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트로트 특서 청소년문학 16
박재희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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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연말 세계 톱 10 뉴스는 단연 코로나 팬데믹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시민들을 공포와 불안에 몰아넣고 세계 각국의 문을 틀어막아 삶의 활동이 모두 정지된 채 연말을 보내야 하는 상황으로 일년 내내 단 하루도 코로나로 인한 뉴스가 안 나온 날이 없었으니까. 항상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던 미국 대통령 선거도 코로나 팬데믹이 가장 큰 이슈로 등장했고, 우리 역시 코로나 속에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우리는 코로나 방역을 그나마 잘 해내고 있는 모범 방역국가라는 칭호를 얻고 선전하고 있어 다행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가요계는 새로운 열풍에 휩싸였다. 트로트 열풍이다. 폭발적인 인기와 젊은 트로트 가수들의 등장으로 기성세대들이나 노래방 등에서 부를 정도로 퇴조되었던 트로트 가요가 이젠 모든 방송사에서 주요 프로그램으로 등장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담고 있다는 트로트가 다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코로나 때문이라는 가요계 일각의 평가도 나오고 있다. 과거 어렵고 힘든 산업화 시대에도 트로트는 단연 국내 가요계를 휩쓸었었다. 노래가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 주었고, 트로트가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정서에 맞고 부르기 쉬워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슴에 깊게 스며든 것이다. 때문에 올해의 트로트 광풍도 코로나로 인한 공포, 불안, 우울 등의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기에 적합했을 거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트로트는 한국인의 정서에 잘 맞는다는 평가는 우리의 판소리나 국악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설득력이 높다. 실제로 창법이나 가사 내용 등이 비슷하기도 하거니와 멜로디나 다루는 음이 국악의 음계(5음계)에 많이 근접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트로트 열풍 속에 이 책 『어쩌다, 트로트』가 출간돼 화제다. 이 책은 『춤추는 가얏고』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박재희가 이번에는 ‘트로트’라는 뜨거운 소재를 가지고 청소년소설로 독자들을 찾아와 트로트와 국악의 불가분의 관계를 해석해준다. 이 소설은 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산조 이수자인 작가의 경험담이 판소리와 트로트의 접목이라는 한편의 트렌디한 소설로 태어난 것이다. 『어쩌다, 트로트』에는 증조할아버지로부터 삼대가 이어온 판소리와 주인공 지수가 택한 트로트, 전통과 현재가 어우러져 있다.




『어쩌다, 트로트』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자살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 원망을 조명한 데 있다. 지수는 갓난아기였던 시절부터 홀로 자신을 키우기 위해 고생해온 엄마를 보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차곡차곡 쌓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노래하며 끝내 그를 용서하게 된다.

지수에게는 아픔을 견뎌낼 꿈이 있고, ‘가족’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할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박재희 작가는 기댈 곳을 찾지 못해 흔들리고 있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언젠가는 상처에도 피가 멎으리라는 사실을 꼭 알아주길, 간절한 소망의 언어로 담아냈다. 아무리 애써도 마음의 상처를 없애지 못할 것 같다고 느끼는 아이들에게는 이 책에 등장하는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라는 단어가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뜻의 ‘일체유심조’를 곱씹으며 지수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상처도 마음먹기에 따라 이겨낼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슴속에 있는 슬픔을 노래로 승화시키는 그 ‘깊은 맛’에 전 국민이 동화되어 트로트에 맞춰 춤을 추고, 눈물을 흘리고, 다시 웃음 짓는다. 트로트는 한국인들 특유의 ‘한’을 ‘흥’으로 승화하여 표현해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트로트』는 트로트의 ‘깊은 맛’을 쏙 빼닮았다. 삼대째 이어진 판소리 명창 가문에서 태어나, 가족을 등지고 떠난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가슴에 꽁꽁 묻어 두었던 아이가 슬픔을 직면하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은 슬픔도 흥겨운 노래로 승화시키는 트로트의 ‘깊은 맛’을 닮아 있다.

"난 트로트 부를 때 기분이 좋아. 경쾌한 노래, 슬픈 노래 다 좋아. 좀 우울할 때, 기분이 엿 같을 때 혼자 코인 노래방 가서 목이 찢어져라 트로트를 불러. 트로트는 혼자 불러도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부르는 느낌이 들거든. 노래 부를 때만큼은 나는 왕따가 아니야."(pp. 63~64)




아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은 돈도, 명예도, 그 무엇도 아닌 바로 ‘꿈’이다. 아이들이 저마다 마음에 품고 있는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도 ‘꿈’이다.

『어쩌다, 트로트』의 지수에게도 꿈이 있다. 지수는 황제에게 벼슬을 받은 국창 증조할아버지부터 하늘이 낸 소리꾼으로 불린 할아버지, 전설적 명창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판소리 성골’이지만, ‘명창의 아들’이라는 타고난 운명 대신 트로트를 자신의 길로 삼고 개척하며 나아간다. 전설적인 명창의 아들이 술집 뽕짝을 부르냐는 쓴소리를 들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꿈을 향해 가는 지수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아이들의 가슴에도 꿈이라는 목표가 조금씩 움틀 것이다.

『어쩌다, 트로트』는 삼대째 이어진 판소리라는 운명 대신 트로트라는 새로운 꿈을 개척하는 한 아이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고독한 예술을 하다가 가족을 떠난 아버지 이야기, 홀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에 대한 연민, 증조할아버지대로부터 이어져왔지만 대중으로부터 소외받게 된 전통문화의 오늘까지 박재희 작가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깃거리들이 독특하고 조화롭게 담겨 있다.


"한 사람은 죽고 두 사람은 살아 있으나,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뜻일까. 아빠는 살인마다. 박은희, 이금산, 조은필, 운경, 그리고 하지수의 삶을 매장한 살인마다. 그러면 아빠를 죽인 사람은 없을까? 사람들이 판소리를 싫어하는 게 아빠를 자살로 몬 이유가 될까. 어렵다."(p. 150)



“사실 그동안 저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어려서는 뭘 모르고 트로트를 불렀지만, 중학생이 되고 다양한 음악을 만난 후로는 제가 왜 어른들이 좋아하는 트로트를 부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어린애가 무슨 트로트냐, 동요나 불러라, 건방지다, 안 어울린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이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고민했습니다. 왜 트로트지? 트로트를 꼭 불러야 하나? 고민했습니다만, 이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트로트를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특히 현인 선생님의 굵고도 맑은 목소리, 점잖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좋아합니다.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트로트는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또 트로트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p. 163)


얼씨구, 잘한다, 조오치! 여느 때 같으면 후끈 달아올랐을 소리판이다. 그러나 너무 고요하고 너무 적막하다. 그리운 마음. 하동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추임새를 못 넣게 하나 보다. 소리판 돗자리를 둘러싼 50여 명의 손님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눈물 그렁하면 순식간에 소리판을 눈물판으로 만들 것이다. 다행히 미색 원피스 차림의 지수 어머니는 편안해 보인다.(p. 178~179)


저자 : 박재희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중앙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산조 이수자이며, 1989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춤추는 가얏고』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청소년 장편소설 『징을 두드리는 동안』, 중단편 소설집 『양구』, 장편동화 『대나무와 오동나무』, 어린이 정보책 『우리 악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흥과 멋이 묻어나는 전통음악』, 『단소 교실』, 『가야금 교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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