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서유요원전 대당편 3 만화 서유요원전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수호지], [삼국지연의], [금병매], 그리고 [서유기] 를 통틀어 중국 4대 기서라고 한다.

중국의 수많은 고전들 중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이 작품들은 수많은 영화로, 만화로,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금병매]의 경우는 성적인 묘사들도 꽤나 노골적이기 때문에, 비디오 대여점에서 볼 수 있는 빨간 표지 에로 영화의 소재와 제목으로도 많이 쓰이기도 했다.  

 [서유기]는 특히 너무나 유명한 만화들의 모티브로 작용하여 우리에게 참으로 익숙하다. 손오공과 삼장법사의 천축으로의 여정은 여섯살배기 꼬맹이를 붙들고 물어봐도 알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대 최고의 만화라고도 할 수 있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 볼] 도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 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고, 허영만 작가의 [날아라 슈퍼보드] 역시 손오공이 주인공이다. 카즈야 미네쿠라의 [최유기] 역시 서유기의 새로운 해석이고, 현장삼장 대신 '오로라 공주' 가 나오는 '별나라 손오공' 이라는 일본 TV 애니메이션도 있었으니, 천축으로의 여정은 지구를 넘어 우주로까지 리메이크 된 셈이다.

 중국의 고전 중의 고전이던 서유기는 동양 만화의 뿌리로서, 그리고 상상력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 볼] 은 시기가 모호하지만,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손오공이 지구로 날려온 외계 종족 '사이어인' 이라는 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사이어인이 보름달을 보면 거대한 원숭이 괴물로 변신한다는 점이 흥미롭고, 지구를 노리는 외계인의 끊임없는 습격을 받고, 그들과의 전투를 통해 손오공은 점점 더 강해진다. 초반에는 확실히 서유기의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손오공이 성장한 뒤부터는 손오공의 이름 외에는 서유기의 색깔을 찾을 수 없어진다.  허영만 작가의 [날아라 슈퍼보드] 또한 시기가 모호하지만, 서유기의  그것을 비교적 철저하게 따라가고 있다. 근두운 대신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케이드 보드를 타는게 특이하고, 바주카포를 쓰는 덩치 큰 돼지 저팔계와 입에서 나방을 뿜으며, 소리를 잘 못 듣는 사오정 또한 큰 인기를 얻었다.
 카즈야 미네쿠라의 [최유기] 는 보다 서유기에 충실하다. 원 제목은〈가장 즐기는 서유기(最も遊ぶ西遊記)〉로써 (※출처: 위키디피아) 술, 담배, 마작을 즐기는 방탕한 현장삼장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동인지 출신의 작가답게 야오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미소년 캐릭터들이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홍해아 또한 대단한 미남자이다.
 언급하지 못할 만큼 더 많은 만화들이 [서유기] 에서 모티프를 얻어내고 있고, 국내에도 [날아라 슈퍼보드] 외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더 있다.
 

 이처럼, [서유기] 는 동양 문화 전반에 있어 상상력의 원천이자, 모험물의 뿌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오늘 언급할 [서유요원전] 의 작가 '모로호시 다이치로' 는 1970년에 데뷔한 노장 중의 노장이다. 게다가 30여년간 끊임없이 활동을 해오고 있는 작가인 동시에, 일본 만화계에 굵직한 획을 긋는 작품들을 만들어낸 거장이기도 하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이 [서유기] 가 가지고 있는 시대배경을 완전히 배제한 것과 달리 , 모로호시 다이치로는 원전이 가지고 있는 시대배경을 충실히 하는데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야기꾼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서유요원전은 수나라 말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먼저 이야기꾼이 언급하는 [대당삼장취경시화] 는 당나라 시대 현장 삼장이 황제의 명을 받들어 북인도에 가서 불전을 얻어온 사실에 입각한 일종의 설화집이다. 현장 삼장의 북인도 방문기는 전설처럼 떠돌고 있었고, 여기에 문무를 겸비한 종자와 설화적 상상력을 집대성해서 꾸며낸 책이 바로 '대당삼장취경시화' 인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당시에  현장 삼장의 북인도 여행기를 토대로 한 [대당서역기], [대자은사 삼장법사전] 등을 비롯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특히 [대당삼장취경시화] 에 간략하지만 비교적 구체적으로 현장 삼장을 도와 신통력을 발휘하던 원숭이 수행자의 이야기가 실려있고, 이 즈음에 이미 서유기의 기본적인 얼개는 완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명나라 시대 오승은은 이 이야기들을 취합하고 집대성해서 서유기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위키디피아 + 네이버 백과사전) 
 

즉,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오승은이 완성한 [서유기] 를 재해석 했다기 보다, [서유기] 의 원전이  된 현장 삼장의 인도 방문기 자체에서부터 재해석에 들어간 것이다. 완벽하게 새로운 서유기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다시 서유요원전의 줄거리로 들어가서,

수나라 양제는 고구려 정벌에 대한 야욕으로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북방 민족을 정벌하고, 만리장성을 수축하였으며, 대운하까지 건설하는 등 백성들은 몸 누일 틈조차 없을 정도로 혹사시켰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양제는 결국 3차례의 고구려 원정을 모두 실패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바로 그 시기부터, 손오공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남 지방의 작은 마을 '복지촌'. 산속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동네로, 화과산이 굽어보이는 깊은 산골마을이었다.

