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1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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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2』의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민족 역사상 두 분의 큰 인물을 만나게 된다. 한 명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고, 다른 한 명은 한국 현대문단사의 거목, 한승원이다. 한승원은 우리 시대의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이다. 이 책 『다산 1, 2』는 저자 한승원이 다산의 일대기를 소설로 지어낸 작품이다. 한승원은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들을 수상하고, 수많은 대표작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전남 장흥, 바다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애환과 생명력, 한(恨)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온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승원의 작품을 문학평론가들이 그렇게 일컬었다. 크게 잘못된 지적은 아니지만 평론의 일부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는다. 한승원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교사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다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뒤 소설가와 시인으로 수많은 작품을 펴내며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김동리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 한국 문단에 큰 궤적을 남겼다. 소설가 한강, 한동림의 아버지이기도 하며 장흥 바닷가 해산토굴에서 집필중이다.

그의 작품들은 늘 고향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펼쳐진다. 그 바다는 역사적 상처와 개인의 욕망이 만나 꿈틀대는 곳이며, 새 생명을 길어내는 부활의 터전이다. 그는 지난 1995년 서울을 등지고 전남 장흥 바닷가에 내려가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승원의 소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한'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당사자인 한승원은 이렇게 말한다. "제 소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한'이 아니라 '생명력'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는 독자들이 만들어놓은 '가면'을 거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승원은 토속적인 작가다' 하는 것도 게으른 평론가들이 만들어놓은 가면일 뿐이지요. 작가는 주어진 얼굴을 거부해야 합니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장편 『연꽃바다』를 쓸 때부터 제 작품세계는 크게 변했습니다. 생명주의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인데, 저는 그것을 휴머니즘에 대한 반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인간 본위의 휴머니즘이 우주에 저지른 해악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는 노장(老莊)이나 불교 사상에 있다고 봅니다."

한승원의 이 말은 한국문학의 근원이라고 일컬어지는 민족 정서의 원동력은 '한(恨)'라는 '조각의 전체화',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고, 소극적 받아들임이 아니라 적극적 생명력에 천착하는 문학이라는 반론이기도 하다.

이 소설 작품 『다산 1, 2』는 저자 한승원의 자신의 작품의 근원을 '생명력'으로 말하는 것과 동일 선상에 있다. 이번에 열림원에서 새롭게 출간된 『다산』은 추사 김정희를 다룬 『추사』, 다산의 제자 초의 스님을 다룬 『초의』에 이은 작품이자, 그가 평생에 걸쳐 좇아온 〈조선 천재 3부작〉의 완결판이다. 김형중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을 두고 “정약용의 일대기와 사상을 소설화”함으로써 “인물소설 쓰기가 하나의 거대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다산』은 정약용이 그랬던 것처럼 글쓰기를 필생의 업으로 삼은 대(大)작가 한승원의 광활하고도 심지 깊은 작품세계와 탄탄한 내공을 집약시킨 결정체이다. 이로 인해 “소설가는 흘러 다니는 말이나 기록(역사)의 행간에 서려 있는 숨은 그림 같은 서사, 그 출렁거리는 파도 같은 우주의 율동을 빨아먹고” 산다는 그의 말과 일치된다. 저자 한승원은 역사 속 숨어 있는 진실을 찾아내고자 하는 남다른 소설적 집요함으로 한 시대의 공기, 바람과 햇살, 심지어 역사적 인물의 숨결까지 살려내 이 소설에 담아냈다.

저자 한승원은 1939년 전라남도 장흥 출생으로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로, 같은 해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木船)」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63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중 동창생들인 이문구?조세희 등과 교유했다. 국민학교 교사를 거쳐 광양중학, 광주 춘태여고 교사를 지냈다. 교사 재직 시절에도 꾸준히 창작활동을 계속했으며 1980년 「그 바다 끓며 넘치며」로 한국소설문학상을, 1983년 「누이와 늑대」로 대한민국문학상을, 1983년 「포구의 달」로 한국문학작가상을 각각 수상했다.

