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던 눈빛에 칼날이 보일 때
김진성 지음 / 델피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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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운전은 이제 '예비 살인'에 해당하는 행위로 간주될 정도로 법률도 변했다. 사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민족이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배웠고, 산업화 시대까지는 음주 및 음주 사고에 대해 무척 관대했다. 웬만하면 훈방 혹은 간단한 과태료 부과의 처벌을 받았다. 산업화 시대까지는 오직 일만 하는 직장인·노동자는 퇴근 후 으레 회사 근처에서 술 한잔씩 하며 피로도 풀고 스트레스도 잠재웠다. 그땐 그래도 자가 운전자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대부분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 등을 이용해 귀가했기 때문에 음주 사고가 비교적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지갑이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가장 첫 번째 유혹은 자동차였다. 이른바 '마이카 시대'라는 언론의 보도가 잇따를 정도로 승용차가 직장인들의 첫 번째 희망이었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한 학원이나 교습소가 떼돈을 벌 정도로 경제 성장의 과실을 챙기는 첫 번째 확인 물품이 자동차가 된 것이다. 그때는 운전학원이 모두 소화하지 못해 개인적으로 운전 교습을 해주는 뜨내기 강사들도 많았다. 독자가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운전 면허를 땄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주와 운전은 궁합이 맞지 않는다. 음주하면 두려움이 많이 사라진다. 술 마시고 운전하는 습관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렇게 우리를 길들여 갔다. 술 먹어도 다음날 출근을 하기 위해 차를 가지고 가야 한다는 논리가 같이 마신 사람들 사이에는 묵언의 합의가 된 셈이다. 더욱이 인명 사고가 아니라면, 음주운전 전과가 없을 경우 훈방 혹은 과태료였다. 음주 수치가 법이 정한 기준보다 높게 나올 경우지만. 사실 음주 측정기에 기록된 수치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늘 높다. 또 역과 사고를 냈을 경우 재판에 가더라도 사망 사고가 아니라면 초범의 경우 훈방이나 벌금 조치됐다. 재판정에서도 형량의 경감이 이뤄진다. 사망 사고만 아니라면 집행유예 혹은 벌금형이 대부분이었다. 형량 경감의 이유는 하나같이 과음으로 '심신미약' 상태라는 판결문에 적시된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음주운전 사고가 너무 잦은 것이 사회 문제로 부상됐다. 경찰의 음주 단속이 수시 혹은 정기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도 생각보다 쉽게 음주운전은 줄지 않았다. 요즘처럼 술 마시면 운전하지 않는다는 의식은 21세기 들어서야 생긴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언론도 음주운전 사고에 대해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것은 21세기 들어서였다. 음주운전이 가장 나쁘게 인식된 것은 죄 없는 피해자가 다치거나 사망할 경우 쉽게 보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음주 운전 사고는 한 가정을 파괴한다는 음주 운전 방지 캠페인이 벌어졌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마른 하늘에 날벼락일 수 있다. 이후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갈수록 커졌다. 음주운전이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례법'(윤창호법)도 생겼다. 음주운전을 하다 사람을 다치게 하면 현행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강화됐다. 또 음주운전의 면허정지 기준도 혈중알코올농도 0.05%에서 0.03% 이상으로, 면허취소 기준은 0.1%에서 0.08% 이상으로 크게 강화됐다. 보도에 따르면 이후 음주운전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음주운전의 어두운 그림자는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옛날 산업화 시대에는 사회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인명 사고 없는 사고 정도로는 훈방이나 과태료였지만 이제는 공인일 경우 더욱 처벌 수위가 높다. 음주운전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경찰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지난 5월 9일, 가수 김호중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음주 상태로 차량을 운전하다가 택시와 접촉사고를 일으킨 후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음주운전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후의 행동들이 추가적인 법적 문제로 이어지면서 집중 조명됐다. 사건 초기 김호중은 도주 후 매니저와 통화했고, 대신 자수하게 하여 조직적인 증거 인멸 시도를 했다고 검사는 지난 30일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했다고 보도에 난 적이 있다. 그의 거짓 진술과 증거 인멸 시도, 조직적 은폐가 드러나 무거운 형이 구형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소설 작품 『비틀거리던 눈빛에 칼날이 보일 때』는 음주운전과 관련한 신약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신약 개발의 윤리적 잣대를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주인공 유정인은 현재 법정 의무교육 강사를 빙자하여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며 신약 ‘알모사10’을 홍보하고 판매한다. 이 ‘알모사10’만 복용하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체내 알코올을 10분 만에 없애주는 약이다. 마치 떠돌이 약장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약이 개발되리라고는 독자들도 에상치 못했을 것이다. 소설의 등장인물들도 당연히 반신반의하며 광고 내용에 콧방귀를 뀌지만, 얼떨결에 ‘알모사10’의 효과를 본 사람이 생겨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만취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판매한 ‘알모사10’을 먹자 금세 혈중알콜농도 0%로 떨어져 천운으로 불시 음주 단속을 피했다는 정 사장의 경험담이 입소문을 탔다. ‘알모사10’의 영업소에는 전국 애주가들의 러브콜이 잇따른다. 마음껏 술을 마신 후에도 얼마든지 운전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들에게 면죄부가 생기며 당연히 ‘알모사10’의 판매는 급증한다. 

독자를 비롯한 일반 사람들은 믿지 않듯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 같은 '마법의 약'이 개발 가능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과연 ‘알모사10’은 첨단 과학 기술의 결정체일까? 그렇다면 ‘알모사10’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질문이 이 책의 전개 핵심이다. 제주도에서 발생한 참혹한 교통사고 현장을 보도하는 아나운스멘트로 시작된다. 

"어젯밤인 7월 24일. 제주시 애월읍에서 만취자가 운전하던 빨간 스포츠카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SUV와 정면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두 차량에 탑승했던 총 7명의 인원이 모두 숨졌는데 SUV에 탑승한 사람들은 생애 첫 여행을 떠나온 일가족이었습니다."(p.7)

빨간 스포츠카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SUV와 정면충돌한 이 사고로 두 차량에 탑승했던 7명이 모두 즉사한다. 특히 SUV에는 생애 첫 가족 여행을 떠난 일가족이 타고 있었으며, 사건 후에야 스포츠카의 운전자가 만취 상태였음이 밝혀진다. 이 소설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이고 빈번히 발생하는 음주 운전을 배경으로 단 한 번의 복용만으로 음주 운전 단속의 족쇄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해주는 신약 ‘알모사10’을 판매하는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탐구하는 새로운 범죄 스릴러다. 주인공 유정인은 왜 ’알모사10‘을 판매하는 것일까? 그는 어떤 인생의 궤적을 그리며 살아왔던 것일까? 이 작품을 끌어가는 주인공이 왜 ‘알모사10’을 판매하게 됐을까? 독자들의 궁금증은 신약 개발의 윤리적 의무에 맞추어 이야기는 전개된다. 단순한 범죄의 서사를 넘어, 독자들에게 신약 개발의 윤리성을 고민하게 하는 데 집필 의도가 담겨 있다고 독자에게는 읽힌다. 또한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분노를 적나라하게 부각시킴으로써 음주 운전의 폐해 역시 심각한 문제로 부상한다. 저자 김진성이 피해자의 시선에서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은 감정적 여운을 남길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이 작품의 저자 김진성은 이 작품을 출간하며, 전공인 화학공학과 소설의 접목을 시도해 소설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술을 마시든 좋아하지 않든 음주 폐해를 줄이려는 노력이 다각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신약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될 뿐 피해자와 공동 사회의 고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윤리적 문제를 저자는 제기한다. 돈이 가치 척도이자 삶의 목적인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고발성 폭로도 저자의 집필 의도에 포함되어 있으리라고 이해되는 대목이 곳곳에 나타난다. 이로써 흥미로운 소재인 신약 ‘알모사10’는 저자의 독창적인 소설적 시도로 읽힐 수 있다. 동시에 저자가 소설에서 창조해 낸 신약은 독자들에게 과학 기술 발전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재정립할 것을 함축하며 은근히 신약 개발에 대한 '윤리성'을 압박하고 있다. 음주 운전 약뿐일까?

