨난다고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책은 고령층이 아니라 고령층이 될 누구든지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 : 와다 히데키(わだ ひでき, 和田 秀樹)

중장년층을 전문으로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 도쿄대 의대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의학부 부속병원 정신신경과 조수로 근무했으며, 미국 칼 메닝거 정신의학학교에서 국제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노인 정신의학 및 임상심리학 전문의로 30여 년 동안 노인 정신의학 분야에 종사하며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현재는 ‘와다 히데키 마음과 몸 클리닉’ 원장이다. 고령화가 일찍 시작된 일본에서 고령자 의학, 노년 의학 전공으로 임상 경험을 했다. 노인전문종합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매일 다양한 질환의 중장년층의 환자를 접하고 수천 장의 뇌 사진을 분석한 결과, 감정이 인간의 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새롭게 밝혀냈다. 이 책에서 그는 의욕, 여유, 감정전환, 기억력 등의 다양한 차원을 통해 인간이 노화에서 승리하는 법, 감정 노화를 방지하는 법 등 구체적이고 생생한 해결책을 알려준다. 주된 저서로는 『80세의 벽』, 『치매의 벽』, 『70세의 정답』, 『노년의 품격』, 『늙지 않는 뇌의 비밀』 등이 있다.


저자 : 김소영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여 다른 나라 말로 쓰인 책의 재미를 우리나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번역을 시작했다. 다양한 일본 책을 우리나라 독자에게 전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더 많은 책을 소개하고자 힘쓰고 있다. 현재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초등 수학 부모가 가르쳐라!』, 『처음 시작하는 천체 관측』, 『재밌어서 밤새 읽는 유전자 이야기』, 『컨디션만 관리했을 뿐인데』, 『슬기로운 수학 생활』, 『심리학 용어 도감』, 『논리 머리 만들기』,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고전 읽기』, 『재밌어서 밤새 읽는 수학 이야기:베스트 편』, 『30분 통계학』, 『레이스 키리에』, 『프란츠 리스트』, 『재밌어서 밤새 읽는 공룡 이야기』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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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다
고동현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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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F 소설' 전성시대라고 할 만하다.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의 약칭(SF)으로 쓰이니 우리말로는 과학 소설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상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문학 장르이다. 과학소설(科學小說) 또는 SF 소설을 가리킨다. '대세'라고 할 만큼 문학 분야만 아니라 영화 등의 다른 매체들의 장르를 포괄하는 단어로 쓰인다. 과학 소설은 독자가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공상 소설'이란 말을 더 자주 썼었던 것 같다. 이 책 『검은 바다』는 가까운 미래, 아열대 기후로 변한 한반도를 무대로 펼쳐지는 SF소설이다. 

저자 고동현은 작품의 〈프롤로그〉를 통해 바닷속 환경과 생물체에 대한 묘사를 먼저 한다. 기이한 느낌의 묘사는 매우 신비하기도 하지만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입도 항문도 없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배설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이것은 하루에 2밀리미터씩 자란다. 다 자란 것은 3미터가 넘기도 한다. 이것을 만나려면 한없이 깊은 바닷속으로 내려가야 한다. 천천히 심해를 향해, 온몸으로 심연을 맞아들여야 한다. 어둠을 두려워해서는 이것을 볼 수 없다. 바다의 수면에서 20미터만 아래로 가면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100미터까지 내려가면 아예 빛은 사라지고 만다. 태양 빛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생명체의 활발함은 더 이상 보이지 안흔다. 이제부터는 태양이 지배하는 영역이 아니다. 육지에서 감각되는 빛깔들은 무의미해진다."(p.4)

