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안부를 묻습니다
상담사 치아(治我) 지음 / FIKA(피카)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린 사회, 열린 민족 등은 수없이 반복해 들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 성(性)은 성(城)의 기능을 충분히고수하고 있다. '개방된 성 문화'란 단어를 대한민국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일부 전문가들이나 학자들은 유교의 영향으로 단정짓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 개인적 입장에서는 남녀 간의 성 문제는 개방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몇몇 친구들은 꽉 막힌 유교 의식이 아직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비난의 말도 하지만 독자가 개인적으로 가진 성 윤리는 '개방해서 좋은 것'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 교육'은 개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선 남녀의 '성교'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신의 몸의 기능과 역할, 부위별 작동 원리 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 교육을 빙자한 '성 교육'을 반대한다. 독자의 생각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친구들 중에는 나름대로의 '개방'에 대한 논리가 있다. 남녀 관계에서 '성교(sex)'를 빼놓고 뭘 가르친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현재의 성 교육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성 교육이 성교를 잘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교를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주장이다. 

이 책 『밤의 안부를 묻습니다』에서 저자 치아는 '성(性)'은 아직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며, 열정적으로 원할 수 없는 하나의 금기라고 전제한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해도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이 가진 특성을, 관계의 주도권을, 연인과의 밤을 고민하면서도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지적은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독자는 지금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이 책을 읽었다. 호기심 때문이다. 또 요즘 성 교육이란 말 자체가 사회에서 잘 쓰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때 '구성애'란 전문 상담가가 '성 교육 전도사'임을 자처하고 젊은 학생들 교육에 많은 열정을 쏟았다. TV 방송사도 프로그램까지 마련해 방영하고 꽤 오랫동안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필요하면 말하고, 원하는 건 참지 않고, 요구하면 해주는 게 아니라 그냥 해버리는 주체적 사랑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이 말을 전제하고 글을 썼고, 독자들도 이 말을 전제하고 읽기를 기대한다. "잠시 길들었을 뿐, 사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주체적이다."

학교에서도, 친구글과의 대화에서도 잘 사용하지 않던 단어들이 YV 프로그램에서 쏟아졌다는 사실이 우선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학교에서의 성 교육도, TV 프로그램도 자주 봤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많구나"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독자는 성 교육도 일부 받았고, 또 관련 책도 조금 읽어봤지만 의학 공부를 하지 않아서인지 여성 몸의 일부가 기능하는 원리나 모양, 크기 등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서야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들이 꽤 많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해도 여성들은 물론 남성들도 자존심 때문에 연인이나 아내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상담사 치아는 내숭 없이 솔직한 관계에 대해 조언했던 내용에 많은 독자이 호응했다고 한다. 전작 『밤의 숨소리』를 통해서다. 독자는 그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의 서술을 미루어보아 모든 것을 솔직하게 기술하려는 의지가 높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는 남녀가 만나는 모든 '관계'에 대해 이전보다 더 솔직하고 과감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 『밤의 안부를 묻습니다』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성인들의 진짜 고민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출간 전 성인을 대상으로 남녀 관계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수천 명이 설문에 응답했다. 이 책은 그 안에서 남녀 구분 없이 성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고민을 모아 담았다. 사랑, 성, 이별, 관계에 관한 고민은 각자의 고민이라기보다 보편적으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과 사람에 대한 고민이다. 막 시작한 관계에 대한 고민, 지루해진 사랑에 대한 고민, 성관계에 대한 불만에 대한 저자의 솔직하고 유쾌한 조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관계 맺음을 알게 되고, 건강한 관계를 배우며, 예기치 못하게 밤의 기쁨까지 맞이할 수 있다.

주체적인 사랑과 관계, 그리고 이별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연애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은 무엇일까? 영화 속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는 걸까? 정답은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영원한 사랑이나 운명적인 사랑 같은 판타지에서 벗어나 이제는 솔직하게 말하고, 마음껏 사랑하며, 두려움 없이 헤어질 수 있는 주체적인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남자와 여자, 친구와 연인, 사랑과 이별, 하룻밤 관계와 오래된 연인 등 단순하게 명명된 이름을 넘어 관계의 본질을 깨달으며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사랑받는 시간을 경험해 보기를 권유한다.

이 책이 가진 강점은 '솔직하게' 말한다는 점이다. 몸이든, 관계든 솔직하게 말해야 적절한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 성관계라서 숨기고, 일반적인 문제라서 드러내는 식의 선별적 문제 진단으로는 결코 답을 찾아갈 수 없다. 그런 상담이라면 도저히 적절한 답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장점인 듯하다. 저자는 책의 〈서문〉을 통해 "한국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유교를 숭상해왔고 여성의 외음부는 당연히 감춰야 하는 부끄러운 부위라고 세뇌당해왔다"고 전제하고 "들여다볼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러나 "이 고정관념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며 "나조차 내 몸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덕분에 내 연인은 더욱더 내 몸을 알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내 몸을 잘 알지도 못하는 내 연인이, 내가 행복해하는 방법으로 내 몸을 애무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에이, 본 적은 없어도 배운 게 있으니 내 몸은 내가 잘 알죠?"라는 내담자가 했을 반문에 저자는 불쑥 "그런가요? 그럼 클리토리스가 발기하면 얼마나 커지는지 알고 있나요?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엄지손가락 길이 정도?" 이에 더하여 클리토리스가 음경처럼 발기한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나요? 내 외음부는 어떻게 생겼고, 흥분하면 어떤 색을 띠는지는 알고 있나요? 독자들이 '잘 아는' 건 아마 몸을 세로로 이등분하면 보이는 단면의 구조와 기능 정도일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저자는 우리의 성 교육이 해부학적 이미지를 통해 임신, 출산, 성폭력 예방 등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잘못된 성 교육이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진정 행복하고 싶다면 나부터 내 몸을 알아야 하고 그만큼 상대의 몸 역시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상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고, 그래야 상대도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이 부분을 무시한 채 무작정 사랑을 시작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경우 사랑하면서도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라고 말한다. 이에 더하여 내 몸의 이미지를 사회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힌다. 타인의 기준을 바탕으로 높아지는 감정은 자존감이 아니라 자신감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우리는 타인을 비난하는 건 미안해하고 조심하면서도 자신을 비판하는 것에는 엄청나게 잔인하고 혹독할 뿐만 아니라 죄책감조차 없습니다. 세상 멋진 걸 가지고도 그걸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바꾸고 싶어 할 만큼 말이죠.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p.8)

이 책은 3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장 〈단단한 관계를 시작하는 방법〉, 2장 〈자신을 채우며 사랑하는 방법〉, 3장 〈두려움 없이 이별하는 방법〉 등이다. 1장은 「섹스도 관계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세부 항목을 두고 있다. 저자는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외울 것'이란 단서를 곁에 달아놓았다. 한 내담자의 고민이다. 20대 남성으로 1년 정도 사귄 여자친구가 '섹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상담을 해온 케이스이다. 저자의 첫마디는 '섹스도 관계다'란 제목을 다시 달아놓았다. "섹스는 몸의 관계이기 전에 근본적으로 인간관계의 연장선상에 있다. 섹스의 우리말이 성관계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서로의 낯선 모습을 마주했을 때나 의견 충돌이 있을 때 그 갈등을 원활하게 조율하는 커플일수록 섹스 만족도는 높은 것 역시 이 논리의 방증이다."(p.16~17) 저자는 이어 섹스를 잘한다는 건 단순히 삽입 후에 오랫동안 왕복운동이 가능하다거나 연인을 오르가슴에 도달하게 하는 기가 막힌 기술을 지니고 있다거나 빨리 흥분하고 충분한 양의 애액이 흐른다거나 잘 조여주는 질 근육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평소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그 덕분에 상대를 나만큼이나 잘 알고, 가능하면 상대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상대 역시 그 노력을 인지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 그런 사이라면 당연히 섹스도 행복해진다고 주장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섹스를 잘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니라 '관계'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섹스의 일반론만 배운 게 아니다. 실제 관계에서의 차마 물어보지도, 묻지도 못한 애무의 방법도 그 어느 책보다 적나라한 표현으로 세밀한 심리까지 분석해가며 설명하고 있다. 독자는 이미 중년의 나이로 아이까지 낳아서 기르고 있는 독자로서는 여태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몰랐다는 점에서 오히려 부끄러울 정도다. 

