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던 눈빛에 칼날이 보일 때
김진성 지음 / 델피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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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운전은 이제 '예비 살인'에 해당하는 행위로 간주될 정도로 법률도 변했다. 사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민족이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배웠고, 산업화 시대까지는 음주 및 음주 사고에 대해 무척 관대했다. 웬만하면 훈방 혹은 간단한 과태료 부과의 처벌을 받았다. 산업화 시대까지는 오직 일만 하는 직장인·노동자는 퇴근 후 으레 회사 근처에서 술 한잔씩 하며 피로도 풀고 스트레스도 잠재웠다. 그땐 그래도 자가 운전자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대부분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 등을 이용해 귀가했기 때문에 음주 사고가 비교적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지갑이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가장 첫 번째 유혹은 자동차였다. 이른바 '마이카 시대'라는 언론의 보도가 잇따를 정도로 승용차가 직장인들의 첫 번째 희망이었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한 학원이나 교습소가 떼돈을 벌 정도로 경제 성장의 과실을 챙기는 첫 번째 확인 물품이 자동차가 된 것이다. 그때는 운전학원이 모두 소화하지 못해 개인적으로 운전 교습을 해주는 뜨내기 강사들도 많았다. 독자가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운전 면허를 땄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주와 운전은 궁합이 맞지 않는다. 음주하면 두려움이 많이 사라진다. 술 마시고 운전하는 습관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렇게 우리를 길들여 갔다. 술 먹어도 다음날 출근을 하기 위해 차를 가지고 가야 한다는 논리가 같이 마신 사람들 사이에는 묵언의 합의가 된 셈이다. 더욱이 인명 사고가 아니라면, 음주운전 전과가 없을 경우 훈방 혹은 과태료였다. 음주 수치가 법이 정한 기준보다 높게 나올 경우지만. 사실 음주 측정기에 기록된 수치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늘 높다. 또 역과 사고를 냈을 경우 재판에 가더라도 사망 사고가 아니라면 초범의 경우 훈방이나 벌금 조치됐다. 재판정에서도 형량의 경감이 이뤄진다. 사망 사고만 아니라면 집행유예 혹은 벌금형이 대부분이었다. 형량 경감의 이유는 하나같이 과음으로 '심신미약' 상태라는 판결문에 적시된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음주운전 사고가 너무 잦은 것이 사회 문제로 부상됐다. 경찰의 음주 단속이 수시 혹은 정기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도 생각보다 쉽게 음주운전은 줄지 않았다. 요즘처럼 술 마시면 운전하지 않는다는 의식은 21세기 들어서야 생긴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언론도 음주운전 사고에 대해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것은 21세기 들어서였다. 음주운전이 가장 나쁘게 인식된 것은 죄 없는 피해자가 다치거나 사망할 경우 쉽게 보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음주 운전 사고는 한 가정을 파괴한다는 음주 운전 방지 캠페인이 벌어졌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마른 하늘에 날벼락일 수 있다. 이후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갈수록 커졌다. 음주운전이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례법'(윤창호법)도 생겼다. 음주운전을 하다 사람을 다치게 하면 현행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강화됐다. 또 음주운전의 면허정지 기준도 혈중알코올농도 0.05%에서 0.03% 이상으로, 면허취소 기준은 0.1%에서 0.08% 이상으로 크게 강화됐다. 보도에 따르면 이후 음주운전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음주운전의 어두운 그림자는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옛날 산업화 시대에는 사회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인명 사고 없는 사고 정도로는 훈방이나 과태료였지만 이제는 공인일 경우 더욱 처벌 수위가 높다. 음주운전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경찰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지난 5월 9일, 가수 김호중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음주 상태로 차량을 운전하다가 택시와 접촉사고를 일으킨 후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음주운전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후의 행동들이 추가적인 법적 문제로 이어지면서 집중 조명됐다. 사건 초기 김호중은 도주 후 매니저와 통화했고, 대신 자수하게 하여 조직적인 증거 인멸 시도를 했다고 검사는 지난 30일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했다고 보도에 난 적이 있다. 그의 거짓 진술과 증거 인멸 시도, 조직적 은폐가 드러나 무거운 형이 구형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소설 작품 『비틀거리던 눈빛에 칼날이 보일 때』는 음주운전과 관련한 신약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신약 개발의 윤리적 잣대를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주인공 유정인은 현재 법정 의무교육 강사를 빙자하여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며 신약 ‘알모사10’을 홍보하고 판매한다. 이 ‘알모사10’만 복용하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체내 알코올을 10분 만에 없애주는 약이다. 마치 떠돌이 약장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약이 개발되리라고는 독자들도 에상치 못했을 것이다. 소설의 등장인물들도 당연히 반신반의하며 광고 내용에 콧방귀를 뀌지만, 얼떨결에 ‘알모사10’의 효과를 본 사람이 생겨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만취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판매한 ‘알모사10’을 먹자 금세 혈중알콜농도 0%로 떨어져 천운으로 불시 음주 단속을 피했다는 정 사장의 경험담이 입소문을 탔다. ‘알모사10’의 영업소에는 전국 애주가들의 러브콜이 잇따른다. 마음껏 술을 마신 후에도 얼마든지 운전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들에게 면죄부가 생기며 당연히 ‘알모사10’의 판매는 급증한다. 