이 작품은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2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사고 외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한 단란한 가정이 음주 운전의 피해로 산산조각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이 등장한다. 어렵게 고생하며 키운 아들이 대기업에 취직하자,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지인들에게 한 턱을 낸다. 이 자리에 아들이 잠시 들러 감사의 인사하려던 참에 한 주취자가 몬 자동차가 축하연이 벌어지는 식당을 들이받고, 이 사고로 아버지는 사망하게 된다. 아들이 울부짖으며 절규하지만 운전자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경찰이 출동해도 버틴다. 10분쯤 머뭇거리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 알코올 냄새를 풍기지만 음주 측정기에 나타난 알콜 혈중농도는 제로(0)다. '알모사 10'을 복용한 운전자는 음주운전 부분에서는 무죄가 된다. 이 사건으로 신약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약은 불티나게 팔린다. 약의 부작용을 알면서도 약을 판매하는 영업직원, 대기업에 입사한 아들의 돌변, 이를 파헤치는 형사의 심리 변화, 약을 판매하는 종교단체의 의도 등 복수와 원망이 뒤섞이며 사건이 전개된다. 음주 운전에 관한 각자의 상처들이 부딪히며 상황은 나락으로 빠져든다. 신약 '알모사 10'의 가격은 백만 원이 넘지만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짚어내고 있다. 

음주운전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벌써 수십 년이 되었지만, 특별법 등 각종 음주운전 폐해를 홍보하고 계도해도 눈에 띌 만한 효과가 없는 음주운전 단속. 아직도 느슨한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 등이 어우러지면서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신약 개발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피해자들의 시선에서 독자들에게 음주 운전 가해자에 대한 복수와 피해자에 대한 구원의 카타르시스를 주려는 저자의 의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나를 바라보는 여러분들의 눈빛은 매우 다릅니다. 극과 극으로 나뉘어 있죠. 그러나 나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날 어떻게 바라보든 나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을 지킨 거니까요.”(p.210)


저자 : 김진성


극작가 및 소설가. 서울의 한 대학에서 화학신소재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가릴 선, 들 거」로 2022년 우수과학문화상품 스토리 부분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그즈음부터 이야기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대부분 좋아하지만 「블랙 미러」 시리즈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이야기에는 열광한다.

인스타그램 주소 @cham.jin_2rule.sung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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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예찬 - 문학과 사회학의 대화
지그문트 바우만.리카르도 마체오 지음, 안규남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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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문학 예찬』은 유대계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한 세대 뒤인 이탈리아 문학 편집자로 유명한 리카르도 마체오가 주고 받은 편지를 근간으로 엮은 책이다. 이 책은 두 사람이 사회학과 문학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면서 관련된 문화를 분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자처럼 문학 이론이나 사회학 공부를 하지 않은 분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깊어지면서 은유와 심층적 지식이 자주 튀어 나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문학이나 사회학에 관련된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기가 어렵지만은 않다. 이유는 리카르도 마체오가 현대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질문으로 꺼내면 지그문트 바우만이 그에 답하는 서한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문학의 역할이나 사회학적 현상을 대하는 질문이 중심이 됐기에 응답자 역할을 하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상이 문학을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책의 표제어가 '문학 예찬'이 된 까닭이다. 다만 사회학자이자 세계적 석학인 지그문트 바우만이 쓴 편지 중에는 사회학의 역할과 문학과의 관계에 대해서 통찰력 있는 응답에 오늘날 문학의 위기라 일컬어지는 시기에 매우 의미 있는 문학의 미래를 제시하는 글이 자주 눈에 띈다. 이 책의 부제 「문학과 사회학의 대화」로 정한 이유일 것이다. 

인문적인 문학과 과학에 바탕을 둔 사회학이 매우 이질적인 분야로 여겨지는 가운데 현대에는 두 카테고리가 한데 묶여야 할 운명임을 슬며시 내비친다. 문학과 사회학은 비슷한 문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한데 묶일 수 없는 각각의 영역을 가진 분야로 독창적 분야로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현대로 접어드는 시기에 두 개의 분야를 한데 묶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깨달음이 양쪽 분야 모두에서 발아한다. 이로써 문학과 사회학은 매우 논쟁적인 문제가 된다. 많은 논평가들이 문학과 사회학을 근본적으로 다른 분야로 보았지만, 바우만과 마체오는 이 두 분야가 공통의 목적과 주제로 함께 묶여 있다고 주장한다. 즉 문학과 사회학은 연구 방법과 결과를 제시하는 방식에서는 차이가 많을지라도 결코 그 목적까지 상반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두 저자(이하 저자)는 오히려 그 차이점 때문에 서로 보완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는 것으로 본다.
소설가와 사회학자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기 세계를 탐구하고 각기 다른 유형의 '데이터'를 찾고 생산하지만, 그 생산물에는 공통된 기원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들은 의제·발견·메시지의 내용 등에서 서로에게 자양분을 주며 의존한다. 새로운 감각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와 소비의 물신주의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그들은 근본적인 실존적 질문을 다시 공적 의제로 가져온다. 문학과 사회학이 상대의 연구 결과에 주의를 기울이고 계속 대화하며 협력할 때, 비로소 인간 조건의 진실이 드러난다. 문학과 사회학은 함께해야만 전기와 역사, 개인과 사회의 복잡한 얽힘을 풀고 밝혀내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할 수 있다고 저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문학과 사회학이 사명과 사회적 영향뿐만 아니라 탐구 영역, 주제, 소재도 공유한다는 주장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주장이 옳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책을 펴낸다고 밝히고 있다. "문학과 사회학은 양자의 친족관계와 협력의 특징을 밝히려 시도할 때, '서로를 보완·보충하고 풍부하게 해준다. 문학과 사회학은 적대 관계는커녕(···) 경쟁 관계에도 있지 않다. 알건 모르건, 문학과 사회학은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그런 점에서 둘은 같은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에 따라 섣부른 판단이나 주입되거나 자신이 만들어낸 잘못된 생각들로 짜인 베일을 찢고 인간 조건의 수수께끼를 풀어내고자 하는 사회학자라면, 그리고 '시험관에서 태어나고 길러지는 호문쿨루스(homunculus)*의 오만하고 미심쩍은 '지식'으로 채워진 '진리'가 아니라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 실마리를 프란츠 카프카, 로베르트 무질, 조르주 페랙, 밀란 쿤데라, 미셸 우엘베크 같은 작가들에서 찾는 것이 가장 좋다"고 강조한다. 문학과 사회학은 서로에게 자양분을 제공하고 또한 둘은 서로의 인식의 범위와 한계를 밝히고, 서로가 저지르는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협력한다고 역설한다.