2장 〈자신을 채우며 사랑하는 방법〉 가운데 「더 깊이 사랑하게 해주는, 애무의 힘」은 '이제껏 알던 애무는 버리자. 더욱더 진보적인 애무의 세계로'라는 부제답게 노골적이다. 남자친구가 "애무를 이렇게까지 좋아할지 몰랐다"는 상담에서 저자는 묻는다 "여성 여러분, 혹시 섹스할 때마다 남자 친구의 몸을 평균 20~30분씩 애무하나요?"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여성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한다. 심지어 여자 친구의 몸을 20~30분씩 애무하는 남자도 절반이 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다양하다고 덧붙인다. 남자 친구의 애무를 받는 것에만 익숙해서일 수도 있고, 남자 친구의 몸을 구석구석 애무하는 게 부끄럽거나 어색해서일 수도 있으며, 애무는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일 수도 있고, 괜히 성 경험이 많은 여자로 오해받을까 봐 자제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많은 단어들이 평소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있다. 대부분 저자가 지적하는 '섹스의 기술'에 해당하는 단어들이다. 저자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섹스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런 단어들은 전부 부정적으로 쓰임새를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저자가 강조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 읽어보면 이 모든 기술들이 필요하고 때로는 행복의 밑바탕이 될 수도 있다. 모르거나 어색하다고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다만 관계와 사랑이 정립된 후면 비로소 행복의 양탄자 위에 올라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칭찬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껏 사랑하고 거침없이 다가가고 단호하게 이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쌓아 올린 단단한 자존감은 결국 온전한 ‘나’로 만들어준다. 그 누가 붙잡고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나는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올곧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사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상대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내줄 수 있는 헌신? 상대의 모든 것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포용? 밤의 행복을 위한 정열이나 기술? 오랫동안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끈기? 저자는 사랑한다면 공감하고, 공감한다면 이해하고, 이해한다면 홀로 서야 한다고 말한다. 관계는 결국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도권을 주고 싶어도 그 결과와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사랑의 관계든, 남녀의 관계든, 성관계든, 스스로 인식하고 이끌어가며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저자가 그리는 사랑은 두 사람의 사랑을 넘어서는 의미를 포함한다. 진심으로 서로의 모든 것을 사랑해주는 것을 넘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성장하는 사랑을 꿈꾼다. 


“사랑은 소유가 아닙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그 무엇이라도 가질 수 있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나를 만나기 전에 그가 경험했던 삶과 기억뿐만 아니라 현재 그의 몸이나 생각, 행동, 주변 인물 모두 온전히 그 사람의 것입니다.(p.254)


저자 : 치아(治我)


‘치아(治我: 나를 다스린다)’라는 필명에서 알 수 있듯, 행복한 삶을 위한 ‘심리 다스리기, 올바른 대인관계’를 오랜 시간 연구해 왔다. 2006년부터 온·오프라인에서 ‘올바른 대인 관계’와 ‘행복한 성생활’을 주제로 상담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인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법’, ‘건강하게 성생활 하는 법’ 등을 이메일 상담과 ‘토킹클럽’ 집단 상담을 통해 내담자와 나누고 있다. 1996년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NLP, 심리치료, 상담’ 자격증을 취득하고 관련 기관에서 전문성을 다져왔다. 저서로는 잘못된 관계로 상처받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해결책을 담아낸 『관계 수업』, 『관계 사전』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미 오디세이 - 운명을 짊어진 개미의 여정
오드레 뒤쉬투르.앙투안 비스트라크 지음, 홍지인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미를 연구한 책을 보면 독자는 '파브르'라는 프랑스의 곤충학자가 생각난다. 어렸을 때 여름방학 숙제에 '곤충 채집'이 들어 있었는데 잠자리, 나비 등을 잡아 방학 후 개학하면서 과제물 박스를 들고 갔다. 그때는 아무도 개미를 곤충 채집에 이용하지는 않았다. 아마 너무 작아서 과제물로 제출하기는 부적절해서였을 것이다. 개학 첫날 선생님이 곤충 채집에 개미를 채집해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지적을 하자, 누군가 "선생님, 개미도 곤충이에요?" 하고 되물었다. 그때 선생님의 답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곤충학자 파브르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 주셨고, 개미가 곤충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생물의 분류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지만 우리가 알아듣기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파브르에 대한 선생님의 가르침은 독자 개인적으로는 충격이었다. 특히 개미 관찰과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는 이야기와 세계에서 처음으로 〈곤충기〉를 써서 위인이 되었다는 말씀이었다. 

누구나 어렸을 적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개미의 긴 행렬을 유심히 봤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간혹은 개미집에 물을 부어 개미가 어떻게 되는지 보는 짓궂은 장난도 한 기억도 있다. 개미는 우리 주위에 흔히 존재했기 때문에 주목하거나 특별히 관찰할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상에 불편함을 주는 면만 부각될 뿐이고 조금은 '귀찮은 존재'였다. 특히 빵이나 먹을 것을 떨어뜨렸을 때 잠시 딴 일을 하고 우연히 내려다본 땅바닥에서 개미들이 몰려들어 이를 잘라 들고, 열 맞춰 집(개미 구명)으로 가던 모습은 대단해 보여서 신기한 듯 오랫동안 관찰했던 기억도 있긴 하다. 그리고 국어 시간에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를 읽었던 기억도 난다. 그때부터 개미는 부지런하고 베짱이는 게으르고 일하지 않으면서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는 상징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이 책 『개미 오디세이』는 개미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한 개미 관찰 연구 기록이다. 책의 공동 저자(이하 저자) 오드레 뒤쉬투르과 앙투안 비스트라크는 '개미 학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개미에 관한 수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책에 따르면 개미는 현생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전인 1억7,000만 년 전 지구에 출현한 곤충이다.

개미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연구한 저자는 개미의 삶을 인간의 삶에 비유적 표현을 사용한다. "개미는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등이다. 널리 퍼졌다는 표현을 인간처럼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듯한 표현들을 사용한다. 어쩌면 지능이 거의 없는 개미의 삶을 의인화한 것은 개미를 생명으로서의 '소중한 존재'로 인식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개미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개미 13,000종의 목록을 정리했으며, 총 25,000종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개미를 관찰하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한 저자는 먼저 개미의 주요 활동 중 하나인 '먹이 찾기'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 작업은 단일 식민지 내에서 수백만의 개체가 참여할 수 있으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종종 매우 적대적인 지형에서 수십 킬로미터를 여행할 수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의 길에는 장애물과 그들이 언제든지 막아야 할 포식자로 가득하다. 분명 전쟁의 기술이 개미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개미가 사용하는 무기와 전술의 범위는 매우 다양하다.

개미들은 또한 놀라운 기억력과 전략 실행 능력 그리고 엄청난 체력이라는 축복을 받았다고도 썼다. 그런 그들의 일상에 대한 묘사는 마치 스릴 넘치는 모험 소설처럼 느껴진다. 독자들이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개미들의 행동을 의인화한 것이 이 책이 탁월한 평가를 받는 이유다. 저자의 주장은 개미들의 행동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본능적이기만 하다는 하급의 곤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개미들은 수영 선수, 역도 선수, 의사, 농부, 마약 사용자, 자살 공격자, 전단지, 글라이더, 노예 및 기타 많은 사회적 범주가 구축된 사회 구조를 갖고 있다. ‘개미학’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인 저자는 이 흥미로운 저술을 통해 복잡하고 조직적인 개미 군집에 관해 흥미진진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이 사회성 높은 곤충들이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고 극도의 회복력을 보이며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는지 보여준다. 책의 표제어가 『개미 오디세이』이고 부제 「운명을 짊어진 개미의 여정」으로 쓴 것도 개미들은 그렇게 탄생했고 진화해 왔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파악된다.

