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의 아해들
김종광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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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문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요즘이다.

삶이 잘 풀리지 않으니, 타인들의 이야기도 좀처럼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9편의 단편이 모여있는 김종광 작가의 작품집 [처음의 아해들].

무심코 첫 작품 [세족식] 을 읽고, 어찌나 키들거렸던지. 생생한 인물들과 쫙쫙 달라붙는 대사들, 날카로운 사회 풍자와 해학 가득한 감칠맛 나는 문장들이 정말이지 '끝내줬다.' 


이 작품집에는 [세족식]을 시작으로 [당장,나가버려!],[처음의 아해들],[옷은 어디에?],[내시경],[시골사람 중국여행], [면민바둑대회], [우라질 양귀비],[뻥집이 사라졌네] 까지 총 9편의 작품들이 모여있다.

초반의 세 작품, [세족식],[당장, 나가버려!],[처음의 아해들]은 교육이라는 소재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각각 학원 선생님, 대학 교수, 옛 제자들을 만난 정년퇴직을 앞둔 고등학교 선생님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동료, 제자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학원 선생님들간의 관계와 그 세계가 갖고 있는 생리, 대학 교수와 대학생들간의 묘한 관계, 이제 정년 퇴직을 하는 노선생의 회한과 추억이 담긴 첫 제자들과의 거나한 술자리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능란하게 그려진다.   



[세족식] 은 자신이 몇년간 열심히 다녔던 입시 학원에 강사로 취직하게 된 대학 휴학생 강쇠의 이야기이다. 학원 수강생들을 보충하기 위해 세족식을 열려고 하는 학원 원장과 동료 선생님들의 다양한 생각들의 강쇠의 과거 편린들과 함께 조각되어 있다. 현재 대학생들의 고난스러운 삶이 가감없이 등장하고,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가 아니라 지방 중소도시의 이미지가 묘한 정겨움을 준다. 풍자와 해학은 에로틱을 동반하기 마련, 적절하게 활용된 묘한 에로티시즘 역시 달콤매콤한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평범한 이야기도 특별하게 만드는 필력이 작품집의 서두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학교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은 그 성격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입시학원은 '대학 입학' 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일종의 서비스업과 같다. 물론 학교 교육 역시 서비스이지만, 지향하는 목표는 다르다. (최근의 학교 교육이 학원과 뭐가 다르냐는 비난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취지 자체는 다르니까.) 당연히 학교 선생님간의 동료 의식과 학원 선생님간의 동료 의식 역시 다를 수 밖에 없다. 학원은 보다 회사의 사원간 관계가 비슷할 것이다. 

특히 주인공 강쇠와 학원 원장 혈녀와의 관계가 재미있다. 고교시절, 혈녀에게 매맞아가며 배우던 학생이 장성해서 상사와 부하로 다시 만났으니, 제자가 부하가 된 것이다. 학생들에게 세족식을 해주자는 혈녀의 기상천외한 발상과, 학원의 주 목적인 입시와 세족식의 상관관계를 도무지 이해하지도, 인정할 수도 없는 강쇠의 의식의 변화가 다른 선생님들과의 회의 석상을 통해 설득력있게 그려진다.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정말 감칠맛나고 찰졌다. 읽는 맛이 참 좋은 작품이었다.


[세족식]은 학원이긴 하지만, 장성한 제자와 재회한다는 점에서 [처음의 아해들]과 맞닿아있다.

[처음의 아해들]은 추억의 냄새가 가득할 것 같은 오래된 술집에서 시작된다. 수십년간 연락을 주고 받으며 질긴 인연을 이어온 첫 제자들과 노은사의 만남이라는 소재 자체가 참으로 정겨웠다. 서울 같은 대도시라면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지방 중소도시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그 도시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라면 아마 몇몇은 끈질기게 그 도시에 남아 삶을 이어갈테니 말이다. 젊은 시절 부임해서 정년 퇴직 할 때 까지 한 고등학교에 재직한 선생님이라면 평생 몇차례라도 부딪히지 않을 요량은 없을 것이다. 

그와 함께 교원노조의 설립 역사와 불합리한 우리 사회의 일면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짧은 분량 안에서도 캐릭터들에게 뚜렷한 개성을 부여하며 단 몇 문장만으로 풍성한 내러티브를 선보이는 작가의 역량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옷은 어디에?]는 동네 세탁소에 맡긴 옷이 없어진 부부의 일화가 코믹하게 펼쳐진다. 가난한 작가인 판돈은 모처럼 외출할 일이 생겨 아내인 쾌순에게 세탁소에 맡긴 면바지를 찾아오라고 시킨다. 판돈에게는 외출용 면바지가 단 두 벌 있었는데, 마침 세탁소에 맡긴 참이었다. 하지만, 쾌순은 판돈에게 빈손으로 돌아오고, 세탁소가 처한 딱한 상황을 들려준다. 동네 작은 세탁소와 거래를 하는 읍내 거대 세탁소간에 문제가 생겨서, 작은 세탁소의 옷들이 몽땅 읍내 거대 세탁소에 압류당했던 것이다. 

쾌순과 판돈을 통해 이 세탁소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편의 블랙 코미디처럼 펼쳐친다. 읽는 내내 키들거림을 멈출 수 없을 정도였다. 역시 이번에도 판돈과 쾌순이라는 캐릭터의 개성이 면밀하게 드러나는 대사들의 맛이 일품이었다. 

특히 작품 중반에 쾌순이 남편 판돈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한 문단에 가까울 정도의 장문이 있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다.