*호문쿨루스(homunculus) : 르네상스 시대의 연술사 파라켈수스의 저작에 나오는 아주 작은 인간. 시험관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며 모든 지식을 갖춘 상태로 태어난다.
저자는 자신들이 주고받은 편지가 주로 사회학적 관심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문학 이론을 펼쳐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문학 이론의 장구한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고 말한다. 저자가 다루고자 한 것은 예술과 인문사회과학 간의 생생한 다면적 관계 자체라고 단언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인간 조건에 대한 이 두 종류의 탐구가 공유하고 있는 목표, 서로에게 제공하는 자극, 서로 주고받는 것을 추적해 기록하기 위해 뜻을 함께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기쁨과 슬픔, 기대와 좌절 등 인간의 세계-내-존재 방식들을 추적해 기록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문학과 사회학이라는 두 종류의 문화적 생산물은 각각 자기 영토에 들어오려는 모든 신청자들에게 엄격한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각기 유일무이한 정체성과 영토적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하고 까다롭고 부담스러운 규정과 추방 조항을 성문화한다고 비판적 시선을 보인다. 규칙에의 순응이라는 기준에 따라 경계선 방책과 빗장을 엄청나게 높이 설치함으로써, 충분히 훈련되지 않았거나 계급 특권을 침식할 우려가 있는 신청자들은 아예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게오르그 루카치가 일찍이 1914년에 이러한 이원성을 멋진 표현으로 포착했다고 그의 문장을 인용한다. "예술은 항상 삶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한다. 형식의 창조는 불협화의 존재에 대한 가장 심원한 확인이다. (···) 그 존재가 완성된 형식 내에 있는 다른 장르들과는 대조적으로, 소설은 생성 과정에 있는 것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많은-아마도 대부분의-사회학적 연구는 완벽·최종·종결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루카치가 말하는 '다른 장르들'의 집단에 속한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또 사회학과 문학의 관계는 '형제나 자매간의 경쟁'에서 불 수 있는 온갖 특징들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모굪를 추구하면서 비교 가능한 상이한 유형의 결과들을 근거로 판단·평가·인정·불인정을 피할 수 없는 존재들 사이에 협력과 경쟁이 혼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임을 강조한다. 소설과 사회학은 동일한 호기심의 산물로 비슷한 인식적 목적을 갖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로써 소설가와 사회학자는 말하자면 공유주택에 산다고 비유한다.
이 책은 별도의 구분 없이 모두 12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각 장을 나눴다. 1장 「두 자매」, 2장 「문학을 통한 구원」, 3장 「진자와 칼비노의 비어 있는 증상」, 4장 「아버지 문제」, 5장 「문학과 공위기」, 6장 「블로그와 중개자의 소멸」, 7장 「우리 모두 자폐인이 되어 가는가?」, 8장 「21세기의 은유」, 9장 「트위터 문학의 위험성」, 10장 「마르고 습한」, 11장 「'일체화' 안에서의 건축」, 12장 「교육·문학·사회학」 등이다. 4장 「아버지 문제」는 마체오가 바우만에게 보낸 편지다. 마체오는 "오늘날 나약하거나 아이 같거나 부재한 아버지 안에 권위적인 존재로서의 아버지라는 옛 모델이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머리를 잡는다. 마체오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내용 중 '아버지'의 이미지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2판 〈서문〉의 내용을 교차 제시하며 아버지의 영향을 이야기한다. 강한 아버지, 책임감 있는 아버지로 듣고 보고 자랐는데 지금은 자식의 입장이 많이 변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자식은 모욕을 당하고도 가만있는 어머니는 거부하지 않지만, 모육을 당하고도 가만있는 아버지는 자식으로부터 "아버지답게 행동하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사랑이나 정의만이 아니라 완력이나 폭력도 사회관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자식은 "아버지가 공정과 사랑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강함의 측면에서도 자신과 가깝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전통은 패자로 간주되는 공정한 아버지보다 세상 사람들에게 승리한 불공정한 아버지를 선호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역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리어왕』에서 힘과 위신을 잃고 버림받은 아버지의 원형을 창조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p.89)

저자는 1968년 운동의 결과 중 하나는 아버지의 공격성 약화라고 지적한다. 68세대는 권위적인 아버지상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아버지는 지배적인 공격성을 버리고 다정하고 이해심 많은 친구로 자식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약한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강한' 아버지를 찾는 경향도 남아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권위는 민주화되었고, 아버지의 권력은 많은 측면에서 해체되었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잠재의식을 지배해 온 것이 몇 세대 만에 제거될 수는 없다. 아버지가 부재하고 새로운 질서로 전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구 사회는 적어도 잠재의식적으로는 여전히 가부장적 사회로 남아 있다."(luigi Zoja, 2 gesto, 2,000)
사회학(sociology)은 인간 사회와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인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가 창시했다. 콩트는 인간 사회도 자연세계처럼 자연과학적 방법과 동일하게 연구될 수 있다고 보고, 인간 사회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새로운 과학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사회학을 ‘사회 질서와 진보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명명했다. 콩트는 청년 시대에 생시몽의 비서였다. 그의 '실증주의 철학'은 현상의 표면적인 모습을 기술하는 것에 한정시키는 것을 '과학'이라 칭하기 때문에 자연과학이 축적한 대량의 데이터를 종합하는 데 노력했다. 그러나 그 입장은 결국, 주관적 관념론과 불가지론이 결합한 것으로, 그 종합도 정당한 것이라 할 수 없었다.

그의 견지는 자본주의를 인간역사의 정점으로 보고, 그 조화를 달성하는 길을 새로운 종교(인류교)의 선전에 있다고 해, 19세기 전반에 이미 고양된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노동계급의 운동, 이를 유지하는 사상에 대하여, 자본주의를 수호한 인물이다. 그의 사회학은 오늘날 마르크스와 루카치 등이 내세운 이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평가되고 있다. 후에 마르쿠제는 그의 저서 『이성과 혁명』에서 콩트가 헤겔을 파시스트 국가 건설에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한 것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문학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법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으로 마르크스주의 비평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들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와 독일의 사회주의자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논리에 이론상의 근거를 두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비평은 작가가 사고하고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는 경제적·계급적·이데올로기적 요소에 관심을 두는 한편, 그 결과물인 문학작품과 마르크스주의자가 그 시대의 사회적 현실로 보는 것과의 관련성에 특히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비평은 보통 전형적인 문학의 모방이론에 입각한다. 즉, 그것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고 불리는 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작가가 무엇을 모방해야 하는가를 말해 준다.(두산백과)

이 책의 번역자 안규남은 책 뒷 부분에서 〈옮긴이의 말〉을 통해 "바우만은 체험의 중요성을 역설하기에 그의 사회학적 작업에 문학과 예술이 중요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하다"고 말한다. 문학과 예술은 사회과학과 달리 대상의 진리를 그들의 실제 삶의 모습 속에서 포착하기 위해 개인이 주어진 상황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예리하고 구체적으로 표현·전달하기 때문이다. 바우만은 개인의 삶, 각자의 전기가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의 구조적 과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학·예술과 사회학은 서로 대화하고 협력해야 하는 형제 또는 쌍둥이라고까지 말한다고 밝히고 있다.
"근본적인 실존적 문제를 공적 의제로 만드는 것이 문학과 사회학의 공동 소명이다. 이런 문제를 찾아 제시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사회학은 일치한다. 즉 둘은 끊임없이 서로 보완하고 자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p.265) - 12장 「교육·문학·사회학」 중에서


저자 :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년 폴란드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가 소련군이 지휘하는 ‘폴란드의용군’에 가담해 바르샤바로 귀환했다. ‘폴란드사회과학원’에서 사회학을, 후일 바르샤바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54년에 바르샤바대학교 강사가 되었고,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활동했다. 1968년에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의 절정기에 교수직을 잃고 국적을 박탈당한 채 조국을 떠나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에서 잠시 가르치다 1971년에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영국에 정착했다. 1989년에 발표한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1990년에 정년퇴직 후 탈근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명성을 쌓았고, 2000년대에는 현대 사회의 유동성과 인간의 조건을 분석하는 ‘유동하는 현대Liquid Modernity’ 시리즈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1992년에 사회학 및 사회과학 부문 유럽 아말피상을, 1998년에는 아도르노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지금 유럽 사상을 대표하는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스투리아스상을 수상했다. 2016년에 최후의 서한집 『문학 예찬In Praise of Literature』을 내고, 2017년 1월에 타계했다. 주요 저서로 『액체 현대』 『리퀴드 러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레트로토피아』 등이 있다.


저자 : 리카르도 마체오

1955년 이탈리아 레체에서 태어났다. 볼로냐대학교 현대 외국어 및 문학과를 수석 졸업한 후 아스픽 모데나에서 상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에릭슨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지내다가 2014년 은퇴했다. 지그문트 바우만과 함께 『교육에 관하여』 『문학 예찬』 등을 썼다.


역자 : 안규남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칼 마르크스』 『간디 평전』 『민주주의의 불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위기의 국가』 『인간의 조건』 『평등은 없다』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으며, 『철학 대사전』 편찬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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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 - 나로 살아갈 용기를 주는 울프의 편지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신현 옮김 / 북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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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을 볼 때마다 우리 시인 박인환이 떠오른다. 그의 시 〈목마와 숙녀〉에 '버지니아 울프'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박인환은 우리나라 모더니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에서 언급되는 버지니아 울프를 동경했던 것 같다. 독자는 고등학교 시절 시인 박인환을 교과서를 통해 처음 알았고, 그의 시를 즐겨 읽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 후 폐허의 서울 명동에서 문우 등 예술인들과 교유하며 대한민국의 가장 비참했던 시절의 생활을 견뎌낸 시인이어서 기억이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그것보다는 그의 또 다른 시 〈세월이 가면〉은 곡까지 붙여 뒤에 한국인이 사랑하는 노래에 뽑힌 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중략)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하략) - 〈목마와 숙녀〉 일부


〈목마와 숙녀〉 싯구처럼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시인이 직접 밝히지 않는 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독자가 이해하기로는 숙녀와 버지니아 울프는 관련이 없다. 다만 시 발표 후에 문학평론가들이 싯구의 문맥상 다른 인물로 추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한 글을 읽은 적은 있다. 〈목마와 숙녀〉를 몇 번이고 읽어 보면 시의 분위기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나 작품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다만 모더니즘 시를 놓고 본다면 울프와 박인환은 같은 배를 탔다.

