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유결점
서동주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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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완벽한 유결점』의 저자 서동주는 예전엔 '서세원의 딸'로 알려진 인물이다. 지금 그의 이름으로 검색해 보면 "대한민국의 전 코미디언, 배우, 영화 기획자, 목사, 방송인, 부동산 개발 업자" 등으로 나올 정도로 다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한 '만능 엔터테인먼트'이다. 얼마 전 작고한 전유성과 함께 서세원은 몸보다는 말로 웃음을 유발하던 사람이다. 전유성이 진지한 톤에서 황당한 발언으로 웃기는 스타일이었다면, 서세원은 한국인의 어법이나 억양을 교묘하게 비트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독특한 톤을 이용해 웃기는 희극인이었다. 저자 서동주를 이야기하면서 그의 아버지 고 서세원씨를 이야기하는 게 결례인 줄 알지만 서세원 씨가 워낙 거물 엔터테인먼트로 남긴 일이 많아 서두에 끄집어 낼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많은 독자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서동주는 그의 아버지 못지 않은 재능과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것 같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인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것인지는 독자로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저자 서동주는 불우(?)한 가정 환경에도 불구하고 MIT와 와튼스쿨, 캘리포니아 변호사라는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방송 출연과 작가 등 재능은 물론 폭발적인 에너지에도 놀랄 만하다. 이 책의 표제어가 시사하듯 그는 환경에서 다소 '결점'을 갖고 있다.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석연찮은 비참한 사망... 그에게 수많은 좌절과 불안, 흔들림이 있었을 거라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세상 일이 다 그렇듯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다시 나타난 저자의 모습은 눈을 다시 뜨고 바라보아야 할 정도로 굉장한 이력을 쌓았다.


저자 서동주의 화려한 이력은 그냥 재주만으로 쌓아 올린 게 아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웨즐리 대학 재학 시절 자매학교인 MIT에서 수학, 과학을 듣고 있었다. 공부만 한 덕에 늘 1등을 했다. MIT에 가을 학기에 편입 원서를 냈는데 떨어져서, 학교 규정상 봄 학기에는 아예 외국인 학생의 원서 자체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일단 원서를 내놓고 학교 입학 관리 본부에 찾아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원서 내는 것만 허락해달라고 빌었다. 

타학생인 서동주 자신이 MIT에서 학점을 잘 받았다고 편지 쓰고 여러번 편지 써서 역사상 처음으로 봄학기임에도 불구하고 편입을 허락했다. 편입이 결정된 날, 입학 관리 본부에서 직접 전화를 주었다는데, "대니엘, 너 정말 집요하다. 붙었으니까 이제 찾아오지도 말고 편지도 쓰지마!" 라고 했다. 대학 입학을 할 때도, 원하는 학교에 다 떨어져서 웨슬리 대학에 갔다가 나중에 MIT로 편입을 했다. MIT-웨즐리여대가 교차수강 되기에 이를 계획하고 입학하는 것은 미국 여대생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편입 전략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대학들은 편입 시험이 없고 정원도 많다. 그렇기에 미국은 재수보다 편입이 흔하다. 미국 대학에서 동양인들이 매우 열심히 공부해서 고학점을 가져가는 것은 매우 유명하다. 많은 유학생들도 이에 대해 말했다. 특히 이과 쪽은 백인들이 따라 갈 수가 없다. 미국에서는 동양인=수학을 잘 한다는 인식이 있다. 

미국인들은 자신이 엄청 뛰어나지 않은 이상 대부분 공부보다 인맥(네트워킹)을 쌓는데 집중한다. 연구는 안 할 것이니 공부보다 인맥이 있는 게 취업에 훨씬 수월하다. 해고 당해도 재취업할 때 굉장히 용이하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학점, 자기소개서에 "3000자 이상 쓰는 질문 5개 이상" 이런 기업은 거의 없고 자유양식이다. 이력서 사진부터도 인종차별이라 첨부를 못 한다.



저자는 전작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을 출간한 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분명히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믿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중간에 주저앉을 수가 없는 이유로 '끊임없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포기한다면 거기에서 영화가 끝나니까. 그런 그가 어렸을 때부터 써오던 일기를 19년 동안이나 쓰지 않았다고 한다. “아빠가 내 일기를 허락 없이 읽고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걸 증거로 나를 혼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뒀다”고 털어놓는다.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상처들을 감당하기 힘들어” 숨을 토해내듯 써내려갔다. 그 글들이 모여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이 됐다고 설명한다. 

오랜 시간 서동주는 ‘누구누구의 딸’로서 비쳤다. 『샌프란시스코 이방인』 안에서 그 수식어는 뒤로 물러나고 ‘서동주’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스며든다. 서동주가 지나온 시간, 지금의 서동주를 이루고 있는 것들, 그 수많은 조각들 중 하나다. 

“읽어보시면 저라는 사람하고 (독자들이) 겹치는 접점이 많아서 놀라실 것 같아요.” 서동주는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이방인』 속의 서동주는 외로웠고, 치열했고, 사랑하고 싶었고, 꿈을 찾고 싶었다. 도전했고, 실패했고, 다시 도전했다. 결코 낯설지 않은 이야기였다. “더럽고 어두운 비밀 하나쯤” 안고 살아가는 모습까지도. 왜 이토록 힘든 말들을 꺼내놓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는 ‘위안’을 말할 것이라고 인터뷰 내용에도 나와 있다.

전작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의 〈프롤로그〉를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인생관을 고백했다. "세상이 던져 대는 돌은 막을 수도 없고 상처 입기 마련이지만 그 상처가 나의 전부가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살아감에 있어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아파하며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꿈을 꿀 것인가. 나는 꿈을 꾸는 쪽을 선택했다. 인생은 마음대로 제어되지 않더라도 내가 꿈꾸며 살아가는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아프더라도 다시 꿈을 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길을 내가 같이 걸어가 주고 싶다."


