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남기는 글쓰기 - 쐐기문자에서 컴퓨터 코드까지, 글쓰기의 진화
매슈 배틀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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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것은 '문자'의 발명이라고 한다. 인류 문명 발달의 원점을 문자 발명에 두는 이유일 것이다. 문자 발명 이후 인류 문명은 놀라운 속도로 상상하기 어려운 발전을 거듭해왔다. 문자는 인간의 의사 전달 수단의 하나로 발명한 것이다. 말과 손, 발, 몸짓은 의사 전달에 한계가 있어서다. 가장 큰 제약은 먼 거리에 의사 전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시간상 같은 시간이 아니면 의사 전달은 불가능하다. 즉 말과 몸짓은 기록성이 없어 시공을 넘어서는 의사 전달이 안 되기 때문에 인류는 필요성에 의해 문자를 발명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숫자의 전달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이고, 차츰 감정 표현 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간 것으로 인류문화사는 판단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다른 말과 몸짓을 사용하는 것도 문자 발명으로 의사 전달이 가능한 데다 집단간 약속 등의 이행에도 문자 기록이 유효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수천 년간 인류는 문자의 발명에 의한 발전을 눈부시게 해온 것이다. 문자가 어떻게 달나라 가는 데 필요했나를 따져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한 것들이 문자에 의해 보관되고 축적되면서 과학도 눈부시게 발전한 것을 미루어보면 문자 이전과 문자 이후로 인류사나 인류문명사를 따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흔히 쓰는 '유사 이래'란 말도 문명의 시대와 비문명의 시대를 구분하는 데 적절하다.

그래서 한자어 문명(文明)도 '문'자가 들어가는 것이리라. 역사에서도 정확성이 있어야 역사 흐름을 알 수 있고 구분할 수 있는는데 문자로 된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천년간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문자(글자)'가, '글쓰기'가 사라질 위험을 이 책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에서 주장하고 있다.



4차산업 시대에 접어들기도 전에 발명된 디지털 문화에서 글은 지배적인 정보전달 매체라는 지위에서 급격히 밀려나고 있는 듯 보인다. 10대는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뒤적이는 대신 유튜브 검색창에 타이핑한다. 많은 이들이 일찍부터 스마트폰에 노출된 아이들의 문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며 우려한다. 책과 독서가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지, 또는 꼭 존재해야 하는지를 두고 끊임없이 논의가 오가고 있다.

이처럼 글이 위기에 처했다면, 글쓰기라는 인간의 행위는 어떻게 될까? 디지털 시대에 글쓰기는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우리에게 앞으로도 글쓰기가 필요할까?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의 저자 매슈 배틀스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글쓰기가 지나온 오래된 진화의 여정 속으로 뛰어든다. 글쓰기는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작용을 해왔으며 인류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막연한 질문에 답할 단초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배틀스는 글쓰기의 진화를 들여다보기 위해 ‘팰림프세스트’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팰림프세스트는 고대에 양피지를 재활용하기 위해 원본 글이 삭제되거나 일부 지워진 자리 위에 새로운 글을 적은 표면을 일컫는다. 우리의 글쓰기는 이 팰림프세스트처럼 언제나 이전의 흔적을 남기면서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류의 법, 종교, 역사에도 글쓰기의 흔적들이 새겨졌다. 배틀스는 한자가 서양 시학에 미친 영향, 필사 행위가 만들어낸 공동체 의식, 인쇄술의 발전이 독서하는 뇌에 가져온 변화 등의 다양한 사례를 가로지르며 글쓰기가 이후의 글쓰기에, 또 인간 지성과 문명에 남겨온 흔적들을 살펴본다.



배틀스는 글쓰기의 진화를 들여다보기 위해 ‘팰림프세스트’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팰림프세스트는 고대에 양피지를 재활용하기 위해 원본 글이 삭제되거나 일부 지워진 자리 위에 새로운 글을 적은 표면을 일컫는다. 우리의 글쓰기는 이 팰림프세스트처럼 언제나 이전의 흔적을 남기면서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류의 법, 종교, 역사에도 글쓰기의 흔적들이 새겨졌다. 배틀스는 한자가 서양 시학에 미친 영향, 필사 행위가 만들어낸 공동체 의식, 인쇄술의 발전이 독서하는 뇌에 가져온 변화 등의 다양한 사례를 가로지르며 글쓰기가 이후의 글쓰기에, 또 인간 지성과 문명에 남겨온 흔적들을 살펴본다.

컴퓨터 모니터로 나타난 문자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판을 쳐본 사람들이다. 타이핑 기계에서다. 익숙한 타이핑 기계를 바탕으로 컴퓨터 학자들은 타이핑하면 그 신호를 컴퓨터 디지털 문자로 바꾸었다 모니터에는 다시 복원시키는 방법으로 문자가 되어 나타난다. 이 때 쓰이는 컴퓨터 디지털 문자는 코드로 표현되며 0과 1로 이루어진 2진법에 의해 암호화된 코드다. 조금 발전되어 모니터 위의 글자들은 페이지 위의 글자들이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힘과 기능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빛의 속도로 빠른 전기는 문자뿐만 아니라 숫자, 어려운 기호 등도 모두 2진법을 이용해 간단하게 코드화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하는 글쓰기에서-적어도 내가 매일 하는 글쓰기에서-글쓰기의 양식과 재료는 서로 겹쳐지고 뒤섞인 채로 중첩되어 있다. 내 손가락에는 아직도 연필을 너무 세게 쥐어서 생긴 굳은살이 솟아나 있고, 맥북 에어의 자판을 부드럽게 두드릴 때도 무의식중에 타자기의 탁탁거리는 노랫소리가 떠오른다. 감각과 방식의 질감은 마치 팰림프세스트(palimpsest)처럼 한꺼번에 다가온다. 팰림프세스트란 고대에 이루어진 양피지의 재활용으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원본 글이 삭제되거나 일부 지워진 자리 위에 새로운 글을 적어 넣은 표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의 경제를 향한 실용적인 찬사가 ‘팰림프세스트’가 가지는 의미의 전부는 아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확장된 용례’에 따르면 팰림프세스트는 “특히 예전 형태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한 채로 재사용되거나 변경되었다는 의미에서 이런 표면과 엇비슷한 것”을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양한 시공간에서 글쓰기 기술을 새로운 형태적 발전 없이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보수적인 문화는 말하자면 펜을 가까이 두고 문자를 예술, 종교, 일상생활에 대한 제한적인 침투로만 허용했다. 그러나 글쓰기는 문화 갈등이 일어나거나 종교가 만개하는 시기 또는 경제적 변화가 생산적으로 요동치는 가운데 개방된 경계, 즉 점이지대를 찾아 새로운 형태와 종을 헤치며 활로를 찾는다. 그리고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면 오래된 형태는 변형되고 적응해 새로운 틈새를 메운다. 영어의 필사본(manuscript)이라는 단어는 인쇄술의 영향력이 대중의 삶 속에 속속들이 배어든 뒤에야 생겨났다.(p. 33)