저자가 묘사한 심해 속 광경은 현실적이지 않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저자는 생물체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절대 암흑이 지배하는 곳, 유일한 빛은 일부 생물의 순간적인 자체 발광이다. 이곳에서 날카로운 것에 의해 팔을 벤다면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잿빛 피를 보아야 한다. 수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수압이 오른다. 잠수정이 개발되기까지는 미지의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곳을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이곳에서 만나는 생명체는 기이한 모습이다. 몸의 세 배가 넘는 긴 지느러미를 뻗어 다리 삼아 걸어 다니는 물고기, 우산 같은 촉수를 거느린 연체동물, 살이 투명해 내장과 뼈가 비치는 녀석들은 사체인지 생물인지 아니면 유령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 소설 작품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고립」, 2장 「혼란」, 3장 「부러진 노」, 4장 「어둠과의 악수」, 5장 「해 질 녘의 하루살이」, 6장 「관(管)벌레」, 7장 「어둠 속의 생명」, 8장 「검은 바다」 등이다. 마지막 장 「검은 바다」가 이 소설의 표제어가 되었다. 「검은 바다」는 작품 속에서 탈영한 인물 '강 대위'의 노트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강 대위를 찾아 나서는 해군 긴급구조특기대 소속 장교 강 중위가 주인공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話者)이기도 하다. 강 대위의 탈영 소식이 전해지자 강 중위는 C군도에 파견된다. 

이 소설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여서 마치 현실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후 변화 속 초대형 태풍과 쓰나미가 한반도를 휩쓴다. 소양강댐이 붕괴하고 한강이 범람하자 정부는 계엄령을 내린다. 소설 첫머리는 탈영한 강 대위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고 그가 실종된 곳에 강민 중위가 헬기를 타고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헬기가 꼬리를 틀며 수평선을 향해 날아갔다. 절벽 위해 내린 강민 중위는 먹구름 속으로 사라져 가는 헬기를 바라보았다. 검은 구름장 아래로 시커먼 바다가 죽은 듯이 잔잔했다. 추적거리는 비가 숨죽인 바다에 쉼 없이 내리고 있었다. 먹물처럼 번진 하늘과 바다는 수평선을 감추었다. 그는 헬기에서 받은 작전 명령서를 배낭에 넣었다."(p.10) 

강 중위는 그곳에서 거대한 기름띠가 초승달 형태로 펼쳐져 있고, 해변에서 20여 미터쯤 되는 높이의 절벽 등 스산한 풍경과 마주한다. 이곳에서 강 중위는 태풍을 맞아 험난한 길임을 예고한다. 다행히 고생 끝에 70~80미터쯤 되는 난파한 대형 범선을 마주친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인데 "웬 범선?"이란 생각으로 배에 남은 사람들을 만난다. 비현실적이고 상식에 어긋나는 생각과 행동을 지녔다. 강 중위는 혼란을 겪다가 차츰 그들의 논리에 동화되어 간다. 인간은 재난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그 과정에서 희생자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지구를 전일적 생명체로 바라보는 세계관 속에서 그들의 충격적 과거가 하나씩 밝혀진다.

범선에 다가선 강민은 한 명의 여인 '마리'를 만나고 그의 소개로 범선과 범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을 정도로 낯을 익힌다. 음식과 술(보드카)을 나누고 안정을 찾은 강민은 작전 명령서 서류를 자세히 살핀다. "작전 지역 SN16-24. 유조선 자이언트호(號)가 침몰한 제주도 서북부로부터 12킬로미터 지점의 군도(群島). 군도의 모든 거주자는 섬을 떠난 상황. 동북쪽 암석 무인도에 배수량 4,000톤급 범선 발견. 한 명의 여자를 포함한 민간인 4~5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됨. 무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 통신망 사용 불가 지경. 김진혁 대위의 송수신기에 무전이 잡힌 곳. 김 대위의 실종 경위를 조사하고 민간인을 설득해 임시 보호소로 인도할 것. 나흘 후 수송용 헬기 도착 예정.(p.18)

아내를 찾기 위해 긴급구조특기대에 자원했던 강민에게 이번 임무는 의문투성이다. 강민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면서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미래를 예견한 듯 쓸쓸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아내. 그것이 그가 본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강민의 개인사가 하나 하나 저자의 묘사로 그려진다. 십일 년간의 군 생활을 접은 강 중위는 아내의 간청을 받아들여 남해안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결호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사실 그는 바다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배운 거라고는 어렸을 적부터 몸으로 익힌 고기잡이와 해군으로 복무하면서 배운 항해 기술뿐이었다. 고향 마을은 그다지 변한 게 없었다. 아내는 어촌에 살면서부터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녀가 태어난 동남아시아 섬나라로 되돌아온 양 야무지게 일하면서도 지친 기색이라곤 없었다. 생선의 배를 쉼없이 따고 말렸다. 그녀는 한국에서 받아왔던 낯선 시선을 더는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다.