『완벽한 유결점』을 펴낸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동주의 모습을 담았다. "흔히 우리는 흠 없는 완벽함을 꿈꾼다. 하지만 삶의 궤도는 애초에 매끄러운 원이 아니다. 수많은 미세한 흔들림과 균열 속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며, 그렇게 자기만의 궤도를 만들어 간다. 『완벽한 유결점』은 바로 그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서도 서동주는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꺼내 놓는다. 로펌에서 “넌 게으른 거니, 아니면 멍청한 거니?“라는 말을 듣던 순간의 치욕, 방송과 사회 속에서의 왜곡된 시선, 가족사에서 비롯된 깊은 상처,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느낀 두려움까지 일시에 몰려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자신의 인생 역정에는 수많은 질타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누군가의 완벽한 성공담이 아니라, ‘흔들리고 무너졌지만 다시 일어난’ 이야기다. 저자는 말한다. “걱정은 암세포 같다. 방치하면 온 뇌를 통째로 잠식한다.” 그렇기에 걱정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완벽해지려는 강박이 아니라, 일단 작게라도 움직이는 것이다. 시작이 두렵더라도, 실패가 따르더라도, 흔들리더라도 괜찮다. 그 결점이 오히려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완벽함은 언제나 흠집 없는 표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견디고 살아낸 흔적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더 단단하고 빛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는 설명과도 맞닿아 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새로운 요구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우리에게 가장 깊은 위안을 건넨다. 이 책은 자기 삶의 결핍과 상처를 인정하고, 불완전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법을 알려준다. 불완전한 삶 속에서도 빛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며,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무엇인지 깊이 사유하게 만든다.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조금 더 애를 쓰면 결과는 늘 성장이란 보상을 주기 마련이죠.”



삶은 늘 예상치 못한 변수와 균열로 가득하다. 하지만 균열은 무너짐이 아니라 빛이 스며드는 틈이 되기도 한다. 저자 서동주의 문장은 바로 그 틈을 증명한다. 고통을 숨김없이 기록하면서도, 그 속에서 작고 단단한 희망을 길어 올리는 글.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한 사람의 자전적 기록을 넘어, 흔들리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거울이 된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결점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완벽한 유결점』은 그 사실을 가장 우아하고 단단한 언어로 증명하는 책이다. 삶의 무게 앞에서 지치고 흔들린 이들에게, 이 책은 진지한 위로이자 실질적인 동행이 될 것이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더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이 전하는 가장 큰 선물이다.

방송인 이혜성은 〈추천사〉에서 저자 서동주의 '삶의 용기'를 전한다. "사람들은 흔히 흠결 없는 모습에서만 사랑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동주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작은 상처와 결핍이야말로 인간을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들며,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아름다움이 자라난다고 말이지요. 『완벽한 유결점』은 꾸밈없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리고 흔들림 속에서도 끝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힘을 전합니다. 방황은 실패가 아니라, 원하는 삶에 다가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임을 이 책은 차분히 일깨워 줍니다. 결점 때문에 때로는 멀리 돌아가더라도, 결국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더 단단하고 더 빛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고요하게 속삭여 줍니다."


삶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소소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기에 더 아름답고, 더 소중하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중요한 건 그걸 알아차리고, 마음껏 누리는 것. 오늘 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선택이다.(p.200~201) - 「행복은 작고, 그래서 진짜다」 중에서


앞으로의 삶에서도 완벽한 설계도는 없을 것이다. 예산을 넘기고, 시간은 어긋나고, 생각지도 못한 균열이 생기면서 지붕이 무너지는 큰 사건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는 확실하게 안다. 


무너진 벽도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것. 

어긋난 계획도 다시 그릴 수 있다는 것. 

작은 집도 마음만 있다면 

삶으로 부족함 없이 채울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내가 만든 이 집에서 

나를 조금씩 다듬어간다.(p.238)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서동주


미국 캘리포니아 변호사이자 방송인, 그리고 작가. 퍼킨스 코이(Perkins Coie)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해 현재는 딥테크 기업의 법률 이사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길은 언제나 직선이 아니라, 수많은 굴곡과 질문들로 이어져 있었다. 열세 살, 혼자서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부터 그는 늘 스스로 길을 개척해 왔다. 웰즐리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예술적 감각을 키웠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 수학을 탐구하며 사고의 깊이를 더했다. 와튼스쿨에서 마케팅 석사 학위를, 샌프란시스코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 과정을 마치며 학문의 지평을 넓혔고, 마침내 2019년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수십 번의 서류 탈락, 크고 작은 불합격은 그를 좌절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든 경험이 단단한 힘이 되어 지금의 서동주를 만든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도전을 즐기는 태도, 그것이 그의 이름을 가장 잘 설명하는 언어다. 삶은 늘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오가지만, 그는 그 길 위에서 웃고 울며, 다시 글로 기록해 왔다. 저서로는 《샌프란시스코 이방인》, 《내일의 나를 위한 다짐》, 《서동주의 합격 공부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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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의 초상
주요한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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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 200%의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1979년 10월 26일을 잊었을지 모른다. 혹시 기억한다 해도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듯하다. 얼마 되지 않은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통령 암살이기 때문이다. 때는 엄혹한 '유신 정권'이라 불리던 대통령 박정희 18년 독재가 막을 내린 날이기도 하다. 이 소설 작품 『10·26의 초상』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자 타임슬립으로 가능한 SF 소설이다. 그리고 누구도 기록하지 않은 역사 속 퍼즐을 맞춰 가는 장편 소설이다. 시대를 초월해 이 사건은 묘하게도 일년 365일 중 10월 26일에 일어난 우리나라 우리 민족에게 있어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1597년 명량해전에서 나라를 지킨 이순신, 1909년 하얼빈역에서 제국의 심장을 겨눈 안중근, 1979년 궁정동 안가에서 대통령을 향한 총성이 울린 그날. 모두 10월 26일에 벌이진, 대한민국 역사 속 사건들이다. 

그날을 향해 저자 주요한이 시간 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세 개의 시대가 조용히 맞물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10월 26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하는 것 같다.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10·26의 초상』은 한반도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단 하나의 날짜, 10월 26일을 중심축으로 한 시간 미스터리 서사다. 앞서 언급한 세 사건은 우리 역사 교과서에 기록된 ‘사실’이지만, 이 소설은 그 틈과 이면,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상상 가능한 가능성을 탐색한다. 주인공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흐르는 역사의 시간 속에 떨어진다. 그리고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도우려는 작은 선택들이 서서히 거대한 그림 속 조각처럼 맞춰지기 시작한다. 이 특파원들이 등장인물 '쉬리' '괴도 버드' '나리' 등이다.