책에 따르면 우리가 현대 컴퓨터 기술의 편재성을 글쓰기에 대한 방해나 반란이 아닌 갱신이자 부활로 보고, 무엇보다도 글이 무엇이며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논의의 새로운 버전으로 볼 때 정보 기술에 대한 신선하고 새로운 이해가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어쩌면 페이스북이 핵심을 찌른 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자아를 글로 쓰는 것에 대해선 책보다 담벼락이 더 적합한 은유일 테니까.

전자 텍스트를 책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맞추는 대신 우리는 벽과 로켓과 인방을 찾는다. 디지털 세계에서 이는 블로그와 피드(feed), 모바일 디바이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터치스크린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이 쓰이는 표면은 변화했지만 결국 우리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성격을 정하는 것은 우리 독자, 사상가, 작가 모두가 맺는 인간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학교의 위계가 있고 서예가와 학생 사이에 지도 관계가 있고 작가와 발행인 사이에 간결한 계약이 있었듯, 이제 이 관계들은 코드가 되고 소프트웨어가 된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과 페이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글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우리가 맺는 관계다.



문자의 역사에 대해 쓴 글 같지만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는 단순히 글쓰기의 역사만을 시간 순으로 서술한 책이 아니다. 『서재 결혼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은 이 책을 두고 “백과사전식 연대기가 아닌, 수 세기를 우아하게 가로지르며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는 자리마다 머무는 에세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 책은 글쓰기가 지나온 수천 년의 생애로부터 길어낸,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문제의식과 공명하는 수많은 흥미로운 사례들로 가득하다.

저자 배틀스는 통시적 접근을 하는 대신 다양한 측면에서 글쓰기의 본질과 역할을 조명한다. 먼저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문자의 탄생이다.

문자의 발전에 대한 재치 있는 접근, 신화 속에서 문자의 탄생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고대 인류의 놀이와 문자의 상관관계 등을 넘나들면서 “변하는 것, 스스로를 부수고 다시 만드는 것”이 왜 글쓰기의 타고난 속성인지 밝힌다. 다음으로 다루는 것은 사물과 글쓰기가 갖는 관계다. 이를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문자는 한자다. 한자가 지닌 그림문자이자 표의문자로서의 속성을 뜯어보고, 또 19세기 한자를 접한 서구 사상가들이 한자에 대해 어떤 환상과 이념을 투여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인간의 인지, 추상 능력과 글쓰기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저자가 이 책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이 글쓰기의 ‘교권’이다. 원래는 신학적 주제에 있어 교회의 가르침이 가지는 권위를 일컫는 이 단어를 배틀스는 “인간의 경험에 글쓰기가 미치는 영향”이라고 정의한다. 배틀스는 이를 글쓰기가 권력의 통로로 기능해온 사례들, 예를 들어 제국의 통치에서 글쓰기의 쓰임과 관련 지어 살펴본다. 한편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적 혁신을 통해서 글쓰기가 오직 권력의 도구이기만 하지는 않았고, 쓰기를 통한 해방(젠더화된 교권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도 밝힌다. 이야기는 글쓰기의 교권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헌인 성서로 이어진다. 원본이 불확실하고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번 베껴 쓰이면서 모습을 갖춰온 성서, 그리고 필사라는 문화를 통해 배틀스는 베껴 쓰는 행위의 의미를 조명한다. 베끼고 주석을 달고 논평하면서 생각을 공유하는 사회적 연결망이 탄생할 수 있었음을 밝힌다.

이와 함께 저자의 관심이 닿는 곳은 기술 발전과 글쓰기의 관계다. 배틀스는 인쇄술의 탄생으로부터 모스 부호를 지나, 니컬러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매리언 울프와 같은 연구자들이 우려한, 디지털화가 읽기에 미친 영향까지 아우른다. 기술과 매체의 개입으로 글쓰기가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살핌으로써 읽기와 쓰기의 영역이 디지털화로 인해 축소되지 않았음을, 오히려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야기는 보이저호에 담긴 골든 레코드, 그리고 1만 년 이상 먼 미래에 핵폐기물 저장소를 발견할 이에게 보낼 경고 메시지다. 배틀스는 두 사례를 통해서 '인류 문명(즉 글쓰기)이 지구에 저지른 일들을 과연 글쓰기가 다시 바로잡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배틀스는 이처럼 여러 대륙과 수 세기에 걸친 무수한 이야기들을 길어내고 또 그것들을 유연하게 연결 짓는 흥미진진한 지적 모험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그럼으로써 글쓰기가 지닌 다층적인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음미하도록 해준다. 글쓰기와 글 읽기를 아끼고 사랑해온 이라면 누구라도 즐겁게 동행할 수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쐐기문자에 그 독특한 양식을 부여한 진흙과 점토라는 재료들은 쐐기문자의 쇠퇴 이후로는 글 쓰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낯선 것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메소포타미아의 필경사들이 가졌을, 우리에겐 낯선 감각중추를 분명히 아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공기 중에 진하게 풍기는 흙냄새, 손가락이며 옷에 묻어 마르고 갈라져가는 액화된 점토인 흙물, 필사를 하는 사이사이에 완성되지 않은 글을 싸두던 축축한 리넨의 거칠고 달라붙는 감촉.

