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인어가 도망쳤다』의 표제어 중 '인어'는 상상의 반수반인(半獸半人)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 때부터 등장한다.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에 따르면 세이레네스(Seirens, Siren, Siren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은 여자이고 반은 새인 '바다의 마녀'이다. 바닷가 외딴 섬에 살면서 매혹적인 노래를 불러 근처를 지나는 배들을 좌초시켰다.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귀향하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데 실패한 뒤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양 문학의 원형으로 오랫동안 세계의 독자들에게 아름답고 노래를 잘 부르는 여신(女神)으로 우리들에게 각인돼 왔다.
'인어'를 동화 속에 등장시켜 '공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한 작가는 안데르센이다. 『인어공주』는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순수한 사랑을 그린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은 스스로 가장 감동적인 동화라고 여기는 작품이다. 육지의 왕자를 만나기 위하여 마녀에게 자신의 영혼까지 저당 잡히지만, 결국에는 물거품이 되고 마는 인어공주의 애절한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까지 큰 감동을 주는 명작으로 세계 각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영화와 연극으로 공연되었다. 안데르센은 이 작품의 바닷속 주인공들을 만들어내면서 여러 가지 요정에 대한 민담과 문학적인 전통을 참고했다고 한다. 셀키(인간과 물개의 모습을 한 상상 속 존재), 님프(그리스어 ‘님페(Nymphe)’의 영어식 발음으로 그리스인들은 자연계에 여러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고, 이것을 님프라고 하였다), 닉시(게르만 신화 속 물의 요정), 운디네(물의 요정)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바다의 암초에 누워 햇볕을 쬐며 인간을 유혹하면서 아름다운 인간으로 변하기도 하는 물개 셀키에 관한 이야기는 스코틀랜드 연안 오크니 섬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닉시는 인간을 꾀어 죽게 하는 그리스 신화 속의 사이렌과 비슷하다. 또한 바다 왕의 딸과 사랑에 빠진 기사가 그녀를 배신한다는 내용인 푸케의 1811년 발표 단편 「운디네(Undine)」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도 한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다시 후대의 여러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1891년에 발표된 오스카 와일드의 『어부와 그의 영혼(The Fisherman and His soul)』은 안데르센의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이외에도 『인어공주』는 영화, 미술, 음악 부분에서도 사용되었는데, 1989년 존 머스커 감독의 영화 제작과 덴마크의 조각가 에드바르트 에릭센의 인어공주 동상,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의 교향곡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소설 작품 『인어가 도망쳤다』에서 인어가 나타난 곳은 일본의 '긴자'다. 긴자(銀座, ぎんざ)는 일본 도쿄 주오구에 위치한 번화가다. 과거 교바시구 지역에 속했으며, 현행 행정 지명으로 긴자 1초메부터 8초메까지로 구성된다고 한다. 긴자는 고급 상업지로, 브랜드 상점들이 줄지어 있으며, 일본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지역 중 하나이다. 도심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번화가로, 신주쿠, 시부야, 이케부쿠로와 함께 도쿄를 대표하는 상업 지역이다.
긴자라는 이름은 에도 시대에 은화를 주조하던 은좌(銀座)가 설치된 것에서 유래되었다. 일본 최대의 번화가 중 하나로, 니혼바시(日本橋)와 함께 넓은 의미의 시타마치(下町)로 여겨지기도 한다. 도쿄 도심을 대표하는 고급 상업지로, 전쟁 이전에 후지산, 게이샤, 미키모토, 아카사카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명물로 해외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해외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 고급 클럽, 바, 고급 시계 전문점, 백화점 등이 많이 모여 있으며, 히가시긴자역(東銀座駅) 앞에는 가부키좌(歌舞伎座)가 위치해 있다.
'긴자'라는 이름은 일종의 지역 브랜드가 되어 일본 전국 각지의 상점가에 "○○긴자"라는 명칭이 흔히 사용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니클로와 같은 패스트 패션과 드럭스토어 같은 대중적인 매장도 늘고 있다. 명품 의류 외에도 맥도날드, 스타벅스, H&M, 애플 스토어 등의 외국계 체인점의 일본 1호점이 긴자에 위치하는 등, 오랫동안 서양 문화의 발신지 역할을 했다.

이 책 『인어가 도망쳤다』의 저자 아오야마 미치코는 '인어'와 '왕자'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더해 우리 마음 깊은 곳의 갈라진 틈을 비추는 이야기를 우리 앞에 선보인다. 현대인의 사랑과 자존감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번 작품, 화려한 긴자라는 공간 속에서 ‘왕자’와 ‘인어’를 둘러싼 기묘한 소동을 그리고 있다. 이 책에는 다섯 명의 인물이 각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다섯 명의 인물은 각각 인어의 변신이자 은유이기도 하다. ① 연인 앞에서 늘 작아지는 청년 ② 딸의 독립으로 공허함을 느끼는 엄마 ③ 소유욕에 매여 사랑을 놓친 노인 ④ 불안 속에서 흔들리는 신인 작가 ⑤ 화려한 겉모습 뒤에 외로움을 감춘 여인 등이다. 다섯 인물은 ‘왕자’라는 낯선 존재를 매개로 자신이 외면해 온 두려움과 욕망, 그리고 오래전 잃어버린 진짜 마음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다.
