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캐서린 오플린 지음, 정숙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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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1984년 영국의 어느 날, '케이트 미니' 라는 귀여운 소녀의 일화부터 시작된다.

초등부 3학년(9~10세. 영국의 공립초등학교 학제는 유아부 3년과 초등부3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케이트는 열렬한 조력자인 아빠와 20살도 넘은 옆 상가의 에이드리언의 지지를 받아 차근차근 탐정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케이트의 주 활동 지역은 '그린옥스' 라는 거대한 쇼핑몰이었다. 당시 영국 최대의 면적을 자랑하던 곳으로 케이트가 아주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거대한 공단이었다. 케이트는 매일 그린옥스 안에서 거동이 수상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꼼꼼히 기록해 나갔다. 

 

우리나라도 90년대에 어린이 탐정 시리즈가 열풍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이 탐정들이 나오는 아동 소설들이 넘쳐났고, '탐정이 되는 법' 류의 아동 실용 서적(!!)도 많았더랬다. '형사 콜롬보' 나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중년의 뚱뚱한 아주머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수사물의 외화도 절찬리에 방영했던 기억이 난다. '맥가이버' 역시 모험활극의 형태였지만, 수사물에 가까웠고. 어린이용 드라마에서도 '검은별' 같은 악당이 나오는 ~~수비대, ~~오인조 같은 어린이 탐정물이 유행이었다.  나 역시 그런 책들도 많이 보고, 장난감 화약총 - 화약 소리가 무서워서 화약을 재워넣지는 않았지만-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옆 아파트 단지 내의 오래된 창고를 수색하는 놀이를 하곤 했는데, 시기만 조금 일렀을 뿐이지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몇 페이지 넘기지도 않았는데, 나와 달리 케이트에게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나이답지 않은 의연함으로 잘 대처해 내며 탐정 활동과 학교 생활을 성실히 이어간다.

 

 작가는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으로 케이트의 일상을 뒤쫓는다. 소탈하고 똑똑한 에이드리언은 친오빠처럼, 혹은 친구같은 아빠처럼 케이트를 바라봐주고, 10살도 더 어린 꼬맹이 케이트를 항상 대등한 시점으로 바라봐준다. 아마, 에이드리언에게 리사라는 케이트 보다 한두살 많은 여동생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야기는 갑자기 점프, 같은 장소에 시간대만 약 10년 뒤, 2003년으로 변한다.

케이트의 이야기는 오간데 없어지고, 거대 쇼핑몰 그린옥스의 경비원인 커트와 음반매장 매니저 리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작가의 시각이 등장인물들에게 무척 친근하고 다정한 것은 여전하지만 케이트의 이야기가 발랄하고 순수한 청소년 성장물 같다면, 커트와 리사의 이야기는 시니컬하고 날카로운 영국인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가득한 직장 배경의 시트콤 같다. 케이트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아빠 미소가 끊이질 않는데, 커트와 리사의 2003년이야기; 특히 리사의 이야기는 웃프긴 하지만, 키득거림을 멈출수가 없다. 직장생활에 대한 묘사가 기가 막힌데, 그린 옥스의 직원들과 주고받는 대사들이 정말 감칠맛난다. 아아, 직장생활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되고 짜증나기는 마찬가지인듯!!!(종결어미를 꼭 이렇게 써야할 듯!!!)

 

 

이 작품은 일단 시기적으로 1984년, 2003년, 1984년,2004년으로 네 챕터가 분류되어있는데, 1984,2003 두 챕터가 거의 모든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 중 1984챕터는 오롯하게 케이트 미니의 이야기가 정겹게 펼쳐지는데, 대부분의 독자들이 케이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아주 교묘하게 서늘한 느낌들이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서늘함은 1984년 챕터가 끝나고 2003년 챕터가 등장하면 비로소 정체를 깨닫게 된다. (사실은 제목을 읽는 순간부터, 소싯적에 소설 좀 읽었다, 싶은 독자들은 명랑하고 따뜻한 앞 챕터를 읽어 나가는 동안에도 걱정이 가득했을 것이다.