표제어에 들어 있는 날짜 10월 26일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난 일로 각인되어 있다. 임진왜란·정유재란 시 이순신의 명량대첩의 순간도 당시 음력으로 날짜를 기록했기에 나중에 양력으로 변화시켜보니 10월 26일이었다고 저자는 책 속에서 등장 인물의 입을 빌려 밝힌다. 또 만주 하얼빈에서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식민지화한 일본 초대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살해한 날 역시 10월 26일이었다. 이때는 아마 일본군이 태양력을 쓰고 있어 양력 기준으로 신문이고 법원 날짜가 양력이었기에 그대로 쓰면 될 일이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저격 장면은 연극·영화를 통해 자주 봐온 일이기에 쉽게 머릿속에 저장하기 쉽다. 또 역사적, 지리적 배경도 이미 많은 '팩트 체크'가 이루어짐으로써 객관화되어 있다.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톡에서 1909년 10월 『대동공보』를 읽고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대장성 대신 코코프체프와 협상을 벌이기 위해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안중근은 동지 우덕순 및 통역 유동하와 10월 22일 하얼빈에 도착한 후 지형정찰을 하고 자신이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안중근은 코코프체프의 안내를 받으며 도열한 의장대를 사열하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발사하여 그의 가슴과 옆구리와 복부에 명중시켰다. 그리고 그는 큰 소리로 “코레아 우라(대한국 만세)”를 삼창했다. 안중근의거는 일제의 한국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린 쾌거였으며, 침체되어 있던 항일운동을 다시 활성화하는 기폭제였다.

이순신의 '명량대첩'은 정유재란 때인 1597년(선조 30) 9월 16일(음력) 이순신이 명량(울돌목: 전라남도 진도와 육지 사이의 해협)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해전을 말한다. 이 해전의 승리로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10배 이상의 적을 맞아 협수로의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그들의 서해 진출을 차단함으로써 정유재란의 대세를 조선군에게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게 하였다고 역사서는 기록하고 있다.



'10·26 사태'라고 불리우는 대통령 박정희 시해 사건은 1979년 10월 26일 밤 7시 40분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安家)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金載圭)가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를 살해한 사건을 가리킨다. '십이륙사건'·'십이륙정변'·'박정희대통령시해사건' 등으로 불린다. 이 사건으로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다.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는 18년간 권좌에 있으면서 1인 집권의 권위주의를 계속 강화해 나아갔다. 특히 헌정 질서를 파괴하면서 1972년 10월에 등장한 유신체제는 억압적인 비민주적 정치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1970년대 후반으로 넘어 오면서 그 동안의 정치·경제적 모순들이 폭발하기 시작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경제적으로는 중화학공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상황이 악화되어 있었다. 중화학공업화의 추진은 이 부문에로의 중복, 과잉 투자로 인한 효율성 상실과 소비재 품목 품귀라는 이중의 문제를 야기했다. 이는 곧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었는데, 1979년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한국경제의 고성장 전략 추진과정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18.3%에 달하였다. 고도성장으로 1인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보상받으려 했지만 독재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민심은 체제로부터 등을 돌렸다. 또한 수출주도형 공업화에 의한 고도성장 전략은 노동자와 농민의 상대적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었는데 경제 위기의 심화 과정에서 이들 계층의 소외감도 점차 심화됨으로써 그들의 생존권 요구도 거세어졌다.

대외적으로는 1977년에 출범한 미국의 카터(Carter, J.)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군철수라는 카드를 이용해 한국의 인권상황을 개선하려 하였으나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거부해 한·미간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또한 박정희는 자주국방을 달성하기 위하여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시도하면서 미국을 자극하였다. 이에 '박동선 사건'까지 겹쳐 한·미관계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야세력과 야당은 반 독재 민주화 운동과 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계속 전개해 나갔다. 1972년 유신체제 출범부터 긴급조치와 계엄, 재야인사의 구속 등이 계속되었으나 민주화의 방향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특히 1978년과 1979년은 정치·경제적 모순이 정치적 위기로 연결된 시기였다.



1978년 동일방직사건과 함평고구마수매사건 등의 생존권 투쟁은 민주화 운동의 수준을 급격히 고양시킨 사건이었다. 그 해 12월 12일의 제10대 국회의원총선거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32.8%의 득표율을 올려 여당인 공화당의 득표율 31.7%를 앞지르게 되었는데 이는 민심의 이반 현상이 표출된 사례인 것이다. 이에 집권여당은 위기감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극단적인 강경 대응 이외에 여타의 대응책을 찾지 못하였다.

1979년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오원춘 사건은 유신정권과 가톨릭 세력의 정면충돌을 야기시켰다. 1979년 8월의 YH사태는 이전의 노동소요가 절정에 이른 사건이었다. YH무역은 소규모 수출 업체로서 사장이 체불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미국으로 도피한 상태였다. YH노조의 여공들은 자신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당시 김영삼 총재하에서 유신정권에 대한 강경 투쟁을 전개하던 신민당사로 들어가 농성을 벌였다. 경찰은 8월 11일 여공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기 위해 당사내로 진입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여공 김경숙이 건물 옥상에서 투신해 사망하였다. 이에 대해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는 사인은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YH사태는 소규모의 비체제적인 노사갈등에 불과하였으나 정권에 대한 도전이 조직화되는 상황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야당을 비롯한 전 민주화운동세력과 유신정권 사이의 첨예한 대립을 야기시켰던 것이다. 김영삼은 유신철폐의 선명한 기치를 내걸어 중도통합론을 표방한 이철승을 1979년 5월의 전당대회에서 누르고 신민당의 새로운 대표로 등장하였었다.

김영삼은 박정희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였고, 외신기자클럽 회견에서 통일을 위해 김일성을 만날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정부는 이에 김영삼의 축출을 기도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신민당 대의원 2명이 전당대회 당시 투표권이 없음을 선언하였고, 김영삼의 정적인 이철승계의 인물들이 전당대회 결과의 무효를 제소해 법원은 김영삼의 총재직 박탈을 결정하였다.



국회는 더 나아가 김영삼의 9월 16일자 〈뉴욕타임스〉지 회견 내용이 국가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10월 4일 그의 국회의원직까지 박탈하였다. 결국 정부는 야당까지도 제도권 정치의 틀 밖으로 내모는 형국을 초래하였다. 그 동안 쌓였던 국민의 불만이 김영삼 출축을 계기로 폭발하였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창원 등지에서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것이 유신체제의 종말을 초래하였던 부마항쟁으로서 이 지역은 김영삼 총재의 근거지이기도 하였다. 10월 15일의 시위는 부산대학교의 학생시위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날의 시위는 주동자들이 연행됨으로써 확산되지 못하였으며, 본격적인 시위는 16일부터 이루어졌다. 16일 교내에서 집회를 가진 부산대 학생들이 시내로 진출하였고, 이에 동아대·고려신대, 고등학생, 전문대생 등의 학생에다가 일반시민까지 가세하였다.

