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 - 클래식 음악을 시작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
안우성 지음 / 유노라이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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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音樂)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란 질문을 먼저 해본다. 이 서평의 첫머리에 적절한 질문은 아니겠지만 클래식의 초보자인 독자에게는 이 질문을 건너가는 것이 우선의 일이다. 부족한 한자 실력에도 굳이 한자를 찾아서 병기한 이유도 있다. 한자어 단어 '음악(音樂)'를 직역하면 '소리의 풍류' '즐거운 소리'쯤으로 풀이된다. 국어사전에는 "박자, 가락, 음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하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독자는 사실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독자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 좋아하지 않았지만, 듣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는 말이다. 특히 시끄러운 음악은 성격 상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조용한 음악은 듣다보면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좋은 경험을 갖고 있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음악' 하면 대중음악을 지칭한 것으로, '노래' 하면 대중가요를 지칭했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주 1시간씩 음악 시간이 정식 교과목에 들어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은 '당연히' 클래식이다. 음악 교과서도 있었다. 수록된 곡의 대부분은 서양음악이다. 국악은 별도로 악보까지 싣거나 또 가르치지도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음악을 이야기할 때는 대중음악,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클래식 음악으로 구분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이 무렵부터 노래를 잘못 부르는 독자에게 음악은 두 가지로 머릿속에 형성되었다. 대중음악은 부르는 노래, 클래식 음악은 듣는 노래다. 음악을 전공한 친구는 한 명도 없었기에 그 정도로 이해하고 대화에도 아무 지장이 없었다. 물론 대중 가요도 곡에 따라서는 매우 부드러운 선율과 가사가 많았다. 이른바 '발라드'라고 통칭되는 것이다. 발라드 음악은 지금 들어도 괜찮다. 

클래식은 대학 다닐 때 많이 들었지만 홀로 집에서 음반이나 디스크를 이용해 듣는 일은 별로 없었다. 친구들과 혹은 누군가를 만날 때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커피숍의 분위기가 좋아 자주 이용하는 정도였다. 클래식과 친해지기로는 10년 전쯤이다. 콘서트 티켓이 있다는 친구와 함께 예술의 전당에 갔을 때부터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콘서트 홀에서 관람했다. 클래식에 대한 독자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물론 10년쯤 되었지만 아직 클래식에 대해서는 '문외한' 혹은 '입문자'라고 말한다. 이후 기억으로는 오케스트라 공연은 못 갔지만 피아노와 현악기 연주회 등을 서너 차례 더 갔었다.

클래식과 특히 가깝게 된 것은 코로나 팬데믹부터이다. 직장에서의 근무가 재택 근무로 바뀌면서다. 물론 모든 일을 재택 근무로 하지는 않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재택'을 원칙으로 했기에 일주일 중 회사에 가는 것은 하루, 이틀뿐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시간이 이렇게 많이 남을지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했다. 막상 재택 근무가 실시될 때는 하루 서너 시간만 일하면 남은 시간은 거의 집에 있는 시간이었다. 외출도 자제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것이 오래되면서 답답함도 느낄 정도였다. 독자는 그동안 직장을 핑계로 미루었던 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독서고, 다음이 클래식 듣기였다. 이렇게 독자는 팬데믹 때문에 클래식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전공자나 음악계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르겠지만 독자로서는 클래식 듣기가 전부였다.

입문자인 독자로서는 클래식이 그저 평온한 마음이 들게 하는 정도면 만족이었다. 아예 하루종일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오년쯤 됐다. 이제 독자는 입문자라고 이야기한다. 초보자라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들어 좋은 음악은, 듣기만 해도 행복한 음악으로 바뀌어 가기 때문이다." 