점토라는 매체가 낯선 후대인들에게는 쐐기문자가 막다른 길에 도착한 매체라든지 더 발전된 알파벳을 향한 원시적인 디딤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히 형성된, 유서 깊으며 유연하고 세련되었으며, 영리하고 복잡하며 다양한 언어를(심지어 때로는 동시에) 표현할 수 있었던 문자 체계였다는 점이 잘 와닿지 않는다. 언어학자들은 수메르어를 고립어라고 부른다.(pp 83~86))



우리 모두가 아다시피 이 책은 독서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새로운 사실을 알고 체득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유용하다.지적인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은 이 책과 함께 글쓰기의 타임머신을 타고 인류사 곳곳을 체험할 수 있다. 매우 의미 있고 유용한 책읽가 될 것으로 믿는다.


저자 : 매슈 배틀스(MATTHEW BATTLES)


글쓰기와 도서관에 관해 쓰는 작가이자 예술가.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를 비롯한 여섯 권의 책을 썼다. 하버드대학교 버크먼인터넷과사회센터의 실험적 강의. 연구실인 메타랩을 이끌고 있다.


역자 : 송섬별


영문학을 공부했고, 더 잘 읽고 쓰기 위해 번역을 시작했다. 주로 여성, 성소수자, 노인과 청소년을 다루는 책에 관심을 가졌다. 앞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더 많이 소개하고 싶다. 옮긴 책으로는 『사라지지 않는 여름』, 『당신 엄마 맞아?』, 『애너벨』, 『너를 비밀로』,『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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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강변
임미옥 지음 / 봄봄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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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수필'이라는 말을 잘 안 쓴다. 모두 '에세이'로 통한다. 왜 수필과 에세이가 따로 분리돼 불리우는지 독자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서점에서 '수필'을 잘 볼 수가 없다. 수필을 쓰는 사람이 적어서인가, 아니면 수필과 '에세이'로 따로 분류해서 그런가. '수필'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피천득 씨다. 우리에게 수필가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독자가 나이 들어선지 모르지만 그의 수필 '인연'이 교과서에 실렸었다. 수필의 전형을 보여준 글이어서 실린 것이다.

우린 거의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일본인 여인과의 애틋한 감정을 그린 수필이다. 그외 수필가로 이름을 남긴 분들은 많다. 아무튼 여러 권을 읽다보니 수필은 글을 오래 써온 분들이 세상을 관조하는 의미에서 쓰는 감상적 글, 주변 신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 대한 단상 등을 주로 쓴 것이다. 이에 비해 '에세이'로 분류돼 나오는 책은 '마음치유' '위로 격려' '마음 상처 치유에 위안을 주는 글' 등이 주류를 이룬다. 수필은 원뜻에 의해 분류하자면 '에세이'와 '미셀러니'로 분류된다고 배웠는데 요즘은 그 두 개의 경계가 허물어졌는지, 아니면 그냥 보통 에세이로 통칭하는지 알 수 없다.



이 책 『꿈꾸는 강변』은 저자의 젊었을 때 이야기와 아들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식과 관련된 부분 역시도 그 사람을 이야기하는 데 중요하다. 시를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마음을 풀어헤친 채 읽기 좋은 여유와 관조의 느낌이 강해서 좋다. 읽을수록 소소한 흥미가 있다. 독자도 나이를 들어서인지 저자의 추억과 사는 모습, 주변의 풍경 묘사를 통해 옛 향수도 불러일으켜 공감하는 데 훨씬 쉽다.

자연스레 독자 자신의 삶도 되돌아봐가면서 읽을 수 있어 몰입도도 높았다. 소제목 하나하나에 붙은 의미와 글의 흐름을 따라 의식되는 많은 '무의식'까지 끌어내는 힘을 가진 이야기들이다. 물론 저자의 글쓰기 능력이 보태진 거겠지만. 저자가 사는 주위 풍경을 상상해보며 독자의 어릴 적 살던 곳의 모습까지 끌어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저자의 글에 많은 공감을 느낀 이유 때문이리라.

저자의 삶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힘들 때도 있고, 극복해낸 다음 고요한 모습을 보이는 글에서는 경륜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담담하게 썼지만 독자에게는 강한 울림을 주는 글들로 꽉 채워져 있는 오랜만의 수필집을 마음에 담고 집에 보관하는 행복한 느낌이 가슴속에 오래 남는다.



"살면서 누구도 사람을 한찮게 여길 자격은 없다. 나는 그에게 설명 한마디 없이 일방적으로 언약을 파기해도 괜찮은 존재였던가, 나를 그리 대했으니 나도 그를 내 마음에서 추방시켜 버릴까, 따질 수도 없고, 쿨하게 잊기엔 자존심이 상하고... 이럴 때 상대방에게 적용할 페널티 같은 거 있다면 좋겠다. 그에게 적용하고 나면 내 마음이 눈처럼 하얘지는 그런 페널티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던 때로 돌아가 상대를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p. 63)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강변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강변은 각자 다른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리움이다. 물이 있고, 그 물을 바라보는 나, 물 속에서 자신을 비추게 된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 1급수이면, 깨끗한 강물이면, 나 자신을 성찰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데 있어서 안성맞춤이다.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을 보고 싶을 때, 그 사람이 머문 장소 이외에 대체로 강변으로 향하는 이유는, 길에서 느껴지는 그리움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저자의 마음 언저리 속에 남아 있는 그리움의 목적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그리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익숙한 곳으로 점점 더 천착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곳이 내가 태어난 곳, 고향산천, 강변이었다.




살다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간다. 소중한 것임에도 그것을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폐기처분할 때가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존재를 생각하면서, 정작 존재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오게 된다. 나에 대한 존재감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존재감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가치와 습관들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가 누군가를 평가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내 소중한 사람들을 평가하지 말고 사랑하게 되면, 그사람은 내 곁에 머물러 있게 된다. 누군가를 평가함으로써 사람들은 어떤 대상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바로잡지 않은 채 방치하게 되었다. 먼저 내 가족을 사랑하고 내가 지켜야 하는 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남들이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평가를 잠시 내려놓고, 사랑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사람과 함께하면서,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내 삶에 대한 여유로움을 잊지 않는다면, 내가 놓치고 살아가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저자처럼 살아가지 못하더라도, 저자의 삶을 따라갈 순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그곳에 간다. 그곳에는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곳에서 오래 두어도 낡아지지 않는 꿈꾸는 강을 만난다. 그 강변에 앉아서 그리움의 끝에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남들은 기뻤다는 어린 날, 홀로 아파하며 표랑하던 과거와 조우하며 지금의 나와 대응해 본다.