봄인데도 후덥지근한 어느 일요일 아침. 강 중위가 일어났을 때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밤, 아내가 쓸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해상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마을이 흔들리자, 아내는 처음엔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다 초조해했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마침내 그녀는 모든 걸 체념한 듯 힘없이 누웠다. 해변을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강 중위는 포기하고 읍내를 향해 트럭을 몰았다. 뭔가 찜찜했고 왠지 모를 불안이 차올랐기에 그는 갑자기 차를 세웠다. 서둘러 집을 향해 차를 돌렸다. 때때로 말썽을 일으키던 트럭이 그날따라 말을 듣지 않았다. 펑크 난 타이어를 갈고 보닛을 손봐야 했다. 언덕을 넘어가려고 할 때였다. 수많은 증기기관차가 동시에 증기를 내뿜은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천둥소리는 아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고 하늘에 번쩍임은 없었다. 이어 거센 파도 소리가 밀려왔다. 그 속에는 연달아 터뜨리는 비명이 섞여 있었다. 간신히 언덕을 넘어섰을 때 그는 넋 빠진 모습으로 마을을 둘러봐야 했다. 해안은 바다에 잠겼고 그 위로 뒤집힌 어선과 자동차, 기와지붕과 탁자, 냉장고 따위가 뒤섞여 떠다녔다. 강 중위는 자신이 들었던 소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설마, 해일이······. 

저자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지진, 쓰나미, 대홍수…. 인간은 그런 재난을 끔찍하게 여긴다. 하지만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가정해 보자. 그 생명체는 인간의 재난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단 한 번의 재채기? 가벼운 몸살? 반면, 인간보다 더 짧은 삶을 누리는 개체도 있다. 그것들은 또 다른 시각을 가진다. 인간이 겪는 평범한 일상이 그 존재에겐 종말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가이아’ 이론을 관통한다. 그 이론은 지구를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생명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찬란한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 과정의 본질은 무엇일까. 수많은 희생자는 단지 어두운 기억에 묻혀야 하는 걸까.

1장 「고립」의 각 장에는 제목 밑에 바다에 범선이 떠 있고, 그 밑에 〈- 김 대위의 노트 '검은 바다' 中〉이란 원전을 밝히며 성경처럼 귀절이 들어 있다. 1장 「고립」의 경우 다음과 같은 노트 내용이 소개된다. "태초에 태어난 생명을 생각해 보자. 당시 지구는 불안정한 대기에 싸여 있었고 화산과 지진이 서로 경쟁하듯 반발했다. 바다는 시커먼 입을 벌리며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삼킬 기세였다. 그곳에서 생명이 탄생했다. 그리고 최악의 환경을 이겨내 왔다. 최초의 생명은 고립 그 자체였다. 어디로든 움직이려면 죽음의 도박을 받아들여야 했다. 2장 「혼란」에는 "척박하고 어두운 환경에서 탄생한 생명체, 그것이 해야 했던 최초의 갈등은 무엇이었을까.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한 순간부터 그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그대로 머문 것인가, 아니면 빛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라고 적혀 있다. 

4장 「어둠과의 악수」 아래에는 "생명은 어둠에서 시작한다. 어머니 자궁 또는 알 속에서 생명체가 제일 처음 먹는 것은 어둠이다. 그렇게 태어난 생명은 영원히 살 것처럼 바둥거리나 곧 깊이를 헤아리지 못할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생명은 단 한 번의 번쩍임을 위해 영겁의 어둠을 잉태한다. 