왕자를 마주한 청년은 연인 앞에서의 허황된 모습을 내려놓고, 엄마는 ‘엄마’라는 역할 뒤에 가려져 있던 자신의 소외감을 회복한다. 미술품에 집착하던 중년 남성은 그것이 결국 지키지 못한 사랑과 시간에 대한 갈망이었음을 깨닫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던 작가는 그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마담으로 살아온 여인은 사랑의 상처를 회피하는 대신, 상대의 숨겨진 진심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저자 아오야마 미치코는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전개보다는, 일상 속 작은 순간과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을 포착하는 데서 빛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화려한 긴자의 풍경, 평범한 대화 속에서 조금씩 배어 나오는 흔들림이 인물들을 변화로 이끌고, 그 변화는 독자에게도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 다채로운 도시의 모습과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번져 나오는 작은 흔들림이, 인물들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는 매 순간, 일상의 언저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이 작품은 결국 ‘마음을 다시 마주하는 법’을 묻는다. 저자는 살아가면서 사랑, 시간,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 등 우리가 놓치고 잃어버린 것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솔직하게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바라볼 용기를 내는 순간에 더 큰 의미가 있음을 섬세하게 전한다. 다섯 인물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세대와 삶의 상황을 비춘다. 또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상실과 불안을 보편적으로 드러내고, 낮아진 자존감을 묘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조금씩 자신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은은한 희망과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이 부드럽게 열리고, 마치 오래된 친구와 이야기하는 듯한 편안함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 책 『인어가 도망쳤다』은 단순히 ‘읽는 소설’이 아니라, 내 마음속 깊은 곳과 마주하게 해주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온기, 잃어버린 감정,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들을 조심스럽게 불러내는 경험 말이다.
당신, 정말 나로 괜찮았어?
까다롭고 지루한 나 말고 더 대범하고 활기찬 남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함께 풋살도 하고, 축구도 보고, 수면 부족에 웃으며 맥주도 마시고.
책 읽지 않아도 세상에서 얼마든지 훌륭하고 즐겁게 살 수 있으니까.
어쩌면 책 같은 거 읽지 않는 편이 훨씬 평화롭고 건강할지도 모르겠다.(p.168)
배 위의 왕자는 무대에 오른 스타처럼 보였겠지. 바다라는 관객석에서 인어공주는 그저 남몰래 그를 바라만 봐도 최고의 행복을 맛보았을 것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직접 육지로 나가 처음으로 시선을 맞춘 왕자는 그녀에게 얼마나 눈부신 존재였을까. 그녀는 왕자 곁에서 얼마나 여러 번 가슴이 미어졌을까. 그대로 바다에 있었으면 아름답고 화려한 추억을 품은 채, 평화롭게 살았을지 모르는데.(p.213)

이 소설 작품의 역자 민경욱은 「허구와 현실이 맞닿는 불가사의한 공간, 긴자」라는 제목의 〈옮긴이의 말〉에서 "이들(다섯 명의 등장인물)은 긴자라는 공간 곳곳에서 화제가 된 왕자와 만나 대화를 나누며 다른 행동에 나서고 자신을 긍정하고 새롭게 결심하고 진실을 털어놓기로 마음먹는다. 또 동화 속 왕자를 위로하고 공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론하고 쓴소리를 늘어놓는다. 현실과 이야기가 서로 어울리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순간에 우리 또한 입회한다. 다섯 시간 동안 벌어지는 작은 소동극은 우리를 불가사의한 체험으로 장으로 이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 : 아오야마 미치코(靑山 美智子)
1970년 아이치 현에서 태어나 현재 요코하마 시에 거주 중이다. 대학 졸업 후, 시드니의 일본계 신문사에서 기자로 2년간 근무했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도쿄의 출판사에서 잡지 편집자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데뷔작 『목요일에는 코코아를』로 제1회 미야자키 책 대상을 수상했으며, 두 번째 작품 『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로는 제13회 덴도 문학상을 받았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는 『도서실에 있어요』, 『달이 뜨는 숲』, 『쓰담쓰담 치유하마 놀이터』 등으로 4년 연속 서점대상 후보에 올랐으며, 『인어가 도망쳤다』 역시 2025년 서점대상 후보에 선정되었다. 이 밖에도 『너에게 오는 건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야』, 『월요일의 말차 카페』 등이 있다.
역자 : 민경욱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 관련 회사에 근무하며 1999년부터 일본문화포털 ‘일본으로 가는 길’을 운영했으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전문번역가의 길을 걷고 있다. 또 일본 관련 블로그 ‘분카무라'를 운영하며 일본문화 팬들과 교류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요시다 슈이치의 『거짓말의 거짓말』, 『첫사랑 온천』, 『여자는 두 번 떠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11문자 살인사건』, 『브루투스의 심장』, 『백마산장 살인사건』, 『아름다운 흉기』, 『몽환화』, 『미등록자』, 이케이도 준의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하늘을 나는 타이어』, 이사카 코타로의 『SOS 원숭이』, 『바이, 바이, 블랙버드』, 누마타 마호카루의 『유리고코로』,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야쿠마루 가쿠의 『데스 미션』,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내가 죽인 사람 나를 죽인 사람』 고바야시 야스미의 『분리된 기억의 세계』 신카이 마코토의 『날씨의 아이』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