한승원이 〈조선 천재 3부작〉으로 지목한 다산 정약용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조선시대 역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학자이자 관료이다. 그는 정조 사후 교리가 불충하고 요사스럽다는 천주교에 빠졌다는 이유로 둘째 형 정약전, 셋째 형 정약종과 함께 정치적 처벌 대상이었으며, 특히 정약종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 순교했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각각 흑산도와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이때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의 유배 기간 중 무려 500권의 책을 저술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인물로 밝혀진다. 그가 남긴 책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 분야를 다루었으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상이 담긴 〈조선비결〉이란 책이 독자들의 눈길을 끌 것이다. 〈조선비결〉이란 실제 존재하는 책은 아니지만 다산이 임종 시 "아직 세상에 알려질 때가 아니니 훗날 적절한 시기에 세상에 내놓으라"고 했다는 책이다.

책은 두 권으로 분책되어 발간됐으며 1권의 첫 장(章)의 제목은 금서(禁書)라는 「다산비결」이다. 첫 장이지만 차례 앞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서문〉의 역할을 한다. 저자가 자료 수집과 취재에 들어 「다산비결」에 대해 물었다. 아마 구전으로만 내려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고 있었기에 확인 차원에서 저자가 발품을 판 것으로 이해된다. 이 책은 호남 지방의 의식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필사되어 읽혀졌던 책으로 금서이다 보니 「다산비결」이라는 제목의 책은 전하지 않는다는 한 연구가는 『방례초본』(후에 『경세유표』로 개명)으로 추정한다고 알려 주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다산비결」을 은밀하게 돌려가며 읽던 그들이 1894년 임금을 싸고도는 간신배와 썩은 관료들을 징치하고 무너지는 나라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겠다고 일어선 동학군의 접주들이 되었다는 부분이다. 한 연구가가 방대한 분량의 『방례초본』과는 다른 것일 가능성을 추정하면서 핵심들만 간추려 엮은 책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 다른 연구가는 "그것은 『정감록』 비결보다 더 신묘한 예언을 무겁게 담은 책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는 점도 살펴볼 일이다. 

구태여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1권의 내용은 정조 재위 시에 다산은 정조의 총애를 받았기에, 정조와의 함께하던 시절의 이야기들, 친형제간들의 활동, 정조 사후 벌어진 천주교 대탄압으로 순교와 유배형을 당했던 정약용 가문의 멸문, 천주학, 다산의 조정 재직시 관료로서의 활약 등이 주로 서술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첫 장은 「다산비결」이다. 첫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거문고는 왜 신의 악기(神琴)인가

수많은 누에고치들의 순절 때문이네. 

그들의 몸을 비틀어 꼰 울음은 

혼의 선율이 되고 그 선율은 빛이 되고

찬란한 빛은 새가 되어

펄펄 하늘 한복판으로 날아가네.(1권, p.5)

거문고 여섯 개의 줄은 누에고치 2만여 개의 실오라기들을 겹겹으로 비틀어 만든 것이라고, 곡산의 한 거문고 장인이 말했다. 그 거문고의 아름답고 구슬픈 소리는 에밀레종 소리처럼 죽음의 고통을 비틀어 고아낸 혼의 빛인데, 그것은 이 땅의 기운이 뽕나무를 기르고, 누에가 천기를 호흡한 결과이다. 저자 한승원은 거문고 연주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 시가 떠올라 가슴이 아린다고 썼다. 18년 동안이나 강진에서 유배살이를 하신 정약용 선생이 남긴 500여 권의 혁혁한 저서들은 하나하나가 고통을 비틀어 곤 선율들이고 중천으로 날아가는 깃털 찬란한 혼의 새들이므로.라고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고향 마을의 재재종제가, 종조부모가 쓰시던 농 밑바닥에서 나왔다는 흘림체의 한글로 쓰인 책 한 권을 가지고 왔다고 밝힌다. 앞부분과 뒷부분이 닳고 닳아서 많이 떨어져 나가고 반쯤 부식된 책이었다. 그것을 펼쳐본 순간 나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 95세까지 사신 눈먼 종증조부를 떠올렸고, '아, 이것이 바로 그 문제의 다산비결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저자의 회고다. 어머니를 통해 종증조부가 동학군이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란다. 그 책 가운데 알아볼 수 있는 일부분을 요약해 책에 썼다.