그리고 깊은 바닥도 낮은 둔덕도 덮고 흐르는 강의 덕성을 배운다. 그렇게 과거의 상처들과 단절하며 그 쓸쓸함의 황야에서 빠져나온다.

다홍빛 저 하늘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그곳은, 언젠가는 도래할 그날, 내 가뿐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가야할 곳이다. 그곳을 바라보며 내 사모하는 주님을 만나 뵙는 또 하나의 꿈을 꾼다.

산다는 건 결국 꿈을 꾸는 일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 가장 좋은 것이 있다면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일 게다. 강물이 저 혼자라면 어찌 빛을 내겠는가. 햇빛에 반영되어 더욱 아름다운 것을….

글 쓰는 일도 마찬가지, 저 혼자 뱉어내고 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신문을 읽고 격려해 주는 단 한사람, 그대로 인하여 마음은 팽창한 현이 되어 다시 펜을 잡는다. 그 한사람 때문에, 지면에 나갔던 글들을 정리하여 책을 엮는다. 강물처럼 쉬지 않고 그렇게 흘러가다보면 물고기가 노니는 깊은 물이 될 수 있는 시절도 오겠지….

<서문> 중에서




이 수필집은 제목 남자의 강, 이끼의 노래, 꿈길에서 꽃길에서, 마음놀이, 소나무 문답, 꽃잔디의 꿈, 연을 먹는 사람들, 인연 만들기, 서로 다운 세상, 지구를 도는 달처럼, 지음, 그리움의 끝, 잉어, 음악처럼을 비롯한 40개가 넘는 글로 구성돼 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남을 의식하고,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솔직한 행동을 하지 못하고, 쉽게 상처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지속되어 의욕을 상실하고,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한다. 마음속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지만, 그러는 것이 쉽지 않고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얻기도 어렵다.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수필'이다.

수필은 특별하지 않고 평범한 느낌을 담은 글을 통해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순간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과 사람들과의 관계, 마음가짐 등으로 인해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전한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하고, 행복을 느끼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한다.

『꿈꾸는 강변』에는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담은 글들이 있기 때문에, 글을 읽는 사람들 각자의 마음에 따라서 공감을 하고,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될 것 같다.



“그가 혀로 내 언 몸을 구석구석 핥아주면 내 모든 세포와 촉이 일어서 노래를 한다오. 나는 순히 스러져 내 전부를 내어준다오.”


저자 : 임미옥


경부선이 지나고 금강이 흐르는 세종시 부강에서 태어났다. 유치원에서 꼬마들과 젊은 날을 보냈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푸른솔문학지에 수필로 등단했고 ‘제20회 동양일보 신춘문예’에 수필 ‘엇박자노래’가 당선됐다. 충북일보 ‘임미옥의 산소편지’ 코너 고정필진으로 수년간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청주시에서 운영하는 ‘1인1책 펴내기’ 교실에서 수필을 강의하고 있다. 대한기독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에서 활동 중이고, 푸른솔문인협회 사무국장, 편집주간, 충북문학전집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지금은 ‘청솔문학작가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수필집은「음악처럼」(2015년)「수필과 그림으로 보는 충북명소」(2017년)가 있고, 이번에「꿈꾸는 강변」(2020)을 엮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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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트로트 특서 청소년문학 16
박재희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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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연말 세계 톱 10 뉴스는 단연 코로나 팬데믹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시민들을 공포와 불안에 몰아넣고 세계 각국의 문을 틀어막아 삶의 활동이 모두 정지된 채 연말을 보내야 하는 상황으로 일년 내내 단 하루도 코로나로 인한 뉴스가 안 나온 날이 없었으니까. 항상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던 미국 대통령 선거도 코로나 팬데믹이 가장 큰 이슈로 등장했고, 우리 역시 코로나 속에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우리는 코로나 방역을 그나마 잘 해내고 있는 모범 방역국가라는 칭호를 얻고 선전하고 있어 다행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가요계는 새로운 열풍에 휩싸였다. 트로트 열풍이다. 폭발적인 인기와 젊은 트로트 가수들의 등장으로 기성세대들이나 노래방 등에서 부를 정도로 퇴조되었던 트로트 가요가 이젠 모든 방송사에서 주요 프로그램으로 등장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담고 있다는 트로트가 다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코로나 때문이라는 가요계 일각의 평가도 나오고 있다. 과거 어렵고 힘든 산업화 시대에도 트로트는 단연 국내 가요계를 휩쓸었었다. 노래가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 주었고, 트로트가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정서에 맞고 부르기 쉬워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슴에 깊게 스며든 것이다. 때문에 올해의 트로트 광풍도 코로나로 인한 공포, 불안, 우울 등의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기에 적합했을 거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트로트는 한국인의 정서에 잘 맞는다는 평가는 우리의 판소리나 국악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설득력이 높다. 실제로 창법이나 가사 내용 등이 비슷하기도 하거니와 멜로디나 다루는 음이 국악의 음계(5음계)에 많이 근접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트로트 열풍 속에 이 책 『어쩌다, 트로트』가 출간돼 화제다. 이 책은 『춤추는 가얏고』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박재희가 이번에는 ‘트로트’라는 뜨거운 소재를 가지고 청소년소설로 독자들을 찾아와 트로트와 국악의 불가분의 관계를 해석해준다. 이 소설은 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산조 이수자인 작가의 경험담이 판소리와 트로트의 접목이라는 한편의 트렌디한 소설로 태어난 것이다. 『어쩌다, 트로트』에는 증조할아버지로부터 삼대가 이어온 판소리와 주인공 지수가 택한 트로트, 전통과 현재가 어우러져 있다.




『어쩌다, 트로트』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자살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 원망을 조명한 데 있다. 지수는 갓난아기였던 시절부터 홀로 자신을 키우기 위해 고생해온 엄마를 보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차곡차곡 쌓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노래하며 끝내 그를 용서하게 된다.