개미들은 '작고 치밀하고 매혹적'이다. 이 책은 개미 군집의 매혹적인 세계를 탐구한다. 예상치 못한 자원을 가진 이 사회성 곤충들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동료들과 복잡하고 교묘하게 조직된 관계를 맺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개미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것들을 상세히 밝히고,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회복력을 보여주는 그들의 놀랍고 독특한 능력을 분석한다. 책에 따르면 개미들은 조직적이고 계층화된 군집으로 살아간다. 이 곤충들의 운명은 유충 단계에서 섭취한 영양에 의해 결정된다. 잘 먹은 유충은 여왕으로,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일개미 중 하나가 된다. 강한 집단정신을 가지고 동료들이 분비하는 페로몬에 반응하는 개미들은 군집의 영속성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예컨대, 남아메리카 원산의 포렐리우스 푸실루스(Forelius pusillus) 종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개체를 희생한다. 해가 질 때, 일부 개미들이 모래로 개미집 입구를 막아 자신들은 밖에 갇혀 생존 가능성이 없지만, 포식자로부터 군집을 보호한다. 이렇게 매일 저녁 몇 마리의 일개미가 죽어 최대 20만 마리에 달하는 집단을 지키는 것이다.

개미 군집은 지속해서 정보를 공유하는 자율적인 개체들을 기반으로 구성된다. '자기 조직화'한 이 구조는 한 개체가 사라져도 개미집이 계속 기능할 수 있게 한다. 이 곤충들은 자신의 생리적 상태, 동료들과의 상호작용, 환경에 따라 행동하며 ‘둥지’ 건설부터 먹이 찾기까지 군집의 필요에 따라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한 개체가 먹이원을 찾으면 페로몬으로 돌아오는 길을 표시하여 경로를 표시하고, 때로는 초대하는 춤을 춰 동료들이 그 길을 따라오도록 유도한다는 부분에서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 많은 종을 검토한 저자는 군단 개미들이 거의 눈이 먼 상태임에도 주로 화학 신호, 접촉, 진동을 통해 의사소통한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몸으로 지형의 균열을 덮어 땅을 평평하게 만들 수 있는데, 한 개체로는 너무 큰 공동이 있을 때 그들은 사슬을 형성해 살아있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놀라운 책은 개미의 일생(여정)을 그리고 있다. 다만 전 지구상에 어디에나 퍼져 있지만 주변 환경에 따라 독특한 진화를 한 것으로 보인다. 개미는 집단으로 사냥하는 데 능숙하며 자기 체중의 최대 1만 배에 달하는 먹이를 제압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보고하고 있다. 먹이를 제압하고 둥지로 운반할 때는 팀으로 작업하고, 먹이를 잘게 나누어 운반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은 독자가 앞서 언급한, 먹이를 채취(혹은 사냥)해서 집으로 운반하는 과정을 보았던 대로다. 또, 어렵게 변화하는 생존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 환경과 미묘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대륙별로 본다면 어떤 개미는 집단 움직임을 이용해 환기를 조절함으로써 둥지의 온도를 변경할 수 있고, 중부 유럽의 검은숲개미는 진딧물을 키워 그들로부터 감로를 수확하는가 하면 이를 동료들의 먹이로 사용할 그뿐만 아니라 둥지 건설용 접착제로, 그리고 둥지 구조를 강화하는 공생 곰팡이의 먹이로도 사용한다. 

남아메리카의 아즈테카 안드레아(Azteca andreae) 종은 세크로피아 나무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들은 이 나무에 군집을 형성하고, 먹이 저장, 보육실, 휴식 구역으로 나무의 다양한 부분을 사용하는 대신 나무를 보호하는데, 지속해 순찰하며 큰 턱과 경보 페로몬으로 침입자들과 싸우고 나무의 위험 신호에 반응한다. 세계적인 두 개미 학자의 오랜 연구 결실인 『개미 오디세이』를 통해 독자들은 앞에 열거한 개미들의 ‘작고 치밀하고 매혹적인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13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이 서사시의 주인공〉, 2장 〈첫 번째 시련:나가서 방향 잡기〉, 3장 〈두 번째 시련: 식량 찾기〉, 4장 〈세 번째 시련: 식량 활용하기〉, 5장 〈네 번째 시련: 식량 운반하기〉, 6장 〈다섯 번째 시련: 환경에 적응하기〉, 7장 〈여섯 번째 시련: 다른 이를 이용하기〉, 8장 〈일곱 번째 시련: 영토를 지키기〉, 9장 〈여덟 번째 시련: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10장 〈아홉 번째 시련: 공격하고 역습하기〉, 11장 〈열 번째 시련: 선택하고 최적화하기〉, 12장 〈열한 번째 시련: 구조하고 치료하기〉, 13장 〈마지막 시련: 죽음〉 등이다. 1장의 경우 개미의 특성에 대해 저자 뒤쉬투르와 비스트라크가 각각 관찰하고 연구한 분야에 대해 각각 쓰고 있다. 뒤쉬투르는 「군락, 초유기체, 집단지성」을, 비스트라크는 「개미, 두뇌, 개별지성」을 각각 집필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굴 바깥을 모험하는, '수렵개미'라고 부르는 개미의 삶을 다룬다고 밝힌다. 이에 따르면 수렵개미는 엄청난 기억력과 경이로운 체력을 자랑하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우리는 골머리를 앓는 복잡한 문제도 집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수렵개미는 진정한 슈퍼히어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관점에 따라서 슈퍼빌런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개미로 인한 피해에 진력이 나서 부엌에 다니는 개미를 모두 없애 버리기로 결심한다 해도, 사실 여러분이 없애는 것은 군락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 성가시던 개미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대체될 것이다. 타일 바닥 아래 숨어 사는 여왕개미는 지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수렵개미는 집의 벽과 골조, 벽장 속에 살고 있는 초유기체의 연장이다. 손이 주방의 설탕통에서 부지런히 설탕을 퍼나르는 동안 어둠 속에 숨은 몸은 여러분의 시선 밖에서 계속해서 크기를 불려 나가고 있다. 수렵개미는 대개 군락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개미로, 식량 채집이 그들의 마지막 임무다. 수렵개미는 굴을 나설 때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이 책이 죽음의 순간까지 식구들의 생존을 책임지기 위해 어떤 위험도 주저 없이 이 개미들에게 바치는 찬사라고 강조한다. 