······물은 배를 뜨게 하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물은 백성이고 임금은 배이다. 임금도 잘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징치하고 바꿀 수 있다. 

조선 땅에서 제일 못된 제도는 양반 제도이다. 조선 사람들이 복받고 살아가려면 양반 무리를 없애야 한다. 양반도 상사람과 똑같이 논밭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하고, 누에를 쳐야 하고, 닭이나 돼지나 소를 길러야 하고, 군인이 되어 바다나 국경을 지켜야 하고, 세금을 똑같이 물어야 한다. 부리던 종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살림을 차려주면서 내보내 독립시켜야 마땅하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 한승원은 정약용의 『경세유표』의 내용과 유사한, 한글로 쓰인 이 책이 나로 하여금 다산 정약용 선생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다. 일을 하고 먹는 밥이 성스럽다. 일하지 않고 먹는 밥은 추하다. 일이나 밥을 착취하는 벼슬아치는 도둑이다······.

1권은 모두 6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배지에서의 생활과 관련된 부분에서 불편함은 잠시지만 그래도 지내기에는 요즘의 감옥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정 지역을 벗어나 살지 못하는 것은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책을 쓰기로 한 다산에게는 크게 문제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오히려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다 보니 자식들이나 형들의 자제, 즉 조카들의 앞날이 걱정되었던 듯하다. 책 이곳 저곳에서 그런 마음을 표현하지만 가장 큰 걱정은 역시 가족들 걱정임을 알 수 있다. 

"금부도사와 나졸드이 그를 장기 관아에 넘겨주고 돌아간 순간부터, 정약용은 낯선 장기 땅에서 굶지 않을 궁리, 병들지 않고 살아 돌아갈 궁리, 고통스럽지 않게 시간을 태워먹을 궁리를 했다. 답답하면 청청 높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하늘이 말했다. '염려 마라. 궁하면 통한다. 가득 찬 달은 기울고, 기울어진 달은 다시 차게 된다. 모든 들어간 것들은 다시 나오게 된다.' 이불과 옷들을 짊어지고 온 하인 돌쇠 아비에게 금부도사를 따라가라고 일렀다. 근심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무사히 도착했음을 한시바삐 알리려는 것이었다. 장기 아전이 살도록 지정해준 집의 주인은 늙은 장교 성선봉이었다."(1권, p.310) 

유배지 장기에 도착한 첫날의 모습과 다산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유배지 장기에서」란 제목의 장(章)에 실린 내용이다.

유배지 근처에 〈죽림서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죽림서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라고 한다. 다산은 유배살이 짐 속에 넣어온 촛불 한 자루를 손에 들고 그곳을 지키는 사람과 대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밤에 찾았다. 정약용은 주자학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윤휴라는 사람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인 송시열을 소인으로 여기고 미워해 왔었다. 소인이라 여겨지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용납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그와 함께 소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마음을 열어 용서해주고 싶었다. 화해는 용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니까. 서원 안에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온 정약용입니다" 하고 말을 건네자, 서원을 지키는 노인들이 그를 문밖으로 밀어내면서 "여기가 어디라고 그 더러운 발을 디래놓는 기갸?" 하고 소리쳤다. 정약용은 얼굴에 웃음을 담고 '노장님들 왜 이러십니까? 송시열 선생에게 배례를 하고 싶어 왔습니다." 늙은 선비는 젊은 선비를 향해 소fl를 질렀다.

"퍼떡 문 닫아걸고, 소금 뿌려삐라." 정약용은 서원에서 쫒겨나 돌아오면서, 하늘을 향해 소처럼 웃었다.(p.316~317)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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