독자를 비롯한 일반 사람들은 믿지 않듯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 같은 '마법의 약'이 개발 가능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과연 ‘알모사10’은 첨단 과학 기술의 결정체일까? 그렇다면 ‘알모사10’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질문이 이 책의 전개 핵심이다. 제주도에서 발생한 참혹한 교통사고 현장을 보도하는 아나운스멘트로 시작된다. 

"어젯밤인 7월 24일. 제주시 애월읍에서 만취자가 운전하던 빨간 스포츠카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SUV와 정면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두 차량에 탑승했던 총 7명의 인원이 모두 숨졌는데 SUV에 탑승한 사람들은 생애 첫 여행을 떠나온 일가족이었습니다."(p.7)

빨간 스포츠카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SUV와 정면충돌한 이 사고로 두 차량에 탑승했던 7명이 모두 즉사한다. 특히 SUV에는 생애 첫 가족 여행을 떠난 일가족이 타고 있었으며, 사건 후에야 스포츠카의 운전자가 만취 상태였음이 밝혀진다. 이 소설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이고 빈번히 발생하는 음주 운전을 배경으로 단 한 번의 복용만으로 음주 운전 단속의 족쇄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해주는 신약 ‘알모사10’을 판매하는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탐구하는 새로운 범죄 스릴러다. 주인공 유정인은 왜 ’알모사10‘을 판매하는 것일까? 그는 어떤 인생의 궤적을 그리며 살아왔던 것일까? 이 작품을 끌어가는 주인공이 왜 ‘알모사10’을 판매하게 됐을까? 독자들의 궁금증은 신약 개발의 윤리적 의무에 맞추어 이야기는 전개된다. 단순한 범죄의 서사를 넘어, 독자들에게 신약 개발의 윤리성을 고민하게 하는 데 집필 의도가 담겨 있다고 독자에게는 읽힌다. 또한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분노를 적나라하게 부각시킴으로써 음주 운전의 폐해 역시 심각한 문제로 부상한다. 저자 김진성이 피해자의 시선에서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은 감정적 여운을 남길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이 작품의 저자 김진성은 이 작품을 출간하며, 전공인 화학공학과 소설의 접목을 시도해 소설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술을 마시든 좋아하지 않든 음주 폐해를 줄이려는 노력이 다각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신약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될 뿐 피해자와 공동 사회의 고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윤리적 문제를 저자는 제기한다. 돈이 가치 척도이자 삶의 목적인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고발성 폭로도 저자의 집필 의도에 포함되어 있으리라고 이해되는 대목이 곳곳에 나타난다. 이로써 흥미로운 소재인 신약 ‘알모사10’는 저자의 독창적인 소설적 시도로 읽힐 수 있다. 동시에 저자가 소설에서 창조해 낸 신약은 독자들에게 과학 기술 발전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재정립할 것을 함축하며 은근히 신약 개발에 대한 '윤리성'을 압박하고 있다. 음주 운전 약뿐일까?

이 작품은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2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사고 외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한 단란한 가정이 음주 운전의 피해로 산산조각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이 등장한다. 어렵게 고생하며 키운 아들이 대기업에 취직하자,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지인들에게 한 턱을 낸다. 이 자리에 아들이 잠시 들러 감사의 인사하려던 참에 한 주취자가 몬 자동차가 축하연이 벌어지는 식당을 들이받고, 이 사고로 아버지는 사망하게 된다. 아들이 울부짖으며 절규하지만 운전자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경찰이 출동해도 버틴다. 10분쯤 머뭇거리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 알코올 냄새를 풍기지만 음주 측정기에 나타난 알콜 혈중농도는 제로(0)다. '알모사 10'을 복용한 운전자는 음주운전 부분에서는 무죄가 된다. 이 사건으로 신약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약은 불티나게 팔린다. 약의 부작용을 알면서도 약을 판매하는 영업직원, 대기업에 입사한 아들의 돌변, 이를 파헤치는 형사의 심리 변화, 약을 판매하는 종교단체의 의도 등 복수와 원망이 뒤섞이며 사건이 전개된다. 음주 운전에 관한 각자의 상처들이 부딪히며 상황은 나락으로 빠져든다. 신약 '알모사 10'의 가격은 백만 원이 넘지만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짚어내고 있다. 

음주운전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벌써 수십 년이 되었지만, 특별법 등 각종 음주운전 폐해를 홍보하고 계도해도 눈에 띌 만한 효과가 없는 음주운전 단속. 아직도 느슨한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 등이 어우러지면서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신약 개발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피해자들의 시선에서 독자들에게 음주 운전 가해자에 대한 복수와 피해자에 대한 구원의 카타르시스를 주려는 저자의 의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나를 바라보는 여러분들의 눈빛은 매우 다릅니다. 극과 극으로 나뉘어 있죠. 그러나 나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날 어떻게 바라보든 나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을 지킨 거니까요.”(p.210)


저자 : 김진성


극작가 및 소설가. 서울의 한 대학에서 화학신소재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가릴 선, 들 거」로 2022년 우수과학문화상품 스토리 부분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그즈음부터 이야기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대부분 좋아하지만 「블랙 미러」 시리즈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이야기에는 열광한다.

인스타그램 주소 @cham.jin_2rule.sung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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