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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여기 래리가 있다.
이름난 소설가이자 이 책의 서술자인 서머싯 몸은 시카고에 들렀다가 그를 알게 된다. 사교계 인사 엘리엇의 초대로 그 누이의 집에 가게 되고 거기서 가족과 지인 몇몇을 소개 받는다. 엘리엇의 조카인 이사벨의 약혼자인 청년이 바로 래리, 로렌스 대럴이다. 첫만남에서 래리에게는 별다른 존재감도 없었다. 그랬던 그가 몸의 눈에 특별하게 들어오기 시작한 건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보는 그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후부터다. 잠깐의 대화와 하루종일 도서관에 처박힌 모습에서 그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인상을 받고 지켜보기 시작한다.
그 후 엘리엇과의 긴 인연이자 우정을 이어가면서 그 가족의 집안 대소사에 엮이기도 하고 크고 작은 연을 이어가면서 작가는 래리의 여정을 지켜보는 목격자이자 친구가 되고, 주로는 관찰자로서 이야기를 펼쳐간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래리는 예정대로라면 이사벨과의 약혼을 진행하면서 ‘미국인’답게 ‘남자라면’ 마땅히 해야할 구직활동을 시작해야 할텐데 그러지 않아 주변인의 애를 태운다. 소개해 주는 유망한 일자리도 마다하고, 학교에 가서 학업을 이을 생각도 아니란다. 이렇다할 계획 없이 포부도 없이 그저 빈둥거리겠다,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래리의 대답에 이사벨과 그 가족들, 지인들은 실망한다. 심지어 파리로 떠나 일이년 쉬겠다는 결정까지 내리자, 래리는 결혼할 남자가 못된다며 집안 어른들은 뜯어 말리고 ㅋ 그럼에도 이사벨은 결혼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단신으로 홀연히 파리로 떠난 래리는 본격적으로 저만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그 길이란...
진리 찾기라고 하면 적절할까. 후에 몸에게 직접 말하길 본인이 찾는 것은 ”자기 완성“의 길이란다. 포부 없는 남자가 아니라 포부가 너무 거대했던 것.
우리에게 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성공의 상징에 불과하죠. 우리 미국인들은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더 이상주의적인 사람들입니다. 엉뚱한 것에 대해 이상을 세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 저는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이상이 자기완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464.
참전해서 항공기 조종사로 복무했던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와 웃고 농담하던 친구가 자기를 구하다 격추되어 시신이 된 것을 목격한다. 그렇게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지게 된 거고, 자연히 결혼도 사랑도 속세의 성공도 더 이상 래리의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언제나 ‘그 너머’에 시선을 두는 탓인지, 래리와 대화할 때 종종 화자는 래리가 아예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하거나 내면에서부터 듣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신이 있다면, 자아의 통합이라는 게 있다면, 인생의 물음에 대한 답이 있다면..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대답과 진리, 그에 닿을 수 있을만한 경험을 찾아 래리는 세계를 유랑한다.
래리는 자기를 만나러온 이사벨과 데이트를 하고 파리에서 묵는 남루한 숙소로 데려오게 된다. 이제 때가 옴. 결혼에 대해 진지하고 깊은 대화를 나눈다. 그 동안 래리의 의식여행이 어떻든 눈 질끈 감은 채 사랑으로 돌진했던 이사벨도 이걸 보고는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이사벨과 결혼할 생각이 있었던 래리도 이런 결혼, 이런 집, 이런 양육의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려주려했던 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차이를 견주다 못해 가치관의 바닥까지도 내보인다.
”하지만 래리, 나는 아기도 낳고 싶어.“
”그래 아기를 낳으면 그 애도 함께 데리고 다니자.“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마.“
이사벨은 코웃음을 쳤다.
”아이를 낳으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 줄 알아? …”121
두세쪽 이어지는 대화 끝에 두 연인은 파혼한다. 이 대화가 나오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좋았다. 얼마전에 다섯 째 아이를 읽어서 그러나? 후원만 믿고 애 낳고 집 키우고 일 벌이고 그런 거 보고 학을 떼서? 그런 것도 있겠고, 진솔한 대화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도 솔직하기가 어려운 마당, 나도 속이고 상대도 속여 결혼하기가 더 쉽다. 래리도 이사벨도 그 부분에서만큼은 타협이 없다는 품성을 공유하고 결혼은 깰지언정 본인에게 진실하다는 게 그렇게 좋더라. 파혼에 깨춤 ㅋ
파혼 이후, 래리는 정말 많은 곳을 전전한다. 머무는 공간, 직업, 동행인 모두 천차만별이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래리가 세계에 대해 품고있는 모종의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이라고 할까. 소설 속 남자들의 성장담이 으레 다 비슷한 것일지 골드문트의 여행이 생각나기도 한다. 여하튼 이후로도 길게 이어지는 그의 모험을 화자 몸은 흥미진진하게 바라본다.
