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 연애와 비슷한 것
미야기 아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혼외연애(婚外戀愛)'는 일본어 사전에 나오지 않은 단어다. 다만 신조어로 일본 인터넷사전에 등재된 것으로 안다. 뜻은 결혼한 배우자 외의 상대와 연애하는 것으로 우리가 말하는 '불륜'은 아니고 '아줌마부대'가 연예인을 좋아하는 광팬 정도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정확한 의미는 아니다.

들은 얘기와 이 책을 읽은 후 느낌으로 그런 뜻으로 쓰이는 일본의 신조어라고 정리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도 '비슷한 것'이라고 덧붙인 제목을 보면 혼동을 주려는 의도적인 이유가 아닌가싶다. 일본 문화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지만 신조어를 잘 만들어내는 일본인들의 언어 유희쯤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즉, 제목에 큰 뜻을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나라도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주도 계층은 연령층으로는 대략 10대, 네티즌에 의해서다. 주로 축약을 위해 만들어내는 신조어는 신속을 생명으로 하는 정보화에 따른 것이고 의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해 자신만의 '은어'로 사용하지 않아서이다. 오랜기간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이 사용한다면 표준말로 굳어질 수 있지만 아직은 판단할 단계가 아니다. 신조어의 생명이 수 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혼외연애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우리말 신조어로 바꾸면 '연예인 광팬' '덕후' 정도로 표현하면 될 듯하다. 일본 dTV 방송에서 드라마로 방영됐다는 얘기도 들어보면 '불륜'이 주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트로트가 요즘 굉장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성세대에서 20~30대는 물론 10대까지 전 연령대의 사랑을 받고 있는 트로트 가수들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이 가운데 광팬도 있고 덕후도 있을 터 그들을 혼외연애자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와 약간 다른 정서인가, 아니면 '비슷한 것'이란 말을 붙여 시선을 끌기 위한 장치인지 판단은 유보한다.

이 책 『혼외 연애와 비슷한 것』은 다섯 명의 30대 중반 여성들이 등장한다. 옴니버스 소설로 다섯 명의 여자들은 단편소설 분량에 각 1편씩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일본 아이돌 덕질에 흠뻑 빠진 다섯 명의 여자다. 남편과의 애정이 전혀 없는 여자, 남편과 아들의 오랜 무시와 모욕에 지친 여자, 결혼 따윈 관심 없는 화려한 싱글녀, 평생 평범하고 수수한 아줌마로 살고 싶진 않은 여자, 스스로를 세계 최고의 ‘얼꽝뚱보’라고 여기는 여자까지. 외모도, 살아온 환경도 전혀 다른 그녀들의 공통점은 ‘서른다섯 살’이라는 것. 그리고 남성 아이돌 유닛 ‘스노우화이트’의 덕후라는 것이다.

스노우화이트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미칠 정도로 한결같다. 비록 그들이 손이 닿을 수 없는 별이라도, 현실은 여전히 비참해도 스노우화이트만 있으면 인생은 아름답다고 그녀들은 외친다.





세번째로 넓은 평수의 맨션에 사는 사쿠라이, 약혼반지를 받았을 때도 1캐럿 다이어몬드를 원했지만 남편은 예산 부족이라며 0.7캐럿을 선물한다. 미묘하게 작은 집, 미묘하게 작은 다이아몬드, 미묘하게 머리가 벗겨진 남편. 사쿠라이는 늘 학력, 미모, 행복에서도 3등의 인생을 살아왔다. 어릴적 예쁘단 말을 많이 들었고 방송 CF에도 두번이나 출연했지만 외모에서도 3등이었다.

그래서 공부로 눈을 돌려 1등이 되고 싶었지만 역시 3등으로 화려한 업계의 중심에는 서지 못한 채 늘 뭔가 결핍된 '3등여자'가 되었다.

직장에서 만난 9살 연상의 남편과 결혼했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남편과의 사이도 시들하다. 남편이 바람 피우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을 전업주부로 살게 해주고 매달 150만엔(한국돈 1600만원 정도)을 벌어오기 때문에 크게 불만은 없다.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은 스노우화이트의 미라잉이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불륜녀가 맨션에 살긴 원한다고 집을 비워주길 요청한다.




지바에서 나고 자랐지만 언젠간 도쿄에 살고 싶다는 꿈을 꾸지만 지바 남자가 19살에 마시코를 임신시켰고 그렇게 결혼해서 지바에서 아들 하나를 낳고 살아간다. 20살에 엄마가 되어 아들은 중학생 사춘기이며 마시코를 거지 같은 아줌마라고 부르는 불효자식('양아치')이다.

남편은 두 번이나 다단계에 넘어가 빚을 졌고 지금은 갱생하여 노래방과 야간공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며 마시코 또한 도쿄의 슈퍼마켓에서 캐셔 일을 하고 있다. 삶은 팍팍한데 그녀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스노우 화이트의 핫치이다. 그녀가 일하던 슈퍼마켓에서 손님과 종업원으로 만났지만 콘서트 티켓을 매개체로 사쿠라이와 친해진다. 어느날 아들이 도둑질을 하다가 잡혔다는 전화를 받는다.




부유한 아버지와 능력도 외모도 모두 1등인 여자 스미타니. 아버지의 부를 거부하고 스스로 회사를 운영하여 부도 성공도 모두 거머쥔다.

