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남기는 글쓰기 - 쐐기문자에서 컴퓨터 코드까지, 글쓰기의 진화
매슈 배틀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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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것은 '문자'의 발명이라고 한다. 인류 문명 발달의 원점을 문자 발명에 두는 이유일 것이다. 문자 발명 이후 인류 문명은 놀라운 속도로 상상하기 어려운 발전을 거듭해왔다. 문자는 인간의 의사 전달 수단의 하나로 발명한 것이다. 말과 손, 발, 몸짓은 의사 전달에 한계가 있어서다. 가장 큰 제약은 먼 거리에 의사 전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시간상 같은 시간이 아니면 의사 전달은 불가능하다. 즉 말과 몸짓은 기록성이 없어 시공을 넘어서는 의사 전달이 안 되기 때문에 인류는 필요성에 의해 문자를 발명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숫자의 전달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이고, 차츰 감정 표현 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간 것으로 인류문화사는 판단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다른 말과 몸짓을 사용하는 것도 문자 발명으로 의사 전달이 가능한 데다 집단간 약속 등의 이행에도 문자 기록이 유효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수천 년간 인류는 문자의 발명에 의한 발전을 눈부시게 해온 것이다. 문자가 어떻게 달나라 가는 데 필요했나를 따져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한 것들이 문자에 의해 보관되고 축적되면서 과학도 눈부시게 발전한 것을 미루어보면 문자 이전과 문자 이후로 인류사나 인류문명사를 따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흔히 쓰는 '유사 이래'란 말도 문명의 시대와 비문명의 시대를 구분하는 데 적절하다.

그래서 한자어 문명(文明)도 '문'자가 들어가는 것이리라. 역사에서도 정확성이 있어야 역사 흐름을 알 수 있고 구분할 수 있는는데 문자로 된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천년간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문자(글자)'가, '글쓰기'가 사라질 위험을 이 책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에서 주장하고 있다.



4차산업 시대에 접어들기도 전에 발명된 디지털 문화에서 글은 지배적인 정보전달 매체라는 지위에서 급격히 밀려나고 있는 듯 보인다. 10대는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뒤적이는 대신 유튜브 검색창에 타이핑한다. 많은 이들이 일찍부터 스마트폰에 노출된 아이들의 문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며 우려한다. 책과 독서가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지, 또는 꼭 존재해야 하는지를 두고 끊임없이 논의가 오가고 있다.

이처럼 글이 위기에 처했다면, 글쓰기라는 인간의 행위는 어떻게 될까? 디지털 시대에 글쓰기는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우리에게 앞으로도 글쓰기가 필요할까?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의 저자 매슈 배틀스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글쓰기가 지나온 오래된 진화의 여정 속으로 뛰어든다. 글쓰기는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작용을 해왔으며 인류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막연한 질문에 답할 단초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배틀스는 글쓰기의 진화를 들여다보기 위해 ‘팰림프세스트’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팰림프세스트는 고대에 양피지를 재활용하기 위해 원본 글이 삭제되거나 일부 지워진 자리 위에 새로운 글을 적은 표면을 일컫는다. 우리의 글쓰기는 이 팰림프세스트처럼 언제나 이전의 흔적을 남기면서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류의 법, 종교, 역사에도 글쓰기의 흔적들이 새겨졌다. 배틀스는 한자가 서양 시학에 미친 영향, 필사 행위가 만들어낸 공동체 의식, 인쇄술의 발전이 독서하는 뇌에 가져온 변화 등의 다양한 사례를 가로지르며 글쓰기가 이후의 글쓰기에, 또 인간 지성과 문명에 남겨온 흔적들을 살펴본다.



배틀스는 글쓰기의 진화를 들여다보기 위해 ‘팰림프세스트’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팰림프세스트는 고대에 양피지를 재활용하기 위해 원본 글이 삭제되거나 일부 지워진 자리 위에 새로운 글을 적은 표면을 일컫는다. 우리의 글쓰기는 이 팰림프세스트처럼 언제나 이전의 흔적을 남기면서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류의 법, 종교, 역사에도 글쓰기의 흔적들이 새겨졌다. 배틀스는 한자가 서양 시학에 미친 영향, 필사 행위가 만들어낸 공동체 의식, 인쇄술의 발전이 독서하는 뇌에 가져온 변화 등의 다양한 사례를 가로지르며 글쓰기가 이후의 글쓰기에, 또 인간 지성과 문명에 남겨온 흔적들을 살펴본다.