이제 저자는 수영 선수, 역도 선수, 의사, 보모, 중독자, 폭탄, 닌자, 도둑, 전사, 비행사, 노예, 그 외에도 수많은 개미를 차례차례 소개할 준비를 마쳤다고 암시한다. 〈서문〉의 앞 부분에서 '군대개미'로 불리우는 마냥개미를 잠깐 소개한다. 마냥개미의 여왕개미는 몸길이 5cm에 몸무게 2g으로 이제까지 알려진 개미 중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이 종은 주로 페르몬을 통해 소통하며, 길게 종대를 이루며 굴을 자주 바꾼다. 개미굴 하나에 최대 2,000만 마리가 살기도 한다는 점이 놀랍다. 우리들이 보통 길 위에서 마주쳤던 수백만 마리의 개미도 사냥하러 가거나 새로운 집을 찾아가는 중일 것이라고 저자는 귀띔한다. 이 개미의 길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육식성인 마냥개미는 길을 가다 보이는 무엇이든 공격할 수 있다. 그 먹잇감이 자신보다 훨씬 큰 쥐나 닭, 뱀, 심지어 작은 악어라 할지라도 예외가 없다고 하니 그들의 공격성은 선천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저자는 만일 덤벙거리는 사람이라면 이 집요한 개미 앞에서는 1분의 부주의로도 큰코다치기 십상이라고 주의를 준다. 그 군락의 길을 막아서서 심기를 거스르면 '나쁜 선택'을 서슴없이 한다. 기존의 경로를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는 마냥개미는 가지고 있는 최고의 방어 무기를 꺼내든다. 아주 고통스러운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날카로운 큰턱(mandibule)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 매일 사냥하는 개미의 무쇠 이빨을 떼어내는 것이다. 사람이 물렸을 때는 셔츠와 바지를 벗어던지고 뛰어다니게 한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마냥개미는 어떤 아프리카 부족에게는 추앙의 대상이기도 한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들은 집을 청소하고 흰개미를 없애는 데 이 개미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마냥개미들이 마을을 지나가면, 사람들은 문을 모두 열고 어서 이 작은 집 요정이 집안의 벌레와 쥐, 바퀴벌레를 없애주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개미는 무척 흥미롭다.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를 이루고 사는 개미의 집단지성과 희생정신은 수많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불타는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개미는 체증 없는 교통 통행과 악천후 속의 위급 상황 대처에도 매우 능하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개미의 일반적 특성 외에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많은 개미들이 관찰되고 연구된 결과로 나타난다. 지구상에는 약 2만 종의 개미가 살며, 생물량은 인간 생물량의 1.1배로, 개미에게서 특별한 능력이 드러나는 것도 놀랍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하는 저자는 수많은 종류의 개미의 살아가는 모습과 일생과 삶의 여정을 좇아서 여과 없이 이 책에 담아냈다. 의인화한 개미에게 붙은 별칭과 그들의 업적을 비유한 많은 개미들이 이 책에 나타난다. 「더티 댄싱」「향수」「매복」「천국의 수확」「위험한 관계」「무게를 견뎌라」「전기톱 학살」「도둑맞은 키스」「듄」「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메두사 호의 뗏목」「파이트 클럽」「가미카제」「살아있는 시체들의 밤」「한니발」「자유의 이차선」「SOS 해상구조대」「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등 개미의 행렬이 이어진다.


저자 : 오드레 뒤쉬투르(Audrey Dussutour)

단세포 유기체에 대한 최첨단 연구로 특히 알려진 유명한 개미 학자이다.


저자 : 앙투안 비스트라크(Antoine Wystrach)

곤충 행동을 전문 분야로 하는 개미 학자이자 신경 동물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가상 현실, 3D 컴퓨터 그래픽 및 뉴런 네트워크 모델과 같은 정교한 도구를 사용하여 실험실과 현장에서 개미 탐색을 연구했다.


역자 : 홍지인

전남대학교에서 철학과 불문학을 전공했고,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불번역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23년 한국문학번역상 번역신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파리3대학 통역번역대학원(ESIT) 한불번역 특별과정에 재학 중이며, 프랑스어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 - 아침과 저녁, 나를 위한 인문학 30day 고윤(페이서스코리아)의 첫 생각 시리즈 3부작
고윤(페이서스 코리아)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정신 없이 빠르고 복잡하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모든 일은 '빛의 속도'로 처리된다. 지구 상에서 오랫동안 지배자로 군림해 왔던 인류는 그 위치마저 흔들리고 있다. 인류가 만들어낸 '기계'에게 오히려 지배당하는 미래를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거기에 자본주의 사회의 원칙인 '무한 경쟁'에 인간은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과 불안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간 느낌마저 준다.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느라 애쓰고 있는 인류는 자신을 돌보지 못해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특징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채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우울과 스트레스 그에 따른 신체적인 병은 대게 ‘방치’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체적인 질환은 심리적으로도 크게 영향을 미쳐 수많은 이름의 정신적 질환들이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이 책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는 현대인이 앓고 있는 질환들에 특별한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은 나름대로 치료와 예방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고윤은 흔들리는 우리의 삶에서 그나마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각 개인만의 원칙과 철학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이 원칙과 철학을 바로 세우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기 위해 집필됐다. 저자는 다양한 멘토들의 성공학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더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의 선험적인 행동과 연구는 삶의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최소한의 영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해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매일 꾸준한 노력으로 1%씩 성장하는 삶을 전하는 저자는 지금 당신의 인생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철학의 부재’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바쁜 현대인이라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릴스나 숏츠 같은 소비성 콘텐츠로 도파민 중독에 빠지니 인생이 무너져가는 건 남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가벼운 도파민이 아니라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과 인생의 철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처방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전작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에 이은 후속작으로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다. 전작은 현대인의 삶의 지혜를 전할 목적으로 펴낸 격언집인 데 비해 이 책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는 심리적 증세를 통한 처방을 위해 각종 질환을 제시하고 치료를 제시한다. 전작에는 저명한 철학자나 심리학자 혹은 자기계발서 저자들이 책에 남긴 말 가운데 삶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지혜의 말들이 담겼다. 반면 이번 출간된 책은 현대인들이 노출된 43개에 심리 증후군을 설명하면서 치료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우울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자신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집필한 까닭이기도 하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면 '지친 나'를 다독일 줄도 알아야 하며 적당한 쉼을 통해 일상의 여백을 만들기도 해야 한다고 저자는 책을 통해 주장한다. 

이에 따라 이 책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는 현대인이 가장 많이 겪고 있는 심리 증후군 43개를 토대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마음 챙김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심리 현상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고장난 점을 찾으며 회복의 시작점에 설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누구나 많이 들었을 PTSD나 번아웃 같은 대중적인 증후군도 있지만, 아도니스, 침묵의 나선, 아스퍼거 증후군 같은 현상도 충분히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 될 수 있기에 다채로운 시선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어려운 철학과 두꺼운 책이 부담스러운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독서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치열한 삶에 무너지고 있다면 이 책으로 '죽어가는 나'를 되살려 볼 것을 권유한다. 저자는 책의 〈서문(프롤로그)〉를 통해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Gustav Jung)의 명문장을 제시한다.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들의 결정체가 아니다. 나는 내가 선택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 문장은 칼 융에 관한 책을 읽어본 독자들에게는 낯익은 말이다. 다만 그 정확한 뜻은 모르더라도. 칼 융의 분석 심리학을 말하는 대표적 명언으로 자주 인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도 이 문장을 비로소 이해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 묵은 때를 벗겨내듯, 항상 들고 다녔던 오랜 짐을 벗어 던지듯 과거에 얽매인 나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고 밝힌다. 저자는 "오랫동안 완벽함을 좇았고, 닿을 듯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끝없는 경주를 벌이는 것처럼 학창 시절에는 100점 혹은 통과를 목표로 했고, 직장에서는 실수 없는 인재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세상의 기준표에 나는 낙제하고 말았다. 사회가 말하는 완벽함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갔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삶은 멀어져갔다."(p.3~4) 그런데 흥미롭게도 삶에 대한 괴리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건 존 레전드(John Legend)의 노래 가사였다고 털어놓는다. 어쩌면 저자가 살아온 여정이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의 삶일 것이다. 

"All your perfect imperfection.(당신의 모든 완전한 불완점함.)" 저자는 〈All of me〉에 나오는 가사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다 홀로 삶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토록 불완전하고 불안정했던 삶은 고유한 삶으로서의 완전함을 채워 가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저자가 숨기려 했던 결함과 상처는 오히려 독특한 빛깔을 완성해 주는 요소였으며 과거의 모든 경험은 비료가 되어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저자의 이같은 경험을 발판 삼아 오랫동안 공부하고 연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치료와 자기계발을 병행하는 독자들을 위해 모델을 제시한다. 이 책에는 인간의 불완전함이 만들어 낸 심리 현상과 삶, 그리고 죽어 가는 자신을 소생시켜 주는 단초가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방치하고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던 사람들이 과거를 딛고 새롭게 출발하는 발걸음을 내딛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은 쓰였다. 

저자는 먼저 스스로에게 우리는 진정 나를 보살피며 살고 있을까? 혹시 타인을 위해 희생하느라 바쁘고, 보이는 껍데기에 혈안되어 죽어가는 나를 방치하고 있진 않은가? 하는 질문을 해볼 것을 권유한다.

진정 행복한 삶을 꿈꾼다면 ‘끌려가는’ 삶이 아닌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진리를 깨닫기는 어렵지만 완벽주의에서 벗어난다면 우린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곪았던 상처를 치유하며 잃었던 생기를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인이 겪고 있는 증후군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책은 그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심리 현상 43가지를 큐레이션하며 삶을 고찰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준다.

