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검은 바다
고동현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요즘 'SF 소설' 전성시대라고 할 만하다.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의 약칭(SF)으로 쓰이니 우리말로는 과학 소설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상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문학 장르이다. 과학소설(科學小說) 또는 SF 소설을 가리킨다. '대세'라고 할 만큼 문학 분야만 아니라 영화 등의 다른 매체들의 장르를 포괄하는 단어로 쓰인다. 과학 소설은 독자가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공상 소설'이란 말을 더 자주 썼었던 것 같다. 이 책 『검은 바다』는 가까운 미래, 아열대 기후로 변한 한반도를 무대로 펼쳐지는 SF소설이다.
저자 고동현은 작품의 〈프롤로그〉를 통해 바닷속 환경과 생물체에 대한 묘사를 먼저 한다. 기이한 느낌의 묘사는 매우 신비하기도 하지만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입도 항문도 없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배설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이것은 하루에 2밀리미터씩 자란다. 다 자란 것은 3미터가 넘기도 한다. 이것을 만나려면 한없이 깊은 바닷속으로 내려가야 한다. 천천히 심해를 향해, 온몸으로 심연을 맞아들여야 한다. 어둠을 두려워해서는 이것을 볼 수 없다. 바다의 수면에서 20미터만 아래로 가면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100미터까지 내려가면 아예 빛은 사라지고 만다. 태양 빛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생명체의 활발함은 더 이상 보이지 안흔다. 이제부터는 태양이 지배하는 영역이 아니다. 육지에서 감각되는 빛깔들은 무의미해진다."(p.4)
저자가 묘사한 심해 속 광경은 현실적이지 않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저자는 생물체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절대 암흑이 지배하는 곳, 유일한 빛은 일부 생물의 순간적인 자체 발광이다. 이곳에서 날카로운 것에 의해 팔을 벤다면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잿빛 피를 보아야 한다. 수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수압이 오른다. 잠수정이 개발되기까지는 미지의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곳을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이곳에서 만나는 생명체는 기이한 모습이다. 몸의 세 배가 넘는 긴 지느러미를 뻗어 다리 삼아 걸어 다니는 물고기, 우산 같은 촉수를 거느린 연체동물, 살이 투명해 내장과 뼈가 비치는 녀석들은 사체인지 생물인지 아니면 유령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 소설 작품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고립」, 2장 「혼란」, 3장 「부러진 노」, 4장 「어둠과의 악수」, 5장 「해 질 녘의 하루살이」, 6장 「관(管)벌레」, 7장 「어둠 속의 생명」, 8장 「검은 바다」 등이다. 마지막 장 「검은 바다」가 이 소설의 표제어가 되었다. 「검은 바다」는 작품 속에서 탈영한 인물 '강 대위'의 노트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강 대위를 찾아 나서는 해군 긴급구조특기대 소속 장교 강 중위가 주인공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話者)이기도 하다. 강 대위의 탈영 소식이 전해지자 강 중위는 C군도에 파견된다.
이 소설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여서 마치 현실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후 변화 속 초대형 태풍과 쓰나미가 한반도를 휩쓴다. 소양강댐이 붕괴하고 한강이 범람하자 정부는 계엄령을 내린다. 소설 첫머리는 탈영한 강 대위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고 그가 실종된 곳에 강민 중위가 헬기를 타고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헬기가 꼬리를 틀며 수평선을 향해 날아갔다. 절벽 위해 내린 강민 중위는 먹구름 속으로 사라져 가는 헬기를 바라보았다. 검은 구름장 아래로 시커먼 바다가 죽은 듯이 잔잔했다. 추적거리는 비가 숨죽인 바다에 쉼 없이 내리고 있었다. 먹물처럼 번진 하늘과 바다는 수평선을 감추었다. 그는 헬기에서 받은 작전 명령서를 배낭에 넣었다."(p.10)
강 중위는 그곳에서 거대한 기름띠가 초승달 형태로 펼쳐져 있고, 해변에서 20여 미터쯤 되는 높이의 절벽 등 스산한 풍경과 마주한다. 이곳에서 강 중위는 태풍을 맞아 험난한 길임을 예고한다. 다행히 고생 끝에 70~80미터쯤 되는 난파한 대형 범선을 마주친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인데 "웬 범선?"이란 생각으로 배에 남은 사람들을 만난다. 비현실적이고 상식에 어긋나는 생각과 행동을 지녔다. 강 중위는 혼란을 겪다가 차츰 그들의 논리에 동화되어 간다. 인간은 재난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그 과정에서 희생자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지구를 전일적 생명체로 바라보는 세계관 속에서 그들의 충격적 과거가 하나씩 밝혀진다.