컴퓨터 모니터로 나타난 문자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판을 쳐본 사람들이다. 타이핑 기계에서다. 익숙한 타이핑 기계를 바탕으로 컴퓨터 학자들은 타이핑하면 그 신호를 컴퓨터 디지털 문자로 바꾸었다 모니터에는 다시 복원시키는 방법으로 문자가 되어 나타난다. 이 때 쓰이는 컴퓨터 디지털 문자는 코드로 표현되며 0과 1로 이루어진 2진법에 의해 암호화된 코드다. 조금 발전되어 모니터 위의 글자들은 페이지 위의 글자들이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힘과 기능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빛의 속도로 빠른 전기는 문자뿐만 아니라 숫자, 어려운 기호 등도 모두 2진법을 이용해 간단하게 코드화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하는 글쓰기에서-적어도 내가 매일 하는 글쓰기에서-글쓰기의 양식과 재료는 서로 겹쳐지고 뒤섞인 채로 중첩되어 있다. 내 손가락에는 아직도 연필을 너무 세게 쥐어서 생긴 굳은살이 솟아나 있고, 맥북 에어의 자판을 부드럽게 두드릴 때도 무의식중에 타자기의 탁탁거리는 노랫소리가 떠오른다. 감각과 방식의 질감은 마치 팰림프세스트(palimpsest)처럼 한꺼번에 다가온다. 팰림프세스트란 고대에 이루어진 양피지의 재활용으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원본 글이 삭제되거나 일부 지워진 자리 위에 새로운 글을 적어 넣은 표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의 경제를 향한 실용적인 찬사가 ‘팰림프세스트’가 가지는 의미의 전부는 아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확장된 용례’에 따르면 팰림프세스트는 “특히 예전 형태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한 채로 재사용되거나 변경되었다는 의미에서 이런 표면과 엇비슷한 것”을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양한 시공간에서 글쓰기 기술을 새로운 형태적 발전 없이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보수적인 문화는 말하자면 펜을 가까이 두고 문자를 예술, 종교, 일상생활에 대한 제한적인 침투로만 허용했다. 그러나 글쓰기는 문화 갈등이 일어나거나 종교가 만개하는 시기 또는 경제적 변화가 생산적으로 요동치는 가운데 개방된 경계, 즉 점이지대를 찾아 새로운 형태와 종을 헤치며 활로를 찾는다. 그리고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면 오래된 형태는 변형되고 적응해 새로운 틈새를 메운다. 영어의 필사본(manuscript)이라는 단어는 인쇄술의 영향력이 대중의 삶 속에 속속들이 배어든 뒤에야 생겨났다.(p. 33)



책에 따르면 우리가 현대 컴퓨터 기술의 편재성을 글쓰기에 대한 방해나 반란이 아닌 갱신이자 부활로 보고, 무엇보다도 글이 무엇이며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논의의 새로운 버전으로 볼 때 정보 기술에 대한 신선하고 새로운 이해가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어쩌면 페이스북이 핵심을 찌른 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자아를 글로 쓰는 것에 대해선 책보다 담벼락이 더 적합한 은유일 테니까.

전자 텍스트를 책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맞추는 대신 우리는 벽과 로켓과 인방을 찾는다. 디지털 세계에서 이는 블로그와 피드(feed), 모바일 디바이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터치스크린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이 쓰이는 표면은 변화했지만 결국 우리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성격을 정하는 것은 우리 독자, 사상가, 작가 모두가 맺는 인간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학교의 위계가 있고 서예가와 학생 사이에 지도 관계가 있고 작가와 발행인 사이에 간결한 계약이 있었듯, 이제 이 관계들은 코드가 되고 소프트웨어가 된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과 페이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글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우리가 맺는 관계다.



문자의 역사에 대해 쓴 글 같지만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는 단순히 글쓰기의 역사만을 시간 순으로 서술한 책이 아니다. 『서재 결혼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은 이 책을 두고 “백과사전식 연대기가 아닌, 수 세기를 우아하게 가로지르며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는 자리마다 머무는 에세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 책은 글쓰기가 지나온 수천 년의 생애로부터 길어낸,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문제의식과 공명하는 수많은 흥미로운 사례들로 가득하다.

저자 배틀스는 통시적 접근을 하는 대신 다양한 측면에서 글쓰기의 본질과 역할을 조명한다. 먼저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문자의 탄생이다.

