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랑 가까이 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말이다. 몇글자 끼적이는 것조차 자주 관두고 싶다. 읽는 것에서 쓰는 것으로 넘어가 쨈만 걸쳐 보려는 것뿐인데 이렇게 힘에 겨울 일인지.
레모 출판사의 <젊은 남자>에 아니 에르노 노벨상 수상 연설문이 있다고 해서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다. 책을 살까 말까 고민을 오래했다. 아니 에르노 좋아하면서도 읽을 때마다 소진되고 소설로만 읽을 수 없다는 게 버거웠다. 그래놓고 또 읽으면 혀를 내두르고 무릎 탁 치고 온갖 상투적인 감탄은 고대로 다함. 여하튼 읽고 싶었던 연설문인데 중요한 문장에 번역 오류가 있어 출판사(번역가)가 이번에 온라인 무료 배포하셨다고 한다.
“문학은 나 스스로 내가 속한 사회 계층과 무의식적으로 대립시킨 대륙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글쓰기를 단지 현실을 미화하는 가능성으로만 여겼습니다.“ 09
현실미화와 자리 만들기 사이의 글쓰기 뭘까. 글쓰기에 대한 성찰 없이 어떻게 삶을 성찰할 수 있냐고 묻는 의연함. 이 태도. 정확히 뭐가 좋다고, 어디가 어떻게 강력하게 끌린다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내일 아침 아기 생일 미역국을 끓여야 하는 나를 글자로, 글자로, 데려가준다.
“그 약속에서, 나의 조상들에게서, 노동에 지쳐 일찍 생을 마감한 남자와 여자들에게서 나는 충분한 힘과 분노를 얻었습니다. 그 힘과 분노는 문학에, 다양한 목소리의 총체 속에 그들의 자리를 마련하고야 말겠다는 욕망과 야심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제공하고, 문학에 맞서 반항하고 문학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비롯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바로 그 문학 속에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여성이자 계급탈주자로서의 나의 목소리를 언제나 해방의 장으로 소개되는 그곳, 문학 속에 기입하기 위해서.” 26