이 책 『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의 표제어는 입문자에게 깊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동안 독서와 클래식 듣기를 꾸준히 해왔지만 한 사람의 곡을 집중적으로 듣거나(예를 들어 하루 종일 베토벤 음악만 듣는다든지) 클래식 관련 책도 작곡가 한 명의 책을 본 적이 없다. 독자가 몰라서 못 읽었는지 모르지만, 서양음악사, 혹은 테마로 보는 클래식, 또는 역사와 연관된 클래식 음악, 에피소드 중심의 화제거리 음악사 등이었다. 저자 안우성은 클래식 음악과 인문학의 접점을 모색해 가고 있는 음악 감독으로 소개된 분이다. 독일과 영국에서 켄트 나가노 등 세계적 지휘자와 함께 솔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 『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의 〈서문〉에서 "예술의 최종 목표는 결국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베토벤으로 클래식을 시작하기를 권한다."라고 첫 문장을 썼다. 

「당신의 인생은 베토벤을 듣기 전과 후로 나뉜다」란 제목의 〈서문〉에서 저자는 베토벤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되새기며 '음악은 감정의 폭발이다'는 말을 고스란히 느꼈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베토벤이 '음악의 성인(악성樂聖)'으로 불리는 것은 아홉 개의 위대한 교향곡과 피아노의 신약성경이라고 불리는 서른두 개의 피아노 소나타 등 환희로 가득 찬 열매을 일구었다는 점에서 붙여진 별칭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가난하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평민 신분으로 살아야 했던 열등감, 독신의 외로운 삶과 스물여섯 살에 갑자기 찾아온 음악가에겐 사형선고와도 같았던 귓병은 그를 평생 괴롭혔다. 하지만 베토벤은 고난과 불행 앞에 결코 무릎 꿇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모진 운명과 당당히 맞서 싸우며 죽는 날까지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았다"(p.6~7)

음악 소비층도, 그들을 대우해주는 계층도 모두 왕가나 귀족들이었기에 당시 작곡가들은 대부분 좋은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또 작곡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귀족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반인들은 음악을 평생 공부하고 생산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귀족도 아니기에 음악을 하기가 어려운 상태임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그들을 위해 작곡하지도 않았기에 그들의 취향에 맞춰 작곡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베토벤의 생애는 이 사실만으로도 평범하지 않고, 쉽지 않다. 250년 전 한 남자의 수난과 불행의 역사, 또 그것을 통해 보다 강하게 담금질된 베토벤의 정신 의지와 음악의 위대함은 지금 우리 옆에 있다. 부딪치고 넘어져 상처투성이인 사람들과 함께 베토벤의 음악을 나누고 싶은 저자 안우성의 바람으로 이 책은 집필됐다. 인생의 불행과 고뇌 속에서 일구어진 가장 위대하고 찬연한 음악에 독자들의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기대게 하고 싶은 저자의 노고에 독자로서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악 구성 형식으로 장을 악장(樂章)*으로 대신했다. 1장 〈내가 베토벤을 만나고 얻은 것들: 베토벤을 들어야 하는 이유〉, 2장 〈처음이 어려운 당신에게: 시작할 때 들으면 좋은 곡〉, 3장 〈인생이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곡〉, 4장 〈고난에 굴복하지 않는 법: 강인한 의지가 느껴지는 곡〉, 5장 〈끝나지 않은 음악, 끝나지 않은 인생: 진한 여운이 남는 곡〉 등이다. 

*악장: ① 조선 초기에 발생한 시가 형태의 하나. 나라의 제전(祭典)이나 연례(宴禮)와 같은 공식 행사 때 궁중 음악에 맞추어 불렀으며, 주로 조선 왕조의 개국과 번영을 송축하였다. 〈용비어천가〉, 〈문덕곡〉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② 소나타·교향곡·협주곡 따위에서, 여러 개의 독립된 소곡(小曲)들이 모여서 큰 악곡이 되는 경우 그 하나하나의 소곡. 베토벤 교향곡 제3악장.(독자 주)

저자가 독자들에게 베토벤을 소개하는 이유는 책의 표제어(『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와 일치한다. 1장의 제목 〈내가 베토벤을 만나고 얻은 것들: 베토벤을 들어야 하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이다. 1장은 저자가 베토벤을 만나고 얻었던 것들이 중심이 된다. 저자는 현대인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정신없이 살아간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이유를 밝히진 않지만 독자의 추론으로는 조선과 일제 강점기, 해방과 분단, 6·25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우리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20세기는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의 혼을 담은 나라가 세워진 후 가장 비참한 60년의 세월이 있다. 또 해방이 되었지만 분단된 나라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내전까지 치르고 폐허화된 대한민국에서 발전한다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을 시대가 있었다. 1960년 이전의 대한민국은 "시궁창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길 기다리는 상태"였다. 