범선에 다가선 강민은 한 명의 여인 '마리'를 만나고 그의 소개로 범선과 범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을 정도로 낯을 익힌다. 음식과 술(보드카)을 나누고 안정을 찾은 강민은 작전 명령서 서류를 자세히 살핀다. "작전 지역 SN16-24. 유조선 자이언트호(號)가 침몰한 제주도 서북부로부터 12킬로미터 지점의 군도(群島). 군도의 모든 거주자는 섬을 떠난 상황. 동북쪽 암석 무인도에 배수량 4,000톤급 범선 발견. 한 명의 여자를 포함한 민간인 4~5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됨. 무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 통신망 사용 불가 지경. 김진혁 대위의 송수신기에 무전이 잡힌 곳. 김 대위의 실종 경위를 조사하고 민간인을 설득해 임시 보호소로 인도할 것. 나흘 후 수송용 헬기 도착 예정.(p.18)
아내를 찾기 위해 긴급구조특기대에 자원했던 강민에게 이번 임무는 의문투성이다. 강민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면서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미래를 예견한 듯 쓸쓸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아내. 그것이 그가 본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강민의 개인사가 하나 하나 저자의 묘사로 그려진다. 십일 년간의 군 생활을 접은 강 중위는 아내의 간청을 받아들여 남해안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결호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사실 그는 바다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배운 거라고는 어렸을 적부터 몸으로 익힌 고기잡이와 해군으로 복무하면서 배운 항해 기술뿐이었다. 고향 마을은 그다지 변한 게 없었다. 아내는 어촌에 살면서부터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녀가 태어난 동남아시아 섬나라로 되돌아온 양 야무지게 일하면서도 지친 기색이라곤 없었다. 생선의 배를 쉼없이 따고 말렸다. 그녀는 한국에서 받아왔던 낯선 시선을 더는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다.
봄인데도 후덥지근한 어느 일요일 아침. 강 중위가 일어났을 때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밤, 아내가 쓸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해상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마을이 흔들리자, 아내는 처음엔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다 초조해했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마침내 그녀는 모든 걸 체념한 듯 힘없이 누웠다. 해변을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강 중위는 포기하고 읍내를 향해 트럭을 몰았다. 뭔가 찜찜했고 왠지 모를 불안이 차올랐기에 그는 갑자기 차를 세웠다. 서둘러 집을 향해 차를 돌렸다. 때때로 말썽을 일으키던 트럭이 그날따라 말을 듣지 않았다. 펑크 난 타이어를 갈고 보닛을 손봐야 했다. 언덕을 넘어가려고 할 때였다. 수많은 증기기관차가 동시에 증기를 내뿜은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천둥소리는 아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고 하늘에 번쩍임은 없었다. 이어 거센 파도 소리가 밀려왔다. 그 속에는 연달아 터뜨리는 비명이 섞여 있었다. 간신히 언덕을 넘어섰을 때 그는 넋 빠진 모습으로 마을을 둘러봐야 했다. 해안은 바다에 잠겼고 그 위로 뒤집힌 어선과 자동차, 기와지붕과 탁자, 냉장고 따위가 뒤섞여 떠다녔다. 강 중위는 자신이 들었던 소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설마, 해일이······.
저자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지진, 쓰나미, 대홍수…. 인간은 그런 재난을 끔찍하게 여긴다. 하지만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가정해 보자. 그 생명체는 인간의 재난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단 한 번의 재채기? 가벼운 몸살? 반면, 인간보다 더 짧은 삶을 누리는 개체도 있다. 그것들은 또 다른 시각을 가진다. 인간이 겪는 평범한 일상이 그 존재에겐 종말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가이아’ 이론을 관통한다. 그 이론은 지구를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생명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찬란한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 과정의 본질은 무엇일까. 수많은 희생자는 단지 어두운 기억에 묻혀야 하는 걸까.
1장 「고립」의 각 장에는 제목 밑에 바다에 범선이 떠 있고, 그 밑에 〈- 김 대위의 노트 '검은 바다' 中〉이란 원전을 밝히며 성경처럼 귀절이 들어 있다. 1장 「고립」의 경우 다음과 같은 노트 내용이 소개된다. "태초에 태어난 생명을 생각해 보자. 당시 지구는 불안정한 대기에 싸여 있었고 화산과 지진이 서로 경쟁하듯 반발했다. 바다는 시커먼 입을 벌리며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삼킬 기세였다. 그곳에서 생명이 탄생했다. 그리고 최악의 환경을 이겨내 왔다. 최초의 생명은 고립 그 자체였다. 어디로든 움직이려면 죽음의 도박을 받아들여야 했다. 2장 「혼란」에는 "척박하고 어두운 환경에서 탄생한 생명체, 그것이 해야 했던 최초의 갈등은 무엇이었을까.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한 순간부터 그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그대로 머문 것인가, 아니면 빛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라고 적혀 있다.
4장 「어둠과의 악수」 아래에는 "생명은 어둠에서 시작한다. 어머니 자궁 또는 알 속에서 생명체가 제일 처음 먹는 것은 어둠이다. 그렇게 태어난 생명은 영원히 살 것처럼 바둥거리나 곧 깊이를 헤아리지 못할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생명은 단 한 번의 번쩍임을 위해 영겁의 어둠을 잉태한다.