이런 작은 마을도 피해가지 않는 군역으로 징집되어가는 남편 손해를 배웅하고 돌아오던 길에, 손해의 부인은 원숭이들에게 납치되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손해의 부인을 구하러 산속으로 들어가지만, '주염' 이라는 거대한 원숭이 요괴를 만나서 결국 마을사람들은 손해의 부인을 구출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뒤, 원숭이에게 납치되었던 손해의 부인은 마을 사람들 앞에 갓난 아기를 놓고 사라지는데, 그 아이가 바로 손오공이다.

 손해의 부인이 원숭이에게 납치될 때 함께 있었던 부인의 손 아래에서 손오공이 소년으로 성장하는 동안 수나라는 멸망하고, 각지에서 수많은 나라들이 생겨나고 멸망하고를 반복하게 된다. 그 중, '당' 이라는 나라가 가장 큰 위세를 떨치며 주변을 평정해 나가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으나, 아직 각지엔 수많은 왕들이 황제를 자처하며 전국 재패의 꿈을 꾸고 있었다. 백성들은 수나라 시대에 이어 여전히 침탈과 굶주림 속에서 연명해 나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 손오공이 식량을 구하러 화과산 깊숙히 들어가 이런 저런 변을 당하고 있던 사이에, 당나라 군대가 손오공이 살던 마을 복지촌을 습격해 초토화를 시킨다. 가까스로 화과산을 빠져나와 복지촌에 도착한 오공. 자신을 길러준 동네 주민들은 물론, 이웃의 모든 사람들까지 처참하게 죽어있는 광경을 보며 망연자실한다. 그 순간, 화과산에서부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소리를 듣게 되고, 손오공은 마치 뭐에 홀린 듯 발걸음을 다시 그 쪽으로 향하게 된다. 화과산의 가장 깊은 곳, 수렴동이라는 곳엔 물을 다스리는 거대한 외눈박이 원숭이 요괴 '무지기' 가 민심을 미혹시키고 세상을 어지럽힌 죄로 쇠사슬에 꽁꽁 묶여있었다. 손오공은 자신도 모르는 새 그 곳까지 가서 무지기와 마주하게 되고, '제천대성' 이라고 칭하는 무지기는 손오공에게 "넌 나의 핏줄이다" 고 말한다. 자신이 요괴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손오공. 

 하지만, 손오공은 무지기의 계략과 술수로 인해 '제천대성' 의 칭호를 잇는 머리테를 쓰게 된다.
제천대성의 칭호를 잇는다는 것은 무지기를 위해 세상에 전란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무지기는 힘을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원념이 필요했고, 세상에 전란이 멈추지 않아야만 그것이 가능한 터였다. 무지기는 예로부터 인간들을 미혹하고 자신의 힘을 빌려주어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나라를 세워 할거하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머리테를 쓰자 손오공 또한 끊임없이 무지기의 목소리와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원혼들의 원망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손오공에게 정신적인 고난을 주고, 실제로 머리테로 인한 신체적인 고통까지 함께 주어 크게 괴롭힌다.
 그러던 중, 우연히 '현장' 이라는 승려가 불경을 외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 순간 손오공을 괴롭히던 머리테의 죄는 듯한 고통은 물론, 원혼들과 무지기의 원념까지 일시에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현장과 손오공의 인연은 그리 쉽게 닿질 않고, 반당군인 유흑달의 휘하 '홍해아' 를 만나게 되며, '제천현녀 용아녀' 와 산적 두목인 '금각. 은각' 형제 등을 만나 대당 반란의 중심으로 휩쓸리게 된다.  
 