3,000여 명의 시위대는 게릴라식으로 경찰과 충돌하였고 자정에 이르도록 격렬한 시위를 계속하였다. 17일에는 부산대에 휴교령이 내려졌으나, 날이 어두워지면서 시위는 더욱 확산되었다. 시민들의 호응 속에서 시위군중은 경찰서·파출소·세무서·동사무소·신문사·방송국 등에 투석하였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16일부터 17일 이틀 동안 경찰차량 6대가 전소되고 12대가 파손되었으며, 21개 파출소가 파손 또는 방화되었다. 18일 자정에는 부산시 일원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공수부대 등의 군병력이 투입되어 시위군중을 진압하였다. 18일에는 경남·마산 일원으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경남대에 무기휴교령이 내려진 가운데 오후 6시경부터 시작된 시위는 곧 2,000명의 시위군중을 이루어 공화당사를 공격하고 파출소·신문사·방송국·법원·검찰청·동사무소 등에 피해를 입혔다. 19일 밤에도 마산·창원 지역에 이러한 사태가 계속되자 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을 발동하였다.

박정희의 퇴진을 요구한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던 부마항쟁은 강경진압에 의해 일단 해결되었으나 그 대응 방식을 둘러싼 집권층 내부의 갈등을 야기시켜 10·26사태를 발생시켰다.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은 부마항쟁에 관한 강경진압을 주장하였으며,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이었고 양인은 서로 경쟁적인 입장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차지철의 입장을 수용해 강경진압을 채택하자 차지철의 견제로 진퇴위기에 몰린 김재규가 10월 26일 만찬 도중에 박정희와 차지철을 살해했다.



10·26 사태 직후 최규하 과도정부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으며 10월 말 군부 고위층은 유신헌법의 폐기를 결정하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유신체제가 무너졌으며, 전두환 정권이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미국은 10·26 사건을 사전에 알지 못하였다고 주장했다. 10·26 사태는 유신체제를 무너트린 획기적인 사건이었지만 김재규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민주화를 위한 의거’는 아니었다는 게 법적 결론이다. 이전부터 민주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것이 아니었던 김재규가 의거 운운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하여 서둘러 만들어 낸 사후 명분에 불과한 것이라는 게 당시 법조계의 판단이었다. 또한 김재규와 그 하수인들인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조직적으로 가담하기는 하였지만 치밀하게 계획된 것은 아니었으며 차지철과의 개인감정이 표출된 우발적인 범행으로 볼 수도 있다.

김재규는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사전 모의는 하지 않았으며 단지 ‘거사 후 연대’를 시도하기 위해 10·26 당일에 궁정동 안가의 별실에 초대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승화는 연대를 거부해 쿠데타로 진행되지는 못하였으며, 결국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가 집권하는 빌미를 만들어 주었다. 10·26사태로 민주화가 되기보다는 권위주의 통치가 연장되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시해는 박정희의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는 김재규의 명분론에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시해하였다는 것도 동양적인 유교 윤리에 벗어나는 것이었다.

후속 정권도 이러한 역사적 선례를 용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김재규 일당은 사형되고 10·26 사태에 대한 법적 심판은 일단락되었다. 법적 심판은 그렇다하더라도 역사적 평가는 다를 수 있다. 10·26 사태의 마무리 과정에서 12·12 사태가 일어나는 등 민주화가 지체되기도 하였지만 10·26 사태 자체는 민주화를 요구하였던 부마항쟁으로 촉발되었고 보다 장기적으로는 유신체제의 붕괴와 군부독재 종식의 한 계기가 되었다는 차원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주요한


주요한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조용히 사람과 시간을 응시하는 사람이다. 10년 넘게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생과 사의 최전선에 있었던 그는, 그곳에서 길어 올린 삶의 감각을 단단한 문장으로 옮긴다. 첫 소설집 《노량진 학원 살인사건》에서는 밀실과 진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 추리를, 《호랑이, 백두대간의 울음》에서는 인간과 동물, 문명과 자연의 경계를 탐색했다. 장편 《10.26의 초상》은 시간여행이라는 서사 장치를 통해 이순신과 안중근, 10.26 사태, 그리고 21세기 한국 사회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폭력과 기억, 선택의 문제를 다층적 구조로 직조하며, 개인과 역사,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는 늘 생각해 왔다. 왜 대한민국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는 탐정도, 괴도도 좀처럼 등장하지 않을까. 그래서 써보기로 했다. 한국의 역사 속을 걷는 인물들, 그들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추적하고 경계를 넘는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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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예수의 언어 - 영원불멸의 고전에서 길어올린 삶의 지혜와 진리의 가르침
김학철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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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초역 예수의 언어』는 예수의 가르침을 종교적 틀에서 벗어나, 그가 살았던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 비추어 오늘날의 삶 속에서 새롭게 해석했다. 국내 최고의 종교학자 김학철 교수가 예수를 단순한 종교적 인물이 아니라, 한 인간이자 지혜로운 스승으로서 조명하며, 그의 언어 속에 담긴 실존적 통찰과 인문학적 가치를 되살렸다. 이 책은 네 복음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전해지는 예수의 언어를 통해 삶의 방향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하루 한 장씩 곱씹으며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이 책은 단순한 문자적 번역을 넘어 독자의 마음에 성찰의 씨앗을 틔우도록 이끈다. 예수의 언어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삶의 갈증을 풀어내는 길을 제시하며, 종교적 신앙을 넘어 누구에게나 통찰과 용기를 건네준다.

저자 김학철은 「그대들은 무엇을 찾고 있나요?」란 제목의 〈서문〉에서 「마태복음」 등 네 복음서에 대한 설명으로 말문을 연다. 이에 따르면(존칭어를 예삿말로 전환: 독자) 예수의 말만 모은 초기 기독교 책들이 있다. 정경(正徑)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도마복음서」, 「디다케」 등이다. 또 「마가복음」에는 없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으로 나오는 예수의 말씀 자료, 흔히 'Q(자료라는 독일어 Quelle에서 온 것)'라고 부르는 자료가 있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그러나 지금 정경에 속한 네 복음서에서 예수의 말은 대부분 이야기 속에 있다. 맥락을 갖는다는 뜻이다. 예수의 말이 전해지다가 거기에 이야기가 덧붙여졌고, 그것이 복음서에 수록되었는지, 아니면 예수의 말만 있었는데 복음서 저자가 그 말을 중심으로 이야기로 확장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니면 예수의 말이 포함된 이야기 전체가 전승되어 복음서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 과정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복음서에 나온 예수의 말은 대부분 이야기 속에 나온다. 

