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목가 2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8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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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 굉장히 바빠진 탓에 한 달에 읽는 책의 권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사실 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최대한 천천히 꼭꼭 씹어 읽고, 읽은 뒤에는 반드시 감상문을 적는 습관 탓이기도 하지만, 이번달에는 특히 필립 로스의 책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던져보련다. 개인적으로 한 번 '꽂힌' 작가에 대한 애정을 쉽게 놓아버리는 편은 아니다. 몇달동안 한 작가의 작품만 읽은 경우도 있을 정도로 쉬이 질리지도 않고, 반면 쉬이 꽂히지도 않는다. 필립 로스는 [에브리맨]을 시작으로 [울분] 과 [휴먼 스테인]을 연달아 읽은 기억이 생생한데, 세 작품 모두 개인적으로는 무척 드물게 재독, 삼독을 거쳤더랬다. 덕택에 필립 로스의 작품이 갖고 있는 공통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는데, 솔직히 글로 잘 표현하지는 못하겠다. 아마 그런걸 글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뭐 평론가나 학자 정도 하고 있겠지.

그나마 또렷히 적어낼 수 있는건, [미국의 목가]를 포함해 내가 읽어본 그의 작품들엔 여지없이 상실과 그로 인한 혼돈, 그 후에 찾아오는 변화와 여지없이 동행하는 불안과 울분과 분노, 슬픔 등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주변엔 여지없이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의 목가]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죽음과 가장 많은 혼돈이 담겨있다.​ 제아무리 한번 빵 꽂혀서 주구장창 읽어댔다지만, 필립 로스의 책들은 전반적으로 참 읽기 힘들었고 [미국의 목가] 또한 그랬다. 스스로에게 고문을 가하는 느낌이랄까. 말言이 심장에 비수를 꽂는다면, 글文은 심장에 수십개의 바늘을 꽂을 수 있을터. 스스로에 가하는 지극한 피학성과 가학성을 동시에 감내할 수 없다면, 필립 로스의 책은 즐기기 쉽지 않을터다. 

책은 두권으로 나뉘어있는데, 시모어의 삶 역시 그렇게 두개의 부로 나눠진다.
앞 부분은 시모어가 평탄하게 쭉 뻗은 길을 무탈하게 달려가는 내용이다. 미스 아메리카 대회에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아내 돈과 만나 결혼을 하고 가업인 가죽 장갑 사업을 물려받아 승승장구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 메리가 갖고 있는 말더듬이 문제는, 시모어에게는 언젠가 받드시 해결되어질 사소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상에 사소한 문제란 없다. 필립 로스의 다른 작품인 [울분] 의 한 문장처럼.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앞부분이 멋진 탑을 정성스레 쌓아올리는 과정이라면, 뒷부분은 철저하게 부숴버리는 과정이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안과 밖에서 허물고 부수고 가라앉힌다.
시모어의 삶은 매끄러운 벽돌로 꼼꼼하고 아름답게 쌓아올린 지구라트였다. 타지에서 자수성가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에 대한 찬양의 공간이었고, 행복한 삶을 기원하고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단단하지는 않았다. 신의 한마디에 무너져버린 바벨탑처럼, 딸 메리로 인해 시모어의 삶은 무너졌다. 무너진 폐허 속에서 시모어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노력한다. 살기 위해서는 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여야 했다. 받아들이기 위해 이해해야했다.  딸 메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녀에게 일어난 상황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주변 인물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끊임없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

필립 로스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삶이란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음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임을 말하곤 했는데,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휴먼 스테인] 을 포함한 소위, '주커먼 시리즈' 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연작들은 작중 화자인 '주커먼' 에게는 비교적 애정어린 시각을 보이는 반면, 그들이 다루는 작중 주인공들에게는 냉혹할 정도로 관조적인 시각을 보인다. 작가의 이러한 태도가 주인공들에게 벌어지는 삶의 불가해함과 부조리함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는데, [미국의 목가]의 주인공인 시모어 레보브에게 일어나는 일들 역시 공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다. 

특히 최근 몇달 사이에 한국을 강타한 끔찍한 사건. 416 세월호 참사 이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유가족들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가고 있다. 46일간의 단식을 감행했던 김영오씨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천하에 공개된 그의 개인사를 살펴보면, 죽음을 각오한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만한 충분한 계기와 더한 죄책감이 있었을터다. 시모어에게 일어난 것과 더 비슷한 일은 사실 군대에서 일어나는 사고들이다.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마치 실제가 아닌 것 같은, 어처구니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제대로 안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 말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시모어는 항상 최선을 다해 감정을 컨트롤하고, 최선을 다했다. 어린 시절부터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랐고,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서 비뚫어지곤 하는데, 그는 언제나 모든 기대를 충족시키며 자랐다. 언제나 최고의 운동선수였고, 최고의 학생이었다. 그리고 최고의 사업가였고, 최고의 남편이자 최고의 아버지였다. 최고의 가정을 꾸려냈다. 하지만,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는 것은 조금 다른 지점이었다. 그것은 스스로 노력한다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최고의 남편이 되기 위해서는 아내의 인정이 필요했고, 최고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딸의 인정이 필요했다. 
누구에게나 삶이 비논리적이고 불가해한 것은, 우리의 삶 안에 수많은 타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타인들은 또 다른 각각의 세계이고, 가정이라는 공간은 가족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세계가 아닌, 가족 구성원 각자가 갖고 있는 별개의 세계들를 잠시 모여있게 하는 공간에 불가하다. 서로의 세계들이 부딪히며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논리는 깨져나가고, 규칙은 와해된다.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도 누군가의 세계에서는 그다지 기본적인 것이 아니기도 하다. 상식이란 무의미하고, 법과 규범도 무의미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했던 모든 선택들은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로 나타난다. 
삶이란 그런 것들의 총합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있어 먼저 떠나보낸 자식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뚜렷해지고, 그리워진다고 한다.
1년 1년이 지날 때 마다, 지나가는 자식 또래의 아이들을 볼 때 마다.
내 자식이 안 죽었으면 저렇게 되었겠지, 하며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괴로워한다고 한다. 
한 때 시모어는 모든 것을 가졌다.
너른 소목장과, 소를 키우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던 돈. 돈을 돕는걸 즐겼던 메리. 꿈꾸던 미국의 전통 주택을 지어 그 현관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가정을 바라보며 행복해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든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지만,
그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는 커녕,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삶은, 잔혹해서 애초에 이해를 바라지도, 수용을 바라지도 않는다.
일은 그냥, 일어날 뿐이고,
인간은 그저, 적응할 뿐이니, 시모어 역시 그럴 것이다. 
희미해지지 않는 기억과, 시간이 갈수록 짙어질 그리움과, 괴로움에.
끊임없이 무너져내리는 삶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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