8장 「검은 바다」에서 드디어 생명이 바다속에서 나와 빛을 향해 나아간다. "태초에 태어난 생명체들은 끝없이 퍼져나갔다. 그들 대부분에게 산소는 치명적이었다. 내리쬐는 태양의 빛도 끔찍한 것이었다. 주위는 모두 검었다. 그러나 생명은 차츰 극복했고 해로운 환경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어 냈다. 지금 있는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적응하며 변해가는 것, 그것이 생명이다."(p.228)
강 대위의 노트에 적힌 내용을 일부 발췌해 각 장의 표지에 적어 놓은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가이아 이론에 따른 생명의 진화를 책 속에 담은 것이다. 다소 성경처럼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도 있지만 인간은 바닷속 생명체에서 점차 바다 밖으로 나와 볼 수 없던 모든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에 맞게, 혹은 자신이 맞춰가며 진화해 왔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게 저자의 의도가 아닐까. 이유는 환경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인간은 결국 적응하고 극복하며 살아낼 것이란 점을 이 소설이 품은 뜻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빛은 어둠을 사르고 어둠은 빛을 삼킨다. 그 순환 속에서 생명은 순간의 반짝임이다. 생명의 본질은 어둠이며, 생명의 어머니인 바다의 본질 또한 그러하다. 빚을 얻지 못한 생명은 절망하지만, 어둠이 없는 생명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난파한 범선에서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자 사연을 가졌으나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파두아라는 범선을 다시 움직여 항해하는 것이다. 그 욕망은 현실과 어긋나며 범선에 파국을 가져오지만·····.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생명의 기원, 극악한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시키며 살아왔음을 확인시킨다. "나는 한 방울의 물이다. 아주 오래전, 바다는 특이한 존재를 탄생시켰다. 그것은 스스로 움직였고 지구가 얼어붙거나 지글지글 끓는 동안에도 번식했다.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인내하며 지켜온 유전자는 그 어떤 물질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그 존재들은 다양한 생김새로 변했고 그것은 진정한 창조였다. 그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포효를 그치지 않던 바다가 안정된 리듬을 보였다. 무엇이 불만이었을까. 그의 일부는 차츰 바다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계를 갈망했다. 그들의 힘은 놀라웠다. 무엇이든 꿈꾸는 대로 이루어내고 말았다. 그것을 위해 죽음도 불사했고 가혹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침내 최초로 바다에서 떠나기로 한 무리가 결심을 실행할 때였다. 나는 그들 중 하나의 몸에 실려 뭍으로 나왔다.
나는 땅속 깊은 곳에서 이십억 년간 정화되었다가 바위 틈으로 새어 나왔고, 단 하루라는 삶의 주기를 가진 하루살이의 눈이기도 했고, 그것이 죽어 바람에 흩날리는 동안 기체가 되었다가,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다시 땅에 떨어져 고이기도 했고, 예쁘장한 꿩이 나를 삼키자, 그것의 피가 되어 일 년간 순환했고, 그것이 죽은 뒤엔 썩은 물의 일부가 되었고, 썩은 내를 맡고 몰려온 박테리아 무리가 꿩을 분해하는 동안 떡갈나무의 뿌리 밑으로 스며들었고, 뿌리를 타고 올라와 줄기의 수액이 되었고, 한 인간이 그 나무를 베기까지 팔십년 동안 그 속에 머물렀고, 이갈이하는 들쥐에 의해 그것이 흘리는 침과 하나가 되기도 했고, 곧 참애의 입에 들어가 그것의 내장 속을 떠돌았고, 그것을 총으로 쏘아 죽인 인간의 입속에 들어가 육십 년간 그의 심상이 일으키는 진동을 느끼며 머물렀다.
아프리카 한 사막에서 그 인간의 시체가 말라붙는 동안 뜨거운 햇살이 내 몸을 조각조각 분해했다. 나는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곳에서 솜털 구름이 되었다가 적란운이 되기도 했고 태양을 가릴 때면 먹구름으로 변했다.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던 날 나, 아닌 구름은 갈가리 찢겼고 그중 한 조각의 일부분으로 남아 잇다가 차갑게 식으며 바다로 떨어졌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저자 : 고동현
성균관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IT 기술자로 10여 년 근무했다. 다니던 회사가 한국에서 철수하는 일이 벌어지자, 전공을 포기하고 어린 시절 꿈꾸었던 문학에 다시 손을 댔다. 그렇게 글 쓰는 삶으로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걸었다. 바라는 삶은 소박하다. 하루 책 한 권을 읽고, 네 시간 동안 글을 쓰며, 틈틈이 강아지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다.
2014년 전북일보 신춘 문예에 ‘청바지 백서’로 등단한 후, 오로지 글만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철도 문학상·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해양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동인지·문예지·e-book·오디오북 등 다양한 경로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