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토월 - 이문구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4
이문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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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영글 눈발이 소나기지면서 잠 씻은 밤이 이우는 섣달이라 기댈 건 화로하고 다시없으련만, 또 무슨 추위던가 횃대 밑에선 벌써 닝닝한 화로 냄새가 돈다. "
[암소]
 
 첫 문장부터 아주 맛깔났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문장을 읽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마치 판소리의 한 자락처럼 가락을 넣고, 중간에 추임새를 넣고 싶을 정도로 문장 맛이 좋았다. 진눈깨비를 '더 영글 눈발' 이라고 표현하고, 후루룩 쏟아지는 모양새를 '소나기지다' 고 표현한다. '횃대' 라는 단어의 의미를 몰라 간만에 인터넷 국어사전을 찾아 들어갔다. '기름한 작대기의 두 끝에 끈을 매어 벽에 달아매어 놓고 옷을 걸게 한 막대기.' 라고 한다. 사진이 있어서 금방 이해할 수 있었지만, 서울에서 나고 30년이 훌쩍 넘도록 떠나보지 못한 나에겐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이다. 여튼, 벽에서 한기가 스며들 정도의 12월 추위를 횃대 밑에서 닝닝한 화로 냄새가 돈다고 묘사한다. 
 첫 문장부터 이렇게 신선하고 감각적인 묘사가 가락을 타고 흥겹게 흘러나오니,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총 10편의 작품들 중 1. 이라는 숫자가 붙어있는 [암소] 를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쉴새 없이 키들거리고, 미소짓고, 안타깝게 하고, 문장을 입밖으로 소리내었다. 인물들은 어쩜 그리 생생하고, 대사들은 찰진지. 갈등관계는 명확하고, 인과관계도 뚜렷하다. 거기에 우리의 말이 가지고 있는 감칠맛은 또 어찌나 좋은지. 옛날 사투리들이 섞여있어 소리내어 읽어보지 않으면 모를, 그리고 앞 뒤 문장을 통해 내용의 흐름을 잘 파악해 보지 않으면 모를 단어들이 요소요소에 숨어있는데, 그것들이 나에겐 커다란 식빵 사이에 묻혀있는 건포도처럼 달달했다. 오죽하면, [이문구 소설어 사전] 이라는 것이 편찬되어 있고, 이 두툼한 작품집의 권말에 몇 페이지를 할애하여 낱말풀이를 해 두었을 정도이다. 
 
 문장도 문장이지만,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 자체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수필과 소설, 직접 겪은 일과 꾸며낸 이야기  사이에 절묘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대단히 디테일하고 생생하다. 직접 겪은 일이건, 꾸며낸 이야기이건 작가로서의 관찰력과 그것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재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생생한 인물들을 통해 한 시대를 관통한 사상과 사건, 관념과 생활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로인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렸을 적 살았던 옛 동네,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금은 기억과 다르게 변했을 과거의 그 장소들, 그 장소를 거닐던 그 때의 기억들. 다시는 바라볼 수 없는 풍경들과 느껴볼 수 없는 시간들. 그 가슴 저미는 향수가 말과 글의 향연 속에 잔잔하게 스며있다.     
 
 [암소] 를 시작으로, '관촌수필 연작' 중 네편이 실려있고, '우리동네 연작' 중 두편이 실려있다. 그 뒤를 [명천유사] 와 [유자소전] 이 뒤를 잇고 [장동리 싸리나무] 로 두툼한 작품집의 마지막장이 덮인다. 
10여편 모두 이문구라는 대가의 수많은 작품들 중 고르고 골랐다는 느낌이 확 와닿는다. 특히, [암소] 와 [장동리 싸리나무] 는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의 감상이 묘하게 닮아 작품집 전체가 묘한 수미상관을 이루며 '작품 모둠' 그 자체로서의 완성도가 느껴진다. 
 모든 작품이 다 너무 좋아서 가장 좋았던 한두편을 꼽기 어려울 정도였다. [공산토월]과 [유자소전]은 마지막 장을 덮을때 왈칵 솟구치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고, [우리동네 이씨] 와 [우리동네 김씨] 는 잔잔한 카타르시스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암소] 와 [장동리 싸리나무] 에서는 화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공산토월] 외의 관촌수필 연작들 또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만들었다.
   
 '문학' 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치들 중 하나는 한 시대의 가치관과 생활관이 후대의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형태로 남겨진다는 점이다. 여러 세대에게 지속적으로 공감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를 위해 이야기의 구조와 문장의 아름다움을 포함한 문학적 완성도가 충분히 갖춰져야 하고,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킨 문학작품은 결국 고전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이 작품집에 실려있는 이야기들의 배경은 주로 50년대에서 60년대 우리나라의 수도가 아닌 지방이다.'관촌수필' 이라는 제목답게 관촌수필은 모두 충청남도 대천의 관촌부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지금은 미군이 조성해 놓았던 대천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한국전쟁 전후의 혼란한 사회상과 농촌마을의 생활상이 작가의 체험과 상상을 통해 풍부하게 묘사되어있으며, 충청도의 사투리가 듬뿍듬뿍 들어가 있다. 때문에 읽기가 수월치 않을 수도 있으나, 이 또한 작품의 맛이며, 가치이기도 하다.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기록. 
이문구, 당신은 마법사!!! (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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