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작아진 상처"

그로부터 세월이 꽤 흘렀다. 새로운 음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설 때면 그녀들의 목소리가 음악 같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지금 나는 새로운 음악을 듣고 있는 셈이다.
슬픔이라는 건 아마도 살아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결 작아진 상처는 나의 일부가 된다. 그리하여 나는 다른사람의 말을 듣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 P30

곱씹어 생각하면 할수록 이 일은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것을 깨달았을 때,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음악 소리가 흔적도 없이사라지고 밥을 먹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뭘 해도 통증이 따라와서 어떤 말도, 어떤 음악도, 어떤 음식도 의미가 없었다.
그 무렵 오사카에서 일하는 친구인 레이코에게 잠도 못 자고밥도 못 먹겠다고 전화를 걸자, 레이코는 주말에 도쿄로 오겠다고 했다.
"으음, 그런데 네가 왔다 간 뒤 나 혼자 남았을 때 어떻게 될지모르니까, 오지 마."라고 말했더니, 전화기 너머에서 친구는 울음을 터뜨렸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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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최근에는 확실히 그렇지요. 예술의 경우에는 모방하는 사람이 모방을 배움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어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표절이에요. …전 우리가 모방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 P18

이야기는 갈등을 다룬다고, 플롯은 갈등에 바탕을 둬야만 한다고 말하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인 선언이기도 하죠. 삶은 갈등이고, 그러니 이야기에서 정말 중요한 건 갈등 뿐이라고 말이에요. 이건 그냥, 사실이 아니에요. 삶을 전투로 보는 건 시야가 좁은 사회 진화론의 관점인 데다, 굉장히 남성적인 시각이기도 해요. 물론 갈등은 삶의 일부죠. 소설을 쓸 때 갈등을 끌어내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단지 갈등이 이야기의 유일한 생명줄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야기는 다른 많은 것을 다루니까요. - P42

하지만 그건 어떤 글을 그 자체로 완성한 게 아니라, 그저 어느 선에서 멈춰야 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전 의견을 담아내는 글이라면 어느 경우에나 글 끝에 꼭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고 느껴요. - P91

어떤 예술이든 다른 말로 바꿀 수 있는 언어적 사고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른 것도 비평에 포함해야만 해요. 어떤 소설이나 시도 분명한 한 가지 의미만으로 환원할 순 없어요. - P98

요새 아이들은 인간 외에 다른 생물은 만져본 경험도 없이 성장해요. 우리가 소외된 건 당연하죠. 우린 지구상에 다른 생물이라곤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도시에 살 수 있어요. 사람들이 무관심해지고, 종 하나쯤은 멸종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놀랍지 않아요. 우린 계속 다른 존재를 접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요. 전 동물을 다루는 문학과 어린이책 같은 문학이 그들과 최소한의 접촉이라도 하기 위한 창의적인 방법이라 생각해요. - P104

정말 다른 뭔가, 틀림없이 인간이고 감정적으로 대단히 이해할 만하지만 정말 다른 뭔가와 접촉했다는 감각이야말로 소설이 해주는 위대한 일 중 하나죠.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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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아무렇게나 가방에 넣고 오후에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교문에 들어서면서부터 뭔가 쎄했다. 시간을 잘못 맞춰왔구나. 그래도 늦어서 당황하는 것보다는 머쓱한 헛걸음이 낫다 생각하며 돌아나왔다. 남은 시간 동안 아침에 내린 봄비가 막 갠 동네를 걷기로 정한다. 봄꽃을 단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길을 걸으면서 젖은 꽃의 내음에 잠시 감탄했다. 봉긋한 꽃잎들 모양에 아침에 같은 길을 따라 옹기종기 학교에 가던 아이들 우산들이 떠오른다. 봄나무들의 가지는 하나같이 여리고 가는데 그 기운만큼은 호기롭다. 내 때가 왔다는 자신감, 적기의 미학. 피기 직전 꽃눈에 매달려 떨어질지 말지 베팅하는 물방울을 본다. 온갖 여린 것들이 싱그러운 기세로 나아가는, 봄이구나. 

길에서와는 사뭇 다르게 내게는 여러가지로 버거운 3월이었다. 아직 3월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훅훅 지나간 느낌에 얼떨떨하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이런저런 변화에 적응하려니 당연하게 몸도 좋지 않았다. 잠으로 모든 것을 회복할 것처럼 유독 많이 잤는데 그런다고 나아지지도 못했다. 해야 할 걸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지 않았다. 나한테는 특히 어려운 일인 ‘일상에서 작은 균형잡기’가 어그러졌고 아이들에게 그래야 할 만큼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했다. 

육아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면 엄마가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해주었었고 자주 그 말에 기대며 위로 삼기도 했지만, 이렇게 심통부리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행복하게 사는 게 그렇게까지 중요하고 최우선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양육자가 되고 나면, 계속 그렇게 살기는 어려운 노릇이 되어버린다. 그런 류의 혼란 속에서 어떤 양육자가 돼야 하는지 갈피를 못잡은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비슷하긴 하지만 그 시기가 있었다, 정도로 말할 수 있으니 이제 조금은 나아진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해결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도 내겐 자주, 좋은 방법이 된다. 

















자리를 잡고 책을 펼쳤다. 첫번째로 실린 시의 제목은 [발자국]인데 이 시집 아플까.