 

 이야기는 실제 역사에 충실하게 전개되어 나간다. 손오공이 원숭이라는 설정 자체를 좀 더 리얼하게 접근하는데, 마치 신화를 해석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우리가 단군신화를 해석할때, 곰과 호랑이를 곰을 섬기던 족속, 호랑이를 섬기던 족속 등으로 해석하는 것과 비슷하게 손오공이라는 '원숭이' 를 재해석 한다. 이 작품 안에서는 거대한 원숭이를 '제천대성' 이라고 섬기던 일종의 민중 신앙을 기반한다. 당연히 서유기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 역시 등장한다. 금각과 은각, 홍해아 등도 리얼하게 재해석되어 등장하며, 손오공의 머리테나 여의봉의 재해석 또한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민중들에 대한 묘사도 대단히 디테일하고 리얼하다. 도적에게 침탈당하고, 지역의 군인들에게도 수탈을 당한다.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살육을 당하기도 하고, 생존 자체가 고난이었을 당시에 민중들. [서유요원전] 의 이야기의 핵심은 손오공과 현장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나간 평범한 민중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완벽하게 리얼한 역사적 접근이라는 것은 아니다. 손오공과 각종 인물들이 '사람' 이었다는 가정 하에,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시켰을 뿐, 만화적 상상력이 배재되어 있지는 않다. 위 장면에서도 보여지는 '주염' 이나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는  '무지기 ' 등의 요물이나 요괴들도 등장하고, 신기한 주술이나 요술들도 등장한다. 이것들은 손오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좋은 양념이 된다. 실제 역사와, 서유기의 등장인물들의 현실적인 재해석, 그리고 만화적 상상력까지 절묘하게 뒤섞여 있는 것이다. 
 

 [서유기] 가 수많은 중국의 고전들 중에서도 '기서' 들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유는 단순히 모험과 드라마 뿐이 아니다. 서유기는 '천축으로 향하는 여정' 그 자체가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인 동시에, 종교적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특히 현장삼장과 손오공일행이 겪는 사건들은 81난은 유,불, 선이 결합된 일종의 종교적 '레벨업' 의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가지 사건을 통해, 한가지를 얻어내고, 두번째 사건을 통해 부족함을 절감하며, 또 무언가를 얻어내며 사건을 극복해낸다. 끊임없는 유혹과 끊임없는 사건들속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고뇌하고, 고민하면서 하나하나 깨달음을 얻어낸다.  


 [서유요원전] 의 뛰어난점은 바로 이런 원전 [서유기]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냈다는 부분에 있다.
이 작품은 끊임없이 등장하는 화려한 액션과 치열한 전투 장면들이 관심을 사로잡지만, 무엇보다 심각할 정도로 끝없이 고민하는 두 인물, 손오공과 현장이 핵심이다. 손오공은 자기 안에 또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제천대성이라 칭하던 괴물 '무지기' 가 불어넣은 자아. 그리고 원래 자기가 가지고 있던 손해의 아들 손오공이라는 자아. 손오공은 끊임없이 이 두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현장은 승려로써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불교라는 종교의 깨달음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하고 고뇌하고 있다. 아무리 공부하고 고찰을 해도 깨달아지지 않는 불교의 오의.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어느정도 경지에 오르면 자신이 깨달은 종교적인 세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럽고 추한 현실적인 세상 사이에서 극심한 갈등을 일으킨다. 그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 천축행을 결심하는 현장.
 

 지금까지 애니북스를 통해 3권까지 정식 번역되어 출간되었는데, 갈수록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게다가 400페이지를 넘나드는 엄청난 볼륨도 대단히 맘에든다.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엄청난 이야기와 두께!!

 



 
1970년에 데뷔한 노작가 답게, 그림은 엄청 세밀하거나, 세련되지는 않다. 말 그대로, 옛스러운 그림과 투박한 펜선. 
 

 하지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출력 만큼은 정말 대단하다. 이 당시의 망가는 보다 '망가식 스토리텔링' 에 입각한 작품들이 많았다. 지금도 일본 망가들은 '시선의 흐름' 과 그것을 통한 전달력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만화나 일본망가가 동일하게 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미국에서는 '그래픽 스토리텔링' 또는 '비주얼 내러티브' 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컷과 컷의 흐름을 통해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특히 잡지만화에서는 이것에 대해 거의 공식화 되어있는 일종의 연출의 기법과 같은 것이 있다. 미국 만화에서 역시 독자들에게 통할 수 있는, 통하게 되는 공식과도 같은 흐름이 존재한다. 네모난 컷 박스는 어떻게 변화를 주고, 이 컷 안에는 어떤 효과를 주는 그림을 넣고, 이 페이지 안에서 가장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컷은 어떤 컷의 어떤 그림이고 등, 효과적인 스토리 텔링을 위한 나름의 노하우들이 축적되어 있고, 이것들의 토대는 바로 테츠카 오사무나 오토모 가츠히로, 모로호시 다이지로 같은 1960~70년대의 작품들이다.

 그 때문인지 이 작품은 확실히 요즘과는 다른 전통적인 연출법이 눈에 띈다. 최근의 만화들처럼 영화적인 연출법이 사용되어서 역동적이거나 세련된 맛은 없지만, 독자에게 보다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 하다.
노 거장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손오공과 현장삼장의 모험.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더욱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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