이야기 속에서 예수의 말만을 따로 떼어 번역해 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에 잠시 머뭇거렸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러나 초역(超譯)이라면 상황은 다르다고 저자는 말한다. 초역은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말이 속한 이야기 맥락은 물론 역사, 사회, 문화적 맥락을 감안하여 문자를 넘어선 과감한 번역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문자적 번역'과 '초역'의 다른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자신이 왜 초역을 했는지를 독자들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이 이야기 속의 맥락을 잡아낸 것이라는 점이고, 문자적 번역과의 다르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 한 모임에서 '초역 예수의 언어'를 쓰고 있다고 알리면서 한 첫 번째 말의 초역을 들려주었다고 말한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언을 했다. 거기에 서 있던 요한의 제자들 가운데 두 명이 과감히 요한을 떠나 예수를 좇아갔다. 예수는 자신을 따라오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을 보고 '그대들은 무엇을 찾고 있나?'라고 묻는다. 이것이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첫 말이다. 그리고 그 한 문장을 이렇게 초역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그대들, 그대들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의식주가 해결되기를 바라는가? 안전을 바라는가? 돈과 명예와 권력을 원하는가? 자기 삶이 실현되기를 바라는가? 그대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대들이 나를 따르고자 할 때 그대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그 욕망은 무엇인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심연에 놓인 그 욕망은 무엇인가?'"(p.7)

저자가 초역 과정의 한 부분을 들려주자 모임에 참석한 한 분이 "미드라쉬로군"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유대인들에게 오래전부터 있었던 성서 주석 방법인 미드라쉬가 초역과 닮았음을 새상 깨닫게 되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미드라쉬는 히브리어 동사 '다라쉬'에서 온 말로, '찾다', '연구하다', '해석하다' 등을 뜻한다. 현재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성서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미드라쉬 문헌은 2세기 것이니까 최소한 1,800년 이상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예수가 2,000년 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건넨 일상의 조언부터 삶을 건 결단의 요청까지 오늘날 이해할 수 있는 교훈적 의미로 되살리려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 이른바 실존적 함의 를 드러내려고도 했다. 가끔은 오래전에 읽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처럼 쓰려고도 해보았다. 이런 저런 방법을 심사숙고해 결정한 것이 이 책에 활자로 나타난 것임을 저자를 밝힌다. 이에 따라 가급적 하루에 하나씩만 읽기를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이 책은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성찰의 씨앗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모두 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마음 고쳐먹기〉, 2장 〈생각 다시 하기〉, 3장 〈인생 새로 보기〉 등이다. 네 복음서에 담긴 예수의 말을 모아 세 축(3장)으로 엮었다. 각 구절은 단순한 교리의 지침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물음이다. 복음서에 담긴 예수의 말들은 종교적 맥락을 넘어 일상에서 바로 실천 가능한 지혜라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한글로 읽는 성경은 기독교인들이라면 세 가지 원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쯤은 잘 알 것이다. 독자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구분에 대해서도 잘 모를 정도로 문외한이다. 다만 그동안 영상이나 몇 권의 책을 통해 지식으로서의 성경의 겉만 조금 알 뿐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사전 공부로 백과사전을 통해 성경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았다. 사전에 따르면 성경의 언어는 세 가지로 기록되었다. ① 『구약성서』는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되어 있다.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언어로서 구약성경 대부분은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창세기, 에스라, 예레미야, 다니엘서의 일부에서 아람어가 사용되고 있다. 고대 히브리어는 성경에서 ‘유다 방언’(왕하 18:26; 느 13:24; 사 36:11) 또는 ‘가나안 방언’(사 19:18) 등으로 불린다. 특히 ‘가나안 방언’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면서 가나안 사람들의 언어를 자신들의 언어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 히브리어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된 이후(B.C. 586년경) 히브리어는 주로 문서 등 문어체로 사용되고, 일상 생활에서는 대부분 아람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라를 잃고 뿔뿔이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들은 점차 히브리어를 잃어버려 성경을 읽기도 어려웠다. 이에 따라 70명(정확하게는 72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애굽에 있는 지중해 연안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모여 각처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을 번역하게 된다. 이 성경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셉투아긴타’(Septuaginta, ⅬⅩⅩ)이다. ‘셉투아긴타’는 라틴어로 70을 뜻하는바, 성경 번역 학자들이 70명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② 『신약성서』는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광대한 헬라 제국은 지중해 연안을 비롯하여 소아시아, 애굽, 인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에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헬라어는 대부분 나라에서 공용어처럼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이 헬라어 중에서도 보편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쓰고 읽는 ‘코이네’로 기록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코이네는 헬라 사회에서 대단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수준 높은 고급 언어는 아닐지라도 모든 사상을 충분하게 전달하고 문법 체계가 단순하며 가장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여 복음 전파에 아주 유리한 특징을 갖고 있어 신약성경의 언어로 채택된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은 장(章)과 절(節)로 구분되어 있다. 하지만 성경이 처음부터 장과 절로 구분된 것은 아니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과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은 원래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에 장(章) 구분을 한 최초의 인물은 영국 캔터베리(Canterbury) 대주교인 스티븐 랭튼(Stephen Langton, 1150-1228)이다. 이것을 영어성경에 최초로 적용시킨 사람은 영국 종교개혁자 위클리프(Wycliffe)로서 ‘위클리프 영어성경’(John Wycliffe’s Version, 1382)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절(節)을 최초로 구분한 인물은 프랑스 궁정인쇄사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로 그는 1551년 헬라어 신약성경에 처음으로 절을 구분하고 그것을 인쇄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적용시킨 최초의 영어 신약성경은 『제네바 성경』(Geneva Bible, 1500)이다. 하지만 이렇게 장과 절을 구분하는 것은 성경본문을 인용하기에는 아주 편리하였지만 때론 인위적으로 끊거나, 문법 체제에 맞지 않게 잘못 끊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폐단도 있었다. 그리하여 절 구분을 하지 않고 이전의 절 구분을 난외주로 처리한 성경이 나왔는데 곧 NEB(New English Bible, 1961-1970)가 그것이다. 한글성경의 장과 절 구분은 전통적으로 영어성경의 장과 절 구분법을 따른 것이다.

