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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리커버) ㅣ 문학동네 숏클래식 리커버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9월
평점 :
생과 사 그리고 삶에 대한 감각.
요한네스라는 한 어부가 생을 시작하게 되고, 또 마감을 하는 아주 간단한 줄거리를 가진 소설이다.
묘하게 현실이 아닌 듯 현실적인, 두 번째 파트부터 얘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이 부분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다시 곰곰히 곱씹다보니, 문득
‘결국 다 기억으로 감각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꽂히게 되었다.
요한네스의 혼령이 이곳 저곳을 배회하고 추억하는 부분을 단순히 소설의 전개로 볼 수도 있겠지만,
문득 요한네스의 혼이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도 무얼 했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닿았다.
친구도 만나고 아내도 만나고 배도 타고 커피를 마시며 담배도 말아 피우는 행동을 했다고 스스로는 의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일련의 행위들은 마음으로 원했기에 행해졌다고 느꼈을 뿐 실제로 구현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소설안에서의 일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은,
죽은 자의 환상일 뿐이라고 하기엔 살아있는 사람들의 감각도 비슷하게 작동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어떤 행동을 했다고, 혹은 싫거나 좋은 것들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뇌의 감각이고, 그렇게 뇌에 저장된 기억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거나 혹은 후회를 곱씹는 행위는 산 자 역시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었다.
생각해보면 산 사람 역시 현실에서의 행동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아니, 인간은 스스로 인지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지 모른다.
그렇다면 조금만 널 뛰듯 건너서, -죽은 자도 추억하고 산 자도 추억으로 산다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는 무엇일까.
소설에서 사랑하는 막내 딸과 조우하지만 물리적으로는 알 수 없는 것 처럼, 서로 닿지 않는 것?
저자는 요하네스가 처음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대한 얘기를 당연하다는 듯이 꺼낸다.-첫 파트를 보면.
특히 공간적으로 매우 한적한 작은 시골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삶을 반복하는, 번잡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일까,
이 책 안에서 생과 사는 어쩌면 느슨하게 연결된 줄처럼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름을 주고 받는 그 삶들이 지는 건 그냥 좀 슬프긴 하지만, 별 거 아닌 일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마치 한 편의 서사시인 양 강렬했던 첫 번째 파트를 들여다보자.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동안 아버지인 올라이가 노심초사하다 못해 생과 사에 대해, 신의 존재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고해하듯이 피력한다.
아버지는 요하네스가 뱃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무로 돌아 갈 것을 생각한다. - 물론 그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기에 예언도 무엇도 아니긴 하다.
그리고 그의 고심은 신과 악마의 존재에까지 다다른다.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생각하는 올라는 절대적인 신을 믿지 않는다.
p19:19- p20:2
‘ 신이 존재하기는 하겠지, 올라이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가까이 있다. 그리고 그는 전지전능하지도 않다. 그리고 그 신은 홀로 이 세상과 인간들을 지배하지 않는다, 그래 여하튼 존재하기야 하지만, 창조 과정에서 방해를 받은 거지, 올라이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기에 그는 아마도 무신론자인 것이다.‘
뒤에 번역자의 해설을 참고하면, 이 줄줄 이어지는 문장의 중간에 아주 드물게 방점이 찍힌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은 확신할 수 있는 것 이라고 한다.
아마도 화자인 캐릭터가 확신하는 부분이 될 수도 있고 작가가 확신을 가지는 부분이지 않을까. 신에 대하여.
세상을 창조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악의 세력 역시도 만만치 않게 끼어들었겠지.
신과 현실과의 괴리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툭 얘기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참으로 벨런스있는 생각이 아닌가.
그리고 오랫동안 무신론과 나의 하늘님에 대해 생각해온 나로서는,
-아, 그것을 투박한 캐릭터에게 이렇게 세련되게 표현되도록 만들다니... 세상에나.
오랫만에 작가랑 개인적인 소견에 대한 동질감이 느껴져서 혼자 뿌듯해했다.
결국 그는 바라마지않던 튼튼한 사내아이를 얻게 되고, 미덥지 않은 신이 마치 이 유전자의 끝은 없을 거라고 예견이라도 해준 듯, 그 아이는 장래에 손주를 일곱이나 낳아 튼튼하게 키워내는 사람이 된다.
-딸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 것은 좀 아쉽지만, 힘센 사람이 남아서 대를 이어야 하는 척박한 어촌 마을이 배경인 것을 감안해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여자들은 남자를 따라 이동해야 하는 환경으로 보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돌아온 마르타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힘들게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는 마치 아직도 경계에 걸쳐있는 것처럼 올라이에게 거대한 고요를 느끼게 한다.
그 때문인지 가뜩이나 아내가 어머니처럼(아마도 애를 낳다 돌아가신 듯)될까봐 걱정스러웠던 올라이는 산고를 치른 후에 죽을 만큼 피곤해 보이는 부인에게 계속 말을 걸어본다. 마치 살아있음을 계속 확인하는 것처럼.
음... (이 부분은 취향일 것 같은데)
촌부의 절박함과 지고지순함에 안스럽기도 하고 귀엽기까지 하더라.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이었지만, 잡생각을 가라앉히고 분위기를 타며 읽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겠다 싶다.
-처음에 아무 생각없이 붙잡았을 때 겪은 일이라 난감했다.
주인공이 계속적으로 혼란을 겪는 와중에도 읽는 사람은 차분하게 유지가 되는데, 아마도 제목처럼 아침에서 저녁으로 찬찬히 흘러가는 시간적인 흐름에 따른 서사 덕분인 듯 하다.
개정판으로 새뜻한 샐루리언블루 배경에 금박의 노르웨이어가 적힌 양장본의 표지로 구입을 했다.
너무 예뻐서 시작부터 기부니가 좋았는데,
다 읽고 다시 보니,
이런 노인과 바다를 생각을 하게 하는 밝은 파랑 말고 좀 채도 낮은 회색이 섞인 파랑 계열이나 채도 조금 낮춘 남보라 색깔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