민주화와 산업화로 나라 발전의 기틀을 잡아가는 일은 4·19 혁명 이후부터다. 뒤늦게 근대화에 뛰어든 4·19 혁명과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3공화국의 정권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인식을 같이한다.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3공화국은 산업화에 명운을 걸었지만 민주화는 함께 가기에 모순된 점이 있다고 믿었다. 부족한 정권의 명분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집권 체제와 경제 발전에 매진한다. 그러나 헌법에 의한 집권 기간이 끝나도록 산업화는 결코 만족할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에 옛 왕조 시대 못지 않은 '제왕적 대통령제'로 헌법을 바꾸는 등 장기 독재를 노리다 결국 나라를 다시 세우는 공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또 다른 군부 독재 정권에 나라를 넘겨 주고 만다. 

제3공화국은 그렇지만 산업화 추진으로 경제 발전에 매진해 어느 정도 성과를 일궈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때의 우리 노동자, 농민들의 노력은 저평가되었고, 재벌들의 배를 불리는 정책으로 자본주의 최대 약점인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가 고착화되어 갔다. 그래도 국민들의 경제적 수준은 고도 성장 속에 빠르게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때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현상이 '빨리 빨리'다. 뒤늦게 출발했으니 급한 마음에 뭐든지 빠르게 해야 하는 조바심이 있었다. 돈 버는 일은 무엇보다 '빨리 빨리' 해결해야 했다. 이런 문화는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이나 학교 등까지로도 퍼졌다. 하루 24시간 근무도 우리의 문화에서 비롯됐다. 교대제로 24시간 동안 일을 한다는 의미다. 이런 빨리 빨리 문화는 외국의 건설 현장에서도 빛을 발휘했다. 외국인들이 비웃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잠자는 시간은 물론 밥 먹는 시간에도 빨리 빨리는 돈 버는 데는 큰 효과를 냈다.

이미 산업화되고 첨단 산업으로 옮겨가는 선진국들은 우리의 목표였지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30년 이상의 전 국민의 노력으로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 대국의 위치로 올라선 예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지금에서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이 기간에 희생되고 가혹한 형벌을 견뎌낸 민주화 인사들의 불굴의 신념 또한 높이 사야 한다. 덕분에 우리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거의 같이 짧은 기간에 이룩해낸 나라로 세계에 인식되었다. 그러나 문화계는 이런 시민 의식이 결코 장기적 국가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문화를 이끌 만한 대표적 인물은 모두 정부의 탄압 대상이었던 시절에 재대로 기능하지 못했다.(여기까지 우리 현대사 부분은 독자의 평소 생각이고 독자 여러분께서는 오해 없으시길 양해를 구한다. 굳이 말하자면 저자의 베토벤 소개와 연관 지어 생각난 부분이다.)

“사람은 하루에 한 번은 노래를 듣고, 좋은 시를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봐야 한다”라고 괴테의 말을 인용한 저자의 언급대로 우리 인생에는 예술이 꼭 필요하다.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보고, 듣고, 느끼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새로운 감정을 마주한다. 형용할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이 흐르거나 온몸의 소름이 돋는 그 순간은 우리 인생의 새로운 조각이 된다. 그렇게 감정이, 더 나아가 나 자신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1장에서 저자는 초등학교 시절 〈운명〉 교향곡으로 베토벤을 처음 만났다고 밝힌다. 그때 마주한 웅장함과 두려움, 경이로움은 아직도 인생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순간이다. 아무 정보 없이 들은 음악에서 베토벤의 감정을 온전히 다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그때의 잊지 못할 순간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음악이 탄생한 배경부터 클래식이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순간, 솔리스트이자 음악 감독으로 활동 중인 저자가 직접 선별한 베토벤 베스트 연주 영상까지 책 한 권에 모두 모았다.