영혼을 외면했던
오늘 내 발자국이
불에 달군 쇳덩이처럼
위험해 보인다[발자국]

보다가 힘들면 집에서 마저 읽어야지. 제목에서부터 그랬듯이 시집 여기저기에 발자국이 보인다. “위험해 보이는” 발자국만 나오는 건 아니었다. 특히 좋았던 장면은 [겨울 아침]이라는 시에서 만났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되돌아가
허기졌을 배가 눈 위로 끌린 
새끼고양이의 길을 발로 다져준다 [겨울 아침]

발자국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일인지 곱씹어본다.
누군가 눈에 남기고 간 흔적을 본다. 앞섰던 걸음과 그 후의 걸음을 가늠한다. 그 발자국을 음미하고 따라걸어가 보기도 한다. 무심했다면 구분하기도 어려웠을 자국을 보고 새끼고양이의 주린 배를 상상한다. 그러고 나서, 이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것은 스스로 “나는 늘 혼자”라고 말했던 화자이다. 되돌아간다. 작은 발이 눈속에서 푹푹 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길을 다지고 본인의 발걸음도 새로 딛는다. 길이 된다. 


아주 행복해 보이는 여자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걱정 하나 없는 얼굴
꿈꾸는 눈빛으로
잠든 아기를 품에 안고

만일 내가 아기를 품에 안았다면
한숨 쉬었을 것이다
아기의 미래를
바구니처럼 끌어당겨 보며


내겐 한순간도 없었던 
꿈을 꾸는 여자가
봄날의 눈사람처럼 빛났다 [봄날의 눈사람]


“꿈꾸는 눈빛으로 잠든 아기를 품에 안고” 걷는 여자란 본래 없었던 것인데도 내게도 이렇게 선명할 일인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봄날의 눈사람이 내는 빛에 눈이 부시는 것 같은 착각도 생생하다. 시가 이 여자를 내 앞에 데려다 두고 나니 나도 그동안 이 사람을 앞세우고 걸어왔던 것같이 느껴진다. 내 발자국도 “흐릿한 그의 발자국 안에”([발자국 위로 걷기]) 포개졌겠지. 근데 눈사람한테 발자국이 있나. 이 봄에, 실없는 호기심이라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아이를 데리러 가면 얼추 시간이 맞을 것이다. 발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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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3-24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통 부리세요 유수님!!!!!

유수 2023-03-24 21:58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봄에 더 심술내는 제 심보란… 위안해주는 그 마음을 알아서 심통이 사람에게 향하는 건 절대 아니고 행복지상주의는 한결같이 싫네요.. 난티님께 주절주절ㅋㅋ
 
이젠 안녕 마음똑똑 (책콩 그림책) 7
마거릿 와일드 글, 프레야 블랙우드 그림,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 열람실 서가에서 정말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들 조합을 만나 반갑게 책을 뽑았다. 원제는 표지의 두 인물 이름 해리 앤 호퍼인데 어떤 의미에서 번역서 제목은 적절하면서도 깊어졌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상실을 겪은 본인만이 할 수 있을 말. (바라건대) 애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언젠가 뱉게 되는 말. 해리와 호퍼 둘의 우정 뿐 아니라 그들의 이별 후를 존중하는 양육자에게도 시선이 간다. 그림책 마지막장을 덮고 나면 타인의 슬픔을 바라보는 것에조차 박한 곳이 여기라는 현실감에 유독 저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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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맥락과는 다른 얘기지만 그럼 반대로 어떤 의미로든 ‘오프라인에서 픽업’되는 것과 무관한 글이 가능할까? 극단적 포장과 허위를 걷어내면 온라인 위계와 오프라인 위계가 실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페북을 글쓰는 용도로 사용하는 이점이 뭘지 늘 궁금했고 아직 궁금..

글쓰기의 정의는 이견이 없다. 글은 ‘자기‘ ‘생각‘을 ‘표현(재현)‘하는 ‘노동‘이다. 자신을 아는 일은 일생에서 가장 어려운 법이고, 생각하기는 가장 외로운 작업이다. 글쓰기는 중노동이다. 글쓰기는 두렵고, 어렵고,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수입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SNS에서 글쓰기는 자본의 입장에서 너무도 손쉽고 이익이 막대한 돈줄이자 중우(衆愚) 정치다. 키보드 사용자의 노동과 시간은 고스란히
‘구글‘이나 ‘삼성‘이 가져가지만,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우리의 영혼을 바친다. 그 대가는 무엇인가? - P181

페이스북에 쓴 글을 책으로 묶어내는 일도 심심찮다. 내가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이러한 현상의 바람직 여부가 아니라 자아실현, 자기선전 도구로서 SNS의 절대적 유용성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몇 년 이상의 노력과 노동, 비용을 기울인저작에 대해 ‘최악‘, ‘저질‘, ‘친일‘ 등의 댓글 테러로 그 텍스트들이 평가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그런 힘이있다면 디스토피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형태의 ‘자아실현‘
이 만연한 사회라면 공동체는 무너질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쇄물(책)을 소환할 때다. 지금으로서는잠시 SNS을 중단하고 오프라인에서 글쓰기가 유일한 저항처럼보인다. 너 자신을 알라. 생각을 하라. 죽도록 연습하고 표현하라. 그런 점에서 영화의 백미는 글쓰기 수업 파트다. 소셜 네트워크의 본질을 꿰뚫는 감독의 통찰력과 영화를 만드는 뛰어난
‘작전 구사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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