이 책 『초역 예수의 언어』는 『신약성서』를 텍스트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 탄생 이후는 『신약성서』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네 복음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등은 『신약성서』에 포함되어 있다. 철학사전에 따르면 『신약성서』는 일종의 고대문헌으로 간주하는 한 단일문서가 아니며 저자, 성립한 시기, 장소 등도 다양한 27개나 되는 여러 문서의 집성이다. 저자 문제는 복잡해서 동일 저자에 귀속될 수 있는 것도 몇 개 있지만(누가, 파울), 저자가 분명치 않은 것도 많다. 또 복음서 저자는 전승(傳承)을 편집한 사람으로 볼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저자는 아니다. 성립시기는 기원전 50년경부터(데살로니카인에게의 제1편지) 2세기 중반경 것(「베드로의 제2편지」)까지 포함되어 있다. 성립장소는 대부분 명확치 않지만 팔레스티나를 중심으로 해서 고대 지중해 세계에 분포되어 있다고 추정된다. 이들의 문학 유형도 다양해서 복음서, 서간, 묵시문학 등으로 나뉜다. 더욱이 서간이라 해도 구체적인 상황과 연결되어 있는 것, 또는 일반적인 성격의 것도 있다.



또 「사도행전」은 역사서라기보다 오히려 「누가에 의한 복음서」로 이어지는 일종의 복음서라 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신약』은 『구약』과 함께 「경전」, 즉 교양과 신앙생활의 기준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신약』에 담긴 여러 문서는 반드시 처음부터 경전을 의도하고 씌어진 것은 아니고, 또 이들 외에도 같은 종류의 여러 문서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문서들에서 현재의 경전을 뽑아내고, 그 외를 「외경」이라고 한 것은 최종적으로 4세기의 교회였다.

당시 교회는 『신약성서』는 전체가 하나의 기준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역사적 비판적 방법에 기초한 연구는 『신약』에 담겨져 있는 각종 문서에 있어서는 성립사정이나 문학 유형뿐만 아니라 사상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전 이외의 각종 문서의 연구로 이들 사상이 각기 특정 사상조류에 속하고 있는 것도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신약성서』로서의 사상을 구하는 입장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우에도 그 내부의 사상의 다양성은 인식되어진 위에 통합을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종래 대잡파(大雜把)로 파악되어온 기독교사상은 개개의 문헌으로 재음미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 김학철에 따르면 예수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을 걸었던 한 인간이자, 동시대를 살아간 이들에게 직접 말을 건넨 존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의 말은 종교적 해석과 전통 속에서 여러 겹의 의미로 덧입혀졌다. 저자는 그 겹겹의 해석을 걷어내고, 문자 그대로의 번역을 넘어 오늘의 삶과 맞닿은 초역(抄譯)으로 다시 풀어냈다. 초역은 단순히 단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지금 우리의 삶에 울림을 주는 언어로 되살리는 일이다.

예수의 언어가 이토록 위대한 이유는 모든 이를 일깨우는 참된 지혜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예수의 한마디 한마디는 특정 종교에 속한 사람들만을 위한 말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성찰할 수 있는 삶의 원리로 이어진다.



예수의 언어는 시대를 넘어 오늘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고, 우리 각자가 마주한 현실 속에서도 깊은 울림을 던진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교리를 따르기 위한 성경 해설서가 아니다.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예수를 절대적 존재라기보다 삶을 성찰하게 하는 멘토이자 길잡이로 바라보며, 그가 전하려 했던 생생한 메시지를 오늘의 자리로 불러온다. 저자는 예수의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어 우리 내면 깊숙한 갈증을 비추는 거울로 삼는다.

"내가 미리 말해둘 것이 있습니다. 내가 떠난 후 그대들은 지역 회당에서 쫒겨날 겁니다. 회당에서 주도권을 잡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박해하고 그대들을 죽이려고 할 겁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고, 그분에게 제물을 드리려는 것으로 생각하겠지요.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하느님을 거스르면서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착각하다니요. 그러니 그들은 하느님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고 할 수 있지요. 내가 미리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은 그대들이 이 박해 때문에 흔들려 스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요. 고통의 때가 왔을 때 낙심하지 마세요. 악을 행하면서 선의 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어디든지 있기 마련입니다.(p.222) - 「요한복음」 16:1-4 - '하느님을 위한다는 착각' 중에서

저자 : 김학철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연세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소장, 한국기독교교양학회 부회장, 한국신약학회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신약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기독교 교양을 학문의 주제로 삼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 교양학 및 신약성서를 주제로 한 수십 편의 논문 외에도 《허무감에 압도될 때, 지혜 문학》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 《마태복음서: 고전으로 읽는 성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기쁨: 사도 바울과 새 시대의 윤리》 《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 《손으로 읽는 신약성서》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세바시〉, JTBC 〈차이나는 클라스〉, CBS 〈잘잘법〉, 〈삼프로TV〉 등 방송과 유튜브에 출연해 성서와 기독교 교양을 소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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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이 답답할 때 부처를 읽는다 - 오늘도 마음이 흔들리는 당신을 위한 지혜의 말들
우뤄취안 지음, 정주은 옮김 / 알토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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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늘 바쁘다. 인구가 포화 상태로까지 늘어나고, 산업 혁명 이후 많은 도시들이 생겨나면서 인간은 언제나 생존 경쟁에 내몰렸다. 급속하게 증가하는 인구는 늘 식량이 부족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했다. 경제 활동이 다양화되고 예전에 비해 더 많은 노동으로 수입이 많아져도 식량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자본주의 경제가 점점 더 발달하면서도 왕이나 귀족 세력를 제외하고 대다수 많은 사람들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갈수록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경계가 뚜렷해지고, 경제 발전은 더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고, 일반 노동자들은 점점 더 가난해졌다. 꾸준한 노력으로 산업은 놀랄 만큼 발달해도 '부익부 빈익빈'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에는 역부족이다. 더욱이 현대 사회는 디지털 산업 혁명으로 정보가 무한정 쏟아진다. 어떤 것을 취해야 할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사회가 이렇게 발전하면서 스트레스는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현대인들은 모두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점점 더 종교에 의지하는 마음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의학 분야의 놀랄 만한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을 거의 '100세'까지 늘렸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능력은 아직 없다.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는 'AI 시대'로 접어들었다지만 뇌에 관한 한 '신(神)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때문에 현대인들은 이제 신과의 싸움을 해야 할 지경이다.

이처럼 인류 문명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발전했지만 그들의 일상은 늘 스트레스에 파묻혀 있다. 현대인들은 몇 분 차이로 오르내리는 해외 항공권 가격에 마음을 졸인다. 한정판 스니커즈를 얻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고, 카페 신메뉴를 가장 먼저 SNS에 올리려고 조바심을 낸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먼저를 좇는 마음은 순간의 설렘을 주지만, 곧 불안과 피로를 안긴다. 가진 것을 잃을까 걱정하고, 놓친 것을 후회하며, 끊임없이 비교하는 삶.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쌓아가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 스트레스를 '번뇌'라고 표현한다.