이 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는 버지니아 울프의 편지와 함께 3편의 에세이를 함께 묶었다. 편역자 박신현의 「자유, 우리 존재의 본질」이란 제목의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버지니아 울프는 많게는 하루에 여섯 통까지 편지를 보낼 정도로 편지 쓰기를 즐겼고 편지가 없다면 살 수 없을 거라고 고백했다. 그녀가 남긴 편지는 발견된 것들만 해도 4,000통 정도에 달한다. 편지에 대한 버지니아의 사랑은 이 섬세한 천재 작가의 영혼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었음을 뜻한다. 그녀로 하여금 편지를 쓰게 만드는 주요한 동기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다. 버지니아는 우정을 유지하고 회복하고 확장하기 위해서,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붙잡기 위해서, 그리고 뉴스와 가십을 주고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편지를 썼다. 

버지니아는 1882년 런던에서 태어나 제1,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어내고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계속되는 가운데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머리 위로 매일 적군(독일) 비행기가 공습을 위해 굉음을 내며 날아다녔던 공포가 일상화되었을 무렵이다. 이런 분위기는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왔던 버지니아의 정신질환을 재발가게 하고 끝내 그녀의 생을 앗아갔다.

이 책은 ‘자유가 우리 존재의 본질’이라고 말했던 그녀의 삶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96통의 편지를 직접 편역자 박신현이 직접 발췌해 엮고 번역했다. 버지니아가 연인 비타 색빌웨스트와 주고받은 편지 일부는 국내에 이미 알려진 바 있지만 그 외의 언니 바네사 벨, 남편 레너드 울프, 애정했던 에델 스미스, 소설가 캐서린 맨스필드와 같은 주변 예술가들, 독자들 등 다양한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국내에 소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편지는 작가가 되기 전인 1882년부터 1941년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유서까지 연대순으로 담았다.

이 책은 버지니아가 남긴 편지 96통을 연대순으로 엮어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에세이 3편은 〈부록〉으로 따로 실었다. 1부 〈자유(1882~1922년)〉, 2부 〈상상력(1923~1931년)〉, 3부 〈평화(1932~1941년)〉 등 시기에 따라 버지니아 울프가 갈망했던 키워드를 잡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부가 시작될 때마다 해당 시기에 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 설명에는 대부분 버지니아의 삶과 문학, 그리고 사랑과 평화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촘촘히 적혀 있어 그녀가 당시 시대를 얼마나 치열하고 외롭게 싸웠는지를 알 수 있게 기술됐다. 결혼하기 전 결혼에 관해 고민하고, 작가가 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자유로운 성 정체성을 고백하기도 한다. 또 소설에 대한 평가에 반응하고, 여성의 지위를 위해 투쟁하고, 런던의 평화를 소망하는 등 자신을 찾고, 자신에 대해 말하며, 나아가 세상의 변화를 꿈꿨던 인간 버지니아 울프가 편지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편지글인 만큼 수신인과 당시 상황에 관해 필요한 정보는 편역자 박신현이 각주로 섬세하게 실었고, 자유, 상상력, 평화에 관한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를 부록으로 담아 읽을거리를 더했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유란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진짜 나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이었다고 편역자는 말한다. 이를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상상력이 필요했고, 1, 2차 세계 대전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평화가 간절했다. 울프의 편지를 통해 독자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내면에 간직한 진실을 얼마나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 희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해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면 누구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울프의 말처럼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체적인 나로 살아갈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책의 맨 앞에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것, 바로 가까이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란 문장은 버지니아 울프의 내면 의식의 흐름을 무척 중요시 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버지니아는 진취적인 사상과 달리 우리에게 곱고 가지런한 머리를 한 옆얼굴로 더 많이 기억되는 듯하다.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외쳤고, 레너드 울프와 결혼한 후에도 자유로운 연애 감정을 즐겼으며, 자신의 다양한 성 정체성을 공공연하게 밝히기도 했다. 1부 〈자유〉에서 결혼하기 전 레너드 울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청혼에 대해 안 할 이유가 없으니 하긴 하겠지만 당신에게 성적인 느낌을 받지 못 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오늘날의 우리가 봐도 꽤 도전적이다. 이 편지(1912. 5. 12)는 자신의 감정을 숨김 없이,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는 내가 당신과 함께 있을 때 하루 종일 서로를 쫒아다니는 이런 감정들에도 불구하고 영구적이고 성장하는 어떤 감정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당신은 이것이 나를 당신과 결혼하도록 만들 것인지 알고 싶겠죠. (중략) 나는 때때로 생각합니다. 만약 당신과 결혼한다면, 나는 모든 걸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적인 측면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지 않을까? 며칠 전 내가 당신에게 잔인하게 말했듯이 나는 당신에게서 육체적인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내가 단지 돌멩이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었어요. 며칠 전에 당신이 내게 키스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당신이 나를 돌봐 주는 모습은 나를 압도할 정도입니다."(p.42~43) 

버지니아는 모두가 알다시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애쓰는 등 사회적 억압에 맞서 자신을 찾고, 글로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자기만의 방에 고요히 앉아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과 가감 없이 교류하고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여성 참정권 운동에도 참여했고 협동경제여성협회를 도왔고 좌파 운동에 앞장선 남편 레너드와 함께 계급 평등과 노동자들의 현실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나는 속물인가?)라는 글을 썼을 만큼 버지니아는 중상류층 여성으로서 자신의 내면화된 계급 의식을 의식하고 성찰했다고 편역자 박신현은 강조한다. 그녀의 편지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야기다. 

"버지니아는 한국의 기혼 여성들과 달리 두 하녀, 넬리와 로티가 함께 살며 가사 노동을 해 주는 가운데 자신의 사회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18년 동안 고용했던 요리사 넬리 박솔을 해고하게 된 힘든 과정을 생생히 기록하기도 한다. 버지니아는 언니에게 비타를 묘사하면서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귀족의 모습이 자신에게 얼마나 멋지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 설명하고 에델에게는 '왜 나는 신사 계급보다 노동자를 훨씬 더 꺼릴까요?'라고 묻는다. 하지만 버지니아는 블룸즈버리의 자유분방한 매력을 훨씬 더 좋아하지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공적인 정신을 지닌 종류의 사람들이 얼마나 가치 있고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p.377~378)

2부 〈상상력〉은 결혼 후 다양한 작품들을 창작하고 출간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데 ‘비난은 불쾌하고 찬사는 유쾌하지만’ 같은 솔직한 표현부터 책을 내고 나면 거기에 다들 한마디씩 하고 싶어 해서 피곤하다는 등의 인간적인 면모는 울프와 한 발 더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또한 언니, 연인 할 것 없이 공동 작업에 즐거워하는 모습은 울프가 얼마나 관계를 중시하고 또 일을 사랑했는지 엿볼 수 있다. 

3부 〈평화〉는 제2차 세계대전 상황의 런던이 배경이다. 1차 세계 대전에 이어 두 번째 거대한 전쟁을 맞이하게 된 울프를 비롯한 당대 사람들이 겪었을 불안감은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이 시기 편지에서 울프는 전쟁으로 조카를 잃은 슬픔, 자신이 처한 일촉즉발의 상황을 꽤 자세히 설명한다. 이런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울프가 선택한 죽음은 어쩌면 영원한 평화를 향한 간절함은 아니었을까.