아 작가님, 이 사랑스러운 소녀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하시려고....ㅠㅠ )

 

일단, 이 리뷰에서는 절대 안 알랴줌.

 

 작가의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맨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더니, 충분히 납득된다.

개인적으로 무한신뢰하는 몇개의 상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문학동네소설상이랑, 외국에서는 맨 부커, 휴고, 네뷸러를 꼽는다. 퓰리쳐 픽션부문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중 휴고와 네뷸러는 SF/판타지라는 장르에 한정되어 있고, 퓰리쳐 픽션부문은 퓰리쳐라는 상의 성격 때문인지 리얼리즘이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반면 맨 부커상은 영어권 출판업자들이 후보를 선정하여 엄선된 심사위원들이 뽑아내는 것으로 그 성격이 남다르다. 출판업자들이 선정하는 후보이니, 막말로 '읽는 맛' 이 좋지 않으면 후보에 선정되기도 쉽지 않을터다.다른 상들에 비해 좀 더 대중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내가 읽어본 맨 부커상 작품들은 판타지가 가미되었던지, 미스테리 스릴러등의 장르적인 기법이 활용되었다던지, 여하튼 읽는 맛이 쏠쏠한 작품들이 많다. [한밤의 아이들]을 예로 들 수 있겠고,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와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도 맨 부커 수상작이다. 2013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엘리스 먼로도 맨 부커를 수상한 작품이 있었고, 2000년 퓰리쳐 픽션 부문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 역시 맨 부커 최종심에서 경쟁했던 작품이다. 

 어쨌든 맨 부커상은 그 해 동안 아마존 영미소설 판매 10위권에 상당히 오랫동안 머물렀던 작품들이 후보에 올라 엄선된 심사위원들을 통해 문학성과 시의성으로 걸러져 선정된다는 말씀.

즉, 후보에 오른 것 만으로도 대부분 재미있다는 것이다. 

 

[사라진 것들] 역시 마찬가지이다.솔직히, 정말 큰 기대 없이 펴든 책이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훨씬 재미있었다.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는 듯, 독자의 감정들을 이리 태웠다 저리 태웠다 하는 기술도 상당하고, 인물과 이야기를 직조해내는 감각도 탁월하다. 드라마와 미스테리가 절묘하게 혼합되어 읽는 내내 혼을 쏙 빼놓는다.  

특히, 그린 옥스라는 거대 쇼핑몰 안에서 리사와 커트를 통해 표현되는 이야기들은 마침 지금 읽고 있는 [21세기 자본]과 절묘하게 맞물려 소비사회에 매몰되어, 인간이 단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쉬지않고 돌아가는 작은 부품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버렸음을 서글프게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두 단어를 아주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취미'와 '관심분야'라니. 어쩌라고? 엄밀하게 따지면 이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밑에는 달랑 이 인치 남짓한 여백이 있을 뿐이다. 이 좁은 칸 안에 그럴듯한 대답이 될 단어들을 나열해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p. 256

 

매장 매니저에 지원하기 위해 리사가 이력서를 쓰는 장면이다. 아마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했던 부분이 아닐까? 

리사는 윗사람에게 잘보이기 위해 비굴하게도 자신이 현재 쇼핑몰에서 하는 일과 관련된 '쇼핑하기' 와 '잡지 읽기' 로 이 공간을 채워낸다. 그린옥스에서 매일 업무에 시달리다 보니 취미와 관심분야는 잊은지 오래였다. 

 

그런 부수적인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커트와 리사, 그리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1984년의 케이트와 관련이 있다. 그들은 모두 케이트로 인한 거대한 상처를 안고 살고 있었고, 과거에 얽매여 하루하루를 그린옥스의 톱니바퀴로 그륵그륵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은 때론 직장 생활 시트콤처럼, 때론 공포 호러처럼, 때론 미스테리 스릴러처럼, 또 때론 평범한 로맨틱 소설처럼 인물들을 그려내며 그들이 갖고 있는 과거에 집중한다. 각각 작은 챕터 말미에 다른 폰트로 누군가가 무기명으로 어딘가에 적어놓은 것들이 실려 있는데, 그 글들이 등장인물 중 누구의 글일지 유추해 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그야말로, '읽는 즐거움' 을 가득가득 채워놓은 멋진 소설이다.