지수에게는 아픔을 견뎌낼 꿈이 있고, ‘가족’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할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박재희 작가는 기댈 곳을 찾지 못해 흔들리고 있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언젠가는 상처에도 피가 멎으리라는 사실을 꼭 알아주길, 간절한 소망의 언어로 담아냈다. 아무리 애써도 마음의 상처를 없애지 못할 것 같다고 느끼는 아이들에게는 이 책에 등장하는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라는 단어가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뜻의 ‘일체유심조’를 곱씹으며 지수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상처도 마음먹기에 따라 이겨낼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슴속에 있는 슬픔을 노래로 승화시키는 그 ‘깊은 맛’에 전 국민이 동화되어 트로트에 맞춰 춤을 추고, 눈물을 흘리고, 다시 웃음 짓는다. 트로트는 한국인들 특유의 ‘한’을 ‘흥’으로 승화하여 표현해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트로트』는 트로트의 ‘깊은 맛’을 쏙 빼닮았다. 삼대째 이어진 판소리 명창 가문에서 태어나, 가족을 등지고 떠난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가슴에 꽁꽁 묻어 두었던 아이가 슬픔을 직면하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은 슬픔도 흥겨운 노래로 승화시키는 트로트의 ‘깊은 맛’을 닮아 있다.

"난 트로트 부를 때 기분이 좋아. 경쾌한 노래, 슬픈 노래 다 좋아. 좀 우울할 때, 기분이 엿 같을 때 혼자 코인 노래방 가서 목이 찢어져라 트로트를 불러. 트로트는 혼자 불러도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부르는 느낌이 들거든. 노래 부를 때만큼은 나는 왕따가 아니야."(pp. 63~64)




아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은 돈도, 명예도, 그 무엇도 아닌 바로 ‘꿈’이다. 아이들이 저마다 마음에 품고 있는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도 ‘꿈’이다.

『어쩌다, 트로트』의 지수에게도 꿈이 있다. 지수는 황제에게 벼슬을 받은 국창 증조할아버지부터 하늘이 낸 소리꾼으로 불린 할아버지, 전설적 명창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판소리 성골’이지만, ‘명창의 아들’이라는 타고난 운명 대신 트로트를 자신의 길로 삼고 개척하며 나아간다. 전설적인 명창의 아들이 술집 뽕짝을 부르냐는 쓴소리를 들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꿈을 향해 가는 지수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아이들의 가슴에도 꿈이라는 목표가 조금씩 움틀 것이다.

『어쩌다, 트로트』는 삼대째 이어진 판소리라는 운명 대신 트로트라는 새로운 꿈을 개척하는 한 아이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고독한 예술을 하다가 가족을 떠난 아버지 이야기, 홀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에 대한 연민, 증조할아버지대로부터 이어져왔지만 대중으로부터 소외받게 된 전통문화의 오늘까지 박재희 작가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깃거리들이 독특하고 조화롭게 담겨 있다.


"한 사람은 죽고 두 사람은 살아 있으나,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뜻일까. 아빠는 살인마다. 박은희, 이금산, 조은필, 운경, 그리고 하지수의 삶을 매장한 살인마다. 그러면 아빠를 죽인 사람은 없을까? 사람들이 판소리를 싫어하는 게 아빠를 자살로 몬 이유가 될까. 어렵다."(p. 150)



“사실 그동안 저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어려서는 뭘 모르고 트로트를 불렀지만, 중학생이 되고 다양한 음악을 만난 후로는 제가 왜 어른들이 좋아하는 트로트를 부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어린애가 무슨 트로트냐, 동요나 불러라, 건방지다, 안 어울린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이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고민했습니다. 왜 트로트지? 트로트를 꼭 불러야 하나? 고민했습니다만, 이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트로트를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특히 현인 선생님의 굵고도 맑은 목소리, 점잖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좋아합니다.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트로트는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또 트로트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p. 163)


얼씨구, 잘한다, 조오치! 여느 때 같으면 후끈 달아올랐을 소리판이다. 그러나 너무 고요하고 너무 적막하다. 그리운 마음. 하동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추임새를 못 넣게 하나 보다. 소리판 돗자리를 둘러싼 50여 명의 손님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눈물 그렁하면 순식간에 소리판을 눈물판으로 만들 것이다. 다행히 미색 원피스 차림의 지수 어머니는 편안해 보인다.(p. 178~179)


저자 : 박재희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중앙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산조 이수자이며, 1989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춤추는 가얏고』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청소년 장편소설 『징을 두드리는 동안』, 중단편 소설집 『양구』, 장편동화 『대나무와 오동나무』, 어린이 정보책 『우리 악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흥과 멋이 묻어나는 전통음악』, 『단소 교실』, 『가야금 교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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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공부법이 이긴다 - 8개월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의대생의 공부 기술
고노 겐토 지음, 신은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나오는 공부는 우리가 예전에 했던 공부의 방법이 아니다. 독자는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에 매달렸다. 다른 모든 대학 수험생이 그러했듯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으로 나뉜 대학 시험은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시험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과목이나 공부 방법은 대동소이가 딱 맞는 말이다. 조금 달라진 부분은 암기 위주의 시험이 이해와 응용 능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흐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암기 과목과 이해와 응용 부분의 과목을 따로 따로 공부 방법을 택했다. 지금도 사실 어떤 시험을 치려 하면 그때의 공부 방법으로 공부한다.

책을 읽을 때도 이해 위주의 책은 죽 읽어나가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체크해 놓고 다시 한 번 세세히 찾아 써 넣고 다시 한 번 읽고 이해한다. 그런 식의 공부는 '나만의 공부법'은 아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가르쳐준 대로 했을 뿐이고 오래 지속하다보니 책읽기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꽤 충격이긴 하다. 공부를 '기술'로 공부 프레임을 바꾼 것이다. 공부를 기술로 한다니까 강한 거부감이 든다.