버지니아의 편지는 그녀가 캐서린 맨스필스와 T. S. 엘리엇,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같은 동시대 작가뿐만 아니라 자크 라베라트와 로저 프라이 같은 화가나 미술 비평가, 그리고 여성 음악가 에델 스미스 등 다양한 장르의 에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함으로써 자신의 소설 창작에 얼마나 폭넓고 다채로운 예술적 감각을 부여할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버지니아가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였을 뿐만 아니라 남편 레너드와 함께 직접 호가스 출판사를 세워 운영함으로써 훌륭한 문학 작품들을 생산해 낸 출판인으로서 뛰어난 면모를 발휘했다는 점이다. 버지니아의 편지는 호가스 출판사가 대기업의 인수 제안을 거부하고 버지니아의 작품을 비롯해 그들이 원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택해서 출판할 수 있는 자유와 독립성을 지켜 낸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버지니아는 현실 세계에서 예술적 자립을 확보하고 모더니즘 문학의 흐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버지니아는 사랑과 성적 정체성에 있어 최대한 대담하고 솔직해지고자 했다. 그녀는 평생에 걸쳐 여러 남성과 사랑했고 또 여러 여성과 사랑했다. 물론 레너드와 맺은 부부로서의 결속과 사랑이 그녀의 삶에 매우 귀중했고, 비타 색빌웨스트와 나눈 육체적 경험이 세간에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사실 버지니아는 항상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다고 편역자 박신현은 지적한다. 다만 육체적 탐닉이 아니라 이런 성적인 자극은 버지니아가 창작을 하는 데 있어 필요했다고 여겨진다는 것. 에델 스미스에게 보낸 편지(1930. 8.)에서 자신이 함께 춤을 추는 상대의 손을 잡은 채 '남성의 몸 또는 여성의 몸과 접촉하면서 절묘한 쾌락을 느끼며' 이렇게 끊임없이 자극받지 않는다면 자신이 『등대로』 같은 작품을 쓰고 싶게 만드는 뭔가를 얻을 수 없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주요한 점은 당신이 그걸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게 언어로는 건널 수 없는 만의 머나먼 저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는 거라고 믿어요. 오직 숨 막히는 고뇌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사실을요."(p.188)


저자 :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여성들의 적극적인 예술 활동 참여, 동성애자들의 권리, 전쟁 반대 등 빅토리아시대의 관행과 가치관을 공공연히 거부하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을 앓았다.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출항』, 『밤과 낮』, 『제이콥의 방』, 『댈러웨이 부인』, 『파도』,『현대소설론』 등과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속편 『3기니』 등이 있다. 1927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등대로』를 발표하며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올랜도』, 『물결』, 『세월』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왔던 울프는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신 질환의 재발을 우려하여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역자 : 박신현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석사 학위와 영어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캐런 바라드의 행위적 실재론과 신유물론을 바탕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작품을 분석한 논문 <행위적 실재론으로 본 울프의 포스트휴머니즘 미학>(2020), <버지니아 울프 소설에 구현된 기술미학과 환경미학>(2020), <회절과 얽힘의 텔레커뮤니케이션>(2021), <캐런 바라드의 육체의 윤리와 정치: 자기?만짐과 다가올?정의>(2022)를 발표한 바 있다. 단독 저서로 ≪공유, 관계적 존재의 사랑 방식≫(2021), 공저로 ≪신유물론: 몸과 물질의 행위성≫(2022)과 ≪생태, 몸, 예술≫(2020)이 있고, ≪강철혁명≫(2011)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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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선의 퍼스널 컬러 - 성공을 위한 컬러 전략
하주선 지음 / 소금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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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하주선의 퍼스널 컬러』의 표제어에 쓰인 '퍼스널 컬러'의 사전적 풀이는 '타고난 개인의 신체 컬러'로 사용되는 용어로 독자는 이해한다. 저자 하주선은 퍼스널 컬러란 한마디로 '나만의 색'으로 정의한다. "자연에서 나오는 모든 물체에는 저마다 가지고 있는 색이 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인종에 따라 피부색과 톤이 다르고, 같은 인종이라 해도 눈동자, 헤어 컬러 또한 저마다 다르다. 다양한 고유의 색을 지닌 개인에게 같은 톤과 색상의 메이크업, 옷, 헤어 컬러를 적용하면 어떨까? 어딘가 부자연스럽지 않을까? 오직 나만이 가진 고유한 색감에 기초해 나에게 어울리고 더욱 돋보일 수 있게 어우러지는 색이 바로 퍼스털 컬러이다."(p.10)고 저자는 설명한다. 

사실 퍼스널 컬러란 개념이 명확히 정립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저자 하주선이 처음 우리나라에 이 개념을 구체적으로 확산하게 한 주인공인 듯싶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정확한 시기나 연대를 명기하지 않았지만 "한적한 소도시에 퍼스널 컬러 전문교육원을 개원할 때 소속 기관, 지인은 물론 가족도 반겨주지 않았다. 퍼스널 컬러라는 용어도 대중적으로 사용되지 않아서 지인들은 무조건 반대부터 했다. 솔직히 말하면 '되겠냐?'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술회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 나라에 도입된 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퍼스널 컬러 콘텐츠가 저자에게는 매우 매력적이었고, 드레이프(진단 천) 퍼스널 컬러 진단 과정이 신비하기도 했으며, 본인의 색을 찾은 고객이 만족하는 모습에 희열이 있었다고 말한다. 특히 퍼스널 컬러 진단 이벤트 행사장에서 부모님보다 아이들이 더 퍼스널 컬러에 대한 이해도 높았고 관심도 더 컸다고 털어놓는다. 이에 퍼스널 컬러에 관심을 갖는 연령층이 넓어진 것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사실 성형수술이 일반화되어 있는 요즘 가끔씩이지만 부작용을 호소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성형수술 수요가 크게 늘자 성형전문 의원들이 수입이 높다는 이유(대부분 의료보험 혜택서 제외되기 때문)로 강남 일대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당연히 시술과 수술을 많이 하기 때문에 부작용 등의 사례가 늘었다. 과열되면서 언론에서도 관심 있게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심한 경우 정신적 충격으로까지 이어져 삶의 질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도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강남의 성형외과나 미용시술 등은 여전히 성업중이라고 한다. 아름다워지고 싶어서 하는 많은 미용시술(대부분 의료보험 혜택 제외) 중 부작용이 없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퍼스널 컬러 콘텐츠는 단순히 색 선택 후 간단한 진단 후 '자신만의 색'으로 적절한 꾸밈이 자연스러운 멋이 되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현재 부작용 많은 시술과 수술보다는 오히려 자신만의 색깔의 자연미에 가깝도록 하는 퍼스널 컬러를 널리 확대하는 전문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독자로서는 잘 모르는 분이지만 저자는 스에나가 타미오의 말을 인용한다. "컬러는 부작용이 없는 최고의 안정제다." 퍼스널 컬러 이미지 메이킹은 성장기 학생, 우울증 등을 포함한 정서·심리적 곤경자, 각종 스트레스 노출자 등에게 최상의 안정적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주장이다. 최상 컬러를 찾는 과정에서 메이크업, 패션, 헤어 컬러, 웨딩 이미지 선택을 통해 심리적 안정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 저자의 믿음이다. 또한 외모 트러블, 정서·심리적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당사자 또는 고용주의 직업적 필요 등 향후 퍼스널 컬러 콘텐츠는 소비자의 관심도 향상 및 보편화 경향에 따라 전망이 밝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퍼스널 컬러를 처음 접하거나 전문가과정 입문자가 퍼스널 컬러 기초 이론을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목적을 두고 출간됐다. 또 가장 중요한 부분인 퍼스널 컬러 진단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퍼스널 컬러 학습과 교육을 돕기 위해 저자 하주선이 집필했다. 이 책은 세 개의 부(Part)로 나뉘어 있다. 퍼스널 컬러의 정의 등을 담은 1부 〈퍼스널 컬러란?〉, 색에 대한 기본 이해를 위한 2부 〈모든 것은 색채에서 시작된다〉, 색채와 개인의 조화를 이룬 3부 〈퍼스널 컬러를 나에게 물들이다〉 등이다. 책 중간에 〈쉬어가기〉와 뒷 부분의 〈부록1-골격분석 체형 진단〉, 〈부록2-퍼스널 컬러 한눈에 보기〉도 눈길을 끈다. 1부에서는 입문자가 퍼스널 컬러의 개념, 역사, 효용성에 대해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의 주안점을 두었다. 2부는 까다로운 색채학 중 퍼스널 컬러와 연관성이 높은 부분만을 발췌해 쉽게 설명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어 마지막 3부에는 '퍼스널 컬러 진단'에 관한 이야기다. 퍼스널 컬러의 가장 중심 사상이고 이 책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룬다. 퍼스널 컬러의 이론적 배경, 4계절 컬러, 12가지 계절 컬러에 관한 서술은 퍼스널 컬러 진단의 신비한 세계를 독자들과 입문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간단하게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만 찾기만 한다면 그 어떤 성형수술보다 쉽고 저렴하며 간단하게 아름다워지는 방법이 바로 퍼스널 컬러이다. 퍼스널 컬러는 요즘 앱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앱을 통해 자신의 퍼스널 컬러를 찾다 보면 모호한 결과가 나온 적이 있을 수 있다. 디지털을 통해 화면이 육안으로 보는 색채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연색에 가깝게 색을 내는 데에는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배웠던 명도, 채도, 톤 등 색채의 다양성이 아직까지 디지털이 그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색채 인식은 매우 개인적이어서 심지어 전문가를 찾아가도 다른 결과를 얻은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애매한 상황을 피하고 자신만의 진정한 퍼스널 컬러를 찾기 위해서는 사실 색에 대한 기초 지식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술' 하면 초등하교 이후 거의 접해보거나 깊게 생각하지 않는 일반 사람들이 색채 디자인을 알기에는 쉽지 않다. 저자는 기초적인 색에 대한 이해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직관적인 예시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책에는 다양한 팔레트와 더불어 영화와 실제 생활에서 실제 쓰이는 다양한 색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퍼스널 컬러를 이해하기 위한 첫 단계인 색에 대한 이해를 마쳤다면 본격적으로 자신의 색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다. 간단한 진단 테스트와 더불어 단순한 웜톤과 쿨톤이 아닌 사계절 색, 더 나아가 가장 완벽히 자신의 색을 찾을 수 있는 12가지 계절별 분류를 접할 수 있다. 옐로우 기반의 웜톤과 블루 기반의 쿨톤에서 더 세분화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분류는 많이 접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계절 분류만으로는 적확한 퍼스널 컬러를 찾았다고 할 수 없다. 같은 봄 컬러라도 개인에 따라서는 모호하게 어색한 색이 있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같은 봄 컬러에서도 명도와 채도의 차이에 따라 봄임에도 여름 혹은 겨울 컬러와 비슷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느낌은 들지만, 그중 가장 따뜻한 봄 트루, 따뜻하지만 중성적인 따뜻함이 있어 의외로 시원한 블루가 어울리는 봄 브라이트 등 이렇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2가지 각각에 맞는 색상과 더불어 실제로 적용해 볼 수 있는 색 조합과 메이크업, 헤어 그리고 코디의 예시까지 자세히 알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좋아하는 색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상황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퍼스널 컬러를 이해하고 나면 오히려 도전할 기회가 된다. 사람은 의외로 익숙한 것을 선호하고 기존의 선택을 자주 바꾸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실 좋아하는 색이 실제 좋아서인지 혹은 다른 색을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아서인지 판단할 기회가 없어서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퍼스널 컬러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객관적 분석을 통해 자신감과 매력을 높이는 것이다. 퍼스널 컬러를 통해 더 나은 나를 발견해보는 일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뿐 아니라 삶의 질도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를 더 매력 있게 표현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색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퍼스널 컬러는 미술과 색채학의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누가 언제 처음 만들었다기보다는 연도별로 어떤 식의 담론이 주로 오갔는지를 통해 퍼스널 컬러의 시작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20세기 들어 주로 화가, 디자이너들에 의해 색상이 인간의 외형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단순히 미학적인 탐구라는 관점에서만 색상이 분석되었다. 1930년까지는 초기 퍼스털 컬러의 초석이 다져진 시기로, 이때부터 예술가들과 패션 전문가들은 어떤 색상이 개인의 외모를 더 매력적이고 돋보일 수 있게 하는지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ㅇ니물이 요하네스 이텐이다. 그는 독일의 바우하우스에서 1919~1923년 강의를 하며 컬러 이론과 예술 교육에 토대를 마련해 현대의 디자인 영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컬러 이론에는 지금의 퍼스널 컬러에서 사용하고 있는 많은 요소가 담겨 있다. 이텐은 머리카락 색과 피부색, 동공의 색상 등 컬러와 외모의 연관성을 연구했고 이런 조화가 잘 어우러졌을 때 초상화에서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60년대까지 주로 할리우드에서 배우들의 이미지에 맞는 적절한 색상을 찾기 위해 컬러 컨설턴트들을 고용하는 것이 유행했다. 1990년때까지는 아메리칸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한 수잔 케이질은 자신이 활동했던 예술, 패션, 디자인 분야의 경험을 토대로 피부톤이나 머리, 눈동자 색상과 어울리는 색을 연구했고, 이후 퍼스널 컬러의 16개 색상 분석 방법을 개발해 색상 팔레트에 접목했다.