이 책을 통해 여러 증후군에 대해 알아갈수록 독자들은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점검할 수 있다. 특히 결핍과 부합되는 현상을 발견한다면 지금 스스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마음의 병을 미리 예방할 수도 있으며 주변에 존재하는 소중한 이들을 지켜줄 수도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이 책의 여정은 새로운 활력을 얻는 새로운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진정한 성장을 경험할 수 있으므로 이 책을 통해 지친 심신을 달래고 새로운 삶의 기준점을 세울 것을 저자는 권유하고 있다.

저자가 책을 읽기 전의 독자들에게 미리 덧붙일 말은 “이제 남은 시간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다. 이제부터는 당신 홀로 삶이라는 여정을 떠나야 한다. 앞으로의 길이 언제나 평탄할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좋은 일만 가득하리라 기대하지 마라.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당신이 겪는 모든 감정과 경험은 결코 그저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라는 존재의 일부이며, 그 모든 조각이 모여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이룰 것이다. 복잡하고 모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당신만의 의미를 발견해 나가길 바란다.”는 말을 전한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43개의 심리 증후군이 증상과 치료의 방법 등에 대해 짤막하지만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설명하고 있다. 미국에서 분류되는 기준에 의해 증후군은 분류돼 있으며, 증상과 치료법도 이에 따른다. 가장 많이 들어본 「PTSD」가 가장 먼저 제시된다. 또 저자가 주 100시간씩 일하며 겪은 「번아웃」이 마지막 43번째 제시된다.

모두 심리적 병인을 갖고 있으며 나타난 증세의 원인과 정도가 다른데 대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저자는 이 점을 감안해 일반적인 견지에서 서술하고 있으며 저자 스스로 겪은 증세에 대해서는 덧붙이기도 한다. 먼저 '잊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다'는 「PTSD」다. 이 단어 PTSD는 단어의 원래 의미와 다르게 자주 사용된다고 한다. 그것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회사 생활이나 혹은 친구들끼리 장난치던 중 트라우마와 비슷한 느낌을 받으면 '아, PTSD 올 것 같아"라는 말을 종종한다. 〈PTSD〉의 진짜 의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줄여 부르는 말로, 극심한 외상 사건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장애를 일컫는다. 여기서 극심하다는 말의 의미는 전쟁, 자연재해, 심각한 사고, 폭력, 성폭력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의미한다. 실ㄹ제로 오프라 윈프리는 어린 시절 성폭력을 당한 경험으로 인해 생겨난 PTSD 증상과 오랫동안 싸워왔음을 밝히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다.

"그녀처럼 나도 11년간 PTSD와 싸워오고 있다. 2014년 5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직장을 구해 첫 출근을 앞둔 3일 전, 나는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호지킨 림프종이라는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가장 젊고 건강했던 25살 초여름, 내 인생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에도 왜 의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서울대학교 병원 맞은편 골목에 위치한 브런치 집을 찾아가 혼자 밥을 꾸역꾸역 먹었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 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하필 암 판정을 받은 날 혼자 밥을 먹게 되다니, 내 인생이 한없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일주일 뒤 치료가 시작됐다. 아프다는 소문이 자자한 골수검사를 거쳐 본격적인 항암요법까지. 의사 선생님께서는 처방받을 치료약이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약이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날 저녁, 스님처럼 반질반질한 대머리가 되었다."(p.11)

치료하는 동안 겪었던 정신적·육제척 고통은 극심했으며, 치료 후에 오는 '정서 조절의 어려움'을 항암 PTSD*로 얻게 되었다고 한다.

* 항암 PTSD : 암 관련 PTSD는 Cancer-Related(암 관련)이라는 단어를 축약해 CR-PTSD라 부른다.(저자 주)

여기에서 43개의 심리 증후군 모두를 소개할 수 없으니 몇 개의 이름만 나열하고 이해는 책을 통하길 바란다.(앞의 숫자는 책 목차에서 게재 순서 번호다) 2. 「만성피로 증후군」, 12. 「착한아이 증후군」, 13. 「야스퍼거 증후군」, 19. 「리플리 증후군」, 22. 「가면 증후군」, 26 「게슈탈트 붕괴 증후군」, 31. 「침묵의 나선」, 36. 「리셋증후군」, 37 「무드셀라 증후군」, 40. 「팅커벨증후군」, 41. 「방관자 효과」, 42. 「행복한 무지」 등이다.


내가 더 나아질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상황을 리셋시키는 것보단 결점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힘들다는 이유로 모든 걸 회피하고 있다면 당신에게 “비커밍”이라는 마법의 단어를 건네고 싶다. 사실 나는 인생의 성공에 대단한 방법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한 사람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믿음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는 것만큼 빠르고 강력한 해결책은 없기 때문이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은 절대 부인할 수 없다. 만약 인생을 바꾸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면, 그 간절함을 주변 상황이 아닌 나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데 쏟길 바란다. 결국, 모든 것은 당신의 몫이다. 그저 더 나은 무언가가 되어 가는 비커밍Becoming에 집중하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리셋될 것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나라는 사람을 이제까지 알던 그저 그런 사람으로 평가하지 말고,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봐주면 어떨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이미 그 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 작은 변화가 지속적으로 쌓이면 결국 큰 변화를 가져온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하는 일, 내가 품는 생각 하나하나가 나를 만들어간다. 그러니 부정적인 생각이나 회피 대신, 긍정적이고 대담한 태도로 삶을 이끌어가라.(p.186~187) - 「0부터 시작할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하겠는가」 중에서


저자 : 고윤(페이서스 코리아)


1년 6개월 만에 20만 팔로워를 확보한 1,000만 독자의 동기부여, 성공학 콘텐츠 전문가이자 대기업, 공기업, 고등교육기관 등 100여 회 이상의 강의경력을 가진 강연가이다. 현재는 다양한 이력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삶을 회복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2030 성공학 전문가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20대에 걸렸던 혈액암과 투병 과정을 통해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으며 가장 절망스러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력뿐만 아니라 만족감Wholeness을 채우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pacerskorea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 흔들리는 인생을 감싸줄 일흔일곱 번의 명시 수업
장석주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는 50년 가까이 글을 써온 시인이자 작가인 장석주의 명시 해설서다. 특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친 마음에 다시 한 번 삶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시들을 추려 모아 시의성도 매우 탁월하다. 저자가 시를 쓰기 시작할 무렵 시와 삶의 관계를 확실하게 연결시키는 동기부여가 된 시들이 많아 시인의 삶에 대한 시선을 느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왜 시가 필요한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깊게 생각해볼 단초를 제공한다. 이 책은 '만추'로 표현되는 이 시기에 읽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하게 시인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다는 독자의 생각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명시'가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올 때 저자 특유의 느낌과 경험을 살짝 귀띔하는 문학적 센스로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천 개의 벼랑이 있고, 천 개의 벼랑을 넘으려면 천 개의 희망이 필요할 테다. 하지만 시(詩)는 현실에서 아무 쓸모도 없다. 시는 그토록 무용하지만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p.127)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자신의 문청(문학 청년) 시절을 잠깐 되돌아본다. "고양이가 오듯이 시가 왔다. 시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왔지만 그건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고, 끔찍한 아름다움이 태동하는 순간이었다."고 저자는 읊조리듯 털어놓는다. 시는 그 순간부터 저자에게 생동하는 기쁨이자 살아야 할 이유였다. 시가 생의 복잡함을 헤치고 첫 번째로 달려오던 그 파릇하던 시절, 저자의 마음에는 티끌이나 불순함 따위는 단 한 점도 없었다고 회고한다. 자신의 생애에서 워낙 오래 전의 일인 듯 "시 한 편을 얻을 때마다 기쁨으로 날뛰었겠지"라고 표현한다. 저자가 열다섯 살, 열일곱 살, 스무 살 때이었으니 이해할 만하다. 저자의 이 표현은 지금은 그때의 순수함도, 생동감은 잃어버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당시 저자는 "시가 내게 어떻게 왔던가?"라는 자문에 "릴케가 기쁨에 젖은 목소리로 첫사랑을 노래하듯 나는 노래했을 거다"라고 자답한다.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 햇살처럼 꽃보라처럼 / 또는 기도처럼 왔는가. // 행복이 반짝이며 하늘에서 몰려와 /날개를 거두고 / 꽃피는 나의 가슴에 걸려온 것을······" 시는 햇살, 꽃보라, 기도였다고 말한다. 시가 저자의 메마른 가슴에 빗방울과 씨앗을 뿌린 것이다.