 

어째서 인간은 갈수록 더 고독해지며, 어째서 인간들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을까? 

 

삶이란, '시간' 이라는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차근차근 부스러져 가는 과정이다. 

시간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는다. 살아있건 죽어있건, 모두 모래시계 안의 그것처럼 잘게 부수어 허무 속에 흩뿌린다.

한 없이 강할 것만 같은 돈도, 권력도, 심지어 사랑조차도, 시간은 탐욕스럽게 씹고 또 씹어 잘디잘게 부숴버린다. 

그렇게 모든 인간은 정수리 위에 시퍼렇게 번득이는 시간의 이빨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

 

 인간들은 살아가기 위해 '모른척' 하기로 했다.

시간이란 건 사랑스러운 연인을 만나기로 한 광장 한 가운데의 시계탑이나, 오븐 안에서 닭요리가 노릇하게 익어가는 동안에만 예민하면 되지, 나의 죽음, 나의 소멸과 관련 되었을 때는 철저히 무시하는 것으로 정한 것이다. 정수리 위에 번득이는 시간의 칼날은 없는 셈 치기로 했다. 모른 척 하고, 내가 갖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시간이란 녀석에게 절대 빼앗기지 않을 것 처럼, 심지어 나의 마지막 한 숨 조차도 시간은 결코 뺏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자위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것이, 시간이라는 절대적 존재 앞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두려움과 공포 앞에서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삶이라는 녀석 역시, 시간만큼이나 심술궂고 잔혹한 존재라, 가장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시간 앞에 내어주곤 하지만. 

 

과거에 얽매이면, 시간은 보다 더 우리 자신의 삶에서 유리된다. 더 모른 척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추억을 먹고 살아가나 보다.

하지만, 그렇게 과거에 얽매이면, 우리는 보다 더 고독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은 고독해 지나보다. 

 

현실을 마주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여기 커트와 리사처럼 하면 된다. 

 

 이 책은 1984년의 어느 날, '케이트 미니' 라는 귀여운 소녀의 일화부터 시작된다.

초등부 3학년(9~10세. 영국의 공립초등학교 학제는 유아부 3년과 초등부3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케이트는 열렬한 조력자인 아빠와 20살도 넘은 옆 상가의 에이드리언의 지지를 받아 차근차근 탐정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케이트의 주 활동 지역은 '그린옥스' 라는 거대한 쇼핑몰이었다. 당시 영국 최대의 면적을 자랑하던 곳으로 케이트가 아주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거대한 공단이었다. 케이트는 매일 그린옥스 안에서 거동이 수상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꼼꼼히 기록해 나갔다. 

 

우리나라도 90년대에 어린이 탐정 시리즈가 열풍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이 탐정들이 나오는 아동 소설들이 넘쳐났고, '탐정이 되는 법' 류의 아동 실용 서적(!!)도 많았더랬다. '형사 콜롬보' 나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중년의 뚱뚱한 아주머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수사물의 외화도 절찬리에 방영했던 기억이 난다. '맥가이버' 역시 모험활극의 형태였지만, 수사물에 가까웠고. 어린이용 드라마에서도 '검은별' 같은 악당이 나오는 ~~수비대, ~~오인조 같은 어린이 탐정물이 유행이었다.  나 역시 그런 책들도 많이 보고, 장난감 화약총 - 화약 소리가 무서워서 화약을 재워넣지는 않았지만-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옆 아파트 단지 내의 오래된 창고를 수색하는 놀이를 하곤 했는데, 시기만 조금 일렀을 뿐이지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몇 페이지 넘기지도 않았는데, 나와 달리 케이트에게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나이답지 않은 의연함으로 잘 대처해 내며 탐정 활동과 학교 생활을 성실히 이어간다.

