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3 : 디럭스 에디션 시공그래픽노블
그랜트 모리슨 지음, 임태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 리뷰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미래의 총입니다. 

내일의 전쟁에서는 보시는 바와 같이 동물을 원격 조종하여 싸우게 될 것입니다.

생물병기입니다. 의원님.

인간의 새로운 친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미국 비밀 연구소에서 생체 병기가 완성되었다.

동물들을 소재로 한 Animal Weapon, 통칭AWE 프로젝트가 성공한 것이다. 세 기의 시험기가 탄생했고, 그들에게 WE3 라는 코드명을 붙였다. 개犬가 팀의 리더로서 코드명 원One, 고양이는 투Two, 토끼는 쓰리Three 로 불리게 되었다. 팀 WE3는 작은 몸집과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빠른 감각으로 통풍구와 하수구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며 위험한 임무들을 충실히 수행한다. 테러조직을 소탕하고, 미국의 적이 될만한 요인들을 성공적으로 암살해 낸다. AWE 프로젝트를 총괄한 상원의원은 대량으로 양산형 모델을 생산하기 위해, 시험기들을 폐기처분 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핵심인물인 로잔느 베리 박사는 그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베리박사는 자신의 자식같던 WE3 멤버들을 베이스 연구소에서 탈출시킨다.  



최첨단 탱크 한 대 급의 화력을 갖추고 있는 개犬- 원 , 스텔스 기술이 접목되고 강력한 살상무기로 무장된 고양이 - 투, 지뢰와 독가스 등 대량 살상 무기를 장착하고 있는 토끼 - 쓰리. 이 위험한 병기들을 제압하기 위해 수많은 군인들이 동원된다. 

하지만, 인간의 수배가 넘는 반응속도와 감각을 가지고 있는 WE3에게 군인들과 평범한 무기들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최첨단으로 무장되었으며,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는 것은 가차없이 말살시키도록 프로그램 되어있는 최첨단 생체병기였으니까. 







 이 작품은 이제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미국의 메이져 만화사 '마블'과 'DC'가 아닌 '버티고VERTIGO' 라는 회사에서 나온 작품이다.  버티고는 히어로물 일색인 마블과 DC와는 달리 성인 취향의 진지하고 어두운 작품들을 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V 포 벤데타] 같은 작품들도 버티고가 발굴해낸 역작이다.

WE3 역시 잔인하고 참혹한 묘사가 여과없이 등장한다. 사실, 이정도 묘사는 요즘 아이들이 즐기는 게임이나 만화 등에 비하면 별 것 아니긴 하지만, 국내에서는 [19금] 딱지를 붙이고 발간되었다. 


 작품의 플롯은 아주 단순하다. 

불가능한 임무들을 충실히 수행했던 생체병기 WE3. 하지만, 인간도 아닌 동물 - 그것도 미국 전역의 어느 가정에서나 쉽게 만나볼법한 개와 고양이 그리고 토끼가 모여있는 팀의 해체와 팀원들의 '처리' 는 그들에겐 너무나 쉬운 명령이었다. 이들은 프로그램 유지를 위한 약물 공급만 끊겨도 죽어 없어질 존재들이었다. 그런 WE3 였지만, 인간들의 제어를 벗어난 이상 그들은 우리를 벗어난 맹수와도 같은 존재였다. 

특히 정식으로 AWE 프로젝트를 국책사업으로 지원을 받고자 하는'윗대가리' 들에게는 목에 걸린 가시와도 같았을 터. 결국 군대를 동원해 연구소를 탈출한 WE3를 제거하려고 하고, WE3 멤버들은 생존을 위해 그들만의 전쟁을 시작한다.


 할리우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전쟁에 특화된 유능한 요원들이 실컷 부려먹히다가 결국엔 효용가치가 떨어져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으로부터 쫓기게 되는 내용. 그런 내용에 주인공을 '동물'로. 게다가 인간들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로 바꾸면 된다. 충분히 교육받고 약간의 말을 할 정도로 언어능력까지 습득했지만, 그래도 동물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 부분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 개犬 인 원은 주인의 말을 잘 듣는 아주아주 충실한 살인병기 애완견이고, 고양이인 투는 비록 제멋대로인 성격이긴 하지만, 리더인 원을 존중하는 살인병기이다. 토끼인 쓰리는 역시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일때도 있지만, 순한 초식동물의 습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살인병기이다. 

 동물들은 살인병기로 개조되었음에도 애완동물로서의 모습을 유지한다. 주인에게 사랑받던 애완동물로서의 본능이 또렷하지만 자신들에게 적의를 갖는 대상은 가차없이 '처리' 하도록 '프로그램' 되었을 뿐이다. 주인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간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안한다. 물론 '자신에게 적의를 갖지 않는 한.' 

 그런 연출들이 굉장히 감성적이면서도 만화적, 문학적으로 잘 그려져있다. 모든 컷들이 굉장히 많은 고민을 통해 앵글과 시선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림들도 모두 일러스트처럼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컷 하나를 봐도,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는데, 각 컷의 많은 앵글들이 동물의 시각을 표현하기 위해 애쓴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 주로 인간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보는 점이라던가,  인간보다 훨씬 빠른 동체시력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의 시선을 정적인 네모칸 안에 넣기 위해 시도한 여러가지 표현방법들이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디럭스 에디션' 이라는 제목답게 책의 말미에 DVD의 서플먼트처럼 작가들의 말이 실려있다. 특별한 컷에 대한 작가들의 의도와 아이디어 발상 과정, 작업 과정등이 상세하게 실려있는 것이다.  이런 친절함들을 통해 작품을 더욱 깊이있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미국 만화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나아가 미국 문화의 근간이나 다름없다. 

만화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고, 글과 그림을 통해 다양한 연상작용을 도와주기에 전달력이 그 어떤 매체들보다 빠르다. 미국 만화는 히어로물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했지만, 수많은 스토리 텔러들은 그런 만화를 통해 수많은 메시지들을 전해왔다. 슈퍼맨은 세계대전의 한 가운데에서 수많은 친구들, 자식들을 전쟁터로 내보내고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태생 자체가 반전反戰과 생명존중에 대한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헐크와 같은 히어로 캐릭터들은 물론이고, 렉스 루터나 조커 같은 악당들 역시 모두 범인류적인 메시지는 물론, 문학작품들 처럼 인간의 본성이나 사회의 이면들을 날카롭게 포착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WE 3] 는 보다 또렷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대단히 쉽게 펼쳐내고 있다.

생명 존중은 비단 인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 

그런 메시지들을 우리와 가장 가까운 애완동물들을 통해 적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종일관 비극적으로 흘러가던 이야기는,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몇 사람에 의해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해피엔딩의 키는 두명의 과학자와 한명의 노숙자가 쥐고 있다. WE3 멤버 중 하나였던 토끼와, 토끼를 닮은 박사 한명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다른 둘을 살려낸다.

인간들에 의해 길러지고, 인간들에 의해 개조되고, 인간들에 의해 다른 인간을 죽이도록 명받은 순수한 동물들은 다시 자신들의 자리인, 사람의 품과 무릎 위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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