1980년대에는 캐럴 잭슨이 쓴 『Color Me Beautiful』이 큰 인기를 끌어 퍼스널 컬러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 책에서 캐럴 잭슨은 간단하게 4계절 컬러에 따라 퍼스널 컬러를 분류하여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했다. 최근에는 기존의 4계절 분류법 외에 12계절 분류법도 활발하게 활용 중이고 계절적 분류 외에도 각 개인의 고유한 특성에 맞춤화된 분류법을 사용하는 경향도 생겨나고 있다. 기술 발전과 더불어 디지털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시기가 되자 사람들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앱(App)을 통해 퍼스널 컬러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소중한 색을 인간이 인식하고 빨강, 주황, 노랑처럼 구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빛이 있기 때문이다. 물체에 반사된 빛의 파동에 따라 색을 구분하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색에는 색상, 명도, 채도라는 3가지 구성 요소도 있다. '10색상환'에서는 퍼스널 컬러의 핵심인 쿨톤, 웜톤의 토대라고도 볼 수 있는 한색과 난색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 색상환을 통해 각각의 원색들을 유사색과 보색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까지 나온 것들은 대개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도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바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색조'라는 말로 들어가면 '틴트' '쉐이드' '톤'이라는 말이 나온다. 화장해 본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일 것이다. 톤은 기본 색상에 화이트를 섞는 것을 의미하는데, 틴트값이 높을수록 파스텔 색상처럼 색이 부드러운 느낌을 지닌다. 톤은 명도와 채도를 종합적으로 사용한 개념으로 명도와 채도 각각의 값에 따른 강약과 농담 등에 의해 느낌이나 분위기가 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적 화가들이 가장 곤욕을 느낀 것은 물감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이유는 특별한 물감은 원료가 되는 광석이나 식물 등이 매우 귀해서 비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색은 왕가에서만 사용될 정도로 왕가의 지정색이 될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바다, 하늘, 물, 시원함, 청량함 혹은 창백함, 차가움, 우울함, 축축함 등이 연상되는 파란색은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처음 발명된 색이다. 특히 인류가 최초로 화학물질을 합성해 만든 색이라고도 불리는 이집션 블루는 석회, 구리, 모래 등의 광물들을 고온으로 구워내 얻었는데 제작 과정이 너무 까다로워 로마에서 잠깐 인기를 끌었지만, 대중적으로 오래 사용되진 않았다. 이후 청금석이라는 귀한 재료를 통해 울트라마린이라는 색을 얻어내긴 했지만 역시 청금석 자체가 워낙 비싸 왕이나 귀족 그리고 그들에게 후원받는 예술가들만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여서 화가들을 중요한 부분에만 울트라마린으로 채색을 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저자가 중점적으로 다룬 부분이 3부 〈퍼스널 컬러를 나에게 물들이다〉이다. 책은 겨울을 '브라이트' '트루' '딥'으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다. 겨울 브라이트는 색이 시원하고 채도도 높아서 보색, 다크 뉴트럴과 라이트한 강조색 혹은 라이트 뉴트럴과 밝은 강조색처럼 콘트라스트가 강한 색들끼리의 눈에 띄는 색상 조합이 좋다. 겨울 브라이트 팔레트 안의 색들끼리 조합도 나쁘지 않고 특히 검은색과 하얀색의 사용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선택의 폭이 상당히 넓다. 책에서 겨울 라이트의 메이크업과 헤어 컬러, 스타일링 등을 설명한다. 겨울 스타일링의 포인트는 무채색 조합, 혹은 강렬한 원색 대비 조합이다. 먼저 겨울 팔레트의 강력한 무기라고도 할 수 있는 블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다고 저자는 권유한다. 특히 겨울 트루 헤어 컬러로는 따뜻한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 다크 애쉬 브라운이나 다크 브라운, 쿨 브라운 블랙, 블랙 같은 색상이 겨울 트루에 어울리는데, 튀는 헤어 컬러보다는 얼굴 이목구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컬러가 겨울 트루의 시원하고 뚜렷한 느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캐러멜 브라운이나 스트로베리 블론드, 허니 블론드처럼 금발의 따뜻하고 밝은 컬러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인다. 곧 다가올 초겨울을 대비해 독자가 임의로 '겨울 브라이트'를 선정해 여기에 실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겨울 트루 스타일링으로 영화 〈크루엘라〉의 포스터를 보면 블랙 & 화이트로 이루어진 헤어 컬러와 피부톤, 의상에 레드립 겨울 트루의 교과서 같은 스타일링을 볼 수 있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영화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찾아보길 권한다.