 

 작가는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으로 케이트의 일상을 뒤쫓는다. 소탈하고 똑똑한 에이드리언은 친오빠처럼, 혹은 친구같은 아빠처럼 케이트를 바라봐주고, 10살도 더 어린 꼬맹이 케이트를 항상 대등한 시점으로 바라봐준다. 아마, 에이드리언에게 리사라는 케이트 보다 한두살 많은 여동생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야기는 갑자기 점프, 같은 장소에 시간대만 약 10년 뒤, 2003년으로 변한다.

케이트의 이야기는 오간데 없어지고, 거대 쇼핑몰 그린옥스의 경비원인 커트와 음반매장 매니저 리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작가의 시각이 등장인물들에게 무척 친근하고 다정한 것은 여전하지만 케이트의 이야기가 발랄하고 순수한 청소년 성장물 같다면, 커트와 리사의 이야기는 시니컬하고 날카로운 영국인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가득한 직장 배경의 시트콤 같다. 케이트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아빠 미소가 끊이질 않는데, 커트와 리사의 2003년이야기; 특히 리사의 이야기는 웃프긴 하지만, 키득거림을 멈출수가 없다. 직장생활에 대한 묘사가 기가 막힌데, 그린 옥스의 직원들과 주고받는 대사들이 정말 감칠맛난다. 아아, 직장생활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되고 짜증나기는 마찬가지인듯!!!(종결어미를 꼭 이렇게 써야할 듯!!!)

 

 

이 작품은 일단 시기적으로 1984년, 2003년, 1984년,2004년으로 네 챕터가 분류되어있는데, 1984,2003 두 챕터가 거의 모든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 중 1984챕터는 오롯하게 케이트 미니의 이야기가 정겹게 펼쳐지는데, 대부분의 독자들이 케이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아주 교묘하게 서늘한 느낌들이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서늘함은 1984년 챕터가 끝나고 2003년 챕터가 등장하면 비로소 정체를 깨닫게 된다. (사실은 제목을 읽는 순간부터, 소싯적에 소설 좀 읽었다, 싶은 독자들은 명랑하고 따뜻한 앞 챕터를 읽어 나가는 동안에도 걱정이 가득했을 것이다.

아 작가님, 이 사랑스러운 소녀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하시려고....ㅠㅠ )

 

일단, 이 리뷰에서는 절대 안 알랴줌.

 

 작가의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맨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더니, 충분히 납득된다.

개인적으로 무한신뢰하는 몇개의 상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문학동네소설상이랑, 외국에서는 맨 부커, 휴고, 네뷸러를 꼽는다. 퓰리쳐 픽션부문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중 휴고와 네뷸러는 SF/판타지라는 장르에 한정되어 있고, 퓰리쳐 픽션부문은 퓰리쳐라는 상의 성격 때문인지 리얼리즘이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반면 맨 부커상은 영어권 출판업자들이 후보를 선정하여 엄선된 심사위원들이 뽑아내는 것으로 그 성격이 남다르다. 출판업자들이 선정하는 후보이니, 막말로 '읽는 맛' 이 좋지 않으면 후보에 선정되기도 쉽지 않을터다.다른 상들에 비해 좀 더 대중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내가 읽어본 맨 부커상 작품들은 판타지가 가미되었던지, 미스테리 스릴러등의 장르적인 기법이 활용되었다던지, 여하튼 읽는 맛이 쏠쏠한 작품들이 많다. [한밤의 아이들]을 예로 들 수 있겠고,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와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도 맨 부커 수상작이다. 2013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엘리스 먼로도 맨 부커를 수상한 작품이 있었고, 2000년 퓰리쳐 픽션 부문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 역시 맨 부커 최종심에서 경쟁했던 작품이다. 

 어쨌든 맨 부커상은 그 해 동안 아마존 영미소설 판매 10위권에 상당히 오랫동안 머물렀던 작품들이 후보에 올라 엄선된 심사위원들을 통해 문학성과 시의성으로 걸러져 선정된다는 말씀.

즉, 후보에 오른 것 만으로도 대부분 재미있다는 것이다. 