앞서 독자가 언급한 시 한 편을 얻을 때면 기쁨으로 날뛰었을 저자가 이제는 순수성과 생동감에서 빛이 조금은 바랬을 것으로 추측했던 이유가 우리 사회의 풍요로움과 관계가 깊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충격적 고백을 과감하게 한 이유는 시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지 않고, 세상을 바꾸지도 못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희망을 속삭여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망가지고 부서진 채로도 살아갈 수 있음을 나지막이 읊조리는 유일한 언어, 시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살짝 비틀어 말한 것으로 이해했다.

저자는 이제 출간한 책이 100권을 넘고, 50년 가까이 시를 읽고 써왔다. 시인들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번에 쓴 시 담론집인 이 에세이에 흔들리는 어른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저자가 77편의 명시와 해설을 담았다. 나태주, 백석, 칼릴 지브란, 메리 올리버 등 전 세대가 추앙하는 작품을 정성껏 가려 뽑고, 저자의 사색과 통찰이 더해진 글을 더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시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삶과 시를 연결한 해석은 장석주가 보여주는 시와도 맥락이 일치한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현대시는 어렵다"는 이유로 읽기를 거부하고 그래서 점점 잊어지게 되었다라는 사실을 되돌아보기에 저자 장석주의 이 시 담론은 매우 적절하다. 저자는 독자의 이 개인적인 변명을 다 이해한다는 듯 대학 입시의 카드를 꺼내든다. 오로지 정복의 대상이었고 다른 해석이 적용되지 않던 대입 수험생 시절처럼 시를 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저 읽고 음미하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시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독자의 자신감을 조금이라도 일으켜 세워준다. 현실이 각박하고 마음에 여유가 느껴지지 않을수록 시와 가까워져야 한다는 저자의 마음을 완전 공감한다. 이 책은 소설처럼 내리 읽어 치우는 것보다 한두 편이라도 이 가을 꾸준히 읽을 것을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시와 함께 사색하기 좋다는 '만추'라서 더 좋다"라고 언급한 독자의 마음을 궤뚫는 듯하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나뉘어 있다. 1장 〈‘괜찮다’는 말보다 더 깊고 진한 위로가 필요할 때〉, 2장 〈어느 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온 문장들을 읽는다〉, 3장 〈시란 그토록 무용하지만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것〉, 4장 〈어쩌면 시를 잊고 살았기 때문에 그토록 외로웠던 것일지도〉, 5장 〈그래서 모든 날, 모든 순간에 저마다의 시가 있어야 한다〉 등이다. 5장에 77편의 시가 수록된 이 책의 구성이 어떤 이야기 책처럼 유기적이지는 않다. 모두 저자가 읽었던 시 중에서 어떤 시는 영감을 주었고, 또 어떤 시는 감동을 주었다. 어떤 시는 삶의 즐거움을 전달하고, 어떤 시는 사랑의 감정을 뭉클하게 받았던 시들이다. 시 뒤에 해설처럼 붙어 있는 길지 않은 저자의 글들은 짧아서 임팩트는 오히려 강하다. 시인이어서 간결한 언어로 이미지 상징이나 은유로서 전달하려는 심상을 강렬해진다. 한 번 읽고 버릴 문장은 한 문장도 없다.

저자는 전작 『은유의 힘』을 출간하고 가진 인터뷰에서 "보통 시인들이 시집 한 권을 완성하는 데 짧게는 삼 년에서 보통 오 년, 길게는 십 년도 걸리거든요. 그걸 단숨에 집어 삼키려고 하면 안 돼요. 시인이 그것을 내놓기까지 창작과정에서 겪은 것들을 어렴풋하게나마 따라가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은 그 연장선 상에서 읽으면 글맛과 시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많은 이가 본인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고,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만 곱씹는다. 그리고 더 값진 것, 더 높은 자리를 얻는 데만 급급하고, 동시에 타인과의 비교를 놓지 못하며 혹여 뒤처지거나 부족해 보일까 봐 가진 것을 과시한다. 그렇게 애씀에도 불구하고 삶은 늘 허기지고 목마르며, 더욱더 마음의 성찰을 잃어가고 있다"고 저자는 이 시대를 진단한다.

그런 세상에서 힘겹게 버텨내는 우리들에게 이 책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는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투지를 불태우라고 격려하기도 한다. 저자는 ‘시’가 가진 힘을 믿는다고 밝힌다. 시가 가진 힘은 시인에게는 시를 쓰는 힘의 원천이다. 저자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삶의 이유를 확실하게 배운다.

“삶이 외롭고 허무하게 느껴질 때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같은 저자의 말은 힘들 때 마주하는 시 한 편이 누군가의 ‘괜찮다’라는 말보다 더 깊고 진한 위로를 준다. 또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바쁜 일상에 매몰돼 있던 생각과 감정의 확장을 꾀할 힘을 준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과잉의 시대에서 가장 짧은 문학이라는 성격 그 자체로 보여주는 덜어냄의 미학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저자가 시를 쓰는 까닭이다. 

책에 수록된 빈센트 밀레이의 시 「봄」은 '4월아, 너는 무엇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가?'로 시작한다. 봄은 새싹이 돋고, 생명은 약동하는 계절이다. 봄 풍경은 우리에게 희망을 노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이 시를 읽을 때면 저자는 뒷골이 송연해지고 소름이 돋았다고 밝힌다.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새싹이 돋는 봄이 아닌 ‘구더기가 죽은 이의 머리통을 갉아먹는 광경’의 봄을 직시하라고 시는 명령한다. 생명이 돋아나는 그 계절에도 죽음을 되새길 것을 요청하며 봄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저자의 시 「밥」도 이런 시작(詩作)의 예를 보여준다. “한 그릇의 더운 밥을 얻기 위하여 /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라는 구절이 있다. 먹고사는 일의 고달픔, 즉 살아남기 위해 택한 부조리한 타협과 현실에의 안주 그사이를 ‘밥 한 그릇’에 비유해 표현한 것이 아주 절묘하다. 

또 사랑의 쓸쓸함과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는데, 「치자꽃 설화」는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어깨를 보며 /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라는 구절을 통해 감정의 과잉이 아닌 감정의 절제 사이에서 더 큰 슬픔이 번져나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더불어 시는 꼭 시적 의미나 깨달음만 던져주지는 않는다. 윤동주의 시 중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는 「소년」의 '하늘을 들여다보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라는 시구를 되뇌면 단순한 읽기를 넘어 색채가 주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끼게 되고,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라는 구절을 곱씹다 보면 우리말이 낼 수 있는 소리와 표현의 신비로움까지 알게 된다. 그렇게 내 마음에 와닿는 시구를 읊다 보면 자연스럽게 번잡함은 고요함으로, 불안감은 평온함으로, 그리고 일상 속 멈춰 있던 감각이 새롭게 물들게 된다.

1장 첫 글은 월트 휘트먼의 시 『풀잎』에 관한 저자의 해설이 조금 붙어 있다. 

인생은 당신이 배우는 대로 형성되는 학교이다. 

당신의 현재 생활은 책 속의 한 장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지나간 장들을 썼고, 뒤의 장들을 써나갈 것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저자이다.

사람이 자기 조국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왜 국경에서 멈추는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사상을 하늘 위해 불로 새겨놓은 것처럼 그렇게 사고하라.

진실로 그렇게 하라.