저자 : 하주선


· 하주선 퍼스널컬러교육원 & 진단센터 대표

· 퍼스널컬러지도사 민간자격 발행교육원 운영

· 영상미디어센터 미용 부문 자문위원 위촉

· 원주교육지원청 학생퍼스널컬러 협력 기관

· 제20회 KASF2023 국제미용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위촉

· MBC 강원365 퍼스널컬러 소개 2회 방송 출연

· LG헬로비전 퍼스널컬러 오픈 문화강좌 방송 출연

· 강의 경력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기관·단체·기업 특강 다수

­ 소상공인진흥공단 희망리턴패키지 소상공인 컨설팅

­ 중원대·상지대·한림대·강릉원주대·세경대 등 대학 강연

­ 육군 36사단 군인·장병 대상 퍼스널컬러 특강

­ 초·중·고 학생과 교직원 퍼스널컬러 특강 다수

· 연세대학교 정경대학원 창업학 석사

· 뷰티케어과·뷰티미용예술학과 전공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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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가, 뭉클 - 매일이 특별해지는 순간의 기록
이기주 지음 / 터닝페이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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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인생이다. 지우개를 쓰지 말고 실수한 선을 그냥 놔둔 채 그대로 거침없이 그려간다. 지금은 마음에 남아 괴롭지만 나중에는 실수한 선이 나만의 독특한 문양이 된다. 그렇게 인생은, 그림은 예측할 수 없어 아름답다.”(p.176) 이 책 『그리다가, 뭉클』의 저자 이기주가 자신의 초상화를 옆 페이지에 두고, 쓴 문장이다. 그림을 잘 아는 독자들은 물론, 그림이라곤 초등학교 다닐 때 숙제처럼 그린 〈그림일기〉 이외에는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는 독자들에게도 이 문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그림을 인생에 비유한 이 문장이 가슴에 남는 것은 우리들의 삶 가운데 쓸데없는 것처럼 보여도, 사는 동안 언젠가는 도움이 되었던 경험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 뜻 없이, 혹은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지만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했을 때의 패배감이나 상실감을 극복하는 데 힘이 된다. 저자는 전작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글의 품격』 등 독자들에게 베스트셀러 작가로 각인돼 있다. 저자는 『언어의 온도』에서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났다면 '말 온도'가 너무 뜨거웠던 게 아닐까. 한두 줄 문장 때문에 누군가 마음의 문을 닫았다면 '글 온도'가 너무 차갑기 때문인지도 모를 노릇이다."고 썼다. 또 『말의 품격』에서는 경청, 공감, 반응, 뒷말, 인향, 소음 등 24개의 키워드를 통해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낸 바 있다. 서점가에서는 "고전과 현대를 오가는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이기주 작가 특유의 감성이 더해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전한다."고 평가했다. 『글의 품격』에서는 "인터넷에서 세상의 온갖 더러움에 오염된 문장으로 악취가 진동한다."며 "말과 글을 다루는 유일한 인간이 스스로 말과 글의 품격을 높인 언어생활을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화가이기도 한 저자 이기주는 글과 말의 품격을 높일 것을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주문한다. 이유는 그림이나 말과 글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는 존재인데 품격이 낮다면 스스로를 낮추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37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지닌 유튜브 채널 〈이기주의 스케치〉의 주인공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기주가 자신의 그림과 함께 펴낸 에세이다. 굳이 그림에세이라고 표현할 필요도 없다. 내용은 모두 우리 일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이기주는 오늘도 그렇게 말과 글, 그림을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늘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그림 그리다가 뭉클함을 느끼는 신기한 경험을 누구나 마주할 수 있음을 가만히 전하면서 시작한다. 어떤 그림을 그릴까 소재를 찾는 것부터 구도 잡기, 선 긋기, 색칠하기까지 그림을 그리는 과정 하나하나마다 인생의 이야기가 배여 있다. 구도를 잡는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색을 칠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인생 또한 자기만의 단계를 밟아나가야 함을 알려주고, 실수한 선을 지우기보다는 그냥 놔두는 용기가 인생에서도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이끌어낼 것을 기대한다. 그림과 인생이 만나는 순간 우리의 일상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이 책 『그리다가, 뭉클』은 가능하게 해 준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그림은 인생과 참 닮았다."는 느낌을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매일 스쳐 지나가던 편의점, 날마다 오가던 골목길, 평범한 나무 하나에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순간 일상은 특별해진다는 저자의 확신은 이 책 곳곳에 드러나 있다. 일부 문장에서는 새로운 곳을 방문한 여행자가 모든 순간을 놓치려 하지 않는 것처럼 그림 그리기는 지루한 일상을 여행으로 바꿔주기에 매력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매일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풍경과 사람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변해 가는 계절, 주말에 찾아가 시간을 보낸 카페 등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하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과 그런 시간들을 그저 흘려보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나의 하루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기를, 일상의 모든 것들이 소중해지는 작은 변화를 일으키기를, 저자는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작이 이 책 『그리다가, 뭉클』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책에 담긴 글과 그림은 특별한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저자가 강조하는 까닭이다. 책의 맨 앞에 〈작가의 말〉을 통해 "그림과 글은 부지런히 쓰는 일이다. 그래서 정신 건강에 딱 좋은 운동법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그리려면 마음이 움직여야 하고 글을 쓰기 위해 의미를 찾게 되면서 마음을 뒤적거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다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다면 우리 일상의 모든 것들이 꽤나 소중해지는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경험을 가져보기를 저자는 기대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 별도의 부분 구분 없이 13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 그리면서 알게 된 것들」 「그림은 손재주가 아니라 눈재주다」 「어련히 그릴 수 있는 건 없어」 「아름답게 보는 재주」 「소실점, 만날 수 없어서 사라진다 했을까?」 「인생이 선 긋기 같더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지우개의 쓸모」 「외워 그리는 그림, 외워 사는 인생」 「빛은 어둠으로 그린다」 「그림은 시간으로 그린다」 「물은 사라지더라도 추억은 스며든다」 「그림은 나이로 그린다」 등이다. 다만 이 13개의 장 앞에 「나는 이렇게 그림을 그린다」라는 제목으로 저자의 그림 그리기를 밝히고 있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 우리들이 보통 그림 수업을 받을 때 일상적으로 거치는 과정을 상세하게 저자 자신의 입장에서 쓴 글이다. 다만 그림 그리는 동안 집중하고 의식적으로 되풀이 반복할 때 가지는 느낌이나 의지에 대해 우리 삶에 덧대어 부연 설명하고 있다. 

"선을 긋는다. 두렵지만 틀려도 그 위에 다시 그으면 되니까 용기를 내야 한다. 삐뚤어진 선도 내 그림의 일부다. 흠 없는 인생은 없는 것처럼. 웬만큼 그렸으니 더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자꾸만 지우개를 써서 되돌리려 할 때도 있지만 이는 종이만 너덜너덜해질 뿐이다. 그림이나 인생이나 지우는 것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중략) 빛을 그린다. 보이지 않는 빛을 그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림자를 그리는 것이다. 밝은 것을 그릴 때는 주변을 아주 어둡게 그리면 된다. 지금 어둠이 그려지는 시간을 살고 있다면 동시에 눈부시게 밝은 빛이 그려지고 있는 중이다. 그림 그리다가 뜬금 위로가 차올라 울컥해진다. 수채 물감으로 채색을 한다. 물이 길을 만든다. 수채 물감이 그 길을 따라 흐른다. 물이 마르면 종이에 흔적이 생기는데 이게 수채화다. 시간을 잘 써야 한다. 수채화는 시간이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이다."(p.12~14)

그림 그릴 때 주의 사항을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얼 그릴지 정하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주제를 정했다고 바로 그리기를 시작하는 건 아니다. 우선 막 쓰는 종이를 펴고 아무거나 그린다. 손 근육을 푸는 방법이다. 이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는데, 먼저 구도를 잡아야 한다. 종이 위에 가로, 세로 3줄씩 9등분하여 좌표를 긋고 어디에 배치할지 표시하면 그리기가 훨씬 쉬워진다. 인생이든 그림이든 갈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같은 것이 있다면 쉬워지는 법이다.