서술자의 태도는 시종일관 묘하다. 사교계를 누비는 엘리엇도 그렇긴 하지만 그와는 다른 양상으로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젊은이들과 어울린다. 가끔은 그들에게서 연식과 인생 경험에서 나온 조언을 해달라고 요청받을 때도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하는 대답 또한 단정적이지 않고 중립적이다. 영리하면서도 (실타 시러)꿈도 사랑도 맨땅에 박치기에 열심인 전후세대 젊은이들, ‘청춘’(이 단어 왜 이렇게 부담스러운건지)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자애롭고 온정적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작가 본인의 순수한 호기심에서 우러나오는 질문들로 대화의 완급을 조절하고, 내적으로는 렌즈를 들이대는 듯한 자세로 이들을 탐색한다. 그런 자유롭고 규정할 수 없는 태도가 소설 속 인물들이 화자를 대화상대로 둘 때 빛을 발하는 듯하다.
제목인 면도날이 해설에서 언급되는 비유로 작동하는 거라면 그 엣지 위의 청년들을 냉소적이면서도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태도가 계속 읽어나가게 하는 동력이다. 솔직히 읽기에 가장 재밌는 인물은 엘리엇이다. 겉으로도 속으로도 속물인데 치고 빠지는 처세에도 능해서 매력적인 데다가 우정을 쌓을만한가 의문을 갖기 전에 이 작가 본인마저도 기탄 없어지는 상대기도 하니까.
하지만 잊을만하면 치고 들어오는 여혐에 자주 지쳤다. 읽다가 포스트잇에 웩을 써둔 적이 허다하며... 메모앱에 옮긴 책 구절구절에는 웩을 해시태그로 범주화해뒀다.. 사실 그런 걸로 걸고 넘어지려면 안 읽을 책이 더더 많고 못 볼 작가가 더더더 많으나(이번에 읽어야 해서 읽었다) 왜 매번 유독 이 작가는 힘들까? 안 읽으면 땡이고, 앞으로도 자발적으로는 땡이다. 안 보면 그 뿐인 것을 이 작가의 우월의식이 왜 특히 내게 도드라지는 건지 생각해볼 일이다. 여성 뿐 아니라 특정 부류의 인간군 전체를 낮게 보는 듯한 오만함이 배어나온다. 감정과잉을 경계하는 중립적인 관찰에서 오는 차가운 매력은 있었지만 그 뿐이다. 인간을 재단하는(이미 해둔) 듯한 시선과 철저하게 유지하는 거리에서 배어나오는 우월의식. 대단한 양심 찾아 소설 읽자는 것도 아니고 착한 남작가 건지려고 책 보는 것도 아니다. 예민한 시대 감각으로 묘사한 전후 유한계급의 시대 풍경에 그저 만족하면 될 뿐인데. 재밌긴 하니까 아쉬운 건지도.
그런 의미에서 여자한테 전방위로 가시밭길인 소설 안에서 고유의 위치를 점한 여캐 이사벨도 대단하다. 누가 이사벨을 두고 쌍년이라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자기 거 잘 챙기는 여자는 * 년이고 누가 뭐라든 ‘비웃는 듯한 미소(원문 뭘까)’를 띠고 제갈길 밀고 나가는 남자는 주인공으로 남는 익숙함. 전략적인 욕망의 이사벨(매춘부 수잔, 타락한 여인 소피, 아둔한 남자 그레이, 속물 엘리엇, 전능한 관찰자 몸,..)이 래리와 대비되며 그를 더욱 순수한 색으로 덧입힌다.
그게 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작가가 ‘자기 완성’에 이르는, 그 길에 정진하는 고결한 인간상인 래리를 구현하고 싶었던 거라면 나는 그렇게 설득되지 못했다. 서백남의 자의식이 래리에게서도 배어나오는데 작가가 모르지는 않았을 거 같다. 이래도 읽을 줄 알았던 거겠지? 대화의 재미와 인물의 매력으로도 술술 읽어나가게 하는 재미와, 마지막에 이르러 나도 속물이오 자인하는 조련만은 인정해야겠다. 이제 정말 안녕, 웩으로 가득찬 포스트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