그럼 우리나 일본이나 가장 어렵다는 사법 시험이나 의대 시험은 공부 기술자들이 들어가야 하는 건가? 그렇게 법대 의대 나와 원하는 시험에 합격하고 더 노력해 검사, 판사, 의사 되면...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들의 공부법이 그렇다면... 그러나 일단 읽고 옳다 그르다를 판단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이 이 시점에서 나온 것은 일본의 의대생이 8개월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기록적 인재가 나와서인가? 아마 코로나로 학생들이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일이 많아져서 효과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공부법은 동의해야 할 방법이 무척 많다. 그의 공부법대로 공부하면 어려운 시험도 합격할 수 있다는 공부방법 안내서로서는 최적의 책이 될 수 있으리라고 독자도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기술'이라면 새로운 방법이고 독창적이다. 그래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돼 있다.

혼자서 공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이른바 '혼공' 능력이 합격의 필수 조건이 되었는데 혼공은 심플할수록 성과를 빨리, 크게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이 책 발간 취지일 것이고 그렇게 구성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앞서 밝힌 대로 이 책 『심플한 공부법이 이긴다』는 휴학 없이 8개월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의대생의 공부 기술을 이야기한다. 24시간이 모자란 도쿄대 의대생인 저자는 목표에 충실한 공부 계획과 낭비 없는 시간 활용으로 빠른 시간에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심플한 공부법에 대한 인터뷰와 문의가 쇄도하면서 그는 자신의 공부법을 정리하여 『심플한 공부법이 이긴다』를 출간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심플한 공부법은 ‘한정된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원하는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가?’에 최적화되어 있다. 역산 공부법이 핵심인데, 목표를 설정한 뒤 목표에 맞춰 역산하여 스케줄을 짜고 매일 해야 할 공부량을 정해 그것만 충실하게 해내면 된다는 것. 공부 효율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꼭 필요한 공부보다 많은 양을 하려는 데 있다.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손을 대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 시간만 흘려보낼 뿐 머릿속에 남는 건 하나도 없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신경 써야 할 것은 하루에 공부해야 할 내용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익히는 것이다. 하루 공부를 온전히 내 것으로 흡수하는 것이 중요하지 하루에 얼마나 많이 공부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때문에 책에는 하루 공부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다양한 공부 기술을 함께 소개한다. 공부 효율을 초고속으로 올리는 일상의 습관들, 주어진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노하우, 빠른 시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암기술 등이다.



저자는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 얼마 안 남은 시험 d-day, 답은 심플한 공부법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요즘처럼 혼자 하는 공부에서는 효율을 높이는 단순한 공부법이 이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합격에 꼭 필요한 공부만 집중해서 끝내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과정, 『심플한 공부법이 이긴다』에 모두 담았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고 푸념하는 사람은 대부분 목표와 관계가 없는 것에 열중하기 때문이다고 전제한다. 그러므로 항상 목표를 의식하고 스케줄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단 시간에 최대한의 성과를 내는 것’이 역산 공부법의 핵심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합격에 필요한 공부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실행했을 뿐이다"고 말함으로써 역산 공부법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결국 이 책은 어떤 식으로 공부 계획을 세우고 합격점까지 최단거리로 도착할 것인가에 관한 학습 설계와 시간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공부할 것인지에 대한 시간 관리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내가 아는 ‘공부를 하는 의의와 즐거움’ 을 모두 담았다. 이것을 잘 이해하고 공부한 다음 모두 행복한 선택을 하도록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는다. 어째서 모두 그렇게 열심히, 즐겁게 공부하지 않는가?"

<본문 중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교육에 대한 열정이나 대학진학률이 높은 편이다. 좋은 대학이나 학과에 진학하지 위해서는 초등학교때부터 엄청난 공부를 하고 있다. 오죽하면 '아동 학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생겨날까. 아마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미 공부에 요령이 있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명문대생들도 사법시험을 합격하기 위해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몇 년을 공부하여야 한다. 시험 치르려는 수험자의 1% 정도만 합격하는데도...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사법시험을 8개월만에 합격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 '공부의 신'이라고 불리는 저자는 짧은 시간에 최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심플한 공부법을 이 책을 통해 공개한 이유다.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부 효율을 높이기 위한 동기부여, 심플한 공부법의 핵심인 역산 공부법 그리고 네 가지 기술에 대해 알려 주고 있다. 마지막에는 수학, 영어, 과학, 사회, 국어로 구분하여 공부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 점은 특이하게도 독자와 생각이 같다.

일단 저자는 공부에 왕도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공부를 시작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경영학에서 사용하는 업무 기법인 Plan, Do, Check, Act (PDCA) 사이클을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돌리는 것을 공부에 적용하였다고 한다.(경영학은 또 언제 배웠나?) 또한, 남이 했던 PDCA 사이클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피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PDCA를 돌려서 터득한 공부법이 있다고 한다.



저자 공부법의 핵심이기도 한 '역산 공부법'이다. 저자에 따르면 목표를 세우고 분석한 뒤 목표에 맞춰서 대략적인 스케줄을 짠다, 거시적으로 짠 스케줄을 세밀하게 나눠서 학습량 중심으로 하루의 목표를 세운다의 세 가지다. 더 구체적으로는 목표를 알고 구체적인 결승점을 설정하기, 결승점까지 해야 할 것을 정하기. 해야 할 것을 스케줄에 넣기, 실천하기, 진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기의 다섯 단계로 구성된다. 이와 관련하여 각 단계별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목표로 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노력의 양도 필요하지만 올바른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시험을 위해 영어공부가 필요한 것을 예로 들면서, 단어나 문법을 공부하는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만날 수 있는 수학 공부법은 흥미로웠다. 흔히, 영어 공부법은 셀 수 없을 만큼 넘쳐 나지만, 수학 공부법은 드물기 때문이다. 저자는 수학공부에서 구체와 추상을 왔다 갔다 하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본 문제는 패턴으로 공략을 하고, 규칙을 추출할 때는 다른 기본 문제와 비교해서 공통점을 찾기 위해 생각해 보고, 응용 문제는 기본 문제를 축으로 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통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당연히 독자와 공부법이 다르긴 하다. 넓게 보면 굉장히 체계적이고 테크니컬한 면이 강조된다.