뛰어난 외모에도 결혼을 하지 않는 그녀는 11살때 우연히 마주친 스노우 화이트의 지카를 마음속으로 품고 살고 있다. 콘서트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전 직장동료인 사쿠라이. 사쿠라이가 직장에 다녔을 때 늘 외모, 능력에서 1등을 했던 여자가 바로 스미타니였다.

그렇게 스미타니는 사쿠라이, 마시코를 알게 된다. 해외 투어 콘서트를 다녀왔더니 계약을 해지하자는 메일들이 10통이나 와 있고 진상을 알아보던 중 업계에 스미타니가 일을 내평겨치고 어린 남자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쇼타콤이라는 괴문서가 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쇼타콤 : '쇼타로 콤플렉스'의 준말. 어린 남자아이를 성적으로 선호하는 것을 가리킨다.(독자 주)



외모도, 공부도 뭐든지 평범했던 여자 야마다. 25살에 운좋게 와세다 대학 출신의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다. 자신과 비슷한 평범한 딸을 낳고 살고 있던 중 남편은 전업작가가 되고 3권의 책은 베스트셀러에 올라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가지게 된다.

어린시절 좋아했던 그룹의 백댄서인 스노우 화이트의 질베르를 보고 혼자만의 사랑에 빠진다. 질베르의 사진을 사면서 알게 된 사쿠라이와 친해지며 스미타니도 소개받는다. 그러던 중 그녀의 소중한 딸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뚱보에 '얼꽝', 머리도 나쁘면서 가난하기까지 한 카타오카가 다섯 번째 주인공이다. 도쿄에 사는 꿈을 꾸고 도쿄에 왔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30살에 만난 남편과 결혼도 했지만 남편은 백수에 히키코모리처럼 하루종일 집에만 있고 부양을 카타오카가 한다. 그녀의 유일한 재주는 BL소설을 쓰는 것이었지만 그 일에서도 잘리고 지금은 빵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스노우화이트의 맛슈와 열열한 팬인 그녀는 스노우화이트를 소재한 BL소설을 인터넷상에 올리다 야마다와 친해지며 나머지 여자들을 소개받게 된다. 그녀에게 새로운 BL소설을 쓸 소재와 기회가 찾아온다.



“이번 콘서트에 성공하고,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성공시켜 나가면 저희의, 그리고 팬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질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부디 응원 부탁드릴게요! 꼭 와주세요!” “갈게!!” 하고 외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들의, 그리고 팬인 우리들의 꿈. 그건 아마도, 아니 분명 메이저 데뷔가 될 것이다. 거의 동기인 INAZUMA가 3년 전에 데뷔했다. 그 뒤편에서 계속 열심히 달려온 그들. 맛슈. 부디 그대로 계속 빛을 받으렴. 나는 소망했다. 그 푹신푹신한 모피가 달린 화려한 흰색 의상을 계속 입고 있으라고, 빛이 비치는 길을 걸어가라고. 그럼 널 길잡이 삼아 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pp. 206~207)


만약 핫치가 정말로 자신의 아들이라면, 하고 가끔, 아니 매일 몽상한다. 전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 계산대 업무를 볼 때.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 담배 냄새가 밴 빨래를 갤 때. 화장실 벽에 묻은 오줌 얼룩을 닦을 때. 욕실 배수구에 낀 털 뭉치를 끄집어낼 때. 자신의 몸에 들러붙은 진흙덩어리 같은 현실 속에서 만약 핫치가 아들이 되어 한 집에 산다면. 핫치가 아들이 된 것만으로도 일상의 풍경이 곱게 채색된다.

인생이 좀 더 반짝반짝 빛난다. 편차치 38의 ○○공업고등학교에 가든, 좀도둑질을 하든, 말과 행동이 난폭하든, 마시코는 분노고 뭐고 느끼지 않으리라. 오히려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p. 230)



이 소설은 서두에 밝힌 대로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다. 각 단편의 소설들이 서로 연관되어 하나의 주제로 집중되는 형식이다. 각 단편들은 주인공과 화자가 다르지만 게재된 모든 소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인물로 연관될 수 있고, 주제로도 연관지을 수 있다.

옴니버스 소설의 장점은 서로 다른 환경의 주인공들로 다른 소설 같지만 하나의 주제나 인물들간의 연결로 독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물한다. 그러나 자칫 이야기가 방만하게 구성돼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고, 억지로 묶으려다간 독자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우연을 남발할 수 있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작가의 소설 구성력에 의해 성패가 좌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소설 『혼외 연애와 비슷한 것』은 이 단점들을 모두 해소하고 흥미를 돋우는 데 성공한, 작가의 전개와 구성력이 돋보인다. 다소 이질적이지만 독자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한 작가의 능력을 볼 수 있어 의미 있는 독서가 되었다.


저자 : 미야기 아야코(MIYGAI AYAKO, 宮木あや子)


1976년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때부터 소설가를 꿈꿨다. IT 회사에 근무하며 시간을 쪼개 글을 쓰던 그녀는2006년, 에도 시대 유녀(遊女)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성애 소설 『화소도중』으로 여성 작가만 응모할 수 있는 제5회 R-18 문학상의 대상과 독자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데뷔했다. 이후 『군청(群靑)』, 『비의 탑(雨の塔)』, 『태양의 정원(太陽の庭)』, 『제국의 여자(帝國の女)』, 『교열걸』 시리즈 등을 연달아 출간하며 일본에서 여성 독자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역자 : 김은모


일본 문학 번역가. 경북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이언스』를 비롯해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와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 이사카 코타로의 『후가는 유가』, 우사미 마코토의 『소녀들은 밤을 걷는다』, 마리 유키코의 『이사』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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