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전자책 기준)



“나는 그 악몽과 화해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정신을 잃지 않았던 것은 계속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말을 하고있습니다.”


“당신의 침묵은 자신과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나에게는 인도 여성들이 선천적으로 갖고 있다는 수치심 유전자가 없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강간을 당하고 죄책감, 공포, 트라우마, 혼란 속에 사로잡혔지만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P24

나를 ‘드러냄으로써’ 얻은 이런 위로와 공감은 사실 전혀 원하던 바가 아니었습니다. 내게 진짜 공감과 위로가 필요했던 날로부터 30년이나 지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내 일에 충격과 분노를 느꼈지만, 나의 충격과 분노는 이미 오래전에 종결되었습니다. 그들의 위로는 내게 전혀 새롭지 않았고, 내가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는 이상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 P34

강간법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합니다. 남성이 남편을 강간하는 것은 허용될까요? 힘의 역학이 젠더의 역학으로 바뀔까요? - P80

나의 아버지는 나를 두 팔로 감싸 안고는 옥상으로 데리고 가면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고 싶니?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하자."

그로부터 4년 후, 나는 강간 생존자를 상담하고 전문가를 훈련시키고 학교에서 강의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을 생존자 행동 요령의 기본 지침으로 사용했습니다. 아버지는 심리학이니 사회학이니 젠더니 하는 교육은 전혀 받지 않은 평범한 중년의 무슬림이었습니다.

전혀 복잡하지 않습니다. 생존자에게 아무것도 통제하지 말고 무한으로 수용하고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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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밥하면서 읽었다. 바다 앞에서 해방감을 누리는 소녀의 뒷모습을 그린 장면에, 좁은 공간을 왔다리 갔다리 어설프게 칼질하는 주부가 벅차오르는 거 뻔하긴 하다. 그런데 단지 그거 때문만은 아니라고 하고 싶다. 요즘에 아이와 옛이야기 그림책들 읽다가 지쳐버린 지점이 있는데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책이었다.

옛이야기는 동일 문화권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의 원형이 되고, 설화 자체에도 옛사람들의 핵심가치를 보존하고 전승한다는 역할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 치더라도 읽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의 무의식에 자취를 남기는 서사로써 치명적 결함이 있다고 한다면 교과과정에 싣는 등의 관행은 개정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선녀와 나무꾼이 1학년 교과서에 지금 있다는데…)

옛이야기를 읽으면서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제국주의, 물질만능주의, 엘리트주의, 비장애 중심주의를… 그렇다 친다고 쳐서 치더라도(안댐) 개인적으로 늘 답답했던 지점은 구원의 일방향성이었다.

구원은 왜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질까. 미션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남자가 보상(주로 여자, 누구 딸)을 받는 얘기에서든지, 왕자를 기다리던 여자가 결혼해서 해피엔딩을 맞는 이야기에서든 혹은 고난에 처한 주인공을 위해 온갖 수난을 감수하는 여자의 위대한 자기 희생이 됐든지 말이다. 위험에 처한 동물을 도와주고 보답으로 선녀 잡는 치트키 알려주는 식의 교감 말고, 왜 사람들 간의 위계를 초월하는 우정, 선한 의도에서 생겨나는 상호 신뢰와 사랑 같은 건 그려지지 않을까. 옛이야기 이론서를 읽어 봐도 나는 설득되지 못했다. 이해 관계가 작동하지 않는 사이, 우정(이 얼마나 큰데!), 그걸 작아보이게 만드는 이야기들에 질려버림..

조이스 박은 <빨간 모자가 하고 싶은 말>에서 인어공주를 “두 개의 구멍으로 환원되는 이야기”라 말한 바 있다. 여자가 목소리를 내기로 선택하면 다리를 잃을 것이고 다리를 선택하면 목소리를 잃는다는, 어떤 구멍이 될지를 선택하기 요구받는다는 것이다.

“가부장 사회는 여자가 두 개의 구멍을 다 가지고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말을 하고 싶은가? 그러면 하반신의 구멍이 없는 물고기 하체를 입으면 된다. 그러나 남자의 파트너가 되어 그에게 사랑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혀를 내주고 다리 사이의 구멍을 얻으면 된다. 그렇게 하나의 존재는 두 개의 구멍으로 환원된다. 온전히 구멍 두 개를 다 쓰며 살 수 없다. 버젓이 쓰라고 달린 두 개 중 하나만 쓸 수 있다.”143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이야기들은 자주 실패한다. 검열과 삭제, 재구성이라는 과제 때문에 일단 재미 면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입에 오르내릴 수 없으니 시간성이라는 절대 권력을 획득할 수도 없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쓴 차별, 혐오 없는 전래동화 <선녀는 참지 않았다>의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한계점을 적어뒀는데, 뼈 아프고 의미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써내려간 이야기를 수차례 검토하며, 맞닥뜨린 한계점들은 우리의 서사가 진정 뿌리 깊은 차별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우리는 기존의 전래 동화와는 다른 주체적인 여성상을 구현하고 싶었다 (…) 높은 사회적 부나 지위를 가지는 것만이 성공이고,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는 사고에 익숙해진 우리는 단순히 ‘성공하는 인간’의 범주에 여성을 끼워넣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곧 모든 문제에 해답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더불어 잘못된 남성 인물을 벌주는 것도 하나의 해소 방안으로 그려냈지만 과연 그것이 마땅한, 혹은 유일한 해결책일지에 대해서는 반드시 고찰이 필요하다(…) 즉, 우리는 기존의 성차별주의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대체하는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것에는 이르지 못하였던 것이다.” 에필로그(<선녀는 참지 않았다>)