문자의 발전에 대한 재치 있는 접근, 신화 속에서 문자의 탄생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고대 인류의 놀이와 문자의 상관관계 등을 넘나들면서 “변하는 것, 스스로를 부수고 다시 만드는 것”이 왜 글쓰기의 타고난 속성인지 밝힌다. 다음으로 다루는 것은 사물과 글쓰기가 갖는 관계다. 이를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문자는 한자다. 한자가 지닌 그림문자이자 표의문자로서의 속성을 뜯어보고, 또 19세기 한자를 접한 서구 사상가들이 한자에 대해 어떤 환상과 이념을 투여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인간의 인지, 추상 능력과 글쓰기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저자가 이 책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이 글쓰기의 ‘교권’이다. 원래는 신학적 주제에 있어 교회의 가르침이 가지는 권위를 일컫는 이 단어를 배틀스는 “인간의 경험에 글쓰기가 미치는 영향”이라고 정의한다. 배틀스는 이를 글쓰기가 권력의 통로로 기능해온 사례들, 예를 들어 제국의 통치에서 글쓰기의 쓰임과 관련 지어 살펴본다. 한편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적 혁신을 통해서 글쓰기가 오직 권력의 도구이기만 하지는 않았고, 쓰기를 통한 해방(젠더화된 교권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도 밝힌다. 이야기는 글쓰기의 교권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헌인 성서로 이어진다. 원본이 불확실하고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번 베껴 쓰이면서 모습을 갖춰온 성서, 그리고 필사라는 문화를 통해 배틀스는 베껴 쓰는 행위의 의미를 조명한다. 베끼고 주석을 달고 논평하면서 생각을 공유하는 사회적 연결망이 탄생할 수 있었음을 밝힌다.

이와 함께 저자의 관심이 닿는 곳은 기술 발전과 글쓰기의 관계다. 배틀스는 인쇄술의 탄생으로부터 모스 부호를 지나, 니컬러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매리언 울프와 같은 연구자들이 우려한, 디지털화가 읽기에 미친 영향까지 아우른다. 기술과 매체의 개입으로 글쓰기가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살핌으로써 읽기와 쓰기의 영역이 디지털화로 인해 축소되지 않았음을, 오히려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야기는 보이저호에 담긴 골든 레코드, 그리고 1만 년 이상 먼 미래에 핵폐기물 저장소를 발견할 이에게 보낼 경고 메시지다. 배틀스는 두 사례를 통해서 '인류 문명(즉 글쓰기)이 지구에 저지른 일들을 과연 글쓰기가 다시 바로잡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배틀스는 이처럼 여러 대륙과 수 세기에 걸친 무수한 이야기들을 길어내고 또 그것들을 유연하게 연결 짓는 흥미진진한 지적 모험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그럼으로써 글쓰기가 지닌 다층적인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음미하도록 해준다. 글쓰기와 글 읽기를 아끼고 사랑해온 이라면 누구라도 즐겁게 동행할 수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쐐기문자에 그 독특한 양식을 부여한 진흙과 점토라는 재료들은 쐐기문자의 쇠퇴 이후로는 글 쓰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낯선 것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메소포타미아의 필경사들이 가졌을, 우리에겐 낯선 감각중추를 분명히 아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공기 중에 진하게 풍기는 흙냄새, 손가락이며 옷에 묻어 마르고 갈라져가는 액화된 점토인 흙물, 필사를 하는 사이사이에 완성되지 않은 글을 싸두던 축축한 리넨의 거칠고 달라붙는 감촉.

점토라는 매체가 낯선 후대인들에게는 쐐기문자가 막다른 길에 도착한 매체라든지 더 발전된 알파벳을 향한 원시적인 디딤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히 형성된, 유서 깊으며 유연하고 세련되었으며, 영리하고 복잡하며 다양한 언어를(심지어 때로는 동시에) 표현할 수 있었던 문자 체계였다는 점이 잘 와닿지 않는다. 언어학자들은 수메르어를 고립어라고 부른다.(pp 83~86))



우리 모두가 아다시피 이 책은 독서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새로운 사실을 알고 체득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유용하다.지적인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은 이 책과 함께 글쓰기의 타임머신을 타고 인류사 곳곳을 체험할 수 있다. 매우 의미 있고 유용한 책읽가 될 것으로 믿는다.


저자 : 매슈 배틀스(MATTHEW BATTLES)


글쓰기와 도서관에 관해 쓰는 작가이자 예술가.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를 비롯한 여섯 권의 책을 썼다. 하버드대학교 버크먼인터넷과사회센터의 실험적 강의. 연구실인 메타랩을 이끌고 있다.


역자 : 송섬별


영문학을 공부했고, 더 잘 읽고 쓰기 위해 번역을 시작했다. 주로 여성, 성소수자, 노인과 청소년을 다루는 책에 관심을 가졌다. 앞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더 많이 소개하고 싶다. 옮긴 책으로는 『사라지지 않는 여름』, 『당신 엄마 맞아?』, 『애너벨』, 『너를 비밀로』,『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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