저자에 따르면 베토벤은 자신의 어린 시절 포부, 성장, 시련, 의지, 사랑을 음악에 담았다.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리며 〈엘리제를 위하여〉를 작곡했고, 유서를 쓸 정도로 힘들었을 시기에는 〈영웅〉을 쓰며 삶의 의지를 다잡았다. 이전의 작곡가들과는 다르게 귀의 즐거움만을 위한 음악이 아닌, 의미와 이야기를 담은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낭만주의 음악이 탄생한 계기가 되었다.

클래식은 사실 어렵기만 한 음악이 아니다. 위트 있고 단순한 음악도 많다. 만약 짧은 곡이 좋다면 〈잃어버린 동전에 대한 분노〉부터, 베토벤의 웅장함을 느끼고 싶다면 〈운명〉부터, 형식과 경계를 뛰어넘는 환희의 곡을 듣고 싶다면 〈합창〉부터 시작해 보자. 저자는 어느 곡을 들어도 베토벤에게, 더 나아가 클래식 음악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음악을 듣는 순간 밀려드는 감동과 경이로움이 나의 단조로운 일상을 가득 채워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이 클래식 음악 세계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저자는 베토벤의 작품이 타고난 재능에서 발휘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핍과 열등감, 고독한 운명에서 능력이 발휘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모든 순간은 음악이 되었고, 그렇게 인생이 담긴 그의 음악은 듣는 이에게 위로가, 때로는 용기가 된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베토벤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의 의도와는 약간 궤를 달리한다. 작곡가들도 사람이기에 이른바 '밥값'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베토벤의 아버지도 자신의 아들이 훗날 언젠가는 그의 할아버지처럼 궁정악장이 되길 소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베토벤에겐 안정적인 삶이나 사회적 지위보단 자유로운 삶이 중요했다. 오직 '자유와 진보'를 향한 예술을 위해, 예술가로서의 존엄성을 위해 일체의 속박 관계를 거부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난 더 이상 귀족들을 위해 작곡하지 않을거야.",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테니 당신들은 그저 귀만 기울이면 돼."라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1795년 3월 29일 빈에서의 데뷔 연주를 통해 베토벤은 이제 음악회는 소비자 중심에서 예술가 중심으로 재편되었음을 알렸고, 음악가 최초의 프리랜서 예술가의 출연을 선포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들으면서 읽는 베토벤〉라는 별도의 코너를 책 속 곳곳에 마련, QR코드를 통해 오케스트라 등 연주자들의 실제 연주 모습을 들려준다. 독자들의 책과 음악 읽기를 한층 도움이 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안우성


클래식 음악과 인문학의 접점을 모색해 가고 있는 음악 감독. 독일과 영국에서 켄트 나가노 등 세계적 지휘자와 함께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국립음악대학교 석사 과정,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후 독일, 이탈리아, 영국에서 오페라 《마술피리》, 《어린이와 마법》, 《비밀 결혼》 등에 주역으로 출연했고, 독일에서 다수의 오라토리오 독창자 로 협연했다. 움베르토 조르다노 국제 콩쿠르, 루체로 레몬카발로 국제 콩쿠르 등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했고, 영국 오페라센터에서 주관한 ‘영 아티스트’에 선발되었다. 독일 뮌헨국립오페라단 오펀스튜디오 전속 솔리스트, 독일 프라이 부르크오페라단 객원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저자는 삼성전자 임원 교육, 국민은행 독서클럽, 삼성금융연수원, 한국거래소 등 여러 단체에서 강연 활동을 이어 가며 일반인들에게 클래식은 어려운 음악이 아닌,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음악임을 강조한다. 특히 베토벤으로 클래식을 시작하기를 추천하는데, 베토벤 음악에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음악의 특징뿐만 아니라 감정과 이야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문화일보》에 클래식이 개인의 삶에 어떤 쓸모가 있는지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 왔으며, 저서로는《남자의 클래식》이 있다. JTBC <톡파원 25시>, KBS <예썰의 전당>, MBC 인문학 강연 <스미다> 등 다수의 방송에 클래식 전문가로 출연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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