같은 책 추천사에서 정희진은, “사실 동화는 단어의 어감과 달리 공포와 단죄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권선징악의 결말이 교훈을 주는 것 같지만, 문제는 누구의 입장에서 권선징악이고 사필귀정이냐는 것이다. 동화처럼 당파적인 서사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어 소녀>로 돌아가서.. 책 속 인어소녀 미라는 넵튠왕이라 자처하는 어부에게 바다의 왕인 본인이 인어인 자기를 거둬키웠다는 이야기를 믿고 자란다. 미라는 넵튠의 수족관에서 신비한 인어공주를 재현하고 보일 듯 말듯 자취를 숨기는 게임으로 손님을 끌고, 소원 동전을 줍는 일을 하며 산다.(가해자 진짜 한심하고 그릇 작은 새끼다) 단 한번도 건물밖으로 나온 적이 없는 인어소녀의 유일한 낙은 넵튠이 들려주는 자기의 (지어낸) 어린시절과 인어 어머니 이야기이다. 미성년자 감금 착취 범죄 현장.. 대환장..
가스라이팅의 전형적인 케이스라 할 만한데 이런 상황을 탈출할 계기는 우연히 사귀게 된 친구 리비아에게서 온다. 또래로 짐작되는 둘 사이에 서로에 대한 호기심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물 속의 인어소녀에게 다가가기 위한 리비아의 노력이 특히 정성스럽다. 물에 젖지 않게 그림을 코팅해 선물하는데 인어소녀는 넵튠에게 들키지 않게 잘 숨겨둔다. ‘내 방에서 보이는 나무는 이렇게 생겼어’, ‘내 개는 방바닥에 꼬리를 찰싹대서 찰싹이라 이름 붙였어’ 사사프라스 나무와 개 그림, 그리고 이런 것까지 네가 궁금해할지는 모르겠는데 본 적 없을 거 같아 그려봤다는 참치 상추 샌드위치 그림까지. 리비아를 보고 이렇게 말 많은 인간은 처음 봤다는 인어소녀의 내적 놀라움이 너무 와닿는다 ㅋㅋㅋ 둘의 대화는 조건(인어소녀에게 목소리가 없고, 공통 문화권에서 자라지 않았다는)에 비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다시 만나는 것,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 그러려면 탈출할 것. 인어소녀는 혼자서 걷기를 훈련하고 나가기로 마음 먹는다. 당연하다. 두 소녀 사이에 흐르는 케미스트리가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 우린 아니까. 인어소녀가 수족관을 탈출한 것은 스스로 해낸 일이지만 그 동력은 친구와 스스로의 세계를 오가는 순수한 우정에서 왔다.


인어소녀의 미라, 라는 이름은 리비아가 지어주는데, 미라클에서 따왔다. 네게 미라클은 발음하기 어려울까, 그렇다면 미라는 어때?라고 제안한 것. 안데르센이 쓴, 왕자를 구하고도 대신 죽기를 자청해 바다의 거품으로 이름도 없이 사라진 인어공주의 사랑이 아름다운가. 상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정직한 시작일텐데. 정희진의 말대로 “동화도 다른 담론처럼 치열한 정치적 경합의 장”이다. 읽고 거르고 다시 읽는 것이 현재 양육자들의 소명이다. 다시 쓰인 이야기를 찾아내 읽어주는 것이 쉽지는 않아도 이런 책을 만날 때의 짜릿함에 비하면 감수할만한 고생이다.

북플앱은 왜 상품넣기로 책 순서 편집도 안되고.. 안되는 건지 방법을 못찾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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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소녀 Wow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위즈너 그림, 도나 조 나폴리 글,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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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위즈너

엉엉엉…
엉엉엉 카테고리를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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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항해 창비세계문학 66
진 리스 지음, 최선령 옮김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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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도미니카 태생 영국 작가 진 리스의 자전 소설“의 서평으로는 생뚱맞지만ㅋㅋ 편지가 이렇게 비정한 매체일 수 있겠구나, 싶다. “친애하는”으로 시작해 “당신의 누구로부터”로 한껏 정중히 말을 맺으면서도 소설 안에는 돈을 대줄 수 없다, 밀린 돈을 내라, 돈 달라는 내용의 편지들이 계속 나온다. 유일하게 돈을 준다는 사람은 (아마도 다른 여자가 따로 있을) 변심한 연상의 전 연인. (칵퉷!)