8장 「검은 바다」에서 드디어 생명이 바다속에서 나와 빛을 향해 나아간다. "태초에 태어난 생명체들은 끝없이 퍼져나갔다. 그들 대부분에게 산소는 치명적이었다. 내리쬐는 태양의 빛도 끔찍한 것이었다. 주위는 모두 검었다. 그러나 생명은 차츰 극복했고 해로운 환경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어 냈다. 지금 있는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적응하며 변해가는 것, 그것이 생명이다."(p.228)

강 대위의 노트에 적힌 내용을 일부 발췌해 각 장의 표지에 적어 놓은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가이아 이론에 따른 생명의 진화를 책 속에 담은 것이다. 다소 성경처럼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도 있지만 인간은 바닷속 생명체에서 점차 바다 밖으로 나와 볼 수 없던 모든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에 맞게, 혹은 자신이 맞춰가며 진화해 왔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게 저자의 의도가 아닐까. 이유는 환경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인간은 결국 적응하고 극복하며 살아낼 것이란 점을 이 소설이 품은 뜻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빛은 어둠을 사르고 어둠은 빛을 삼킨다. 그 순환 속에서 생명은 순간의 반짝임이다. 생명의 본질은 어둠이며, 생명의 어머니인 바다의 본질 또한 그러하다. 빚을 얻지 못한 생명은 절망하지만, 어둠이 없는 생명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난파한 범선에서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자 사연을 가졌으나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파두아라는 범선을 다시 움직여 항해하는 것이다. 그 욕망은 현실과 어긋나며 범선에 파국을 가져오지만·····.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생명의 기원, 극악한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시키며 살아왔음을 확인시킨다. "나는 한 방울의 물이다. 아주 오래전, 바다는 특이한 존재를 탄생시켰다. 그것은 스스로 움직였고 지구가 얼어붙거나 지글지글 끓는 동안에도 번식했다.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인내하며 지켜온 유전자는 그 어떤 물질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그 존재들은 다양한 생김새로 변했고 그것은 진정한 창조였다. 그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포효를 그치지 않던 바다가 안정된 리듬을 보였다. 무엇이 불만이었을까. 그의 일부는 차츰 바다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계를 갈망했다. 그들의 힘은 놀라웠다. 무엇이든 꿈꾸는 대로 이루어내고 말았다. 그것을 위해 죽음도 불사했고 가혹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침내 최초로 바다에서 떠나기로 한 무리가 결심을 실행할 때였다. 나는 그들 중 하나의 몸에 실려 뭍으로 나왔다. 

나는 땅속 깊은 곳에서 이십억 년간 정화되었다가 바위 틈으로 새어 나왔고, 단 하루라는 삶의 주기를 가진 하루살이의 눈이기도 했고, 그것이 죽어 바람에 흩날리는 동안 기체가 되었다가,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다시 땅에 떨어져 고이기도 했고, 예쁘장한 꿩이 나를 삼키자, 그것의 피가 되어 일 년간 순환했고, 그것이 죽은 뒤엔 썩은 물의 일부가 되었고, 썩은 내를 맡고 몰려온 박테리아 무리가 꿩을 분해하는 동안 떡갈나무의 뿌리 밑으로 스며들었고, 뿌리를 타고 올라와 줄기의 수액이 되었고, 한 인간이 그 나무를 베기까지 팔십년 동안 그 속에 머물렀고, 이갈이하는 들쥐에 의해 그것이 흘리는 침과 하나가 되기도 했고, 곧 참애의 입에 들어가 그것의 내장 속을 떠돌았고, 그것을 총으로 쏘아 죽인 인간의 입속에 들어가 육십 년간 그의 심상이 일으키는 진동을 느끼며 머물렀다.

아프리카 한 사막에서 그 인간의 시체가 말라붙는 동안 뜨거운 햇살이 내 몸을 조각조각 분해했다. 나는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곳에서 솜털 구름이 되었다가 적란운이 되기도 했고 태양을 가릴 때면 먹구름으로 변했다.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던 날 나, 아닌 구름은 갈가리 찢겼고 그중 한 조각의 일부분으로 남아 잇다가 차갑게 식으며 바다로 떨어졌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저자 : 고동현


성균관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IT 기술자로 10여 년 근무했다. 다니던 회사가 한국에서 철수하는 일이 벌어지자, 전공을 포기하고 어린 시절 꿈꾸었던 문학에 다시 손을 댔다. 그렇게 글 쓰는 삶으로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걸었다. 바라는 삶은 소박하다. 하루 책 한 권을 읽고, 네 시간 동안 글을 쓰며, 틈틈이 강아지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다.

2014년 전북일보 신춘 문예에 ‘청바지 백서’로 등단한 후, 오로지 글만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철도 문학상·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해양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동인지·문예지·e-book·오디오북 등 다양한 경로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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