휘트먼은 원시 자연의 모습에서 인간의 우애와 사랑과 죽음 및 종교 등에 관한 새로운 애상을 힘찬 리듬으로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근대 자유시의 선구적 작품이다. 휘트먼은 정식 교육은 조금밖에 받지 못했으나, 사환·인쇄공·교사·신문기자 등을 전전하는 가운데 서부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책에서보다는 민중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민중 시인이기도 하다. 이 시는 미국 민주주의와 서부 개척의 정신을 밑바탕이 되었다고도 평가된다. 

저자 장석주는 이 시가 삶의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다고 평한다. 저자는 이 시집 『풀잎』을 미국의 가장 위대한 시라고 표현하면서, 그는 진실을 옹호하고 악에 용기 있게 맞서라고 주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대숲 아래서」(나태주)는 조촐한 산골 생활에 자족하며 사는 사람의 참된 생각으로 가득 찬 시다. 달빛, 대숲, 밤안개, 달님, 우물이 어우러진 시를 읽으면서 나 역시 참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디 한 군데 삿된 생각이 스며들지 않은 시, 한 점 오욕이나 티끌도 묻히지 않은 시, 이런 무욕한 시는 순수하게 산 이만 쓸 수 있다. 읽고 나면 머리를 찬물로 헹군 듯 맑아지는 시, 삶의 올바름으로 이끄는 시다. 이게 좋은 시가 아니라면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 스무 살 무렵 이 시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좋은 시란 좋은 삶에서 나온다는 걸 벼락같이 깨달은 탓이다.(p.214~215)


쉼보르스카는 시 「두 번은 없다」에서 사물과 현상에 대한 그의 관찰은 모호함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는 평이한 소재를 다룰 때조차 투명한 관찰로 명석한 시를 빚어낸다.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라고 노래한 시구도 명석해서 한 점 모호함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두 번은 없다”는 것은 인생의 한 핵심을 꿰뚫는다. 누가 두 번의 생을 꿈꾸는가? 우리의 생에서 반복되는 하루는 없다. 태어나서 사는 동안 똑같은 입맞춤, 똑같은 눈빛을 만날 수는 없다. 우리의 존재함은 돌이킬 수 없는 일회성으로만 견고하다. 우리 존재가 숭고하고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일회성으로 휘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라고 썼을 테다.(p.218)


저자 : 장석주(張錫周)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시인, 에세이스트, 인문학 저술가. 그밖에 출판 편집자, 대학 강사, 방송 진행자, 강연 활동으로 밥벌이를 했다. 현재 아내와 반려묘 두 마리와 함께 파주에서 살고 있다. 1955년 1월 8일(음력),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다. 나이 스무 살이던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하고, 스물 넷이 되던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문학평론이 입상하면서 등단 절차를 마친다. ‘고려원’ 편집장을 거쳐 ‘청하’출판사를 직접 경영하는 동안 15년간을 출판 편집발행인으로 일한다.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학교, 명지전문대에서 강의를 하고, 국악방송에서 3년여 동안 [문화사랑방], [행복한 문학] 등의 진행자로도 활동한다. 2000년 여름에 서른여섯 해 동안의 서울생활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적한 시골에 집을 짓고 전업작가의 삶을 꾸리고 있다. 한 잡지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소장한 책만 2만 3,000여 권에 달하는 독서광 장석주는 대한민국 독서광들의 우상이다. 하지만 많이 읽고 많이 쓴다고 해서 안으로만 침잠하는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다.

스무 살에 시인으로 등단한 후 15년을 출판기획자로 살았지만 더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자 업을 접고 문학비평가와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다. 급변하는 세상과 거리를 둠으로써 보다 잘 소통하고 교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성에 있는 호숫가 옆 ‘수졸재’에 2만 권의 책을 모셔두고 닷새는 서울에 기거하며 방송 진행과 원고 집필에 몰두하고, 주말이면 안식을 취하는 그는 다양성의 시대에 만개하기 시작한 ‘마이너리티’들의 롤모델이다.”

저서로는 『몽해항로』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일요일과 나쁜 날씨』, 『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이상과 모던뽀이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일요일의 인문학』,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고독의 권유』, 『철학자의 사물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시간의 호젓한 만에서』,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공저) 등이 있다. 애지문학상, 질마재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귀신 들린 아이 캐드펠 수사 시리즈 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 『귀신 들린 아이』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21권이 18년에 걸쳐 출간됐다고 하지만 각 권마다 독립된 사건을 다루니만큼 어느 책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다만 독자처럼 가톨릭이나 기독교를 잘 모르는 독자들은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이나 지명 및 역사적 용어 등은 미리 알아두는 것이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실명으로 나오는 도시, 성당, 수도원 및 수도원장 이름 등에 대해서 헛갈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별도로 백과사전이나 교회용어사전을 찾아 뒤질 필요는 없다. 이 책 뒷 부분에 주(註)를 저자 엘리스 피터스가 따로 지면을 할애해 별도로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 『귀신 들린 아이』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서기 1140년 9월 중순, 슈롭서의 두 영주, 즉 슈루즈베리 북쪽에 사는 영주와 남쪽에 사는 영주가 같은 날 수도원으로 심부름꾼을 보내왔다. 각각 자기 집안의 아들을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넣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 아이는 교단으로 들어왔고, 다른 한 아이는 거부되었다. 수도원 측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었다." 저자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는 신에게 자신을 의탁한 수도사이며,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전직 군인이자, 약제학 전문가이다. 이러한 캐드펠의 삶의 이력은 덜리 지역 약국의 약 조제사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해군으로 참전했던 저자 엘리스 피터스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처럼 보인다. 캐드펠 수사의 인간적 따스함과 영적인 깊이 역시 작가 자신의 성숙한 내면을 반영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 잉글랜드 슈롭셔주에 위치한 수도원으로, 원래 성 베드로에게 헌정된 작은 목조 교회였으나 11세기 후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두 사도에게 헌정한 석조 건물로 개축되었다.

저자 엘리스 피터스는 시리즈 전편을 통해 중세 영국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듯한 치밀한 묘사,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희로애락을 충실히 구현했다. 이 시리즈에서는 인간에 대한 신의 연민을 닮은 탐정 캐드펠의 시선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독자에게 중세의 수도원에서 저잣거리로, 안개 낀 다리 밑에서 허브밭과 약제실로 종횡무진 여행하는 재미와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어느 날 귀족 가문의 젊은 청년 메리엣이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며 수도원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이 청년은 수도사가 되기에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그의 표정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했고, 수도원의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며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밤마다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나고, 이를 목격한 다른 수도사들은 그의 영혼이 고통 속에 갇혀 있다고 믿는다. 특히 메리엣이 악몽을 꾸는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점차 커져간다. 메리엣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있는 듯 보였고, 그의 이상한 행동은 수도원 전체에 불안을 안겨준다.

이 와중에 왕의 특사로 활동하던 한 성직자가 인근 지역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성직자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던 터라, 그의 실종은 지역 내에서 큰 논란이 된다. 실종된 성직자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그의 행적을 마지막으로 본 이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한다. 메리엣의 이상 행동과 실종된 성직자의 사건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직감한 캐드펠 수사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조사에 나선다. 수차례의 탐문 끝에 캐드펠 수사는 귀족 가문 내에서 벌어진 갈등과 정치적 음모,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된 비극적인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게 된다.