고향 카리브해에서부터 런던에 이르기까지 열아홉살 애나 모건은 정처없이 부유하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다는 걸 가장 잘 알고 있다. 사랑에 빠져 가장 고조된 순간에조차도.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애나의 외부 상황과 내면은 뒤로 갈수록 더 분열적으로 묘사된다. 카리브해(서인도제도)에서의 분절된 기억과 런던 풍경이 교차한다. 책 소개에 늘 등장하는 페미니즘 문학과 디아스포라의 경계도 이 연장선에 있지 않을까. 어디가 시작인지, 정착지인지. 소설 속에서 애나는 어디에 있는 건지 계속 생각하게 한다. 여기는 떠나온 곳일지, 현실인지.
어둠, 속의, 항해. 제목 좋다.

회상 중에, 흑인 하녀 프랜신의 노랫소리를 떠올리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프랜신이 들어와 (… )그녀는 내 머리에 감긴 붕대를 갈아 주었고 (…)나무 잎사귀로 내게 부채질을 해주기 시작했다. 바깥은 밤. 거리를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 - 가늘고 슬픈 쓸쓸한 목소리들. 그리고 마치 살아 있는 무엇이라도 되는 듯 사람을 짓누르는 그 열기.
나는 흑인이 되고 싶었다. 난 항상 흑인이 되고 싶었다. 프랜신이 거기 있어서 나는 행복했다. 나는 그녀의 손이 부채질을 하느라 까딱까딱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녀의 손수건 밑으로 떨어지는 구슬같은 땀방울을 보았다. 검다는 것은 따스하고 유쾌하며 희다는 것은 차갑고 슬프다. 그녀는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다. - P39

안녕, 내사랑, 잘 있어요.
소금에 절인 소고기와 정어리도
내가 남기고 떠나는 모든 좋은 시절도,
안녕, 내 사랑, 잘 있어요.

이것이 그녀가 아는 유일한 영어 노래였다.
- 배 위에서 뒤돌아 마을의 일렁이는 불빛들을 보는 순간 나는처음으로 내가 떠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밥 삼촌이 자 이제 가는거야 하고 말했고 나는 내가 우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고개를 돌렸다ㅡ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듯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바닷속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안녕 내 사랑 잘 있어요―나는 일렁이는 불빛들을 지켜보았다 ㅡ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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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12-27 1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아직도 읽지 않은(못한) 1인으로서 이 책 또한 영원히 저의 숙제 같은 책이에요. 유수님 글 읽고 나니 더는 미루지 말자 결심하게 됩니다.

‘책 소개에 늘 등장하는 페미니즘 문학과 디아스포라의 경계‘라는 대목에 눈이 가네요. 너무 어려울 것 같고 그러면서도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ㅎㅎㅎ

유수 2022-12-27 20:12   좋아요 1 | URL
앗 제가 말을 잘못 인용했는데 이 책 페미니즘 문학작품으로 늘 언급되는데 저는 디아스포라 문학이기도 하지 않나 싶어서 혼자 느낀ㅋㅋ경계는 어딜까 하는 의문인데요. (전문가가 아니라 조심스럽ㅋㅋ)
단발님께 이 소설 어렵진 않을 거 같아요. 동일시하기에 (제가) 넘 멀어졌지만 젊은 여자가 겪는 불안, 외로움 그게 메인이라서요.
사르가소 언젠가 읽으실 때 저도 따라 읽어야지~~~♥️

수이 2022-12-27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분이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아직 읽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제겐 좀 충격적이지만 그래도 저도 뭐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ㅋㅋㅋㅋ 어둠 속의 항해_ 저도 찜해서 내년에 읽도록 하겠습니다.

유수 2022-12-27 22:15   좋아요 0 | URL
저도 기억속에 남은 게 없어요. 그래서 밑줄이나 알라딘 서재가 중헌 것이군… 두 분께 보고 배우죠.. 또 뭐 읽으시나 구경갈게요숑로롱

수이 2022-12-27 22:31   좋아요 1 | URL
아 지금 보니 유수님은 읽으신 거구나 ㅋㅋ 쏘리;;;;; 저도 다시 읽을게요!!! 두 분과 함께!!

유수 2022-12-27 23:32   좋아요 0 | URL
중요하지 않아요 수이님♥️ 같이 읽기 n번째 책으로 찜… ㅋㅋㅋㅋ
 
바느질 수다 - 차도르를 벗어던진 이란 여성들의 아찔한 음담!
마르잔 사트라피 글 그림, 정재곤.정유진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찰진 번역 무슨 일인지 ㅋㅋ 미터기 이런건 그대로 번역했을까 싶기도 한데. 페르세폴리스도 대단하지만 이건 전격 ‘부역자’ 토크라서 재밌다. 기혼 페미의 자조와 기만… 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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