시간 관리를 위한 역순은 효율성을 높이기에 좋다. 여러 가지 방법이 등장하지만 구체적으로 단계적으로 나눠 설명해서 이해하기엔 최적으로 기술해 놓았다. 특히 다섯 가지 과목에 대한 개별적 공부법도 매우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공략해 들어간 느낌이어서 설득력이 강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끝까지 언급하지 않은 문제는 남았다. 공부의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법'이라고 한다. 2500년 전부터 서양의 소크라테스나 동양의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면서 강조한 것이다. 생각해봐도 삶에 도움이 되는 공부는 스승과 제자가 대화를 통해서 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응용력, 논리력, 적응력, 이해력, 연상력, 게산력, 순발력, 기타 인문학적, 철학적 소양을 키우는 데는 대화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저자가 이 책에서 밝히고 강조한 것은 시험을 위한 수험생에게 적용하기 좋은 방법이 될 순 있지만 사회가 필요한 기본 소양과 인격을 함께 갖춘 인재 양성에는 이 책의 공부법이 꼭 최상의 방법은 아닐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저자 : 고노 겐토


1996년생, 도쿄대 의대 재학 중 8개월 만에 사법시험까지 합격하여 ‘공부의 신’으로 유명해졌다. TV 프로그램 〈두뇌왕〉에서 우승하는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 중이며 누적 조회수 3,000만 유튜브 채널 〈STARDY - 고노 겐토가 전하는 신의 수업〉에서 30만 명의 구독자들과 공부에 대해 소통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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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외 연애와 비슷한 것
미야기 아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혼외연애(婚外戀愛)'는 일본어 사전에 나오지 않은 단어다. 다만 신조어로 일본 인터넷사전에 등재된 것으로 안다. 뜻은 결혼한 배우자 외의 상대와 연애하는 것으로 우리가 말하는 '불륜'은 아니고 '아줌마부대'가 연예인을 좋아하는 광팬 정도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정확한 의미는 아니다.

들은 얘기와 이 책을 읽은 후 느낌으로 그런 뜻으로 쓰이는 일본의 신조어라고 정리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도 '비슷한 것'이라고 덧붙인 제목을 보면 혼동을 주려는 의도적인 이유가 아닌가싶다. 일본 문화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지만 신조어를 잘 만들어내는 일본인들의 언어 유희쯤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즉, 제목에 큰 뜻을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나라도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주도 계층은 연령층으로는 대략 10대, 네티즌에 의해서다. 주로 축약을 위해 만들어내는 신조어는 신속을 생명으로 하는 정보화에 따른 것이고 의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해 자신만의 '은어'로 사용하지 않아서이다. 오랜기간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이 사용한다면 표준말로 굳어질 수 있지만 아직은 판단할 단계가 아니다. 신조어의 생명이 수 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혼외연애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우리말 신조어로 바꾸면 '연예인 광팬' '덕후' 정도로 표현하면 될 듯하다. 일본 dTV 방송에서 드라마로 방영됐다는 얘기도 들어보면 '불륜'이 주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트로트가 요즘 굉장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성세대에서 20~30대는 물론 10대까지 전 연령대의 사랑을 받고 있는 트로트 가수들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이 가운데 광팬도 있고 덕후도 있을 터 그들을 혼외연애자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와 약간 다른 정서인가, 아니면 '비슷한 것'이란 말을 붙여 시선을 끌기 위한 장치인지 판단은 유보한다.

이 책 『혼외 연애와 비슷한 것』은 다섯 명의 30대 중반 여성들이 등장한다. 옴니버스 소설로 다섯 명의 여자들은 단편소설 분량에 각 1편씩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일본 아이돌 덕질에 흠뻑 빠진 다섯 명의 여자다. 남편과의 애정이 전혀 없는 여자, 남편과 아들의 오랜 무시와 모욕에 지친 여자, 결혼 따윈 관심 없는 화려한 싱글녀, 평생 평범하고 수수한 아줌마로 살고 싶진 않은 여자, 스스로를 세계 최고의 ‘얼꽝뚱보’라고 여기는 여자까지. 외모도, 살아온 환경도 전혀 다른 그녀들의 공통점은 ‘서른다섯 살’이라는 것. 그리고 남성 아이돌 유닛 ‘스노우화이트’의 덕후라는 것이다.

스노우화이트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미칠 정도로 한결같다. 비록 그들이 손이 닿을 수 없는 별이라도, 현실은 여전히 비참해도 스노우화이트만 있으면 인생은 아름답다고 그녀들은 외친다.





세번째로 넓은 평수의 맨션에 사는 사쿠라이, 약혼반지를 받았을 때도 1캐럿 다이어몬드를 원했지만 남편은 예산 부족이라며 0.7캐럿을 선물한다. 미묘하게 작은 집, 미묘하게 작은 다이아몬드, 미묘하게 머리가 벗겨진 남편. 사쿠라이는 늘 학력, 미모, 행복에서도 3등의 인생을 살아왔다. 어릴적 예쁘단 말을 많이 들었고 방송 CF에도 두번이나 출연했지만 외모에서도 3등이었다.

그래서 공부로 눈을 돌려 1등이 되고 싶었지만 역시 3등으로 화려한 업계의 중심에는 서지 못한 채 늘 뭔가 결핍된 '3등여자'가 되었다.

직장에서 만난 9살 연상의 남편과 결혼했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남편과의 사이도 시들하다. 남편이 바람 피우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을 전업주부로 살게 해주고 매달 150만엔(한국돈 1600만원 정도)을 벌어오기 때문에 크게 불만은 없다.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은 스노우화이트의 미라잉이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불륜녀가 맨션에 살긴 원한다고 집을 비워주길 요청한다.




지바에서 나고 자랐지만 언젠간 도쿄에 살고 싶다는 꿈을 꾸지만 지바 남자가 19살에 마시코를 임신시켰고 그렇게 결혼해서 지바에서 아들 하나를 낳고 살아간다. 20살에 엄마가 되어 아들은 중학생 사춘기이며 마시코를 거지 같은 아줌마라고 부르는 불효자식('양아치')이다.