 

[사라진 것들] 역시 마찬가지이다.솔직히, 정말 큰 기대 없이 펴든 책이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훨씬 재미있었다.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는 듯, 독자의 감정들을 이리 태웠다 저리 태웠다 하는 기술도 상당하고, 인물과 이야기를 직조해내는 감각도 탁월하다. 드라마와 미스테리가 절묘하게 혼합되어 읽는 내내 혼을 쏙 빼놓는다.  

특히, 그린 옥스라는 거대 쇼핑몰 안에서 리사와 커트를 통해 표현되는 이야기들은 마침 지금 읽고 있는 [21세기 자본]과 절묘하게 맞물려 소비사회에 매몰되어, 인간이 단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쉬지않고 돌아가는 작은 부품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버렸음을 서글프게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두 단어를 아주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취미'와 '관심분야'라니. 어쩌라고? 엄밀하게 따지면 이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밑에는 달랑 이 인치 남짓한 여백이 있을 뿐이다. 이 좁은 칸 안에 그럴듯한 대답이 될 단어들을 나열해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p. 256

 

매장 매니저에 지원하기 위해 리사가 이력서를 쓰는 장면이다. 아마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했던 부분이 아닐까? 

리사는 윗사람에게 잘보이기 위해 비굴하게도 자신이 현재 쇼핑몰에서 하는 일과 관련된 '쇼핑하기' 와 '잡지 읽기' 로 이 공간을 채워낸다. 그린옥스에서 매일 업무에 시달리다 보니 취미와 관심분야는 잊은지 오래였다. 

 

그런 부수적인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커트와 리사, 그리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1984년의 케이트와 관련이 있다. 그들은 모두 케이트로 인한 거대한 상처를 안고 살고 있었고, 과거에 얽매여 하루하루를 그린옥스의 톱니바퀴로 그륵그륵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은 때론 직장 생활 시트콤처럼, 때론 공포 호러처럼, 때론 미스테리 스릴러처럼, 또 때론 평범한 로맨틱 소설처럼 인물들을 그려내며 그들이 갖고 있는 과거에 집중한다. 각각 작은 챕터 말미에 다른 폰트로 누군가가 무기명으로 어딘가에 적어놓은 것들이 실려 있는데, 그 글들이 등장인물 중 누구의 글일지 유추해 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그야말로, '읽는 즐거움' 을 가득가득 채워놓은 멋진 소설이다.

 

어째서 인간은 갈수록 더 고독해지며, 어째서 인간들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을까? 

 

삶이란, '시간' 이라는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차근차근 부스러져 가는 과정이다. 

시간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는다. 살아있건 죽어있건, 모두 모래시계 안의 그것처럼 잘게 부수어 허무 속에 흩뿌린다.

한 없이 강할 것만 같은 돈도, 권력도, 심지어 사랑조차도, 시간은 탐욕스럽게 씹고 또 씹어 잘디잘게 부숴버린다. 

그렇게 모든 인간은 정수리 위에 시퍼렇게 번득이는 시간의 이빨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

 

 인간들은 살아가기 위해 '모른척' 하기로 했다.

시간이란 건 사랑스러운 연인을 만나기로 한 광장 한 가운데의 시계탑이나, 오븐 안에서 닭요리가 노릇하게 익어가는 동안에만 예민하면 되지, 나의 죽음, 나의 소멸과 관련 되었을 때는 철저히 무시하는 것으로 정한 것이다. 정수리 위에 번득이는 시간의 칼날은 없는 셈 치기로 했다. 모른 척 하고, 내가 갖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시간이란 녀석에게 절대 빼앗기지 않을 것 처럼, 심지어 나의 마지막 한 숨 조차도 시간은 결코 뺏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자위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것이, 시간이라는 절대적 존재 앞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두려움과 공포 앞에서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삶이라는 녀석 역시, 시간만큼이나 심술궂고 잔혹한 존재라, 가장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시간 앞에 내어주곤 하지만. 

 

과거에 얽매이면, 시간은 보다 더 우리 자신의 삶에서 유리된다. 더 모른 척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추억을 먹고 살아가나 보다.

하지만, 그렇게 과거에 얽매이면, 우리는 보다 더 고독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은 고독해 지나보다. 

 

현실을 마주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여기 커트와 리사처럼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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