이 책 『나는 삶이 답답할 때 부처를 읽는다』는 표제어에 이미 어떤 책인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저자 우뤄취안은 대만 불교의 큰 스승이자 법고산의 창시자 성엄 스님의 가르침을 통해 스트레스, 즉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을 전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성엄 스님은 대중이 집착과 불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설파했다. 부처의 가르침에 인생의 진리가 있다고 믿은 성암 스님은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단 한 벌의 승복만으로 수행을 이어 갔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 불씨를 지키며 대만 양대 불학원 입학을 꿈꿨으나, 전쟁 발발로 길이 끊겼다. 꿈은 무너졌지만, 성암 스님은 좌절 대신 받아들이기를 택했다. 그리고 외부 환경은 언제든 변하고 무너질 수 있지만, 마음을 돌리고 내려놓는 법을 배운 사람은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으며 원하는 마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다. 성암 스님은 미국과 일본에서 전통 선(禪)과 현대 학문을 아우르는 한편, 대만 불교의 4대 종문 중 하나인 법고산 종단을 창립해 ‘마음을 맑히고 세상을 맑히자’라는 울림을 전 세계에 전하는 데 힘썼다. 성암 스님은 번뇌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마음을 돌리면, 없던 길이 보인다.”

이 책은 부드럽지만 단호한 영적 스승, 성엄 스님과 저자가 오랜 기간 나눈 108편의 문답을 바탕으로 인생사의 온갖 고뇌에 대한 조언과 명언, 번뇌를 풀어내는 108가지 마음 전환법을 소개한다. 깨달음이 곧바로 삶 속에서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안내한다. 성엄 스님의 가르침은 단순했다.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해결하고,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불교의 심오한 진리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이 네 마디는 저자의 번뇌 속 매듭을 하나씩 풀어 주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수행법이 아니라, 매일의 순간마다 마음을 돌려 집착을 놓는 연습이라고 가르쳤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두려움과 미움, 욕망과 사욕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않고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는 힘. 성엄 스님은 그것이야말로 삶을 가볍게 하고 자유롭게 하는 길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 깨달음을 혼자 간직하지 않았다. 자신처럼 마음이 무겁고 흔들리는 이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길을 전하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그래서 성엄 스님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108편의 문답을 엮었다.



여기에는 고독이 침묵의 힘이라는 사실, 자유와 자재(自在)의 참뜻, 참회와 용서를 통해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과정, 사랑하기와 사랑받기 속에서 자비를 키우는 방법이 담겨 있다. 모든 문답은 어렵지 않고, 속 깊지만 부드럽게 다가온다. 마치 오랜 벗이 어깨를 다독이며 건네는 말처럼 독자에게는 느껴진다. 오래 준비했지만 성과가 없을 때, 계속할지 포기할지 고민하는 건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성엄 스님의 가르침을 ‘만두 이론’ 같은 생활 속 사례로 독자들에게 설명한다. 어느 날, 줄이 짧아 보여 그 앞에 섰다. 그런데 막상 순서가 오길 기다리니, 앞사람이 대량으로 주문하는 바람에 생각보다 훨씬 오래 서 있게 됐다. 우리는 이렇게 눈앞의 이득에 혹해 상황을 깊이 살피지 않은 채 버티다, 결국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할 때가 많다. 이 경우 성암 스님은 말한다. “때로는 미련을 끊고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지키는 길입니다.”

집착의 줄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내 마음이 무언가에 맹목적으로 매달려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이 책은 일곱 개의 장을 통해 번뇌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돌리는 방법을 차근차근 안내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크고 작은 파도를 안고 살아간다. 고독이 두렵고, 관계에서 상처받고,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불안을 품은 채 하루를 버틴다. 아무리 애써 떨쳐내려 해도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번뇌는 습관처럼 되살아난다. 저자 우뤄취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타이완의 10대 작가로 꼽히는 우뤄취안은 작가이자 방송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과 무게를 안고 있었다. 그때 대만 불교의 큰 스승이자 법고산의 창시자 성엄 스님을 만났다. 그 인연은 저자의 삶과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 책은 모두 7장(章) 108가지의 번뇌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1장 〈고독이 가져다주는 ‘침묵’이라는 힘〉, 2장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자재이다〉, 3장 〈진정한 자아, 무아로 나아가기〉, 4장 〈마음을 돌리고 내려놓기를 배우다〉, 5장 〈참회와 용서로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기〉, 6장 〈사랑하기와 사랑받기〉, 7장 〈먼저 원심을 내는 것이 생명의 귀착점이다〉 등이다. 각 장마다 12~17가지의 번뇌를 제목으로 삼았다. 108가지란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108 번뇌'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삶이 단순해지고 마음의 짐도 가벼워진다」란 제목의 〈서문〉에서 "도대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란 화두를 꺼내놓고, 자신의 경험과 사유 결과를 내놓는다. "어려서부터 중년이 될 때까지, 우리는 늘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바라며 자기 삶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 사랑과 배신, 기대와 실망,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노력이 반드시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고, 소중히 여긴다고 해서 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p.7, 이하 인용문은 존칭어를 예삿말로 전환, 독자 주)) 이어 저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를 안내한다. "할 수만 있다면, 실패와 배신, 실망과 이별을 겪은 뒤에도 자신을 아끼고, 매 순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남에게 의지하기보다 내 안에 더 많은 사랑을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랑을 찾아 방황하던 삶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 깨달음의 찰나에, 나 자신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신념이 있었기에 산전수전 다 겪고 고통과 시련을 견디며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누구나 겪었을 일들을 바탕으로 질문을 세우고 저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결론처럼 내린다. 걱정과 염려가 캄캄한 밤의 파도처럼 밀려올 때마다 마치 절규하듯 묻는다.

"왜 하필 나야?"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야 하는데?"

"인생이라는 게 끝없는 고통뿐인 걸까?"

비록 소리 없는 외침이지만, 이미 목이 쉬고 기진맥진하고 만다. 그 모든 외침과 질문 뒤에는 사실 하나의 해답이 있다. 

"당신이 고요한 마음으로 기다린다면, 그 해답이 서서히 들려올 것이다."



우리가 번뇌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고난의 순간에 너무 쉽게 세상의 평가에 따라 자신을 깎아내리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세상에서 가장 독한 말은 타인의 입이나 키보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비난하는 그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심지어 누군가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하는 "마음을 내려놔!"라는 말조차도, 악의적인 조롱으로 받아들이곤 한다는 것.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따져 묻고 싶어진다. 