"제 형태를 잃지 않은 채 숯으로 화한 통나무들이 굴러떨어지면서 주위에 매캐한 재의 연기를 피워 올리는가 싶더니, 나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메리엣의 발치께로 굴러떨어졌다. 얼핏 보아서는 식별하기 힘들 만큼 까맣게 그을리고 갈라진, 바싹 마른 가죽으로 된 물건. 기다란 앞부리에 변색된 버클이 고정되어 있는 승마화였다. 그 승마화에서 길고 딱딱한 것, 불에 타 너덜거리는 넝마들 사이로 상아처럼 하얗게 빛나는 어떤 것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메리엣은 영문을 모르고 한동안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p.180~181)

저자는 신에게 자신을 의탁한 수도사이며,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전직 군인이자, 약제학 전문가인 캐드펠 수사의 요즘 말로는 탐정이나 수사관의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캐드펠 수사는 약초를 이용한 범죄부터, 당대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 내전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까지, 중세 유럽의 사회적 배경과 정치적 갈등을 손에 잡힐 듯 잘 파악하고 있다. 중세의 수사는 모든 일의 중심이 수도원에 의해 처리되고 수도원이 일반인들의 중심에 있다. 종교적 중심일 뿐 아니라 경제·사회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 수도원 중심의 중세 사회는 이 비밀스러운 공간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였다. 심지어는 전쟁에도 관여하는 권력의 집합체이기도 했다. 살인 사건이나 정치적 역학 관계의 중심엔 늘 수도원이 있는 사회다. 이를 저자 피터스는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들은 고도의 지적 게임 같은 살인 미스터리의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중세 시대의 복잡한 사회 구조와 인간의 존재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추리소설을 탐독하는 독자에게 독특한 재미와 대체 불가능한 감동을 선사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 엘리스 피터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으로 참전했다고 알렬져 있어 이 경험이 소설 집필에 많은 도움이 됐을 거란 추정은 쉽게 가능해진다.


"청년 곁에서 그의 어깨를 장난스레 두드리는 연인 또한, 청년과 짝을 이룰 만한 여자였다. 쭉 뻗은 날씬한 몸매에 제 오빠를 닮은 외모. 오빠의 훤칠하고 매혹적인 면면이 우아하고 화사한 아름다움으로 탈바꿈한 것 같은 그런 인상이었다. 타원형의 얼굴은 반투명해 보일 정도로 고왔으며, 눈은 오빠 못지않게 맑고 푸르렀다. 붉은빛이 감도는 곱슬곱슬한 금발이 그녀의 동그스름한 얼굴 양쪽을 감싸고 있었다. 이것으로 메리엣이 성직자가 되고자 한 이유는 충분히 설명된 셈일까? 메리엣은 사랑에 좌절한 나머지, 그리고 형의 행복에 실낱만큼의 슬픔이나 고통의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으려는 마음에 여자들이 없는 세계로 미친 듯 도피하려 한 것일까? 하지만 그는 제 고통과 번민의 상징을 수도원으로 가지고 들어오지 않았는가. 그게 과연 이치에 맞는 일일까?"(p.126~127)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인간의 도덕적 갈등, 죄책감과 구원을 다룬 작품으로, 엘리스 피터스의 이야기 구성력과 깊이 있는 심리 탐구가 눈에 띄는 소설이다. 여덟 번째 작품 『귀신 들린 아이』는 수도원에 들어온 신입 견습 수사의 어두운 비밀에 접근해 들어가는 스토리다. 저자 피터스는 인물들의 내면적 갈등, 중세 사회의 다양한 모습 등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 창출에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다. 이들 캐릭터를 통해 인간 본성과 도덕적 선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인기를 끈 이유다.

수도원에 새로 들어온 견습 수사의 괴성과 고함으로 수도원 내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 소동이 벌어지는 와중에 슈루즈베리를 지나던 한 사제가 돌연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연히 캐드펠 수사는 사건을 밝히는 일에 뛰어든다. 캐드펠은 동떨어진 두 사건이 서로 연관돼 있다고 예감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정황 속에서 캐드펠 수사는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귀신 들린 아이』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신앙, 그리고 죄책감이다. 메리엣이라는 인물은 수도원에 들어옴으로써 과거의 죄로부터 도망치고자 했지만, 죄책감은 그를 밤마다 괴롭히고 그의 심신을 망가뜨린다. 캐드펠 수사는 사회의 법과 질서보다는 인간의 감정과 내면의 진실에 더 깊은 가치를 두고 사건을 해결해나가고자 하는데, 그가 고심한 부분은 인간이 자신의 잘못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진정한 용서와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뛰어난 이야기 구성력과 심리적 깊이가 돋보인다. 추리소설적 재미뿐 아니라, 도덕적 선택의 중요성, 죄책감과 용서의 의미를 다룸으로써 짙은 여운을 남기는 수작이다. 캐드펠 수사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고 기지 넘치는 다면적 매력을 한껏 뿜어낸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역사와 추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는 데 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스티븐 국왕과 모드 황후 사이의 왕위 계승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던 12세기 중세 잉글랜드로, 정치적 음모와 전쟁의 여파가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소설 속 사건들을 일으키고, 전쟁과 혼란 속에서도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던 캐드펠은 각종 살인사건과 비극의 진실을 좇게 된다.

사건 해결을 주도하는 캐드펠 수사는 완전무결한 순백의 성직자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갈등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치밀한 추리력과 과감한 행동력을 발휘하면서도 연민이 가득한 시선으로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끌어안으며, 인간의 심리, 선과 악, 정의와 용서의 복잡한 본질을 탐구한다. 이러한 캐드펠 수사의 인간적 면모는 단순한 사건 해결을 넘어 죄와 용서, 정의와 자비 등 삶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캐드펠 수사가 신념과 연민 사이에서 매순간 갈등할 때마다 독자들도 그 고뇌를 함께 느낄 수밖에 없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인문학적 성찰까지 아우르는 역사추리소설의 원형이자 ‘지적 미스터리’ 고전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이 같은 특성 때문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 22개국에서 번역 소개된 밀리언셀러로, 영국 BBC에서 드라마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장장 18년 동안의 집필 끝에 1994년에 완성됐으며, 국내에선 1997년에 처음 소개됐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되는 개정판은 쉽게 읽히는 문장, 긴박하게 전개되는 스토리, 치밀한 추리의 세계, 생생한 묘사 등 원텍스트의 묘미를 최대한 살려 편집하였으며, 세련된 디자인으로 역사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만족시킬 것이다. 이후 21권까지 순차적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그건 사실입니다.” 캐드펠은 조용히 대꾸했다. “그 아이가 자신의 죽음을 얼마나 가까이 느끼는지 직접 얘기해보고도 모르겠습니까? 하긴, 그건 당신도, 또 우리 모두 마찬가지지. 다들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죽음이라는 병을 안고 나오잖습니까. 태어난 날부터 내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셈이에요.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 그 시간을 보내느냐 하는 겁니다. 당신도 그 아이의 말을 들었죠. 그는 자기가 피터 클레멘스를 살해했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소문이 퍼지지 않았을까요? 그건 나와 마크 수사, 그리고 휴 베링어를 빼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메리엣은 사법 당국에서 자기를 중범으로 감시하고 있으며, 그 헛간이 곧 감옥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당신에게 분명히 얘기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애스플리. 그의 자백을 들은 우리 셋 가운데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들 그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마음 깊이 확신하지요. 그 아이의 아버지인 당신이 그 얘기를 들은 네 번째 사람이자 그가 죄인이라 믿는 유일한 사람입니다.”(pp.274~275)


저자 : 엘리스 피터스


움베르토 에코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으며 애거사 크리스티를 뛰어넘었다고 평가받는 세계적인 추리소설 작가 엘리스 피터스(본명 에디스 파지터 Edith Pargeter)는 1913년 9월 28일 영국의 슈롭셔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덜리 지역 약국에서 조수로 일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녀가 쌓은 이러한 다양한 경험과 이력은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39년 첫 소설 『네로의 친구 호르텐시우스』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63년 『죽음과 즐거운 여자』로 미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에드거 앨런 포 상을 받았다. 1970년에는 '현대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치사와 함께 '마크 트웨인의 딸'이라는 호칭을 얻었으며, 1977년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을 발표하며 시작된 캐드펠 수사 시리즈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81년에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The Chronicles of Brother Cadfael)의 한 권인 『수도사의 두건』으로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주는 실버 대거 상을 받았다. 영국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수여받았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문학적 성취와 함께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드러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고전으로 손꼽힌다. 1995년 10월, 생전에 지극히 사랑했던 고향 슈롭셔에서 여든두 해의 생을 마쳤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