기업(세탁소)간의 분쟁을 통해 곤란을 겪게되는 소시민적인 일상이 스릴러와 같은 장르의 문법으로 펼쳐지는데, 이토록 별 것 아닌 소재를 대단한 것처럼 풀어내는 기술이 돋보였다. 사실 이 작품은 소재와 문장은 물론 인물과 대사까지 허세와 과장이 가득한데, 그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내시경] 와 [시골사람 중국여행] 은 구조, 형식적인 해학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특히 [내시경]은 모두 '~했네.'체로 끝나는데, 단지 그것만으로도 아주 평범한 이야기가 보다 특별하게 느껴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시골사람 중국여행]은 중국여행을 간 시골의 한 오랜 동창회 멤버들을 인터뷰한다는 방식의 논픽션 형식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이제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동창생들이 중국 여행을 하게 된 계기와 학창시절 이야기, 몇 안남은 동창회 멤버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각자의 시각에서 풀어내는데, 인물들의 개성이 아주 잘 드러난다. 역시, 소시민적인 인간군상을 풀어내는데 탁월한 감성과 시각을 즐길 수 있었다. 새삼, 지난 뒤에 돌이켜보면 인생은 꽤나 길구나, 라는 느낌과 함께 별 탈 없이 살아간다면 나에게도 아직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면민바둑대회]는 이 작품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한번 다 읽은 뒤, 바로 다시 또 읽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고희를 다섯해 남긴 이발사 이상원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 잔치를 열어보고 싶었다. 

승부를 가리는 '대회' 만의 긴장감이 잘 살아있었고, 역시나 인물들의 개성이 듬뿍 묻어나는 감칠맛 나는 대사도 몰입감을 높여주었다. 작은 지방 소도시의 정겨운 분위기와 사람 사는 맛이 구수하게 어우러져 무척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몇 번 이나 찬사를 되풀이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인간 군상을 그려내는 저자의 감각은 무척이나 탁월하다. 게다가 한 두 문장만으로 한 인물의 과거와 성격을 표현해내는 기술이 탁월해서 짧은 이야기들임에도 무척이나 풍성한 느낌을 준다.


[빵집이 사라졌네]는 이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먹고사니즘' 의 정점을 찍는 작품이자, 그 상징과도 같은 우리네 어머니를 다루고 있다. 일절 가계에 신경쓰지 않는 지극히 가부장적인 남편과 함께 사는 기분씨는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아들에게 용돈을 보태주기 위해 읍내 제과점에 취직하게 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장을 가진 기분씨는 창문닦이와 청소등 잡일부터 시작해 손님 응대까지 무려 십일년 간이나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나갔다. 제과점 사장과 기분씨의 사이가 비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제과점 사장이 기분씨를 해고한 뒤  퇴직금을 받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그야말로 우리 어머니들이 한번은 겪었을 먹먹한 이야기가 [내시경] 처럼 '~했네' 체로, 마치 누군가에게 전해듣는 듯 한 문체로 펼쳐지느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어머니와 자식과의 관계, 사장과 노동자의 관계 등 우리 사회 전반의 "갑을 관계" 들이 순차적으로 그려진다. 불과 한 두 문장으로 수 년의 세월이 쑥쑥 지나가 버리곤 하는데, 이러한 시도 역시 작품의 주제와 맞물려 관조적이면서도 허망한 감정을 무척 잘 전달하고 있다. 


한 두 작품만 상세한 리뷰를 해 보려고 했는데, 기억을 헤집으며 책을 다시 펼쳐보니 모든 작품을 한마디씩은 꼭 달고 싶었다.

어차피 리뷰는 타인보다는 내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오랜 시간동안 천천히 문장을 추가해갔다. 


작품집 말미에 문학평론가의 상당한 분량의 비평이 실려있는데, 제목이 "절망의 강바닥에서 퍼올린, 이 싱싱한 낙관들" 이었다.

멋진 제목에 감동하여, 자칫하다가는 내 감상도 흐트러질까봐 비평은 읽지 않았지만,(다 적었으니 이제 읽어봐야지.) 작품 전반에 흐르는 미묘한 낙관이 큰 울림을 준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그런 낙관은 작품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해학과 절묘한 웃음 포인트 덕이었겠지만,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넉넉하고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매우 날카롭고 냉정하게 절망적인 현재를 그려내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꿈도, 희망도, 사랑도 풍성히 흘러 넘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다.  


정말로 절망적인 현실을 살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10년 뒤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칠흙같은 어두움에 가슴이 무너져서,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 하는 것 자체를 그만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말도 공허할 뿐이다. 

누군들 안 그럴까?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는 삶인데. 

어차피 종착지는 죽음이다. 절멸이다. 이 땅 위에서는 다시는 소생할 수 없는 영원한 어둠이 예정되어 있는 삶이다. 때문에, 현실은 언제나 절망적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아니면 뭔가를 믿어 어떻게든 부정하던지.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이라면, 절망 안에서 버텨내는 법을 익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삶이란, 버티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었고, 끊임없이 어깃장을 놓는 존재라고 또 누군가가 노래했었다.

결국, 그렇다면,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 

그 방법을 찾기 위헤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신문을 보는 것일테지.

어쩌면,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어제를 버티어낸 결과가 오늘 아니던가?? 

삶이란 그저 기억을 켜켜히 쌓아내는 일에 불과하다. 별 것 아니다. 절망 역시 그러하다. 

'1리터의 눈물'의 카토 아야가 말했듯이, 그저, 오늘을 살아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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