1장 「그림 그리면서 알게 된 것들」이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면서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 사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크게 보면 선을 긋고, 소실점을 잡고, 구도를 잡거나 어려운 수채화 채색을 한다. 일반적인 과정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그림이 인생을 닮았다고 느꼈다. 그림 그리다가 몇 번을 울컥했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그림은 근심을 멈추게 한다고 밝힌다. 머리와 손이 집중하니까 다른 생각이 끼어들 겨를이 없기에 자연스럽게 어떤 생각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의 고흐의 대사 일부를 인용한다.

"왜 그림을 그리나요?" 친구인 닥터 폴이 묻는다.

고흐가 이렇게 말한다. 

"생각을 안 하려고요. 생각을 멈추면 그제서야 느껴져요. 내가 안과 밖 모든 것의 일부라는 걸요."

저자는 자신의 경우를 덧붙여 설명한다. 인생을 알 만한 나이가 됐지만 아직도 어설프고 서툴 때가 많다. 칭찬이나 배려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서부터 식당을 예약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일까지 내가 무엇을 잘 못하고 사는지 오히려 그림을 그리면서 알아채는 일이 많아졌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1장에는 여러 항목의 글들이 그림과 함께 실려 있다. 그림이 함께 실려 있어 그림과 함께 보아야 할 듯하다. 

'작품명 : 생명나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반복되고 겹쳐 있는 무한한 수의 선들은 생명의 순간을 표현한다. 수많은 선들이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밝음'과 '어두움'의 굴곡이 만들어지는데 이건 마치 우리의 인생을 닮아 있다. 특히 깊고 짙은 어둠을 거칠게 생채기처럼 표현했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라는 그림의 해설을 읽고 내(저자) 그림의 해설로 횽내 내 봤다고 말한다. 게다가 클림트의 작품 이름을 가져다 붙였고 자기 그림에 아주 비싼 재료를 쓴 클림트가 부러워 아주 비싼 커피를 마시면서 아주 비싼 누들러스 잉크를 써가며 이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한다. (···) 그림은 기세다.

2장 「그림은 손재주가 아니라 눈재주다」의 소항목의 글도 눈에 띈다. '이기주의 스케치, 내 맘대로 인상주의'란 제목이다. 1939년에 사진이 발명됐다. 화가에게는 무언가를 똑같이 그린다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화가는 해석이 필요한 그림을 그렸고, 이걸 보는 사람이 저마다 해석할 몫도 남겨주었다. 인상주의 화풍이나 추상화는 그래서 어렵지만 반대로 그래서 쉽다고 생각했다. 내 맘대로 생각하고 그리는 게 가능해졌으니까. 사실주의가 대세이던 유럽,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이 나타난 이유다. 모네를 비롯해 세잔, 부댕, 드가, 르누아르, 피사로 등이다. 

저자는 자신의 그림 〈마포 해넘이〉 그림을 책에 실어 해설을 해준다. 마포 저 너머로 해넘이가 시작됐다. 내 시선에서 내 느낌대로 보이는 풍경을 채색한다. 모네가 그린 〈인상, 해돋이〉의 색채를 보고 이래도 될 거 같아서 자신감 있게 그려봤다. 윌리엄 터너의 〈노햄성 해돋이〉를 보고는 내 그림도 감히 뒤지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사람들의 기준대로라면 이 대가들에게 내가 지는 게 당연하지만, 내가 내 식대로 표현하면 이보다 더 좋은 그림은 없는 거니까 굳이 꿀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으면 그만인 그림이 그래서 좋다. 이기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이기주의 스케치'라는 유튜브 채널을 연 것도 그 이유에서다.(p.51) 자신의 그림에 강한 자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다. 6장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의 'To. 빈센트 반 고흐'에서는 '〈포럼 광장의 밤의 테라스〉 따라 그리기'라는 제목의 그림이 보인다. 저자는 고흐가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의 말을 인용한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저자는 이에 대해 "난 말이야, 당신이 그린 〈포럼 광장의 밤의 테라스〉를 수채화로 따라 그리면서 이런 생가을 했어. 당신이 본 밤하늘은 내가 살던 양평 시골 밤의 하늘을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듯 그리는 것이 퇴근길 사람을 무심하게 쳐다보는 나 같아서 또 한 번 공감했지. 당신은 몇 번의 스케치를 그리고 심혈을 기울인 만큼 그날의 느낌과 분위기를 내려고 했던 거 같아. 아마도 꽤 쓸쓸했던 모양이야. 난 이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쓸쓸함이 자꾸 생각났거든. 쓸쓸함은 내 그림의 정서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난 당신이 더 좋아졌지 뭐야. 아 참, 나도 즐거웠어. 파란 밤하늘에 별을 찍는 순간은 겨울 버스 창에 손을 말아 발 도장을 찍는 것 같았다구."(p.169) 두 명의 화가를 인용하고 따라 그리면서도 자신 그림의 정서가 쓸쓸함이라는 것은 내비치며 고흐와 비슷한 정서를 드러낸다.

10장 「빛은 어둠으로 그린다」는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어슴푸레 다가왔던 저자의 글의 의미가 이 장에서 확실해진다. '은하수를 보는 법'이란 소항목에서다. 이 글에서 나타나는 저자의 어린 시절은 누구나 같은 나이의 어린 시절을 가져본 독자들은 비슷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독자 역시 기어코 참았던 감정이 울컥 솟아오르기도 했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겨울밤 아홉 시면 동네 친구들과 밤 술래잡기를 하며 놀곤 했다. 두 개 팀으로 나눠 하는 단순한 게임인데 한 팀이 숨어있는 다른 팀을 다 찾으면 승리하는 놀이다 칠흑 같은 어둠에 숨어 숨죽여 들키지 않으면 그만. 쉽게 찾을 수 없는 장독대 바닥에 누워 밤하늘을 보는 것밖에는 할 게 없지만 상대 팀의 발소리가 들릴 때의 긴장감 때문에 엄청 재미있었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이때 바라본 밤하늘에 흐르던 은하수를 기억한다. 빛 하나 없는 칠흑의 밤이어야 보이는 은하수를 그때는 넋 놓고 쳐다본 게 전부였지만 그게 그렇게 소중한 추억이었는지는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지금의 밤하늘은 그때만큼 은하수를 허락하지 않으니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의 어둠이어야 볼 수 있는 은하수를 그리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칠흑같이 캄캄한 인생이라야 보이는 내 인생의 은하수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안온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지친 하루에도 때가 되면 찾아갈 집과 가족이 있는 것이라든지 외로운 싸움을 하는 중에도 몇 마디 말로 내 편을 들어줄 친구가 있는 것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만하고 살 이유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차가운 겨울밤이면 적막한 밤의 소리와 별이 빛나는 하늘이 아롱지게 생각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다독거려 준다."(p.228)


여든이 훨씬 넘은 나이에 그림을 배워보려고 한다는 어르신의 글을 읽었다. 거기엔 멋쩍음이 배어 있었다. 은퇴를 하고 이 나이에 그림에 노욕을 부린다는 어르신도 계셨다. 한결같이 나이를 탓하거나 나이를 겸연쩍어 하셨다. 그때마다 그림 그리기 딱 좋은 나이라고 댓글을 달아 드렸다. 여든 살에 그리는 그림은 그 누구의 그림보다도 스며든 이야기가 훨씬 많으니까. 깊은 생의 이야기가 묵직한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니까. 세상을 보는 눈은 누구보다 절절하니까. 이때 그리는 그림은 훨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림은 정말 나이로 그리는 거다. 그림은 정말 시간이 그리는 거다.(p.268~269) - 「그림은 나이로 그린다」 중에서


저자 : 이기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그림’과 ‘글’의 활자가 묘하게 닮아서 ‘그림’이 어쩌면 ‘글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쨌든 그림이나 글이 사라지는 매일을 담아두는 데 제격이라서 매일의 장면을 그리고 쓰면서 ‘기록’을 시작했다. 누구나 그림을 좋아하기를 바라면서 유튜브 ‘이기주의 스케치’를 시작했고 37만 명의 구독자가 사랑하는 채널이 되었다. 쓴 책으로는 『그림 그리기가 이토록 쉬울 줄이야』가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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