'내려놓으라고? 그게 그렇게 쉬우면 네가 대신 고통을 겪어 보던가!" 내려놓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저자는 귀띔한다. 사람마다 겪는 고통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며, 서로 비교할 수도 복제할 수도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때 선의에서 비롯된 누군가의 '공감'이 따뜻한 배려나 위로가 되기는 하지만, 괴로워하는 이를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고 다 내려놓게 만드는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고 잘라 말한다. 이에 저자는 자신을 다독였던 생각을 독자들에게 꺼내놓는다. '어차피 내려놓을 수 없다면, 짊어지는 법부터 배우자!'

1장에서는 ‘폐관(閉關)*’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몸과 마음의 경지를 다루며, 혼자 있어도 충만해지는 방법을 제시한다. 2장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유와 자재(自在)를 구분하며, 욕망과 자유의 관계를 성찰한다. 또 3장에서는 진정한 자아의 경지인 무아(無我)를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는 법, 신념을 지키는 ‘택선고집’의 힘을 다룬다. 4장에서는 미움, 두려움, 욕망 같은 마음의 결을 다스리고, 집착을 내려놓는 실천법을 설명한다. 5장은 참회와 용서를 주제로, 자신과 타인을 향한 너그러움이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는지 보여 준다. 6장에서는 사랑하기와 사랑받기, 내려놓기와 포기의 차이를 다루며, 관계 속에서 자비를 실천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마지막 7장은 삶과 죽음, 인연과 원한을 돌아보며 바로 지금, 생명의 모든 순간을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각 장은 구체적인 사례와 문답 형식으로 엮여 있어, 독자가 일상의 문제를 바로 적용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스님이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인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해결하고, 내려놓는’ 네 가지 원칙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읽다 보면, 번뇌는 사라지지 않아도 가벼워질 것이다. 그리고 책장을 덮어야 할 순간, 이렇게 속삭일지도 모른다. “마음을 돌리니, 세상이 달라졌다.”

* 폐관: 일정 기간 독방에서 '나'를 찾아 명상하는 불교 수행 중 하나.(저자 주)



이 책은 성엄 스님의 깨달음과 지혜를 바탕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 어떻게 중심을 잡을 수 있는지, 번뇌를 어떻게 다루고 놓을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삶의 안내서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님께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 속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하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오늘도 마음이 무겁고 생각이 많아 잠 못 이루는 이라면, 이 책 속 108편의 대화가 번뇌를 풀어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독자들도 성엄 스님의 말처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일지 모른다. “마음을 돌리니, 세상이 달라졌다.”


“불법의 ‘자유자재’와 공자의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 즉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세상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라는 말은 어떻게 다릅니까?” 성엄 스님은 자비로운 얼굴로 답해 주었습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세상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것은 주관적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도를 넘지 않는 상태지요. 그러나 불법에서 말하는 자유자재는 자아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중생을 위한 것이고, 중생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고 노력하는 것입니다.”(p.79~80)


저자 : 우뤄취안(吳若權)


타이완을 대표하는 심리·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방송인. 대만국립정치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IBM, HP,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기업에서 근무했다. 1995년 소설 『한 번의 사랑이라도 좋아』로 문단에 등장해, 2000년에 단편집 『비 오는 날의 솔바람 소리』로 중흥문예상을 수상했다. 특유의 부드러운 필력과 깊이 있는 통찰로 수백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소설과 에세이를 비롯해 100권이 넘는 저서를 펴냈다. 아울러 라디오와 TV, 강연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세대와 계층을 넘어 폭넓은 공감을 끌어냈다. 그의 글은 일상의 번뇌를 따뜻하게 어루만지면서도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에는 법고산 성엄 스님과 나눈 대화를 토대로,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불교의 지혜와 마음을 내려놓는 108가지 방법을 담아냈다.

주요 저서로는 『하루 한 장 마음이 편해지는 반야심경의 말』 『우리는 그렇게 혼자가 된다』 『지금이 바로 새 삶이다(當下就是新生)』 『인생의 모든 일은 선택과 포기의 연습이다(人生每件事,都是取捨的練習)』 외 다수가 있다.


역자 : 정주은


고려대학교 중문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하였다. 여러 해 동안 철학, 문학, 사학, 육아, 자기계발, 아동문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번역하였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한 권으로 읽는 인도신화』,『유대인 엄마의 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컬러링북)』,『송나라에 간 고양이』,『정적을 제거하는 비책(공역)』,『제왕업 상, 하』,『블링블링 캐릭터 공주 그리기(아이러브북스)』,『내 인생의 모든 것 영화에서 배웠다』,『단숨에 읽는 이야기 철학 5:인간의 기원』,『멀티족으로 산다』,『정진』,『여자로 태어나 아프지 않고 사는 법』,『나의 꿈 나의 직업 패션 그리기』,『습 없애고 열 내려야 병이 없다』,『화를 다스려야 병이 없다』,『실크로드:동서양을 가로지른 문명의 길』,『상큼발랄 예쁜 소녀 그리기 (아이러브북스)』,『깜찍발랄 귀여운 소녀 그리기 (아이러브북스2: 드로잉)』,『엉망진창』,『행동의 힘』,『단숨에 읽는 이야기 철학 1:생각의 방법』,『인생의 깨달음을 던져주는 철학형 지혜』,『역사가 기억하는 정복과 확장: 세계사 4』,『역사가 기억하는 군주의 권위: 세계사 6』,『먹보대장 딩딩』,『닫혀라 참깨』,『제갈량의 지혜에서 배우다』,『별별 이야기 속에 숨은 과학을 찾아라』,『하루 30분 베이징대학교에서 인생철학을 배우다』,『전쟁 이야기 속에 숨은 과학을 찾아라』,『몸 예술로 말하다』,『과학적 사고의 기초를 위한 철학형 사유』,『내 아이의 미래를 좌우하는 황금법칙』,『동물 무대에 오르다』,『스마트 탐정 바오다다 사건파일1』,『NO라고 말하는 아이』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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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잔 - 소설 속 칵테일, 한 잔에 담긴 세계
정인성 지음, 엄소정 그림 / 영진.com(영진닷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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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직접 마시는 것도 아닌데 술술 읽힌다. 23개의 칵테일과 소설이 만난 세계는 달콤할까? 읽는 즐거움과 마시는 낭만이 만나는 순간이 이토록 맛깔나다니 술보다 달콤하고 소설보다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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