남편은 두 번이나 다단계에 넘어가 빚을 졌고 지금은 갱생하여 노래방과 야간공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며 마시코 또한 도쿄의 슈퍼마켓에서 캐셔 일을 하고 있다. 삶은 팍팍한데 그녀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스노우 화이트의 핫치이다. 그녀가 일하던 슈퍼마켓에서 손님과 종업원으로 만났지만 콘서트 티켓을 매개체로 사쿠라이와 친해진다. 어느날 아들이 도둑질을 하다가 잡혔다는 전화를 받는다.




부유한 아버지와 능력도 외모도 모두 1등인 여자 스미타니. 아버지의 부를 거부하고 스스로 회사를 운영하여 부도 성공도 모두 거머쥔다.

뛰어난 외모에도 결혼을 하지 않는 그녀는 11살때 우연히 마주친 스노우 화이트의 지카를 마음속으로 품고 살고 있다. 콘서트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전 직장동료인 사쿠라이. 사쿠라이가 직장에 다녔을 때 늘 외모, 능력에서 1등을 했던 여자가 바로 스미타니였다.

그렇게 스미타니는 사쿠라이, 마시코를 알게 된다. 해외 투어 콘서트를 다녀왔더니 계약을 해지하자는 메일들이 10통이나 와 있고 진상을 알아보던 중 업계에 스미타니가 일을 내평겨치고 어린 남자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쇼타콤이라는 괴문서가 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쇼타콤 : '쇼타로 콤플렉스'의 준말. 어린 남자아이를 성적으로 선호하는 것을 가리킨다.(독자 주)



외모도, 공부도 뭐든지 평범했던 여자 야마다. 25살에 운좋게 와세다 대학 출신의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다. 자신과 비슷한 평범한 딸을 낳고 살고 있던 중 남편은 전업작가가 되고 3권의 책은 베스트셀러에 올라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가지게 된다.

어린시절 좋아했던 그룹의 백댄서인 스노우 화이트의 질베르를 보고 혼자만의 사랑에 빠진다. 질베르의 사진을 사면서 알게 된 사쿠라이와 친해지며 스미타니도 소개받는다. 그러던 중 그녀의 소중한 딸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뚱보에 '얼꽝', 머리도 나쁘면서 가난하기까지 한 카타오카가 다섯 번째 주인공이다. 도쿄에 사는 꿈을 꾸고 도쿄에 왔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30살에 만난 남편과 결혼도 했지만 남편은 백수에 히키코모리처럼 하루종일 집에만 있고 부양을 카타오카가 한다. 그녀의 유일한 재주는 BL소설을 쓰는 것이었지만 그 일에서도 잘리고 지금은 빵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스노우화이트의 맛슈와 열열한 팬인 그녀는 스노우화이트를 소재한 BL소설을 인터넷상에 올리다 야마다와 친해지며 나머지 여자들을 소개받게 된다. 그녀에게 새로운 BL소설을 쓸 소재와 기회가 찾아온다.



“이번 콘서트에 성공하고,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성공시켜 나가면 저희의, 그리고 팬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질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부디 응원 부탁드릴게요! 꼭 와주세요!” “갈게!!” 하고 외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들의, 그리고 팬인 우리들의 꿈. 그건 아마도, 아니 분명 메이저 데뷔가 될 것이다. 거의 동기인 INAZUMA가 3년 전에 데뷔했다. 그 뒤편에서 계속 열심히 달려온 그들. 맛슈. 부디 그대로 계속 빛을 받으렴. 나는 소망했다. 그 푹신푹신한 모피가 달린 화려한 흰색 의상을 계속 입고 있으라고, 빛이 비치는 길을 걸어가라고. 그럼 널 길잡이 삼아 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pp. 206~207)


만약 핫치가 정말로 자신의 아들이라면, 하고 가끔, 아니 매일 몽상한다. 전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 계산대 업무를 볼 때.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 담배 냄새가 밴 빨래를 갤 때. 화장실 벽에 묻은 오줌 얼룩을 닦을 때. 욕실 배수구에 낀 털 뭉치를 끄집어낼 때. 자신의 몸에 들러붙은 진흙덩어리 같은 현실 속에서 만약 핫치가 아들이 되어 한 집에 산다면. 핫치가 아들이 된 것만으로도 일상의 풍경이 곱게 채색된다.

인생이 좀 더 반짝반짝 빛난다. 편차치 38의 ○○공업고등학교에 가든, 좀도둑질을 하든, 말과 행동이 난폭하든, 마시코는 분노고 뭐고 느끼지 않으리라. 오히려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p. 230)



이 소설은 서두에 밝힌 대로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다. 각 단편의 소설들이 서로 연관되어 하나의 주제로 집중되는 형식이다. 각 단편들은 주인공과 화자가 다르지만 게재된 모든 소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인물로 연관될 수 있고, 주제로도 연관지을 수 있다.

옴니버스 소설의 장점은 서로 다른 환경의 주인공들로 다른 소설 같지만 하나의 주제나 인물들간의 연결로 독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물한다. 그러나 자칫 이야기가 방만하게 구성돼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고, 억지로 묶으려다간 독자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우연을 남발할 수 있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작가의 소설 구성력에 의해 성패가 좌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소설 『혼외 연애와 비슷한 것』은 이 단점들을 모두 해소하고 흥미를 돋우는 데 성공한, 작가의 전개와 구성력이 돋보인다. 다소 이질적이지만 독자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한 작가의 능력을 볼 수 있어 의미 있는 독서가 되었다.


저자 : 미야기 아야코(MIYGAI AYAKO, 宮木あや子)


1976년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때부터 소설가를 꿈꿨다. IT 회사에 근무하며 시간을 쪼개 글을 쓰던 그녀는2006년, 에도 시대 유녀(遊女)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성애 소설 『화소도중』으로 여성 작가만 응모할 수 있는 제5회 R-18 문학상의 대상과 독자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데뷔했다. 이후 『군청(群靑)』, 『비의 탑(雨の塔)』, 『태양의 정원(太陽の庭)』, 『제국의 여자(帝國の女)』, 『교열걸』 시리즈 등을 연달아 출간하며 일본에서 여성 독자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역자 : 김은모


일본 문학 번역가. 경북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이언스』를 비롯해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와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 이사카 코타로의 『후가는 유가』, 우사미 마코토의 『소녀들은 밤을 걷는다』, 마리 유키코의 『이사』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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